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온은 이렇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뛰어나갔다.이 상황을 보니, 임원은 바쁘게 소리쳤다.“정온아, 정온아!”하지만 소정온이 어떻게 그녀를 상대하겠는가?그리하여 임원은 또 바삐 소한을 끌어 당겼다.“소한 오라버니, 빨리 쫓아가 보세요!”“신경 쓸 필요가 없소! 정온의 그 입은 한 번 혼나 봐야 하오!”소한은 오늘 소정온을 훈계하지 않으면. 그녀는 언젠가는 그 입 때문에 화를 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다.임원은 오히려 조급했다.“하지만 정온은 물에 빠져 혼수상태에서 막 깨어났는데, 이렇게 혼자서 나가게 하면, 내 마음이 안 놓입니다. 소한 오라버니, 제발, 빨리 쫓아가 보세요!”임원은 눈물을 가득 흘리면서 한 말이 소한의 얼굴에 감동의 빛이 여리게 했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김단을 한 번 보고 나서야 몸을 돌려 쫓아갔다.소한이 떠날 때까지도, 임원은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었다.임학은 김단에게 화를 냈다.“네가 저지른 일 좀 봐라!”김단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임학을 쳐다보았다.“내가 뭘 했다는 겁니까?”“네가 부추기지 않았다면 소 낭자가 어찌 원이를 탓할 수 있는가?”임학은 손을 뻗어 김단에게 손가락질했다.“너는 남이 걱정하지 않게 얌전히 있을 수 없니?”김단은 말하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임학을 바라만 봤다.이전에 매번 심하게 다툴 때를 생각하니, 현재 김단의 침묵은 임학을 제 발 저리게 했다.“자네는 왜 이렇게 나를 쳐다보는 건가? 내 말이 틀렸어?”임학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김단은 여전히 이렇게 조용히 그를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모두 이전에 임학이 그녀를 감싸고도는 모습이었다.그녀는 만약 아주 오래전에 무조건 자기를 감싸고 있는 오라버니가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마음이 아플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숨을 크게 들이쉬고 김단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고 반 마디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것마저도 이간질이라고 할 수 있다면,
비록, 김단은 가짜로 쓰러진 거지만.그러나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그녀는 소정온과 마찬가지로 진산군댁에 실려서 별당으로 온 것이다.그녀도 소정온처럼 의원의 치료를 받았다!그런데 왜, 지금, 이 순간의 임학은 임원을 아까워하고, 심지어 그와 관계가 없는 소정온도 걱정하는데, 유독 여동생인 자기는 신경 쓰지 않는가?그는 예전에 그녀를 가장 아끼지 않았던가?그녀를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주지 않았던가?그녀를 위해 다른 사람과 머리에 피가 터지도록 싸울 수 있지 않았던가?어째서 지금 그는 모든 사람을 관심하는데 다만 그녀를 개의치 않는 것인가?임학도 김단의 가벼운 물음에 가슴이 떨렸다.심지어 그 순간, 그는 질책이 담긴 김단의 두 눈을 감히 보지 못했고, 더군다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다.그러나 옆에 있는 임원은 심하게 울어서 거의 반쪽 몸이 그의 몸에 기대면서 계속 훌쩍거렸다.임학은 임원이 오늘 큰 억울함을 당했다는 것을 안다.조금 전에 임원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렇게 욕을 먹은 것이, 모두 김단때문에 일어났고 생각하니, 임학의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찔리던 감정이 거의 사라졌다.그는 김단을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이렇게 힘 있어 보이는 것 보니 아무 일도 없어 보이구나! 아니면 무슨 힘으로 이간질까지 하겠어? 내가 경고하는데, 원이는 원래 단순하고 선량한데, 만약 이 일로 인해 밖에서 무슨 나쁜 명성을 얻게 된다면, 나는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원이야, 가자!”임학은 그렇게 임원을 껴안고 떠났다.김단은 제자리에 서서 차갑게 바라보며 자신을 비웃었다.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렇게 많은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이 마음은 여전히 춥고 아프구나.숙희는 어느새 나타나 김단의 어깨에 외투를 걸치고 임학과 임원의 뒷모습을 향해 비웃었다.“둘이 지금은 또 명절을 개의치 않는 것입니까?”남녀는 다르므로 임학과 소한은 소정온을 구하러 갈 수 없다.그런데 임원이 불쌍하게 우니 임학은 임원을 안고 떠나는
