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50분, 소동은 화려하고 세련된 메이크업에 회색과 분홍색이 조화된 가벼운 쉬폰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차에서 내렸다. 매니저와 보디가드의 보호를 받으며 GK 본사에서 열리는 기자회견 장소로 걸어갔다.GK 본사에서 기자회견이 열리는 날, 문밖은 이미 기자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소동에게 집중되었고, 많은 팬들이 소동을 응원하는 팻말을 들고 크게 외쳤다. 그리고 소동은 자신의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려한 순간을 누렸다.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휴식 구역에서 달려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반겼다.“소동아!”소동이 고개를 돌려보니, 소씨 집안가족들이었다. 진연, 소정인, 소해덕 내외 그리고 큰 집의 장연경, 소정춘 모두 온것이었다.진연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소동아, 오늘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그리고 큰어머니까지 모두 와서 응원할게. 지금 기분이 어때?”소동은 함박웃음이 지어지는 것을 겨우 절제하며 대답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감사해요!”장연경은 웃으며 말했다. “네 사촌 언니는 오늘 일 때문에 못 왔지만, 우리 모두 널 전폭적으로 지지해!”소해덕도 말했다. “소동아, 할아버지가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진연은 소씨 가족들에게 등을 돌린 채 소동에게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본인의 딸이 드디어 진연을 빛나게 만든 것 같았다.이에 소동은 미소를 지으며 매니저에게 말했다. “이분들은 제 가족이에요, 나중에 자리 좀 마련해주세요.”소동의 말에 매니저는 바로 알겠다고 했다.“알겠어요, 나한테 맡겨요!”소동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먼저 들어갈게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그래, 그래! 넌 바쁘니까, 우리 걱정하지 마!” 소해덕이 친절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리고 소정인은 소동이 천천히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이후로 북극 디자인 작업실은 망하겠지?”소정인의 질문에 진연은 차갑게 말했다.
연단 앞으로 GK의 대리인 하영이 무대 뒤에서 걸어 나왔다.오늘 기자회견의 주인공들이 한명씩 등장하자, 전체 회장이 조용해졌다.진석도 도착했다. 그는 오늘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 금테 안경을 썼는데 그의 스마트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을 돋보이게 했다.소동은 긴장했는지 깊은 숨을 들이켰다. 오늘, 소동은 진석 앞에서 과거의 수치를 씻고 진석이 후회하게 만들 수 있었다.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서 소동이 진석과 소희에 의해 쫓겨난 그날부터, 소동은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비로소 소동은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곧 소동은 진석이 직접 자기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며 본인이 잘못했다고 인정할 것이었다. 그리고 소동이 진석을 용서할지 여부는 진석의 진심에 달려 있었다. 소동은 진석과 소희가 자신에게 준 수치를 배로 되돌려줄 것이라 다짐했다. 생각만 해도 설레인 소동은 잠시라도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았고, 흥분의 빛이 눈에 가득 차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하지만 소동의 미소는 완전히 펼쳐지기도 전에 굳어졌는데, 놀랍게도 진석 뒤에서 소희를 발견했다.북극 디자인 작업실의 단순한 디자이너에 불과한 소희가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왜 온건지 의아해했다.소동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진석이 소희와 소동 사이를 알고 화해시키려고 온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GK에는 하영과 기획부 매니저가 있었고, 북극에서 온 사람은 진석과 강솔이였다. 하지만 소희는 중앙에 앉았고, 양쪽으로는 진석과 하영이 앉았다. 이러한 자리 배치에 모두가 놀라며, 소희의 정체에 대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소씨 가족들도 당황했으며, 소해덕은 소정인에게 소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소정인도 몰랐다고 말하며, 진연은 더욱 미간을 좁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쟤가 왜 여기에 왔지?”소동은 소희가 진석과 하영 사이에 앉은 것을 보고, 마음속에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무대에 앉은 다섯 사람 중에 King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G
회장 안은 술렁거리며 놀라움과 혼란이 가득했다.이윽고 소희가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안녕하세요, 제가 King입니다!”전체 회장이 잠시 조용해진 후, 약 5초 뒤 플래시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소씨 가족들은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소동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소동은 진연의 손을 꽉 잡으며 당황해서 말했다. “그럴 수 없어! 이럴 순 없다고!”진연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무대 위의 소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마음이 가라앉았다.‘소희가 King이라니?’‘어떻게 그녀가 King일 수 있는 거지?’‘King은 이미 오래전에 유명해진 거 아닌가?’‘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소시연은 흥분된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보았고, 돌아서서 소씨 가족들의 표정을 보며 기뻐했다.옆에 앉은 하순희도 놀라 말을 잇지 못했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시연에게 물었다.