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찾은 일은 케이슬에서 서빙하는 일이었다. 예쁘게 생겼기 때문에 그녀는 출근하자마자 8층 VIP 룸에 가서 손님들에게 술을 가져다주는 일을 맡았다.이틀 동안 트레이닝을 받은 뒤 그녀는 정식으로 출근했다.8층의 조장 진수미는 그녀가 출근하는 첫날에 그녀를 데리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알게 했다.8층에는 모두 5개의 VIP 룸이 있었기에 5명의 서빙을 배치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케이슬에서 1년 넘게 일하고서야 8층까지 왔지만 소희는 오자마자 이곳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보는 눈빛이 모두 좀 이상했다.조장 진수미는 30대에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고 정교한 메이크업에 일 처리가 깔끔했다. 그녀는 소희에게 당부했다."8층 5개 VIP 룸 중 8801과 8809는 고정된 손님이 있어. 평소에 그들이 오지 않아도 다른 손님을 들여보내선 안 돼. 다른 주의사항은 네가 트레이닝할 때 이미 배웠으니까 더는 말 안 할게. 그리고 이거 알아둬, 8층에 올 수 있는 손님들은 모두 가장 존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그들한테 미움을 사서는 안 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소희 넌 오늘 연설화랑 8807호 룸 맡아. 모르는 게 있으면 설화한테 물어보고." 수미는 설화에게 말했다."소희는 새로 왔으니 네가 먼저 데리고 잘 가르쳐 줘!"옆에 손시월이라는 사람이 바로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8807은 줄곧 내가 책임졌던 룸인데 왜 소희로 바꾸는 거예요?"수미는 담담하게 말했다."인원 변동은 자주 있는 일 아닌가!"시월은 소희를 힐끗 쳐다보더니 어두운 얼굴로 말을 하지 않았다.수미가 나간 후, 모두들 각자의 룸을 체크하러 갔다.시월 등 몇 사람은 체크한 뒤 먼저 휴게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옷장을 열자 안에 못 보던 운동복 상의가 하나 있는것을 보고 일부러 물었다."이건 누구의 옷이야?"휴게실 안의 옷장은 다들 같이 쓰는 거라 그녀들은 소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시월은 치마를 꺼내면서 비웃었다."이거 어
그쪽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시월의 목소리는 더욱 간드러졌다."오늘 우리 여기에 신인이 왔거든요. 근데 오자마자 날 괴롭힌 거 있죠? 게다가 내가 맡은 룸까지 빼앗았어요. 도련님이 좀 도와줘요!"전화 너머의 남자는 마치 그녀를 달래는 것 같았다. 시월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아양을 떨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이따가 도련님이 그녀를 잘 훈계해 주시면 나도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그래요, 이따가 내가 술 따라드릴게요, bye!"전화를 끊자 시월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파우더를 꺼내 화장을 고쳤다.소희는 설화와 먼저 술을 가지러 간 다음 8807로 갔다.문을 두드린 후 설화는 소희의 손에서 술을 받고 순간 달콤한 웃음을 지었다.인테리어가 화려한 룸 안에는 따뜻한 노란색 등이 켜져 있었는데 대략 10여 명이 있었고 그중 4명은 오락 구역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고 소파에는 대여섯 명이 앉아 있었으며 휴식 구역에도 4~5명이 앉아 있었다.설화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웃으며 물었다."임경훈 도련님, 술 열어드릴까요?"임경훈이라 불리는 사람은 품에 호스티스를 껴안고 낮은 소리로 웃고 있었다. 설화의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녀 뒤에 있는 소희를 한눈에 보고는 일부러 물었다."신인 왔어?"설화는 즉시 웃으며 말했다."네, 오늘 금방 온 신인이에요.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도련님께서도 너그럽게 봐주세요."그는 소희에게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봐, 내가 한 번 보자!"소희는 다가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뭘 도와드릴까요?"그는 소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테이블을 힐끗 쳐다보며 미적지근하게 말했다."담뱃불 좀 붙여줘!"소희는 담배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고 라이터를 들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불을 붙였다.그는 소희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다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고 웃는 듯 마는 듯했다."몰라도 너무 모르네. 담배에 불을 이렇게 붙이는 거야?"주위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설화는 소희가
