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군형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이 두 사람이 ‘자매 같은’게 아니라, 어쩌면...“형, 왜 그래? 멍하니 뭐 해? 빨리 와, 아이스크림 사러 갔어!”“아, 근데 아이스크림이 왜? 소아는 아이스크림 좋아해.”“연우는 지금 먹으면 안 돼!”“안 돼...?”최군성이 흠칫하고는 얼굴이 빨개진 채 형을 이끌고 여자들의 뒤를 따라갔다.......즐거웠던 하루가 끝났다. 최군형과 강소아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밥상에는 소정애가 차린 진수성찬이 놓여있었다.“군형아, 소아야! 빨리 와서 밥 먹어!”소정애가 웃으며 밥을 뜨러 갔다. 아이가 배불리 못 먹을까 항상 걱정하는 게 부모 된 마음일 것이다. 최군형의 그릇은 강소아의 얼굴보다도 컸다.최군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배를 만지작댔다. 오랜 운동으로 만들어진 탄탄한 복근이 말랑한 아기배로 변할까 봐 걱정이었다.그는 밥을 떠먹으며 밥상에 둘러앉은 네 식구를 쳐다보았다. 이 집에 온 뒤로 이렇게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기는 처음이었다. 보면 볼 수록 우미자의 말에 믿음이 갔다. 강소아와 그들 식구는 정말 닮은 구석이 없었다.최군형은 복잡한 심경으로 천천히 그릇을 내려놓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올 때 봤는데, 우미자 아줌마가 공원에 계시더라고요.”“우미자? 그 사람 딸이 돌아오면서 뭐 좋은 걸 사 왔나 보지.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난 거 아니야?”“그런 거 같아요. 옆에 여자 한 명이 있었는데 너무 어두워서 얼굴은 잘 못 봤어요. 아, 전에 진찰해달라고 한 번 왔었는데, 미자 아줌마랑 똑같이 생겼던데요.”“그러니까! 얼굴형이 똑같아요. 수호신 형, 유전의 힘이 세긴 세나 봐요. 나랑 아빠랑 나가면 사람들이 나보고 미니 강우재라고...”“밥이나 먹어!”소정애가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젓가락으로 강소준의 머리를 쳤다. 뭘 말하든 상관없었지만 생김새 얘기는 꺼내면 안 됐다. 찔리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집에서 말하지만 않으면 이
“군형아, 너... 너 안 믿는다면 내가 증명해 줄게!”강우재가 소정애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앉으라고 손짓했지만 소정애는 이를 신경 쓰지 않고는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손에 뭔가를 들고나와 최군형에게 그 물건을 넘겨줬다.“봐, 소아의 출생증명서야! 부, 강우재. 모, 소정애! 이제 믿겠어? 이건 병원에서 떼온 거야!”“아줌마, 진정해요. 전 못 믿겠다고 한 적 없어요...”최군형이 급히 일어섰다.“이제 우미자 그 미친X 소리는 그만 들어!”소정애가 몸을 부들거리며 소리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식사가 끝난 후, 최군형은 밖에서 최군성과 통화하고 있었다.“군성아, 물어볼 게 있어. 너한테 아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다 그 아이가 네 친아들이 아니라고 해. 그럼 어떻게 할 거야?”“형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바람맞았으면 좋겠어?““아니, 진지하게!”최군성이 조금 생각하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처음엔 화도 내고, 설명도 하려 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 난 떳떳하니까. 그리고 내 친아들이 맞다며.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뭐 어때?”“그 아이가 너랑 안 닮았다면?”“형, 계속 이럴 거야?”“그러니까 만약에! 만약에 그러면 어쩔 거냐는 소리잖아.”최군형이 입을 삐죽였다.‘이런 걸 왜 물어보지?’“그럴 리가 없잖아. 친자식이면 어딘가는 닮은 구석이 있겠지! 난 아빠랑은 닮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를 닮았잖아!”“할아버지처럼... 언제나 화가 나 있다고?”“할아버지도 젊었을 땐 엄청나게 잘생겼거든? 그러니까 내 뜻은, 아이가 꼭 부모를 닮는다는 법도 없어. 어떤 특징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닮기도 한대.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그렇지, 이게 정상인의 사고방식일 것이었다. 처음에야 화가 날 것이지만 명백한 사실이라면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었다.하지만 소정애의 반응은 어딘가 찔리는 곳이 있는 사람 같았다.찔린다고...?최군형이 눈을 가