“시연아, 이게 사실이야? 소희가, 소희가 King이야?”시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소희가 직접 인정했어요. 진석 사장님과 GK의 하영 상무님이 모두 여기 있으니, 거짓일 리가 없죠.”“어머머!” 하순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탄식했다. “이건 정말 놀랍네!”소희가 King이라면, 소동이 소씨 가족 모임에서 King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만약 소동이 정말로 King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그런 꼼수를 쓰지 못했을 것이었다. 현재 소동의 가족은 확실히 충격에 빠져 있었다.소동의 조금의 성과에도 그들 보물처럼 대했는데, 그들이 버린 딸이 진정한 보물이었다니!하순희는 이 모든 것이 너무 황당하고 이상하다고 느끼며 시연에게 물었다. “너와 네 동생은 이 사실을 일찍 알고 있었던 거야?”“네, 혹시 기억나요? 설백현에게 속았던 일. 사실 그때 소희가 도와줬고, 그때 처음으로 소희가 King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하순희는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탄식했다. 비록 몇 가지 단서가 있긴 했지만, 그들 누구도 King에 대해 생각하지
회장은 놀라움과 혼란으로 가득 찼고 하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양쪽의 주장이 다를 때, 분명 한 쪽이 거짓말을 하는 거죠!”질문을 한 기자가 다시 물었다. “King 씨, 자신의 디자인이 표절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왜 바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나요?”소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는 예능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아서, 며칠 전 누군가가 소동의 작품을 저에게 보내준 후에야 제 디자인이 유출됐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그리고 알았을 때에는 GK의 F/W 컬렉션이 이미 발표되고 있었죠.”소씨 가족들의 표정은 계속 변했고, 이내 모두의 시선이 소동에게 집중되었다.기자는 곧바로 게스트석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오늘 소동 씨도 여기 계시네요. King의 말을 듣고, 소동 씨는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순식간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소동에게 집중되었다. 그러자 소동은 손발이 차가워졌고, 얼굴이 창백해졌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표절하지 않았습니다!”회장은 다시 한번 시끌벅적해졌고, 모든 시선이 소희와 소동 사이를 오갔다.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소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에게 기회를 줄게요. 여기 모두에게 솔직히 말해보세요. 제 디자인 초안을 본 적이 있나요?”소동은 과거 자신이 소희의 사무실에서 디자인 초안을 복사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때 사무실에 카메라가 없다고 확신했었기에, 소동은 행동에 나섰었다.‘그래, 카메라가 없었고, 그건 벌써 두 달 전 일이야. 그리고 소희에게는 증거가 없을 것이 뻔해.’소동은 주먹을 꽉 쥐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소희와 맞서며 말했다. “저는 본 적 없어요. 제가 ‘여신의 옷장'에서 선보인 모든 패션 디자인은 제가 오리지널이에요. 당신이 내 꺼를 표절한 거겠죠!”소동의 당당한 태도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며 다시 소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희가 그들에게 합리적인 이유를 대길 바라고 있었다.진연도 자신을 진정시키며, 얼굴빛이 좋지 않은 소정인에게 말했다.“우리는 소동을 믿어야 해요. 분
처음에 소동은 소희의 컴퓨터에서 자료를 찾고 있었다. 자료를 찾은 후에도 그녀는 컴퓨터를 끄지 않고 계속 검색을 이어갔다. 곧 소희가 디자인한 파일을 찾아내자, 소동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나타났다. 잠시 망설이던 소동은 일어나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그리고 현장에 있는 모두가 소동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감시 카메라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소동은 방 안에 감시 장치가 없음을 깨닫고 밖을 살펴본 후, 소희의 디자인 파일을 빠르게 인쇄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은 모두 카메라에 완벽하게 포착되었다. 소동의 놀라는 모습, 망설이는 모습, 그리고 나중의 긴장과 흥분이 어린 모든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찍혔다.이 비디오에 현장은 순식간에 들썩거렸고, 진석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소동 씨는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서 일할 때, 표절로 해고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동이 어리다는 점을 고려해, 우리는 대외에 알리지 않았죠.”“소동 씨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또 이런 일을 벌였네요.”“King이 소동에 의해 지속적으로 네티즌의 공격을 받았지만, 소동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증거를 드러내지 않았던 겁니다.”“하지만 불행히도, 결국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죠.”진석의 말에 모두가 놀랐고, 경멸과 혐오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소동을 바라보았다.소동은 표절은 물론, 남의 디자인으로 명성과 이익을 취하고, 거짓말까지 일삼았다.거기다가 자신이 아니라 되려 원작자에게 뒤집어씌웠고 네티즌들의 공격을 부추기다니, 이는 정말 뻔뻔스러운 행동이었다.그러자 기자들이 소동에게 몰려들었다.“소동 씨,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변명할 것이 있나요?”“방금 맹세하셨는데, 뭘 걸고 하신 맹세인가요? 인과응보라는 단어를 모르시나요?”“팬들을 부추겨 King을 공격하게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나요?”“방금 스타쉽 매니지먼트와 ‘여신의 옷장’ 프로그램은 소동 씨가 표절을 한 것을 알고 있었나요? 그들은 당신의 표절을 알고도 묵인한 건
