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모든 걸 목격한 간병인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대표님, 이게 지금...”눈치없이 지금 들어온 간병인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부시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아쉬운 기색 가득한 얼굴로 일어선 부시혁이 간병인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쉿! 깨우지 말아요.”그제야 윤슬이 잠든 걸 발견한 간병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자리에서 일어선 부시혁은 지갑을 꺼내더니 간병인에게 수표 몇 장을 건넸다.“그리고 방금 전에 본 건 못 본 걸로 하고요.”갑작스러운 돈벼락에 간병인의 눈이 반짝이고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걱
2시간 후, 남연시에 도착한 윤슬이 공항을 나섰고 진서아의 안내를 받아 박희서가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박 비서 말로는 스위트룸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고 했지... 서아는 거기서 지내면 된다고.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작은 방이라고 말한 이상 크면 얼마나 클까 싶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미안, 서아야. 내가 눈이 안 보여서 오늘 밤은 나랑 한 방 써야겠다.”“괜찮아요.”침대 끝머리에 앉아 방을 둘러보던 진서아가 웃었다.“좋은데요?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어차피 하룻밤뿐인데요 뭘. 밖에서 노숙도 해봤는데 이 정도야 양반
과연 부시혁의 추측은 정확했다.패션쇼 1층, 윤슬은 육재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여보세요? 재원아, 무슨 일이야?”“범인 몽타주 나왔어.”휴대폰에서 육재원의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기다리던 소식에 윤슬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누군데?”지금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육재원에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눈이라도 보였으면 바로 몽타주 사진 받아서 누군지 알아볼 텐데...“너도 아는 사람이야. 고도식이 되찾은 딸, 고유정.”육재원이 고유정 세 글자에 의식적으로 힘을 주었다.눈이 커다래진 윤슬이 무의식적으로 대답
하지만 기쁨도 잠시, 윤슬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보는 순간 유신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유신우는 진서아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누나를 보면 감정을 통제하라던 말이 이 뜻이었던가.유신우는 몰래 주먹을 쥐고 눈동자를 최대한 깔며 흘러나오는 분노를 덮으려 애썼다.참아. 참아아 해. 지금 여기서 터지면 내일 연예 기사1면 주인공이 내가 되는 거야.유신우는 태연한 모습으로 런웨이 끝에서 포즈를 취한 뒤 돌아섰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서아가 윤슬에게 다가가 속삭였다.“대표님, 신우가 대표님 상처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감정을 잘 숨
“감사합니다.”매니저가 분장실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신우가 걸어나왔다.패션쇼 의상은 벗었지만 아직 무대 메이크업은 지우지 않은 유신우는 마치 중세기에서 현대로 시간 여행을 한 뱀파이어 백작 같은 화려한 요염함을 자랑하고 있었다.“누나...”유신우가 낮은 목소리로 윤슬을 불렀다.고개를 끄덕인 윤슬이 대답했다.“나 안 만나줄 줄 알았는데.”“그럴 리가.”유신우의 부정에 윤슬은 괜히 삐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하, 내 전화도 안 받아놓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그건...”말문이 막
“일단 휴게실로 가자.”윤슬이 유신우의 팔목을 잡았다.유신우 역시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확인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시 억눌렀다.“그래. 내가 안내할게.”잠시 후, 윤슬, 진서아 두 사람은 유신우의 개인 휴게실에 도착했다.문을 닫자마자 유신우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얼른 말해. 그 눈... 도대체 어떻게 안 보이게 된 거야!”윤슬은 그제야 그 동안 일어났던 일을 전부 설명해 주었다.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신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번뜩였다.이소은? 두고 봐...“누나, 정말 곧 회복되는 거 맞아?”손을
부시혁의 서늘한 시선에 장 비서는 어깨를 으쓱한 뒤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이 호텔방으로 들어간 뒤에야 부시혁은 다시 엘리베이터에 탔다.어느 방에 묵는지 알아낸 게 어디야... 이제 그만 가야지.다음 날.“대표님. 일어나세요. 병원가셔야죠.”눈이 보이지 않는 윤슬을 위해 진서아는 미리 타올과 칫솔을 준비해 건네주었다.세심한 진서아의 배려에 윤슬이 미소를 지었다. 서아랑 같이 오길 잘했네.이때 초인종이 울리고 진서아가 욕실에 있는 윤슬을 향해 소리쳤다.“대표님, 누가 왔어요. 제가 가볼게요.”“응.”치약 거품
기분이 점점 더 이상해지고 윤슬이 휴대폰을 진서아에게 건넸다.“서아야, 재원이한테 전화 좀 걸어줘.”“네.”진서아가 파일을 덮고 전화번호부에서 육재원의 연락처를 클릭했다.“자기야.”육재원의 목소리에 눈동자를 굴리던 진서아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자기요? 저한테 하는 말씀이세요?”“쿨럭쿨럭.”깜짝 놀란 윤슬이 사레가 들리고 역시 멍하니 있던 육재원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이런, 젠장! 당신 누구야! 자기라니.”“그만해.”진서아가 장난을 이어가려던 그때 윤슬이 웃음을 참으며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