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심문정의 말에 무언가 숨겨진 뜻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자 서인이 소희에게 물었다. “임유진은 어디 있어?”“밖에 있어.” 소희는 말을 잠시 멈추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임구택도, 나랑 함께 왔어!”서인은 소희를 흘끗 쳐다보고 뒷마당으로 걸어갔다. “나 따라와.”소희는 서인의 뒤를 따라 걸었고 문정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이문에게 물었다.“서인 사장님이 소희 씨를 좋아해?”이문은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소희를 좋아해.”이문의 대답에 문정은 얼굴에 시샘 섞인 빛을 띠고 뾰로통하게 말했다. “그렇겠지, 소희 씨가 나보다 예쁘니까!”이문은 서둘러 말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소희가 우리한테 많은 도움을 줬어. 소희 씨 덕분에 우리는 강성에서 살 수 있었지. 우리 모두 소희 씨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생각해!”문정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럼 나하고 소희 중 누가 더 예뻐?”이문은 킥킥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네가 더 예쁘지!”문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뒷마당을 힐끗 바라보았지만, 나무 그림자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뒷마당에서서인은 소희에게 앉으라고 하며 물었다. “언제부터 임구택과 다시 사귀게 된 거야?”소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조금 됐어.”서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희를 말없이 바라보았지만, 서인의 차가운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소희는 구석에 있는 야옹이를 보며 벽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야옹이가 자신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안전하다는 기분이 든 후에야 소희는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서인아, 제 눈이 낫게 된 건 구택 씨 덕분이야.”“음?” 서인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소희는 구택이 석화바이오회사를 인수하고 소희의 눈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연구하고 시험했던 일을 모두 말했다. 서인은 조용히 듣고 있었고, 소희가 말을 마치자 미세하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구택에게 감동받아 다시 사귀게 된 거야?”“
심문정은 서인을 바라보며 배려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좀 덥고 답답하니까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세요.”“괜찮아요, 집 안이 더 답답하니까!” 서인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문정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얘기하세요, 옷이 마르면 제가 가져올게요!”문정은 빨랫줄 쪽으로 걸어가 이문의 옷을 걷어들고는 뒤돌아보며 웃으며 말했다. “서인 사장님과 오현빈 씨 옷도 같이 걷어둘게요.”“괜찮아요, 그냥 저기 말려두세요!” 서인이 말하자 문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한테도 그렇게 예의 차리시나요?”문정은 옷을 한 무더기 안고 떠나자 소희는 문정의 요염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인에게 물었다. “문정 씨 정말 이문 씨하고 사귀는 거 맞아?”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의 두 달 됐어.”소희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문정 씨가 너무 열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서인이 물었다. “임유진도 사람들에게 열정적이고, 오현빈, 이문 같은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잖아. 왜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지 마.”소희가 말했다. “여자의 직감을 얕보지 마!”“너희가 너무 많이 생각하는 거야!” 서인은 무관심하다는 듯 말했다. “이문과 문정은 사이가 좋아. 두 사람은 추석에 문정 씨 집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어. 유진에게 전해,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문정 씨랑 이문 씨 감정이 어떻든, 유진이 애써 키운 꽃을 뜯어낸 건 문정이 잘못한 거야. 문정 씨 때문에 유진을 그렇게 꾸짖었잖아. 그럼 유진이는 어떻게 생각해야 해?” 소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이 화를 내니까 현빈이 유진에게 월급을 지급하라고 하다니, 이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잖아.”서인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말했다. “나는 유진에게 화를 낸 게 아니야, 유진이가 억울한 걸 알지만 그날 이문 앞에서는 유진의 편을 들 수 없었어. 오늘 유진이 오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나
