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호가 나와 소희를 며느리로 인정했는데, 구경하던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가 있을까? 화영은 돌아서서 기자들과 구경하던 사람들을 마주하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전에 King이 뇌물을 받고 코코에게 일부러 패배했다는 얘기는 이미 철저히 조사했습니다.”“이는 누군가 패션쇼의 심사위원을 매수하고 코코와 짜고 King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었습니다.”이때 간미연이 나와서 조사된 자료를 공항 대합실의 스크린에 투영했다. 화면에는 코코라는 디자이너와 이씨 집안 사람들, 그리고 두 명의 심사위원 사이의 관계가 뚜렷이 보였다. 그리고 화영은 차분하게 말했다. “King을 음해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 모두 잘 아시겠지요. 소씨 집안의 딸 소동이 이전에 King을 표절한 일로 이 업계에서 쫓겨났습니다.”“이선유는 King을 질투해 일부러 허위 사실을 퍼뜨렸습니다.”“그리고, 지금은 두 집안이 합심하여 King을 모함하고 모든 네티즌을 이용해 King에게 큰 악영향을 끼쳤습니다.”“이제 증거는 확실합니다. 곧 고소장을 보내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법정에 세울 것입니다.”“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믿지 않으신다면, 공개 재판을 통해 King에게 공정함을 보장하겠습니다!”사실 더 많은 증거가 필요 없었다. 소희가 임씨 그룹 사장의 와이프이자 강씨 집안의 후계자라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했다.이전에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 침묵을 지키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기자들은 다시 몰려들어 이번에는 완전히 태도가 달라졌다.“King 님, 저희는 전에 어떤 비난도 한 적이 없습니다. 확인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소희님, 저희도 이씨 집안과 소씨 집안의 거짓말에 속은 것입니다. 조금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임구택 사장님, King 님, 결혼식은 언제쯤 하실 계획인가요?”“제 아내를 음해한 사람이 있다면, 제가 하나하나 확인할 것입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구택은 눈빛이 날카롭게 빛
사실 이씨 집안과 코코 디자이너의 공작 증거가 없더라도, 소희의 이 신분들만으로도 그런 소문들은 금세 무너질 것이었다. 여론은 강력하게 반전되었고, 소희에 대한 비난은 놀람으로, 다시 경외로 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반면, 소씨 집안은 더 강력한 온라인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소정인 부부와 소동의 SNS 계정은 폭발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간미연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창밖을 바라보자 장명원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 오늘 이렇게 통쾌한 장면인데, 웃지 않을 거야?”“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소희에게 덧씌운 것뿐이야. 소희가 했던 일들이 모두 공개된다면, 그때야 그들이 완전히 입을 다물게 될 거야.”명원은 잠시 멈칫하다가 미연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보스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소희가 신경 썼다면, 계속 이렇게 조용하게 살지는 않았겠지. 소희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차들이 줄지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소희는 강재석과 함께 앉아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소희는 미안한 마음에 말했다.“할아버지, 걱정 많이 하셨죠!”“걱정, 안 할 수가 없지!” 강재석은 소희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인터넷에서 떠드는 사람들은 두렵지 않아. 하지만 네가 강시언을 찾으러 간 걸 알았을 때는 밤낮으로 불안했단다.”“그때 내가 시언에게 말했지. 평생을 그 안에 맡길 순 없으니, 네가 소희를 데리고 돌아와야 한다고.”“약 반년 후, 네가 시헌에 의해 돌아왔지만, 반쯤 죽은 상태였고, 살아남아도 혼이 나간 것 같았지.”“이번에 너희 둘이 또 그런 곳에 갔을 때, 난 정말 두려웠단다.”강재석의 목소리가 메말라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할아버지!” 소희는 강재석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 “제가 오빠를 찾아드리고 싶었어요.”“알고 있단다. 네 마음을 왜 모르겠니. 돌아오기만 하면 됐어!” 강재석은 한숨을 쉬며 앞을 바라보았다. “구택아, 네가 잘 지켜
