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떠날 때 임구택이 마침 볼일이 있어 가는 길에 그녀를 바래다주었다.두 사람이 이렇게 밀폐되고 좁은 공간에 함께 있다 보니 소희는 약간 불편해 고개를 돌리고 창밖의 풍경을 보는척했다.차가 아스팔트에 오르고 임구택이 앞을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심명 씨가 소희 씨에게 구애하고 있나요?”“네?”소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임구택도 알거라고는 미처 생각 을 못 했다.“그날 강성대 앞에서 꽃 선물하는 거 봤어요,.” 임구택은 그녀의 생각을 읽고 설명했다.“아!” 소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임구택은 운전대를 잡고 햋살이 그의 얼굴을 비추어 그의 선명한 턱 라인을 돋보였다, 잘생기고 귀티가 난다.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명을 여지에 두기전에 한 가지 알려줄게 있어요, 그 사람은 한소율 씨와 사촌 형제이고 한소율의 엄마가 심명의 고모예요.”이건 소희를 의아하게 했다, 그렇구나!임구택이 계속 말을 이었다, “심명 씨가 소희 씨를 무슨 마음으로 이러는 건지 모르지만 그들의 사이를 알려줘야 할거 같아서요, 만나든 말든은 소희 씨가 판단하고요.”소희는 고운 눈으로 창밖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판단할 거 없어요, 다시는 절 찾아오지 않을 거 같아요.”“네?” 임구택은 그 말의 뜻을 몰라 백미러로 소녀를 보았다.그녀의 눈썹과 속눈썹 모두 기다랗고 입술은 빨갛고 치아는 하얗다, 지금 햇살이 그녀의 얼굴에 비쳐 약간 살이 있는 얼굴이 유독 부드러워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얼굴을 꼬집어보고 싶게 한다.소희는 말을 하지 않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혼자 웃고 있었다.그녀는 기분이 좋았고 차에서 내릴 때 웃으며 임구택과 인사를 했다.학교 옆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서 요즘 유행하는 사탕을 사고 소희는 버스를 타고 청원 별장으로 돌아갔다, 운해로에서 차를 내리고 청아에게 사탕 한 캔을 주었다.별장에 돌아와서 책 보고, 게임하고, 설희와 놀다 보니 오후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6시 즈음에 소희는 성연희의 전화를 받았다, 성연희가 지
그녀가 노골적으로 말하자 서이연은 약간 어색하며 부인하려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면서 부끄러운 웃음을 하고 답했다, “저도 임구택 씨가 왜 절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소희가 고개를 들리고 서이연이라는 여자를 한 눈 보았다.처음에 낯이 익다 싶었는데 바로 기억이 났다, 소정이가 전에 사극을 한 편 좋아했었는데 서이연이 그 안에서 촬영분이 많지 않지만 존재감이 확실한 공주 역할을 했다.하늘색 드레스의 여자도 누군지 기억났다, 그녀는 이름이 안단희인 작은 연예인이다.안단희는 얼굴에 부러운 내색을 감추지 않고, “임구택 씨가 있으면 네가 원하는 게 뭐든 손에 넣을 거 아니야, 나중에 영화계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면 날 잊지 마.”서이연이 여전히 겸손하게 웃으며, “내가 언니를 잊지 않을게 뭐가 있어요, 언니는 노명성 씨가 있잖아요?”안단희의 눈빛에 빛이 나면서 거울을 보고 립스틱을 바르며 득의양양하게,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노 사장님의 마음을 흔들었다 보니 아직 요구를 하기가 뭐해.”서이연이 담담하게 웃으며, “언니가 말을 하지 않으면 노 사장님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수 없을 거 아니예요!”안단희가 빨간 입술로 일부러 화난 듯, “노 사장님은 주얼리나 가방 같은 건 잘 사주면서 좋은 역할을 나한테 주질 않아, 저번에 그 세컨드여주인공도 내가 밤새 달려서 응한거야.”“노 사장님은 네 날개가 굳으면 자신을 무시할 가봐 그런가 보지!” 서이연이 농담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안단희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내 날개가 아무리 굳어도 노 사장님의 손안에서 벗어나진 못하지!”가게 안의 룸 안에 모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으로 오는 사람은 적기에 두 사람은 마음을 놓고 담화를 나눈 후 떠나려다 뒤에서 전해오는 서늘한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 서세요!”두 사람은 깜짝 놀라 휙 하고 등을 돌렸다.몸 뒤에는 생각지도 못한 지붕이 뚫린 투각 목문이다, 서이연 이 두 사람은 이곳에 처음으로 와 이곳의 구조를 잘 몰랐기에 조심성 없이 말을 했다.두 사람이 눈빛