이런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아이를 훔치겠는가?최군형은 강소아를 쳐다보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그녀의 행복한 웃음은 가짜라고 보기엔 어려웠다.‘이 광경을 파괴한다면, 다시 이런 웃음을 볼 수 있을까? 아직 결론도 나지 않았는데 혹시나 오해라면...’최군형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가슴에 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했다.밤이 깊었다. 강우재와 소정애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미약한 빛이 창문에 비쳤다.강우재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내를 보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이제... 소아 출생증명서는 꺼내지 마.”소정애는 강소아의 어릴 적 사진을 펼쳐보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을 본 그녀의 손이 우뚝 멈췄다.그들 부부가 강소아를 안고 부둣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강우재가 눈을 돌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거 가짜잖아. 절대 군형이한테 그걸 보여주면 안 돼! 위조 전문가라는 거 잊었어? 이게 가짜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걸!”소정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이 사실을 잊을 수가 있지?“아냐, 그럴 일 없어... 잠깐 꺼낸 거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거야!”“그러니까 우미자랑 좀 그만 싸워. 그 여자가 뭐라 하든 그냥 내버려둬! 우리가 찔려서 이러는 거로 생각하면 어쩌려고...”소정애가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찔린 게 맞았다.최근 그녀는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의 그 배로 돌아가는 악몽을 종종 꾸었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작디작은 강소아가 홀로 갑판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달려가 강소아를 안아서 들려 하자 하자 강소아는 이미 성인의 모습을 한 채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왜 날 못 돌아가게 해요? 대체 왜!”소정애는 눈물을 뚝뚝 떨궜지만 한 마디도 얘기하지 못했다.“집에 못 가게 하고, 우리 엄마 아빠랑 헤어지게 했잖아! 미워! 미워!”소정애가 깜짝 놀라 꿈에서 깼다. 베개가 흠뻑 젖어있었다.지금 그 꿈을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숨이 가빠왔다. 하필이면 이때 강우재가
소정애가 잠깐 생각하더니 작게 웃었다.“간단하지, 군형이를 잘 대해주면 될 거 아니야.”“어떻게 하는데?”소정애는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 부부는 열심히 가게를 경영해 왔다. 엄청난 돈은 없었지만, 이곳에서 남부러운 것 없이 살 수는 있었다. 이 집 말고도 시내에 새 집 한 채가 더 있었다.소정애는 가게와 낡은 집을 모두 강소아에게 주고 자신들은 강소준과 함께 새집에서 생활하려고 했다. 돈도 조금만 남기면 됐다.가게를 강소아에게 주면 수입이 보장될 것이고, 지금 사는 집을 강소아에게 주면 거처가 해결될 것이었다. 이 집은 학교와 가까우니 강소아와 최군형의 자식이 학교에 다니기도 편할 것이다.소정애가 빙그레 웃었다.“소아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거야. 이 정도면 군형이를 여기 남겨놓을 수 있겠지.”강우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정애를 칭찬했다. 강우재에게도 강소아는 소중한 존재였다. 최군형이 강소아를 잘 보살필 수 있다면 그도 마음이 놓일 것이다.......다음 날, 최군형이 상품을 정리하는데 구봉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도련님!”최군형이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무슨 일입니까?”“도련님이 분부하신 거 아닙니까? 그동안 하수영의 행적을 쫓았습니다.”“어때요? 뭐 발견한 거 있어요?”“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아요. 하수영의 통화 내역 중에 종종 등장하는 번호가 하나 있는데, 추적해 보니 남양 번호였어요. 자세히 조사해 보니, 글쎄...”“뭔데요?”“육명진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육 씨 집안의 육경섭과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최군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핸드폰을 쥔 그의 손끝이 하얘졌다.“도련님, 조사해 보니 육명진이 나이가 많은데도 그를 따르는 여자들이 꽤 있는 모양이에요. 전엔 여자 연예인과 좋지 않은 소문까지 났었고요! 하수영이 설마 돈 때문에...”최군형이 인상을 쓰고 입술을 깨물었다. 틀림없이 육소유와 관련 있었다.“다른 건 없나요?”“일단은 여기까