경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비록 그는 시원이 왜 화났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눈치 빠르게 웃으며 말했다."형 말 맞아요, 내가 술 좀 많이 마셔서 주제를 넘었네요. 형도 화 풀어요!"이때 설화의 말을 들은 수미가 들어와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일 생긴 거죠?"그녀는 말을 마치고서야 시원을 보았고 다소 놀란 말투로 말했다."장시원 도련님도 계셨군요!""응, 경훈이 한턱낸다 해서 와봤어." 시원은 담담하게 말했다.수미는 고개를 돌려 경훈을 바라보았다."소희는 신인이라 만약 임경훈 도련님의 미움을 샀다면 제 체면을 봐서라도 그녀 탓하지 말고 좀 봐주세요."경훈은 방금 시원이 소희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더는 따질 엄두 내지 못하고 겸연쩍게 말했다."괜찮아!"다른 사람들은 경훈이 뺨 한 대 맞았지만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모두 조용하게 있었다.시원은 소희를 쳐다보았다."나 따라와요!"설화는 호기심의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 원래 그녀는 소희가 경훈을 때리며 일을 크게 벌였으니 소희는 틀림없이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시원이 나타나서 일을 해결할 줄이야.설마 시원은 소희를 아는 건가?소희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장시원이란 사람을 몰랐으니 그는 왜 그녀를 도와줬을까?구미는 소희에게 눈짓을 했다."도련님의 분부니 얼른 가봐."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을 따라 문을 나섰다.두 사람은 8809호 룸으로 갔다. 시원은 소파에 낮으며 태도가 온화하고 부드러웠다."소희 씨, 앉아요!"소희는 앉으며 먼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시원은 엷은 입술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천만에요, 근데 왜 여기에 있는 거죠?"소희가 대답했다."저 여기서 일해요. 오늘은 첫날이고요. 근데 저를 아세요?"시원은 웃었다."난 임구택을 알거든요!"소희는 문득 심명의 생일날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시원은 문밖에서 구택과 얘기를 나누었다.시원은 담배를 들고 소희에게 물었다."담배 피워도
"아니요."......룸에서 나온 소희는 여전히 시원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때의 일은 역시 한소율이 사주했던 것이다. 그날 그녀는 구택이 전화를 걸어 사주한 사람을 조사하라는 것을 들었지만 그 후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기에 그냥 그가 찾아내지 못해서 이 일이 그냥 지나간 줄 알았다.알고 보니 그는 한소율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 대신 혼쭐까지 내줬다.그는 왜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소희는 벽에 기대어 마음이 시큰거렸고 답답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어 구택에게 적어도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그러나 망설이다 그녀는 끝내 전화를 하지 않았다.이미 오래전의 일이었으니 그도 벌써 잊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이 은혜를 마음속에 새기며 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에게 갚아주려고 다짐했다.휴게실로 돌아오자 설화와 다른 몇 사람들은 모두 안에 있었다. 아마 방금 8807호 룸에 관한 일을 들어서인지 소희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시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질투심이 들어있었다.설화는 떠보며 물었다."소희야, 너 장시원 도련님을 아는 거야?"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아는 편은 아니에요. 친구의 친구예요."시월은 임경훈조차 소희한테 당한 것을 보고 속으로 더욱 화가 나며 비꼬았다."장시원 도련님을 아는 사람이 우리랑 같이 서빙을 한다고? 설화 너도 참 웃기다!"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말을 듣고 긴장을 풀며 해야 할 일을 했다.그 후 며칠, 소희는 점차 8층의 서빙과 환경에 익숙해져서 일도 꽤 순조로웠다. 시월도 더는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고 그녀도 임경훈같은 손님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금요일 저녁, 구택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원의 전화를 받았다."우리 지금 케이슬에 있어. 놀러 와."구택은 팔에 양복을 걸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안 갈래, 너희들끼리 놀아!""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안 나오다니, 기분이 안 좋은 거야?"시원이 웃으며 물었다."그런 거 아니야!" 구택은 어이가 없어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시원은 의미심장
시원은 옆의 사람에게 말했다."임경훈 불러와, 구택이 그한테 할 말 있다고 말해!"그 사람은 즉시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훈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구택 형, 나 찾으셨어요?"구택은 대답하며 정서를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와 봐!""네!" 경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웃으며 말했다."형 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우리 아버지도 지난번에 형이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시간 있으면 함께 식사하자고 하셨어요."구택은 무뚝뚝하게 물었다."담배 있어?"경훈은 즉시 몸에 있는 담배를 꺼내 구택에게 하나를 건네준 후 테이블에 있는 라이터를 들고 다가가 그에게 불을 붙여줬다."담뱃불을 이렇게 붙이는 거야?"