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집게를 내려놓은 부시혁이 접시를 들고 레스토랑을 나서려던 그때 육재원이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또 뭡니까?”부시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육재원을 바라보았다.“아까 이 일 제대로 처리하겠다고 말씀하셨죠? 이제 고유나 씨도 깨어났겠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말씀해 주실 때도 된 것 같은데요?”팔짱을 낀 육재원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저희도 많이 바라는 거 아니에요. 고유나 씨가 직접 와서 우리 자기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는 것. 그뿐이죠.”증거가 없으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는 줄 알아, 고유나...“무릎을 꿇어
부민혁이 부랴부랴 내려가 문을 열고 승마장에 도착한 성준영과 육재원은 고유나를 담은 주머니를 승마장 바닥에 대충 던져버렸다.이때 윤슬이 다가와 물병에 담긴 물을 주머니에 들이부었다.찬물 세례에 주머니에 담긴 고유나도 눈을 번쩍 떴다.작은 공간 안에서 몸을 움찔거리던 고유나는 손바닥에 느껴지는 거친 섬유의 촉감에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설마... 보쌈이라도 당한 거야?주머니에서 나가기 위해 버둥거리던 고유나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부민혁, 네가 윤슬이랑 한편을 먹고 나한테 이런 짓을 해?”별장에 있는 사람들은 7명뿐,
몽롱한 정신에 꿈인지 현실인지 어리둥절하던 그때 고유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시혁아, 문 좀 열어봐...”그제야 부시혁은 불을 켠 뒤 방문을 벌컥 열었다.머리도 얼굴도 엉망인 고유나를 발견한 부시혁이 멈칫하다 미간을 찌푸렸다.“유나야?”“시혁아...”고유나가 눈물을 글썽이고 그제야 얼굴의 상처를 발견한 부시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어떻게 된 거야?”부시혁의 질문에 서러움이 밀려든 고유나는 더 크게 울며 부시혁의 품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부시혁이 무의식적으로 한발 뒤로 물러서자 고유나의 커다란 눈동자가 급격하게
“왜 안 돼요?”고유나가 미간을 찌푸렸다.“저희가 유나 씨를 때리는 걸 본 사람이 있나요?”윤슬의 질문에 흠칫하던 고유나가 입술을 깨물었다.“아니요.”별장에 손님이라면 일곱 명뿐, 부시혁은 그때 자고 있었고 요리사와 승마장 직원들도 현장에 없었으니 목격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그리고 저희가 유나 씨를 때렸다고 쳐요. 뭐로 어디를 때렸죠?”윤슬의 질문에 고유나가 이를 갈았다.“약으로 날 쓰러트리고 주머니에 넣어서 승마장에서 때렸잖아요.”“그렇다고 치죠. 그럼 약은요? 주머니는요? 어디 있죠?”실실 웃으며 약을 올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웃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육재원에겐 행복이었으니까.한참을 웃던 윤슬이 긴 한숨을 내쉬며 겨우 웃음을 거두었다.그리고 주머니에서 티슈 한 장을 꺼내 건넸다.“자, 이걸로 닦아.”“타이어 때문에 손 다 더러워졌단 말이야. 슬이 네가 닦아주라.”육재원이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말하고 윤슬은 그런 그를 흘겨 보았지만 결국 그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두 눈까지 감고 윤슬의 손길을 즐기던 육재원이 말했다.“역시 우리 슬이가 최고라니까.”“됐어.”한편, 달콤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부시혁의 주먹에 저도 모르게
“주대표 님, 칭찬 고맙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패기마저 없다면 어떻게 아랫사람들을 케어할수 있을까요? 제 말 맞죠? 주대표 님.”윤슬은 웃는 얼굴로 예의 바르게 말했다.안색이 어두워진 주호준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이를 악물며 말했다.“우리 슬이 말이 맞아.”“주대표 님도 저와 생각이 같으시다면 제가 그 사람들을 해고한 것이 잘한 일이네요. 이런 사람들이 천강 그룹에 남아있다면 오늘 다른 사람에게 몸을 숨기고, 내일이면 천강 그룹을 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에요. 빨리 해고하는 게 좋은 거죠.”윤슬이 웃으며 말했다.
“윤 대표님, 들어오세요.”“실례하겠습니다.”기획안을 손에 쥔 윤슬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여기 제 기획안이에요.”“네.”윤슬의 기획안을 두 손으로 건네받은 장 비서는 기획안을 두껍게 쌓인 서류뭉치 위에 올려놓았다.윤슬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다른 회사에서 가져온 기획안인가요?”“네. 고 대표님께서 아직이시네요.”장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윤슬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장 비서가 윤슬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예의 바르게 손짓했다. “윤 대표님 앉으시죠. 제가 커피를 내오겠습니다.”“아니에요. 다른 스케줄
윤슬의 기획안을 서류뭉치에서 꺼낸 후 기획안을 재빠르게 훑어본 고유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기획안에 대해 잘 모르는 고유나지만 그녀의 기획안이 좋은 기획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제출한 기획안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체계적인 기획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천강그룹에 출근한 두 달 만에 이렇게 완벽한 기획안을 제출한다는 것을 그녀는 상상할 수 없었다.아니야. 이건 윤슬이 직접 쓴 기획안이 아니야. 다른 사람이 윤슬을 대신해 써준 것이 틀림없어! 고유나는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질투심을 가라앉힌채 이 기획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