강아심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렇게 좋은 남자를 나한테 넘기겠어?”이에 성연희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만약 내가 일찍부터 노명성에 빠지지 않았다면, 나도 직접 그 남자를 쫓아다녔을 거야.”“요즘 정말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어.”“언제 시간이 있었던 적이 있니? 변명하지 마. 너 연애하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 친구로서, 너도 연애해야 한다고 생각해.” 연희의 말에 아심은 잠시 침묵했다. 문득 온두리를 떠나던 밤, 진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서 잘 살라고 했던 말. 아심은 진심으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지난 과거와 작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희는 아심이 대답하지 않자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한 번 만나보라는 거야. 만나본다고 해서 바로 사귀라는 것도 아니고, 인생 경험의 일환으로 생각해.”아심은 서류에 서명하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너 같은 친구가 나를 위해 남자를 소개해 주는 영광을 거부할 수는 없지. 한 번 만나볼게.”“좋아, 그럼 약속한 거야!”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내일 점심에 만날 장소를 정해줄게.”“장소 정하면 문자로 보내줘.” “그럼 그렇게 하자!” 곧 연희는 전화를 끊었고 아심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 공공관계 부장인 성보라를 불렀다.“경휘 컴퍼니가 곧 신제품 발표회를 연다고 하네요. 발표회 전체 행사를 우리에게 맡기기로 했으니, 이 일을 담당할 사람을 배치해 줘요.”보라는 스물일곱 살의 능력 있는 여자였고 경휘 컴퍼니의 자료를 넘겨받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경휘의 사장은 괜찮은 사람인데, 부사장이 손이 좀 거칠어요. 누구를 보내든, 자기를 지키라고 알려줘요. 괴롭힘당하면 참지 말라고 하세요.” 아심이 당부하자 보라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저희도 알고 있어요.이에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주말인데 다들 고생했어요. 날씨도 안 좋으니 일찍들 퇴근해요.”“우리 방금 저녁에 다 같이 회식하자고 얘기했는데, 사장님도
날이 어두워질 무렵, 진석이 도경수 집에 도착했다. 강성으로 가는 항공편이 취소되어, 먼저 해성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시 차로 해성에서 강성까지 왔다.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싶어 그렇게 서둘러 온 것일까?하루 종일 차를 타고, 진석은 먼저 방에 가서 샤워하고 나서 도경수와 강재석을 만나려고 했다. 진석은 뒷정원을 지나가다, 강시언을 만났다. 진석은 꽤 피곤해 보였지만 애써 웃으면서 불렀다. “시언이 형!”“도경수 할아버지가 오늘 못 올 거라 하셨는데, 돌아왔구나!” 시언은 눈 속에서도 잘생기고 강인한 모습이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님께서 목숨 걸고 증거를 가져오셔서, 제 일이 술술 풀린 것뿐이에요. 고생이라 할 것도 없어요.”“소희는 어때요?” “조금 다쳤지만, 상태는 좋아. 오늘 임구택과 함께 있다가 조금 전에 갔어.”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구택 씨가 함께 있어서 다행이네요.”“응.” 시언은 대답했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나?”“먼저 방에 가서 씻고 나서, 스승님과 할아버지를 뵈려고요.”“그래, 이따 보자.”진석은 시언과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향했는데 방에 들어가니 방 안은 어두웠다. 하늘도 흐리고 커튼도 쳐져 있어 방 안은 굉장히 어두웠다. 진석은 잠시 눈을 적응시키고, 불을 켜지 않고 옷장으로 가서 가운을 꺼내 욕실로 갔다. 이틀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해, 뜨거운 물이 쏟아지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가운을 입고 침실로 돌아온 진석은 시간을 확인하고 서둘러 내려가지 않고 잠시 쉬기로 했다. 가운을 벗고 알람을 설정한 뒤, 진석은 이불을 들추고 누워서 한 시간 정도 자려고 했다. 피곤함이 몰려와 눈을 감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뜨거운 몸이 진석에게 다가왔고, 마치 문어처럼 진석을 안았다. 이에 진석은 갑자기 눈을 뜨며 본능적으로 다가온 사람을 밀어냈다.“아프잖아, 밀지 마!” 여자는 꿈속에서도 불만을 중얼거리며 그를 놓지 않고 말했다. “좋으니까
