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김단의 생명을 얻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그 사실을 알고 조모를 통해 그녀를 위협한 것이다.김단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대군자가께서 저를 죽이지 않으신다면 두렵지 않습니다.”그녀는 방 안에 형구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유일한 도구는 명정대군의 손에 들려있는 밧줄이다.김단은 3년동안 세납방에서 지내면서 몇 번이나 채찍질 당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오늘도 견뎌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명정대군은 흥분되어 눈이 빠질 것 같았다.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단에게 다가갔다.“짐은 낭자의 이런 모습을 제일 좋아하오.”말을 하면서 김단의 머리칼을 귀 뒤편으로 넘겼다. 전에 궁에서 했던 행동과 똑같았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그는 김단의 귀에 달려있던 귀걸이를 꽉 눌러 세게 잡아당겼다."아!"김단이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본능적으로 귀를 감쌌다.순간 손에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명왕은 손에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귀걸이를 쥐고, 가슴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 번졌고, 그는 김단을 바라보며 결국 손에 든 채찍을 높이 올렸다.한편,진산군 관저 안.오늘도 소한은 다양한 물건을 가지고 큰 마님을 찾아뵈었다.큰 마님은 요 위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소한이 가져 온 귀한 약재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장군, 전에 가져다 주셨던 약재도 다 먹지 못했습니다. 또 가져 오시면 어찌 합니까?”소한은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큰 마님을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저 소한의 마음속에 큰 마님은 제 친 조모와 다름없습니다.”그의 말은 큰 마님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 틀림 없다. 하지만 큰 마님은 소한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소한과 몇 마디를 나누었다.힘들다는 말과 함께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라고 그를 내보냈다.소한은 그녀의 말에 안채에서 나왔다.그리고 임학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는 가는 도중에 임학과 임원을 마주쳤다. 소한과 마주친 임원의 얼굴이 발그레 해졌
어느덧, 해가 졌다.김단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녀는 벽에 붙어 있는 촛대를 보면서 시간을 대략 짐작했다.하지만 정확히 얼마가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저 명정대군이 밧줄로 자신의 등을 채찍질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결국 그의 힘이 다 빠지고 나서야 채찍질이 멈추었다.심지어 김단은 명정대군의 웃음 소리가 떠올랐다.잔인무도한 짓을 하고 크게 웃는 모습은 악귀를 연상케 했다.등은 마치 불에 탄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그녀는 움직 일 수 없었다.피와 옷이 달라붙은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찢어질듯한 고통을 느꼈다.'아프다...세답방의 나인이 때린 것보다 더 아파!'하지만 명정대군은 정확히 그녀의 양손과 얼굴을 피해 때렸다.심지어 때리기 전에 김단에게 외투를 벗으라고 명했다.외투를 벗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만약 외투에 피를 묻히고 돌아가면 무조건 조모에게 들키기 때문이다.김단은 손가락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곧이어 등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시간이 꽤 흘렀다는 사실에 돌아가려 했다.늦으면 조모가 걱정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는지 마차꾼이 문을 열었다.그는 피투성이 인채로 서있는 김단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어르신 께서 아씨를 데려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김단은 묵묵히 마차꾼을 바라보았다.비틀 거리며 자신의 외투를 줍고 힘들게 옷을 입었다.그녀는 혹시나 피가 묻을 까봐 애써 등을 곧게 폈다. 겨우 마지막 단추를 채우고 나서 방 밖으로 나갔다.마차꾼은 멀리 거리를 두며 걸었다.마치 김단이 넘어지면 자신에게 닿을 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마차 앞으로 끝까지 걸어갔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에 마차꾼에게 고개를 돌렸다.“나를 포함하여 이 관저에 총 몇 명이 왔소?”학대를 당한 그녀는 목이 쉬었다. 심지어 목소리에서는 허약함이 느껴졌다.쉬고 허약한 목소리이여도 위압감이
그에게는 술냄새가 진동해 김단은 그 냄새에 어지러웠다.다행히도 등의 상처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곧이어 임원이 서둘러 달려와, 다정한 말투로 임학을 달랬다.“오라버니, 화내지 마세요. 누이는 그저 명정대군과 놀다가 늦었을 뿐 입니다. 명정대군을 봐서라도 누이를 괴롭히시는 건 옳지 않습니다.”“명정대군을 봐서라도?”임학이 코웃음을 쳤다.“그래, 명정대군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만해야지. 낭자한테 참 잘해주시지, 낭자를 데리고 유람까지 가시니 말이오. 나라면 낭자를 한양 서쪽을 데리고 가겠소!”아무렇지도 않았던 김단의 얼굴이 그의 말에 점점 어두워졌다.“한양 서쪽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쉰 목소리에 임학은 잠시 멈칫했다.취기 마저도 깰 것 같았다. 그는 김단을 지그시 바라 보았다.위아래 훑어 보고는 그녀의 귓볼로 향해 시선이 집중 되었다. 피가 말랐지만 다쳤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그도 방금 전부터 은은하게 피비린내를 맡았다.‘하지만 고작 저 작은 상처 때문에 나는 냄새란 말인가?’