로비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이미 김단이 모셔가고 가게 안의 종업원들만이 둘러 싸여 있었다. 머리 위의 불빛은 따뜻한 노란색을 띠고 있지만 분위기는 아주 살벌했다.임구택이 걸어올 때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 중간에 길을 텄다.서이연은 이단에게 부추기며 앞으로 두 걸음 가서 글썽이는 눈으로 임구택을 보며 연약해 보이면서 억울하고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 임 대표님 식사하시는데 죄송해요.”“어떻게 된 일이에요?” 임구택이 한 마디 묻고 소희를 보고 실눈을 떴다.김단은 임구택일줄 몰랐던 나머지 안색이 살짝 변했고 소희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그래서 서이연이 그렇게 당당하게 군거였군!이단은 좀 전에 생겼던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며 없는 일까지 보태여 말했다. 예를 들면 소희가 서이연을 때렸고 그녀를 벽에 내던져 그나마 괜찮아진 서이연의 다리가 다시 심해졌다는 말과 같은.소희도 임구택을 보고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서이연이 정말로 그의 정인일 줄이야!김단은 소희를 감쌌다.“서 아가씨의 친구분이 임 대표님이셨군요, 제 친구가 본의 아니게 서 아가씨를 다치게 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책임을 져요?” 이단이 야박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 이연이가 다음 달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 촬영장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지금 다리를 또 다쳤으니, 얼마나 더 지나야 괜찮아 질 줄도 모르는 상황에 온 촬영팀이 스케줄을 스톱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책임질 건가요?”“어떻게 책임질까요? 말해 보세요!”뒤에서 조롱하는 소리와 함께 심명이 나타났다. 웃는 듯 마는 듯한 사악한 얼굴로 소희의 옆으로 와서 관심 어리게 위아래로 훑어 보였다. “우리 자기 다치지 않았어요? 머리카락 하나라도 빠졌으면 내가 이 사람들을 전부 없애버릴까 해요!”사람들이 모두 멈칫했다. 김단은 심명과 소희의 관계가 친해 보이자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심명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소희가 눈썹을 치켜들고 심명이 뭐 하는 행동인지에 의문을 품었다.심명은 보호자의 자세
임구택도 심명을 고고한 자태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심명이 자신을 향해 삼촌이라고 부르기를 기다리는 듯했다.심명은 굳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애써 웃으며 "언제 한번 소희 씨와 함께 정중히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했다.서이연은 소희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증오의 눈빛은 사라졌고 온화한 눈빛만 남아있었다. "임 대표님의 조카분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이단씨가 성격이 급해서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것이니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이단도 황급히 사과했다, "저는 당신이 임 대표님의 조카이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쨌든 제가 크게 실수했습니다!"안단희도 그들에게 다가와 황송해하며 "소희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거듭했다."둘째 삼촌"이라는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은 태세를 바꿨다.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아가씨는 저를 소희라고 부를 게 아니라, 조상이라고 불러야 해요!"안단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임구택이 서이연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여기고 소희에게 독설을 퍼부었었다. 만약 소희가 이 일을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녀는 소희에게 큰 실수를 한것이다!하지만 상대는 뜻밖에도 임구택의 조카였고 서이연보다 더 긴밀한 사이였다.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소희는 줄곧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고 있다고 느꼈었다, 설마 임구택의 조카가 노명성을 좋아한단 말인가?서이연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방금 전 다들 화가 나서 말을 심하게 한 것이니, 소희 아가씨께서 부디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라며 말했다."맞아요, 제가 그냥 헛소리 한 거라고 여겨주세요!"라고 안단희가 입을 열었다.심명은 픽하고 웃으며 "역시 배우는 배우시네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연기가 아주 일품이네요."라고 비꼬았다.서이연과 안단희의 얼굴 안색이 안 좋아졌다."무슨 소란들이지?"사람들 뒤에서 갑자기 서늘한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고개를 돌려보더니 "연희 씨, 오셨군요!"라고 소리쳤다.