조백림은 유정이 자신과 반대되는 태도를 보이자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맞네!”유정은 백림의 무성의한 태도에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렇게 충격적인 신분이 밝혀졌으니, 이제 소씨 집안의 최후를 지켜보자고!”그러자 백림은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구택이 형도 힘들겠지. 결국 소희의 친부모니까, 혈연관계가 있으니까.”유정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소희를 함정에 빠뜨릴 때는 그들이 소희를 친딸로 생각하지 않았잖아.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풀 필요 없어!”백림은 유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런 결단력 있는 성격이라니 정말 마음에 들어!”이번 일을 통해 유정도 백림을 좋게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백림은 단순히 먹고 놀기만 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이에 유정은 시원하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 약혼은 물 건너갔지만, 친구로 지낼 수 있어!”백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항상 파혼을 생각하는 거야?”그러자 유정은 솔직하게 말했다. “너 같은 사람이랑은 친구로 지내는 건 괜찮지만, 연인이나 부부로 지내는 건 아니야!”갑작스러운 한방에 백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차들이 줄지어 강성의 거리를 지나 임씨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언은 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빠르게 지나가는 네온사인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넘버 세븐, 아니 이제는 강아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떠올렸다. ‘아심에게 이름조차 주지 않고 코드명으로만 불렀던 내가 너무 인색했던 걸까? 강성에 있다고 했는데 이미 돌아왔을까?’...모두 임씨 집안으로 돌아오자마자 임유민과 임유진이 뛰쳐나와 소희를 둘러싸며 말했다.“소희, 드디어 돌아왔어!”“우리가 라이브 방송을 봤는데, 정말 통쾌했어! 그 사람들을 완전히 압살했어!”“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가지 못하게 해서 집에서 기다리기만 했는데, 현장에 있었으면 정말 재밌었을 텐데!”두 사람은 입을 모아 소희를 둘러싸고 있자 노정순이 말했다. “소희
이쪽에서는 노정순이 소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왜 이렇게 말랐어? 인터넷에서 뭐라 하는 건 신경 쓰지 마. 임구택에게 맡기면 돼.”소희는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아니에요, 오랜만에 보셔서 그렇게 느끼시는 거예요.”“며칠 동안 집에 머물면서 몸보신 좀 해야겠구나!”성연희는 눈을 반짝이며 웃으며 말했다. “소희가 방금 돌아와서 우리랑 아직 제대로 못 놀았어요. 며칠 동안 우리한테 맡겨주세요. 그리고 다시 돌려보낼게요.”노정순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은 집에서 자야 해. 밖에서 지낼 때는 잘 돌봐줘야 한다.”“걱정하지 마세요. 소희한테 제 몸에 붙은 살까지 다 나눠주고 싶어요!”노정순은 재치 있는 연희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옆에서 우청아는 하인이 건네준 차를 간미연에게 건네며 말했다. “소희가 진짜로 운성에 갔었어?”‘그렇다면 할아버지가 왜 강성에 온거지?’간미연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냥 운성에 갔다고 생각해. 말하기 곤란한 일이 있어.”그러자 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희에게 많은 비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묻지 않을 테니, 무사하기만 하면 돼.”“소희 옆에는 구택 씨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응.”소희는 일어나 장시원에게 말했다. “둘도 방금 돌아왔으니, 청아와 함께 요요를 보러 가요. 여기서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구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씨 집안은 이번에 완전히 끝났어. 소씨 집안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네가 결정해. 만약 힘들다면 내가 할게.”소희에게는 그래도 친부모니까 구택이 고민할까 봐 걱정했지만 구택은 냉정하게 말했다. “힘들게 뭐가 있어. 내일 아침에 무릎 꿇고 소희에게 사과하게 할 거야.”“넌 정말 냉정하구나!” 시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와 청아는 먼저 가볼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응.” 구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가.”시원과 청아는 요요를 보러 갔고, 다른 사람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임씨 저택에
“근데 본인도 결혼 안 했으면서 왜 나의 결혼에 간섭하는 거예요?” 서인은 강시언을 흘겨보며 말했다. “결혼하려면 본인이나 먼저 해요!”시언은 단호하고 잘생긴 얼굴에 약간의 불만을 드러내며 말했다. “난 결혼 생각은 해본 적 없어!”서인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같아요!”“나를 따라 하지 마. 별로 좋은 일도 아니니까.” 시언이 차갑게 웃자 서인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임유진은 다시 소희 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차탁 위에 방치된 인삼탕을 보자 더 속이 상했다. 유진은 창밖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힐끗 보며 소희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왜 저러시는 거지? 얼굴이 안 좋아 보여.”“다쳐서 그래.”“뭐라고?” 유진은 거의 소리 지를 뻔하며 주변을 의식하고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심각해?”“심각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을 거야.”