임학은 순간 멈칫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김단이 소리를 높여 물었다.“한양 서쪽에 대해서 알고 계시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동시에 등의 상처에 누가 소금을 뿌린 것처럼 아팠다. 아파서 식은 땀이 흘릴 정도다.임학은 살짝 당황 하더니 세게 그녀를 밀쳤다.“감히 누구한테 소리를 질러!”김단은 최선을 다해 견디고 있었다.조모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벌써 마차에서 쓰러졌을 것이다.하지만 임학이 밀치자 바닥에 쓰러져서 계속 일어나지 못했다.곧이어 임학이 고래고래 외쳤다.“내가 알면 어떠하고, 모르면 어떠하리? 난 이미 너한테 경고를 했을 터, 명정대군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네가 선택한 길이다. 너는 기댈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겠지. 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하거라! 그 곳은 불 타는 지옥이다! 들어가면 결국 타 죽을 것이란 말이다!”김단은 등의 상처 때문에 아파서 마비가 될
진산군은 김단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 탓에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곧이어 소식을 들은 임 씨 부인이 서둘러 김단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면서 위로하기 바빴다.단아,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아버지가 정2품이기도 하고, 내가 덕빈과 돈독한 사이라 명정대군이 너에게 어찌..”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 씨 부인은 손에서 뜨겁고 축축함이 느껴졌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손을 바라 보았다. 손에는 피가 가득찼다.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자신의 두 손을 보고 경악함을 감추지 못하고 임 씨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나머지 사람들도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김단 만이 그들을 천천히 바라볼 뿐이다.그녀는 그들의 얼굴을 가슴에 새겼다.입가에는 자신을 비웃는 듯한 미소가 지어졌다.“보아하니, 마님도 알고 계셨던 모양 입니다. 다 알고 계시고 저에게만 숨겼던 거지요...”그들은 명정대군이 여자를 학대하는 취미를 가진 변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를 속이고 직접 명정대군의 앞으로 그녀를 데려갔다.김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참고 싶어도 마음의 상처가 더욱 깊게 파고 들었다.어떻게 그들이…자신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곧이어 먼저 말을 건 사람은 임 씨 부인이었다. 떨리는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섞여있었다.“다쳤으니까 서둘러서 돌아가자. 어서, 의원에게 알려라!”그녀의 말에 김단은 뒷걸음쳤다.피로 가득한 그녀의 두 손을 뿌리치고 그저 웃음소리만 내었다.“허허,허허허..”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세답방에서 3년 이면 이전의 15년을 다 갚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 갚았다고 하셨는데 저한테 왜 그러셨습니까, 도대체 제가 당신들과 무슨 원한이 있는 겁니까?”그들은 그녀가 가족처럼 대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바빴다. 하지만 또 그녀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어 버렸다.진산군과 그의 가족들은 알고 있었다.김단 몸에 난 상처와 세답방에서
“입 다물지 못해!”진산군이 크게 소리 쳤다. 씩씩거렸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했다.임학은 여전히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하지만 진산군의 반응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그저 김단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가 말대꾸를 하면 입을 찢어버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한편, 김단은 서있는 것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몸이 비틀비틀 거렸다.그녀는 숙희가 보고 싶었다.적어도 숙희라면 자신을 위해 달려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눈 앞이 점점 흐려졌다. 김단은 발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졌다.이때, 임 씨 부인 옆에 있던 나인이 재빨리 김단을 붙잡았다.곧이어 양손과 팔에 축축하고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나인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이어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마님, 마님. 아,아씨 몸 전체가 상처 투성이 입니다!”‘온 몸이 상처 투성이 라고?’그녀의 말이 화살처럼 임학의 머리를 뚫는 것 같았다.그는 김단이 관저로 돌아가고 숙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그리고 임 씨 부인의 양손에 묻은 피를 보고 오늘이 ‘그날’ 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온몸에 상처가 날 줄은 몰랐다.어느 새, 나인의 옷도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김단은 나인에게 기대어 임학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충격을 받은 임학의 눈빛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그녀는 그와 눈을 마주치자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쉰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저는 이미 한양 서쪽을 갔다왔습니다. 이제야 도련님께서 만족 하시겠지요?”쿵!임학의 뇌리에 천둥이 쳤다. 그대로 자리에 얼어서 움직이지 못했다.진산군은 서둘러 하인들을 불렀다.“여봐라! 어서 의원에게 데려가게!”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부축하기 바빴다. 그리고 서둘러 별당으로 자리를 옮겼다.임학이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임원만이 그의 곁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오라버니...”임원이 작게 그를 불렀다.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자신이 마차꾼에게 들은 말을 사실대