구택은 갑자기 차가운 소리로 입을 열며 문득 다리를 들고 경훈의 가슴을 걷어찼다.경훈은 연신 뒷걸음질했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쳤으며 인차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가리고 카펫에 쓰러졌다.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멍해졌다. 경훈이 대체 어떻게 구택을 건드렸기에 그를 이토록 화나게 만들었을까?오직 시원만이 평온하게 소파에 앉아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했다."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 할 거 해!"아무도 감히 신경 쓰지 못했다. 누가 감히 임구택을 건드리겠는가?경훈은 한참 숨을 고르며 겨우 일어서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구택 형, 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그 여자애를 건드리지 않을 게요."그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시원이 여기에 있는 데다 구택이 방금 한 말까지 더하면 그는 인차 소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구택은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차갑게 가볍게 입을 열었다."꺼져, 앞으로 여기서 내 눈에 띄면 어떻게 되는 지 알지?""네, 지금 바로 꺼질게요!" 경훈은 즉시 일어나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몸을 돌려 황급히 뛰쳐나갔다."너 지금 다른 사람 경고하는 거야?" 시원은 손을 뻗어 그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며 환하게
그것도 불을 잘 못 붙여서? 그는 그녀를 위해 화풀이를 해줬던 것일까?구택은 얼굴에 화가 난 기색이 번쩍이며 시원을 힐끗 쳐다보았다."일 없으면 저리 꺼져!""내가 눈에 거슬리다는 거야? 너 이 배은망덕한 자식!"시원이 농담으로 말했다."소희 씨, 오늘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요. 우리 임 대표를 기쁘게만 해주면 앞으로 소희 씨는 내 여동생이에요. 내가 소희 씨 감싸줄게요!"구택은 눈살을 찌푸렸다."누가 네 여동생이야?"시원은 그를 비웃었다."여동생이라 부르는 것도 질투하니?"구택은 안색이 가라앉으며 금방 입을 열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소희가 먼저 말했다."그 말 진심이에요?"시원은 즉시 대답했다."당연하죠!"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임 대표님을 둘째 삼촌이라 부르는데 만약 장시원 씨가 나를 여동생으로 여긴다면 나랑 같이 그를 둘째 삼촌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거 알아요?"시원은 멍해졌다.구택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웃으며 시원을 바라보았다."빨리 둘째 삼촌이라 불러!"시원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슬픈 척했다."소희 씨, 내가 이렇게 편들어 주는데 어떻게 구택을 도와 나를 갖고 장난치는 거예요!"구택은 코웃음쳤다."네가 편들어줄 필요가 있을까?""그래, 너희 두 사람 잘났다!"시원은 한숨을 쉬며 웃었다."내가 거슬리지 않게 저리로 꺼지면 되겠지!"그는 말을 마치고 일어나서 옆에 있던 두 사람을 불렀다."나와 함께 두 판 치러 가자. 방금 내가 너무 비참하게 졌어. 반드시 이길 거야!"그 두 사람은 웃으며 일어섰다."시원 형이 졌다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데?"세 사람은 웃고 떠들며 오락 구역으로 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이쪽에는 구택과 소희 두 사람만 남았다.소희는 입술을 오므리고 테이블 위의 술을 들고 구택에게 말했다."구택 씨!"구택은 눈을 들어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랑 술 한잔하려고요? 다른 사람은 어떻게 술을 마시는지 한번 봐요."소희는 고개를 돌려 앞쪽 소파에서 한
누가 이쪽의 불을 껐는지 어둠은 옆 사람들의 소란과 떠들썩한 기운을 차단했다. 단지 두 사람의 엇갈린 호흡만이 낮고 분명하고 급했다.한참 지나 저쪽에서 누군가가 카드놀이에서 이기며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소희는 놀라 정신을 차리며 갑자기 멈추었고 빨개진 얼굴을 숨기려고 고개를 숙였다.구택은 그녀의 허리를 잡으며 몸속에서 솟음 치는 욕망이 가라앉은 후에야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만약 다른 손님이 이렇게 요구한다면, 소희 씨도 승낙할 거예요?"소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목소리는 살짝 쉬었고 화가 났다."나는 호스티스가 아니에요.""그럼 여기에 뭐 하러 왔는데요?" 남자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정말 서빙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함께 일하는 그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그녀들은 자신이 맡은 룸 안의 손님과 어떤 관계인지!"소희는 요 며칠 여기서 일하는 동안 이미 어느 정도 좀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그 손시월은 임경훈과의 관계가 수상했다. 그녀들은 호스티스가 아니지만 돈 많이 주는 손님을 만나면 이렇게 해서 돈을 벌기도 했다.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침착하게 말했다."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요!"