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주의 말은 모욕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랑을 향한 경멸이 넘쳤다.태경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내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지?”태주는 평소에 남의 일을 알아보지 않았고, 그럴 흥미도 없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가족사업을 인수하면서, 그 깨끗하지 못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서 이런 일들을 신경 쓸 틈도 없었다.태주의 안색은 차가웠고, 짙은 동공은 그 속을 헤아릴 수 없었다.“궁금해서.”태경은 코웃음을 쳤다.“이제 세영을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야? 네가?”태주가 세영을 좋아하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누군가 알아차렸고, 그때 태경도 아직 오만하고 도도한 소년이었으니, 이 일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건 불가능했다.다만 그는 승부욕이 강해서, 태주에게 한 번 고백해 보라고 했다. 누가 세영의 마음을 얻으면 진정한 승자라고.태경은 태주가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그는 세영과 죽마고우로, 같은 골목에서 자란 이웃이었다.오랜 치료로 태주는 그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그 느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태주는 태경이 허리를 껴안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며, 아무런 표정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듣기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동창이었으니 당연히 궁금하지.”태경은 사랑과 태주가 동창이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 무척 의아해했다. 물론 태경도 사랑과 동창이었다.그러나 태경은 이에 대해 아무런 인상도 없어, 잠시 침묵했다.“중학교? 고등학교? 아니면 대학?”태주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는지, 입가에 천천히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수려하고 정교하게 생겼으며, 뚜렷한 윤곽은 마치 조각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웃으면 미간의 포악한 기운도 사라져, 무척 매혹적이었다.그는 쯧쯧 소리를 내며 말했다. “네가 강사랑에게 물어봐.”걸레라 말하고 싶었지만, 태주는 또 억지로 삼켰다.태주는 동정심도 없었고, 남들과 공감을 하지도 못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이 악
사랑은 몸이 뻣뻣해졌다. 태주가 아직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사람은 모두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가 있었다. 사랑도 그때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나이트클럽에 가서 술을 팔지도 않았을 것이다.태경은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다.그도 사랑이 왜 에스타나이트에 가서 알바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남청연의 병원비는 결코 한 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태경은 사랑이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군.’태주는 태경이 무관심한 것을 보고 재미없다고 느꼈다.‘하긴, 신경 쓰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강사랑에게 무슨 감정을 가지겠어.’태주의 머리는 또 아프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랫동안 참았다. 매번 사랑의 얼굴을 볼 때마다, 태주는 머리가 따끔거렸고, 마치 바늘이 관자놀이를 호되게 꿰뚫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또 그렇게 빨리 사랑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려 하지 않았다.태주는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다. 도대체 자신의 병 때문인지, 아니면 사랑이 그렇게 얄미운 것인지. 그의 피부는 눈처럼 창백했고,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럼 너희들 방해하지 않을게.”‘더 이상 있을 순 없어.’몸을 돌려 떠나자, 애써 참았던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태주는 발걸음을 비틀거렸고, 옆의 난간을 짚어서야 겨우 넘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숨을 깊게 쉬었다.이 순간, 전기 충격을 받은 것 같은 통증은 그제야 서서히 사라졌다.태주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눈빛의 살의는 전례 없이 짙어졌다. 그는 마치 악마처럼 이를 갈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강사랑을 죽일 거야. 그 사람이 죽기만 하면, 난 더 이상 그 여자를 볼 리가 없고, 이렇게 고통스럽지도 않을 거야.태주는 일찍 연회장을 나섰다. 그는 차에 앉아 미간을 비비다가, 갑자기 입을 열고 앞에 앉은 기사에게 물었다.“내가 예전에 병원에 있을 때, 어떤 치료를 받은 거
강사랑은 손에 들린 임신 테스트기를 오래도록 응시했다. 테스트기 위에 선명한 두 개의 빨간 줄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는 화장실 칸막이 안에 앉아 언제 임신이 된 건지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마 지난달쯤이었겠지.’그때 사랑은 심태경을 따라 C시로 출장을 갔었다. 마침 호텔 스위트룸에 준비된 콘돔은 떨어져 있었고, 온천에서 막 나온 사랑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태경이 그녀를 침대에 눕혔을 때에도 사랑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를 받아들였다.달콤하면서도 짜릿한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모든 것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눈을 떴을 때, 태경은 이미 말끔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있었다.사랑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그날 떠나기 전에 병원에 가서 피임약을 처방 받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사랑은 원래 기억력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며칠은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태경을 따라다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까다로운 상사였고, 사랑을 봐주는 일 따위는 없었다.사랑이 모든 일이 끝나고 병원에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며칠이 지나버렸다. 