내시는 순순히 응하고 한쪽으로 가버렸다.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소한이 대놓고 그녀를 막은 것은 설마 소정온 때문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어제 소정온이 떠난 후에 무슨 일이 있었나?아니면 임원 때문인가?김단은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느꼈다.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한이 말을 마치기 기다렸다 갈려고 했다. 하지만 시선에 갑자기 화자 한 켤레가 더 많아졌다.그 익숙한 숨결이 다가오자, 김단은 놀라서 갑자기 고개를 들어서야 소한이 이미 그녀의 바로 앞에까지 왔음을 발견했다.아주 가깝게!너무 가까워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틀림없이 험담이 나올 지경이다!그녀는 무의식중에 그와 거리를 두려고 바삐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귓불에 갑자기 잡아당기는 통증이 밀려왔다.김단은 급히 자기 귀를 막았는데 그녀의 귀에 귀걸이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그녀는 오늘 입궁하면서 소박하게 분장했는데, 귀에는 아무런 장신구도 하지 않았다.그러니깐, 이 귀걸이는 방금 소한이 그녀에게 씌운 것인가?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파고들자, 김단은 마음속으로 매우 놀라 다시 소한을 바라보니 그의 손에 아직 귀걸이 하나를 더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검붉은 마노 귀걸이가 그의 손끝에서 가볍게 흔들렸다.그러나...그녀는 어제 그 나무 상자와 함께 그 귀걸이를 버렸지 않았던가?그는 그녀가 호수에 던진 귀걸이를 주웠나?김단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소한을 바라보았다.“장군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김단의 얼굴에 나타난 충격과 의문에 대해서, 소한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이었다.“이것은 이 장군이 너에게 준 것이오.”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어딘가에 위압이 배어 있었다.“당신이 사람들 앞에서 버리는 것은 이 장군의 체면을 짓밟은 것이오.”김단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는 그녀 앞에서의 자칭조차도 '이 장군'이 된 것을 보니, 어제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귀걸이를 버린 행위는 확실히 그를 면목 없게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그런데..., 지금
소한은 그 말을 마치고 떠났는데, 김단이 그 귀걸이를 끼울지 말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그러나 김단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현재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내시가 수시로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그 내시가 틀림없이 소한의 명령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덕빈궁에 있는 내시가 소한이 길을 막을 때 조금도 난처한 기색이 없이 그렇게 쉽게 비켜서다니!참!그녀는 세답방에 있을 때 이미 지금의 소 장군이 수단이 뛰어나다는 것을 들었는데, 후궁 빈의 궁까지 스며들 줄은 생각도 못 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그 내시가 지켜보는 가운데 귀걸이를 찼다.이 상황을 보고, 그 내시는 비로소 다가오더니 김단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계속 그녀를 데리고 덕빈궁으로 갔다.덕빈께서 오래 기다린 것 같다.김단이 인사하기도 전에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앞으로 다 한 가족이 될 사람인데, 절을 하지 않아도 돼!”그녀는 김단을 일으켜 세워, 미간에는 온화한 관심이 가득했다.“기아가 네가 어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에 빠졌다고 했는데, 어때? 몸은 좀 좋아졌는가? 잠시 후 마침 어의가 와서 맥을 청하는데, 너도 한번 볼 것인가?”김단은 웃으며 대답했다.“덕빈마마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몸은 괜찮습니다.”“괜찮으면 됐어!”덕빈이 말하면서 눈빛은 결국 그 검붉은 귀걸이에 끌렸다.그녀는 김단이 오늘 옷차림이 소박한 것을 보았는데, 유독 이 마노 귀걸이만 튀게 보이자, 바로 물었다.“이 귀걸이가 독특하구먼,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김단은 얼굴이 약간 굳어졌지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없습니다.”덕빈은 생각에 잠긴 듯 응하고는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고 김단을 끌고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내가 너를 찾아온 것도 별일이 아니라 너의 몸이 걱정되어서 한 번 만나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말이지.”그러고는 또 멀지 않은 탁자를 가리켰다.“마침, 오늘 상의원의 너에게 몸매 치수를 재라고 했는데, 네가 경사스러운
마치 방금 이 귀걸이에 관한 일은 덕빈이 아무 의미 없이 꺼낸 것처럼 보였다. 김단은 마음이 굳어 말하지 않았다.오히려 명정대군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덕빈의 곁으로 걸어가서 탁자 위의 옷감을 보고 뒤적였다.“이것들은 모두 상의원에서 가장 좋은 옷감입니까?”“가장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좋은 편이다!”덕빈은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이 애 봐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 어찌 감히 가장 좋은 것을 원하느냐?”곧 영지로 보내져 실세 없는 대군자가가 되는 사람인데, 이 옷감들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이미 괜찮은 것이다.