구택은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쥐며 걱정해하며 말했다."주먹질 좀 할 줄 안다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남자들이 얼마나 더러운 수작을 부리는지 알기나 해요?"어두운 빛 아래 소희는 맑고 고요한 눈동자로 천천히 대답했다."조심할게요."구택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여기 일 그만두고 유민에게 과외 해줘요. 내가 월급 세 배로 줄게요."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방학인데도 유민더러 과외하라는 거예요? 구택 씨 엄청 미워할걸요!""그럼 유민이랑 놀아줘요. 유민은 줄곧 소희 씨와 사격을 배우고 싶어 했잖아요. 그러니까 소희 씨가 가르쳐 줘요!"소희는 귀를 살짝 기울이며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그럼 딱 여름방학 끝나기 전까지 여기서 일할게요.""안 돼요, 지금 당장 그만둬요!"
"아무도 소희 씨 못 막아요!" 구택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그녀를 안고 일어나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그들을 쳐다보았다. 소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잽싸게 그의 품 안에서 뛰어내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일부러 침착한 척 밖으로 나갔다.시원은 일어나 구택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구택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 담담하게 말했다."나 먼저 갈게, 너희들끼리 놀아. 오늘 밤은 내가 쏘는 걸로!"그와 관계가 좋은 몇 사람은 참지 못하고 소란을 피웠다."고맙다, 구택아!""형님, 몸조심하고!"......구택은 휴게실 앞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은 소희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옅은 회색 티셔츠에 흰색 핫팬츠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중학생 같았지만 그녀의 기질은 차갑고 차분했다.구택은 일어서서 그녀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갔다.케이슬에서 나오자 명우는 이미 문밖에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구택과 손을 잡고 있는 소녀를 힐끗 보며 그의 눈빛에는 이미 예상했다는 의미가 스쳐 지나갔다.차에 오르자 구택이 입을 열었다."어정으로 가."소희는 그제야 어정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얼른 말했다."어정은 안 돼요. 청아가 아직 거기에서 지내고 있어요."구택은 고개를 돌렸다."전의 그 친구 말하는 거예요? 며칠만 묵는다고 하지 않았나요?"소희는 좀 난감해했다."그녀 집에 일이 좀 생겨서 며칠 더 묵어야 할거 같아요."구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명우에게 분부했다."호정 별장으로 가지."차가 달리자 소희는 청아에게 오늘 저녁엔 돌아가지 않으니 그녀더러 기다리지 말고 일찍 자라고 문자를 보냈다.청아는 그녀에게 밤중에 어디 가냐고 물었다.소희는 잠시 생각하다 답장했다. [둘째 삼촌네 집에.]청아는 그제야 안심하고 굿나이트 이모티콘 하나 보냈다.차가 동쪽으로 향하자 소희는 익숙한 노선을 보고 마음이 조여왔다. 그녀는 청원 별장으로 가는 줄 알았지만 다음 길목에서 차가 오른쪽으
유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챙겼다. 왜냐하면 유진이 가져온 것은 오직 휴대전화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둑한 복도에서,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서인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이번에는 서인이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유진은 조금씩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더 깊이 엮었고, 결국 그의 손 전체를 단단히 쥐었다.서인의 손은 크고 뼈마디가 굵었으며, 손바닥에는 거칠지만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유진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촉감이 이상하게도 더 마음에 들었다.깊은 밤, 조용한 복도에서, 유진은 자기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쿵, 쿵. 긴장과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민박집을 떠난 뒤, 서인은 차를 몰아 유진과 함께 산을 내려가 도시로 향했다. 그는 자기 외투를 벗어 유진의 어깨 위에 걸쳤다. 어둠 속에서 서인의 날렵한 얼굴선이 더욱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잠깐 눈 붙여. 도착하면 깨울게.”하지만 깊은 밤 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이, 유진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진은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전방을 바라보며 서인과 대화를 나눴다.“그 쥐덫, 아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쥐는 계속 나올 거라고요.”그곳의 쥐들은 너무 대담했다.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창가에 올라와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까지 했다.서인은 물었다.“그러면 왜 날 안 불렀어?”