하지만 유진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항상 자기 일에 신경을 안 쓰시잖아.”“오현빈과 이문에게 챙기라고 할게.” 유진은 그 서인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이문 같은 사람들 본래 터프한 성격인데, 제대로 챙길 수 있을까?’유진은 답답했다. 서인의 곁에 가서 돌볼 수 없고, 불안한 마음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유진은 서인과 더 이상 엮이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다짐했지만,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서인이 있는 한, 유진의 시선은 항상 서인을 따라가고 싶어졌다.이런 불안정한 짝사랑은 정말 끔찍했다. 소희는 유진이 서인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았지만 도울 방법이 없었다. 서인이 마음을 굳혔으니 아무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양재아는 소희 곁에 앉아 조심스럽게 도경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분이 네 스승이야?”소희는 재아의 시선을 따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스승이자, 어쩌면 당신의 외할아버지일 수도 있어.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재아는 방금 스마트폰으로 도경수를 검색해 보았다. 다양한 타이틀이 재아를 놀라게 했다. 재아는 자기 가족이 이렇게 유
“사실 난 소씨 집안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 소시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다, 디자인 협회의 회장이 직접 나와서 너에게 사과했어. 반응이 빠르더라. 너 봤어?”“아니, 아직 못 봤어.” 소희는 인터넷 뉴스를 볼 여유가 없었다.“인스타그램과 다른 여러 플랫폼이 지금 접속이 안 돼. 그동안 너를 욕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숙모와 큰아버지, 그리고 소동을 욕하고 있어.”“난 그들에게 이미 정이 떨어졌어. 하지만 네 팬들은 정말 좋아. 인터넷 폭력이 가장 심할 때도 그들은 너를 지켜줬어.”“그리고 이제 네 신분이 밝혀지자 그들은 조용히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있어.”지켜주는 사람들 덕분에 소희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천만에. 난 네가 돌아와서 너를 모함한 사람들에게 맞서길 항상 믿고 있었어. 오늘을 기다려왔지.” 시연은 기뻐서 말했다. “내 생각보다 더 통쾌했어!”“응.” 소희는 차분하게 말했다. “소찬호와 작은아버지, 작은숙모에게 말해줘.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소씨 집안의 일도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거야.”시연은 가벼운 한숨을 쉬며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아빠도 방금 그랬어. 임씨 집안이 화나면 소씨 집안을 싹 다 없앨지 모른다고.”“작은 아빠에게 가서 말해줘. 그렇지 않을 거니까, 마음 놓고 주무시라고.” 소희는 웃으며 말했다.“아빠는 오늘 밤에 잠을 못 잘걸?” 시연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도 할 일 많을 테니 방해하지 않을게. 너도 잘 쉬어.”“응.” 소희는 응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거실로 돌아가니 강솔과 강솔의 남자친구 주예형도 와 있었다. 강솔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소희를 끌어안고 뛰며 말했다. “방금 경성에서 돌아왔어. 널 마중 나오지 못해 너무 싫었어. 인터넷으로 다들 너를 마중 나가고, 그 못된 사람들에게 맞서는 영상을 봤어!”소희는 강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수고했어.”“안 힘들어. 우리 집안은 진씨
주예형은 당시 정말 마음이 흔들렸고, 거의 받아들일 뻔했다. 그러나 소희의 뒤에 있는 사람들 도경수, 강재석, 그리고 임구택이 소희와 결혼할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쉽게 편을 들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이 정말 옳았다. 예형은 급히 변명하다가 실수를 드러내자, 강재석은 눈을 들어 예형을 깊이 응시한 후 잔을 들었다. 이에 구택은 담담하게 예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형 씨, 고마워요.”“사장님, 고맙긴요. 강솔과 소희는 친한 친구니까, 우리도 모두 친구죠.” 예형은 온화하게 미소 지었고 구택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 전화가 와서 둘의 대화는 종료되었다. 강솔은 예형과 구택이 대화를 하게 놔두고 소희를 찾아갔다. 거의 10시쯤, 구택은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경성 쪽이 잘 해결되었다고 알려주었다.구택은 거실로 돌아와 강재석에게 소식을 전하고, 이제는 편히 쉬어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경수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했고, 강재석도 함께 가기로 했다. 구택은 여러 번 말렸지만 소용없었고 결국 그들을 데려다줄 차를 보냈다. 그리고 강솔과 예형도 함께 떠났다.소희는 임씨 저택에 남았고, 양재아도 소희의 친구로서 함께 남았다. 강시언은 서인을 샤브샤브 가게로 데려다준 후, 다시 도경수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조백림은 유정을 데려다주었다.