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돼?”“오후 1시에 두 예능 스타와 면담이 있고 2시 반에는 회사 내부 회의가 있어요. 그리고 3시 10분에서 5시까지 몇몇 중요한 언론사와 미팅이 있는데 협상을 타결해야 합니다. 저녁 7시에는 연예인 매니저와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요. 장소는 멘하 센터의 회전 레스토랑입니다.”강서연이 조리 정연하게 보고했다. 비록 출근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심하고 꼼꼼하며 무슨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처리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을 깔끔하게 안배했고 방안도 아주 잘 써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김자옥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을 참 잘 뽑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바쁘게 움직이는 강서연을 보고 있자니 최연준은 마음이 아팠다.아침에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급히 나갔고 늦은 밤까지 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다크서클이 선명한 채로 일어나는 일도 자주 있었다.강서연은 어마어마한 양의 업무량도 전부 감당했지만 그걸 바라보는 최연준은 받아들이지 못했다.“엄마.”그가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서연이 지금 많이 힘들잖아요. 계약 행사에 함께 가려는 건 쉬게 하려는 거예요. 잠깐 쉬고 나면 정신도 맑아지고 업무 효율도 높아질 거예요.”최연준과 눈이 마주친 강서연은 히죽 웃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늘어뜨렸다. 하지만 김자옥의 귀에는 강서연이 지금 많이 힘들다는 말밖에 들리지 않았다.“서연아.”그녀가 부드럽게 물었다.“요 며칠 일하는 게 힘들었어?”“아니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매일 충실하게 보내서 너무 좋았어요.”김자옥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난 항상 일하는 속도가 빠르고 자기중심적이라 가끔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해... 속상한 게 있다면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나한테 말해, 알았지?”강서연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여기 업무 환경도 좋고 대표님 옆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최연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늘 부하를 사정없이
계약 행사의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참석한 사람들 모두 최연준이 사업할 때 왕래하는 신분이 귀한 사람들이었다.서교 땅 프로젝트는 여러 면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었고 이번 계약은 주로 몇몇 건축 회사와 디자인 회사와의 계약이었다. 그리고 이 계약서에 강서연이 사인해야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강서연은 한창 대기실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메이크업 담당자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의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였고 비서가 밀고 온 옷걸이에는 눈이 부시게 빛나는 고급 드레스가 걸려있었다. 전부 그녀를 위해 맞춤 제작한 것이라 단 한 벌 뿐이었다.스타일리스트들은 메이크업에 어울리는 옷을 고르고 있었고 강서연은 펜을 움직이며 서류 몇 장에 사인했다.그때 최연준이 노크하고 들어왔다. 무척이나 진지한 강서연의 모습을 바라보는 최연준의 두 눈에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는 그녀 옆에 앉아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손을 흔들며 그만 나가보라고 했다.방 안에는 최연준과 강서연 단둘만 남게 되었다.“다 사인했어요.”강서연은 계약서를 그에게 건넸다.“그래.”최연준은 계약서를 잘 챙긴 후 그녀를 쳐다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이게 다 뭔지 알아?”“그럼요. 조항 하나하나 다 꼼꼼하게 확인했어요. 아무 문제 없어요!”최연준이 피식 웃었다.사실 그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 그녀에게 사인하라고 했다. 그런데 세심한 성격의 그녀는 또 한 번 빠르게 확인했다. 역시 그녀는 그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머리가 좋았다.“이해가 안 가는 게 있는데...”강서연이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연준 씨네 회사 프로젝트 아닌가요? 그런데 왜 나한테 사인하라고 하는 거예요?”“왜냐하면...”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프로젝트마다 이익과 리스크가 공존하잖아. 당신한테 사인하라고 한 건 수익을 나누기 위해서고 또... 리스크가 생기면 내 편에 서서 나랑 함께 이겨내 주길 바라서 그랬어.”“그건 당연하죠.”강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팔짱을 꼈다. 눈망울이 어찌나 맑고 순수한지 마