무대 뒤로 돌아온 강솔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소동의 당황한 얼굴을 보는 건 정말 짜릿해!”“너는 짜릿할지 몰라도, 소희는 좀 우울할 거야.” 진석이 무심하게 웃으며 말하자, 소희는 큰 숨을 들이켜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디자이너일 뿐이야. 비록 밝혀졌다 해도, 큰 관심을 받을 것 같진 않아.”진석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네 SNS 팔로워가 천만 명을 넘었다는 걸 상기시켜 줄게!”소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내 팔로워들은 내 디자인을 좋아하는 거지, 팬클럽이랑은 달라. 다들 다 이성적이야.”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두고 보자고!……임구택은 사무실에서 진우행과 회사의 새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던 중, 소찬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삼촌, 오늘 GK 기자회견 생중계 보셨어요?” 찬호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들렸고 구택은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아니, 무슨 일이야?”“지금 당장 보내드릴게요, 지금 바로 보셔야 해요!”찬호가 서둘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곧이어 구택은 찬호가 보낸 비디오를 봤는데, 그것은 GK 기자회견 현장의 영상이었고, GK의 하영과 북극의 진석도 참석했다. 그리고 소희가 가장 가운데 앉아 있자 구택은 놀란 표정으로 속으로 생각했다. ‘소희도 갔어? 그래서 오늘 일이 있다고 했구나.'이후 기자가 하영에게 왜 공지에서 King이 나타날 거라고 했는데, 왜 현장에 오지 않았냐고 묻자, 웃으며 대답했다.[이미 왔는걸요!]그러자 구택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고 소희가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King입니다!”구택은 너무나 놀랐는지 멍해 있었다.“……!”구택은 더 이상 계속 볼 생각이 없는지 뒤에 소희와 소동의 대치 영상은 거의 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옆에 놓인 재킷을 집어들고 우행에게 말했다.“먼저 혼자 보고 있어요. 나 잠깐 나갔다 올게.”“알겠습니다, 사장님. 얼른 가세요.”구택은 임씨 그룹 빌딩을 떠나 차를 몰고 G
임구택이 차에서 내려 큰 걸음으로 소희에게 다가오는 동안, 몇 사람이 함께 후문으로 나왔다. 그런데 뜻밖인 것은 또 다른 팬들이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소희가 나타나자, 한 팬이 팔을 들어 올리며“King!”이라고 외치자 다른 팬들도 빠르게 몰려들었다.구택은 자신의 정장 외투로 소희를 보호하며 차쪽으로 빠르게 걸어갔고, 보안요원들도 팬들을 흩어지게 하기 위해 모두 몰려들었다. 소희는 흥분과 기쁨으로 가득 찬 팬들의 얼굴을 보며 갑자기 멈춰 서서 구택을 한 번 쳐다보고는 팬들 쪽으로 다가갔다.“King!”“King!”팬들한테 소희가 다가오자, 일제히 큰 소리로 외쳤는데, 그 소리는 귀가 멍할 정도였다.구택은 당황한 듯 소희를 바라보았지만, 곧 그녀 옆으로 다가가 소희를 보호했다.소희가 손을 들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팬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King의 팬이었다. 소희의 작품이 처음으로 국제 패션쇼에 등장했을 때부터, 첫 상을 받아 국민들에게 자랑스러웠을 때부터, 소희의 실력으로 C 국이 예술을 모른다는 외국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줬을 때부터 소희를 좋아해준 사람들이었다.이윽고 소희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오랫동안 저는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늘 여러분들이 저를 묵묵히 지지해 준 것을 알고 있어요.”“특히 이번에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 해준 일들, 모두 봤고요. 고마워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앞줄에 서 있던 한 여자아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King, 언니는 이렇게 예쁜데 왜 예전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어요?”그러자 소희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저는 그저 평범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을 뿐, 공인이나 스타가 되고 싶지는 않았고요.”“그래서 오늘은 첫째로, 여러분들의 지지에 감사하고 싶고, 두 번째로는, 앞으로도 저를 모른 척해주면서 제 디자인 작품만 좋아해 줬으면 해는데, 괜찮
소해덕과 그의 가족은 회장에서 초라하게 나왔다. 소해덕은 아직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소희가 King이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소해덕은 방 안을 이리저리 몇 바퀴 돌더니 물었다.“소정인, 어디 있어?”큰아들인 소정춘이 서둘러 대답했다.“정인이는 아마 뒤에서 진연과 소동이를 챙기고 있을 거예요.”그러자 소해덕이 급하게 말했다.“소동을 챙길 게 뭐가 있다고 챙겨? 전화해, 빨리 전화해!”“네, 알겠어요.”소정춘은 곧바로 소정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참 지나자 겨우 연결되었다.“정인아, 아버지가 너를 찾고 계셔.”소해덕은 아예 전화를 낚아채며 물었다. “정인아, 넌 지금 어디에 있어?”해덕의 물음에 소정인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동이가 쓰러졌는데, 기자가 너무 많아서 집으로 데려왔어요.”“소동은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당장 소희를 데리고 집에 와.”“그리고 우리 소씨 가문의 일원이라고 발표하고 환영식을 치러야 해!” 소해덕이 급하게 말하자 하순희는 옆에서 비웃으며 말했다.“지금은 이미 늦었어요. 아버님, 저번 축하 파티때 형님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소희를 양녀로 말했잖아요. 잊으셨어요?”하순희의 말에 소해덕은 잠시 멈칫하며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고, 장연경은 무심히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소희를 양녀라고 하더니, 소희가 King인 걸 알고 나서 바로 말을 바꾸면, 저희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통화를 하고 있던 소정인도 장연경의 말을 듣고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잠시 기다리는 게 어떨까요?”“이게 다 너희 두 사람 때문이야. 소희가 도경수의 제자라는 중요한 사실조차 몰랐어.”“다른 사람의 딸은 보물처럼 여기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 집안의 딸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어!”“내가 얼마나 많이 말했는데, 소희를 집으로 데려와서 잘 대해야 한다고, 너희는 듣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았지.”“그리고 이제 이런 상황이 되어서야 이 모든 것을 수습해야 하니 정말 기가 차는구나!”“진연이
