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군성은 병원에서 겪었던 이상한 일을 전부 최군형에게 들려주었다.최군형은 듣자마자 알아채 곤 차갑게 피식 웃었다.“소유는 아마도 아저씨의 통제를 받는 것 같아. 허,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소유가 납치됐던 일에 육명진이 분명 연관이 있을 거야!”“만약 사실이 아니라면?”최군성이 계속 말을 이었다.“그럼 이 모든 일의 배후엔 육명진이 있었다는 거잖아!”“일단 이 일에 대해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마.”최군형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우린 아직 명확한 증거가 손에 없을 뿐 아니라 그리고... 경섭 아저씨랑 우정 아주머니의 기분도 고려해야 해. 두 분은 이미 딸을 찾은 거라고 믿고 계시잖아. 명확한 증거를 손에 넣기 전까지 우리는 두 분의 행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응, 알겠어... 형, 지금 육명진은 분명 우리를 경계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이 일을 조심히 알아봐야 해!”“흠흠, 우리가 아니라 너만.”최군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다리가 다 나으면 다시 뒷조사하든 알아보자고. 절룩거리는 모습으로 뭔가를 캐내고 다닌다면 눈에 문제가 있지 않은 한 누구라도 수상하다는 걸 눈치챌 거니까.”최군성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치, 진짜로 요즘에 돌아올 생각 없는 거야? 나 발도 다쳤는데 정말로 나 보러 안 올 거야?”“너 보러... 가서 뭐해?”“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동생을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내가 정말로 형 사랑하는 친동생이 맞아?!”동생의 투덜거림에 최군형은 힘겹게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그리고 계속 진지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넌 그냥 발 한쪽만 다친 거잖아. 그런데 난 내 운명의 상대를 잃을 뻔했다고.”“와... 진짜! 최군형!!!”최군성은 이를 빠득 갈았다. 온몸에 소름도 오소소 돋았다.이때 타이밍 좋게 강소아가 위층에서 내려왔다.최군형은 더는 동생의 투덜거림을 들어줄 새가 없었다. 바로 전화를 끊고 바로 앉아 미소를 지으며 강소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강소아는 그를 보니 괜스레 그가 자신을
강소준은 통화를 하던 강소아의 목소리와 어투를 떠올렸다. 절대 친구나 동창에게 하는 어투가 아니었고 혹여나 보이스 피싱이라도 당하는 것일까 걱정되어 강소아가 무심한 틈을 타 몰래 방으로 들어가 강소아가 통화하면서 끄적였던 메모지를 빼돌렸다.“형, 우리 누나는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나간 거예요!”그에게 말해주면서 강소준은 이미 콜택시까지 불렀다.“얼른, 얼른 타세요! 빨리 누나 따라가야 해요!”최군형은 감격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았다.이 순간 그는 강소준이 너무도 고마웠고 평생 이 은혜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차에 올라탄 뒤 그는 메모지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그곳은 호텔이었다. 베스트 레벨 호텔 최상층에 있는 레스토랑이었고 이런 곳에서 강소아와 약속을 잡을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사실 지난번 파티에서부터 그는 강소아를 향한 남자의 시선이 미묘하다는 것을 눈치챘다.하긴, 강소아 같은 여자는 어떤 남자가 봐도 매력적이고 눈이 가는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아내이다.비록 가짜 결혼이긴 해도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진짜였다.최군형은 메모지를 힘껏 구겨버렸다.차는 빠르게 베스트 레벨 입구에 도착했다.최군형은 호텔 매니저에게 미리 연락해 두었었기에 그대로 돌진해 들어가도 그를 막는 사람이 없었다.막지 않을 뿐 아니라 호텔 매니저는 굽신거리며 그를 맞이했고 공손한 태도로 구봉남을 쫓아내 주겠다고 말했다.최군형은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따라오지도 마세요.”매니저는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았다.최군형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 레스토랑으로 왔다. 조용히 장식으로 가득한 벽 뒤로 다가가 그곳의 상황을 살폈다.구봉남은 강소아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잔에 술을 따라 건넸지만 강소아는 거절했다.“구봉남 씨, 할 말이 있으신 거면 그냥 하세요.”강소아의 목소리가 약하게 들려왔다.“제 남편은 말을 돌려서 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저도 그래요. 말 돌리는 걸 딱 싫어하죠.”그 말에
