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의 부상은 회복이 필요했기 때문에 구현수는 강서연을 집으로 데려와 돌봐주었다.처음에 강서연은 구현수가 집안일을 할 줄 모르고 요리하는 것조차 서툴렀기 때문에 그녀가 다쳤을 때 집안이 엉망이 될까 봐 걱정했다.하지만 구현수가 그녀를 안고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앞이 반짝 빛이 났다.집은 깨끗했고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그녀가 다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나쁘지 않지?”구현수는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선생님의 칭찬을 기다리는 어린 소년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서연은 생긋 웃었다.그녀는 늘 남편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평소에 그가 여러 언어로 된 경제 뉴스를 훑어볼 때뿐이었다.집안일에서도 유능한 사람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잠시 후 구현수는 요리 두 접시를 들고 왔다.강서연이 맛을 보았는데 소금을 조금 많이 친 것 빼고는 맛이 괜찮았다.이 정도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놀랐고 만족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내 남편이 제일 유능하다고!”그녀는 고개를 들어 귀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다친 것도 좋은 일이네요.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 해주기를 기다리면 되고!”“좋아.”구현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약간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오늘 밤에도 잘 모실게, 어때?”강서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구현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으면서 음식을 크게 베어 물었다.강서연에게는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샤워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구현수는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단번에 거절했다.구현수는 가볍게 웃었다.“우리는 이제 부부인데 아직도 그게 신경 쓰여? 지금 다리가 불편하니까 당신이 샤워할 때 내가 도와주는 게 맞아.”강서연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작은 두 손으로 옷의 모서리를 잡아당겼다.구현수는 그녀가 긴장한 것을 보고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그저 그녀의 처진 눈꺼풀과 앵두 같은 입
강서연은 혼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의 말에 수줍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고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남자의 뜨거운 키스를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이른 아침 구현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예전에 최씨 가문에 있을 때 그는 가끔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무를 처리했다. 그는 항상 일찍 일어났고 수년 동안 변함없는 습관이 되었다.그러나 어젯밤 그녀 때문에 그는 난생처음으로 늦잠을 자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서연은 달콤한 잠에 빠져있었는데 자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 달콤한 향기가 또다시 그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억제했다. 어젯밤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지쳤을 것이다.구현수가 일어나자 갑자기 휴대폰 화면이 밝게 켜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는 티셔츠를 입고 침대에서 일어나 조용히 베란다로 걸어갔다.“형님, 이렇게 이른 시간에 혹시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유찬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유찬혁이 가볍게 웃었다.“형님네 어르신께서 최근에 최진혁 밑에 있는 계열사를 다시 회수하셔서 지금 최씨 가문에서 형님이 그에게 한 방 먹였다고 소문났어요.”구현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가 한 방 날린 것이 맞았다.할아버지는 그를 예뻐하셨다. 그리고 최진혁이 장부를 아무리 완벽하게 위조해도 할아버지는 그 틈을 알아보셨다. 게다가 최씨 가문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최진혁보다 더 오만한 사람들도 많았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있으시지만 노쇠하지는 않으셨다.그래서 그는 최진혁을 처벌함으로써 실제로는 다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날린 것이었다.“둘째 삼촌은 어때?”구현수는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어르신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해요.”유찬혁은 웃었다.“둘째 삼촌 몰라
얼마 후 다리 부상이 마침내 다 나았고 강서연은 기다릴 수 없어 병원에 가서 진찰도 안 받고 서둘러 출근했다.강서연을 본 안이수는 기뻐했다. “드디어 돌아왔네요! 서연 씨가 제 옆에 앉아 있지 않으면 제가 일할 때 힘이 안 나요!”강서연은 웃으며 말했다.“한동안 못 봤더니 말을 점점 더 잘하시네요!”“서연 씨, 저 서연 씨한테 정말 죄책감이 들어요! 전에 제가 서연 씨와 함께 저녁 식사 자리에 간다고 고집했으면 서연 씨가 그 비열한 인간들한테 당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강서연의 안색이 변하더니 서둘러 안이수를 사람이 적은 복도로 끌어갔다.“이 일... 벌써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어요?”안이수는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아니요. 회사에서는 서연 씨가 갑자기 병가를 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담당자님은 서연 씨가 실수로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그 당시에도 모두가 함께 병원에 서연 씨를 보러 병문안을 가고 싶어했지만 담당자님께 제지당했어요."강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총괄 담당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이치에 밝고 분별력이 있어 많은 일들에서 적절한 행동으로 넘어가고 쉽게 나서지 않는 것일 뿐이다.“그래서 누가 의심을 해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아요.”안이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미 지나간 일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실수로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다고 해요!” “네.”총괄 담당자가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았다. 그녀는 여성이고, 평판이 중요했다. 이런 일이 밖으로 소문나면 듣기에 좋지 않다.“그건 그렇고, 서연 씨에게 좋은 소식 전해줄 거 있어요!”강서연은 안이수의 기쁜 표정을 보고 가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뭐가 그렇게 기쁜데요?” “손지창과 방진영 이 두 화근, 이제 우리 회사에 없어요!”“뭐요?”강서연은 충격을 받았다.“그럼 그 사람들은...”“저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연 씨가 입원한 다음 날 방진영이 상자를 안고 걸어가는 것을 봤어요. 그 인간이 떠날