복도에는 임구택과 심명만 남아 있었다, 둘의 키가 거의 비슷했고, 용모 또한 뛰어났으며, 풍기는 아우라가 범상치 않았다, 덕분에 복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띠었다.심명은 차가운 눈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소희 씨가 정말 임 대표님의 조카인 겁니까? 그럼 왜 그녀는 임씨 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거죠?"라며 물었다.임구택은 "성이 어찌 됐든 나를 둘째 삼촌이라고 불렀어요."라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심명은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군요, 저는 임시로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내가 그리 한가한 것도 아니고, 왜 임시로 조카나 여자친구를 키우겠나요?"라고 임구택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심명은 "어젯밤 소희 씨가 제 여자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해 줬거든요, 물론 임시적인 것도 아니고요."라고 말하며 눈썹을 치켜세웠다.임구택은 이에 "그럼 그녀가 더더욱 나를 둘째 삼촌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네요!"심명은 어안이 벙벙했다.되려 그에게 놀아났다!때마침 조천해의 무리는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두 사람을 발견했고 덕분에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제히 서로에게서 눈을 돌려버렸다.룸으로 돌아온 심명은 자신이 임구택보다 한 수 아래라고 느껴졌다, 마음속에 부아가 밀려 올랐다, 신경이 거슬린 그는 술자리가 끝나지 않았지만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났다.소희와 성연희는 룸으로 돌아왔고 성연희는 철퍼덕 앉으며 직설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 안단희라는 천한 년 때문이지?"소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 걔를 알고 있구나!"성연희는 "한밤중에 노명성에게 뜨거움을 전하겠다고 그를 찾아가려고 해서 내가 붙잡고 뺨도 때렸어."라며 냉소를 지었다.싸다귀를 맞고 정신을 차릴 줄 알았는데 안단희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그녀는 와인 한 모금 마시고는 "걔가 무슨 말을 해서 너를 화나게 한 거야?"라고 물었다.소희는 화장실에서 들은 이야기를 간단히 해주었다.성연희는 무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최근 통화기록에
소희는 연희를 이해했다, 다만 그녀가 안타까웠을 뿐이다.곧 노명성은 도착했고, 성연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가 어느 방에 있는지 물었다."둘이 얘기 좀 해, 나 먼저 갈게." 소희가 일어섰다.성연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널 데리고 나왔는데, 당연히 내가 데려다줘야지. 그리고 너랑 노명성은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굳이 왜 가려는 거야?""커플 사이에 껴서 혼자 뭐 하겠냐." 소희는 눈을 깜박이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너도 술 마셨잖아, 어떻게 운전하냐, 나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돼."라고 말했다."그럼 집에 도착해서 연락 줘.""그래!"연희는 소희를 배웅했다. 때마침 복도에서 급히 달려온 노명성과 마주쳤다, 그는 정장 차림에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마 술자리를 가지다 달려온 것 같았다. 잘생긴 얼굴에는 금갈색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고, 이내 소희와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었다.그는 성연희의 곁으로 걸어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소희는 두 사람과 작별을 고하고 혼자 호텔을 나서는데, 문 앞에 있는 웨이터가 그녀를 향해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소희가 막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임구택을 에워싸고 나오고 있었다.그녀는 웨이터의 도움을 거절하고, 임구택의 차 옆에 서서, 그 무리가 떠나기를 기다렸다, 무리가 떠나자 그녀는 비로소 몸을 돌려 나오며 온화한 목소리로, “구택 씨!" 하고 불렀다.임구택은 몸을 돌려 심연에 가라앉은듯한 눈길로 그녀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식사를 마쳤나 보군요?”"네!"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덕분에 오늘 고마웠어요."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그의 모습은 피지컬도 훤칠했고 잘생기기까지 했었다."고맙긴요, 서로 돕는 거죠."라고 했다.“네?" 소희는 자기가 그를 도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닙니다." 임구택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심명과 사귄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에요?"소희는 경악에 금치 못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
