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준의 차가 천천히 배씨 가문의 내부 도로로 진입하였다.그는 가는 길 내내 강서연의 손을 잡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배씨 가문 사람들은 다 좋은 분들이야. 경원이만 봐도 알잖아. 경원이 부모님도 착하고 인품이 후한 분이셔.”강서연이 궁금했다. “그럼, 그분들은 어떻게 사업 전쟁터에서 적응했어요?”최연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은 변치 않고 환경에 응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살기 좋은 길이지.”“그러면 이따가 당신 어머니를 만나도 변치 않는 태도로 환경에 응해야겠죠?”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내 본모습을 유지하고 가장 솔직한 태도로 어머님을 대하면 그분도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당연하지.”최연준은 몸을 숙여 그녀의 코끝을 비볐다. 그녀의 향기가 다시 그의 코로 파고들어 그는 잠시 혼을 잃은 채 큰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쓰다듬었고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다.“하지 마요...” 강서연은 그를 살살 밀었다.최연준은 교활하게 한 번 웃고 그녀와 입을 맞췄다.앞쪽에 앉아 있던 방한서는 소리를 듣고 가림막을 내리려다가 실수로 창문을 내리게 되었는데...갑자기 바람이 불어 들어와 최연준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방한서는 얼굴색이 크게 변해 급히 창문을 올렸고 후시경으로 최연준의 어두운 얼굴이 보였다.방한서는 너무 긴장해서 발을 헛디뎌 또 브레이크를 밟았다.최연준의 얼굴은 더욱더 어두워졌다.“도련님.”방한서는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도착했습니다.”최연준은 죽여버리고 싶은 시선을 보내며 말을 하지 않았다.강서연은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 그의 손을 잡고 웃었다. 몇 번이나 끌어당겨 겨우 최연준을 차에서 끌어 내렸다.배씨 저택은 오늘따라 북적북적했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전부 상류층 집단이다. 배씨 집안은 손님을 환대하고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마당에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곤 했다.큰아이들은 풍선을 손에 들어 뛰어놀고 있었고 네다섯 살 되는 어린 남자아이는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김자옥은 너무 흥분했다.조금 전에 복도에서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최연준을 만났는데, 이 못된 아들놈이 정중하게 그녀한테 오늘 밤 강씨를 데려왔다고 말했다.김자옥은 들은 후 너무 화가 나서 폭발할 뻔했다. 떠나기 전에 그에게 경고했다.“최연준, 만약 네가 그 여자를 우리 집에 들어오게 한다면, 나는 강씨랑 공존할 수 없을 거야!”최연준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들어가려고 해도 최씨 가문으로 들어가는 거지, 김씨 가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요.”김자옥은 너무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최연준을 쳐다보면서 이를 갈았다.‘이 불효자식!’그녀는 화를 식히려고 샴페인 한 잔을 따라 이쪽으로 걸어갔는데, 뜻밖에도 강서연을 만났다!‘훗, 공주님이 오셨네. 하느님까지 나를 도와주시다니!’김자옥은 강서연의 손을 잡고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위아래로 훑어봤다.“서연아, 너 오늘 너무 예쁘구나! 이 옷도 잘 골랐어. 너랑 찰떡이야!”강서연은 쑥스럽게 웃었다.“제 남자친구가 골라줬어요.”김자옥은 순간 인상을 구겼다.‘남자친구? 정말 촌스러운 안목이야. 기품이 없어 보여!’하지만 그녀는 다시 웃으며 물었다.“맞다, 서연아. 너 여기 취재하러 온 거지? 지금 같이 내가 소개해 준다는 사람을 보여줄게!”강서연은 어리둥절 했다.‘아줌마가 쓴 주소가 여기라니... 아줌마가 이 파티에 올 수 있다는 것은 4대 가문과 모두 왕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러면 아줌마도 연준 씨의 어머니를 알고 있을지 몰라.’강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속에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한창 정신이 팔렸을 때, 김자옥은 그녀를 끌고 가려고 했다.“아줌마, 저는...”“빨리 가자!”김자옥은 다급하게 말했다.“내가 방금 그 사람을 봤어. 서둘러 그 사람을 찾으러 가자!”“죄송하지만 저는 여기서 사람을 기다려야 해요.”강서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김자옥은 공주님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가장 보기 싫어했다. 잠시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그럼 너는 여
임나연은 목소리를 높였다.“이건 최씨, 임씨 두 가문이 암묵적으로 약속한 거예요!”강서연은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연 씨, 저는 견식이 좁아서 이런 ‘암묵적’ 인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만약 양가 집안 어른들께서 이미 인정했고 연준 씨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왜 발표를 안 하는 거예요? 그 뜻은 양쪽 가문에서 아직 이 혼인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을까요. 또는.”강서연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연준 씨가 전혀 인정하지 않거나!”“당신...”임나연은 얼굴이 일그러졌다.강서연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손에 낀 에메랄드빛 반지를 자랑했는데 반지의 반사광이 임나연의 눈을 찔렀다. 