구봉남은 그녀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고 어색한 웃음소리만 냈다. 그는 술을 마시며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가렸다.강소아는 남편인 최군형을 감싸주고 있었고 한참 지나도 그녀의 입에서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구봉남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조금 더운 기분이 들었고 호텔도 이상하게도 실내 온도가 높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술을 두 모금만 마셨을 뿐인데도 몸이 더우면서 취기가 돌았다.게다가 지금까지 안줏거리라곤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테이블엔 와인 한 병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구봉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유명한 베스트 레벨이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는 것일까?그는 직원 호출 버튼을 한참이나 눌러보았지만 마치 직원들이 증발이라도 한 듯 누구도 오는 이가 없었다.민망함이 극에 달한 구봉남은 살면서 이런 취급은 처음이었다.벽 뒤에 숨어 있던 최군형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있었다.“허, 이런. 오늘 손님이 많은가 봐요. 직원 그렇게 호출했는데도 한 명조차 안 오다니!”구봉남은 하는 수 없이 어색한 말로 상황을 무마했다.그러나 강소아는 거침없었다.“그런가요? 하지만 지금 레스토랑엔 저랑 구봉남 씨밖에 없는데요.”“그건...”구봉남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아, 그래요.”그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강소아 씨가 제 조카랑 같은 전공이라면서요. 건축디자인학과 맞죠?”강소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허허, 강소아 씨 공부를 아주 잘하시나 보네요. 그 성적이라면 어느 회사에 지원하든 다 받아줄 거예요.”“과찬이에요.”“강소아 씨, 전 정말로 강소아 씨가 제 밑에서 일하기를 바라고 있어요.”구봉남은 미소를 지으며 와인잔을 두어 번 천천히 흔들었다.그녀의 입으로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없다면 다시 천천히 유도하면 되었다. 구성 그룹으로 와서 일하라는 말을 그녀에게 두 번째로 하는 중이었다... 강소아는 여하간에 학생이었고 구성 그룹 인턴십 기회는 거의 그녀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설령 지난번에 거절했다고 해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를 한참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군형... 군형 씨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최군형은 그녀를 보며 헤실 웃고 있었다.방금 그녀가 구봉남과 했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특히 “제 남편”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을 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꼈다.강소아는 그의 표정에 조금 놀란 듯 그를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발꿈치를 들어 손을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왜 그래요? 나 멀쩡해요.”최군형은 웃으며 말했다.“아, 그래요. 그냥 조금 뭔가... 평소에 무덤덤하던 사람이 갑자기 헤실헤실 웃고 있으니까 이상해서요. 혹시 뭐 좋은 물건이라도 훔쳤어요?”“그게 무슨....”최군형은 살짝 그녀를 째려보았다.강소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보다 행동이 빨랐던 남자는 바로 그녀의 손을 잡고 호텔 밖으로 끌고 나갔다.호텔에서 조금 더 걸으면 북적이는 번화가가 있었다.무더운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아스팔트 길은 뜨거웠지만, 강주는 그렇지 않았다. 설령 무더운 여름이라고 해도 도시엔 여전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함께 달리고 있으니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강소아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었고 그녀는 행복한 듯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꽉 잡은 최군형의 손과 넓은 그의 등을 보니 그녀의 볼이 어느새 발그스레 물들었다.두 사람은 번화가로 왔다. 솜사탕 가게를 발견한 최군형은 빠르게 하나를 사 왔다.강소아는 손을 내밀며 받으려 했지만 최군형은 갑자기 높이 들어 올렸다.“앗, 아니...”“먹고 싶어요?”남자는 웃으며 물었다.“나한테서 뺏을 수 있으면 줄게요!”강소아는 발꿈치를 들며 어떻게든 빼앗아 보려고 했지만 짧았다.최군형은 한 손에 솜사탕을 높이 들며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꾹 눌렀다.“소아 씨, 만약 입이 솜사탕에 닿으면 이 솜사탕은 소아 씨 것이 되는 거예요.”“입으로 뺏으라고요?”