그녀는 그때 잠시 고민했지만, 이렇게 쉽게 임신할 리 없다는 안일한 생각에 그 일을 뒤로 미뤘다.현실로 돌아온 사랑은 조용히 임신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을 나와 찬물로 얼굴을 씻으며 진정하려 애썼다.세수를 마친 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사랑은 생각했다.‘내가 임신을 했다니... 이제 어떡하지?’...사랑이 사무실로 돌아가자, 비서실 신입 비서가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왔다.“강 비서님, 또 누가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고 있어요.”사랑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누군데?”비서실 신입 이미현이 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다소 거만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또 그 송예진 아가씨예요.”소문에 의하면, 얼마 전 태경과 사귀던 여자라고 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안 되어 차인 뒤로, 송예진은 두 번이나
고등학교 때, 태경은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 시절의 사랑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고, 마치 동화 이야기 속 지나가는 행인처럼 왕자와 공주의 달콤한 사랑 묵묵히 지켜보았다.언제부터 태경을 짝사랑해왔는지, 사실 사랑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태경이 결혼하자는 제안을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언제든 깨어날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3년 동안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사랑은 태경과 말 한마디밖에 한 적이 없었다.“안녕, 난 강사랑이라고 해.”그러나 태경은 사랑이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심지어 그녀가 수줍어하며 자신에게 말을 건 적이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사랑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침실 불을 켜지 않아, 방안은 무척 어두웠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배를 만졌다. ‘내 뱃속에 아이가 생겼다니. 그것도 나와 태경의 아이. 아니야, 임신 테스트기도 정확한 건 아니니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사랑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할 시간이 없었기에, 내일 다른 브랜드의 테스트기를 몇 개 더 사서 검사해 보려 했다.‘임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만약 정말 아이를 가졌다면... 그건 너무나도 골치가 아픈 일이야.’태경은 자신의 계획을 벗어난 그 어떤 일도 좋아하지 않았고, 사랑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태경은 매번 주의를 했지만, 유독 지난달 출장 갔을 때 콘돔을 쓰지 않았다.‘그때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지. 태경은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만약 태경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면... 그 사람은 직접 병원에 예약해서 수술 날짜를 잡겠지.’아무도 태경이 결정한 일을 바꿀 수 없었다.막 결혼했을 무렵, 사랑은 천진난만하게 태경이 자신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그것이 단지 자신의 환상이란 것을 깨달았다.사랑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생각하면 슬플 것이 뻔했기에, 그녀는 이불을 덮고 눈을 감으며 억지로 잠을 잤다.그날 저
사랑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시간 나는 대로 갈게요.”덕훈은 멋쩍게 웃었다.“건강검진은 내일로 예약했으니 꼭 병원에 가보세요.”사랑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알았어요.”그녀는 태경이 이렇게 예리할 줄 몰랐다.“제시간에 도착할게요.”...오후 내내 사무실에서 진한 커피 냄새가 퍼졌고, 사랑은 토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서야 좀 나아졌다.퇴근하기 전 사랑은 화장실에 가서 한번 더 토했다. 그녀는 자신의 입덧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찬물로 세수를 하자, 가방 안의 핸드폰이 울렸다. 사랑이 전화를 받는 순간,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야?]“화장실이에요.”[지하 차고에서 기다릴게. 오늘 저녁 본가에 가서 밥 먹어야 하니까.]“네, 대표님.”다행히 두 사람이 매달 본가에 가서 식사를 하는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박나은은 사랑이 하루 빨리 손자를 낳아주기를 기대했다.차에 타자, 태경의 곁에 앉은 사랑은 조금 긴장했다. 태경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사람에게 압박감을 가져다주었다.차 안에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한 거야?”사랑은 방금 토했으니 지금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다.“그래요? 괜찮은 것 같은데.”태경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입술은 오히려 빨갛군.”이 말에 사랑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태경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강 비서, 나 몰래 바람피운 거 아니지?”무심코 한 농담이었지만, 사랑은 가슴이 떨리며 잔뜩 긴장이 됐다“그럴 리가요.”태경은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요즘 고생했으니, 며칠 휴가 내서 푹 쉬어.”사랑은 생각해 보았다.‘이참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되겠다.’그녀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잘 알고 있었기에, 태경이 예약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두려운 동시에 태경에게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좋아요.”차는 본가의 정원에 세워졌다.사랑이