임학이 칼을 꺼내든채 명정대군의 관저로 들어갔다.분노에 가득찬 그의 모습에 관저에 있던 시위들이 그를 둘러쌌다. 곧이어 목소리를 낮추어 설득하기 시작했다.“도련님, 흥분하지 마시고 말씀으로 풀어보시 옵소서.”“비키거라!”임학이 크게 소리쳤다.동시에 칼을 휘두르며 시위들을 위협했다.“최찬기 이리 나오지 못하겠느냐!”최찬기는 다름아닌 명정 대군의 이름이다.그의 행동에 시위들은 깜짝 놀랐다. 생명에 위협을 받을만한 행동이기 때문이다.곧이어 명정관저의 집사가 시위들의 뒤에서 나타났다. 임학에게 예의를 차리고 입을 열었다.“도련님, 어르신께서 들어 오시라 명하였습니다.”그의 말에 시위들은 서로를 번갈아 보기 바빴다. 그리고 눈치껏 길을 열었다.임학은 벌겋게 변한 눈으로 집사를 차갑게 바라보았다.곧이어 명정 대군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명정 대군은 술을 마시고 있는 중 이었다. 그는 임학을 보자 흐리멍텅한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명정 대군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처남 아니시옵니까? 잘 오셨사옵니다. 짐과 같이 술 한 잔 하시지 않으시겠사옵니까?”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즐기는 모습에 임학은 또 한번 더 바닥에 있던 피를 떠올렸다.그는 크게 분노했다.“이 짐승 같은 놈! 내 손으로 죽여주마!”곧이어 들고 있던 칼을 들고 명정 대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어딘가에 숨어있던 시위에 의해 막혔다.시위가 없었다면 명정 대군의 머리에 칼이 들어갔을 것이다.명정 대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도련님께서 어찌 이리 화를 내시옵니까. 오, 혹시 단이 일로 오신겁니까?”“이 짐승! 감히 네가 단이 이름을 입에 올려?”임학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다시 칼을 들어 휘둘렀지만 명정 대군의 시위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시위의 검이 부러지고 임학에 의해 손목에 상처고 생겼다.만약 임학이 다시 칼을 든다면 시위는 목숨을 걸수 밖에 없다.한편, 명정 대군은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모습이다. 자리에 앉아 일어날 기미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의자에 앉
시위는 그의 명령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임학 손에 있던 검은 이미 소한이 뺏어 버린 뒤였다.임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어찌 막는 것이오! 저 짐승이 단이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기나 하오?”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김단의 상처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임원에게 그녀가 한양 서쪽에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소한의 눈에는 살의가 가득했다. 명정 대군을 바라보는 그의 몸 전체에는 서늘함이 느껴졌다.사실 명정대군은 소한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이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소한은 달랐다. 임학과 다르게 침착함을 유지했다. 아무리 위쪽의 총애를 받았어도 그를 죽이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명정 대군은 그를 보며 비웃었다. 소한을 향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곧이어 마음 놓고 유유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소 장군은 아마 모르실듯 합니다.”그는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술을 음미하고는 소한과 임학에게 말했다.“짐은 지금껏 그와 같은 여인을 본 적이 없었소. 그리 굵은 밧줄에도 신음 하나 내지 아니하였고, 고통에 몸이 떨려도 그 표정엔 조금 더 변함이 없었소.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며도 그 고통을 참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아시오? 하하, 하하하하…”명정 대군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임학은 그에게 달려가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소한이 그의 앞에 서있다.명정 대군은 소한의 핏줄이 터질 것 같은 손을 보면서 더욱 비아냥거렸다.“짐이 그렇게 흥분한 적은 처음 입니다. 이전에 여인들은 다 때리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지요, 김단 낭자 만이 죽지 않았소, 하하하! 그거 아시오?그 여인은 절대 죽지 않소. 짐이 힘이 닿을 때까지 때려도 숨을 쉬고 있지 않겠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인은 하늘이 짐에게 준 선물이오. 천생연분 이라는 말이지, 하하하하!”명정 대군은 매일 김단을 때릴 생각 이었다.“이 개만도 못한 놈!" 임학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자신을 막