윤찬은 땀을 많이 흘렸고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눈이 약간 빨갛게 충혈되었다.그는 강서연이 뛰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했고 너무 급한 나머지 그녀를 붙잡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누나, 집에 큰일 났어!""무슨 일이야?""누나의 언니가..." 그는 숨이 찼다.“강유빈 그 여자가 우리를 쫓아내겠다면서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왔어!"강서연은 귓가가 윙윙거렸고 머릿속이 하얘졌다."그 여자가 많은 일꾼을 데려와서 집을 다시 회수한다면서 자기가 사용할 수 있게 새로 인테리어하겠다고 말했어! 누나, 저 집은 누나 아버지가 우리 엄마한테 주신 거 아니야? 그 여자가 무슨 권리로 되찾겠다는 거야!"강서연은 심장이 두근거렸고 강유빈이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해 잠시 당황했다."일단 돌아가서 보자!" 그녀는 윤찬을 진정시켰다."우리가 그 집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바로 회수할 수는 없고, 그사이에 오해가 있을지도 몰라!”“무슨 오해가 있을 수 있겠어? 강유빈의 나쁜 짓이 틀림없어!" 윤찬은 분노했다.“오늘 그 여자가 우리 집에 많은 사람들을 데려와서 나를 쫓아냈어... 흥,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없었지만 매형은 이길 수 있잖아!""뭐라고?" 강서연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고 그녀의 작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네 매형이 이미 이 일을 알고 있다고?""맞아!" 윤찬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큰일이라면 당연히 매형이 결정해야지!""너!"강서연은 불안하고 화가 난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그제야 윤찬은 깨달았다.구현수가 강유빈을 만나면 숨기고 싶은 모든 것을 더는 숨길 수 없을 것이다!"누나, 나...”윤찬은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았다."내가 일부러 말한 게 아니라 급하고 무서워서 매형한테 전화한 거야!"강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매형한테 뭐라고 말했어?”"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누군가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말했고 주소를 보내줬어!”강서연은 잠시 말을 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
강서연이 멍한 얼굴로 자리에 굳어버렸다. 너무나도 억울한 나머지 그녀의 몸은 부르르 떨려오기까지 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고 두 글자 내뱉었다.“안 돼.”강유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강서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여긴 우리 집이야. 아빠가 우리 엄마한테 준 거라고! 우린 이미 이곳에서 수년을 살았어. 그러니까 어림도 없는 말 하지 마!”“하하. 너 그 말을 하는 게 얼굴이 뜨겁지도 않아?”강유빈이 표독스럽게 비웃으며 소리쳤다.“네 엄마라는 그 하찮은 작자를 들먹여? 그 여자가 우리 아빠한테 집을 받을 자격이나 돼? 우리 아빠는 그저 너희들이 하도 불쌍해서 잠시 등 붙일 곳을 마련해준 것뿐이야. 그래. 백번 양보해서 너희 엄마가 우리 아빠를 한동안 보살펴준 공이 있다고 하자고. 그렇게 널 낳았고. 하지만 쟨 도대체 뭔데!”강유빈이 윤찬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저 정체불명의 잡종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우리 강씨 가문의 집에 사는 거야!”윤찬은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이 복잡하고 괴이한 가정 관계는 늘상 그로 하여금 친구들 사이에서 당당히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조금 전 강유빈이 하필이면 그가 가장 아파하는 곳을 바늘로 찌른 것이다. 순간 그동안 꾹꾹 놀러 오던 감정이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그 입 다물어!”그는 강유빈을 쏘아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시퍼런 핏줄이 툭툭 튀어 올랐고 손톱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당장이라도 팔만 뻗으면 강유빈을 날려버릴 것 같았다.강서연은 그가 사고를 칠까 봐 두려워 다급히 달려나가 그를 막아 세웠다.강유빈은 처음엔 깜짝 놀라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지만 이내 강서연과 윤찬이 정말 자신에게 손을 대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에 더더욱 그들을 몰아붙였다.“내 말이 틀려? 이 집안엔 정상적인 사람 하나 없어! 다 쓰레기들이야!”“강유빈, 선 넘지 마!”“선 넘으면 어찌할 건데?”강유빈이 강서연을 확 밀치며 말했다.“하찮은 년, 빨리 네 잡종 동생을 데리고
“당신들 죽었어?”강유빈이 주위에 서 있던 몇 명의 운반공들을 향해 소리쳤다.“당신들한테 구경이나 하라고 내가 돈을 준 줄 알아? 빨리 와서 날 도와!”하지만 그들은 구현수의 날카로운 눈빛에 겁을 먹고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강유빈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독기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 순간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은 남자의 기세에 압도당해 간담이 서늘해졌다.“강... 강서연!”그제야 덜컥 겁이 난 그녀가 소리쳤다.“빨리 네 남편을 막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똑똑히 일러두는데 오늘 감히 날 건드린다면 곧장 경찰에 신고해 다시 콩밥을 먹게 할 거야!”그녀의 말을 들은 구현수가 자신의 손에 힘을 더 거세게 가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그의 미소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이 저려오게 만들었다.