이것으로 그녀가 최연준 마음속에 범상치 않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임나연은 너무 화가 나서 이가 근질근질했지만, 얼굴에 표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배씨 저택에서 강서연과 소란을 피우면 임씨 가문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갈 것이다.지금 최연준도 와있는데 절대로 자기를 나쁜 여자라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임나연은 질투심을 억누르고, 강서연을 보며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서연 씨는 정말 말재주가 좋으시네요. 연준 씨가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일은 단지 연준 씨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어요.”임나연은 피식 웃었다. “연준 씨 뒤에는 최씨 가문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의 혼인마저도 최씨 가문의 이익과 얽혀 있어요.”강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에메랄드빛 반지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연준 씨랑 반지를 교환하였다고 해서 최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착각하지 마세요. 서연 씨, 최씨 가문은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없어요...”임나연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보기에 당신이 연준 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 같은데 저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연준 씨를 묶어 둘 수 있으니, 밖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찾는 것보다는 낫겠죠.”강서연은 차갑게 그녀를
강서연과 임나연은 마주 서 있었다.그녀는 임나연의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서연 씨, 제 말을... 못 알아듣겠어요?”임나연은 냉소했다.“저는 당신이 연준 씨와 함께 있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에요. 나중에 내가 연준 씨와 결혼하더라도 이런 것 때문에 질투하지 않을 것이에요. 사실 우리 같은 가문은 이런 일들이 많거든요. 저도 천천히 적응할 거니까 서연 씨도 익숙해질 거라고 믿어요!”강서연은 입술을 깨물고 말하지 않았다.임나연은 ‘외실’ 이라는 두 글자만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다.임나연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수도 모르는 주제에 반지를 교환했다는 사실로 나를 모욕하다니, 이번에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래, 나연이의 말이 맞아.”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임나연은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어머님!”막 달려가려고 하는데 김자옥은 옆으로 피했고 손을 들어 그녀의 포옹을 거절했다.임나연은 이미 팔을 벌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허공에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김자옥은 강서연을 향해 걸어가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 모습을 본 임나연은 순간 얼굴빛이 변했다.“나연이 말이 맞아.”김자옥은 웃으며 말했다.“우리 같은 가문에서는 남자가 외실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정상적인 일이지. 한 명으로는 부족해 첩을 많이 둬서 쾌락을 누리는 사람도 다수야!”“어머님?”임나연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하지만 나연아, 너무 걱정하지 마.”김자옥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연준이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임나연은 자기편을 들어주는 줄 알고 수줍게 웃었다.그런데 바로 김자옥이 강서연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눈빛은 자기한테 향한 적이 없는 자애롭고 부드러운 눈빛이었다.“연준이는 서연이 하나면 충분해!”“네?”임나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강서연도 귓가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네 탓이 아니면 누구 탓인데?”김자옥은 이 말을 할 때 마음이 조금 찔렸다. 그녀가 먼저 사람을 잘못 알아본 것이고, 그 최지한과 어울려 다니던 강유빈을 강서연으로 착각한 것이다...하지만 억지로 주장하는 것은 김자옥의 일관된 스타일이다.그녀는 목청을 가다듬고 최연준을 힐끗 보더니 뻔뻔스럽게 말했다.“서연이가 이렇게 훌륭한데, 너는 일찍 나에게 데리고 오지도 않냐? 너는 고의로 우리 고부가 상봉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거지!”최연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나의 혼인은 최씨 가문뿐만 아니라 김씨 가문과도 엮여있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신지? 강씨가 이 집에 들어오면 자기랑 강씨 둘 중의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신지?’“엄마.”최연준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우기지 마세요. 처음에는 엄마가 아니었으면...”“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드는 며느리가 있다고 말했는데, 네가 죽어도 원하지 않다고 한 거야! 게다가 주식을 철수한다고 나를 협박하지 않나!”최연준은 충격을 받았다.‘이렇게 죄를 뒤집어쓸 수 있다고?’