임나연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어요.”강서연은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기실 안에 호신용 도구가 있는지 힐끔거렸다.“서연 씨, 연준이 마음속에 난 영원히 서연 씨보다 못한 존재라는 거 알아요.”임나연이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나랑 연준이 결혼은 할아버지께서 정한 거예요. 우리 임씨 가문과 최씨 가문은 대대로 친분을 이어왔고 끊고 싶다고 해서 쉽게 끊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그 말 이미 여러 번 들었어요.”강서연이 덤덤하게 말했다.“나연 씨, 어떤 일은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단지 대대로 친분을 이어왔다는 이유로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고요.”“나도 알아요.”임나연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사실 난 진작 마음 접었어요. 연준이 내 것이 아니라면 그만 포기해야죠. 어쨌거나 연준이는 서연 씨랑 있을 때 더 즐거워하니까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서연 씨도 연준이랑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강서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오늘 이런 자리는 난 어릴 적부터 자주 다녀서 아주 여유로워요. 그리고 연준이는 기자가 있는 걸 싫어해서 그 어떤 언론사로 초대하지 않았어요. 이따가 난 또 연준이랑 프랑스 바이어와 일 얘기도 좀 해야 해요.”임나연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서연 씨, 우리가 얘기 나눌 때 옆에서 혼자 뻘쭘한 건 아니겠죠? 우리가 하는 얘기 하나도 못 알아듣잖아요.”강서연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연 씨는 연준이랑 어울릴 만한 가문도 없고 지식과 능력은 더더욱 없죠. 나중에 두 사람이 결혼한다고 해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요? 연준이는 그냥 서연 씨한테 한순간의 새로움을 탐해서 만나는 거고 나중에 차이가 점점 벌어지면 여전히 처음과 같은 마음일까요? 강서연 씨?”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임나연은 더욱 득의양양했다.“내가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다 서연 씨를 위해서예요. 서연 씨는 진짜 뭐
임나연은 제자리에 굳은 채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강서연은 웃으며 우아하게 대기실을 걸어 나갔다.사실 그녀는 딱히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상대가 기어코 싸움을 걸어온다면 굳이 양보할 필요 없이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조금 전 자신을 최씨 가문의 안주인이라고 큰소리쳤으니, 안주인의 카리스마를 뽐내야 했다.그녀는 연회장으로 걸어가 최연준의 옆에 서더니 덤덤하고 여유롭게 그의 팔짱을 꼈다.“음, 드레스 잘 골랐네.”최연준이 가볍게 웃었다.“사람들이 다 당신을 쳐다보고 있어.”“당신이 골라준 건데 안 어울릴 리가 있겠어요?”그녀는 사랑스럽게 그에게 기댔다.그때 방한서가 몇몇 프랑스 바이어와 함께 걸어왔다. 최연준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고 강서연을 그들에게 소개하려던 그때 임나연이 갑자기 나타났다.“연준 씨!”그녀가 나타난 순간 많은 이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다.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최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최연준이 임나연과 무조건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최연준은 강주에서 돌아왔을 때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다.외부에는 강서연에 관한 여러 추측만 떠돌았고 오늘에서야 강서연의 실물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임나연이 나타났다...사람들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임나연은 최연준 앞으로 요염하게 걸어오고는 일부러 옆에 있는 강서연을 힐끔거렸다.“연준 씨, 프랑스 바이어 분들은 내가 초대한 거예요. 그리고 통역사도 데려왔어요.”“그래요.”최연준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임나연이 돌아서서 통역사에게 눈짓하자 통역사는 바로 알아듣고 불어로 프랑스인들에게 말했다.“계약 행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최 대표님이랑 임나연 씨께서...”“최 대표님이랑 임나연 씨요?”그중 한 프랑스인이 통역사의 말을 가로채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강서연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런 어색함이 바로 임나연이 원하던 것이었다.임나연은 아주 의기양양했다.