아심은 표정 변함없이 물을 따라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눈치챘어?”승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말했다.“응. 원래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피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어.”그는 아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내 개인 계좌에 정아현 씨가 보낸 돈이 들어왔더라. 그래서 아현 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어.”“아현 씨가 그러더라고. 네가 부탁한 거라고, 네가 소개해 준 고객에 대한 커미션이라고 말이야.”“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됐어.”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너는 정말로 남에게 빚지지 않으려는 사람이구나. 내게 여자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 것도, 내가 병원에서 서명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지?”“그리고, 그때 이미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내 곁에 있어 주며 힘든 시기를 함께해준 거고.”“또한 예전에 네가 아플 때 내가 곁을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고.”“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너는 일부러 강성을 떠났지.”“혹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을까 봐,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더라도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아심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해 나도 아쉬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넌 매일 할머니와 통화했잖아. 할머니는 정말 기뻐하셨고, 가시는 길도 평온하셨어.”“그렇다면 다행이네.”아심은 승현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별할 때 얽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현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아심아, 정말로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어?”아심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사실 중간에 너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해 볼까 생각도 했어. 하지만 미안해, 그건 내겐 무리였어.”승현이 물었다.“그 사람 때문이야?”아심은 솔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래.”승현의
승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심을 따라가며 계속 불렀다.“아심아!”아심은 걸음을 멈추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더 이상 묘지까지는 가지 않을 거야. 너 대신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려줘.”승현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해. 우리 엄마 성격이 원래 그렇고, 내 동생도 엄마가 너무 편애해서 버릇이 없거든. 그들이 한 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승현은 아심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며칠 동안 나와 함께 해주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 집에 가서 푹 쉬어. 며칠 지나고 나면 다시 보자.”아심은 답했다.“그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집에 도착하면 알려줘.”“들어가 봐.”아심은 주차된 곳으로 걸어가 차를 몰고 자리를 떠났다.그날 밤, 아심은 승현과 통화를 하며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 모두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다음 날, 아심은 출근했고, 한 주 동안 밀려 있던 업무가 그녀를 압도했다. 비서인 정아현이 서류 한 묶음을 들고 와서 서명을 부탁하며 조심스레 물었다.“사장님, 요 며칠은 지승현 사장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으시나 봐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앞으로 며칠 동안 지씨 집안에 관한 동향, 특히 주식 쪽에 신경 좀 써줘요.”아현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사장님이 여전히 신경 쓰시는 줄 알았어요. 사실 전에도 사장님이...”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웃으며 말했다.“어쨌든, 제가 꼼꼼히 살펴볼게요!”“그래, 가서 일 봐요.” 아심은 미소 지었다.그 후 이틀 동안 아심은 쌓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고, 승현도 여러 가지 일에 얽혀 있었다. 두 사람은 중간에 점심을 함께 먹은 것 외에는 별다른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셋째 날 오후, 아심은 마침내 모든 업무를 끝냈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아현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사장님, 뉴스 보셨어요? 