명정대군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김단을 잡은 그 손은 자신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 손등에 아직 낫지 않은 동상이 그에게 잡혀 또 아팠다.하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덕빈은 명정대군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듯 스스로 옷감을 골라 김단에게 한번 대 보고 또 명정댁군에게 한번 대봤다.“내가 봤을 때, 이 두 가지가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한가?”명정대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어마마마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김단도 한마디 따랐다.“덕빈마마께서 정해 주시면 됩니다.”“너희도 참!”덕빈은 웃으며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꼭 계속 손을 잡아야 해? 자세히 골라보거라.”김단은 이 농담에 좀 불편해서 손을 막 떼려 했다.그러나 명정대군이 놓지 않고 도리어 덕빈을 향해 웃었다.“내가 어떻게 해서 단이의 손을 잡았는데, 어마마마께서는 절대로 내 좋은 일을 방해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덕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덕빈 옆에 있는 상궁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덕빈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덕빈마마, 상의원의 상궁들이 중전마마께 불려 갔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그 말을 듣고 덕빈의 얼굴에 웃음기가 순식간에 굳어졌다.명정대군의 손에도 힘이 부쩍 들어갔다.김단은 통증을 참지 못
명정대군은 비록 웃고 있었지만, 김단은 부드러운 말투에 숨어 있는 불쾌함을 똑똑히 들었다.하지만 명정대군이 화를 내는 것도 정상이다.이 귀걸이에는 그녀와 소한과의 추억이 너무 많다.어제 그녀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버렸는데, 오늘 다시 그녀의 귀에 나타났으니, 명정대군은 그녀의 약혼자로서 화낼 만도 했다.그래서 그녀는 사실대로 설명했다.“어제 많은 사람 앞에서 이것을 버려 소 장군의 체면을 손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 장군이 저에게 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제가 하지 않으면, 소 장군이 우리 조모를 찾아가 헛소리할까 봐 두려워서...”명정대군은 그녀 조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군.”명정대군은 문득 깨닫는 기색을 보였다. “본왕은 단이가 이 귀걸이를 마음에 들어 다시 주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 장군이 준 것이구나.”말이 끝나자, 명정대군의 눈에는 어두운 기운이 더욱 뚜렷해졌다.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대군자가, 안심하십시오. 제가 돌아간 후에 소 장군을 찾아가 똑똑히 말하겠습니다. 이 귀걸이도 저는 더 이상 끼지 않을 것입니다.”“그런가?”가벼운 말투에 약간의 비웃음이 배어 있었다.“만약 소 장군이 줄곧 네 조모로 위협했다면?”김단은 멍했다. 그녀는 이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저 한 쌍의 귀걸이일 뿐인데, 소한은 어제 체면이 깎인 데에 대하여 화를 냈으면 됐지, 설마 계속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지는 않겠지?어쨌든 소한은 지금 나라의 대장군인데, 결코 이렇게 유치할 리가 없다.그러자 명정대군이 웃으며 손을 들어 김단의 귓가에 있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후 손가락이 김단의 귓불을 가볍게 스쳤다. 어느 순간 그의 눈 밑의 잔인함이 거의 넘칠 것 같았지만 결국 참았다.손을 거두고 그는 가볍게 웃었다.“나를 따라 어떤 곳에 가지 않겠소?”말을 듣자, 김단의 마음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한양 서쪽?한양 서쪽,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김단의 안색이 굳어지는 것을
김단이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명정대군의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난 그저 마음대로 물은 거야, 단이는 마음에 둘 필요가 없소.”이렇게 말하고는 또다시 물었다.“단이는 소 장군의 어디가 좋은 거야?”이번에도 그는 김단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서 말하기 시작했다.“소 장군이 잘생기고 소탈한 것이 좋은가? 아니면 그가 무예가 뛰어나고 담력과 지혜를 모두 겸비해서 좋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소 장군의 모든 것이 좋은 건지오?”“소한은 확실히 흔치 않은 인재이다. 단이 뿐만 아니라, 서원 그 계집애도 소한을 좋아하지. 그래서 그때 네가 그 유리잔을 깨뜨린 후에야 그녀는 일부러 작은 일을 크게 만들어 너를 세답방으로 보낸 것이오.”서원은 오늘날 큰 공주의 이름이다.김단은 3년 전의 일과 이런 관계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어쩐지 서원공주가 무조건 자기를 세답방으로 보내려 했고, 심지어 그 후 3년 동안 궁녀들을 시켜 자기를 괴롭혔다.그러나 지금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서원공주가 아니라 명정대군이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야 물었다.