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원은 예전 네 사람이 함께 살았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는 우청아에게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잘 보일지를 알려줬지만 되레 한 방 먹었었다.“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세월이 꽤나 흘렀지만, 시원은 이 말에 여전히 억울함을 느끼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 너희는 더 친하니까 여기서 나만 외톨이네.”이에 요요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나도 외톨이 할래!”그러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시원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역시 내 딸이야. 내 친딸 맞네!”구택은 시원을 주방으로 끌고 가며 말했다. “투덜거리지 말고 빨리 감자나 썰어!”거실에서 청아는 자신이 만든 코코넛 쿠키를 소희에게 건넸다. “일 다 해결됐어? 뉴욕에 있을 때 너무 걱정했어. 오빠가 너랑 구택 씨 능력을 믿으라고 했어.”“근데 정말 너희가 돌아오자마자 모든 문제가 해결됐네. 정말 대단해!”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다 허황한 거짓말들이었어.”그러자 청아는 진지하게 말했다. “이씨 집안은 분명 의도가 있었어. 소씨 집안이 널 공격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 가족에게 배신당하는 느낌, 그 기분은 내가 가장 잘 알지.”“어젯밤에 돌아오면서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소씨 집안사람들이 널 찾아와서 부탁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됐어.”가족에게 배신당하고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소희는 잠시 머뭇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어린아이들도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 성인이 되면 더더욱 악행의 대가를 알아야 해.”“만약 눈물로 모든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더 날뛰며 나쁜 짓을 저지를 거야.”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희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는 항상 너를 지지해. 왜냐하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이유를 알기 때문이야.”소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응,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어. 소씨 집안은 이제 완전히 망가졌고
강아심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렇게 좋은 남자를 나한테 넘기겠어?”이에 성연희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만약 내가 일찍부터 노명성에 빠지지 않았다면, 나도 직접 그 남자를 쫓아다녔을 거야.”“요즘 정말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어.”“언제 시간이 있었던 적이 있니? 변명하지 마. 너 연애하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 친구로서, 너도 연애해야 한다고 생각해.” 연희의 말에 아심은 잠시 침묵했다. 문득 온두리를 떠나던 밤, 진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서 잘 살라고 했던 말. 아심은 진심으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지난 과거와 작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희는 아심이 대답하지 않자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한 번 만나보라는 거야. 만나본다고 해서 바로 사귀라는 것도 아니고, 인생 경험의 일환으로 생각해.”아심은 서류에 서명하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너 같은 친구가 나를 위해 남자를 소개해 주는 영광을 거부할 수는 없지. 한 번 만나볼게.”“좋아, 그럼 약속한 거야!”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내일 점심에 만날 장소를 정해줄게.”“장소 정하면 문자로 보내줘.” “그럼 그렇게 하자!” 곧 연희는 전화를 끊었고 아심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 공공관계 부장인 성보라를 불렀다.“경휘 컴퍼니가 곧 신제품 발표회를 연다고 하네요. 발표회 전체 행사를 우리에게 맡기기로 했으니, 이 일을 담당할 사람을 배치해 줘요.”보라는 스물일곱 살의 능력 있는 여자였고 경휘 컴퍼니의 자료를 넘겨받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경휘의 사장은 괜찮은 사람인데, 부사장이 손이 좀 거칠어요. 누구를 보내든, 자기를 지키라고 알려줘요. 괴롭힘당하면 참지 말라고 하세요.” 아심이 당부하자 보라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저희도 알고 있어요.이에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주말인데 다들 고생했어요. 날씨도 안 좋으니 일찍들 퇴근해요.”“우리 방금 저녁에 다 같이 회식하자고 얘기했는데, 사장님도