명정 대군의 표정과 말에 임학은 깜짝 놀랐다.같은 사람이라고?내가 명정 대군이랑?말이 되는 소리!'임학은 또 한번 더 그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무슨 소리!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인간이랑 같은 인간이야! 네 손에서 무고하게 죽은 여인들이 몇 명 인지 몰라!? 단이가 멀쩡하기를 기도해.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땐 나도 죽고 너도 죽는 거야!”명정 대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피를 닦아냈다.드디어 그의 미소가 사라졌다.어두운 얼굴을 하고 임학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도련님께서는 실로 훌륭한 오라비이시옵니다. 그렇다면 짐에게 일러 주시지요, 그 훌륭하신 오라비께서 어찌하여 누이를 친히 세답방에 들이셨는지 말이옵니다.”그의 말에 임학은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명정 대군은 말을 이어 갔다.“도련님의 훈련이 아니었다면, 김단 또한 오늘과 같이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옵니다. 마찬가지로, 짐의 마음에도 들지도 못하였겠지요.”임학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명정 대군을 뚫어져라 노려 보았다.다시 주먹을 한대 내리꽂고 싶었지만 순간 힘이 쭉 빠져버렸다.소한이 임학을 데리고 가기 전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송구하옵니다. 오늘 도련님께서 술을 과하게 드신 탓에, 누이의 상처를 보고 그만 충동적으로 행동하였사옵니다.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헤아려 주시옵소서.”그의 말투에서는 한치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명정 대군은 소한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소한도 임학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소한은 참는 것뿐이다.‘역시 장군이군, 아주 잘 숨기고 있어.’명정 대군이 코웃음을 쳤다.그는 옆에 있던 술잔을 보고 소한에게 말했다.“짐도 알고 있습니다. 도련님께서 짐과 같이 술을 즐긴 탓에 잠시 정신이 나간 것이지요.”이번 일은 결코 크게 만들면 안된다.그가 김단을 때렸던, 임학이 그를 때렸던 것은 중요하지 않다.만약 이 사실이 부황의 귀에 들어간다면 두 집안의 오랜 계획은
5일 후.김단은 허약해 보이는 안색을 숨기기 위해 가볍게 치장을 하고 외출하려 했다.그녀는 이미 십여 일 동안 조모께 문안드리지 않았다. 비록 수 나인께서 돌보고 계시지만, 조모는 틀림없이 그녀를 매우 걱정하실 것이다. 그녀는 조모께 안부를 드려야 한다.조모를 만난 후에 그녀는 정암을 찾아가려 한다.그녀는 정암도 틀림없이 자기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마당에 서 있는 임씨 부인을 보았다.김단을 보자 임씨 부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다가서려 했으나 김단이 밀어낼까 봐 걱정되어 그 자리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김단은 살짝 한숨을 쉬고 나서야 임씨 부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인사를 올렸다.“마님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김단의 부드러운 말투를 듣자, 임씨 부인의 웃음은 그제야 어색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김단을 보고 말했다.“원이가 오늘 침대에서 내려온 것을 보고서야 너를 보러 왔다. 지금 네가 이렇게 잘 회복되는 것을 보니 나도 안심할 수 있다.”김단은 고개를 숙이고 말하지 않았다.분위기가 어색해하자, 임씨 부인은 다시 물었다.“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하려는 것이냐?”김단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네, 정암한테 가려고 합니다.”“뭐?”임씨 부인은 좀 놀랐고,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단이야, 잘 생각했어? 정말 정암과 함께 할 셈이야?”김단은 대답은 하지 않고 단지 조용히 임씨 부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임씨 부인은 그녀 눈에 담겨있는 확고함을 똑똑히 보았다.이 상황을 본 임씨 부인의 마음은 매우 아팠다.“나는 네 결심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정암의 아버지께 일이 생기고, 그럼 다음은? 앞으로 정암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너는 계속 이렇게 너와 원이의 몸을 망가트릴 것이냐?”이 말을 듣고서야 김단은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임씨 부인이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정암은 진산군댁에 들어서자마자, 별당으로 곧장 달려갔지만, 김단을 만나지 못했다.숙희가 방문 밖에 서서 정암을 향해 인사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암 종사관님의 아버지께서 괜찮으시다니 첨만 다행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아씨께서 휴침 중이시라 아마도 종사관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정암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아씨께서 날 만나고 싶지 않은 건지?”숙희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가 다시 말했다.“종사관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씨께서는 최근 며칠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종사관님 아버님께서 풀려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정암은 심장이 갑자기 쪼여지더니,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방해하지 말고, 푹 쉬게 해야지. 그럼, 그럼 내일 다시 오겠네.”그는 말하고는 돌아가려 했다그러나 숙희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종사관님!”정암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숙희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미간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아씨는 종사관님 아버지께서 감옥에서 고생하셨을 거라 생각하셨고, 종사관님께서 요 며칠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며 아버님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지나서 저희 아씨께서 종사관님을 보러 갈 것입니다.”며칠 지나서 김단이 그를 보러 갈 테니, 그는 다시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정암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그녀는 며칠 동안 단식을 했으니, 지금은 분명히 매우 허약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걱정하고 자책할까 봐,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다만,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서 그의 두 눈마저 시뻘게졌다.