유진은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입을 막고 있었거든요!”유진은 서인이 피곤할까 봐 일부러 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운전했으니, 이미 녹초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대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냥 밤새도록 그렇게 버틸 생각이었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바로 맞은편 방에서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그 순간, 유진은 차라리 쥐랑 함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서인이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진은 본능적
“임유진!”서인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거칠게 떨렸다. 그는 급히 옆방 문을 두드렸고, 문이 열리는 순간, 임유진이 그대로 서인의 품에 뛰어들었다.서인은 방 안을 빠르게 둘러봤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는 듯했다.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며 조용히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유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저, 저기 쥐가 있어요!”서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반쯤 설명하고 반쯤 달래듯 말했다.“이런 곳에서는 쥐가 나오는 게 당연해. 그냥 네 방을 지나간 거야. 널 물지는 않아. 오히려 네가 더 무서울걸?”하지만 유진은 서인의 품 안에서 겁에 질린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제야 서인은 유진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커다란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채, 하얀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창백할 정도로 희고 매끈한 피부가 시각을 자극했다.반면, 서인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나왔기에, 바지만 입고 상의는 벗은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 서인은 목이 바짝 타는 듯했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얼굴이 굳어버렸다.손을 뻗어 유진을 떼어내려 했지만, 유진은 겁에 질려 서인의 허리를 더 꼭 붙잡았다. 두 사람은 문 앞에서 그렇게 서 있었다.혹시라도 누가 지나갈까 걱정된 서인은 유진을 가볍게 안아 방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그러나 유진의 티셔츠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녀의 부드러운 체온이 서인의 맨가슴에 고스란히 닿았다.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자, 서인은 서둘러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고 이불로 감싸주었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유진은 얼굴이 불타오르듯 붉어졌다.그녀는 이불을 꼭 움켜쥔 채 눈을 피했고, 서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안토니한테 가서 쥐 잡을 도구가 있는지 물어볼게.”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자, 서인은 곧장 방을 나섰다. 유진은 그의 넓은 어깨와 탄탄한 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길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가, 황급히 창밖으로 시
안토니는 서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부모님이 여기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모든 절차는 다 정식으로 등록된 거예요. 게다가 이 땅은 호텔 부지에 포함되지도 않고요.”“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철거하라고 명령할 수 있어요? 보상금도 터무니없이 적고, 우리 부모님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라는 거죠?”“하지만 호텔 뒤에는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무도 우리 편에 서지 않아요.”임유진은 분통이 터져 소리쳤다.“이건 완전히 강도질이잖아요! 소송이라도 걸어야 하죠!”토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소용없어요.”“사실, 보상금이 충분하다면 철거를 고려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그 옆에서 안주설이 조용히 말하자, 토니는 즉시 그녀의 말을 끊었다.“얼마를 준다 해도 안 돼. 우리 고향 집도 이미 팔아버렸어. 부모님께 남은 건 이 민박집뿐이야. 여기가 없어지면 어디로 가란 말이야?”주설은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며 변명했다.“그냥 의견을 낸 것뿐이야.”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상황은 알겠으니까 방법을 찾아볼게.”토니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어쩔 수 없어서 서인 형한테 전화한 거예요. 