별장에 들어서자 어느덧 11시가 다 되었고, 소희는 샤워를 마치고 인형을 안고 소파에 앉아 성연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안부를 알렸다.그녀와 노명성 사이에 어떤 얘기 했는지도 알아보기 위해서, 설마 싸운 건 아니겠지?신호음이 막 끊어질려던 찰나 전화기 속에는 노명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마 당신의 전화를 받지 못할 거 같네요, 무슨 전할 말이라도 있나요?"전화기 속에서 성연희의 신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성!”소희는 전화를 뚝 끊었다.그녀는 얼굴에 열이 화끈 올라왔고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변태 같은 성연희!다음 날 오후, 소희는 임구택의 저택에서 나오는 길에 퀵을 받았는데, 큰 상자 안에는 모두 연희가 어젯밤에 준 보석과 옷들이 들어 있었다.소희는 안에서 덜 튀는 귀걸이를 골라 청아에게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월요일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린 디저트 가게에서 다른 점원은 그녀에게 청아는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고 전했다.수요일 점심, 소희는 임유민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를 받았다.소희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택시를 타고 두 사람이 약속한 중식당으로 달려갔다. 식당 밖에는 LS 그룹의 차가 서 있었고, 차 밖에는 양복을 입은 경호원이 서 있었다.식당에 들어가자 소희는 임유민을 찾아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야?”임유민은 가볍게 웃으며 ”"괜찮아요, 긴장 풀어요, 그냥 밥이나 사주려고요!"소희는 의심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진짜예요, 뭐 먹을거예요?" 임유민은 메뉴판을 소희 앞으로 내밀었다.소희는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어서 말해, 대체 무슨 일이야?"임유민은 테이블에 두 손을 얹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둘째 삼촌이 당신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어요, 해고하겠다고 하네요"라고 말했다."아!" 소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왜 놀라지 않는 거예요?"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임유민이었다."뭘 놀라야 하는 거야?"소희가 되물었다.임
그는 소희가 이 기회를 빌려 착한 학생은 싸우면 안 된다고 혼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소희는 진지하게, "당연하지,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돕는 건 정의로운 일 아니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임유민은 순수하게 눈을 반짝이며 "하지만 난 걔들의 머리를 다 깨부쉈고, 걔들의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오셨고 선생님은 저더러 오후에 학부모를 학교에 데리고 오시고 하셨어요."라고 말했다."너희 선생님은 네가 LS 그룹의 사람인 걸 모르셔?"소희가 물었다.임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 저 말고도 임씨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은 많아요, 게다가 학생기록부에는 우리 엄마 아빠의 이름이 적혀 있고요, 우리 엄마 아빠는 매우 평범한 분들에요."소희는 눈치챘다. "내가 너희 엄마라고 사칭하기를 바라는 거야?""역시 똑똑해요!" 임유민은 그의 막 자란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다.소희도 "안 돼!"라며 웃어 보였다.임유민은 표정이 굳어서 물었다. "왜요?""첫째, 난 네 부모님이 아니야, 삼촌이 알면 나의 일자리도 확실히 보장되지 않을 거야!"소희는 정색을 하였다. "둘째, 나도 네 스승이니까, 너 선생님을 속일 순 없어.""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그래도 안 돼." 소희는 단호하게 "왜 둘째 삼촌을 찾아가지 않는 거야?"라고 물었다.임유민은 눈을 내리깔았다. "둘째 삼촌이 일주일 동안 내가 사고를 치지 않으면 주말에 직접 승마를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하지만 이번 일은 이유가 있는 거잖아!"임유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째 삼촌은 매우 원칙적이에요,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이에요, 이유가 어찌 됐든!”소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어쩔 수 없겠네!”유민은 눈동자를 굴리며 소희에게 "썜이 우리 집에 과외해 주러 오면, 삼촌은 쌤한테 얼마를 드려요?"라고 말했다. "150만 원, 그거는 왜?""날 도와주기만 한다면, 내가 둘째 삼촌에게 이야기해서 수업을 잘 가르친다고 말할게요, 시급을 두 배로 올려주라고도 할게요, 어때요?"소
강시언은 오후 네 시가 되도록 강아심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도도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도도희는 아심이 운성으로 갔다는 사실을 전했다.시언은 아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받지 않았다. 그동안 비교적 침착하던 강재석마저 걱정하기 시작했다.“길이 아무리 멀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시언은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에 강재석은 뒤에서 당부했다.“아심을 만나거든 꼭 내게도 알려라.”시언은 가볍게 대답했다.“알겠어요.”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시언은 문밖으로 나갔다. 오석이 방으로 들어와 강재석에게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어르신, 오늘의 바둑은 좀 난잡해 보이네요.”강재석은 바둑판 위의 돌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마음이 복잡하니, 바둑이 난잡하지 않을 수 있겠나.”