강소아는 그를 보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고 입가엔 여전히 그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최군형은 손을 들어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의 얼굴은 청순형이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특히 눈가에 있는 눈물점은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금상첨화를 이루고 있었다.손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최... 최군형 씨, 아니 왜...”강소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그는 지금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일까?그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의미인 걸까?하지만 이런 고백은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그녀는 연애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고백도 받아 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 그녀는 마음속이 간질거리며 꿀을 먹은 듯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성이 진정하라고, 오바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알려주고 있었다.그렇게 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었다. 긴 속눈썹과 뽀얀 그녀의 얼굴은 꼭 한 폭의 그림 같았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최군형은 피가 들끓는 기분이었다.연애가 이런 것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멈춰 영원히 이 순간에 갇혀 살고 싶었다.“소아 씨...”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왜 그랬는지... 알겠어요?”여자는 수줍은 얼굴로 일부러 고개를 가로저었다.“모르겠어요? 내가 키스까지 했는데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 거예요?”최군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저리 좀 가요...”그녀는 그를 약하게 밀어냈다.최군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다행히 그는 전에 인터넷에서 연애와 관련된 글이나 영상을 많이 보았기에 이런 감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싫어'라는 말은 ‘싫지 않다'라는 뜻이었고, ‘저리 가'는 ‘안아줘'라는 뜻이라고 배웠다.입꼬리를 올리면서 그는 바로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확 끌어당기며 다시 품에 안았다.강소아는 얼굴이 터질 듯 빨개졌다.감히 그를 볼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계속 그녀에
“내가 소아 씨를 좋아하니까요. 소아 씨, 난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그러더라고요. 연애의 시작은 고백이라고. 저도 알아요, 지금 순서가 이상해졌다는 거... 하지만 전 정말로 소아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소아 씨도 나를 좋아해 주면 안 될까요? 그때 아주머니가 하셨던 말씀처럼 반년이나 일 년 후에 우리 가짜 혼인신고서도 진짜로 바꾸는 거죠... 그래 줄래요?”최군형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전부 꺼내 속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대답을 들을 것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긴장해졌다.그는 강소아의 대답이 들려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선택을 하고 이렇게까지 긴장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도 처음이었고 누군가의 대답에 그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소... 소아 씨,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대답해줘요, 네?”강소아는 한참 침묵하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그의 손에 있는 솜사탕을 보았다. 푹신푹신한 것이 꼭 하늘의 구름을 뜯어온 것 같았다.발꿈치를 들어 두 팔을 그의 목에 두른 그녀는 그의 입술을 살짝 만졌다.그러자 최군형의 두 눈이 커졌다.강소아는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까 키스할 때 눈 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하, 하지만...”‘이건 분명 소아 씨가 먼저 시작한 거야!'최군형은 살면서 얼른 누군가를 안고 싶다는 마음은 처음이었다.“소아 씨, 이름이 참 잘 어울리네요.”“그게 무슨 말이에요?”그의 손은 그녀의 몸을 슬쩍슬쩍 만지고 있었다.“소담하게 핀 꽃 같고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워요...”“군형 씨! 제발 그런 말 하지 마요! 부끄러우니까...”“소아 씨, 꼭 잘해 줄게요.”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강소아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있는 방안엔 행복만 가득 찼다....한편 오성.육명진은 육소유를 데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있었다. 호화로운 케이블카는 꼭 공중에 떠 있는 작은