육연우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들 형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들어있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형수님 참 좋으시겠어요.”최군형이 동생에게 눈치를 줬다. 최군성은 곧바로 육연우의 손을 잡고 웃었다.“네가 같은 일을 당했다면 나도 그렇게 할 거야.”“군성 오빠...”그녀는 말하려다 말고 입술을 깨물며 손을 빼냈다. 그녀는 최군성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녀는 육명진의 딸이었다. 육명진은 육씨 가문을 해한 악의 축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어떻게 최군성과 사귈 수 있겠는가?최군성이 괜찮다 해도 그 부모님들은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하지만 감정이란 참 이상해서 절제하려 할수록 걷잡을 수 없었다.육연우는 최군성을 살짝 보고는 급히 눈을 돌렸다. 그녀의 두 손이 옷자락을 만지작대고 있었다.최군형이 입을 열었다.“연우더러 하수영에게 접근하려 한댔지? 모든 걸 다 준비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시간표도 최대한 비슷하게 짜줄게.”정신을 차린 육연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요, 잘할 수 있어요. 정말 육소유가 맞다면 돌아가자마자 사실대로 얘기할래요!”최군형은 눈앞의 이 아이에게 동정심마저 들었다. 그녀는 분명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육씨 가문의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다. 힘들게 살고 있는 그녀에게 육씨 가문은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이 모든 걸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기를 고집하고 있었다.그러니 육명진이 어떻게 그녀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겠는가?최군성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연우야, 하수영 정말 독하대. 접근할 때 조심해!”“독하다고요? 누가 그래요?”“우리 형이!”최군형이 힘껏 헛기침했다. 그 말을 들은 육연우가 살짝 웃었다.“군형 오빠, 하수영 씨가 형수님을 괴롭혀서 그러는 거예요?”“어... 당연히 아니지! 난 그렇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최군형은 비아냥대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육연우와 함께
육연우는 눈앞의 사람이 하수영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부드러운 소리로 물었다.“제가 책을 안 가져와서 그러는데... 잠깐 빌려주실 수 있어요?”하수영이 그녀를 째려보고는 읽고 있던 책을 육연우에게 밀어주었다. 어차피 보고 싶지도 않았으니 상관없었다.육연우가 웃으며 연신 감사를 표하다가 갑자기 소리쳤다.“어!”“왜 그래요? 방해하지 마요!”“아, 교실을 착각했네요... 죄송해요, 선배님!”하수영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있는 집안 자식들인데, 보아하니 부잣집 자식들이 모두 똑똑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처럼!교실도 찾지 못하면서 학교는 어떻게 다닌다는 거지?육연우는 옷자락을 잡고 울상을 지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하수영은 묘하게 쾌감이 들었다.다른 사람, 특히는 명문가 자제들이 그녀보다 못한 것을 보는 게 좋았다. 하수영은 몸을 일으켜 팔짱을 끼고는 거만하게 물었다.“저기, 새로 왔어요?”육연우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입학 시즌 아닌데 어떻게 온 거에요?”“저... 전 머리는 나빠도 돈은 있어요. 집에 있는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데 부모님은 너무 바빠서... 그냥 아무 대학이나 졸업하고 재산을 상속받으라고... 그런데 입시에서 실패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청강생으로 들어온 거예요.”육연우는 하수영의 질문을 예상하고 미리 답변을 준비해 왔다. 그녀는 한껏 몰입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청강생?”그 말을 들은 하수영의 허영심이 더욱 커졌다. 한낱 청강생이라니! 그녀는 입시를 치르고 정정당당하게 차석으로 입학했다. 수석은 강소아였다.하수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소아의 이름을 생각하자 또다시 기분이 나빠졌다.하지만 눈앞의 재벌 2세는 꽤 순수해 보였다. 이용하기 딱 좋은 모양새였다. 하수영이 종이를 육연우에게 건네며 말했다.“됐어, 울지 마. 어느 교실인지는 기억해?”“음... 저... 302호요!”“여긴 301호야.