성연희의 어머니는 계속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고, 노명성은 연희를 데리고 성 집으로 돌아가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임씨 저택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연희는 눈을 반짝이며 소희를 껴안고 말했다. “오늘 밤 나는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 내일 이씨 집안과 소씨 집안의 결과를 기다릴 거야!”이에 소희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푹 자. 그들의 결과는 변하지 않을 거니까.”“나는 첫 번째로 보고 싶어!” 연희는 소희의 어깨를 두드리려다가 구택이 갑자기 다가와 말했다. “연희 씨!”소희는 고개를 돌려 구택을 바라보자 구택은 잠시 멈칫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소희는 맑은 눈으로 미소를 지었고 임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소희와 이야기하고 싶으시면 다음에 하시죠? 소희 오늘 하루 종일 피곤하고 기자들을 상대했으니, 잘 쉬게 해주세요.”노정순은 바로 말했다. “맞아, 내 잘못이야. 그럼 빨리 소희를 데리고 올라가.”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고 소희는 돌아서며 노정순에게 잘 자라고 말했다. 모퉁이에서 임유민은 뒤따라오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도발적인 태도로 말했다.“이제 다시 숙모를 찾으러 갈 거예요?”그러자 유진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삼촌이 너무 엄하게 보호하는 것 같아. 소희는 정말 싫어할 거니까 우리가 소희를 구해줘야 해!”유민은 자신의 방으로 향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누나가 가고 싶으면 가요. 난 삼촌이 방학 동안 나에게 복싱을 가르쳐주길 기대하고 있거든!”유진은 유민을 따라가며 말했다. “너는 삼촌을 화나게 할까 봐 소희를 무시하는 거야?”“숙모는 삼촌이 알아서 할 거예요!” 유민이 말했다. “숙모는 행복해 보이니까 누나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본인이나 걱정해요!”“내가 왜?” 유진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요즘 실연당했어요? 계속 기운 없어 보여서.” 유민은 유진을 응시하며 말하자 유진은 풀이 죽은 얼굴로 난간에 기대며 말했다. “실연이 아니라 짝사랑이야.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그런 일이 있었다고?” 유민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떤 남자가 그렇게 대담하지?”“전혀 대담하지 않아. 그냥 아주 냉담하고 나를 무시해.” 유진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쫓아다니면 되잖아!” 유민은 유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남자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나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기회는 스스로 쟁취하는 거고요!”이에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 내가 계속 쫓아가면 정말 자존심 상할 거야.”“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이 중
마심호가 앞으로 나서서 설명했다.“의사 말로는, 회장님께서 저녁에 술을 드셨다고 해요. 게다가 두 종류의 술을 함께 마셨고, 이번 심장 발작도 아마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요.”서선영은 즉시 말했다. “회장님께서 직접 술을 마시겠다고 하셨어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회장님 성격상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도 말릴 수 없어요.”“제가 말릴수록 더 화를 내시니까요.”구은서는 서선영의 팔을 붙잡으며 냉정하게 말했다.“엄마, 굳이 변명할 필요 없어요. 매일 아빠를 돌보며 고생하는 건 엄마잖아요. 엄마는 늘 집안을 위해 애쓰고 있고, 그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모에게 최소한의 효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아빠를 걱정시키고 속상하게 만들죠.”“지금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딴청 피우는 사람 아닌가요?”마심호는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아가씨, 그렇게 단정 지을 문제는 아니에요. 도련님께서 집을 떠나 계셨던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은서는 그의 말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며 쏘아붙였다.“그게 무슨 뜻이에요? 말씀 속에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차라리 대놓고 말해보시죠. 오빠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게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제 어머니가 계모라는 이유로요? 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오빠를 차별한 적 없어요. 오히려 저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무엇이든 다 맞춰주려 하셨죠.”“그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요? 계모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그렇게 애쓰고도, 결국 오해받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은서의 날카로운 공격에 마심호는 더 이상 말다툼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묵직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아가씨께서 너무 깊이 생각하신 것 같군요.”하지만 은서는 물러서지 않았다.“제가 생각이 많은 건가요? 아니면 당신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걸 제가 말한 건가요?”은서
