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군성은 병원에서 겪었던 이상한 일을 전부 최군형에게 들려주었다.최군형은 듣자마자 알아채 곤 차갑게 피식 웃었다.“소유는 아마도 아저씨의 통제를 받는 것 같아. 허,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소유가 납치됐던 일에 육명진이 분명 연관이 있을 거야!”“만약 사실이 아니라면?”최군성이 계속 말을 이었다.“그럼 이 모든 일의 배후엔 육명진이 있었다는 거잖아!”“일단 이 일에 대해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마.”최군형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우린 아직 명확한 증거가 손에 없을 뿐 아니라 그리고... 경섭 아저씨랑 우정 아주머니의 기분도 고려해야 해. 두 분은 이미 딸을 찾은 거라고 믿고 계시잖아. 명확한 증거를 손에 넣기 전까지 우리는 두 분의 행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응, 알겠어... 형, 지금 육명진은 분명 우리를 경계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이 일을 조심히 알아봐야 해!”“흠흠, 우리가 아니라 너만.”최군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다리가 다 나으면 다시 뒷조사하든 알아보자고. 절룩거리는 모습으로 뭔가를 캐내고 다닌다면 눈에 문제가 있지 않은 한 누구라도 수상하다는 걸 눈치챌 거니까.”최군성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치, 진짜로 요즘에 돌아올 생각 없는 거야? 나 발도 다쳤는데 정말로 나 보러 안 올 거야?”“너 보러... 가서 뭐해?”“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동생을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내가 정말로 형 사랑하는 친동생이 맞아?!”동생의 투덜거림에 최군형은 힘겹게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그리고 계속 진지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넌 그냥 발 한쪽만 다친 거잖아. 그런데 난 내 운명의 상대를 잃을 뻔했다고.”“와... 진짜! 최군형!!!”최군성은 이를 빠득 갈았다. 온몸에 소름도 오소소 돋았다.이때 타이밍 좋게 강소아가 위층에서 내려왔다.최군형은 더는 동생의 투덜거림을 들어줄 새가 없었다. 바로 전화를 끊고 바로 앉아 미소를 지으며 강소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강소아는 그를 보니 괜스레 그가 자신을
강소준은 통화를 하던 강소아의 목소리와 어투를 떠올렸다. 절대 친구나 동창에게 하는 어투가 아니었고 혹여나 보이스 피싱이라도 당하는 것일까 걱정되어 강소아가 무심한 틈을 타 몰래 방으로 들어가 강소아가 통화하면서 끄적였던 메모지를 빼돌렸다.“형, 우리 누나는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나간 거예요!”그에게 말해주면서 강소준은 이미 콜택시까지 불렀다.“얼른, 얼른 타세요! 빨리 누나 따라가야 해요!”최군형은 감격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았다.이 순간 그는 강소준이 너무도 고마웠고 평생 이 은혜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차에 올라탄 뒤 그는 메모지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그곳은 호텔이었다. 베스트 레벨 호텔 최상층에 있는 레스토랑이었고 이런 곳에서 강소아와 약속을 잡을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사실 지난번 파티에서부터 그는 강소아를 향한 남자의 시선이 미묘하다는 것을 눈치챘다.하긴, 강소아 같은 여자는 어떤 남자가 봐도 매력적이고 눈이 가는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아내이다.비록 가짜 결혼이긴 해도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진짜였다.최군형은 메모지를 힘껏 구겨버렸다.차는 빠르게 베스트 레벨 입구에 도착했다.최군형은 호텔 매니저에게 미리 연락해 두었었기에 그대로 돌진해 들어가도 그를 막는 사람이 없었다.막지 않을 뿐 아니라 호텔 매니저는 굽신거리며 그를 맞이했고 공손한 태도로 구봉남을 쫓아내 주겠다고 말했다.최군형은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따라오지도 마세요.”매니저는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았다.최군형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 레스토랑으로 왔다. 조용히 장식으로 가득한 벽 뒤로 다가가 그곳의 상황을 살폈다.구봉남은 강소아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잔에 술을 따라 건넸지만 강소아는 거절했다.“구봉남 씨, 할 말이 있으신 거면 그냥 하세요.”강소아의 목소리가 약하게 들려왔다.“제 남편은 말을 돌려서 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저도 그래요. 말 돌리는 걸 딱 싫어하죠.”그 말에