진석은 목구멍이 타들어왔고 이불을 잡아당겨 강솔에게 덮어줬다. 그러나 강솔은 곧바로 이불을 걷어차며 말했다. “더워, 너무 더워!”진석은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강솔을 누른 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느라 이마에 땀이 맺혔다. ‘다른 사람들은 열이 나면 춥다는데, 왜 얘는 반대일까?’진석은 강솔의 옷을 찾아 이불 속에 넣어주며 몸을 더듬어 입혔다. 누군가에게 옷을 입혀본 적이 없어서인지 다소 어수선했다. 하지만, 옷을 입히지 않으면 사람들이 강솔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진석의 방에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었다.조금 당황한 진석은 속옷을 입히는 데 애를 먹으며 손이 닿아서는 안 될 곳에 닿기도 했다. 진석은 강솔이 도경수 집에 처음 왔을 때의 어린아이로 여겨야 했다. 마침내 강솔에게 얇은 스웨터를 입혀주고 나니 진석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진석은 잠시 진정하며 해열제를 찾기 위해 탁자 쪽으로 갔다. 강솔이 어릴 때 병에 걸리면 항상 챙겨주었기 때문에 감기약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진석은 망설임 없이 강솔을 안아 올려 자신의 품에 기대게 하고, 약을 입에 넣고 따뜻한 물을 마시게 했다. 강솔은 눈을 감고 약을 삼켰고, 진석의 가슴에 의지하며 진석의 허리를 단단히 껴안고 더 깊이 파고들었다. 진석은 물잔을 내려놓고 강솔의 뜨거운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주예형으로 착각한 거야?”“예형, 나 너무 힘들어!” 강솔은 진석의 말에 따라 낮게 중얼거렸다. 이에 진석의 깊은 눈동자에 아픈 감정이 스쳤고, 소녀를 내려다보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강솔의 열기를 흡수했지만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잠시 후, 강솔은 땀을 흘리며 열이 내렸다. 진석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강솔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도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갔다. 이때 하인이 진석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강솔 아가씨는 괜찮으신가요?”“방금 약을 먹
저녁 식사 시간, 강솔은 이미 활력을 되찾아 계단을 내려왔고 진석을 보고 기쁘게 인사했다. “진석, 언제 돌아왔어?”진석은 해맑은 강솔을 무시하고 무표정하게 식당으로 걸어갔다.“왜 나를 무시해?” 강솔은 따라가며 물었다. “내가 너 기다리지 않고 경성에서 먼저 돌아와서 그래? 나는 소희가 보고 싶었단 말이야!”진석은 빠른 걸음으로 계속 걸어갔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 이래!” 강솔은 진석의 앞을 가로막고, 눈을 굴리며 말했다. “내가 잠깐 네 침대에서 잠든 것 때문에 화난 거야?”진석은 별처럼 빛나는 어두운 눈동자를 안경 뒤에 감추고, 냉담하게 말했다.“감기 옮을까 봐 그런 거야, 알겠어?”“너한테 일부러 옮길 거야!”강솔은 진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도 나랑 같이 아프게 만들 거야. 고난도 함께해야지!”이에 진석은 강솔을 응시하며 이마를 만졌다. “아직도 열이 나는 거 아니야?”강솔은 진석의 손길을 피하며 말했다. “열은 이미 내렸어!”진석은 강솔이 피하려는 것을 보며, 자신과의 접촉을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자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정말로 화났어?” 강솔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분명 잠을 못 자서 짜증 난 거야. 그래서 이렇게 화를 내는 거겠지.”저녁 식사가 끝나고, 진석은 강시언과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솔은 몇 잔의 생강차를 들고 나와 말했다. “주방에서 끓인 거야. 너희도 한 잔씩 마셔. 감기 예방에 좋아.”“감기 걸린 사람이 감기 예방을 말하다니, 정말 우습네.”진석이 비웃으며 말하자 강솔은 진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석, 내가 뭐 잘못했어? 말해봐!”진석은 생강차 한 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 후, 창밖의 눈경치를 바라보며 설명할 마음이 없었다. 곧이어 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희 둘이서 얘기해. 나는 가서 할아버지들 바둑 두는 거 볼게.”“필요 없어요!”“형, 가지 마