지씨 집안의 주식이 크게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지승현의 눈 아래는 푸른 기운이 돌았고,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어머니 권수영을 깊이 응시했다. 권수영은 승현의 눈빛에 약간 겁먹은 듯 물었다.“그게 무슨 눈빛이니?”승현은 냉소하며 말했다.“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지수철이 태어난 순간부터 하루하루 그 애만 편애하더니, 지금은 핑계를 대며 모든 재산을 작은아들에게 물려주려는 거잖아요!”권수영은 그의 말을 듣고 당황한 듯 눈빛이 흔들렸지만 변명했다.“너와 수철은 모두 내 아들인데 내가 어찌 편애하겠니? 네가 굳이 그딴 업계 종사하는 여자를 여자친구로 사귀니, 내가 실망할 수밖에 없지 않니!”승현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다면 엄마 말대로 모든 재산을 수철에게 넘기세요!”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서 걸어 나갔다. 권수영은 분노로 씩씩거렸고,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정말 내가 못 할 줄 아나? 그 천한 여자랑 결혼이라도 하면, 너도 당장 집에서 내쫓아버릴 거야!”“과연 이 집안 도련님의 자리를 잃으면 그 여자가 여전히 널 곁에 둘지 보자고!”승현은 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권수영뿐만 아니라, 다른 지씨 가문의 사람들도 모두 아심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아심이 김후연의 유산 대부분을 상속받게 된 후로 지씨 가문의 첫째와 둘째 집안 식구들, 심지어 승현의 할아버지까지도 아심의 배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모두가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김후연의 유산이 아심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었다.지아윤은 기회를 보아 수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 아심 쪽을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저 여자 보여?”수철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봤어. 근데 왜?”아윤은 말했다.“저 여자가 네 집 재산에 눈독 들이고 네 형에게 달라붙어서 돈을 빼앗아 가려고 해. 네 엄마가 지금 무척 화가 났거든.”“가서 몇 마디 쏘아붙이고, 장례식장에서 쫓아내 버려!”수
지승현은 서둘러 말했다.“아주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앞으로 우린 가족이나 다름없잖아요.”사실 양세민은 김후연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김후연이 없으니, 굳이 자기를 계속 고용할 이유도 없고, 집마저도 팔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승현의 말에 그녀는 비로소 안심되었다.“도련님, 저에게 이 집까지 주실 필요 없어요. 그냥 여기 머물 수 있게만 해주시면 돼요. 급여도 필요 없어요.”“나중에 도련님이 오실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게요.” 양세민이 감격해 말하자 승현이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준비할게요.”양세민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강아심은 오후 내내 승현과 함께 김후연의 유품을 정리해 주었다.김후연은 승현이 어렸을 때 입었던 옷들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받았던 상장, 심지어 유치원에서 놀이를 하며 받은 작은 플라스틱 메달까지도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다.승현은 그 물건들을 바라보다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심은 그저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다....그 후 이틀 동안 아심은 승현의 곁에 머물며 김후연의 장례 준비를 도왔다. 아심은 나서지 않고 조용히 승현의 옆에서 함께 있어 주기만 했다.셋째 날, 김후연의 장례식이 열렸다. 아심은 조문객으로 참석해 마지막으로 꽃 한 다발을 헌화했다.이날 많은 사람이 김후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아심은 그곳에서 승현의 할아버지가 유가족 자리에서 오랜 시간 할머니의 영정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아심은 그가 지금 후회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아내와 함께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승현은 곧바로 그의 어머니 권수영에게 불려 나갔다. 권수영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일부러 물었다.“아까 네 옆에 있던 그 여자는 누구니?”승현이 대답했다.“제 여자친구예
한 시간 후.강아심은 고개를 숙여 오래된 마을을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강성으로 향해 차를 몰았다.강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아심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김후연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차를 밖에 주차하고, 조용한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부터 김후연 할머니 집 마당에 피어난 등나무꽃이 보였다. 활짝 핀 꽃들에서 달콤한 향기가 골목 가득 퍼져 있었다.꽃들은 여전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꽃도 때맞춰 피어 있었지만 이제 그 꽃을 돌보던 주인은 더 이상 없었다.아심은 나무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가며 문턱을 넘을 때, 지난번에 김후연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해졌다.마당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해당화 꽃잎이 바닥을 가득 메웠고, 옆의 빨랫줄에는 예전에 아심이 김후연에게 사준 숄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지승현은 마당에 앉아 있었다. 