그는 무능한 자신이 너무 밉다.숙희는 정암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바삐 입을 열었다.“종사과님, 아씨의 마음속에는 종사관님이 있어요.”이 말을 듣고 정암이 멍하니 있다가,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정암은 멍해졌다.단식? 찌꺼기를 먹는다고?요즘, 그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녔고, 가끔 한가해질 때면 항상 그녀를 그리워했다.그는 그녀가 자기 아버지가 걱정되어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이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진산군댁의 호위가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그도 감히 담을 넘지 못한다.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그녀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할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그는 그녀가 이렇게 큰 희생을 할 줄 몰랐다.그는 그가 찾은 증거가 충분해서 아버지가 석방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경조부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단식하고, 찌꺼기까지 먹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가슴이 무언가에 찢기는 것 같았다. 정암은 지금처럼 자신을 미워한 적이 없다.무능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녀를 보호해 주겠다고 해놓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해 이 지경까지 괴롭힘을 당했다!임학은 이 틈을 타서 정암의 제한 속에서 벗어났고 정암의 얼굴을 향해 두 주먹을 날렸다.“너 때문이야! 이 썩을 놈아! 네가 뭔데 내 여동생이라 혼인하겠다는 거야!”정암은 비틀거리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임학을 향해 돌진했다. 주먹이 사정없이 임학의 얼굴로 향했다.“당신들은 왜 계속 그녀를 괴롭힙니까? 그녀는 진산군댁의 친딸이 아니더라도 당신 집에서 15년 동안 키운 딸이지 않습니까?”임학은 몇 대 맞고 피를 토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정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네가 분수도 모르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단이는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정암은 피하지 않았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자신이 맞아도 싸다고 느꼈다.자신의 무능함에 주는 벌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임학이 자기보다 더 못났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이 그녀의 살갗을 벗기고 피를 마시고 있습니다!”임학은 쓰러지더니, 발버둥 치며 일어나 바닥에 앉아 거
진산군은 몸을 돌려 시녀들을 향해 화냈다.“다들 멍청이느냐? 빨리 의원을 불러 큰 아씨한테 오라고 해! 어서 제비집 죽 가져와!”이렇게 소리쳤지만 몸을 돌려 김단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숙희도 그제야 김단 곁으로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그의 다른 손을 살며시 닦아주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아씨, 흑흑흑, 방에 들어가요...”그러나 김단은 그저 평온하게 임학을 바라보며 목이 멘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도련님께서는 말한 대로 하시기를 바랍니다.”오늘 이후로, 진산군댁은 더 이상 정암 가족을 괴롭히지 못한다!이 말은 마침내 임학을 자극했다.임학은 김단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암이 그렇게 좋아?”얼마나 좋았으면, 정암을 위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통의 찌꺼기를 다 먹을 수 있겠어?정암이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녀를 이 지경까지 만드는 건가?김단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숙희랑 방 안으로 걸어갔다.그녀는 과연 정암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나?그녀도 잘 모른다.그녀의 진산군댁 생활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러나 정암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쪽배처럼 그녀가 익사할 때 나타나 그녀를 배에 태워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모든 사람이 정암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쪽배도 바다 위에서는 물결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거센 파도가 밀려올 때면 쪽배도 부서지고 새고 결국 그녀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이 쪽배가 그녀의 생명을 구했었다는 것을 모른다.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암이 그녀를 버리지 않는 한 그녀는 정암을 포기할 수 없다!임씨 부인은 눈물을 훔치며 김단을 따라 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방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김단이 막았다.“숙희만 있으면 돼요, 마님은 돌아가세요!”말이 떨어지자, 김단은 방에 들어가 담담하게
