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원은 개인 소지품을 챙기고 넋을 잃은 채 회사 복도를 걸어갔다.주위의 동료들은 그녀에게 다양한 눈빛을 보내왔다. 경멸, 무시, 조롱의 눈빛을 보내오는 사람이 있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기쁜 마음에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유독 동정의 눈빛은 없었다.계단을 내려갈 때 강서연은 그녀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강서연은 순간 멈칫하였다. 일주일 전에 그녀가 경찰에 연행되었을 때 걸었던 계단 역시 이 계단이었고 그때도 이 자리에서 성소원과 마주쳤다는 사실이 기억났다.일주일 만에 위치가 바뀌었고 격세지감을 느꼈다.강서연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성소원의 살기로 가득 찬 눈빛과 눈이 마주쳤다.강서연의 가슴이 떨려왔다.그러나 이번에 성소원이 그녀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증오 외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두려움...?강서연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다시 그녀를 보려고 하는데 성소원은 이미 자신의 소지품을 안고 빠르게 모퉁이에서 사라졌다.......남자 몇 명이 술집 룸에 모여 있었고 값비싼 로마니 콘티가 반 병밖에 남지 않았다.분위기를 한창 즐기고 있는 배경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러한 퇴폐적이고 음란한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이다. 특히 구현수는 이런 곳을 싫어하지만 배경원이 자리를 만든다는 말에 다들 할 수 없이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형, 찬혁아, 마음대로 마셔!”배경원은 유리창을 통해 아래 스테이지에서 폴댄스를 추고 있는 미녀들을 관찰하면서 즐겁게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곳에 킵해 둔 술이 많으니 얼마든지 마셔도 돼요. 방한서, 너도 와!”방한서는 조금 어색해하며 예의상 미소를 띤 채 구현수를 바라보았다.“형,”배경원은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자꾸 얼굴을 찡그리지 말아요. 형수님 일은 이미 해결됐잖아요. 그리고 여기 여자들 얼굴과 몸매가 장난 없는데 보는 건 뭐... 뭐 그래 형 비록 결혼했지만 눈요기는 할 수 있잖아요.”말이 떨어지자마자 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고 강서연을 언급할 때 눈동자가 빛난다.“우리 집 서연이는 보통 여자와 달라. 발생하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큰 일 앞에서 엄청 침착해. 그래서 관중석 정중앙 자리를 배정해 줄 예정이야. 직접 두 눈으로 자신의 남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때려눕히는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맞아, 그녀는 반드시 그를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영광으로 여길 거야!구현수는 이 생각에 잠겨 전과는 다른 표정이 드러났고 입가에는 득의양양한 웃음이 피어올랐다.그는 문을 열고 룸에서 나와 지체 없이 집으로 달려갔다.배경원은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니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방한서와 유찬혁을 바라보았다.“약을 잘못 먹은 것 같은데?”“미친!”다른 두 사람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더 이상 연기할 필요 없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배경원과 웃으면서 시시덕거렸다.“너희 둘 너무 가식이야. 이런 곳에 오는 걸 즐기면서 아닌 척 연기하기는.”“어쩔 수 없어요.”방한서는 웃으며 말했다.“저희 집 도련님이 원래 좀 저기압이고 어딜 가든 압박감이 있잖아요.”“그러면 우리끼리 짠하자!”배경원은 술잔을 들고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그러면 저분이 링 위에서도 사랑만큼 성공하길 바라면서!”룸 안은 매우 떠들썩하였고 바깥에 한 수상한 실루엣이 룸 쪽을 기웃거리더니 복도 입구에 있는 기둥 옆에 숨어서 핸드폰을 꺼내 속삭였다.“소 대표님, 방금 구현수가 룸에서 나오는 걸 목격했어요. 친구들과의 모임인 것 같은데요...”“무슨 친구?”“그게...”그는 우물쭈물 답을 하지 못했다.배경원은 하이레벨 VIP로서 그의 전용 룸은 지극히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안에 있는 사람을 전혀 볼 수가 없다. “됐어 됐어!”소진명은 짜증이 났다.“그러면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들었어?”“못 들었어요.”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런데 구현수가 룸에서 나올 때 무슨 복싱시합에 참가한다는 얘기를 언뜻 들었어요.