형이 강성에 있는 거 알지만, 흥성 일에는 개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토니는 분노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서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서인은 그날 바로 달려와 주었다.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토니 형과 나는 형제나 다름없어요. 걔의 일은 내 일이나 마찬가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해결할 테니까요.”토니의 부모는 연신 감사를 표했다.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 11시가 되었다. 토니는 2층에 서인과 유진을 위한 방 두 개를 준비해 주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유진은 서인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나 아무것도 안 가져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돌려 토니에게 물었다.“새 세면도구 있어? 갑자기 오느라 아무것도 못 챙겼어.”“당연하죠! 다른 건 몰라도 세면도구는 넉넉
유진은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비싼 건 아니네요!”서인의 품에 안겼으니, 20만원이라도 아깝지 않았다. 서인은 본래 유진을 위로하려 했는데, 그녀의 표정을 보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순간 서인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유진은 기분이 좋아진 듯 미소를 지었다.“이미 산 거니까, 그냥 먹어요. 버리긴 아깝잖아요!”그녀는 티슈로 사과를 닦아내고 서인에게 하나 건넸지만, 서인은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난 안 먹어.”“그럼 저 혼자 먹을게요!”유진은 사과를 입에 가져가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사과가 신선해서 아삭하게 씹히며 입안 가득 달콤한 과즙이 퍼졌다.이윽고 차 안에 오직 사과를 씹는 소리만 울렸다. 서인은 앞을 주시하며 운전을 계속했지만, 무심결에 목젖이 한 번 움찔거렸다. 유진은 연달아 몇 입을 베어 물다가 반쯤 먹은 사과를 들고 서인을 바라봤다.“정말 안 먹어요? 진짜 맛있어요!”2만원으로 이 정도 퀄리티라면 완전 대박이었다. 그러나 서인은 도로를 응시한 채 담담하게 말했다.“보통 과수원에서는 사람들이 몰래 따 먹는 걸 방지하려고 사과에 농약을 뿌려 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에 든 사과를 바라봤다가 곧 얼굴이 새파래졌다.“왜 이제야 말하는 거예요?”서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방금 떠올랐어.”“어떡하죠? 나 중독되는 거 아니에요?”유진은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며 억울한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내가 만약 중독돼서 장애라도 생기거나, 바보가 되면, 사장님이 평생 책임져야 해요!”서인은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왜 내 탓이지?”“사장님이 산 사과잖아요!”당당한 유진의 태도에 서인은 말문이 막혔다. 물론, 사과에 농약 따위는 없었다. 결국 유진은 바보가 되지도, 장애가 생기지도 않았고, 심지어 배 아픈 일조차 없었다.두 사람이 안토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였다. 토니네 민박집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주변에는 몇 개의 민박집이 듬
산길 위로 가끔 여행객들의 차가 지나갔다. 멀리 보이는 민박집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이게 무슨 냄새지? 사과 향 같은데?”임유진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기쁜 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저기 사과나무가 있어요!”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만 가자. 이제 출발해야 해.”“딱 하나만 따면 돼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사과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무에 열린 사과를 봤다. 달빛을 받아 가장 크고 탐스러운 사과를 골라 따냈다. 그리고 서인에게 줄 사과도 하나 더 따려 했다.사과를 막 손에 쥐려던 찰나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가 내 사과를 훔쳐 가지? 거기 서요!”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이 깜박였고,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멀리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유진은 얼어붙었다. 사과나무가 야생인 줄 알았는데, 주인이 있는 나무였다니!유진은 처음에는 자리에 서서 주인을 기다려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의 고함과 함께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커다란 개가 사나운 기세로 유진을 향해 돌진했다.유진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의 털이 곤두서, 본능적으로 뒤돌아 도망쳤다.“사장님!”멍! 멍멍멍! 사람 허리까지 올 법한 덩치 큰 검은 개가 빠르게 움직였다. 유진이 달아나는 것을 보자 더욱 거칠게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다. 유진은 손에 사과 두 개를 꼭 쥔 채, 있는 힘껏 서인을 향해 달렸다.서인도 상황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고, 유진을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유진은 순식간에 뛰어올라 그의 품에 안겼다. 유진은 겁에 질린 채 서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 순간, 개가 가까이 다가왔고, 서인은 한쪽 다리를 들어 강하게 개를 걷어찼다. 50킬로그램은 나갈 듯한 큰 개가 힘껏 날아가 땅에 쾅 하고 떨어졌다.개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몇 번 뒤틀다가 겨우 일어났지만, 아까의 사나운 기세는 사라지고 멀찍이서