‘그럴 리가... 강서연이 어떻게 불어를 할 줄 알지!’임나연은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지난번 최지한 쪽에서 강유빈을 마주쳤을 때부터 그 여자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나중에 강유빈이 꼬시기 쉬운 호구였던 것을 알고는 어떻게든 그녀를 매수했다.강유빈이 작업실을 차리고 싶으면 차려줬다. 그녀의 입속에서 강서연을 상대할 수 있는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그런데 강유빈이 임나연에게 준 것이 생각지 못한 가짜 정보였다니!그날 그녀는 분명히 임나연에게 장담했다. “나연 씨, 걱정하지 마세요! 서연이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별로 다니지 않았어요. 학교에 가도 공부를 못해서 별로 배운 것이 없어요! 걔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돈을 주고 학적을 산 것이에요!”임나연은 너무 화가 나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강유빈이 강서연을 질투해서 지어낸 허튼소리일 수도 있는데, 그녀는 그 말을 어리석게도 믿었다!“아가씨.”갑자기 뒤에서 방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나연은 그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정말 도련님께서 불어를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련님은 어릴 때부터 유럽에서 자라왔고 매년 몇 번이나 파리에 갑니다. 불어를 말하는 것은 도련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방한서는 비꼬며 말했다.“하지만...”그러나 예전에 최연준은 상업 담판에 참여하든 연회에 참석하든 외빈이 있는 자리가 있으면 통역을 데리고 다녔다.‘못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속이고 다닌 거야!’임나연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방한서를 한번 노려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연회에서 떠났다.연회가 끝나고 나서야 강서연은 최연준의 손을 잡고 마당에서 산책했다.밤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조금 전에 임나연을 만났던 불쾌함을 전부 날려버릴 정도였다.두 사람은 한가롭게 거닐었다. 달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바닥에 깔았는데 마침 강서연의 머리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둘 다 모처럼의 고요한 순간을 즐기는 중이다.“무슨
“왜 저를 노려보는 거예요?”강서연은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서연이, 너...”그는 말하다가 말았다. 어떻게 계속 말해야 할지 몰랐다. ‘부드럽게 말할까, 세게 말할까, 태도는 강력하게 나가야 할까, 아니면 서연이랑 상의할까? 또 어떻게 완곡하게, 말을 가려서 해야 할까...’최연준은 입을 삐죽 내밀었고 가뜩이나 차가운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요.”강서연은 웃으며 작은 손을 뻗어 그와 깍지 손을 끼고 억울한 눈으로 바라봤다.“이건 당신 어머니의 뜻이에요. 무슨 수를 쓰든 나석진을 우리 회사로 계약하게 만들어야 해요. 조건이 아무리 까다로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왜 그래야 하는 건데?”최연준은 목소리를 높였다.강서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최연준은 기침을 두 번 하고 말했다.“내 말은... 연예계에 연기대상 받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왜 꼭 그 사람이어야 해?”가능하다면, 최연준은 나석진을 연예계에서 퇴출해 내고 싶어 한다!“그렇죠, 연기대상 받은 사람이 많긴 하지만, 연기력이 있고 화제성이 있고 팬층이 두꺼운 건 그 사람뿐이잖아요!”최연준은 정말 어이없어했다.“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업계에서 그렇게 인정받지는 못했잖아요. 비록 최상 그룹이 있었지만 그래도 잘 경영하지는 못했어요. 지금의 어진 엔터테인먼트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고 같은 시기의 몇몇 연예기획사들 앞에서는 경쟁력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의 회사는 중량급 인물이 시급해요!”최연준은 침묵했다.강서연은 지금 그가 화를 내고 있지만 참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연준 씨.”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저는 그냥 일을 하러 가는 것이에요. 당신 그렇게 옹졸한 사람 아니잖아요...”말이 나오자마자 강서연은 약간 후회했다.‘옹졸하다고?’생각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최연준이 지금 그녀에게 내일 임나연과 만나서 밥을 먹고 일 얘기를 하겠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더 옹졸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질투심이 폭발해서 최
강유빈은 한번 멈칫하고는 마음속으로 기뻐했다.그동안 구현수는 계속 강씨 주택에 있었다. 더군다나 구현수는 게으르고 온몸이 악습으로 가득 베어져 있어 강명원은 이미 그 사람이 집에 남아있는 것을 싫어했다.다만 최지한이 시킨 일이어서 그를 쫓아내기는 쉽지 않았다.심지어 구현수가 평소에 행패를 부린 것도 다 눈감아 주었다.‘지금 임나연 뜻을 들어 보면 다시 구현수를 풀어주고 싶다는 건데... 그땐 구현수를 내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강서연까지 곤란하게 해 줄 수 있겠어!’강유빈은 웃으며 더욱 정성스럽게 임나연의 다리를 토닥였다.“아가씨,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린 그 일도 다시 한번 고려해 보세요!”“어떤 거?”임나연은 탄산수를 들면서 무심코 그녀를 쳐다보았다.“그게... 구현수랑 서연이가 결혼했다는 것을 까발리는 거요!”임나연은 눈을 살짝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저번에 최지한을 만났을 때 두세 마디 꺼냈던 거 같은데 다 말하지는 않았다.주요하게는 구현수가 나서서 소란을 피우게 하는 것이다. 자기가 강서연의 남편이라고 밝히고 최연준은 그냥 그를 대신해서 결혼한 것이라고... 어차피 혼인신고서의 가짜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네티즌들은 재미로 보는 것이지, 실제로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잣집의 스캔들만 보기 좋아할 뿐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셋째 도련님께서 어떻게 유부녀와 엮였는지...일이 커지면 강서연의 명예는 벼락까지 떨어질 것이고 평생 숨어다녀야 한다.그리고 최연준도 영향을 받아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그때 되면 임나연이 나서서 최연준을 구원할 것이다.최연준은 임나연의 헌신에 감동하여 점점 강서연을 잊어 간다...임나연의 얼굴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번졌고, 강유빈을 시켜 와인 한 잔을 가져오라고 하고 원샸했다.“구현수는 지금 뭐 하고 있어?”“며칠 전부터 아프다고 들었어요.”강유빈은 공손하게 대답했다.“그저 보통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것뿐이에요. 아빠가 의사를 찾아 주었으니 금방 나을 거예요!”“응.”임나연은 고개를