강서연은 어리둥절하다가 놀랍기도 하고 기쁜 마음에 윤문희의 손을 덥석 잡았다.“엄마, 절 알아볼 수 있겠어요?”윤문희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눈빛은 여전히 풀려있었다.“엄마!”강서연은 감격에 겨워 머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놓고는 입을 열었다.“드디어 절 기억하신 거예요? 한동안 찬이만 기억하셔서 얼마나 슬펐는데요.”윤문희의 창백한 얼굴에 웃음기가 흘렀고 마른 손으로 살며시 강서연의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서연이... 서연이야.”그녀는 중얼중얼 속삭였다.비록 내뱉은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강서연은 이미 너무 흡족스럽다.“엄마, 오늘 날씨도 좋은데 우리 나가서 산책이나 할까요?”윤문희는 반응이 없었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때때로 잘 들리지 않는 말을 얼버무렸다.강서연은 여전히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았고 방금 전의 즐거움은 점차 상실감으로 대체되었다.“엄마...”“서연이.”윤문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 딸 서연이, 너 강서연이야. 너... 강 씨야?”강서연은 순간 멍해졌다.갑자기 윤문희의 흐리멍덩했던 눈동자가 흉악함으로 가득 찼다.“엄마?”“너 강 씨야. 넌 강명원의 딸이야!”강서연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윤문희가 그녀의 머리채를 꽉 잡았다. 그녀는 너무도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윤문희 힘은 갑자기 신기할 정도로 강해져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는 놓지 않으려 하였다.두피와 두골이 분열될 듯한 심한 통증이 갑자기 세게 밀려왔다.“하지 마요. 엄마, 하지 마요!”윤문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그녀를 잡아당겨 힘껏 내팽개쳤다.강서연 사람 전체가 궤짝에 세게 부딪쳤고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그녀가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는데 윤문희가 갑자기 달려와 그녀의 아랫배를 향해 세게 발길질을 하였다.“이 아이 싫어... 이 아이 싫어!”윤문희는 계속 헛소리를 하였다.“지워. 지워.”강서연은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밖에 있던 간호사들은 인기척을 듣고 뛰어 들어왔다.그러나 윤문희가 히스테리
신석훈도 그녀를 알아보고 순간 웃음꽃이 만개했다.“강... 강유빈 씨 맞죠? 이런 우연이,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요?”강서연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신의사는 그녀와 구현수의 중매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강유빈을 대신해 시집간 사실을 모르고 있다.“전 강서연이예요.”그녀는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이 일은 말하자면 좀 길어요. 나중에 천천히 설명할게요.”신석훈은 멍해 있다가 바로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에이, 이름이 강유빈이든 강서연이든 강 씨 집안 딸은 맞잖아요. 중매를 괜히 선 거 아니네요. 맞다, 구현수 씨와는 어때요? 강주시로 이사 가고 나서, 저도 오성의의학원에서 한동안 연수를 하면서 연락이 뜸해진 것 같아요.”“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강서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아니면 퇴근하시고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현수 씨와도 한동안 못 만났잖아요. 제가 요리해드릴 테니 둘이 한잔 마셔요.”“너무 민폐잖아요.”신석훈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그리고 제가 확인해야 할 병력 차트가 아직 많아서요...”병력 차트라고 하니 그는 갑자기 방금 병실에서 발생한 일들이 생각났다.“혹시... 방금 그 분 서연 씨 어머니세요?”강서연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신석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그는 속사정을 모르지만 만약 자신에게 이런 어머니가 계시다면 너무도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강서연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여기에 있으니 대신 잘 보살펴 드릴게요.”“고마워요.”방금도 이 친절한 의사 덕분에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기에 강서연은 그에게 고마운 감정으로 가득 찼다.“신 선생님, 혹시 이 요양센터의 의사세요?”“그건 아니에요.”신석훈은 웃으면서 설명했다.“제 전공은 외과이고 정신과는 부전공일 뿐이에요. 단지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왔을 뿐이라 연수 기간이 만료되면 이곳에서 떠날 거예요.”“아, 네.”“그런데 저 남성에 진료