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강서연을 바라보았다.“난 그런 적 없어...”“으흠!”김자옥은 몸을 바로 세우고 강서연에게 다가가 웃으며 바라봤다.“서연아 괜찮아. 이 자식이 맘에 안 들면 아줌마랑 같이 영국 가자! 우리 김중 재단에는 젊은 청년도 많고 금발 유럽 미남들도 수두룩이야. 그때 가서...”“엄마!”최연준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낮은 소리로 외쳤다.‘정말 내 친엄마다. 나를 엿먹이다니!’강서연은 활짝 웃으며 최연준한테 다가가 그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아줌마의 호의는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이 사람 하나면 충분해요!”최연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코끝을 비벼댔다. 그는 온 세상을 얻은 듯 만족하게 웃었다....배씨 가문은 너무 격식을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찬은 뷔페로 하여 하객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배씨 가주와 사모님께서 팔짱을 끼고 하객들 사이에서 술잔을 들어
김자옥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래. 말해봐!”강서연은 최연준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제 월급 카드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뭐라고?”“제가 신문사에서 일하는 동안 월급 카드를 손에 쥐어본 적도 없어요!”김자옥은 이마를 찌푸리고 물었다.“어느 신문사에서 일하는 거야! 너무하다! 임금까지 체불하다니?”“신문사가 그런 것이 아니라.”강서연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최연준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연준 씨가 가져갔어요!”김자옥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동안 종종 최연준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그녀는 자기 아들이 진짜 사나이라고 생각했다.‘이건... 언제 또 여자의 월급 카드를 뺏는 버릇이 생긴 거야?’“최연준!”김자옥은 소리 질렀다.파티에 참석한 많은 사람이 잇달아 얼굴을 돌려 이쪽을 보았다.셋째 도련님은 너무 쪽팔려서 황급히 눈짓으로 어머니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지만, 김자옥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때렸다.“이 나쁜 자식! 우리 서연이 월급 카드를 뺏어가? 서연이가 매달 힘들게 번 돈이 다 네 주머니로 들어갔다고?”“아니에요, 엄마!”최연준은 이렇게 답답한 적이 없었다.“우리 그때 약속했었어요. 서연이가 나를 평생 먹여 살린다고...”“어이구. 잘하는 짓이다. 네 와이프 카드를 긁으면 마음에 죄책감이 들지 않니?”최연준은 눈을 찌푸리며 자기 엄마를 바라봤다.그녀는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장난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엄마의 협박 때문에 최연준은 느릿느릿 월급 카드를 꺼냈다. 그는 항상 카드를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위치는 가슴 가까이에 있는 자리였다.강서연은 웃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장난기랑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최연준도 웃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꼴랑 카드 한 장?”김자옥이 그를 노려보았다.“또 왜요?”“카드를 다 꺼내서 서연이한테 줘!”“...”“앞으로 서연이의 허락 없이 함부로 돈을 쓰면 안 돼, 알겠니?”최연준은 강주에 있을 때, 육
“이 프로젝트는 오성대 디자인과 사람이 필요해요. 게다가 임건은 학교 이사장이에요.”최연준은 차갑게 웃었다. “이 프로젝트의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임씨 집안도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임나연은 당신이랑 접촉할 기회를 절대로 안 놓치겠죠? 이렇게 되면 업무를 구실로 매일 최상 그룹에 연준 씨를 찾아갈 거예요!”최연준은 그를 한 번 흘겨보며 입을 다물라고 경고했다.육경섭은 더 큰 소리로 웃었다.웃고 나서는 다시 정중하게 최연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비록 저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여서 이 오성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연준 씨가 말만 하면 저는 전력을 다해 당신을 도와줄게요!”“감사해요.”최연준도 그의 손목을 토닥였다.“그런데 경섭 씨, 저도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를 모르죠?”“네?”“한번 맞춰 보세요. 이 땅도 그렇고 동명 주식과 레이안 두 곳의 사장이 누구일 거 같아요?”육경섭은 잠시 멈칫했다.하지만 머리가 좋은 그는 곧 답을 찾았다.최연준이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한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내뱉게 하는 사람은 강서연 빼고 누가 있겠는가!“당신...”최연준은 미소로 묵인했다.육경섭도 같이 웃어줬다.“그럼, 서연 씨가 모두의 사장님이에요?”“맞아요.”최연준은 대답하면서 강서연을 떠올렸는데 자동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서연이는 아직 모르고 있어요. 본인 스스로 사업을 하고 싶어해서 아직 공개를 안 했어요.”“임나연이 나중에 사장이 누군지를 볼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요!”육경섭은 몰래 웃었다.최연준은 인상을 찌푸렸다.“그 여자를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세요!”육경섭은 히히덕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그는 원래 임우정에게 임산부용 스킨케어 제품을 사 주려고 했지만 두 남자는 전혀 쇼핑에 대해 경험이 없어 엉뚱하게 립스틱 코너로 갔다.최연준은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사람들을 봤다.그는 이 많은 립스틱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다 똑같은 빨간색이 아닌가?’하지만 다른 사람이 바르는 것