“알았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나는 신경 쓰지 않을게!” 서인은 한숨을 쉬었다.“한숨 쉬지 마요. 늙은이 같아요!” 임유진은 서인을 흘깃 보며, 얼굴에는 서서히 미소가 돌아왔다.이때 임구택이 돌아왔고, 서인을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네요!”“임구택 씨, 앉으세요!” 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어요.”유진은 서인의 옷을 잡아당겨 서인이 구택과 대화를 이어 나가게 하지 않게 하려고 했다. 이에 구택은 평소처럼 침착하고 차분한 눈빛으로 말했다. “소희와 결혼하게 되면, 서인 사장님도 결혼식에 꼭 초대하게 될 텐데 어떻게 만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서인은 미소를 지으며 두 잔의 술을 따랐고 한잔을 구택에게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이 술을 마시고 나면, 과거의 일은 잊기로 해요. 구택 씨가 소희를 소중히 여겨주길 바라요.”“물론이죠!” 구택은 술잔을 들어 서인과 건배한 뒤 한 모금에 마셨고 유진은 몰래 서인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인 사장님 정말 멋져요!”구택은 유진의 작은 제스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유진이도 여기 있어서 고생이 많네요!”서인은 활기차게 말했다. “소희를 놓고 본다면 유진이도 내 조카뻘이고 내 사람이니 굳이 그렇게 예의 차리실 필요는 없어요!”“푸흡!” 유진은 음료 뿜어내며 빨리 티슈로 얼굴을 닦았다.“왜 그렇게 크게 놀라?” 서인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잘못 말한 건 아니잖아!”유진은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냥 갑자기 저를 한 세대 눌러버려서 놀랐어요.”원래 서인이 말한 ‘내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이런 의미였구나!구택은 거실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희는 어디 있어요?”“소희는 위층에 올라갔어요. 이제 금방 내려올 거예요!” 서인이 대답했다.소희는 위층으로 올라가 서인의 방으로 직행했는데 그곳에서는 심문정이 서인의 침대에 앉아 그의 옷을 개고 있었다.“문정 씨!” 소희가
소희는 옷을 다시 들어 맡아보았는데 향기가 매우 진해서, 단순히 묻은 것이 아니라 심문정이 일부러 자신의 향수를 서인의 옷에 뿌렸을 가능성이 높았다.확실히 임유진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고 문정이 꼬시려는 대상은 서인이었다.문정은 이문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서인에게 접근했지만, 행동도 매우 조심스러워 쉽게 실수를 잡기 어려웠다.예를 들어 이 옷의 향기처럼, 만약 소희가 문정에게 따졌다면, 문정은 자신의 향수가 배었다고 말할 것이고, 이문이나 오현빈의 옷에서도 향기가 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진짜 교활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소희는 옷을 가져와 발코니에 걸어두고, 1층으로 내려왔다. 부엌을 지나며 안을 들여다보니, 문정이 이문과 붙어서 웃고 떠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 일반 연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실로 가서 구택을 찾았다. 구택은 서인과 술을 마시고 있었고, 소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화기애애하자 마음이 놓였다. 구택이 소희를 보자 소희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히고는 그녀에게 그릇과 물을 건네며 세심하게 챙겨주었다.유진은 삼촌이 소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가 얼마나 깊은지는 천천히 깨달았다. 유진은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남자친구를 사귈 때, 삼촌을 기준으로 찾아야겠어요.”서인이 갑자기 말했다. “지난주에 가게에 온 그 남학생, 너 좋아하는 거 아냐?”“그 남학생이 여기까지 쫓아왔나요?” 소희가 궁금해하며 묻자 유진은 약간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저는 그를 좋아하지 않아요.”유진의 말에 서인이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굉장히 밝고, 예의 바르고, 집안도 좋아 보이더라.”“이름이 뭐지?” 구택이 묻자 유진이 대답했다. “여진구, 삼촌도 아마 아실 거예요.”구택이 이름을 떠올리며 말했다. “장시원의 조카인가?”“네, 맞아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소희가 물었다. “시원에게 그렇게 큰 조카가 있었어?”구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야기가 좀 복
임구택은 손목으로 이마를 받치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냉정하게 말했다. “서인과 이문의 관계를 깨뜨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서인에게 암시를 주려는 거겠지.”“그게 분명해!” 소희는 눈빛이 서늘하게 말했다. “심문정이 진짜로 쫓고 있는 사람은 서인이에요.”구택은 농담처럼 말했다. “상당히 야심 찬데.”“문정의 행동은 은밀해서, 서인도 문정이 그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거예요. 이번 주에 가게에 자주 가서 문정이 서인을 유혹하는 증거를 잡을 거예요.”“증거를 잡아서 어떻게 할 건데?” 구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서인에게 보여줄 거야, 아니면 이문에게? 이 일이 터지면 서인과 이문의 관계는 끝날 거야!”