강서연이 의아한 듯 눈길을 돌렸다.‘저 사람?’임우정이 가르키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소진명의 옆모습이 보였다. 장내시야가 비록 밝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임우정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혹시 소 대표도 너의 신랑 팬이니?”강서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는 근래 구현수를 자꾸 수소문하던 소진명의 이상 행동이 떠올랐고 분명 여기 나타난 사실이 우연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설마 진짜 예전에 구현수랑 원수 진 적이 있나?’권투 선수가 다치는 건 흔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복싱 경기장이기에 더욱 느낌이 싸했다. 막말로 여기서 구현수한테 맘먹고 손을 대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거란 생각에 강서연은 걱정이 앞섰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경기장은 이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곧 경기가 시작될 타이밍에 사람도 붐비었을뿐더러 경기장의 지리를 잘 모르는 그녀가 당장 백스테이지를 날아가 알려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망설이나 싶더니 휴대폰을 꺼내 밖으로 나가면서 신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경기는 넘치는 열기에서 진행되고 있었다.상대가 연속 챔피언을 했던 경력 있는 선수라고 하지만, 구현수의 상대라고 하기엔 너무 시시한 정도였고 경기 시작해서 몇 라운드는 잘 치렀다.구현수는 경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실력을 내보였고 경기장 분위기도 점점 들끓어 갔다.관중석에서는 깃발까지 흔들어 대며 응원했다.구현수는 철갑 맹수같이 흉맹했고, 그저 사나운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이 공격했다. 몇 번의 멋진 훅 동장은 시원시원했고 정곡만 찔렀다.한 라운드 진행되니 상대 선수는 로프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구현수를 바라보았고 그 눈빛은 조금 겁먹은 모습이었다. 심판이 타임을 외쳤고 양측은 잠시 숨을 고르면서 상태조정을 했다. 구현수는 그 틈에 링 아래를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구현수는 이내 눈썹을 찡그렸다. 백스테이지에 있을 때 분명 그 자리에 서 있는 그
“그러네. 저놈이 앞에 라운드를 날아다녔던 건, 먹으면 안 되는 약을 먹은 게 아닌가 싶은데. 약발이 떨어지니까 맹해진 거지!”그 소리에도 소진명의 의심은 먹구름처럼 짙어져 갔다.구현수를 지켜보던 배경원과 유찬혁도 손에 땀을 쥐었고, 특히 배경원은 발을 동동 구르며 유찬혁을 향해 끊임없이 물으며 걱정을 토했다.“저 형, 왜 저러는 거야!”유찬혁은 방방 대는 그를 자리에 앉히며 조용히 하라고 눈짓했고, 주위 눈치를 살피다가 흐릿하게 소진명의 모습을 보았다.“쉿! 형이 저런 행동하는 건 분명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소리 지르지 마!”“설마 형수가 안 본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현장은 또 한바탕 소란스러웠고 비명까지 들렸다. 구현수는 무릎을 꿇은 채 왼쪽 갈비뼈 위치에 손을 대고 아파했고 이마엔 피가 땀에 섞여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현수 씨...”강서연은 그 시점에 빠른 걸음으로 경기장에 들어와 하필이면 그 모습을 봤고 어안이 벙벙했다.그녀의 눈에 구현수는 싸우면 질 줄 모를 것 같던 존재일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얻어맞아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제대로 충격받아 놀랐다.강서연은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고 애간장을 타며 링을 향해 뛰쳐나가다가 가까이 있던 보안요원에게 저지당했다. 그녀의 애타는 외침마저도 경기장의 소란 속에 묻혀버렸다.강서연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 버텼는지 자신도 모를 정도였고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나기 전까지 거의 링 위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승부 판정이 나자 가장 먼저 인파를 뚫고 뛰쳐나갔다.“강서연 씨,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아는 구현수 씨는 기본이 깔려있어서 저 정도 상처에는 크게 다치지 않았을 거예요!”신석훈이 마침 도착했다.“신 의사님, 제발... 잘 부탁해요. 저 너무 무서워요.”강서연은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눈물을 머금은 채 부탁했다.“괜찮아요, 괜찮아! 백스테이지 어떻게 가요? 같이 가보죠.”소진명도 두 사람을 데리고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