임학은 김단을 노려보았다. 마치 김단이 먹지 않을까 봐 걱정된 듯 또 입을 열었다.“만약 네가 이 통 안의 것을 먹는다면 진산군댁에서 더는 정암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임학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쪼여졌다.“학아,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 단이는 벌써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찌꺼기를 먹이느냐?”임학은 몸을 돌려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어머님! 제가 독한 것이 아니라, 정말 김단이 너무 교활해서 그래요! 이번에 원이를 단식하게 하고, 다음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두 분은 정말 더 이상 김단을 믿어서는 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임학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원마저 삼키는 동작을 멈추고 모든 사람과 함께 놀라서 그의 뒤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그제야 임학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온몸이 뻣뻣해져 천천히 몸을 돌렸다.김단은 어느새 찌꺼기 통 옆에 엎드려 두 손을 통에 넣고 통 안의 물건을 잡고 먹고 있었다.임원처럼 게걸스럽게 먹는 것과 달리, 그녀는 천천히 먹고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먹고 있었다.마치 평범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그런데, 그것은 어젯밤에 남겨진 찌꺼기다!모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이다!먹기는커녕, 한쪽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찌꺼기 통에서 가끔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냄새만 맡아도 속이 쓰리다.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지?임원의 눈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3년 전에 그녀가 김단을 해쳤지만, 그녀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잘 몰랐다.지금, 이 순간, 한때 구슬처럼 눈부시게 빛났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 길가의 거지처럼 찌꺼기 통을 안고 먹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헤쳤는지 깨달았다!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진산군과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놀
김단의 움푹 들어간 검은 눈언저리를 본 숙희는 마음이 깨질 것만 같았다.김단이 힘없이 입을 여는 것을 보았다.“사람을 보내서 경조부에 가서 확인해 봐.”숙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숙희는 즉시 사람을 경조부로 보냈다.진산군은 조급했다.“너도 사람을 보냈으니, 내가 속일 수는 없지 않느냐? 빨리 네 여동생에게 좀 먹어라 해!”말하는 사이에 임씨 부인도 왔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르던 시녀 두 명이 제비집을 넣고 끓인 죽을 한 그릇씩 들고 있었다.김단과 임원을 보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아팠고 바삐 시녀에게 말했다.“빨리 두 아씨에게 죽을 먹여라!”그러자 두 시녀는 김단과 임원 앞에 무릎을 꿇고 제비집 죽 한 숟가락을 떠서 두 사람의 입으로 떠넣었다.그러나 김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김단은 위협하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김단의 시선을 감지한 임원은 가슴이 조여와, 이미 벌린 입을 재빨리 다물고 다시 누웠다.임원은 눈을 감고 어깨를 계속 떨며 우는 것 같았다.그러나 5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서, 그녀는 지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이 장면을 보고 진산군과 임학은 분노했다.임학은 심지어 욕설을 퍼부었다.“양심 없는 년! 아버지께서 이미 사람을 풀어주셨는데, 또 뭐 어쩌려고? 정말 원이를 죽게 만들 셈이야? 정암 때문에 네 눈에는 네 여동생의 목숨도 보이지 않니?”임학은 화가 나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그러나 김단은 천천히 눈을 감고 그를 보지 않았다.5일 동안 먹고 마시지 않았는데, 그녀는 지금 정말 그와 다툴 힘도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꼭 한마디 했을 것이다. 임원은 자기의 여동생이 아니라고!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숙희가 보낸 머슴애가 황급히 돌아왔다.이 머슴애는 별당 사람이다. 김단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떨려 말하는 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아씨, 소인은 정암 종사관이 그의 아버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이
예전에 김단을 위해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는 사람이 지금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참!김단은 소리 내며 웃더니, 몸을 돌려 계속 풀을 뽑았다. 땅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슬픔이 숨어 있었다.“대감마님께서 정말 임 낭자를 아끼신다면 빨리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임 낭자는 굶어 죽어도 전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자, 김단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진산군을 바라보았다.눈빛에 담긴 슬픔은 이미 사라졌고, 오직 비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임 낭자는 대감마님의 유일한 딸이십니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진산군은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김단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노는 더욱 솟구쳤다.“좋아! 좋아! 정말 이것으로 나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너는 정말 이 아버지를 우습게 보는구나! 내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진산군은 김단에게 자기도 고집불통이라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김단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제 아버지의 성은 김씨 입니다. 