소희가 고민이 가득해서 말했다. “서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문은 조금 거칠긴 해도 분별력이 있어요. 이문이 서인을 원망할까?”“사랑하는 여자, 문정을 소중히 여긴다면, 서인이 의도를 했든 안 했든, 이문은 서인에게 불만을 가질 거야. 그들이 형제처럼 가까웠다 해도 말이야.” 구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만약 누군가 너를 빼앗으려고 한다면,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나는 어떻게 할 것 같아?”소희는 얼굴이 붉어지며 구택을 슬쩍 보고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그럼 어떡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문정 씨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나요?”구택이 말했다.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내가 처리할게. 필요하면 이문에게 연락할게.”소희가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처리할 건데?”“내가 어떻게 할지 걱정하지 마. 최종적으로 문정을 내쫓고 서인과 이문의 관계를 지키면 돼. 그리고 이문의 협조가 필요하면 그때 말할게.”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친구들을 시켜 문정을 유혹하려는 건 아니죠?”구택은 비웃으며 대답했다. “내 친구들을 그렇게 괴롭히지 마. 장시원이나 조백림이 그런 여자에게 손을 대겠어? 걔네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아.”소희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당신에게 맡길게요
임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려가!”소희는 눈에 웃음을 담고, 더 꼭 안았다. “안 내려갈 거야!”“안 내려가면 넌 내 사람이야!” 구택은 미소 지었고 소희는 그의 어깨에 기대며, 눈빛은 부드러웠고, 섬세한 얼굴에는 얕고 늑장 부리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라고 해도 안 내려갈 거야!”구택은 그녀를 안고 직접 별장 안으로 걸어갔다.“그럼 내가 갖지!”소희는 구택의 의도를 감지하고, 약간 놀라며 당장 반항했다. “임구택, 나 아까 한 말 후회했으니까 나 내려갈 거야!”구택은 소희의 가녀린 허리를 꽉 잡고, 얇은 입술로 웃으며 말했다.“늦었어!”다행히 오영애 아주머니는 뒤 정원에서 자신이 기른 채소를 따고 있어서 별장 안에 없었다. 그랬기에 구택에 안긴 채로 위층으로 올라갈 때 소희는 민망한 상황을 피했다.침실에 들어서자 구택은 문을 닫고, 큰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며 둘은 함께 침대에 누웠다.커튼이 자동으로 닫히자 방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구택은 소희 위에 반쯤 누워,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부드럽게 키스했다.소희는 눈을 반쯤 감고 구택의 속도를 따라가며, 그가 주는 안정감에 자신을 맡겼다.“우리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여기로 이사 오는 건 어때?” 구택은 소희에게 계속 키스하며, 목소리는 허스키하였다. “매일 아침 함께 조깅하고, 아침을 먹고, 나는 너 출근할 때 데려다 줄 거야.”“저녁에 여기로 돌아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고 네가 공포 영화를 보고 싶다면, 나도 너와 함께 볼 수 있어.”“아이는 한 세 명 정도 낳고 발코니에 서 있으면, 애들이 설희, 데이비드와 함께 잔디밭에서 노는 걸 볼 수 있을 거야.”소희는 구택이 그리는 미래의 아름다운 장면에 매혹되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샤워 후, 소희는 침대에 누워 곧 잠들었다. 구택은 만족스럽게 소희를 잠시 안았다가, 소희가 잠들자 잠옷의 끈을 매고 일어나 침대 옆의 버튼을 눌렀고 곧이어 커튼이 소리 없이 열렸다.오후 햇살
임구택은 침대 옆에 앉아 소희가 깊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에, 숨결은 고르며, 보기에도 순하고 부드럽게 보였다.소희가 이렇게 오랫동안 잠에서 깨지 않는 것을 보며, 구택은 소희의 경계심이 얼마나 낮은지 생각했다. 소희가 지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구택이 곁에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잠든 것인지.구택은 소희의 부드러운 볼에 입맞춤을 하고, 소희를 깨우지 않으려 다시 서재로 돌아갔다.해가 지고도 소희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자, 구택은 소희를 깨우지 않을 수 없었다. “소희야? 일어나!”“소희야!”소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고, 졸린 눈으로 낮게 말했다. “조깅하러 가? 날이 밝았어?”구택은 소희의 졸린 모습을 보며 마음이 녹아내렸고 소희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키스했다. 소희는 마침내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는 구택의 품에 기댔다. “나 오후 내내 잤어? 왜 일찍 깨우지 않았어?”“잘 자고 싶으면 자면 돼, 별일 아니니까!”그러자 소희는 투덜거렸다. “그럼 왜 나를 깨웠어?”소희의 말에 구택은 입을 다물었다.[정말 여자들은 막무가내일 때가 많아.]저녁식사 때, 오영애 아주머니는 6첩 반상에 국을 준비했다.소희는 오랫동안 잠을 자 배가 고팠는지, 모든 음식이 맛있게 느껴졌다. 천천히 먹는 구택과는 달리, 잠시 후에 나온 매운 소고기볶음 요리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소희에 구택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무심코 말했다.“내일 병원에 가서 검사 좀 해보자.”소희는 입에 가지 반찬을 한입 가득 넣고 삼킨 뒤에 구택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검사?”구택의 눈에는 걱정의 빛이 스쳤다. “피임약도 실패할 수 있어.”소희는 놀라 멍해 있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 깜짝 놀라 거의 혀를 물 뻔했다. “불가능해!”“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냐!”소희는 눈을 굴리며 물었다. “네가 준 약도 석화바이오회사에서 만든 거야?”“응.” 구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서 연구하고 생산한 거야, 대외 판매는 안 해.”소희는 갑자기