소진명은 멈출 생각 없이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석훈이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미소를 건네며 그를 막아섰다.“소 대표님, 이건 ...”소진명의 옆에 선 이들도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였고,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배경원과 유찬혁은 소진명이 분해서 발을 구르고 검푸른 낯빛을 하고 떠나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소진명이 뒤돌아서지 않는 것을 보고서 배경원이 바로 달려 나가려 했고 이내 유찬혁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뭐 해?”“연준 형 보러 가야지!”“가지 마, 저기 서연 씨도 있고 의사 양반도 있으니 충분해!”유찬혁이 눈치를 줬고 배경원은 조급해했다. 유찬혁은 배경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준 형을 돕고 싶다면, 차라리 소 대표 저 사람 내막을 조사해 내는 게 빨라.”배경원은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빠른 걸음으로 유찬혁과 같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서서히 눈을 뜬 구현수의 시야에 들어 온 것은 온통 흰 배경이었다.방 안에는 약 냄새가 진동했다. 어렴풋이 간헐적으로 들리는 여자의 울음소리에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몸을 일으키려 하자 부드러운 작은 손에 의해 어깨가 눌려 힘을 쓰지 못했다.“움직이지 말아요! 몸을 다쳤으니 잘 돌봐야 해요. 힘쓰지 마요.”강서연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얘기했다.구현수는 눈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몰라도 그녀를 볼 수 없던 시간은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지금 그녀가 눈앞에 있다는 안도감에 그녀의 손을 잡았고 여느 때처럼 엄지로 그녀의 손등을 매만졌다. 원래도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이어서 그녀는 더욱 수척해 보였고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또 두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빨갛게 부어있었다.“마누라...”“나랑 했던 약속은 다 잊었어요?”강서연이 안타까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현수 씨, 내가 말했잖아요. 죽을 지경으로 하지 말라고. 이기든 지든 상관없어요. 난 당신만 무사하면 된다고 했잖아요! 싹 다 잊은 거죠?”
구현수는 마음이 철렁거렸고 강서연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한 말들을 마음에 담아두면 안 돼요? 몇 번을 얘기하지만, 나는 당신이 다치지만 않으면 돼요. 다른 건 신경 안 써요! 현수 씨, 다신 다치지 마요!”늘 온순한 모습의 강서연이 어쩌다 이런 막무가내식의 태도를 보였다.구현수는 그런 그녀가 되레 더 좋았다. 가만히 강서연을 바라보는 그의 입꼬리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한테서 보기 쉽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었다.그 순간 그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뭐가 되었든 내 남편이라던 그녀의 말에 용기를 내서 말이다.‘구현수가 아니라 최연준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여전히 남편으로 받아들이겠지?’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사실을 꺼내 놓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삼촌 최진혁과의 기나긴 전쟁이 예고돼 있기에, 결과를 알 수 없는 복싱 경기처럼 승부가 선명해지기 전까지 그녀를 이 시비에 휘말리게 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서 살짝 웃어 보였다.“여보. 날 믿어줘. 내가 멋지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줄게.”두서가 없는 말에 강서연은 어리둥절했다.“내가 내뱉은 말이니까 꼭 지킬게.”구현수는 진지하게 약속했다.“그래요.”그녀는 웃어 보이며 답했지만, 구현수의 말속의 말을 알아채지는 못했다.링거가 다 떨어졌고 강서연은 간호사를 부르러 나갔다. 바로 그때 구현수의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구현수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고, 병실을 들어오는 강서연을 기다렸다가 속닥이듯 물었다.“여보, 뭐 먹을 게 없을까?”강서연은 핸드폰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얘기했다.“배고파요? 석훈 씨가 죽 같은 걸 먹는 게 좋다고 했어요. 이렇게 해요. 내가 나가서 영양죽을 금방 챙겨 올 테니 기다려요.”“그래.”구현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강서연은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병실을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배경원과 유찬혁이 병실을 기웃거렸다. 구현수가 헛기침하고서야 두 사람은 히죽거리며 걸어 들어왔다.“형, 놀랬잖아요!”구현수는 두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