소희는 어린 시절의 서인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삼각주에서 함께 지냈던 그 시절,서인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그렇게 무기력하지도 않았고, 이처럼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여 있지도 않았다. 말수가 적다는 점은 같았지만, 그때의 서인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그때의 서인이 임유진을 만났다면, 분명 그런 복잡한 집안과 신분 문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유진을 깊이 사랑하고, 망설임 없이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임무가 실패한 순간부터, 서인은 변했다.서인은 과거의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둬 버렸다. 빛을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행복을 허락하지도 않았다.모든 것을 밀어내고,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소희는 서인을 이해했기에 그래서 안타까웠다.서인은 말하는 것처럼 유진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감정을 직시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구택은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어깨뼈를 감싸 쥔 채, 천천히 얼굴을 숙여 소희의 뺨에 입을 맞췄다.“그만 생각해. 유진이는 서인을 잊을 거야. 그게 운명이야.”소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쩌면, 어떤 일들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유진이가 정말 영원히 서인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둘의 결말일 것이다.구택의 가운이 풀어지면서, 튼튼한 몸이 드러났다. 구택의 피부는 탄탄하고 섹시했으며, 몸을 숙여 소희의 어깨를 입맞출 때, 그의 손은 아래로, 그리고 앞으로 움직였다.소희는 구택의 손을 붙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자기야, 아까는 씻고 나면 바로 잘 수 있다고 했잖아.”구택은 낮고 흐린 목소리로 대꾸했다.“아직 열 시야.”“그렇지만 나 졸려.”구택은 소희가 요즘 바쁘고, 유진이 걱정으로 지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에 구택은 소희를 부드럽게 품에 안고, 침대 머리맡의 조명을 어둡게 조절했다.“같이 자자.”소희는 구택의 품에 기대면서도, 머릿속이 서인과 유진이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혼란스러웠지만 구택의
수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사실, 나도 당신을 좋아하긴 해요. 하지만 당신이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이 가게에서 살겠다는 거예요?”그러나 서인의 마음은 이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더욱 냉정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그 문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함께할 수 없어요.”수아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듯,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다시 생각해 봐요. 당신은 구씨 집안의 장남이야. 당연히 돌아가서 그룹을 이끌어야죠.”“이 작은 샤부샤부 가게에 머물러서 무슨 미래가 있겠어요? 난 다 당신을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서인은 수아를 바라보며, 불현듯 소희의 말이 떠올랐다.“앞으로 순수하게 좋아해 줄 유진이 같은 아이는 다시 못 만날 거야. 한 번 놓치면, 영영 없는 거야.”서인의 가슴이 죄어들 듯 아팠고, 차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단호하게 말했다.“진수아 씨, 더 이상 여기 오지 마세요.”그 말과 함께 서인은 주저 없이 돌아서 걸어 나갔다. 수아는 서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화가 난 듯 핸드백을 탁자 위에 내던졌다.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서인은 구씨 집안으로 돌아가 왕처럼 살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고, 이런 작은 샤부샤부 가게에서 지내려 하는 걸까?수아가 꿈꿨던 재벌가 사모님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서인은 후원으로 돌아왔다. 마당에는 장미 덩굴이 늘어서 있고, 계화나무가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고양이 집, 새로 바뀐 나무 테이블...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마치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서인의 마음을 찔러댔다.이곳의 모든 것이 유진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유진은 이 모든 기억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작은 고양이 애옹이는 불안한 듯 몸을 일으켜 그를 바라보며 약한 울음소리를 냈다.야옹이조차도 초조한 듯,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서인은 묵묵히 의자