그래서 이 가족은 밤이 되면 좀비로 변장하여 다른 좀비들 사이에 섞여 나가 음식을 찾았다. 이렇게 며칠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내다가, 한 번의 사고가 있었는데 바로 아들이 여자친구와 몰래 만나다가 좀비에게 발각되었고 남자는 공포에 질려 여자친구를 밀쳐내고 혼자 도망쳤다.어느 밤, 아들이 밖에 나갔을 때, 이미 좀비가 된 여자친구를 거리에서 만났다. 아들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따라갔고, 여자친구가 시체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치고는 주저앉았다.여자친구는 돌아보며, 마치 그를 알아보는 듯싶었다. 반쯤 먹힌 얼굴로 희미하게 웃으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나를 찾으러 왔구나!”이때, 구택은 바로 화면을 껐다. 소희는 흥미롭게 보다가 놀라며 구택을 바라봤다. “왜 껐어?”구택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설희와 데이비드가 놀랄까 봐.”설희와 데이비드는 동시에 구택을 바라보며, 태연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고 소희는 킥킥 웃었다.구택은 약간 당황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앞으로 이런 영화는 덜 보는 게 좋아. 태교에 안 좋아.”결국 소희는 구택 때문에 억지로 ‘뽀로로'를 한 시간이나 보게 되었다.……그러나 다음 날 아침, 소희가 화장실에서 나와 구택에게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자 구택은 약간 안도하면서도 실망했다. 어젯밤에 구택은 만약 소희가 진짜로 임신했다면, 그 아이가 건강하다면 어떨까 생각했고 소희는 구택의 마음을 알아챈 듯, 그를 꼭 안았다. “아직 때가 아니니까 서두르지 마.”구택은 소희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알았어, 가서 밥부터 먹자.”두 사람이 내려올 때, 구택은 오진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진수는 선샤인컬쳐회사의 사장 이름이 정재형이라고 말했고, 정재형이 출장 중이라 강성에 없으며, 모레쯤 돌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재형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하겠다고 하자 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오늘 날씨가 좋지 않았고, 두 사람이 청원을 떠날 때, 밖은 이미
한 시간 후.강아심은 고개를 숙여 오래된 마을을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강성으로 향해 차를 몰았다.강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아심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김후연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차를 밖에 주차하고, 조용한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부터 김후연 할머니 집 마당에 피어난 등나무꽃이 보였다. 활짝 핀 꽃들에서 달콤한 향기가 골목 가득 퍼져 있었다.꽃들은 여전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꽃도 때맞춰 피어 있었지만 이제 그 꽃을 돌보던 주인은 더 이상 없었다.아심은 나무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가며 문턱을 넘을 때, 지난번에 김후연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해졌다.마당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해당화 꽃잎이 바닥을 가득 메웠고, 옆의 빨랫줄에는 예전에 아심이 김후연에게 사준 숄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지승현은 마당에 앉아 있었다. 김후연 할머니가 늘 앉던 등나무 의자에 앉은 그는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그는 초췌한 얼굴에 눈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아심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반쯤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왔어.”“힘내.”승현의 눈이 더욱 붉어지며 목이 메어 조용히 말했다.“할머니가 가셨어. 날 가장 아껴 주신 분이 영원히 떠나셨어.”아심은 그의 슬픔을 함께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할머니는 네 곁을 떠난 게 아니야. 다른 모습으로 곁에 남아 계시는 거야.”“널 곁을 스치는 바람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그 모든 게 할머니가 돌아와 널 지켜보고 계신 걸지도 몰라.”승현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거의 간절하게 이마에 가져다 댔다.“아심아, 이제 나에겐 너밖에 없어.”아심은 낮게 대답했다.“내가 곁에 있을게.”잠시 후, 양세민 아주머니가 나와 아심에게 말했다.“할머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도련님께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세요.