하수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승리를 예측한 듯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머릿속에 그 말이 맴돌았다.“연우 씨 오빠가 있대!”세연 그룹은 엄청난 실력을 갖춘 그룹이었다. 그 집안 자식과 결혼한다면... 하, 최군형 따위는 짓밟아버릴 수 있었다.하수영이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녀는 무엇이든 강소아보다 잘하고 싶었다. 결혼 상대도 강소아보다 좋아야 했다. 강소아를 밟아버리고 싶었다!하수영은 사악하게 웃고는 책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교실에서는 수학 시간이 한창이었다. 모두가 피하는 수업이었지만 육연우는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교수님이 강의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한 번만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추론 과정부터 결과까지 모두 그랬다.하지만 이는 그녀의 연습장에만 존재했다. 교수가 문제를 물어보자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눈에는 어느새 눈물까지 고였다. 그 모습에 교실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교수도 그녀를 비웃고는 수업을 끝냈다.수업이 끝난 교실은 텅 비어있었다. 육연우는 몰래 연습장을 찢고 있었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어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연우야!”육연우가 고개를 돌렸다. 하수영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이거 마셔.”“감사합니다...”육연우는 뻔히 알고 있었다. 하수영이 그녀를 뒤쫓아온 건 그 학생들의 의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학생들도 최군형이 심어둔 배우라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육연우는 커피를 쭉 들이켜고는 심하게 기침했다.“너무 써요, 맛없어요!”“응?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이게 써?”하수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선배...”“그렇게 격 차리지 마. 편하게 수영 언니라고 불러!”하수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육연우는 작은 소리로 대답한 뒤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수영의 웃음을 보니 그녀의 재산과 오빠를 노리고 온 게 분명했다.육연우는 계속해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우리 오빠랑 아는 사이세요?”“아니...
“그러네! 형 정말 똑똑하다!”최군성이 눈을 반짝이며 최군형에게 팔을 벌렸다. 하지만 최군형은 인상을 쓰고 최군성을 막았다.“뭐 해! 어릴 때 우리 자주 안았는데, 다 잊은 거야?”“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저리 떨어져!”“싫어!”최군성이 헤헤 웃으며 최군형에게 몸을 들이밀었다. 또다시 전쟁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육연우가 소리 내 웃었다.최군형이 그제야 알아챘다.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친형도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다. 육연우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이런 장면을 연출한 게 분명했다.최군형이 큰형의 위엄을 지키며 말했다.“이제 그만해! 지금 급선무는 빨리 병원에 가 검사하는 거야. 강주에 아는 병원이 있어. 다들 믿을 만 한 사람이니 괜찮을 거야. 검사도 빠르고.”최군성과 육연우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곧바로 그 병원으로 향했다.검사는 이틀이 걸렸다. 그들 세 사람은 또다시 그 카페에서 보였다. 최군성이 검사 결과를 그에게 보여주었다.“형, 이것 좀 봐!”최군형은 곧바로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일치 확률 0%라는 글이 적혀있었다.최군형이 멍해졌다. 가슴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군형 오빠, 죄송해요... 제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했어요. 하수영이 육소유인 줄 알고...”“너 때문이 아니야! 연우야, 네가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조사하지도 못했을 거야.”“맞아, 지금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늘었어. 하수영은 육연우가 아니라는 거.”“그럼 어떻게 육소유의 DNA를 하수영에게 넘겨준 거예요?”그 말에 최군형의 표정이 변했다. 그와 최군성이 눈빛을 교환했다. 뭔가 알아버린 것 같았다.하수영은 육소유가 아니지만 육소유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진짜 육소유는 하수영이 접근하기 쉬운, 그녀의 주변 사람일 것이다.설마...그의 상상이 맞다면?최군형은 숨을 참고 두 손을 꼭 맞잡았다. 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최군성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형, 형수님도... 조사해 봐야 하지 않아?”최군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
배현진은 업무 능력이 뛰어났지만, 인간관계나 처세술은 부족했다.예를 들어, 송윤지가 그의 약혼녀였던 시절에도, 배현진은 한 번도 진심으로 송윤지를 존중한 적이 없었다.송윤지와의 결혼을 결정한 이유도 그녀의 친정에 배경이 없어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중에 자신이 바람을 피우더라도, 송윤지가 아무런 반발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배현진은 전형적인 고지능, 저감성의 사례일까?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의 첫 번째 선생님이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배현진의 첫 선생님은 그저 성적을 잘 받는 법만 가르쳤을 뿐, 학업과 일 외에도 중요한 삶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이 생각이 하자, 송윤지는 갑자기 모든 게 명확해졌다. 