유진의 다리는 아직 움직일 수 없었기에, 침대에 누워 있거나 침대 머리를 높여 반쯤 기대는 상태로 있어야 했다.그녀는 리모컨 버튼을 눌러 침대 머리를 살짝 올린 뒤, 소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구은정 삼촌이 여기 와서 이상한 말을 많이 했어. 그리고 자기가 날 친 거라고 했어!”소희는 조용히 물었다.“아무런 기억도 안 나?”유진은 잠시 생각하려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는데, 고개를 저었다.“정말 기억이 안 나. 내가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아!”소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기억이 안 나면 그냥 두는 게 좋겠어. 너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너무 애쓰지 마.”유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소희, 엄마도 갔고, 이제 우리 둘뿐이잖아!”소희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그래서?”유진은 더욱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맛있는 거 좀 먹자!”그녀는 밀크티를 마시고 싶었고, 치킨을 먹고 싶었으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었다.이에 소희도 웃으며 말했다.“좋아!”유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바닥을 두 바퀴쯤 뛰어다닌 뒤, 소희에게 커다란 포옹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었기에, 대신 눈빛으로 기쁨을 표현했다.소희는 배달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의사에게 먼저 문의하여, 유진이가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확인한 뒤, 철저히 지시를 따르며 간식을 골랐다....유진의 머릿속에서 서인과 관련된 기억은 마치 흐릿한 공백이 된 듯했다. 그와 연관된 오현빈 같은 사람들조차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끔 멍하니 생각에 잠길 때, 유진은 침대 곁에서 말을 걸던 구은정 삼촌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그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쪽이 텅 빈 듯한 기분이 들었고, 머리도 아팠다.그래서 유진은 본능적으로 서인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한편, 서인은 샤부샤부 가게로 돌아왔는데, 마침 진수아도 와 있었다.수아는 자리에서 일
유진은 찡그리며 눈을 떴다. 눈앞에 서인이 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고, 이내 놀란 기색과 함께 경계심이 스며들었다.서인은 푸른 기운이 감도는 눈 밑과 덥수룩한 수염, 깊고 어두운 시선으로 인해 영락없이 위협적인 인상으로 보였다.“구은정, 삼촌?”유진은 낮게 중얼거리며 본능적으로 거실 쪽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정숙이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왜 낯선 이상한 아저씨가 자신의 침대 곁에 앉아 있는 걸까?서인은 유진을 바라보며 깊은 상처를 숨긴 채, 갈라진 목소리로 묻듯이 말했다.“너, 정말 날 잊었어?”유진은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기억하는데요. 어릴 때 한 번 본 적 있어요.”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의 기억 속 모습과는 꽤 많이 달랐지만, 그의 깊고도 아픈 시선 속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 녹아 있었다.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낯설고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잊어버린 게 차라리 잘된 거야.”서인은 시선을 떨구며, 굳게 다문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애초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서로 알아서는 안 됐어.”둘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뿐이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짙은 어둠이 가라앉아 있었고, 목소리는 더욱 잠겨 있었다.“유진아, 미안해.”유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서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문득 놀란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설마, 삼촌이 날 친 건 아니죠?”서인은 유진을 바라보며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은 울음보다도 더 아프고 쓸쓸했다.“내가 직접 그랬던 건 아니지만 나와 관련이 있어.”유진은 아, 하고 가볍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이상했다. 이에 유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진난만하게 말했다.“삼촌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라고 믿어요. 난 괜찮아요