도도희는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에게 다시 인연이 있기를 바랄게.”도도희의 말뜻을 짐작한 아심은 미소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난 가볼게. 수업 들어가요!”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그녀가 짐을 든 걸 보고 창가에 머리를 내밀며 작별 인사를 했다.“언니!”“아심 언니, 다시 돌아올 거예요?”“누나, 우리 모두 누나를 그리워할 거예요!”아심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강성에 있는 대학에 와야 해!”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아심은 작별 인사를 길게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더 머물지 않고 도도희에게 인사를 남긴 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짐을 차에 싣고, 그녀는 자신의 차를 몰아 저택을 떠났다....강시언은 2층으로 올라가 그 오래된 창고 방에 들어갔다. 그의 키 큰 몸은 벽에 기대어 앉아 밖의 흐릿하고 어두운 날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한참 후, 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시언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아심, 너 나한테 복수하는 거냐?”이 시간 동안 그녀의 애매한 태도와 고통스러운 모습이 모두 자신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시언은 처음으로 차갑게 아심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불렀고, 그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다. 그간의 온기와 친밀함이 마치 빗속의 안개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텅 빈 회색만이 남아 있었다.아심은 운전 중이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눈을 살짝 깜빡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시언의 목소리는 어두웠다.“넌 모든 걸 계산했겠지만, 네 마음은 계산해 봤냐?”아심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본인이 분명히 말씀해 주셨잖아요. 특수 요원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시언이 말했다.“그럼 네가 내게 했던 말 중 진심이 뭐야?”아심은 천천히 대답했다.[당신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당신에
다음 날.강아심은 전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날이 밝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방 안은 회색빛으로 어두웠다. 그녀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귀에 대고 받았다. “여보세요?”[아심아!] 전화기 너머에서 지승현의 슬픔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그 말에 아심은 눈을 번쩍 뜨며 순식간에 잠이 깼다. 몸은 깨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 온화하던 김후연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심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고 아심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그 후, 별장의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급한 일이 생겨 강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배웅은 사양하니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고 했다.채팅방에서 모두가 놀라며 아쉬워했고,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나중에 강성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몇 개의 메시지를 답장하고 난 후 그녀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집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머물렀던 방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보고, 문을 닫고 나섰다. 계단을 내려올 때 마침 강시언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를 보고 아심을 찾으려 올라가던 중이었다.아심의 손에 들린 여행 가방을 본 그는 마음이 답답해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떠나는 거야?”아심이 대답했다. “강성에 일이 좀 생겨서요.”시언은 그녀를 주시하며 물었다. “어젯밤 일 때문이야? 아직도 화난 거야?”“아니요!” 아심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아심은 짐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시언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아심!”