“대군자가께서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명정대군은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당신은 당연히 모든 것이 좋겠지오. 당신은 예전에 소한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데. 아니지, 소한이 선물해 준 귀걸이를 위해서라도 목숨을 바칠 수 있지 않소.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싫다고 해서 바로 싫어질 수 있겠소.”“난 네가 소한을 좋아하는 것을 허락한다.”명정대군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음흉한 것이 점점 많이 솟아올랐다.그의 웃음을 보면서 김단의 마음속 불안감은 갈수록 짙어졌다.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그녀는 급히 손을 뻗어 차 발을 젖혔더니, 마차는 이미 교외로 나갔다.사방이 온통 황량하다, 이것은 대수로 가는 길이 아니다!“누가 단이에게 뭐라고 했소?”명정대군의 목소리가 갑자기 김단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김단은 깜짝 놀랐지만, 명정대군이 언제 이미 그녀의 곁에
지난 3년 간, 임가의 큰 마님은 기회만 있으면 중전에게 김단을 풀어 달라고 간청을 했었다. 정작 김단이 제일 걱정하는 사람은 임가의 큰 마님이다.임 씨 가문은 언젠간 임씨 부인을 이용해 김단을 조종하고, 소한은 임씨 부인을 빌미로 김단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이 사실은 명정 대군도 잘 알고 있었다.역시나, 계속 몸부림치던 김단이 그의 말에 얌전해졌다.크게 벌리던 입을 꾹 닫고, 명정 대군을 노려 볼 뿐이다.사실 명정 대군은 자신의 한 마디에 김단이 조용해질 줄 몰랐다.잠시 놀라고는 그전에 없었던 흥분이 밀려왔다.그는 잡고 있던 김단을 놓았다.그리고 마차 밖을 향해 소리쳤다.“아직 멀었느냐!”“곧 도착합니다, 어르신!”들려오는 대답에 명정 대군의 분노가 잠시나마 억눌렀다.그는 다시 자리에 돌아갔다.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예리한 눈빛으로 김단을 위아래로 훑었다.마치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김단은 그저 자신의 목을 잡으며 숨쉬기 바빴다.하지만 곧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명정 대군은 그러한 그녀의 태도에 더욱 이끌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었다.마차가 다 채 멈추기도 전에 명정 대군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김단을 강제로 끌고 마차에서 내리게 했다.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별장 한 채를 발견했다.별장은 다른 관저와는 크게 다른 곳이 없다.하지만 사방이 황량한 곳에 나타난 이상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순간, 몇 글자가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듣지 못하겠지?’“들어가거라!”명정 대군은 김단을 끌고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마치 굶은 야귀 같다.마차꾼이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명정 대군은 그대로 김단을 안으로 내던졌다.방 안은 깜깜했다. 창문은 모두 목판으로 막혀 있어서 빛이라고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마차꾼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빌려 촛불에 불을 붙였다.그는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김단은 그제야 방 안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영정 앞으로 향했다.조모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마치 심장을 잃어버린 망자와 같았다. 가슴속 텅 빈 공허함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녀는 그들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가족의 연이 끊어졌으니, 일단 지금은 조모를 잘 보내드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만약 임학이 제정신이라면, 오늘 임원을 영정 앞에 오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바로 사람을 불러 임원을 내쫓아 버릴 것이다!김단의 힘 없는 뒷모습을 보며, 임학의 마음도 저절로 아파왔다.품 안의 누이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임학은 정신을 차리고 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아, 몸에 상처도 생겼으니 일단 돌아가서 쉬거라.”그는 남들이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임원의 상처로 화제를 돌렸다.그래야 임원이 조모를 화나게 해 죽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터였다.하지만 임원은 초조해하며 임학의 팔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오라버니...”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임학에게 가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임씨 부인 옆에 앉아 사람들에게 자신이 임씨 집안의 딸임을 보여주고 싶었다.