오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아직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강재석은 잠시 바둑판을 주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판은 이미 짜여 있어. 어떤 상황이든 계속 두어야 해. 끝까지 두다 보면 반드시 돌파구가 있을 거야.”...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서점에도 손님이 줄어들었다. 아심은 마지막으로 서점을 나서며 책 두 권을 계산했다.계산대에 있던 직원이 밝게 말했다.“혼자 오셨나요? 제가 저녁 식사 대접할게요. 이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곳을 알아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거절했다.“고마워요. 하지만 다음에 먹죠.”돈을 지불한 뒤 책을 가방에 넣으며 직원에게 말했다.“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좋아요. 다음에 또 오세요!”“안녕히 계세요.”서점을 나온 아심은 저물어가는 황혼 속 긴 골목길을 걸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고, 곧 어둠이 깔릴 듯했다. 그녀는 만나야 할 사람을 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골목을 빠져나와 거리에서 무의미하게 산책을 하던 아심은 문득 자신이 왜 이곳에 계속 머무
강아심이 운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 하지만 강씨 저택으로 향하던 중, 그녀는 갑작스럽게 마음이 흔들렸다.도로 옆에 차를 잠시 멈추고 고민한 뒤, 아심은 차를 다시 움직여 차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운성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고즈넉한 고장을 향해 운전하기 시작했다.약 두 시간에 걸친 이동 끝에 아심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젊은이들로, 배낭을 메거나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마을은 산과 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름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마을 안은 청량하고 상쾌했다. 강아심은 깨끗해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뒤, 익숙한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정오의 햇살 아래 깊고 조용한 골목은 한결 평온했다. 이따금 떠도는 햇빛과 그림자 속, 누군가의 고양이가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담장 위의 꽃잎 하나가 떨어져 이끼 낀 벽돌 구석에 내려앉았다.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서점. 서점 뒤뜰의 붉은 담장 위로 장미꽃 몇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꽃향기는 골목 특유의 습한 공기와 어우러져 은은하게 퍼졌다.서점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강아심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몇몇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책을 정리하던 직원이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어서 오세요!” 직원이 인사하며 웃고는 아심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놀라움과 기쁨이 그녀의 눈에 스쳤다.“아, 손님이시네요!”아심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직원은 연한 하늘색 멜빵 청바지와 동그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책장을 정리하던 사다리에서 내려오더니 아심의 앞으로 다가와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올 줄 알았어요!”아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렇
그날 밤, 강아심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지만,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미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딘가 풀리지 않은 매듭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밤이 깊어지며 바람이 일었고, 폭우와 천둥, 번개가 이어졌다. 새벽녘이 되자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도도희는 이른 아침에 조깅하러 나가는 습관이 있었지만, 이날은 비 때문에 늦게 일어났다. 문을 열자마자 이미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는 아심과 마주쳤다.“운성으로 가는 거니?”이에 아심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작별하려고요. 내일 공항으로 가기 전에 돌아올게요.”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잘 다녀와. 아침은 먹고 가는 게 어때?”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가는 길에 먹을게요.”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도경수는 아심이 강시언을 배웅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고, 다만 길에서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심이 떠나자, 도경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둘 다 내일 떠날 텐데, 왜 시언이 우리 아심일 배웅하지 않는 거야?”도도희는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렇게 따지지 마세요. 아심이가 행복하면 되는 거잖아요.”