“또 물에 약을 뱉으려고?” 소희는 휴대폰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구택을 바라봤다. 방 안에는 단 하나의 스탠드 조명만 켜져 있었고, 흐릿한 조명은 구택의 깊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비추자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반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반은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찬바람이 눈들을 유리창에 부딪히며 찬 기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구택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계속 해독제가 효과가 없는 이유를 찾고 있었어. 임예현과 빌 교수를 다시 찾아가 물어봤는데, 그들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어.”“너에게 사용된 약과 해독제 모두 효과가 있는 것들이었어. 근데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게 약은 분명히 효과가 있는 거고, 처음 3일 동안은 효과가 분명했어.”“근데 왜 그 이후로는 효과가 없어졌을까? 약물 자체 외에 다른 이유는 하나뿐이야. 네가 이후로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것.” “네가 매번 약을 먹을 때 내가 없으면 네가 약을 뱉어냈겠지.”“그리고 내가 있으면 약을 입 안에 넣고 있다가 물을 달라고 해서, 약을 물에 뱉어내고 내가 보지 않을 때 물을 버렸을 것이고.”“약은 물과 만나면 무색 무향이니 그렇게 네게 속은 거지.” 구택의 한마디 한마디에 소희의 손가락이 오그라들며, 휴대폰을 꽉 쥐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구택은 소희에게 다가가 소파에 몸을 기울여 소희를 내려다보았다. “왜 약을 먹지 않았는지 이유를 추측해 볼까?” “너는 백양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심지어 모든 팀원에게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꿈속에서라도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던 거지?” 소희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긴 속눈썹이 떨리며 낮게 말했다. “그러면 안 돼?” 소희의 긍정에 구택의 눈빛이 깊은 슬픔으로 변했다. “한번 생각해 봐.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그저 꿈일 뿐이니까. 보통 사람들도 꿈을 꾸잖아. 그리고 나는 그개 단지 꿈일
임구택은 소희를 가만히 바라보자 소희는 구택을 꽉 끌어안았다.“그러니까, 나를 떠나지 마.” “나는 떠나지 않았고.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구택의 목소리는 쉰 듯이 들렸다. “넌 내 감정을 신경 써?” “신경 써요.” “그렇다면 지금 나는 매우 불안해.” 이에 소희는 구택을 꼭 껴안았다. “나는 당신 품에 있는데, 왜 불안해해?” “하지만 네가 잠들면 나를 원하지 않잖아.” 구택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자 소희는 할 말이 없었다. “소희야!” 구택은 소희의 턱을 잡고, 인내심 가득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양의 죽음은 너와 상관없어. 백양은 삼각용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돌아올 수 없었어. 이렇게 후회 없이 죽는 것이 백양에게는 최선의 결과야.” 소희는 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네가 몸 안의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부작용이 생길 거야.”“어느 날 네가 정말로 꿈속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그리고 우리는 곧 결혼식을 올릴 거고 아이를 가지려고 하겠지. 그런데 네가 이런 상태로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겠어?” “너는 요요를 그렇게 좋아하잖아. 요요처럼 귀여운 딸을 원하지 않아? 내 말 좀 들어줘, 응?” 어둠 속에서, 소희는 그를 바라보며 울먹였다. “자기야, 나는 그들을 잊고 싶지 않아.” “너를 잊으라고 한 것이 아니야.” 구택은 소희를 꼭 껴안았다. “생각해 봐. 요하네스버그에서 백양을 만나기 전에, 네가 매일 꿈을 꾸기 전에, 네가 그들을 잊은 적이 있어?” “어떤 감정은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 나는 이해하고, 응원해. 질투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기념해서는 안 돼.” “백양은 죽기 전에 이미 마음의 짐을 내려놨어. 그는 네가 이렇게 마음에 걸려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소희는 눈을