하지만 임학은 인상을 찌푸리며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몸이 중요하다.”말투는 걱정하는 듯했지만, 임원은 그가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는 김단이 했던 말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조모가 그녀를 원하지 않는다!임원은 포기하지 않고 두 손으로 임학의 팔을 꽉 붙잡았다.하지만 임학은 이미 마음을 굳혔고, 옆에 있던 하인에게 명령했다. “어서 아씨를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거라.”그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 강한 어조가 담겨 있었다.임학이 임원 앞에서 이렇게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임원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오늘 영정 앞에 갈 수 없다.그녀는 이내 하인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일어섰고, 일부러 다리를 후들거리며 비틀거렸다.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곧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위해 진산군 댁으로 모여들었고, 임원의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임씨 가문의 친딸이 양녀에게 무릎을 꿇고 애절하게 통곡하는 모습을 보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친척 중 한 명이 다가와 김단을 꾸짖었다. “김단, 너는 어릴 적부터 성격이 거칠어서 원이를 괴롭히곤 했었지. 오늘은 큰 마님께서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다!”김단이 어려서부터 성격이 급하고 예민했기 때문에 모두 김단이 임원을 괴롭혔다고 생각했다.허, 정말 기가 찼다!김단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핏발 선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김단은 임원을 죽일 듯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들으셨소? 큰 마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군!”임원이 바로 큰 마님을 죽인 살인범인데, 어떻게 감히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을까?!임원은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녀 역시 두려웠다!지금 이 순간 큰 마님이 어딘가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그녀는 진산군 댁의 친딸이었다. 그런 그녀가 큰 마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리겠나?그렇기에 두려웠음에도 와야 했다.가슴이 죽을 듯이 아파와도, 오래 못 버티고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큰 마님의 장례식에서 쓰러져야 했다!그런 생각을 하자 임원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가슴의 압박이 더욱 아프게 조여왔다. 창백했던 얼굴은 더욱 초췌해 보였다. “김씨 낭자, 비록 내가 큰 마님과 겨우 3년밖에 살지 못했고 낭자만큼 큰 마님과 정이 깊지는 않지만, 나는 큰 마님의 친손녀이오. 큰 마님을 보내드리게 해주시오!”'친손녀'라는 말에 힘을 주어 강조했다.주변 사람들은 이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지. 임원이야말로 큰 마님의 친손녀이지. 너는 양녀인 주제에게 왜 저 아이를 막는 거냐?”“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오늘처럼 중요한 날, 양녀인 네가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게냐?”김단은 다른 사람들의 말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그가 15년 동안 키운 여식이다…비통함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진산군의 눈가가 붉어졌다.하지만 사람들 앞이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는 앞으로 계속 걸었다.어디까지 왔을까.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정신을 차려 주위를 살폈다.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등불 하나, 빛 하나조차 없었다.진산군은 그제야 힘이 다 풀린 듯 바닥에 엎드렸다.곧이어 마치 거대한 바위가 깨질 것 같은 고함을 질렀다.비통함이 어느새 통곡으로 변했다.날이 밝기도 전에 조모의 부고가 사가의 종친들에게 전해졌다.소한은 부고 소식을 받고 서둘러 진산군 관저로 향했다.빈소 안.흰 비단이 높게 걸려 있다.임학은 임 씨 부인과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소한이 향을 피우러 들어오고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었다.하지만 그는 빈소를 둘러보기 바빴다.임학은 소한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임 씨 부인에게 몇 마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곧이어 소한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임학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한이 물었다.“단이는 어딨소?”임학은 짜증이 밀려왔다.“울다가 몇 번이나 기절했는지 모르네, 지금은 의원이 준 약을 먹고 쉬는 중이오.”