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우리 아심이가 삼각주로 끌려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그건 내가 절대 못 봐!”도도희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자, 이제 밥 먹으러 가요.”그러나 도경수는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아심인 아침도 못 먹고 나갔는데, 날씨도 안 좋은데 내가 가지 말라고 막았어야 했는데. 시언은 늘 여유로우니 우리도 좀 참을 수 있었잖아!”도도희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운성, 강씨 저택.강재석은 아침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집사인 오석이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어젯밤에 도련님 방의 불이 밤새 켜져 있었습니다.”강재석은 고개를 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얼굴엔 걱정의 기색 없이 여전히 온화한 미소
아심은 눈에 은은한 빛을 띠며 성연희를 바라보았다.“연희야, 고마워.”연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내가 괜히 참견했다고 화내지만 않으면 됐어! 저기 가서 새 친구를 사귀더라도 우리를 잊으면 안 돼.”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절대 잊지 않을 거야.”그날 저녁아심은 이전에 살던 집에 잠시 들렀다. 파티를 마친 후 한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아 방 안은 이미 얇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소파 위에는 강시언의 셔츠가 놓여 있었다. 며칠 전 밤, 세탁소 직원이 가져가 깨끗이 세탁한 후 다시 배달해 놓은 것이었다.강심은 그 옷을 옷장에 다시 걸어두었다. 옷장에는 남성용 셔츠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참 후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대신 가슴 한켠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가져갈 물건들을 정리한 후,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두 권의 책과 고즈넉한 설에 갔던 서점에서 소녀가 건넨 엽서가 놓여 있었다.아심은 책을 들어 첫 페이지를 펼쳤고, 거기엔 남자가 힘 있게 써놓은 글씨가 있었다.강아심 2월 3일, 인가마을특색거리책을 내려놓고, 그녀는 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강성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수한 밤들, 아심은 늘 이 자리에서 강성의 밤을 바라보았다.고요하거나, 떠들썩하거나, 혹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거나, 아니면 별빛이 찬란한 밤들. 하지만 아심은 늘 방관자처럼, 조용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봤다.그러나 시언의 등장으로, 그 후의 밤들은 전과는 다른 감정들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심은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했지만, 머릿속의 그 기억은 금세 사라져 잡을 수가 없었다.유리창에 비친 아심의 얼굴은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 속에 갇힌 포로처럼, 어떻게 이 족쇄를 깨부술지 고민하는 듯했다.‘떠나는 것이 해답일까?’아심은 창문 앞에 오래 서 있다가 테이블 위의 책과 엽서를 모두 여행 가방에 넣었다.도씨 저택으로 돌아오자 도도희는 거실 밖 발
다음 날, 도도희는 금요일 오전 비행기로 Y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늘은 수요일이었다.소희와 성연희는 도경수가 출국하기 전에 송별회를 열고 싶었지만, 도경수는 끝까지 고사했다. 그는 자신이 출국한다는 사실을 소수의 친한 제자들에게만 알렸고, 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함께하며 작별의 아쉬움을 나눴다.점심 식사 후, 강솔은 도경수와 함께 술을 조금 마시고 뒷마당으로 가서 술을 깨기 위해 앉아 있었다. 소희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 강솔은 벤치에 앉아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소희는 강솔의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만 울어, 선배 오면 내가 너 괴롭힌 줄 알겠어.”강솔은 소희의 어깨에 기대며 그녀의 티셔츠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훌쩍였다.“별일 아니야. 그냥 마음이 좀 아파.”“전에 스승님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뵐 수 있었고, 아무리 늦게까지 야근해도 와서 저녁이라도 함께할 수 있었잖아.”“그런데 이제 스승님이 멀리 가시면, 보고 싶을 때 어떡해?”소희는 강솔이 구겨놓은 소매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스승님이 외국 생활에 적응 못 하실 수도 있으니, 조금 지나면 다시 돌아오실지도 몰라.”강솔은 코를 훌쩍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스승님은 거기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아. 스승님이 그동안 가장 걱정하셨던 건 도도희 이모와 아심이었잖아. 이제 가족들이 함께하니 우리가 기뻐해야 해.”소희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래도 생각 빨리 정리했네.”강솔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그냥 내가 술 마시고 정신없다고 생각해.”소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근데 너 이 술주정, 순전히 내 옷에 묻히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강솔은 구겨진 소매를 내려다보며 울다가 웃음을 터트렸다.그때 성연희가 아심과 함께 걸어왔다. 강솔이 소희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강솔은 민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눈물을 닦으며 일부러 변명했다.“소희가