소희는 말없이 임구택을 한 번 흘겨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맑아졌어?” “응, 날씨가 맑아졌어.” 구택은 옆으로 몸을 돌려 팔꿈치를 세운 채 말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어?” 소희는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기분은 항상 좋았어.” 그리고는 구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 “너도 같이 가자.” 구택은 소희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야, 오늘은 스승님 댁에 가야 해.” 소희는 고개를 들어 구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께 필요한 것 좀 받아야 하고, 양재아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준비하려고 해.” “그러면 먼저 아침 먹고, 너를 도경수 집에 데려다준 후에 회사에 가야겠네.” “좋아!” 구택은 고개를 숙여 소희와 잠시 입맞춤을 나눈 후 소희를 안고 일어섰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소희는 어젯밤 성연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강아심은 내가 해결했어. 이제 네 오빠는 네가 해결해!] 소희는 어젯밤 계속 바빴기에 답장을 못 보냈고, 방금 연희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레스토랑 예약 완료. 성경 오페라 하우스 2층에 있는 아주 멋진 레스토랑이야.][둘이 식사 후에는 3층에서 오페라도 볼 수 있게 티켓도 준비했어!] 소희는 연희의 추진력에 감탄하며 답장을 보냈다. [곧 스승님 댁에 가서 오빠를 찾을게.] 이에 연희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좋아, 좋은 소식 기다릴게.] 연희의 열정에 소희도 강시언과 강아심의 만남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소희와 구택은 함께 집을 나섰다. 도경수 집에 도착하자, 구택은 소희를 집 안으로 데려다주었는데, 진석도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구택은 차를 몰고 떠났다. 구택이 떠나자마자 소희는 바로 시언을 찾으러 갔다. 소희는 원래 늦게 일어났기에 이미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강재석은 오늘 회사 업무 관련 문서를 시언에게 맡겼다. 소희가 들어갔을
두 사람은 2층 레스토랑으로 갔고, 소희는 성연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도착했어!] 이에 연희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강아심은 이미 10분 전에 도착했어. 6번 테이블로 보내.] [알겠어!] 소희는 강시언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오빠는 6번 테이블에서 기다려. 금방 갈게.” “응!” 시언은 별 의심 없이 6번 테이블로 향했다. 오페라 하우스 레스토랑은 예술적인 분위기로 가득했다. 유럽식 대형 창문, 바로크 양식의 벽화, 고전적인 크리스털 샹들리에, 손님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로맨틱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진언은 6번 테이블에 도착해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 아심이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아심도 놀라서 무심결에 일어섰고, 태도는 순식간에 공손해졌다. “진언님!” 아심은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연한 화장을 했으며, 눈썹 또한 아름다웠는데 마치 눈 덮인 풍경 속 붉은 매화처럼 우아하고 요염하게 서 있었다. 이에 시언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여기서 뭐 해?” 그러자 아심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 저는 소개팅 보러 왔어요.” “소개팅?” 진언은 눈살을 찌푸렸고 그때 핸드폰이 울렸는데 소희가 보낸 메시지였다. [오빠, 연희가 여자를 오빠에게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 이미 만났지? 나는 방해하지 않을게. 소개팅 잘해!] 메시지를 확인한 시언은 천천히 얼굴이 굳어졌다. ‘나를 데려온 게 소개팅이라니? 내가 정말 여기까지 와서 소개팅하다니! 정말 말도 안 돼! 잠깐, 그러면 소개팅 상대가 강아심?’진언은 맞은편의 아심을 바라보았고 아심도 시언을 바라보며 눈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고 있었다. “소개팅 상대가 진언님이실 줄은 몰랐어요.” 아심은 상황을 금방 파악했다. 연희와 소희가 친구였으니, 시언도 속아서 온 것이라는 것을, 시언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창밖을 무심히 한 번 바라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