그는 말하는 도중에도 소한을 노려 보았다.하지만 소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학은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소한, 원이는 궁금하지 않은 것이오?자네는 누구의 약혼자인지 인지하시오!”그의 말에 소한은 눈을 내리 깔았다.하지만 눈썹은 움찔거렸다.당연하다는 듯 임원의 안위는 묻지 않았다.임학은 그의 이러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곧이어 소한의 뒤를 한 번 보고 물었다.“정암은 어디갔소?”정암은 무조건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그를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김단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정암뿐이다.소한이 입을 열었다.“갔소.”“어디를?”임학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이 물었다.“어디를 갔단 말이오?”“당우리의 산적이 촌 사람을 죽였소, 전하께
“조모!”“어머니!”김단과 진산군이 그녀를 불렀다.하지만 조모는 눈을 뜨지 않았다.김단이 다급하게 의원을 불렀다.“의원! 어서 의원을 부르거라!”말하는 도중에도 조모의 손을 놓지 않았다.조모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붙였다.“조모, 눈을 뜨시옵소서. 제발, 제발!”김단과 진산군이 아무리 불러도 조모는 눈을 뜨지 않았다.미소를 지은 체 움직이지 않았다.의원이 문밖에 있다가 그들의 고함 소리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손을 뻗어 조모의 코에 갖다 댔다.그리고 목의 맥을 짚고는 손을 걷었다.얕은 탄식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대감마님, 아씨. 큰 마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그럴 리가 없다!”진산군이 다급하게 부인했다.“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으셨단 말이다!”김단도 믿을 수 없었다.“열흘은 버틸 수 있다고 하셨지 않으셨습니까? 하루도 지나지 않았소!”의원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들에게 예의를 갖추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남아있는 힘을 다 쓰셨을 거라고 추측되옵니다.”마치 해가 지기 전에 햇살이 있는 힘을 다해 비추는 것과 같다.하지만 의원도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었다.며칠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수 나인은 알고 있었다.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훌쩍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큰 마님께서는 큰 아씨께서 다시 수모를 겪을까 두려워하시었을 것이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큰 아씨를 도우려 하신 것이지요.”그녀의 말에 의원이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큰 마님이 깨어난 것은 다름 아닌 집념, 때문이었다.집념 때문에 흐려진 의식에도 깨어 날 수 있었던 것이다.수 나인의 말에 김단은 미친 것처럼 울기 시작했다.“다 제 탓입니다, 조모...”조모를 벼랑 끝까지 내민 것은 자신이다,남아있는 힘을 쓰게 한 것도 자신이다.결국 자신의 자유를 쓰기 위해 조모가 희생 한 것이다.자신이 아무 힘이 없기에, 조모가 걱정을 하고, 조모가 마지막 힘을 내뱉었다.모두 자신의 탓이다.김단
김단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도중에도 여러번 고개를 돌려 조모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그러고는 서둘러 매화당으로 달려갔다.나무 상자를 방 안에 놓고, 다급하게 세수를 했다.옷도 갈아입지 않은 체 다시 안채로 향했다.김단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산군이 조모의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의 기류가 이상했다.김단에게 보였던 미소는 온데간데 없고,조모는 그저 어두운 위엄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김단이 돌아오자 조모가 입을 열었다.“단아, 이리 오거라.”그녀의 말에 서둘러 다가갔다.진산군의 옆으로 다가가자 조모가 말했다.“꿇거라.”김단은 조모의 말에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조모가 다시 말을 이었다.“김단, 넌 임 씨 가문에서 열여덟 해를 보내었다. 혈연의 관계는 없다, 허나 네 아비와 어미는 어렸을 때부터 널 지키고 아껴주며, 친자식처럼 대해주었다. 그 점은 인정하느냐?”15년 동안 김단을 지키고, 아껴준 것은 사실이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인정하는 바옵니다.”“그리하면 네 아비께 머리를 조아리거라.”조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김단은 감히 원망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몸을 돌려 진산군에게 머리를 조아렸다.조모가 다시 말을 이었다.“네 친 여식이 돌아오고 나서, 넌 양녀를 엄격하게 대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치게 한 점에 대해 인정하느냐?”진산군의 어깨가 떨렸다.그저 고개를 떨구어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조모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리하면 부녀의 정은 다 하였다. 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결정하겠노라, 내 앞에서 세 번 손뼉을 치거라.”손뼉을 세 번 치는 것은 절연을 의미한다.진산군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어머니!”그는 조모가 이러한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김단은 심장이 떨려왔다.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라 한 것은 임 씨 가문에게 길러준 은혜를