“전에는 그랬지만, 나중에는 이미 회복됐어. 의사도 유진이가 잘 회복했다고 했고!”소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우리, 의사에게 한번 물어보자!”두 사람은 임유진의 담당 주치의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자 의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이런 사례가 있긴 해요. 환자의 신체가 자체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이죠.”“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뇌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고통을 줬던 기억을 지워버리고요.”“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심리적 장애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죠.”서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물었다.“그럼, 다시 기억할 수 있나요?”의사는 고개를 저었다.“확신할 수 없어요. 서서히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고, 영영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고요.”서인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충격과 당혹감이 그의 눈에 가득했다.‘유진이가 나를 잊었다고?’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깊숙이 퍼져나가며 그의 심장을 온통 뒤덮었다.유진이는 중상을 입고 깨어난 후 모든 사람을 기억했으며, 심지어 구은태도 알아봤다. 그런데, 유독 서인만 잊어버렸다.이윽고 갑자기 그날 밤을 떠올렸다. 유진이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울기만 했던 그녀.그 슬프고 억눌린 흐느낌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랬다. 유진이는 언제나 서인을 향해 밝고 용감하게 다가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따뜻한 응답을 주지 않았다. 늘 차갑게 대하고, 때로는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서인이 유진에게 준 건 오직 고통뿐이었고, 그랬기에 유진은 결국 그를 잊어버렸다.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자기 삶에서 서인을 내쫓아 버린 것이다.서인은 늘 유진이가 자신을 잊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지만, 정말 그렇게 되니, 왜 이토록 허망하고 아플까?소희는 불안에 휩싸인 서인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의사가 다시 기억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그러나 소희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여진구는 순간 굳어버렸다. 그저 멍한 눈으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진의 표정은 더욱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내 무슨 일을 엄마한테 말했다는 거예요?”진구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떠봤다.“서인, 너 정말 모르는 사람이야?”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네, 모르는 사람이에요.”그 대답에 진구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곧 침착한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아, 내가 착각했네. 내 친구인데, 네가 본 적 없는 사람이야.”그러나 유진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이었고, 그녀는 다시 진구를 추궁했다.“그런데 아까는 나와 그 사람 얘기를 엄마한테 말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데요?”이에 진구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급히 변명을 지어냈다.“아, 그게 그 친구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네가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해서 이모께 한번 여쭤봤던 거지.”“아직 너한테 얘기하기도 전에 그냥 조언을 구한 거야.”유진은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런 거였어요? 일하는 문제인데 우리 엄마한테 왜 물어보려고 했어요?선배 친구라면 괜찮아요. 내가 가르쳐 줄 수 있어요.”진구는 유진의 얼굴에서 조금의 위화감도 찾을 수 없었다. 유진은 정말로 서인이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표정은 철저하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진구는 마음속에서 수많은 의문이 밀려왔지만, 그것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별말 없이 다 깎은 사과를 유진에게 건네주며 화제를 돌렸다.진구는 이 사실을 우정숙에게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자신조차도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틀 후 임씨 집안 사람들은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그날 아침, 구은태가 오랜만에 유진을 병문안 가고 싶다고 했다. 이제 유진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니 병원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임구택은 바로 간병인을 시켜 의사를 호출했다.