아심은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 나가길 기다렸다.“안 가면 안 될까?” 시언은 깊은 눈빛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마음 깊은 곳에서 힘겹게 끌어낸 말처럼, 간절하게 이어졌다. “안 가면, 안 돼?”아심은 가방 손잡이를 꽉 쥐고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강시언이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도도희가 강아심의 손을 놓으며 웃으며 말했다. “됐어,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 어서 돌아가서 쉬어.”이에 아심이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쉬세요.”“그래!”세 사람은 함께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길목에서 헤어졌다. 시언과 아심은 각자 사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별장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도우미는 이미 퇴근해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시언이 말했다. “저녁을 못 먹었으니, 뭐라도 좀 준비해 줄게.”“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심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피곤해서 입맛도 없어요. 그냥 올라가서 자고 싶어요.”“그럼 그렇게 해. 만약 밤에 배고프면 언제든 전화해.”시언의 말투는 다정했고, 아심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걸어갔다. 시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 달라 보이는 듯해 말문을 열었다.“이번 일, 나도 미리 알지 못했어.”아심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알아.”“하지만.” 시언의 목소리는 밤처럼 깊고 잔잔했다. “시야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치챘어. 몸을 감추려고 일부러 옷을 더 입고, 변성기를 썼지만, 그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차렸지.”“걔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몰라서 모른 척했어.”아심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상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묶였을 때 시언이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던 점이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또한, 그 용병들이 두 사람에게 밧줄을 묶을 때 시언의 상처 부위를 피해서 묶었다는 것도 이상했다.다만 그 당시 아심은 마음이 급하고 혼란스러워서, 시언이 자신을 신경 써서 움직이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난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행이죠. 진짜 노도의 부하들이 사람을 사서 복수하려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심은 얕게 웃으며 다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어가던 그녀는 멈춰
아심은 말을 마치고 바로 물었다.“조하루는 어떻게 됐나요?”시야는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무사히 집에 데려다줬어요. 집이 꽤 가난해서 할아버지가 아프신데도 병원에 갈 돈이 없다고 해서 저희가 그 집에 돈을 좀 두고 왔어요.”“놀라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루 군에게도 여러분이 무사하다는 걸 전했습니다.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했어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천만에요! 예전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이제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시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농담 그만하고, 빨리 떠나!” 시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야는 아심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아심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진언 님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부 제 생각이라서, 절대 진언 님을 탓하지 마세요!”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탓 안 해요. 장난이었다면서요?”시야는 아심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번쩍이자 급히 사라졌다.잠시 후, 아까까지 살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오두막은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의 고요하고 텅 빈 분위기로 돌아갔다. 방 한가운데의 불만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시언은 아심 앞에 앉아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놀랐어?”아심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모두 무사하니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죠?”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야 대신 사과할게.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아심은 방금 전의 격렬한 감정이 갑자기 멈추자 머릿속이 멍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아니요, 물어볼 건 없어요. 다 알겠으니 우리 내려가요. 벌써 늦었어요. 도도희 이모가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방금도 전화했었어요.”시언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지금 내려가자.”두 사람은 자리에서