“뭐라고?”임나연은 당황했다.“걔가 사람도 때린다고?”“맞아요! 이 계집애가 사람들 앞에서만 불쌍한 척하고 뒤에서는 완전 딴사람이에요! 그 여자 리더를 아주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CCTV가 없는 곳에서 매섭게 뺨을 몇 대 때렸대요! 그래서... 아가씨, 우리는 생일 파티에서 미리 준비할 수 있어요!”“어떻게 하는데?”“서연이를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가서... 아가씨께서 참아줘야 해요. 혼자서 자기 뺨을 몇 대 때리고 제가 사람들을 거기로 유인해 갈게요. 다들 서연이가 때렸다고 믿을 거예요!”“이건...”임나연은 들을수록 이상하게 느껴졌다.‘왜 내 손으로 내 뺨을 때려야 하는 거지? 고육책?’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임나연은 자신이 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게다가, 강유빈의 계략에 대해서는, 그녀는 이미 백 퍼센트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계책은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만일 성공한다면?’“아가씨, 그때 가서 꼭 연약한 척을 해야 해요!”강유빈은 말만 번지르르했다.“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서연이가 악녀라는 것을 각인시켜 줘야 해요! 그러면 사람들도 아가씨 편이 될 거예요.”임나연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이 방법이 좋기는 한데... 강유빈.”임나연은 자세를 바로잡았다.“우리의 최종 목적은 강서연을 생일파티에서 망신시키는 거잖아. 강서연의 본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까발리는 거야, 맞지?”강유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 목적만 달성되면 중간 과정이 어떻든 상관이 없겠네.”“아가씨, 그 말씀은...”“자기 뺨 때리는 임무는 네가 맡아!”강유빈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사실 방금 임나연한테 이 방법을 알려 주었을 때도 약간의 복수심이 들어가 있었다. ‘감히 들어오자마자 내 뺨을 때려? 아직도 얼굴 반쪽이 얼얼한데!’임나연이 이렇게까지 똑똑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뺨 때리는 것을 거절하다니!’“아가씨!”강유빈은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다.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
백인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그때 최지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표아정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최지용은 결국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백인서를 데리고 최씨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넓은 거실에는 최군형과 강소아도 나와 있었고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인서가 들어서자, 표아정이 백인서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강소아는 백인서와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가 의아해하던 찰나, 영미가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아줌마, 지용 오빠. 제가 권온유의 행방을 알아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뭐라고?”최지용이 놀라서 물었다.“네가 어떻게 아는데?”영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지용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보가 우리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씨 가문은 만능이 아니에요, 최씨 가문도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요.”표아정은 가볍게 기침하며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었다.최지용의 이마에는 점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미의 눈에는 한 줄기 교만한 빛이 번졌다.영미는 오는 길에 이미 모든 계획을 짰다. 정대명의 말이 맞았다. 누구를 훔치든 상관없었다. 인신매매범의 딸인 백인서가 아이들을 해치러 다닌다는 누명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면 백인서는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될 터였다.영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강소아가 인신매매범을 곁에 둘 리 없다고 믿었고, 최지용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백인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영미는 정대명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영미는 권온유를 넘기고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한패가 되어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주장할 계획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인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몰릴 것이었다!“지용 오빠.”영미는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권온유는 정승