“조모..”임학의 목소리가 떨렸다.이유는 모르지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조모는 전보다 더 정정해 보였다.목소리에도 힘이 가득했다.하지만..알지 못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가만히 있는 임학을 보고 조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찌, 조모의 말이 말 같지가 않느냐?”“오해십니다!”임학은 서둘러 부인했다.다급한 마음에 목소리가 떨렸다.“손자, 어떠한 것이든 다 따르겠나이다!”“그래야지!”조모는 그제야 안심한 듯 보였다.잡고 있던 임학의 손을 놓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가서 네 아비를 불러와라. 조모가 할 말이 있다, 전하라.”임학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김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급하게 눈물을 닦아냈다.그는 그제야 방에서 나갔다.임학이 나가자마자 김단이 조모를 불렀다.“조모..”떨리는 목소리에 두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피로하시지 않사옵니까? 아니면 잠시 쉬시는 것이 어떠 하옵니까?”조모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손가락으로 장농을 가리켰다.“가서 물건을 가져오너라.”김단이 멈칫했다.이 전에 조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장롱 안에는 자신을 위해 남겨 둔 물건이 들어 있다고 했다.허나 지금 보여 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함이 밀려왔다.김단은 움직 일 수가 없었다.곧이어 조모가 그녀를 보고 재촉했다.“단아, 가져 오거라.”김단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장농을 열자 작은 나무 상자가 들어 있었다.금사남목으로 제조되어, 사방에는 금이 둘러져 있었다.김단은 조심히 상자를 들어 조모에게 가져다주었다."여기 있사옵니다."조모는 상자를 건네받았다.마른 손으로 상자를 쓰다 듬었다.마치 먼 과거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다.“내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품이다…”금사남목의 나무 상자는 조모의 혼수 중 하나다.작은 탄식을 몇 번 하고는 그제야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정갈하게 싸인 은지폐와 토지 증서를 제외하고, 투명하고 윤기있는 옥패가 들어있었다.옥패에는 '목' 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조모의 눈빛에 광이 돌았다.김단은 마치 자신이 꿈을 꾸는 것 같았다.천천히 다가가 조심스럽게 불렀다.“조모…”조모가 눈을 들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단아, 이리 와서 안아주렴.”곧이어 김단이 다급하게 그녀의 품에 안겼다.“흑흑, 농이 지나치십니다. 소녀는, 조모께서...”김단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울고 나서 허약해졌던 몸은 조모 덕분에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잃었다가 다시 얻은 기분에 묘해졌다.이때, 그들의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조모.”다름 아닌 임학이었다.김단은 눈살을 찌푸렸다.조모의 품에서 나와 그를 쳐다보았다.혹여 임학이 임원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오면, 뺨을 때려 내쫓을 생각이었다.하지만 다행히도 임학은 조모께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조모의 침상 곁으로 다가갔다.두 눈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조모께서 눈을 뜨시니 다행이옵니다.”조모는 그를 보고 마음이 복잡했다.임학은 관저의 유일한 남식이다.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으며, 마찬가지로 그녀도 임학을 아꼈다.하지만 김단에게 한 짓을 떠올리자 마냥 기쁘지 않았다.잠시 생각하고는 결국 임학에게 손을 내밀었다.임학은 마음이 쓰렸다.곧이어 조모의 손을 붙잡았다.조모는 그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고, 우리 학이가 이렇게나 컸구나. 이 조모의 손보다 훨씬 크다.”웃자고 하는 말에 임학의 눈가가 더욱 붉어졌다.조모가 계속 말을 이었다.“내 네 두 사람이 어렸을 때가 아직도 눈에 훤하다. 하나는 나무에 달려 있는 복숭아를 먹고 싶어 했지, 하필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게 맛있다면서 고집을 피웠어. 또 하나는 여동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숭이처럼 나무 위로 올라갔지. 이 조모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진산군을 불러서 망정이지, 잘못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몰라.”