“흥성.”흥성은 강성의 옆도시로, 관광 도시였다. 이에 임유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을 내렸다.“나도 같이 갈게요!”꽤 발랄하게 말하는 유진에 서인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뭘 하러 가는지도 모르면서 따라가겠다고?”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뭘 하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나도 갈 거니까요!”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왜 안 돼요?”“오늘 돌아오지 못할 거야. 거기서 이틀은 머물러야 하는데, 네가 따라오면 불편해.”“그냥 여행 가는 셈 치면 되잖아요!”서인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다음 사거리에서 임씨 저택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이에 유진은 여유롭게 말했다.“그러면 집에 데려다줘요. 집에 가서 짐 챙기고 내 차로 흥성으로 갈게요. 어쩌면 거기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는데요?”“임유진.”서인은 얼굴을 굳히자,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봤다.“우리 동료들은 다 놀러 갔는데, 난 너 때문에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나를 두고 혼자 나가겠다고요? 그게 맞는 거예요?”서인은 설명했다.“나는 노는 게 아니라, 일이 생겨서 가는 거야.”“몰라요. 어쨌든 따라갈 거예요. 나 어린애 아니니까 방해 안 할게요. 그냥 나 없는 셈 치면 되잖아요!”유진은 애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사장님은 일 보러 다니고, 난 혼자 놀러 다닐게요. 절대 방해 안 할 거예요. 됐죠?”서인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더 미루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럼 말 잘 들어야 해.”서인이 신신당부했다.“약속할게요!”유진은 신나서 손까지 들며 맹세할 기세였다.서인은 고속도로에 올라탄 뒤 오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를 잘 봐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은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고 했다.유진도 노정순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설명 없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만 말했다. 노정순은 오전에 여진구가 찾아와 회사 워크숍을 언급했던 걸 기억하고, 그녀가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가는 줄 알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당부했다.전화를 끊
강성의 한 묘지.홍복과 표용을 비롯한 전우들의 묘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전우들은 이제 백랑의 곁에서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서인은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씩 놓았고, 임유진도 묘지 밖에서 사 온 꽃을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돌계단에 앉아, 멀리 보이는 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유진도 서인의 곁에서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이야기 좀 더 해 주세요!”서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다 얘기했잖아.”유진은 묘지를 찾을 때마다 늘 삼각주에서의 과거를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서인이 기억하는 건 이미 다 말해 준 상태였다. 그러나 유진은 질세라 다시 말했다.“이번에 전우들 묘지가 새로 생겼잖아요. 분명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요!”“없어.”서인은 한쪽 다리를 굽힌 채 느슨하게 앉아 있었고, 말투 역시 어딘가 귀찮아 보였다.이에 유진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면 다음에 소희한테 물어봐야겠네!”그제야 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진을 노려봤다.“진짜 듣고 싶어?”“당연하죠!”유진은 활짝 웃으며 턱을 괴고, 이야기 들을 준비를 했다. 유진은 과거가 늘 궁금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가 맨날 말하는 내 229명의 여자친구들 얘기, 하나씩 다 해 줄까?”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는 곧장 옆에 있던 꽃을 집어 들어 서인에게 던졌다.서인은 피식 웃으며, 거친 목소리 속에 장난기가 묻어났다.“이야기 듣고 싶다며? 229개의 이야기가 있지. 아마 내년까지도 다 못 들을걸.”“아직도 그 말을 해요?”