구봉남은 그녀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고 어색한 웃음소리만 냈다. 그는 술을 마시며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가렸다.강소아는 남편인 최군형을 감싸주고 있었고 한참 지나도 그녀의 입에서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구봉남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조금 더운 기분이 들었고 호텔도 이상하게도 실내 온도가 높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술을 두 모금만 마셨을 뿐인데도 몸이 더우면서 취기가 돌았다.게다가 지금까지 안줏거리라곤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테이블엔 와인 한 병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구봉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유명한 베스트 레벨이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는 것일까?그는 직원 호출 버튼을 한참이나 눌러보았지만 마치 직원들이 증발이라도 한 듯 누구도 오는 이가 없었다.민망함이 극에 달한 구봉남은 살면서 이런 취급은 처음이었다.벽 뒤에 숨어 있던 최군형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있었다.“허, 이런. 오늘 손님이 많은가 봐요. 직원 그렇게 호출했는데도 한 명조차 안 오다니!”구봉남은 하는 수 없이 어색한 말로 상황을 무마했다.그러나 강소아는 거침없었다.“그런가요? 하지만 지금 레스토랑엔 저랑 구봉남 씨밖에 없는데요.”“그건...”구봉남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아, 그래요.”그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강소아 씨가 제 조카랑 같은 전공이라면서요. 건축디자인학과 맞죠?”강소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허허, 강소아 씨 공부를 아주 잘하시나 보네요. 그 성적이라면 어느 회사에 지원하든 다 받아줄 거예요.”“과찬이에요.”“강소아 씨, 전 정말로 강소아 씨가 제 밑에서 일하기를 바라고 있어요.”구봉남은 미소를 지으며 와인잔을 두어 번 천천히 흔들었다.그녀의 입으로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없다면 다시 천천히 유도하면 되었다. 구성 그룹으로 와서 일하라는 말을 그녀에게 두 번째로 하는 중이었다... 강소아는 여하간에 학생이었고 구성 그룹 인턴십 기회는 거의 그녀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설령 지난번에 거절했다고 해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를 한참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군형... 군형 씨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최군형은 그녀를 보며 헤실 웃고 있었다.방금 그녀가 구봉남과 했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특히 “제 남편”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을 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꼈다.강소아는 그의 표정에 조금 놀란 듯 그를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발꿈치를 들어 손을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왜 그래요? 나 멀쩡해요.”최군형은 웃으며 말했다.“아, 그래요. 그냥 조금 뭔가... 평소에 무덤덤하던 사람이 갑자기 헤실헤실 웃고 있으니까 이상해서요. 혹시 뭐 좋은 물건이라도 훔쳤어요?”“그게 무슨....”최군형은 살짝 그녀를 째려보았다.강소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보다 행동이 빨랐던 남자는 바로 그녀의 손을 잡고 호텔 밖으로 끌고 나갔다.호텔에서 조금 더 걸으면 북적이는 번화가가 있었다.무더운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아스팔트 길은 뜨거웠지만, 강주는 그렇지 않았다. 설령 무더운 여름이라고 해도 도시엔 여전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함께 달리고 있으니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강소아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었고 그녀는 행복한 듯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꽉 잡은 최군형의 손과 넓은 그의 등을 보니 그녀의 볼이 어느새 발그스레 물들었다.두 사람은 번화가로 왔다. 솜사탕 가게를 발견한 최군형은 빠르게 하나를 사 왔다.강소아는 손을 내밀며 받으려 했지만 최군형은 갑자기 높이 들어 올렸다.“앗, 아니...”“먹고 싶어요?”남자는 웃으며 물었다.“나한테서 뺏을 수 있으면 줄게요!”강소아는 발꿈치를 들며 어떻게든 빼앗아 보려고 했지만 짧았다.최군형은 한 손에 솜사탕을 높이 들며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꾹 눌렀다.“소아 씨, 만약 입이 솜사탕에 닿으면 이 솜사탕은 소아 씨 것이 되는 거예요.”“입으로 뺏으라고요?”