사랑의 손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고, 눈가에서 떨어진 눈물에 글씨가 번졌다. 그녀는 눈물을 닦은 다음, 메모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사랑은 태경을 잘 알고 있었다.‘그 사람은 줄곧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 내가 조금 기분 상하게 했다고, 배로 돌려주다니.’손에 들어간 힘에 수표가 꼬깃꼬깃 해졌다. 점차 냉정해진 그녀는 바로 수표를 가방에 넣었다.‘난 억지를 부릴 자격이 없어. 그 누구보다도 이 돈이 필요하니까.’...사랑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다.덕훈은 제시간에 사랑에게 전화를 하며, 건강검진 하러 가는 것을 잊지 말라고 일깨워 주었다.사랑은 전화를 끊은 다음,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 검사를 받을 때, 그녀는 돈을 써서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았다.그 사람이 나오자, 사랑은 택시를 타고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보고는 며칠 후에야 볼 수 있었다.의사는 사랑의 배를 만지더니, 임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랑이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태경의 전화가 걸려왔다.[검사 다 받았어?]“네.”태경은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묻지 않았다. 얼마 뒤면 덕훈이 그녀의 건강검진 보고서를 그의 사무실로 보낼 것이다.간단하게 물어본 다음, 태경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 이때 사랑이 그를 불렀다.“대표님.”태경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강 비서, 또 무슨 일 있어?]사랑은 자신이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했다.“수표는...”그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무슨 뜻이죠?”태경은 목소리가 담담했고,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내가 분명하게 쓴 것 같은데?]그는 펜을 돌리며 쌀쌀하게 말했다.[네가 받아야 할 보수.]사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태경은 계속 말했다.[어젯밤 강 비서의 서비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거든.]그는 이런 말을 할 때도 무척 담담했다.모욕인지 아닌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지만, 이는 여전히 날카로운 바늘처럼 사랑의 심장을 찔렀고, 무
정헌은 대답을 듣지 못하자, 잠시 생각했다.“왜, 신경 쓰여?”태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전혀.”정헌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태경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건 강 비서에게 달렸지.”정헌은 쯧쯧 소리를 냈다.“너도 참 매정하다.”'강 비서는 예쁘고, 성격도 아주 좋고, 몸매까지 섹시하니 어떻게 봐도 미인인데, 안타깝게 태경처럼 감정도 없는 상사를 만났다니.'정헌과 태경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기에, 그래도 태경을 잘 아는 편이었다. 태경은 세영을 제외한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움직인 적이 없었다.'그때 태경씨는 세영이에게 정말 잘해줬는데.'소년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랑했던 소녀였기에, 태경은 그녀를 뜨겁게 사랑했다.태경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별 감정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장사일 뿐, 누구와 하든 다 똑같지.”정헌도 사실 농담을 했을 뿐인데, 태경이 이렇게 ‘대범’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이것도 예상했던 바였다. 태경은 원래 이성적이었으니까.정헌은 참지 못하고 조언을 했다.“좀 작게 말해, 강 비서 들으면 슬퍼하겠다.”태경은 나른하게 와인을 한 모금 마셨는데, 목소리는 차가우면서도 냉담했다. “나랑 상관없어.”계약 결혼한 이상, 절대로 상대방에게 마음이 움직여선 안 된다. 그럼 일이 매우 번거로워질 것이다.태경은 사랑이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적어도 이 반년 동안 그녀는 처신을 아주 잘했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않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절대 하지 않았다.눈치가 있고 능력이 있는 비서 겸 아내였다.정헌은 태경이 화를 낼지 안 낼지가 무척 궁금했다. 잠시 후 정헌은 술잔을 들고 사랑의 앞으로 다가갔는데,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한 것을 발견했다.사랑은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다 들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손은 떨리기 시작했고, 가슴도 이미 마비될 정도로 아팠다.정헌은 신사처럼 입을 열었다.“강 비서, 또 만났네.”사랑은 바로 뒤로 물러섰다.“구 대표님.
사랑은 얼굴을 붉혔지만 또 안색이 창백해졌다.태경은 항상 그녀를 쉬운 여자로 취급했다. 아마도 사랑의 역할은 그의 욕망을 해소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술자국에 얼룩진 사랑의 손가락을 보며, 태경은 그녀의 손을 잡더니 고개를 숙여 진지하게 손수건으로 사랑의 손을 닦아줬다.사랑은 갑자기 부드러움을 베푸는 태경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태경의 마음에서 새어 나오는 그 사소한 사랑을 갈망했다.‘많이 안 줘도 돼, 조금이면 충분해.’사랑은 저도 모르게 어느 해 여름방학 전의 마지막 체육수업을 떠올렸다. 그녀는 교실 창밖을 지나고 있었고, 바람은 강의동 밖의 꽃나무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이때, 찬란한 햇빛은 마침 태경의 옆모습을 비추고 있었다.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소년은, 장난스럽고 유치하게 자신의 손목과 세영의 손목을 리본으로 묶었다. 세영은 책상에 엎드려 깊이 잠들어 있었다.태경은 머리를 받치고,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예쁜 눈에 환한 미소를 드러내고 있었고, 그렇게 애정이 넘치는 눈빛으로 자고 있는 소녀를 지켜보았다.교실이 시끄러워지자, 그는 다른 사람에게 조용하라는 손짓을 했다. 세영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사랑은 마음이 쓰라리면서 씁쓸했다. 태경은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뿐이었다.‘그치만 분명히 내가 먼저 태경과 만났는데. 이 남자도 날 직접 찾아와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전부 잊어버렸다니... 아니야... 단지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을 뿐이야.’사랑은 정신을 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선 연회가 끝났을 때, 사랑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배고파서 무척 괴로웠다.‘뱃속의 아이는 입맛이 아주 좋은 것 같아.’지금 사랑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냉장고에 케이크가 있었기에, 그걸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차에 타자, 사랑은 태경에게서 나는 술기운을 맡았다. 그리 짙은 냄새는 아니었다.태경은 술을 마셔도 항상 자제했다. 그는 접대할 필요가 없었고,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