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윤슬의 질문에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휴, 다행이네.윤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니, 그런데 왜 저렇게 진지한 표정이래? 암이라도 걸린 줄 알았네.“그럼 배가 왜 이렇게 아픈 거죠?”윤슬이 다시 물었다.“그게... 환자분 산부인과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산부인과요?”아니, 배가 아픈데 왜... 산부인과를...“혈액검사 결과지를 보니 임신으로 의심됩니다. 산부인과로 예약잡아드리죠.”의사의 말에 윤슬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앉아있던 윤슬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병실 틈으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에 부시혁이 진료실 문을 벌컥 열었다.그 소리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던 고유나가 부시혁의 품에 안겼다.“유나야.”부시혁이 고유나의 이름을 불렀다.박수혁의 품에서 벗어나 눈물을 닦던 고유나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한 씨랑 얘기는 다 나눴어?”고개를 끄덕인 부시혁이 고유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설마 다 들은 거야?”고개를 끄덕인 고유나의 눈망울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인격장애라니... 그게 정말이야?”위로의 말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결국 부시혁은
고유나가 차가운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이 사실 시혁이는 절대 알면 안 돼요. 적어도 아이를 지우기 전까지는요.”그녀가 아는 부시혁이라면 아이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그럼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죠?”“윤슬이 어느 병원 산부인과를 다니는지 알아내요. 그리고 그 의사들을 매수하든 뭘 하든 임신한 아이한테 선천적인 문제가 있다고 무조건 지워야 한다고 말하도록 해야 해요. 수술 도중 죽어버리면 더 좋고요.”고유나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그 미소에 임이한도 가슴이 서늘해졌다.이 여자가 정말... 어렸을 때 그를 구했던
윤슬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부시혁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괜찮다고 말하려던 그때, 윤슬은 그를 지나쳐 육재원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훑어보았다.“손 괜찮아?”그 모습에 육재원이 바보처럼 헤실거렸다.“그럼, 괜찮지.”“다행이다.”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윤슬의 모습을 바라보던 부시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래. 내 걱정을 해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지금 윤슬 남자친구는 육재원이야. 육재원을 먼저 걱정해 주는 게 당연한데... 그런데 왜... 마음이 이렇게 안 좋은 걸까?부시혁의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윤슬이
“별일 아니에요.”윤슬은 두 눈을 감은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아파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인데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모습에 부시혁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차 안으로 부시혁의 손이 쑥 들어오자 윤슬의 눈빛이 흔들렸다.“지금 뭐 하는 거야?”부시혁은 아무 대답 없이 안쪽에서 차 문을 열어버렸다.“당신...”“나와.”부시혁이 명령조로 얘기했지만 윤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나오라고 하면 고분고분 나가야 해요? 내가 왜 그쪽 말을 들어야 하는데요!”“내 차에 타. 병원으로 데려다줄게.”부시혁의 말에 윤슬이 흠칫하다
신비로운 세력이 윤슬의 뒤를 봐주고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음모로 윤슬을 제거하려 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한 거겠지.윤슬을 무너트리려면 그녀의 뒤를 지키고 있는 다른 세력부터 끄집어내야 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한편 고유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푹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취조실 문이 열리고 윤슬이 경찰과 함께 등장했다.세 사람을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던 윤슬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고 대표님, 사모님도 계셨네요.”채연희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고 고도식도 콧방귀를 뀔 뿐 아무 말도 하지 않
고유나의 설명에 부시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휴, 그래.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지.”다른 인격이 한 일이니 기억이 안 나는 것도 당연했다.“미안해. 시혁아... 내가 또 사고를 친 거지?”입술을 꼭 깨문 고유나가 눈시울을 붉혔다.“네 잘못 아니야.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래, 유나야. 시혁이 말이 맞아.”뒷좌석에 앉은 고도식과 채연희도 고유나를 위로하자 그제야 고유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그런데 시혁아, 유나 일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야?”“내일이면 알게 되실 겁니다.”고도식의 질
부시혁은 눈을 껌뻑이며 대답했다.방금 엘리베이터를 나올 때는 그는 머리가 약간 어지러운 게 열이 있는다는 것을 의식했다.하지만 그는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윤슬은 손을 내려놓고 부시혁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부시혁은 그녀를 바라봤다.“왜?”“휴대폰.”윤슬은 미간을 찌푸렸고 약간 귀찮은 듯 말했다.“주세요. 부 씨 저택에 전화해서 데리러 올 사람 보내달라고 할게요.”“됐어.”부시혁은 입술을 오므리며 거절했다.윤슬은 웃으며 말했다.“왜요, 직접 운전해서 가시게요?”부시혁은 입술을 움찔했지만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