강소아는 그를 보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고 입가엔 여전히 그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최군형은 손을 들어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의 얼굴은 청순형이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특히 눈가에 있는 눈물점은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금상첨화를 이루고 있었다.손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최... 최군형 씨, 아니 왜...”강소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그는 지금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일까?그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의미인 걸까?하지만 이런 고백은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그녀는 연애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고백도 받아 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 그녀는 마음속이 간질거리며 꿀을 먹은 듯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성이 진정하라고, 오바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알려주고 있었다.그렇게 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었다. 긴 속눈썹과 뽀얀 그녀의 얼굴은 꼭 한 폭의 그림 같았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최군형은 피가 들끓는 기분이었다.연애가 이런 것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멈춰 영원히 이 순간에 갇혀 살고 싶었다.“소아 씨...”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왜 그랬는지... 알겠어요?”여자는 수줍은 얼굴로 일부러 고개를 가로저었다.“모르겠어요? 내가 키스까지 했는데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 거예요?”최군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저리 좀 가요...”그녀는 그를 약하게 밀어냈다.최군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다행히 그는 전에 인터넷에서 연애와 관련된 글이나 영상을 많이 보았기에 이런 감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싫어'라는 말은 ‘싫지 않다'라는 뜻이었고, ‘저리 가'는 ‘안아줘'라는 뜻이라고 배웠다.입꼬리를 올리면서 그는 바로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확 끌어당기며 다시 품에 안았다.강소아는 얼굴이 터질 듯 빨개졌다.감히 그를 볼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계속 그녀에
“내가 소아 씨를 좋아하니까요. 소아 씨, 난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그러더라고요. 연애의 시작은 고백이라고. 저도 알아요, 지금 순서가 이상해졌다는 거... 하지만 전 정말로 소아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소아 씨도 나를 좋아해 주면 안 될까요? 그때 아주머니가 하셨던 말씀처럼 반년이나 일 년 후에 우리 가짜 혼인신고서도 진짜로 바꾸는 거죠... 그래 줄래요?”최군형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전부 꺼내 속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대답을 들을 것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긴장해졌다.그는 강소아의 대답이 들려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선택을 하고 이렇게까지 긴장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도 처음이었고 누군가의 대답에 그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소... 소아 씨,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대답해줘요, 네?”강소아는 한참 침묵하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그의 손에 있는 솜사탕을 보았다. 푹신푹신한 것이 꼭 하늘의 구름을 뜯어온 것 같았다.발꿈치를 들어 두 팔을 그의 목에 두른 그녀는 그의 입술을 살짝 만졌다.그러자 최군형의 두 눈이 커졌다.강소아는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까 키스할 때 눈 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하, 하지만...”‘이건 분명 소아 씨가 먼저 시작한 거야!'최군형은 살면서 얼른 누군가를 안고 싶다는 마음은 처음이었다.“소아 씨, 이름이 참 잘 어울리네요.”“그게 무슨 말이에요?”그의 손은 그녀의 몸을 슬쩍슬쩍 만지고 있었다.“소담하게 핀 꽃 같고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워요...”“군형 씨! 제발 그런 말 하지 마요! 부끄러우니까...”“소아 씨, 꼭 잘해 줄게요.”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강소아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있는 방안엔 행복만 가득 찼다....한편 오성.육명진은 육소유를 데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있었다. 호화로운 케이블카는 꼭 공중에 떠 있는 작은
육연우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케이블카는 덜컹거리며 흔들리게 되었고 육연우는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 안전바를 잡으면서 애를 썼다.육명진은 그런 그녀를 무심한 얼굴로 지켜보았다.20년간 그는 육연우를 딸로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육연우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흑역사와 같은 존재였다.그는 육연우를 낳은 여자를 사랑한 적도 없었다. 그저 술을 진탕 마시고 하룻밤의 실수로 생긴 아이였을 뿐이었다. 게다가 육연우의 엄마도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다. 딸을 낳았음에도 야밤에 자주 술집으로 들락거리며 다른 남자들과 술 마시며 놀지 않았는가?육명진은 애초에 책임질 생각도 없었기에 모른 척 살아갔다. 그런데 1년 뒤에 술 먹고 함께 밤을 보냈던 여자가 아기를 안고 그를 찾아왔다...원래 대충 돈을 챙겨주고 쫓아낼 생각이었지만 여자는 그의 예상을 벗어나는 말을 해댔다. 