김후연 할머니가 늘 앉던 등나무 의자에 앉은 그는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그는 초췌한 얼굴에 눈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아심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반쯤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왔어.”“힘내.”승현의 눈이 더욱 붉어지며 목이 메어 조용히 말했다.“할머니가 가셨어. 날 가장 아껴 주신 분이 영원히 떠나셨어.”아심은 그의 슬픔을 함께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할머니는 네 곁을 떠난 게 아니야. 다른 모습으로 곁에 남아 계시는 거야.”“널 곁을 스치는 바람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그 모든 게 할머니가 돌아와 널 지켜보고 계신 걸지도 몰라.”승현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거의 간절하게 이마에 가져다 댔다.“아심아, 이제 나에겐 너밖에 없어.”아심은 낮게 대답했다.“내가 곁에 있을게.”잠시 후, 양세민 아주머니가 나와 아심에게 말했다.“할머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도련님께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세요.
도도희는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에게 다시 인연이 있기를 바랄게.”도도희의 말뜻을 짐작한 아심은 미소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난 가볼게. 수업 들어가요!”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그녀가 짐을 든 걸 보고 창가에 머리를 내밀며 작별 인사를 했다.“언니!”“아심 언니, 다시 돌아올 거예요?”“누나, 우리 모두 누나를 그리워할 거예요!”아심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강성에 있는 대학에 와야 해!”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아심은 작별 인사를 길게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더 머물지 않고 도도희에게 인사를 남긴 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짐을 차에 싣고, 그녀는 자신의 차를 몰아 저택을 떠났다....강시언은 2층으로 올라가 그 오래된 창고 방에 들어갔다. 그의 키 큰 몸은 벽에 기대어 앉아 밖의 흐릿하고 어두운 날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한참 후, 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시언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아심, 너 나한테 복수하는 거냐?”이 시간 동안 그녀의 애매한 태도와 고통스러운 모습이 모두 자신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시언은 처음으로 차갑게 아심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불렀고, 그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다. 그간의 온기와 친밀함이 마치 빗속의 안개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텅 빈 회색만이 남아 있었다.아심은 운전 중이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눈을 살짝 깜빡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시언의 목소리는 어두웠다.“넌 모든 걸 계산했겠지만, 네 마음은 계산해 봤냐?”아심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본인이 분명히 말씀해 주셨잖아요. 특수 요원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시언이 말했다.“그럼 네가 내게 했던 말 중 진심이 뭐야?”아심은 천천히 대답했다.[당신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당신에
다음 날.강아심은 전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날이 밝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방 안은 회색빛으로 어두웠다. 그녀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귀에 대고 받았다. “여보세요?”[아심아!] 전화기 너머에서 지승현의 슬픔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그 말에 아심은 눈을 번쩍 뜨며 순식간에 잠이 깼다. 몸은 깨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 온화하던 김후연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심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고 아심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그 후, 별장의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급한 일이 생겨 강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배웅은 사양하니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고 했다.채팅방에서 모두가 놀라며 아쉬워했고,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나중에 강성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몇 개의 메시지를 답장하고 난 후 그녀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집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머물렀던 방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보고, 문을 닫고 나섰다. 계단을 내려올 때 마침 강시언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를 보고 아심을 찾으려 올라가던 중이었다.아심의 손에 들린 여행 가방을 본 그는 마음이 답답해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떠나는 거야?”아심이 대답했다. “강성에 일이 좀 생겨서요.”시언은 그녀를 주시하며 물었다. “어젯밤 일 때문이야? 아직도 화난 거야?”“아니요!” 아심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아심은 짐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시언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아심!”