임학과 김단은 조모가 과거 일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두 사람은 이미 잊은 듯 했다.조모는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가 저물고, 하늘이 어두워졌다.임원은 자신이 얼마나 꿇고 있었는지 모른다.그저 불어오는 바람에 추웠다.두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다.가슴 팍의 상처만 심장 박동에 따라 아파왔다.그 덕분에 희미해지던 정신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고개를 들자 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사람의 그림자를 보자 코 끝이 찡했다.그녀는 왜 자신이 이러한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큰 마님은 곧 죽을 사람이다, 화병으로 지금 죽는 것과 무엇이 다른 가.김단은 관저와 절연하려 하지 않았는 가,자신이 오히려 그녀를 도와준 것이 아닌가.생각하면 할수록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이때, 임학이 안채에 도착했다.의원에게 상처를 치료받은 뒤, 추워할 임원에게 겉옷을 주려 찾아온 것이다.곧이어 처참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철렁했다.“원이야.”임원은 그의 소리를 들었다.안광 없는 눈으로 서둘러 주위를 살폈다.곧이어 걱정 어린 표정의 임학을 보고 나서야 울음을 터뜨렸다.“흑흑, 오라버니, 저 아픕니다, 흑흑흑…”임원의 울음에 임학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서둘러 가져온 겉옷을 임원에게 걸쳐 주었다.“그래, 이만하면 되었다. 오라버니가 부축해서 데려 가마.”그의 말에 임원은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원을 부축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이미 임학을 향해 있었다.이때, 조모의 방문이 열렸다.곧이어 불빛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그리고는 그림자 하나가 불빛을 막았다.“지금 가시오?”김단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화가 나지 않아 보이지만 그녀의 두 눈은 빨갛게 부어있었다.심지어 그녀의 말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섬뜩한 모습에 임학이 미간을 찌푸렸다.곧이어 김단을 보지도 않고 답했다.“원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어, 데려가야 해.”그의 말에 김단이 코웃음을 쳤다.“수 나인이 약을 주셨나이다. 헌데 아씨의 몸이 조모의 몸보다 허약 하나 봅니다.”임원의 몸이 굳어 버렸다.부축하는 임학의 행동이 미세하게 느려졌다.이를 느낀
임원은 반신반의한 채로 약을 건네받았다.그리고 그들 앞에서 약을 먹었다.김단이 물었다.“어떠하시오? 한양 서쪽에서 돌아왔을 때, 먹었던 약이오. 효과가 아주 좋았소.”한양 서쪽이라는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했다.그녀가 관저로 돌아왔을 때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몸 전체에 상처가 나서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지금 임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즉, 이 약은 효과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임원은 약을 삼켰다.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소.”그녀는 말하는 도중에 임 씨 부인의 품에서 나왔다.고통을 참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김단은 그제야 만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필요하시면 더 줄 수 있소이다, 힘들면 말씀하시오."말을 끝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김단의 가느다란 목소리와 더딘 행동이 곧 있으면 쓰러질 것 같다.마치 임원에게 검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진산군은 김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쓰려왔다.이때, 수 나인이 입을 열었다.“도련님의 등에 아직 상처가 있다. 여봐라, 의원을 부르거라! 마님께서도 기력이 약하시온데, 이리 계속 눈물만 흘리시면 아니 되옵니다. 여봐라, 어서 부인을 방으로 모셔라. 대감 마님, 큰 마님께서 이대로는 오래 버티시기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금일은 아씨께서 곁을 지키고 계시나, 내일은 대감 마님께서 직접 지켜야 하옵니다... 지금 쉬지 않으시면, 그 몸이 버티지 못하옵니다.”임원은 당황했다.수 나인의 몇 마디에 임 씨 가족들이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하지만 수 나인은 오랜 시간 조모를 지켰다.그리하여 관저에서는 힘이 있었다.임 씨 가족을 걱정하는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몸종들이 임 씨 부인을 부축했다.임 씨 부인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방 안을 쳐다보았다.그리고 무릎 꿇고 있는 임원을 쳐다 보았다.결국 고개를 저었다.곧이어 몸종들이 그녀를 부축하여 자리를 옮겼다.임학은 등이 찢어질 듯 아팠다.임원이 많이 다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