송윤지는 배현진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느꼈고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송윤지의 미소는 허운주의 눈에 더 거슬리게 보였다.“뭐 하는 거죠?”허운주는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뭐가 그렇게 웃긴 데요?”“아무것도 아닙니다.”송윤지는 미소를 거두고 냉정한 눈빛으로 말했다.“다만 허 선생님의 교육 철학은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 많은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말이에요.”“뭐라고요?”“저는 아이들과 놀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송윤지는 차분히 말했다.“저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세상을 느끼고 책에만 얽매이지 않도록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저 아이들이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가지길 바랐습니다. 결국, 아이들의 성장 시기는 단 한 번뿐이니까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건, 인생은 멋진 여정이고 그것을 온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적에만 집착한다면, 아이들의 앞길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허운주는 숨을 헐떡이며 입술을 떨었다.허운주는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온 베테랑 교사로 수많은 명문가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런 허운주가 이제 한 젊은 교사에게 권위를 도전받고 있었다.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견
송윤지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날 선 목소리가 송윤지의 귓가를 스쳤다.“우수 교사라니? 참, 그런 상 따위는 다 가짜야. 아무 의미도 없는걸.”잠시 걸음을 멈춘 송윤지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고 곧장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허운주의 자리는 송윤지의 자리와 가까웠다. 송윤지는 허운주의 눈빛에서 질투와 증오가 서린 눈길을 느꼈다.며칠 전, 원장이 송윤지를 오성시 우수 교사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로 허운주는 완전히 송윤지를 적대하기 시작했다.겉으로는 그런 상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원장을 찾아가 분노를 터뜨렸다.“송윤지는 경력도 짧고 교직 생활을 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왜 우수 교사 후보로 추천되는 겁니까?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가르쳤는데, 이번에는 제 차례여야 하지 않나요?”그날, 원장실 밖에서는 여러 교사가 웅성거리며 허운주의 불만을 엿들었다.이후로 사무실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건강을 회복하고 복귀한 송윤지는 동료들의 태도가 예전과는 전혀 달라졌음을 느꼈다.과거에는 송윤지가 배씨 가문의 도련님과 약혼한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존중하고 떠받들었다. 하지만 이제 송윤지는 배씨 가문의 도련님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있었고 아이가 있는 이혼녀와의 경쟁에서도 패배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며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었다.이런 변화가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노골적인 태도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그러게요, 정말 불공평한 것 같아요.”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허 선생님이 훨씬 자격이 있는데 경력도 없는 신입이 후보라니, 말이 안 되죠.”송윤지는 아무 말 없이 컴퓨터를 켜고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그때, 문 앞에 원장이 나타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흔들었다.“송 선생님! 송 선생님! 보세요, 선생님께서 이미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어요!”사무실 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송윤지도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다. 유독 허운주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원장은 가볍
배현진은 잠시 멍해졌다. 배현진의 입술이 떨렸다.1조?배현진이 운영하는 자회사는 지금 당장 천억의 유동 자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1조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본사에 지원을 요청해야 하고, 이는 이사회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이사들은 모두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이 금액을 승인해 줄 리가 없었다.“배 도련님?”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배씨 가문의 대단한 도련님도 이런 돈 때문에 고민하시네요?”소피아는 급히 팔꿈치로 배현진을 찔러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조 회장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어요! 조 회장님께서 이미 최저 가격을 제시하셨으니 우리 현진 씨가 반드시 잘 처리할 겁니다.”“그렇습니까?”조 회장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제가 최저 가격을 제시한 건 제 진심의 표현인데 두 분의 진심은 아직 보이지 않네요.”“조 회장님...”소피아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배현진이 그녀를 제지했다.배현진은 깊은숨을 내쉬며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고 입을 열었다.“조 회장님, 저도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운영하는 자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1조는 저의 아버지를 놀라게 할 금액입니다. 