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부시혁이 의심하는 건 아닐까 싶어 고유나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침을 꿀꺽 삼킨 고유나가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저었다.“무서운 게 아니라... 걱정돼서.”“뭐가 걱정되는데?”고유나는 걱정돼서 죽을 것 같다는 듯 눈썹을 축 내리며 대답했다.“날 독방에 가두시진 않겠지? TV에서 봤는데 인격장애 환자들을 흰 방에 가둬두기도 하더라고... 나한테도 그러면 어떡해?”고유나가 부시혁의 소매를 부여잡았다.그제야 의심이 풀렸는지 부시혁은 손을 뻗어 고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TV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표현
아니야... 공고문을 자세히 보면 목걸이가 아니라 목걸이 주인을 찾으려는 것 같은데...“삼성그룹에서 찾는 사람이 누군지, 왜 찾는지 알아봐요.”부시혁이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고씨 일가 사람들이 찾는 사람은 윤슬일 거라는 예감이 강렬하게 부시혁의 머릿속을 스쳤다.“네.”고개를 푹 숙인 채 잠깐 망설이던 부시혁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엇다.한편, 천강그룹.복잡한 내용의 파일을 검토하느라 잔뜩 집중하고 있던 윤슬은 갑자기 울린 휴대폰 벨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윤슬은 발신인을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
윤슬의 질문에 박희서가 바로 대답했다.“단 이사님, 왕 이사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그래요.”잠시 후 회의실 문이 열리고 단한영이 왕 이사와 함께 들어왔다.“단 이사님, 늦으셨네요.”하지만 단한영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앉았다.“볼일이 좀 있어서. 우리 조카님, 그런 일로 날 나무라려는 건 아니지?”“당연히 아니죠.”윤슬이 싱긋 미소 지었다.물론 윤슬도 단한영이 기선제압을 위해 일부러 늦게 온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 실컷 웃어둬. 잠시 후에는 웃고 싶어도 웃음이 안 나올 테
장 비서의 말에 부시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역시...“큰딸이 살아있다는 걸 고도식이 어떻게 알게 됐죠? 그건 알아낸 것 없나요?”안경을 올리던 장 비서가 대답했다.“삼성그룹 사모님이 DT 주얼리샵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점장에게서 들었답니다. 그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여자를 봤다고요. 그쪽에서는 그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큰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구나... 전에 할머니 병실에서 윤슬이 그렇게 말했었지... 목걸이를 찾은 뒤 DT 쥬얼리샵으로 가서 목걸이에 관한 정보를 물어봤었다고...채연희 정도 되
“도련님, 오늘 따라 왜 그러세요? 패션에 딱히 신경도 안 쓰시던 분이.”“나도 모르겠어.”성준영이 잔뜩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윤슬을 만나러 가는 약속, 좀 더 특별하게 입고 싶었다. 하지만 드레스룸을 전부 뒤져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침대 위에 쌓인 옷가지들을 확인하던 집사가 고개를 갸웃했다.“평소에 도련님이 좋아하시던 옷이잖아요.”“아니야. 이 정도로 부족해.”성준영이 고개를 저었다.평소와 다른 스타일로, 윤슬의 시선을 단번에 끌 수 있는 그런 옷이 필요했다.수심이 가득한 성준영의 표정을 관찰하던 집
윤슬이 꽃을 받는 걸 확인한 성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에이. 지금 우리 두 사람은 비즈니스 파트너잖아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정도 뇌물은 충분히 줄 수 있죠.”성준영의 말에 윤슬이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준영 씨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꽃 이쁘네요.”윤슬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꽃다발을 껴안았다.“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뭐 마실래요?”꽃다발을 옆 좌석에 내려놓은 윤슬이 성준영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아이스 아메리카노요.”“그럼 전 우유로 할게요
“뭐래요. 내가 고유정일 리가요.”윤슬이 눈을 흘겼다.내가 고유정일 리가 없잖아. 날 낳을 때 난산으로 힘들었다고 아빠가 말씀까지 해줬는 걸.하지만 윤슬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던 성준영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아니에요. 자세히 보니까 눈이 그쪽 사모와 꽤 닮은 것 같은데.”“그냥 우연이겠죠. 이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하긴요.”“이 목걸이는 저희 아빠가 고유정한테서 챙긴 거예요. 얼마 전 삼성그룹에서 발표한 공지 봤죠?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여자를 찾는다고.”“네. 봤어요.”“아빠가 남긴 목
추궁이 섞인 부시혁의 말투에 윤슬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그게 부시혁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 부시혁 대표가 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그러게. 이건 형이 좀 오지랖이었다.”성준영도 묘한 미소로 윤슬의 편을 들었다.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의 모습에 부시혁은 짜증이 치밀었다.“성준영, 윤슬 남자친구 있는 거 몰라?”“알아.”성준영이 어깨를 으쓱했다.“알면서 어떻게...”“남녀가 따로 만나면 무조건 데이트인가?”어깨를 으쓱하던 성준영이 차가운 눈빛으로 고유나를 바라보았다.“고유나 씨는 그렇게 생각하나봐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