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휴게실로 가자.”윤슬이 유신우의 팔목을 잡았다.유신우 역시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확인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시 억눌렀다.“그래. 내가 안내할게.”잠시 후, 윤슬, 진서아 두 사람은 유신우의 개인 휴게실에 도착했다.문을 닫자마자 유신우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얼른 말해. 그 눈... 도대체 어떻게 안 보이게 된 거야!”윤슬은 그제야 그 동안 일어났던 일을 전부 설명해 주었다.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신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번뜩였다.이소은? 두고 봐...“누나, 정말 곧 회복되는 거 맞아?”손을
부시혁의 서늘한 시선에 장 비서는 어깨를 으쓱한 뒤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이 호텔방으로 들어간 뒤에야 부시혁은 다시 엘리베이터에 탔다.어느 방에 묵는지 알아낸 게 어디야... 이제 그만 가야지.다음 날.“대표님. 일어나세요. 병원가셔야죠.”눈이 보이지 않는 윤슬을 위해 진서아는 미리 타올과 칫솔을 준비해 건네주었다.세심한 진서아의 배려에 윤슬이 미소를 지었다. 서아랑 같이 오길 잘했네.이때 초인종이 울리고 진서아가 욕실에 있는 윤슬을 향해 소리쳤다.“대표님, 누가 왔어요. 제가 가볼게요.”“응.”치약 거품
기분이 점점 더 이상해지고 윤슬이 휴대폰을 진서아에게 건넸다.“서아야, 재원이한테 전화 좀 걸어줘.”“네.”진서아가 파일을 덮고 전화번호부에서 육재원의 연락처를 클릭했다.“자기야.”육재원의 목소리에 눈동자를 굴리던 진서아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자기요? 저한테 하는 말씀이세요?”“쿨럭쿨럭.”깜짝 놀란 윤슬이 사레가 들리고 역시 멍하니 있던 육재원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이런, 젠장! 당신 누구야! 자기라니.”“그만해.”진서아가 장난을 이어가려던 그때 윤슬이 웃음을 참으며 손을 뻗었다.“
한참을 뭔가 생각하던 부시혁은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윤슬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마음의 짐을 덜어냈다는 생각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윤슬의 모습에 진서아가 웃음을 터트렸다.“대표님 기분 좋으신가 봐요.”“당연하지.”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의 딸이 맞다는 걸 알게 됐으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간만에 미소를 짓는 윤슬의 모습에 진서아도 기분이 부풀어올랐다. 시간을 확인하던 진서아가 전화기 앞으로 걸어갔다.“벌써 점심시간이네요. 배고프시죠. 룸 서비스 시킬까요?”“시켜. 아, 1인분 더
장 비서는 호텔로 의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혹시 부시혁이 아픈가? “그래서 장 비서님한테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글쎄 부 대표님이 배탈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장 비서님이 항상 부 대표님 곁에서 챙겨주시는데 어떻게 배탈이 났는지 궁금해서 스위트룸에 따라가 봤더니 대표님이 남은 음식을 먹어서 탈이 났다는걸 들었지 뭐예요.” 진서아는 연신 웃으며 말했다. 대기업 회장이 남은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이 배꼽 잡고 웃을 것이다.윤슬은 부시혁이 정말 아플 줄 상상도 못했다. 더군다나 먹다 남은 음식을
윤슬은 눈살을 찌푸렸다.윤슬은 이제 더 이상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번 유신우가 윤슬에게 독약을 먹였다는게 들통났을 때도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고 며칠 동안 사라졌었다. 아마 이번에도 사라질 수도 있다. “윤 대표님, 유신우 정말 심리 치료받아야 해요. 이렇게 한순간에 통제력을 잃으면 나중에는 정말 고칠 수 없어요. 그리고 유신우 씨 성격도 고쳐야 해요. 자존심이 너무 세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냥 자리를 피해버리는 게 너무 어린애 같아요.” 진서아는 유신우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윤슬이 한숨을 내쉬며
진서아가 웃으며 윤슬에게 말했다. “윤 대표님, 육재원 씨가 마중 나왔습니다.”윤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재원이 목소리 들었어, 가자.”“내가 할게.” 유신우가 휠체어를 잡으며 말했다. 진서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휠체어를 유신우에게 내주었다. 유신우가 휠체어를 밀면 진서아가 편하고 좋았다. 세 사람은 육재원 쪽으로 걸어갔다. 육재원 앞에 도착했을 때 육재원이 윤슬을 쳐다보며 말했다. “유신우를 데리고 오다니, 윤슬 대단한데?”유신우는 육재원의 말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윤슬이 웃으며 대답했
육재원은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슬아, 내가 가정부 한 명 구해줄게, 눈이 회복될 때까지는 너 혼자 있으면 나도 불안하니까 가정부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육 대표님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진서아도 육재원의 말에 찬성하며 말했다. 윤슬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알겠어. 나도 그 생각은 했었는데 아직까지 연락은 해보진 않았어.”현재 윤슬의 몸 상태는 가정부가 필요하다. 윤슬은 조만간 회사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 가정부가 없으면 혼자서 생활할 수 없다. 진서아와 다른 누군가 와서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