굉음이 천둥같이 울려 퍼지며, 마치 지붕을 뚫을 듯했다.아심은 눈앞의 상황을 보고 멍하니 굳어버렸고, 시언은 아심을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이제 괜찮아. 시야가 장난친 거야.”“시야?” 아심은 멍한 얼굴로 시언이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린 거면 남자를 바라보았다.가면 남자가 몸을 일으켜 목소리 변조기를 벗고, 이어서 얼굴에 쓴 가면까지 벗었다. 그제야 드러난 것은 미소를 띤 잘생긴 얼굴이었다.“넘버세븐, 나 기억하지?”아심의 머릿속이 순간 멍해졌다.눈물은 여전히 그녀의 눈에 고여 있었고, 격렬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아심은 시야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시언은 그녀를 풀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배고프지 않아? 뭐 좀 먹고 여기서 잠시 기다려.”시언은 아심을 의자에 앉히고 나서 시야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나와!”시야는 아심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건 내 생각이었어. 그냥 장난치려던 거야. 진언 님과는 아무 관련 없어. 혼나고 올 테니까, 이따가 와서 제대로 사과할게.”아심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너무나 강렬했던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멍한 상태였다.시언과 시야가 밖으로 나가자, 나머지 용병들은 일제히 일어나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총을 안고 긴장감 있게 서 있었다.뒤에 있던 면수건을 쓴 남자도 면수건을 벗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전 시야의 부하예요. 시야가 명령을 내린 거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화가 나셨다면 그를 탓하세요!”그는 말이 끝나자 아심 앞에 놓인 구운 고기를 깨끗한 칼로 잘라 작은 조각들로 내밀었다....오두막 밖, 시언은 거대한 나무 아래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갑자기 몸을 똑바로 세우고는 보고하듯 말했다.“진언 님, 보고드릴 일이 있어요.”나무 아래 걸린 백열등이 차갑게 빛났고, 시언의 눈빛도 차갑고 무미건조했다.“말해.
“안 돼!” 강아심은 손에 쥔 줄을 힘껏 당겼다. 가면 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아심은 줄을 약간 풀며 다시 외쳤다.“우릴 보내 줘! 그렇지 않으면 너도 살아남을 생각 하지 마!”갑자기 꽉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불길이 휙휙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팽팽한 긴장감에 한층 더 싸늘한 기운이 더해졌다.새로 들어온 열 명이 넘는 무리가 무장한 채 총을 들고 아심과 시언을 겨누었다. 이에 시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로 들어온 무리의 리더는 역시 용병 차림을 하고 얼굴을 면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는 가면 남자를 향해 눈길을 주며 말했다.“네가 진언을 제압하지 못할 줄 알고 위에서 날 보냈다.”그러자 가면을 쓴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여자를 과소평가했을 뿐이지!”면수건을 쓴 남자는 아심을 향해 말했다.“너에겐 한 생명밖에 없어. 목숨 하나로 하나를 바꿀 수 있어. 네가 나갈지, 진언이 나갈지 선택해.”또한 가면을 쓴 남자는 아심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네가 날 죽여도 소용없어. 여기에 있는 이 많은 총과 사람들이 있어. 나를 죽이면 너희 둘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그러고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알아둬.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야. 네가 남든, 진언 대인이 남든.”“네가 날 잡고 있으면 내 사람들은 조금은 신경 쓸지 몰라도, 그의 부하들은 내 목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가면 남자는 새로 들어온 리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시언을 올려다보았고, 목소리는 쉰듯하지만 차분했다.“좋아, 내가 남을 테니 진언을 보내줘.”시언의 눈빛은 깊어지고, 아심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가면을 쓴 남자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리만 생각하지 말고, 남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아둬. 내가 충고하건대, 잘 생각하고 결정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심은 줄을 세게 죄며, 차가운 눈빛을 빛냈다.