“그... 괜찮아!”정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권온유에게 말했다. 정승우는 이곳에서 권온유를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이때, 공장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곧바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정승우는 재빨리 권온유에게 눈짓했고 권온유도 알아채고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척했다.정승우는 벽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았다.“이 아이인가요?”영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맞아.”정대명은 영미를 흘깃 노려보며 묵묵히 대답했다.영미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희미한 빛 속에 있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 아이... 혹시 권씨 집안의 막내딸 아니에요?”정대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훔쳐 올 때 이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리가 없었다.“정대명 씨.”영미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보았다.“제가 최씨 가문 집안 아이를 훔쳐 오라고 했지, 권씨 집안 아이를 훔치라고 했나요? 이러고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고요?”“그게...”정대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영미 아가씨, 어차피 목적은 백인서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잖아? 그러니 누구를 훔쳐 오든 상관없지 않아? 아이를 훔치기만 하면 유괴범이 되는 거니까.”이 말은 영미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정승우의 귀에도 또렷이 들어왔다.“좋아요.”영미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는 잘 지키고 있어요, 제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한편, 권씨 집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권욱은 조순영을 탓하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조순영은 오열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조순영은 권욱이 바깥에서 여자와 부적절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헛소리하지 마!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소문을 퍼뜨렸는지 잘 알잖아. 결혼 생활 내내 너한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정말 떳떳하게 행동했다면 왜 사람들이 당신만 가만두지 않는 건데?”며칠 전까지만
권온유의 질문에 정승우는 당황했다.권온유는 커다란 눈망울로 정승우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슈퍼맨 같은 오빠가, 이제는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정승우는 어색하게 입가를 씰룩이며 권온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갔다.“너, 정말 배고파?”“네!”권온유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 작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원래는 엄마랑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했어요. 엄마가 특별히 고등어조림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엉엉... 엉엉...”“울지 마, 울지 마! 그냥 생선 하나 가지고...”“나 배고파!”정승우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이와 대화하는 건 그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겨우 권온유를 달래고 나서 정승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팔을 걷어붙이며 권온유에게 내밀었다.“너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고프면, 여기 한번 물어볼래?”권온유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정승우를 바라보았다.“우리 집은 가난해서 늘 먹을 게 부족했거든. 그래서 어릴 때 너무 배가 고프면 이렇게 배고픔을 달랠 만한 걸 물곤 했어.”권온유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배고픔을 달랠 만한 것'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정승우는 웃으며 계속 설명했다.“예를 들어 쌀통 같은 거야. 한때 쌀이 들어 있던 쌀통은 비어 있어도 쌀 냄새가 남아 있거든. 그래서 쌀통 가장자리를 살짝 물면서 하얀 쌀밥을 먹는 상상하는 거야. 그러면 배가 덜 고파져.”“그리고 이웃집에서 밥하는 냄새를 맡으며 그 밥을 먹는 상상을 하는 거야. 그러면 그렇게 배고프지 않더라고.”권온유는 정승우의 이야기에 넋을 잃고 입을 벌린 채 있었다. 정승우는 웃음을 터뜨렸다.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한때 정대명이 도박과 술에 빠져 정승우를 굶겼던 시절은 그야말로 비참한 순간들이었다.잠시 후, 권온유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정승우는 속으로 ‘큰일이다'라고 생
영미는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최지용을 지켜보았다.최지용은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구석에 앉아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전화를 걸기도 했다.영미는 바로 뒤를 따라갔고 최지용의 낮고 다급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찾았습니까?”“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만약 납치범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분명 전화를 걸어올 겁니다!”영미의 가슴이 철렁하며 내려앉았다.납치범이라니? 대체 뭘 찾는다는 거지?백인서와 통화한 걸까?그때, 최군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지용이 형, 여기서 뭐 해요?”영미는 얼른 몸을 숨겼고 최군성은 최지용에게 다가가 최지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우리 형이 찾고 있었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서 와서 먹고 즐기자고요!”최지용은 최군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영미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동시에 잠시 멈칫했다.