최상 그룹, 꼭대기 층.이번 회의는 최재원도 참석했기 때문에 유난히 엄숙하고 경건해 보였다.최재원은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오늘은 검은 비단으로 된 한복을 입었고 은발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나이가 들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했고 온몸에는 카리스마가 풍겼다.그는 최연준을 보며 물었다.“김중 재단 쪽과 인수인계 절차는 다 끝났어?”“네. 다 됐어요.”최연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김 대표께서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예요.”“그래.”최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이 회사가 김 대표 손에서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비록 예전에 김씨 가문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최재원은 오랫동안 장사를 해 왔기 때문에 이 정도의 겉치레는 할 수 있었다.그리고 최씨 가문은 김중 재단과의 이익이 서로 얽혀있기도 하고 또 최연준은 김자옥의 아들이니 쉽게 김씨 가문과 결별할 리는 없다.기왕 이렇게 된 김에 차라리 잘 협력해서 앞으로 또 적당한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다.최재원은 눈을 찌푸리며 최연준을 관찰했다. 최연준은 자기의 후계자로서 그는 맘에 들어 한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유독 강서연이... 골칫거리였다!회의 내내 최재원은 귀담아듣지 않았고 회의가 끝날 때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나가게 하고 최진혁과 최연준, 그리고 박경수와 다른 두 측근만 남겨두었다.최진혁은 최연준을 한 번 보고는 냉소했다.최연준은 그가 또 할아버지 앞에서 무슨 이간질을 했는지 알고 있다.지난번 배씨 가문의 파티에서 김자옥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임나연은 그녀 앞에서 좋은 인상은커녕 ‘외실’ 이라는 것 때문에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는 격이 돼버렸다. 그녀는 돌아간 후 당연히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지금은 오성 대가문 사이에서도 웃음거리가 되었다.이것은 바로 최진혁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그는 전부터 임씨 가문과 친분이 있었고 최재원 역시 최씨, 임씨 가문의 통혼을 지지했다. 뒤에서 조금이라도 불을 지르면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
소피아는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는 낚시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소피아는 조용히 걸어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혹시... 허운주 선생님이신가요?”허운주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소피아는 직원에게 뜨거운 우유 한 잔을 주문하고 허운주 앞에 놓인 진한 커피를 치우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이 나이에 이렇게 진한 커피는 드시면 안 돼요. 건강을 꼭 챙기셔야죠.”“고맙습니다...”허운주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절 찾아오신 이유가 뭘까요?”허운주는 천천히 눈을 들어 소피아를 바라봤다.소문에 따르면, 소피아는 현재 배현진의 연인이며 이혼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배현진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허운주는 소피아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고 소피아가 도움을 준다면 송윤지 같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확신했다.“제가...”허운주는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렸다.“어떻게 말씀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소피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 선생님은 현진 씨의 선생님이시잖아요. 그 특별한 인연은 현진 씨도 평생 기억할 거고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러니 무슨 일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저는 국제 유치원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됐어요.”허운주는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소피아는 놀란 듯했지만, 최근 일어난 상황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우수 교사 선발에서 허운주가 송윤지에게 패했다는 소식은 소피아에게도 전해졌다. 자존심 강한 허운주로서는 그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소피라는 눈을 굴리며 허운주를 어떻게 이용할지 계획하고 있었다.“허 선생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소피아는 부드럽게 허운주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속상한 일 있으면 다 털어놓으세요. 제가 도울 수 있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