강재석은 차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좋아, 일이 웬만큼 정리되었으니 나도 이제 떠나야겠구나.”도경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지금 당장 운성으로 돌아가겠다고? 내가 출국할 때는 안 배웅하실 건가?”강재석은 웃으며 답했다.“도도희랑 아심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내가 배웅하지 않아도 되겠지.”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게다가 나를 알잖아. 몇십 년 동안 한결같이 이별 인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오늘 오후에 바로 운성으로 갈 거야.”아심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깜짝 놀랐다.“오늘 바로 가신다고요? 할아버지?”강재석은 온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네가 떠날 때는 내가 배웅하지 않을 거야. 대신 시언이 널 데려다줄 거야.”아심은 시언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두 사람의 눈길이 잠시 마주쳤다. 강아심은 고개를 돌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그럼 돌아오는 길에 꼭 뵈러 갈게요.”도도희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한 달 동안 아저씨와 함께 지내면서 익숙해졌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시겠다고 하니 정말 마음의 준비가 안 됐네요.”강재석은 담담하게 말했다.“세상에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는 법이란다. 각자 할 일이 있고, 언젠가는 헤어지게 마련이지.”“중요한 건, 우리가 만났을 때는 기쁘고, 헤어질 때도 여유롭게 보내는 거야.”도경수는 강재석의 말에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다만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강솔은 분위기를 밝히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나중에 시간 나면 우리가 운성으로 찾아갈게요. 할아버지 댁 마당이 너무 좋더라고요.”강재석은 손녀를 바라보듯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언제든지 환영이다. 너도 곧 결혼한다면서? 결혼식 때 내가 꼭 가서 축하해줄게.”강솔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약속이에요!”그렇게 웃고 떠드는 동안 이별의 분위기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소희가 말했다.“할아버지, 오후에 가시면 제가 함께 가서 모셔다드릴게요.”강재석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넌 갓 돌아
재아는 가장 먼저 도경수 앞에 다가가 깊이 허리를 숙이며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울먹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정말 죄송해요.”재아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병을 앓고 난 뒤의 쇠약함과 침울함이 역력했다.“어릴 때부터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를 만난 뒤에야 가족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저를 그렇게 잘 대해주셨는데, 저는 오히려 실망만 안겨드렸네요.”“솔직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떠나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떠난다면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살 것 같아서요.”“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그 모든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도경수는 처음 재아를 만났을 때 그녀의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잃어버린 손녀에 대한 그리움을 재아에게 투영하며 마음을 달랬다.이제 와서 그는 스스로 물었다. 재아에게 보여준 애정이 결국 그녀를 망친 것은 아닐까?도경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재아는 울먹이며 답했다.“경주 근처의 작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했어요. 기차표도 이미 예매했고요.”도경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몸 잘 챙기도록 해라.”“감사드려요!” 재아는 다시 한번 깊이 허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아심을 바라보며 말했다.“전에 내가 많이 가식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진심으로 사과할게요.”아심은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재아는 눈물을 훔치며 강솔에게도 사과했다.“미안해요.”강솔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나는 크게 신경도 안 썼으니까 그러지 마요. 몸조리 잘하고, 나중에 강성에 놀러 와요.”재아는 항상 강솔의 밝고 걱정 없는 모습이 부러웠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강솔을 질투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재아는 소희에게 다가갔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소희야.”재아는 눈과 코가 붉어지며 훌쩍였다. 깊은 후회와 미안함이 가득했다.“
