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잔뜩 굳은 얼굴로 계단 위에 서 있던 강명원이 발걸음을 멈춰 섰다.두 딸의 말다툼을 비서나 나서서 말리려 했지만, 강명원은 그럴 필요 없다는듯 손짓했다. 그는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보고 싶었다.강서연이 느긋하게 말했다.“언니, 그때 내가 왜 그 사람이랑 결혼했는지 몰라서 이래? 아빠가 언니를 더 편애하고 아끼니까 언니 대신 내가 시집간 거잖아. 회사에서 집안일을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아.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해.”강서연이 그녀를 피해 엘리베이터에 타려는데 강유빈이 달려가 앞을 막아섰다.“왜? 더는 아무 말 못 하겠어?”강유빈이 막무가내식으로 말했다.“너 말 아주 잘하잖아? 왜 말 못 해? 천한 년, 지금 내 앞에서 연약한 척을 해?”강서연이 기다린 게 바로 이거였다. 그녀가 마구 생트집을 잡는 것!강서연이 강유빈을 흘겨보고는 싸늘하게 웃었다.“언니, 아빠는 언니를 더 아끼셔. 앞으로 이 회사도 언니한테 물려줄 거고. 난 여기서 그저 언니를 도와 뒤치다꺼리나 하고 길을 마련해주는 것뿐이야.”“말이 그렇지, 네가 무슨 꿍꿍이인지 누가 알아?”“난 정말 언니를 도우려고 온 거야.”강유빈이 한 번씩 몰아붙일수록 강서연은 한발 물러서며 피해갔다.“강씨 집안에서 난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야말로 이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잖아. 그런 언니랑 내가 어찌 감히 경쟁하겠어!”“쟤가 유일한 후계자라고 누가 그래?”날카로운 목소리가 로비 전체가 울려 퍼졌다. 로비가 갑자기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강명원의 표정이 말이 아니게 어두웠다. 마지막 한 계단까지 내려온 그는 분노에 찬 얼굴로 강유빈을 노려보고는 강서연 옆에 섰다.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 너도 강씨 집안 사람이고 나, 강명원의 딸이라는 걸 잊지 마.”강서연은 입을 꾹 다물었고 강유빈의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아빠!”강서연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빠, 전 경쟁 같은 거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
“너...”강서연이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언니, 우린 다 성이 강 씨고 한 가족이야. 명예와 치욕을 함께하는 가족이라고. 언니가 망신당하면 아빠가 망신당하는 거랑 똑같아. 다음에 나한테 화를 내고 싶으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때리든 욕하든 마음대로 해. 제발 아빠 체면 깎이게 사람 많은 곳에서 이러지 마!”강유빈이 창백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강서연의 한마디 한마디가 강유빈의 정곡을 쿡쿡 찔렀다. 아무리 눈치 없는 강유빈이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는 더는 화를 내지 못했다.“하, 평소에는 경쟁에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하던 네가 이토록 매정할 줄은 정말 몰랐어.”강서연이 차가운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난 그저 언니랑 같이 일 잘해보고 싶었을 뿐이야.”강유빈은 코웃음을 치고는 그대로 홱 돌아섰다.강서연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무심결에 의기양양 해하는 강명원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사실 그녀와 강유빈은 강명원의 손아귀에 잡힌 바둑알일 뿐인데 이기고 지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아빠, 저 먼저 사무실로 올라갈게요.”강명원이 환하게 웃었다.“그래. 서연아, 아빠가 역시 널 제대로 봤어! 한번 잘해봐, 잘하면 강진 그룹에서 너도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야.”강서연은 대충 웃어 보였고 그의 말을 별로 마음에 새겨듣지 않았다. 반대로 강명원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원망이 더 짙어졌다.저녁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기분이 울적했다.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하고 있던 최연준은 그녀가 돌아오자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여보, 나 청소한 것 좀 봐. 어때?”그는 그녀에게 온 오후 열심히 쓸고 닦은 노동의 성과를 자랑했다. 집안을 쭉 둘러보던 강서연은 오히려 더 골치가 아팠다.최연준은 아무리 봐도 참 집안일을 할 줄 모른다. 바닥을 분명 닦았다고 했는데 물기가 여기저기 얼룩져 차라리 닦기 전보다도 못했다.베란다에 널었던 빨래도 전부 걷었다. 하지만 옷을 잘 개었다기보다 그냥