날이 어두워질 무렵, 진석이 도경수 집에 도착했다. 강성으로 가는 항공편이 취소되어, 먼저 해성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시 차로 해성에서 강성까지 왔다.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싶어 그렇게 서둘러 온 것일까?하루 종일 차를 타고, 진석은 먼저 방에 가서 샤워하고 나서 도경수와 강재석을 만나려고 했다. 진석은 뒷정원을 지나가다, 강시언을 만났다. 진석은 꽤 피곤해 보였지만 애써 웃으면서 불렀다. “시언이 형!”“도경수 할아버지가 오늘 못 올 거라 하셨는데, 돌아왔구나!” 시언은 눈 속에서도 잘생기고 강인한 모습이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님께서 목숨 걸고 증거를 가져오셔서, 제 일이 술술 풀린 것뿐이에요. 고생이라 할 것도 없어요.”“소희는 어때요?” “조금 다쳤지만, 상태는 좋아. 오늘 임구택과 함께 있다가 조금 전에 갔어.”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구택 씨가 함께 있어서 다행이네요.”“응.” 시언은 대답했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나?”“먼저 방에 가서 씻고 나서, 스승님과 할아버지를 뵈려고요.”“그래, 이따 보자.”진석은 시언과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향했는데 방에 들어가니 방 안은 어두웠다. 하늘도 흐리고 커튼도 쳐져 있어 방 안은 굉장히 어두웠다. 진석은 잠시 눈을 적응시키고, 불을 켜지 않고 옷장으로 가서 가운을 꺼내 욕실로 갔다. 이틀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해, 뜨거운 물이 쏟아지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가운을 입고 침실로 돌아온 진석은 시간을 확인하고 서둘러 내려가지 않고 잠시 쉬기로 했다. 가운을 벗고 알람을 설정한 뒤, 진석은 이불을 들추고 누워서 한 시간 정도 자려고 했다. 피곤함이 몰려와 눈을 감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뜨거운 몸이 진석에게 다가왔고, 마치 문어처럼 진석을 안았다. 이에 진석은 갑자기 눈을 뜨며 본능적으로 다가온 사람을 밀어냈다.“아프잖아, 밀지 마!” 여자는 꿈속에서도 불만을 중얼거리며 그를 놓지 않고 말했다. “좋으니까
진석은 목구멍이 타들어왔고 이불을 잡아당겨 강솔에게 덮어줬다. 그러나 강솔은 곧바로 이불을 걷어차며 말했다. “더워, 너무 더워!”진석은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강솔을 누른 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느라 이마에 땀이 맺혔다. ‘다른 사람들은 열이 나면 춥다는데, 왜 얘는 반대일까?’진석은 강솔의 옷을 찾아 이불 속에 넣어주며 몸을 더듬어 입혔다. 누군가에게 옷을 입혀본 적이 없어서인지 다소 어수선했다. 하지만, 옷을 입히지 않으면 사람들이 강솔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진석의 방에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었다.조금 당황한 진석은 속옷을 입히는 데 애를 먹으며 손이 닿아서는 안 될 곳에 닿기도 했다. 진석은 강솔이 도경수 집에 처음 왔을 때의 어린아이로 여겨야 했다. 마침내 강솔에게 얇은 스웨터를 입혀주고 나니 진석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진석은 잠시 진정하며 해열제를 찾기 위해 탁자 쪽으로 갔다. 강솔이 어릴 때 병에 걸리면 항상 챙겨주었기 때문에 감기약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진석은 망설임 없이 강솔을 안아 올려 자신의 품에 기대게 하고, 약을 입에 넣고 따뜻한 물을 마시게 했다. 강솔은 눈을 감고 약을 삼켰고, 진석의 가슴에 의지하며 진석의 허리를 단단히 껴안고 더 깊이 파고들었다. 진석은 물잔을 내려놓고 강솔의 뜨거운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주예형으로 착각한 거야?”“예형, 나 너무 힘들어!” 강솔은 진석의 말에 따라 낮게 중얼거렸다. 이에 진석의 깊은 눈동자에 아픈 감정이 스쳤고, 소녀를 내려다보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강솔의 열기를 흡수했지만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잠시 후, 강솔은 땀을 흘리며 열이 내렸다. 진석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강솔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도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갔다. 이때 하인이 진석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강솔 아가씨는 괜찮으신가요?”“방금 약을 먹