시언은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호칭을 다르게 해야지. 외할아버지께서 오빠라 부르라 하지 않았어?”강아심은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턱을 살짝 얹고 귀엣말처럼 낮게 속삭였다.“그날, 파티에서 외할아버지가 당신을 오빠라 부르라 했을 때요, 제 머릿속엔 다 말 못 할 상상뿐이었어요.”아심은 매혹적인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당신은 어땠어요?”시언도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태연히 대답했다.“똑같았어.”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기대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한참 동안 웃던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잘생긴 옆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저, 곧 떠나요. 시간을 소중히 쓰는 게 어때요?”시언은 고개를 약간 돌리며 그녀의 달빛 아래 빛나는 부드러운 눈동자를 응시했다.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아심, 넌 내가 돌아올 때마다 널 찾는 이유가 이것뿐이라고 생각하나?”아심은 더욱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렇다면, 이유를 말해줘요. 왜 날 찾는 건데요?”아심은 떠나기 전에 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넌 왜 나와 함께였을까?”‘습관이었을까? 의지였을까? 아니면 필요해서였을까?’아니면, 그 모든 이유였을지도 모른다.아심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내려갔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시언의 어깨에 기대며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정말로 듣고 싶어요?”시언은 단호하게 말했다.“듣고 싶어.”하지만 아심은 대답하지 않았다. 떠나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옳을지 고민이 밀려왔다....다음 날 아침강재석은 시언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침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는 시언을 마당으로 불러내 이야기를 나누었다.두 사람은 작은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강재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심이 도도희와 함께 떠난다더라고. 도경수도 따라간다고 하던데.”시언은 변함없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알고 있어요.”강재석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소희는 재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들 모두 어릴 적에 친부모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면, 재아는 양부모 밑에서 자라며 늘 무시당하고 학대받았다는 점이었다.이로 인해 재아는 스스로를 부정하며, 강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소희는 재아의 마음속에 여전히 선함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재아가 임예현을 찾으러 갔던 것도, 단순히 예현이 그녀가 의지할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두리에서 함께한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 의지했고, 재아 역시 선한 마음에서 도왔다.소희는 재아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아심도 너를 용서할 거야. 스승님도 마찬가지일 거고. 이번 일을 너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빨리 몸부터 회복해.”재아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며 계속해서 말했다.“소희 미안해. 정말 미안해.”...재아가 다시 힘없이 잠든 후, 소희는 병실을 나와 기다리고 있던 임구택에게 말했다.“가자. 간병인을 붙였고, 입원 수속도 맡겼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구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무슨 이야기를 나눴어?”소희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재아가 계속 뉘우치고 있었어.”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한 생명을 잃고 얻은 깨달음이라면, 진짜 뉘우치길 바래야겠지.”소희는 구택의 옆에서 걸음을 맞추며 말했다.“나는 진심으로 잘못을 깨달았다고 믿어요. 아까 나한테 부탁하더라고. 스승님께 임신했던 것과 사고로 다친 일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스승님께 더 큰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고 했어.”구택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도씨 집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거야?”소희는 고개를 저었다.“아마 아닐 거야.”...깊은 밤.이미 늦은 시각, 아심은 회사에서 마지막 업무를 마무리하고 자료를 정리했다. 컴퓨터를 끄고 모든 서류를 정리한 후,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낮게 앉아 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강시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