바로 그에게 첫눈에 반해 아이를 낳기로 했다는 것이다.육명진은 몰래 아이를 데리고 자신과 유전자 검사도 해봤었다. 결과는 일치했다. 그때 마침 육소유도 태어나 몰래 육연우와 육소유를 바꿔버릴 생각을 했었다.그러나 여자는 그의 생각을 반대하면서 무조건 자신이 키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의 아이 인생도 망칠 수는 없다고 했다.육명진은 홧김에 결국 아이와 여자를 촌구석으로 내쫓아 굶어 죽기를 바랐다.육소유 납치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그를 도와주고 있던 먼 친척이 욕심에 눈이 멀어 그의 통제를 조금씩 벗어나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마침 그때 해난 사고를 당했다.육명진은 그 기회를 틈타 먼 친척을 처리해 버렸고 육소유가 걱정되는 척 열심히 수색하기도 했다. 사실상 그는 육연우가 어느 정도 크면 육소유라고 소개하면서 육씨 가문에 들여보낼 생각이었다.그렇게 계획대로 진행되는 줄 알았지만 다른 먼 친척이 찾았다는 단서가 진짜일 줄은 몰랐다. 그 단서를 따라 그는 강우재와 소정애의 존재와 진짜 육소유가 강주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다.그는 하수영을 매수해 진짜 육소유를
그동안 그녀는 엄마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아무리 생활 형편이 어렵고 힘들어도 엄마와 함께 하는 생활은 단순하고 즐겁기도 했었다. 그녀의 세상은 사실 아주 작았다. 어릴 때부터 그녀에겐 엄마뿐이었다.“네 엄마 장례식 치르고 싶지 않다면 그럼 내가 시킨 대로 제대로 하란 말이야!”육명진은 그녀의 턱을 세게 확 잡았다.“네가 육씨 가문을 내 손에 들어오게 해줘야 네 엄마도 살 수 있는 거야, 알아들었어?”육연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육경섭 부부를 속이는 일은 그녀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었지만 육명진이 시킨 일이니, 하기 싫어도 해야 했다.“아 그래, 최근에 최군성 그 자식이랑 가깝게 지낸다고 했었지?”“아니에요...”육연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전 정말로 그 사람과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지난번 병원에서는 그저 우연히...”“그래봤자 네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봐도 넌 그럴 용기가 없거든.”육명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최씨 가문의 자식들은 전부 눈치가 빠른 놈들이야. 그놈들이 분명 너를 의심하고 있을 거야.”“그럼 어떻게 해요?”“최군성이 어쩌면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네...”육명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이렇게 해. 앞으로 피해 다닐 필요도 없어. 너한테 접근하면 그냥 내버려 둬. 처리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육연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창가 쪽으로 기어갔다.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다....며칠이 지났지만 강우재의 허리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처음에 소정애는 그가 게으름을 피워 그녀를 가사도우미처럼 여겨 부려먹는다고 생각해 ‘민간요법'을 생각해냈다.그러나 그녀가 민간요법을 시도하던 도중에서야 힘없이 축 처져 있는 강우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심지어 신음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남편의 허리에 정말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소정애는 당황하였다. 행여나 자신의 민간요법으로 강우재가 평생 허리를 쓰지 못하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
소피아는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는 낚시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소피아는 조용히 걸어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혹시... 허운주 선생님이신가요?”허운주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소피아는 직원에게 뜨거운 우유 한 잔을 주문하고 허운주 앞에 놓인 진한 커피를 치우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이 나이에 이렇게 진한 커피는 드시면 안 돼요. 건강을 꼭 챙기셔야죠.”“고맙습니다...”허운주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절 찾아오신 이유가 뭘까요?”허운주는 천천히 눈을 들어 소피아를 바라봤다.소문에 따르면, 소피아는 현재 배현진의 연인이며 이혼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배현진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허운주는 소피아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고 소피아가 도움을 준다면 송윤지 같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확신했다.“제가...”허운주는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렸다.“어떻게 말씀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소피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 선생님은 현진 씨의 선생님이시잖아요. 그 특별한 인연은 현진 씨도 평생 기억할 거고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러니 무슨 일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저는 국제 유치원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됐어요.”허운주는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소피아는 놀란 듯했지만, 최근 일어난 상황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우수 교사 선발에서 허운주가 송윤지에게 패했다는 소식은 소피아에게도 전해졌다. 자존심 강한 허운주로서는 그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소피라는 눈을 굴리며 허운주를 어떻게 이용할지 계획하고 있었다.“허 선생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소피아는 부드럽게 허운주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속상한 일 있으면 다 털어놓으세요. 제가 도울 수 있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