영미는 급히 시선을 피하며 억지 미소로 인사했다.“지용 오빠...”“어, 영미?”최군성도 배윤아처럼 물었다.“여기 웬일이야? 형님이 널 초대한 것 같지 않은데?”“그게...”영미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최군성은 영미의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지용을 끌고 가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최지용은 점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영미가 도대체 여기 왜 있는 거지?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사람이, 왜 하필 오늘 온유가 사라진 날에 나타난 걸까?그때, 최군형과 강소아가 가원이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강소아는 아이를 보행기에 앉혔고 아이는 보행기 가장자리를 잡고 작은 발을 내디뎠다. 이 모습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영미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자리를 떠 교외의 버려진 공장으로 향했다.그 시각, 정대명은 영미의 지시에 따라 승합차를 몰고 공장에 도착해 있었고 영미가 도착했을 때 그는 공장 문 앞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영미는 핸드백을 휘둘러 정대명에게 던졌다.“정대명 씨, 감히 날 속여
“너 따위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정대명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결국엔 자기 아들이었기에 정승우에게 감출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때리고 꾸짖어도 떠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정대명은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 들고는 권온유의 양 갈래머리를 단칼에 잘라냈다. 머리카락이 천천히 바닥에 떨어졌다.정승우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다가 막아서려는 순간, 자신과 정대명 사이에 힘의 격차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작정 나섰다가는 역부족일 터였다.정승우는 이를 악물고 정대명에게 다가가 물었다.“아빠, 정말 이 아이를 팔 생각이에요?”“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영미라는 그 여자가 원하는 거야!”정대명은 불만스레 대꾸하며 정승우에게 옷장에 있는 헌 옷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정승우가 옷을 가져오자, 정대명은 손을 뻗어 권온유의 예쁜 드레스를 찢으려 했다. 정승우는 급히 소리쳤다.“뭐 하는 거예요!”“이 자식이!”정대명은 정승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조용히 해! 죽고 싶어?”“아빠, 이건...”“이 애한테 옷을 갈아입히려는 거야!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 있으면 바로 눈에 띄잖아.”정승우는 다가가 정대명을 옆으로 밀치며 말했다.“제가 갈아입힐게요!”“이놈이...”정대명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피식 웃었다. 그는 정승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하, 아빠를 도와주고 싶구나? 역시 아들은 아들밖에 없지! 그래, 네가 손이 빠르니까 빨리 옷을 갈아입혀. 둘이 함께 가자고!”정승우는 속으로 혐오감이 치밀었지만, 지금은 그저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정승우는 권온유의 드레스를 벗기지 않고, 정대명의 헌 옷을 위에 입혀 단단히 감쌌다. 그런 다음 모자를 씌워 얼핏 보면 남자아이처럼 보이게 했다.“좋아, 이 정도면 되겠어!”정대명은 정승우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뒷문에 승합차가 준비돼 있대. 어서 출발하자!”“아빠, 이 소녀는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예요?”“교외지!”정대명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빨리 움직
권온유는 깜짝 놀라며 정대명을 멍하니 쳐다보았다.“아저씨가 맛있는 걸 가지고 왔단다. 배고프지 않니?”권온유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달아나려 했다. 정대명은 급히 권온유 앞을 가로막았다.“아니, 가지 마!”정대명은 두 손으로 권온유를 꼭 붙들며 말했다.“그게... 네 엄마가 나한테 너를 데려오라고 부탁했어!”엄마라는 말을 듣고 권온유는 잠시 멈칫했다.“정말이야, 네 엄마가 부탁한 거라니까!”정대명은 거짓말을 이어갔다.“방금 네 엄마가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렸지? 너 보고 기다리라고 했잖아?”“네... 맞아요.”“그래!”정대명은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네가 여기저기 막 돌아다녀서 엄마가 널 못 찾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엄마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알 거예요. 저는 여기서 조금 놀다가 다시 휴게실로 돌아갈 거예요!”“오... 그렇구나.”정대명은 잠시 생각을 굴렸다.“아저씨가 휴게실이 어딘지 아니까, 내가 데려다줄게!”권온유는 경계하며 정대명에게서 몸을 빼내고 두 걸음 물러났다.“얘가! 난 정말로 네 엄마 친구라니까. 네가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엄마가 널 못 찾게 되면 걱정하지 않겠어? 맞지?”“자, 자!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착하지!”정대명은 권온유를 갑자기 붙들어 어깨에 둘러맸다. 권온유는 본능적으로 소리치려 했지만, 정대명의 손이 입을 단단히 막고 있어 소리를 낼 수 없었다.어린 소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른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정대명은 권온유의 머리 뒤쪽을 세게 내리쳐 기절시켰고, 온유가 들고 있던 인형은 땅에 떨어졌다....정승우는 익숙하게 호텔로 와서 지난번 일을 핑계로 다시 정대명에게 돈을 뜯어낼 생각이었는데, 방 안에 기절한 어린 소녀가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어른 일에 참견하지 말고 신경 꺼!”정대명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방금 정대명은 온유를 데려오며 보안과 호텔 직원의 눈을 피하고자 아이를 어깨에 메고 가지 않고,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속여서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