그분이 아시면...”“아, 그게 걱정이었군요?”조 회장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배 도련님, 솔직히 이야기해 봅시다. 지금 그 돈이 없으신 거죠?”배현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이 일을 아버님께 들키고 싶지 않은 거고요?”“네.”“그렇다면 간단합니다!”조 회장은 담배를 입에서 뗀 뒤, 부하가 건넨 명함을 내밀었다.배현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게... 뭔가요?”“돈이 없으시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되죠.”조 회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이 사람은 저와 친한 사이이고 은행에서 꽤 영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찾아가면 당신의 자금 문제를 해결해 줄 겁니다.”소피아는 크게 기뻐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임지강은 약간 실망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송윤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송윤지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임지강의 눈을 보는 순간, 송윤지는 심장이 마구 뛰는 기분이 들었다. 송윤지는 급히 고개를 숙여 밀크티를 마시며 마음속의 동요를 숨기려 했다.“임 대표님, 제 뜻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고마워할 필요 없어요.”임지강은 부드럽게 말했다.“윤지 씨를 좋아하는 건 제 마음이에요, 윤지 씨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저도 부탁이 있어요...”“무슨 부탁이죠?”“그동안은 절 거절하지 마세요.”임지강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윤지 씨에게 잘할 기회는 좀 줘야죠.”송윤지는 부끄러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공기 중에 묘한 설렘이 감돌았다.하지만, 이 남자가 자꾸 송윤지의 꿈에 나타나는 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임 대표님.”송윤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 있나요?”임지강은 잠시 멈칫했다.송윤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하게 말했다.“임 대표님이 참 익숙하게 느껴져요... 사실 저는 예전에 큰 병을 앓은 적이 있는데 병이 나은 후로 모든 걸 잊어버렸거든요. 만약 임 대표님이 저를 알고 있었다면, 솔직히 말해 주세요. 우리 가족은 왜 그러는지 제 과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임지강은 마음이 조여드는 듯했다.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오랜 침묵 이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모르는 사이에요.”송윤지는 멍하니 임지강을 바라보았다.“윤지 씨가 저를 익숙하게 느끼는 건, 아마 사람들 사이의 특별한 인연 때문일 거예요.”임지강은 가볍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가족이 과거를 말하지 않는 건, 정말로 특별히 말할 게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죠?”“윤지 씨.”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윤지 씨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요. 제가
“하지만...”배현진은 잠시 망설였다. 소피아가 말한 두 광산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고 조건도 매우 훌륭했다. 소문에 따르면 가격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하지만 배현진은 벤처 투자의 세계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었다. 매력적인 가격 뒤에는 언제나 큰 함정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자기야, 당신 나 못 믿는 거야?”소피아는 배현진의 팔을 흔들며 물었다.“미국에 있을 때 내가 당신 일을 얼마나 많이 도왔는지 알잖아. 내 능력, 못 믿어?”“그럴 리가.”배현진은 소피아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소피아는 그가 가장 신뢰하는 조력자였고 배현진이 소피아에게 매료된 것도 그녀의 업무 능력 때문이었다.“그냥... 이번 일은 금액이 너무 크기도 하고, 게다가 조 회장이라는 사람과는 거의 모르는 사이잖아.”“한 번 보면 모르는 사람이지만 두 번 보면 아는 사이가 되는 거지!”소피아는 눈을 반짝이며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이번에 우리가 큰 돈을 벌게 되면, 당신 부모님도 우릴 좋게 생각해 주실 거야.”배현진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소피아는 배현진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셔츠 단추를 장난스럽게 만지작거리며 말했다.“현진 씨, 당신은 나와 평생 함께하고 싶지 않아? 우리가 성과를 내야 당신 부모님도 우리를 인정하실 거고 우리에 대한 반대도 사라질 거야. 난 진심으로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서 이렇게 노력하는 거야. 당신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배현진의 마음이 움직였다. 배현진은 소피아를 안고는 부드럽게 소피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그는 소피아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다. 소피아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마음은 그녀에게 있었다.소피아가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은 물론, 직장에서 보여주는 강단 있고 당당한 모습이 배현진을 매료시켰다. 그것은 송윤지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배현진은 송윤지처럼 순진하고 조용한 ‘작은 토끼’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배현진은 도전적인 여자를 좋아했고 소피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