강유빈은 다리에 힘이 풀려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그의 눈앞에 꿇어앉았다.“강씨 집안 아가씨라는 사람이 말끝마다 욕설을 지껄이다니, 입이 너무 천박하고 더러운 거 아니에요?”구현수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왜 그런 거예요? 설마 강씨 집안이 당신에게 치약 하나 사주지 못할 정도로 타락한 건가요?”말을 마친 그가 힘껏 팔을 휘두르자 강유빈의 몸 전체가 벽에 강하게 부딪혔다.강서연이 다급히 달려가 그를 막아 세우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구현수가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그는 종래로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강유빈이 끝을 모르고 도발을 해대니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는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니 차라리 이 지독한 여자를 끝장내 버리리라 생각했었다.하지만 강서연의 눈동자에 비친 걱정스러움과 간절함을 보고 나니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강서연은 강유빈이 아닌 그를 위해 막은 것이라는 걸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가 정말 강유빈에게 상처를 입히기라도 한다면 정말 경찰서에 잡혀가 감옥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구현수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안심해도 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어 그가
고기를 썰던 강서연의 손이 멈췄다. 얇은 입술을 꽉 깨문 그녀의 얼굴에 복잡함이 피어올랐다.그녀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졌다. 이어 진주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미안해요... 제가 현수 씨를 속였어요. 난 강유빈이 아니라 강서연이에요. 난 강씨 집안 아가씨가 아니라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사생아일 뿐이에요. 그래서 돈도 없어요... 화가 난다면 어떻게든 보상해 줄게요. 어떻게 보상할지는 현수 씨 뜻에 따를게요. 그러니까 엄마와 찬이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두 사람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요. 난...”“정말 내 뜻에 따를 거야?”구현수가 입꼬리를 슥 올리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네?”그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요구하는 보상은 아주 비싸.”강서연은 살짝 겁을 먹었지만 단호히 말했다.“괜찮아요. 그게 무엇이든 꼭 현수 씨를 만족시켜 줄게요.”구현수는 돌연 그녀의 가는 허리를 감싸 안고는 초롱초롱한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그가 진지한 얼굴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넌 나와 한평생 함께 사는 거로 보상해야 해.”강서연은 의외라는 듯 눈이 휘둥그레 졌다.“왜 그래? 한평생이 짧아?”그가 빙그레 웃음 지었다.“그럼 다음 생에도, 다음다음 생에도 함께 있어 줘.”그녀가 멍한 얼굴로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드디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얼굴로 그의 가슴에 기대고는 그를 꼭 껴안았다.구현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다정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강씨 집안 아가씨가 아니라 너라는 사람 자체야. 그리고... 내 출신 또한 별 볼 것 없잖아. 그런데도 넌 날 밀어내거나 싫어하지 않았어. 널 얻은 건 내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야.”“현수 씨는 내 남편인데 왜 밀어내겠어요?”“그러니까.”그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넌 내 아내인데 왜 내가 너한테 화를 내겠어?”강서연이 그제야 환한 웃음을 지었다. 두 볼에 사랑스
강서연이 잠시 멈칫하고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실은 저도 찬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몰라요. 제가 기억하는 건 7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엄마가 저를 이웃 사람에게 맡겨두고 예쁘게 꾸민 채 나갔다는 거예요. 그로부터 한 달 뒤에야 돌아오셨어요.”“제가 엄마한테 버려진 거로 여겨 절망하려고 할 때 엄마가 돌아왔어요. 떠나기 전처럼 여전히 아름다웠어요. 다만 두 눈엔 광채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마치... 마치 살아있는 송장 같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반응해주지 않더라고요.”“그 뒤로 얼마 후 엄마는 찬이를 낳았어요.”강서연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엄마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죠. 두 사람이 싸우던 그 날, 전 엄마가 아빠를 보며 지은 웃음을 봤어요. 정말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등골이 서늘해져요.”“그날 아빠는 수표 하나를 던져놓고 떠났어요. 그 뒤론 다시 돌아오지 않았죠. 제가 결혼하기 전까지 말이에요.”강서연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마 그 돈으로 저랑 엄마와의 관계를 끊어낸 거겠죠.”구현수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가냘픈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그는 지나간 그녀의 삶에서는 함께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론 절대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다....구현수가 유찬혁의 사무실에 앉아있었다.그곳에 들락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찬혁은 명실공히 능력 있는 변호사이다. 때문에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에서 한자리하는 거물들이다.하지만 구현수는 후줄근한 차림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있었다. 거기에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과 냉랭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의 신분을 유추하게 만들었다.“유 변호사가 어떻게 저런 사람을 아는 거죠?”“요즘 형사 안건 몇 개를 맡았다고 하던데... 설마 범죄 용의자가 찾아온 걸까요?”구현수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힐끗 시선을 돌리자 그들은 흠칫 놀라며 자리를 떴다.유찬혁의 다급한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