아심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나랑 키스해줘, 제발.”시언은 고개를 숙여 아심의 부드럽지만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점점 더 깊어졌다.아심은 그의 턱에 입을 맞추고 살짝 깨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시언의 피부에 닿으며 얕은 숨결과 촉촉한 감촉이 시언을 감쌌다. 아심의 눈빛은 비에 젖은 듯 촉촉했고, 마치 갈고리처럼 그를 끌어당겼다.바깥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빗소리처럼, 남자의 분노가 서서히 진정되었다.시언은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세우며 가면 남자를 한 번 노려본 후, 고개를 숙여 아심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추었다. 아심은 곧바로 그의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였다.멀리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 홀로 있는 듯 서로만을 바라보며 키스를 나눴다. 아심은 눈을 반쯤 감고 시언에게만 집중했다. 아심의 귀에는 오직 빗소리와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들렸다.아심은 시언을 더 유혹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매혹적이고 나긋나긋하게 행동했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부드러운 신음은 시언과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은밀한 소리였다. 마치 화려하게 피어난 꽃처럼, 그 소리는 남자의 정신을 단숨에 빼앗아 갔다.한참 후, 아심은 그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희미하게 말했다.“약속해 줘. 기회가 생기면, 곧바로 떠나요. 나 신경 쓰지 말고.”시언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아심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묶여 있던 줄이 느슨해졌다. 아심은 재빨리 손을 뽑아내고 시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몸을 돌려 가면 남자 쪽으로 날아들다.가면을 쓴 남자와 그의 부하들은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아심이 방 가운데까지 나아갔을 때야 그들은 아심을 막으려고 했다.“쾅!”아심은 손에 쥔 줄을 휘둘러 덤벼드는 용병의 목에 감았다. 그는 줄에 맞아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아심은 발을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줄을 휘두르며 방어하고, 다른 발로 다가오는 용병을 걷어차며 날려버렸다. 강렬한 눈빛이 목표를 향
강아심은 그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살짝 빛났다. 아심은 가능한 시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벽 구석에 깨진 도자기 조각이 보여. 우리가 어떻게든 가서 그걸 손에 넣어야 해.”깨진 도자기 조각은 절반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고, 아마도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여기서 밥을 먹다 그릇을 깨뜨리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여자의 숨결이 부드럽게 시언의 귀를 간질이며 퍼졌다. 아심의 부드러운 입술이 열렸다 닫히며 그의 귀밑 민감한 피부를 살짝 스쳤다. 시언은 몸이 순간 굳어졌다가 늦게서야 대답했다.“소용없어.”“뭐?” 아심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 줄엔 합금 섬유가 섞여 있어. 칼로도 자를 수 없으니 도자기 조각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해.”시언이 낮게 말하자, 아심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정말 당신을 특별대우해 주긴 하네요!”이번엔 시언이 이해하지 못했다.“응?”“아니, 그런 거지! 일부러 합금 줄까지 써서 묶어놨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런 대접 못 받을걸요!” 아심이 말하자, 시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가 자신을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어느새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그들을 감시하던 사람들이 교대로 밖에 나갔다 돌아왔다. 마지막 교대 때는 가면을 쓴 남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모두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텅 비었던 방은 순식간에 꽉 찼다. 용병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방 안 공기를 긴장감으로 가득 채웠다.시언과 아심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섰다. 시언은 벽에 몸을 대고 서서 손으로 아심의 등을 감싸며 가면 남자를 주시했다.가면을 쓴 남자는 남자는 방 한쪽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병들은 방 안에 나무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방금 비가 내린 터라 산속은 밤이 되면서 습기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