유진은 씩씩거리며 서인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서인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는 별다른 힘을 쓰지도 않았지만, 유진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밀어낼 수 없었다.마치 큰 회색 늑대 앞에 선 어린 토끼처럼,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버둥거릴 뿐이었다.잠시 후, 유진은 숨을 몰아쉬며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겠네요!”문신 남자는 점점 짜증이 났다.“겨우 서빙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잘난 척이야? 내가 맞팔 달라는 것도 네 급을 봐준 거라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층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사장님! 여기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다부진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은 주변 공기마저도 서늘하게 만들었다.서인의 싸늘한 눈빛이 문신 남자를 향하자, 그는 마치 얼음장 같은 시선에 찔린 듯 등골이 서늘해져,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유진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돈을 내기 전에 제 SNS 맞팔하라고 요구했어요.”그제야 문신 남자의 일행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리고 하나둘 일어나 힐끗거리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었고,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때, 오현빈과 이문이 후원에서 걸어 나왔다.현빈은 본래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손에 주방칼까지 들고 있었다.문신 남자의 일행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슬그머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그때, 서인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문신 남자를 향해 말했다.“좋아. 내꺼를 추가해요. 나랑 얘기 좀 하자고요.”문신 남자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굴이 창백해지며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결제를 마쳤다. 그러고는 재빨리 동료들을 불러 가게를 빠져나갔다.사람들이 나가자, 현빈이 비웃으며 말했다.“이런 겁쟁이 녀석들. 다음에 또 이런 쓰레기들이 나타나면 말도 필요 없어. 바로 나를 불러.”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알겠어요!”서인은 유진을 한 번 쓱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문은 그를 따라가며 넌지시 물었다.“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임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 찻주전자를 훔쳐 가겠어요? 안심하세요!”서인은 유진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손님이 너 찾으러 왔으면, 할 얘기 끝났으면 나가라. 가게 바쁘다.”유진은 서인의 표정이 더 이상 좋지 않자, 정말로 화를 낼까 봐 서둘러 대답했다.“별거 아니에요. 내가 그냥 먼저 보낼게요!”그렇게 말한 뒤, 유진은 황급히 돌아서서 여진구를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진구가 서인의 찻주전자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그거 내려놔요!”유진은 깜짝 놀라 뛰어가며 소리쳤다. 놀란 진구는 손을 헛디뎌 찻주전자를 떨어뜨릴 뻔했다.“왜 그래?”유진은 재빨리 찻주전자를 낚아채듯 빼앗았다.“이거 사장님이 2,000만 원 주고 산 거예요. 깨지면 감당할 수 있어요?”“뭐? 2,000만 원?”진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2,000만 원짜리 골동품 같지는 않은데?”유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되물었다.“선배 골동품에 대해 알아요?”“아니?”“그럼 됐죠!”유진은 찻주전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2,000만 원인데 한 푼도 깎지 않고 샀어요. 그만큼 애착이 있다는 거죠. 깨지면 당연히 화내겠죠!”진구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난 잘 모르지만, 우리 작은아버지는 골동품 전문가야. 가져가서 감정받아 볼까?”그리고 그는 서둘러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혹시라도 바가지를 썼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이 찻주전자가 아무리 봐도 2,000만 원짜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찻주전자를 내려놓더니, 진구를 밖으로 밀어냈다.“무슨 바가지요? 마음에 들면 2,000만 원이든 2억이든 가치가 있는 거고, 마음에 안들면 2천원도 아까운 거죠.”“그러니까 선배도 선배 할 일 하러 가요! 내 일 방해하지 말고요!”진구는 서인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마지못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가기 직전,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유진아,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