“왜 그래?”“아... 아니에요.”강서연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국수를 먹으며 몰래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낮게 중얼거렸다.“무슨 날짜 계산이 이렇게 정확해...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든 거야? 오늘 마침 생리가 끝난 건 어떻게 알았지?’강서연의 두 볼이 더 빨개졌고 쑥스러움에 그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어리둥절한 최연준은 한참을 생각해도 그녀가 왜 이러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국수를 먹다가 왜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지?’최연준이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강서연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요 며칠 강진 그룹에서 잘 적응했나 봐? 무슨 좋은 일이 있었어?”그의 말에 강서연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요 며칠 있었던 일을 최연준에게 전부 얘기했다. 회사 로비에서 강유빈이 그녀를 곤란하게 했던 일도 포함해서 말이다.최연준은 그녀의 얘기에 조용히 귀 기울였다. 그녀가 강진 그룹에서 홀로 얼마나 힘겹게 버티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비록 자기 집안의 기업이긴 해도 그녀가 처한 상황이 다른 이들보다 힘겨운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이건 그녀가 언젠가는 반드시 헤쳐 나가야 하는 길이다. 절대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무너져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 길에 최연준이 늘 함께할 것이다.강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오늘 아빠가 나더러... 인사팀 맡으라고 했어요.”최연준의 두 눈이 반짝였다.인사팀은 회사의 주요한 기능 부서라 대부분 강씨 가문의 최측근들이 인사팀에 많았다.그러니 강명원의 이번 의도가 참으로 의심스러웠다.최연준이 피식 웃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하겠다고 했어?”“당연히 거절했죠.”강서연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는 자기 아내가 그리 어리석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왜?”강서연이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회사에서 인사팀과 재무팀이 가장 중요한 부서예요. 우리 아빠 성격이라면 인사권과 자금 모두 직접 컨트롤하려고 할 거예요. 아빠랑 결혼한 지 오
남자는 탄탄한 팔뚝으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의 그윽한 두 눈과 마주친 순간 다 먹고 해야 할 일을 하자던 그의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강서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의 가슴팍에 고개를 푹 파묻혔다.“여보.”그녀가 우물쭈물 말했다.“우리... 우리 이따가 해요.”최연준은 어리둥절했다.“뭘 이따가 해?”“아까 해야 할 일... 그냥 이따가 해요. 지금은 너무 배불러요!”최연준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나랑 어디 다녀오자.”강서연이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여보!”최연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평소 그가 이상야릇한 뉘앙스를 어찌나 많이 풍겼으면, 그녀가 조건 반사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얘기에 바로 야한 생각부터 들었을까?‘이게 다 나의 언행과 노력에 세뇌된 것 아니겠어!'최연준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지어졌다. 강서연은 주먹을 꽉 쥐고 그의 가슴팍을 냅다 두드렸다.“구현수!”“됐어, 그만해.”최연준은 그녀의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내가 말한 그 할 일은 너랑 같이 어디 가자는 거였어.”“어디 가는데요?”그가 가볍게 웃었다.“배부르게 먹었다며? 소화하러 가야지!”...강서연은 옷을 갈아입고 그와 함께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탔다가 또 한참 걸어서 남쪽 구역 바닷가 옆의 상가 거리에 도착했다.시 중심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나름 이곳만의 분위기가 넘쳤고 옆에 이국적인 상가 거리가 더해져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수많은 젊은이가 모임을 즐기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강서연은 현지인이었지만 이런 곳에 별로 다니지 않았다.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오동나무로 그늘진 자갈길을 걷다가 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강서연은 뭔가가 가슴에 쿵 하고 부딪친 것처럼 울컥하여 저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떴다.“여보, 여긴...”이