저녁 식사 시간, 강솔은 이미 활력을 되찾아 계단을 내려왔고 진석을 보고 기쁘게 인사했다. “진석, 언제 돌아왔어?”진석은 해맑은 강솔을 무시하고 무표정하게 식당으로 걸어갔다.“왜 나를 무시해?” 강솔은 따라가며 물었다. “내가 너 기다리지 않고 경성에서 먼저 돌아와서 그래? 나는 소희가 보고 싶었단 말이야!”진석은 빠른 걸음으로 계속 걸어갔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 이래!” 강솔은 진석의 앞을 가로막고, 눈을 굴리며 말했다. “내가 잠깐 네 침대에서 잠든 것 때문에 화난 거야?”진석은 별처럼 빛나는 어두운 눈동자를 안경 뒤에 감추고, 냉담하게 말했다.“감기 옮을까 봐 그런 거야, 알겠어?”“너한테 일부러 옮길 거야!”강솔은 진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도 나랑 같이 아프게 만들 거야. 고난도 함께해야지!”이에 진석은 강솔을 응시하며 이마를 만졌다. “아직도 열이 나는 거 아니야?”강솔은 진석의 손길을 피하며 말했다. “열은 이미 내렸어!”진석은 강솔이 피하려는 것을 보며, 자신과의 접촉을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자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정말로 화났어?” 강솔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분명 잠을 못 자서 짜증 난 거야. 그래서 이렇게 화를 내는 거겠지.”저녁 식사가 끝나고, 진석은 강시언과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솔은 몇 잔의 생강차를 들고 나와 말했다. “주방에서 끓인 거야. 너희도 한 잔씩 마셔. 감기 예방에 좋아.”“감기 걸린 사람이 감기 예방을 말하다니, 정말 우습네.”진석이 비웃으며 말하자 강솔은 진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석, 내가 뭐 잘못했어? 말해봐!”진석은 생강차 한 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 후, 창밖의 눈경치를 바라보며 설명할 마음이 없었다. 곧이어 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희 둘이서 얘기해. 나는 가서 할아버지들 바둑 두는 거 볼게.”“필요 없어요!”“형, 가지 마
“또 물에 약을 뱉으려고?” 소희는 휴대폰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구택을 바라봤다. 방 안에는 단 하나의 스탠드 조명만 켜져 있었고, 흐릿한 조명은 구택의 깊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비추자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반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반은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찬바람이 눈들을 유리창에 부딪히며 찬 기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구택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계속 해독제가 효과가 없는 이유를 찾고 있었어. 임예현과 빌 교수를 다시 찾아가 물어봤는데, 그들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어.”“너에게 사용된 약과 해독제 모두 효과가 있는 것들이었어. 근데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게 약은 분명히 효과가 있는 거고, 처음 3일 동안은 효과가 분명했어.”“근데 왜 그 이후로는 효과가 없어졌을까? 약물 자체 외에 다른 이유는 하나뿐이야. 네가 이후로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것.” “네가 매번 약을 먹을 때 내가 없으면 네가 약을 뱉어냈겠지.”“그리고 내가 있으면 약을 입 안에 넣고 있다가 물을 달라고 해서, 약을 물에 뱉어내고 내가 보지 않을 때 물을 버렸을 것이고.”“약은 물과 만나면 무색 무향이니 그렇게 네게 속은 거지.” 구택의 한마디 한마디에 소희의 손가락이 오그라들며, 휴대폰을 꽉 쥐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구택은 소희에게 다가가 소파에 몸을 기울여 소희를 내려다보았다. “왜 약을 먹지 않았는지 이유를 추측해 볼까?” “너는 백양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심지어 모든 팀원에게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꿈속에서라도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던 거지?” 소희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긴 속눈썹이 떨리며 낮게 말했다. “그러면 안 돼?” 소희의 긍정에 구택의 눈빛이 깊은 슬픔으로 변했다. “한번 생각해 봐.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그저 꿈일 뿐이니까. 보통 사람들도 꿈을 꾸잖아. 그리고 나는 그개 단지 꿈일