아심은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 나가길 기다렸다.“안 가면 안 될까?” 시언은 깊은 눈빛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마음 깊은 곳에서 힘겹게 끌어낸 말처럼, 간절하게 이어졌다. “안 가면, 안 돼?”아심은 가방 손잡이를 꽉 쥐고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강시언이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도도희가 강아심의 손을 놓으며 웃으며 말했다. “됐어,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 어서 돌아가서 쉬어.”이에 아심이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쉬세요.”“그래!”세 사람은 함께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길목에서 헤어졌다. 시언과 아심은 각자 사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별장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도우미는 이미 퇴근해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시언이 말했다. “저녁을 못 먹었으니, 뭐라도 좀 준비해 줄게.”“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심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피곤해서 입맛도 없어요. 그냥 올라가서 자고 싶어요.”“그럼 그렇게 해. 만약 밤에 배고프면 언제든 전화해.”시언의 말투는 다정했고, 아심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걸어갔다. 시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 달라 보이는 듯해 말문을 열었다.“이번 일, 나도 미리 알지 못했어.”아심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알아.”“하지만.” 시언의 목소리는 밤처럼 깊고 잔잔했다. “시야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치챘어. 몸을 감추려고 일부러 옷을 더 입고, 변성기를 썼지만, 그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차렸지.”“걔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몰라서 모른 척했어.”아심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상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묶였을 때 시언이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던 점이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또한, 그 용병들이 두 사람에게 밧줄을 묶을 때 시언의 상처 부위를 피해서 묶었다는 것도 이상했다.다만 그 당시 아심은 마음이 급하고 혼란스러워서, 시언이 자신을 신경 써서 움직이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난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행이죠. 진짜 노도의 부하들이 사람을 사서 복수하려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심은 얕게 웃으며 다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어가던 그녀는 멈춰
아심은 말을 마치고 바로 물었다.“조하루는 어떻게 됐나요?”시야는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무사히 집에 데려다줬어요. 집이 꽤 가난해서 할아버지가 아프신데도 병원에 갈 돈이 없다고 해서 저희가 그 집에 돈을 좀 두고 왔어요.”“놀라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루 군에게도 여러분이 무사하다는 걸 전했습니다.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했어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천만에요! 예전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이제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시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농담 그만하고, 빨리 떠나!” 시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야는 아심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아심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진언 님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부 제 생각이라서, 절대 진언 님을 탓하지 마세요!”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탓 안 해요. 장난이었다면서요?”시야는 아심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번쩍이자 급히 사라졌다.잠시 후, 아까까지 살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오두막은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의 고요하고 텅 빈 분위기로 돌아갔다. 방 한가운데의 불만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시언은 아심 앞에 앉아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놀랐어?”아심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모두 무사하니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죠?”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야 대신 사과할게.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아심은 방금 전의 격렬한 감정이 갑자기 멈추자 머릿속이 멍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아니요, 물어볼 건 없어요. 다 알겠으니 우리 내려가요. 벌써 늦었어요. 도도희 이모가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방금도 전화했었어요.”시언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지금 내려가자.”두 사람은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