최연준은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강서연은 그런 그의 그윽한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을 캐치했다. 그녀는 가슴이 쿵쾅거리다 못해 손바닥에도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최연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나 이 가게 엄청나게 오래 찾았어. 집주인하고도 여러 번 얘기한 끝에 겨우 세를 맡고 인테리어 한 거야.”강서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당신이 커피숍 차리고 싶다고 했었잖아.”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두 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그 말 계속 기억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여러 가게를 찾아서 비교해 보다가 결국 이 가게로 정한 거야. 이곳이 그래도 당신 요구랑 가장 가까운 것 같더라고.”그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여보, 남편이 다른 재간은 없어도 갖고 싶다는 건 무슨 대가를 치르든 최선을 다해서 갖게 해줄 거야.”가슴이 울컥한 강서연은 그의 손을 힘껏 잡았다.“여기 엄청 비싸죠?”“응, 조금 나가.”싸다고 해 봤자 믿지 않을 게 뻔하기에 차라리 진지하게 얘기하는 게 나았다.“저번 두 경기에서 받은 상금이랑 한동안 일한 월급, 그리고 보너스까지 합하니까 딱 되더라고.”강서연은 마음 한구석으로는 살짝 아깝기도 했다.경기 한번 하면 꽤 많은 돈을 받는 건 알지만 그건 몸으로 직접 싸우면서 힘들게 번 돈이다. 그가 피와 땀으로 번 돈을 마구 써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그의 월급을 달라고 하지 않은 것이었다.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쓰는 돈은 아끼지 않길 바랐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먹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고민 없이 사길 바랐지, 아껴 쓰는 걸 원하지 않았다.그런데 그가 돈을 쓴 건 맞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아니라 그녀에게 쓴 것이었다.“당신 돈은 당신한테 쓰라고 했잖아요.”강서연이 그를 꾸짖었다.“너한테 쓰려고 내가 돈을 버는 거지.”그가 피식 웃었다.“네 소원을 이룰 수 있어서 하나도 아깝지 않아.”“나 소원이 엄청 많아요.”그녀가 입을
“현수 씨, 여기는 저번에 저를 구해줬던 최연희 양.”“연희 양, 이분은...”“저 알아요!”한 손으로 강서연의 목을 감싸 안은 채 최연희는 최연준을 보며 웃었다.“남편분이시죠? 구현수 씨!”“형부, 안녕하세요!”최연준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현수 씨?”강서연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연희 양이 인사하잖아요!”“음.”최연준은 최연희를 힐끗 쳐다보고는 시큰둥하게 한마디를 한 후 뒤돌아 주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강서연은 혹여 최연희가 난처해할까 걱정되었다.“연희 양, 죄송해요.”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저의 남편이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살갑지 않지만... 같이 지내다 보면 정말 좋은 사람인 걸 알 수 있어요.” 최진혁은 최연준을 어릴 적부터 ‘얌생이’ 라고 불렀고 최상 가에서는 ‘냉혈한’, ‘고집불통’ 이라고 했다.그런 사람이 어쩌다 강서연한테는 이토록 다정할 수 있는가?아무래도 오빠가 여심을 잡는 기술이 남다른 게 분명했다!강서연은 최연희에게 버블티 한잔을 내려주었고, 남편에게 오븐 시간 체크를 부탁한 뒤 마당을 청소하러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는 버터 향이 풍겼다. 최연희는 살금살금 주방으로 가서 그를 깜짝 놀래켜 주려 했다. 그러나 최연준이 먼저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렸다.깜짝 놀란 최연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하... 오빠.”최연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말했다.“오빠라니, 형부라고 불러야지.”최연희는 혀를 내두르며 헛웃음을 지었고 그는 정색해 물었다.“여긴 무슨 일로 왔어?”“그게...”최연희는 당황스러웠다.“난 단지 진심으로 축하해주러 왔을 뿐이야! 더욱이 서연 언니의 초대로 온 거고!”“얌전히 밥만 먹고 가!”최연준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강서연 앞에서는 말조심하고! 알겠지?”“당연하지!”최연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내가 오빠 동생인데 설마 일을 그르치겠어? 오빠는 구현수고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난 거야! 맞지? 그보다... 베리 쿠키는 다 됐어