“유진아, 유진아!”우정숙이 조용히 그녀를 부르자, 유진은 힘겹게 눈을 떴다. 유진의 눈동자는 완전히 흐려져 있었다.그리고 눈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유진아!”노정순이 유진의 손을 꼭 잡았는데,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할머니 여기 있어. 우리 모두 네 곁에 있어. 어때? 어디 많이 아프니?”하지만,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듯 주변을 둘러봤고,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팔과 다리는 이미 고정된 상태였다.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유진은 눈을 크게 뜨고, 고통에 겨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그 모습에 모두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괜찮아. 괜찮아, 유진아.”노정순이 유진의 손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달랬다.곧, 의사가 도착했고, 그는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뇌 손상의 영향이고, 환자는 지금 막 깨어난 상태이니,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조용히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우정숙은 다급히 물었다.“만약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되나요?”의사는 잠시 말을 아끼다가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지금으로서는 확실히 예측하기 어려워요.”그 대답에 모두의 가슴이 무거워졌다.유진은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의사는 그 모습을 보며 긍정적으로 말했다.“환자는 지금 극도로 쇠약한 상태라, 수면을 통해 회복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이건 오히려 좋은 신호예요.”유진이 다시 잠에 든 후 소희는 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유진이가 깨어났어.”그러고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유진의 몸이 너무 약하니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을 전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서인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부탁할게. 잘 돌봐 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줘.”“알겠어.”서인이 돌아가고, 소희의 마음도 마치 우중충한 날씨처럼 무겁
어둑한 조명이 드리운 긴 벤치에 서인이 앉아 있었다. 서늘하고 적막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그때, 누군가 서인의 앞에 멈춰 섰는데, 임유민이었다. 유민은 미간을 좁히고 냉정하게 말했다.“이제 가세요.”서인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저었다.“난 유진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거야.”그러자 유민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차가운 기운이 스며든 눈빛으로 그는 조용히 말했다.“전 삼촌을 원망하지 않아요. 누나가 삼촌을 혼자 좋아한 거, 그건 우리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번 일은 누나와의 마지막 정리라고 생각하세요.”“이제 누나는 삼촌을 찾지 않을 거니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마세요.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다시 찾아오지도 마세요.”유민의 말은 칼날처럼 서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의 머리가 더 깊이 숙여졌고, 눈동자는 공허했다.유민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조용히 등을 돌려 병실로 돌아갔다.새벽녘이 되자, 임지언이 병원에 도착했다. 평소 침착하고 냉정한 그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임지언은 병실로 향하며 다급하게 물었다. “유진이는? 상태가 어때?”상황을 전해 들은 뒤에야, 그는 비로소 깊게 숨을 내쉬었다.임지언은 곧장 병상으로 다가가 딸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리고, 유진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한없이 애틋한 눈빛을 드리웠다.그러고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아빠가 너를 잘 지켜주지 못했구나. 그러니까, 제발 어서 일어나거라.”우정숙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겨우 가라앉혔던 감정이 다시 북받쳐 올라 참을 새 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날 밤, 임지언과 우정숙은 잠도 자지 않고 유진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밤에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서인은 그 비를 피하지 않았다. 마치 조각상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서인은 온몸이 흠뻑 젖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해가 떠오를 무렵 소희가 서인을 찾았다. 소희는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