임구택은 소희를 가만히 바라보자 소희는 구택을 꽉 끌어안았다.“그러니까, 나를 떠나지 마.” “나는 떠나지 않았고.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구택의 목소리는 쉰 듯이 들렸다. “넌 내 감정을 신경 써?” “신경 써요.” “그렇다면 지금 나는 매우 불안해.” 이에 소희는 구택을 꼭 껴안았다. “나는 당신 품에 있는데, 왜 불안해해?” “하지만 네가 잠들면 나를 원하지 않잖아.” 구택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자 소희는 할 말이 없었다. “소희야!” 구택은 소희의 턱을 잡고, 인내심 가득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양의 죽음은 너와 상관없어. 백양은 삼각용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돌아올 수 없었어. 이렇게 후회 없이 죽는 것이 백양에게는 최선의 결과야.” 소희는 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네가 몸 안의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부작용이 생길 거야.”“어느 날 네가 정말로 꿈속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그리고 우리는 곧 결혼식을 올릴 거고 아이를 가지려고 하겠지. 그런데 네가 이런 상태로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겠어?” “너는 요요를 그렇게 좋아하잖아. 요요처럼 귀여운 딸을 원하지 않아? 내 말 좀 들어줘, 응?” 어둠 속에서, 소희는 그를 바라보며 울먹였다. “자기야, 나는 그들을 잊고 싶지 않아.” “너를 잊으라고 한 것이 아니야.” 구택은 소희를 꼭 껴안았다. “생각해 봐. 요하네스버그에서 백양을 만나기 전에, 네가 매일 꿈을 꾸기 전에, 네가 그들을 잊은 적이 있어?” “어떤 감정은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 나는 이해하고, 응원해. 질투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기념해서는 안 돼.” “백양은 죽기 전에 이미 마음의 짐을 내려놨어. 그는 네가 이렇게 마음에 걸려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소희는 눈을
소희는 말없이 임구택을 한 번 흘겨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맑아졌어?” “응, 날씨가 맑아졌어.” 구택은 옆으로 몸을 돌려 팔꿈치를 세운 채 말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어?” 소희는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기분은 항상 좋았어.” 그리고는 구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 “너도 같이 가자.” 구택은 소희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야, 오늘은 스승님 댁에 가야 해.” 소희는 고개를 들어 구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께 필요한 것 좀 받아야 하고, 양재아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준비하려고 해.” “그러면 먼저 아침 먹고, 너를 도경수 집에 데려다준 후에 회사에 가야겠네.” “좋아!” 구택은 고개를 숙여 소희와 잠시 입맞춤을 나눈 후 소희를 안고 일어섰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소희는 어젯밤 성연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강아심은 내가 해결했어. 이제 네 오빠는 네가 해결해!] 소희는 어젯밤 계속 바빴기에 답장을 못 보냈고, 방금 연희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레스토랑 예약 완료. 성경 오페라 하우스 2층에 있는 아주 멋진 레스토랑이야.][둘이 식사 후에는 3층에서 오페라도 볼 수 있게 티켓도 준비했어!] 소희는 연희의 추진력에 감탄하며 답장을 보냈다. [곧 스승님 댁에 가서 오빠를 찾을게.] 이에 연희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좋아, 좋은 소식 기다릴게.] 연희의 열정에 소희도 강시언과 강아심의 만남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소희와 구택은 함께 집을 나섰다. 도경수 집에 도착하자, 구택은 소희를 집 안으로 데려다주었는데, 진석도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구택은 차를 몰고 떠났다. 구택이 떠나자마자 소희는 바로 시언을 찾으러 갔다. 소희는 원래 늦게 일어났기에 이미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강재석은 오늘 회사 업무 관련 문서를 시언에게 맡겼다. 소희가 들어갔을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