육연우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케이블카는 덜컹거리며 흔들리게 되었고 육연우는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 안전바를 잡으면서 애를 썼다.육명진은 그런 그녀를 무심한 얼굴로 지켜보았다.20년간 그는 육연우를 딸로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육연우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흑역사와 같은 존재였다.그는 육연우를 낳은 여자를 사랑한 적도 없었다. 그저 술을 진탕 마시고 하룻밤의 실수로 생긴 아이였을 뿐이었다. 게다가 육연우의 엄마도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다. 딸을 낳았음에도 야밤에 자주 술집으로 들락거리며 다른 남자들과 술 마시며 놀지 않았는가?육명진은 애초에 책임질 생각도 없었기에 모른 척 살아갔다. 그런데 1년 뒤에 술 먹고 함께 밤을 보냈던 여자가 아기를 안고 그를 찾아왔다...원래 대충 돈을 챙겨주고 쫓아낼 생각이었지만 여자는 그의 예상을 벗어나는 말을 해댔다. 바로 그에게 첫눈에 반해 아이를 낳기로 했다는 것이다.육명진은 몰래 아이를 데리고 자신과 유전자 검사도 해봤었다. 결과는 일치했다. 그때 마침 육소유도 태어나 몰래 육연우와 육소유를 바꿔버릴 생각을 했었다.그러나 여자는 그의 생각을 반대하면서 무조건 자신이 키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의 아이 인생도 망칠 수는 없다고 했다.육명진은 홧김에 결국 아이와 여자를 촌구석으로 내쫓아 굶어 죽기를 바랐다.육소유 납치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그를 도와주고 있던 먼 친척이 욕심에 눈이 멀어 그의 통제를 조금씩 벗어나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마침 그때 해난 사고를 당했다.육명진은 그 기회를 틈타 먼 친척을 처리해 버렸고 육소유가 걱정되는 척 열심히 수색하기도 했다. 사실상 그는 육연우가 어느 정도 크면 육소유라고 소개하면서 육씨 가문에 들여보낼 생각이었다.그렇게 계획대로 진행되는 줄 알았지만 다른 먼 친척이 찾았다는 단서가 진짜일 줄은 몰랐다. 그 단서를 따라 그는 강우재와 소정애의 존재와 진짜 육소유가 강주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다.그는 하수영을 매수해 진짜 육소유를
그동안 그녀는 엄마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아무리 생활 형편이 어렵고 힘들어도 엄마와 함께 하는 생활은 단순하고 즐겁기도 했었다. 그녀의 세상은 사실 아주 작았다. 어릴 때부터 그녀에겐 엄마뿐이었다.“네 엄마 장례식 치르고 싶지 않다면 그럼 내가 시킨 대로 제대로 하란 말이야!”육명진은 그녀의 턱을 세게 확 잡았다.“네가 육씨 가문을 내 손에 들어오게 해줘야 네 엄마도 살 수 있는 거야, 알아들었어?”육연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육경섭 부부를 속이는 일은 그녀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었지만 육명진이 시킨 일이니, 하기 싫어도 해야 했다.“아 그래, 최근에 최군성 그 자식이랑 가깝게 지낸다고 했었지?”“아니에요...”육연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전 정말로 그 사람과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지난번 병원에서는 그저 우연히...”“그래봤자 네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봐도 넌 그럴 용기가 없거든.”육명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최씨 가문의 자식들은 전부 눈치가 빠른 놈들이야. 그놈들이 분명 너를 의심하고 있을 거야.”“그럼 어떻게 해요?”“최군성이 어쩌면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네...”육명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이렇게 해. 앞으로 피해 다닐 필요도 없어. 너한테 접근하면 그냥 내버려 둬. 처리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육연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창가 쪽으로 기어갔다.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다....며칠이 지났지만 강우재의 허리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처음에 소정애는 그가 게으름을 피워 그녀를 가사도우미처럼 여겨 부려먹는다고 생각해 ‘민간요법'을 생각해냈다.그러나 그녀가 민간요법을 시도하던 도중에서야 힘없이 축 처져 있는 강우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심지어 신음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남편의 허리에 정말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소정애는 당황하였다. 행여나 자신의 민간요법으로 강우재가 평생 허리를 쓰지 못하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