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한과 최연준 모두 그의 친손자이다. 비록 최연준을 조금 더 편애하긴 했지만, 최지한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최재원이 지팡이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최지한 이 자식은 일에 성공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망쳐 먹기 일쑤야. 아주 제대로 혼나봐야 정신을 차리지.”그가 노발대발했다.“진혁이더러 오라고 해. 아들 좀 잘 가르치라고 한마디 해야겠어! 지한이가 잡아 온 그 여자가 진짜 강서연이야?”“회장님...”박경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강주에서 온 강씨 성을 가진 아가씨인 것 맞는데 강씨 가문에 딸이 둘이라 강서연 씨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어요...”최재원의 두 눈에 교활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강서연이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이참에 최연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을 수 있으니까.그는 누구보다 자기 손자를 잘 알았다. 최연준은 소유욕이 강해서 자기 여자가 몹쓸 일을 당하면 그 순간은 화가 나겠지만 나중에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는 점점 그 여자와 멀어지게 되리라 생각했다.최재원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나서야 답답하던 가슴이 편해졌다.“경수야, 연준이한테 사람 붙여서 잘 지켜봐. 절대 일을 크게 만들게 해서는 안 돼!”...최연준은 마치 성난 사자처럼 뛰쳐나가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을 꺼냈다.본가에서 해원 별장으로 가는 길에 도우미들은 저마다 겁에 질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최연준의 두 눈이 시뻘건 게 당장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기세였다.“이제부터 우린 부부예요.”“당신이랑 결혼했으니 평생 당신 곁에만 있을 거예요!”“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돈을 못 벌어도 내가 먹여 살리면 돼요!”“여보, 내가 언니 대신 당신이랑 결혼한 것 말고 다른 건 숨긴 게 없어요. 앞으로 당신도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서는 안 돼요. 알겠죠?”최연준의 귓가에 온통 강서연의 달콤한 목소리로 가득했고 머릿속에도 강서연의 웃음뿐이었다.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심장을 움켜쥔 듯 마음이 욱신거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서연의 곁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최연준!”그가 가려 하자 오히려 최지한이 두 눈을 부릅떴다.“형.”최연준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가 큰일 하려면 여자 하나 때문에 형이랑 싸우지 말라고 했어. 할아버지 말씀이 옳은 것 같아. 그러니까...”최지한을 돌아보는 그의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재미있게 놀아!”그의 말에 최지한은 순간 멍해졌다.‘뭐야? 아까는 죽일 듯이 달려들더니 그냥 이렇게 간다고?’최지한이 사냥총을 덥석 잡았다. 그가 총알을 장전하려는데 최연준이 한발 먼저 총을 그의 머리에 겨누었다.“형.”최연준이 싸늘하게 웃었다.“내 뒤에서 다른 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진작 형이랑 작은삼촌한테 경고했었잖아, 안 그러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설마 다 잊었어?”최지한의 낯빛이 사색이 되더니 사냥총을 버리고 넋이 나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최연준이 경멸 섞인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고 나가려는데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구현수!”최연준에게 냅다 달려가던 강유빈은 침대 시트를 밟은 바람에 그만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아픈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일어나 최연준 옆에 바짝 붙었다.“구현수 씨, 나 좀 살려줘요!”최연준은 짜증 섞인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현수 씨!”강유빈이 목청 터지게 외쳤지만 최연준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최연준의 뒷모습이 복도 끝에서 점차 사라지는 걸 보며 절망에 빠졌다.최지한이 사냥총을 다루는 소리가 조용한 방 전체에 울려 퍼져 선명하게 들렸다. 강유빈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린 채 벽에 붙어 부들부들 떨었다.“쟤는 구현수가 아니라 우리 최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 최연준이야.”최지한이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너 진짜 엄청난 사람을 만났어.”강유빈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최지한은 그녀 앞에 웅크리고 앉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저 자식 안면을 아주 확 바꾸던데? 자기 와이프를 그냥 이렇게 나한테 준다고? 설마...