최연준도 입 모양으로 대꾸했다.“너 혼날래?”최연희는 웃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먹고 있던 베리 쿠키 부스러기가 사방에 떨어졌다.강서연은 꽃에 물을 주러 마당으로 나갔고 최연준은 정색한 채 동생 옆으로 와서 말했다.“다 먹고 청소하도록!”최연희는 갑작스런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그녀는 허겁지겁 입안의 과자를 삼키고는 달갑지 않았지만 결국엔 그의 기에 눌려 순순히 빗자루를 들었다.“오빠, 참 대단한 거 같아.”그녀는 청소하면서도 잊지 않고 놀려댔다.“이러다 국민남편 타이틀까지 다 차지하겠어?”최연준은 힐끗 째려보았다.최연희는 히죽 웃었고 청소를 마치고 나서는 나머지 쿠키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최연준은 무심하게 물었다.“누구 주려고?”그녀는 마음속으로 움찔한 나머지 쿠키봉지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오빠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다. 숨기려 해도 끝내 들켜버렸다.“그게...”최연희는 머리를 쥐어 짜내어 변명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다시 한 번 최연준에게 덜미를 잡혔다.“혼자 먹을 건 아닐 테고!”한참이나 그 자리에 얼어 붙어있던 그녀는 더는 숨길 수 없을 것 같아 이실직고하였다.“인지석한테 맛 좀 보게 가져다주려고.”‘인지석? 또 그 자인가?’최연준의 눈은 한껏 매서워졌고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얼마 전 동생이 병원에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인지석과 함께 강주로 왔다고 했다.그때는 인지석이 누구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시간 지나 보니 인지석의 할아버지 때부터 최씨 가문의 집사였다. 그들은 주로 청소 같은 잡일을 도맡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찌 동생의 마음에 들었을까?최연준은 담담하게 물었다.“그 사람 아직도 안 갔어?”“당연하지! 나 혼자 강주에 있는데 걱정돼서 어떻게 가!”“그 사람이, 걱정한다고?”“음... 그래!”최연희는 당황한 기색이 묻어났다.“원래 나 지키려고 온 거야.”“먼 길 떠나는데 많은 경호원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잔디 깎는 사람을 데려와?”
최연준은 그녀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한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그녀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열여덟 살이 어때서... 열여덟 살에 연애하지 말란 법이 어딨어? 오빠 열여덟 살에는 임나연이 얼마나 따라 다녔는데!”“그 입 다물어!”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최연준의 기세에 실내에는 정적이 흘렀다.주위가 어찌나 조용했던지 최연희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그녀는 불안함에 머리를 푹 숙이고 입술만 깨물며 한마디도 못 하고 서 있었다.이때 강서연이 임우정과 신석훈을 데리고 왔다. 그 뒤에는 유찬혁도 있었다.그들은 모두 개업식을 축하하러 왔다.최연희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그는 가게 사장님답게 예의 있는 인사말을 그들과 주고받았다.강서연은 작은 새처럼 최연준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임우정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문뜩 정신을 차린 강서연은 삐죽대고는 곧장 카운터로 달려갔다.“매일 보는데도 모자라?”임우정이 따라와 말했다.“현수 씨가 이번 일은 잘한 결정인 것 같아, 다시 보게 됐다니까! 아무튼, 밖에서 여기저기서 사고 치지 않고 너에게만 신경 쓴다면, 난 제부로 인정해!”“됐네요!”강서연은 웃으며 메뉴판을 건넸다.“뭐 마실래요?”“난 괜찮아! 다들 모였어?”“찬이가 오늘 학원에 가는 날이라 끝나고 올 거예요. 다른 분들은... 아마 이미 도착했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유찬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때마침 울린 핸드폰 벨 소리에 그는 밝게 웃으며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향했다.상대는 배경원이었다.“찬혁아, 연준이 형 너무한 거 아니야?”전화를 받자마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배경원이다.“내가 못 갈 곳도 아니고! 개업식같은 큰 행사에 나더러 오지 말라니...”유찬혁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다독여 주었다.“네가 이해해, 그러게 누가 서연 씨한테 변태 취급 받으래? 교통사고도 그렇고! 서연 씨가 너를 보자마자 놀라 도망가면 어쩌려고!”시무룩한 표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