방한서는 순간 멈칫했다.‘오늘 이사회에 참석하여 그룹의 개혁 방안을 상의해야 하는데 강주로 돌아간다고?’“도련님, 강서연 씨가 걱정돼서 그러는 겁니까?”방한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사람을 보내서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서연 씨는 안전해요.”“그런데 왜 전화를 안 받아?”최연준이 참다못해 버럭 화를 냈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질문에 방한서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사실 전화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많았다. 휴대 전화 배터리가 없다거나, 듣지 못했다거나, 신호가 없다거나...‘한밤중에 전화해서 전화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게 어디 있어? 서연 씨도 자고 있겠는데. 도련님도 참...’최연준은 다짜고짜 차 키를 꺼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때 휴대 전화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화면을 보고 잠깐 멈칫하던 그가 손가락을 떨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여보, 미안해요!”강서연이 자다 깬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어젯밤에 연희 양이 같이 밥 먹자고 해서 맥주 좀 마셨어요... 현수 씨도 내 주량 알죠? 조금만 마셔도 취하는 거. 그래서 연희 양이랑 집에 오자마자 쿨쿨 자느라 현수 씨 전화도 못 들었어요. 연희 양은 아직도 자고 있다니까요.”최연준이 벽에 기대섰다. 긴장했던 마음을 드디어 쓸어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킨 후 한참이 지나서야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그랬구나...”어리둥절한 강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여보, 혹시 화났어요?”최연준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히죽 웃었다. 그녀에 대한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그런 웃음이었다.옆에 있던 방한서는 그제야 배경원이 왜 자꾸 최연준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배경원의 말대로 제정신이 아니었다...“여보? 여보!”강서연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설마 진짜 화난 거야?’“여보, 진짜
최연희가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일어나더니 비몽사몽한 얼굴로 문에 기댔다. 주방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냅다 밖으로 뛰어나갔다.역시나 식탁 위에 놓은 음식들은 그녀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와, 언니는 우렁각시예요?”최연희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아침부터 뭘 이렇게 많이 했어요?”강서연이 방긋 웃으며 야채죽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로써 아침 준비가 모두 끝났다.“얼른 먹어요.”그녀는 최연희에게 수저를 건넸다.“연희 양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한식이랑 양식 이것저것 해봤어요. 입맛에 안 맞아도 많이 먹어요.”“안 맞을 리가 없죠!”최연희는 빵부터 하나 집어 흐뭇한 얼굴로 맛있게 먹었다.강서연은 요리도 참 잘했다. 평범한 식자재들로 이렇게 맛있게 만들다니, 그녀 집의 요리사보다도 훨씬 솜씨가 뛰어난 것 같았다.‘이러니 오빠가 언니한테 푹 빠져서 집에 안 오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역시 입맛부터 사로잡아야 해.’그 생각에 최연희는 저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왜 그래요?”강서연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무슨 기분 좋은 일 있어요?”“아니에요. 그냥 언니랑 함께 사는 형부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지금 언니가 해준 아침을 먹으니까 저도 너무 행복해요.”강서연의 두 볼이 발그스름해졌다. 최연준도 그녀에게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이 두 사람은 맨날 행복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네...’그녀는 피식 웃고는 최연희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연희 양, 지금 제인 호텔에 묵고 있죠? 이따가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최연희가 활짝 웃었다.“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어요.”“누군데요?”최연희는 아무 말 없이 히죽 웃기만 했다. 두 볼이 발그스름해진 걸 보니 아무래도 남자인 모양이다.잠시 후, 역시 강서연의 예상대로였다. 집 밑에서 최연희가 그녀에게 소개해주었다.“여긴 저의... 친구 인지석이에요.”‘남자친구겠지?’강서연은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1
나중에 겨우 위험한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더는 과로해서도 안 되고 충격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하여 최연준이 최재원 대신 최상 그룹을 잠시 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강주로 돌아가는 일정이 점점 미뤄졌다.강서연은 별다른 불만 없이 그저 그에게 마음 편히 일에만 몰두하라고 했다. 하지만 최연준은 한시도 그녀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못 보면 계속 불안했다.“지금 할아버지 뵈러 가도 돼?”“경수 아저씨가 그러시는데 지금 둘째 어르신이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최연준이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이틀 전에 은미연이 전화로 최문혁과 싸우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은미연은 최재원의 건강이 좋지 않으니 최문혁에게 당장 가서 병간호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매사에 굼뜬 최문혁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은미연은 분통이 터져 욕설을 퍼부었다.“지금 잘 보이지 않으면 또 동생한테 기회를 주려고 그래? 당신은 왜 이리 겁쟁이야? 어떻게 모든 걸 다 최진혁한테 뺏겨?”‘역시 은 대표님의 말이 옳았어.’최연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비서가 노크하고 들어와 서류 한 무더기를 내려놓았다.“도련님, 이건 그룹의 개혁 시행 방안입니다. 회장님께서 도련님더러 오늘 연관 부분과 회의하여 대체적인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십니다.”최연준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할아버지는 날 예뻐하셔서 절대 하루에 이 많은 일을 시키지 않는데 오늘은 왜 이러시지?’평소와 다른 상황에 최재원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알았어.”최연준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그럼 회의는 오후 4시에 하는 걸로 해. 그 전에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일단 할아버지 좀 뵙고 올게.”비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도련님, 그건...”“왜?”최연준이 살벌한 분위기를 내뿜었다.“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뵈러 가겠다는데도 말리려고?”방한서가 재빨리 비서 앞을 막아섰다. 비서는 꼼짝도 못 했고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빤히
웬일인지 약속이나 한 듯이 최진혁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구현수를 잡은 후에 계속 비밀리에 훈련하긴 했지만 구현수는 최연준과 완전히 비교도 안 되었다. 뼛속부터 타고난 게 다르다 보니 아무리 훈련해도 최연준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구현수에게 최연준을 사칭하여 영국에 가서 사인하고 돈을 뜯어내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영국에 최연준의 친어머니가 있는데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만약 일이 크게 번지면 결국 내동댕이쳐지는 건 최진혁일 뿐이다.“구현수라는 사람 정말 연준이랑 비슷하게 생겼어?”무심한 척 묻는 최재원의 질문에 최진혁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네... 게다가 강씨 가문과 혼약을 맺은 사람이 바로 구현수라고 해요.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연준이가 그 마을에 가서 요양하게 되면서...”최진혁은 말을 하려다 멈췄다. 더 얘기했다간 최연준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했다는 것까지 말할 뻔했다.“아무튼... 대충 그런 상황이에요.”최진혁이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원래부터 오해였어요. 연준이가 아마 평범한 여자를 만나보지 못해서 신기해서 마음이 갔을 거예요. 강서연을 없애면 연준이는 계속 우리 최씨 가문에서 가장 훌륭한 후계자일 겁니다. 하하...”이 웃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었다. 강서연을 제거하는 건 최연준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말이다.이 방법은 그 어떤 방법보다도 효과가 있을 것이고 남을 이용하여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것이니 자기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최재원도 마침 그 여자를 탐탁지 않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내가 머리 하나는 참 좋다니까.’“아버지.”최진혁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강서연의 거처도 알아냈고 또 연준이랑 강주에서 작은 커피숍을 차렸더라고요. 지금 당장 구현수를 보낼 테니까 아버지는 연준이만 잡아두시면 돼요.”최재원은 고개를 들어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래, 이 일은 너한테 맡길게. 깔끔하게 처리해!”“나중에 연준이가
“여보세요, 아들!”휴대 전화 너머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연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엄마,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하셨어요?”런던은 지금 오전이라 어머니가 한창 회사에서 바쁠 시간이었다. 하여 절대 수다나 떨자고 전화한 건 아닐 것이다.“가짜 아들을 나한테 보내겠다며? 나더러 그 사람을 잡아놓으라고 하더니 며칠이 지났는데도 왜 아무 소식이 없어? 그 사람은 어디 있는 거야?”최연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대로라면 최진혁과 최지한이 이미 움직였어야 하는데.전화를 끊은 최연준은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한서야.”최연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작은삼촌 요즘 뭐 하고 있어?”“계속 회장님 곁에서 회장님을 보살펴드리고 계세요.”“지한이 형은?”방한서의 대답을 듣기 전에 최연준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치 마음 한구석이 찢겨나간 듯한 그런 고통이었다.그는 본능적으로 강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강서연은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최연준이 잔뜩 굳은 얼굴로 결정을 내렸다.“지금 당장 티켓 끊어. 강주로 돌아간다!”“하지만 도련님...”“내 말 못 알아들어?”최연준은 초조해하며 넥타이를 힘껏 잡아당겼고 심장이 터져 나올 듯이 쿵쾅거렸다....저녁 무렵, 강서연이 커피숍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당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왔다.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훤칠한 키의 누군가가 마당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강서연은 기쁜 마음에 활짝 웃으며 목청껏 불렀다.“여보!”남자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없었지만 눈빛이 어딘가 음흉해 보였다. 그나저나 최연준의 얼굴과 너무나도 닮은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보! 일주일 후에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한테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갑자기 돌아온 거예요?”강서연은 폴짝폴짝 뛰어나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런데 그의 품에 안긴 순간 이상한 기분이 밀려왔다.그녀는
구현수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옷소매에 숨겨둔 비수를 몰래 움켜쥐었다.이곳에 오기 전에 최진혁은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말을 아끼고 깔끔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생각보다 만만한 여자는 아닌 듯싶다.게다가 강서연을 죽이려면 사람이 없는 곳에 데리고 가야 했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커피숍에서 처리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구현수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그녀를 힐끗거렸다.‘이 여자가 바로 강서연이구나. 나 대신 최연준이 결혼한 여자!’그가 손가락이 잘린 채로 길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최연준이 그를 도와 인생의 일대사인 결혼을 해결해줬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이 예쁜 여자를 바로 죽이기엔 좀 아까운데? 내가 먼저 즐기다가 죽여야겠어.’구현수가 입꼬리를 씩 올렸고 두 눈에 사악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헛기침으로 자신의 속내를 숨기려 했다. 강서연은 재빨리 그에게 물 한잔을 따라주며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능숙하게 앞치마를 입고 음식을 준비했다.그녀는 곁눈질로 의자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남자를 지켜보았다.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표정도 이상했으며 커피 한잔도 평소답지 않게 아주 천천히 마셨다. 그녀가 알고 있는 구현수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움직임을 잠깐 멈춘 강서연의 눈에 펜넬이 들어왔다. 그녀는 몰래 펜넬을 한 줌 집어서 방금 만든 비빔밥에 넣었다.“여보, 다 됐어요.”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음식을 내왔다. 구현수는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컵을 깨뜨릴 뻔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컵을 잡던 그때 강서연은 그의 왼쪽 손가락에 끼고 있던 골무를 발견했다.“여보.”그녀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었다.“손 왜 이래요? 다쳤어요?”구현수는 고개를 번쩍 들고 그녀를 째려보았다. 그 모습에 강서연은 마음이 움찔했다. 이렇게나 날카롭고 흉악한 눈빛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여보...”“난 괜찮아.”구현수는 고개를 숙이고는 평소처럼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