벌써 죽었다고 들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진산군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손가락으로 김단을 가리키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커다란 별당이 다시 썰렁해졌다.김단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다시 굳게 닫힌 정원 문을 보면서 오랫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정원 문이 다시 열릴 때는 3일 후였다.이때 김단은 정원의 흔들의자에 누워 힘이 조금도 없었다.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니 진산군이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화내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배고픔이 극에 달했는지, 김단은 눈앞이 흐릿해져도 진산군이 오는 쪽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진산군의 뒤를 따르는 임학과, 뒤에서 누군가에게 이끌려 오는 임원의 모습을 뚜렷이 알아보았다.그녀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보
김단은 정원 문 뒤에 서서 어두운 밤 속에 가려진 연못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연못 물은 맞은편에 있는 초롱의 빛을 거꾸로 비추고 있었다. 약한 빛은 마치 언제든지 어둠에 삼켜 버릴 것만 같아 연못의 돌다리조차도 똑똑히 비추지 못했다.김단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돌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귀밑의 살쩍을 불었지만,연못은 미동도 없었다.김단은 자기가 마치 초롱의 빛이고, 부드러운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망가지든 옛 가족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고 느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씁쓸하게 웃었다.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임원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임원이 정말 마시지 않고 먹지 않는 한 진산군은 반드시 마음이 아플 것이다!김단의 짐작이 맞았다.이틀이 지나자, 진산군은 노기등등하여 별당으로 왔는데, 마침, 김단은 정원에서 김매고 있었다.초봄이 되어 화단의 잡초가 매우 빨리 자라서 제때 뽑지 않으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꽃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진산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걸 본 김단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두 손을 진산군을 향해 내보이며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대감마님께서 오늘 오실 줄 몰랐습니다.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망할 년!”진산군은 노발대발하더니 손을 휘젓더니 엄하게 명령했다.“뒤져라!”갑자기 두 팀의 호위가 좌우로 나뉘어 줄지어 들어왔다.김단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대감마님께서 무슨 뜻입니까?”진산군은 대답 없이 김단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팀의 호위는 또 모두 나왔다.“대감마님, 어떤 음식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대감마님, 저희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그녀가 음식을 숨겨서 먹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콧방귀를 꼈다.진산군이 차갑게 소리치며 물었다.“너는 도대체 먹을 것을 어디에 숨겼느냐!”이틀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서 임원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
진산군은 이 일을 알고 매우 화가 났다.김단이 별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산군댁의 호위들은 벌써 별당을 포위했다.호위장은 때마침 돌아온 김단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마님께서 오늘부터 큰 아씨를 별당에 연금하여 외출을 금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김단은 이미 예상해서 놀라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별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호위장은 또 김단을 막고,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큰 아씨께서 단식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오늘부터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마시지 말고, 먹지도 말라고 명하셨습니다.”김단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말했다.“알겠으니,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김단이 이렇게 차분한 것을 보자, 호위장은 의아했다. 김단이 무슨 방법이 있어 연금에서 빠져나갈까 봐 작은 소리로 알려줬다.“대감마님께서 우리더러 별당을 엄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 기간에 별당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못합니다. 명을 거역하는 자는 당장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은 김단이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밖의 사람과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예를 들면, 전에 몰래 그녀를 보러 왔던 정암을 말한다.하지만 지금, 김단이 걱정되는 사람은 정암이 아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대감마님께서 벌을 내린 사람은 나뿐이오. 내 마당의 하인과는 무관하오. 나를 가둬두기 전에 내 마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나오라 해도 되겠소?”이 말을 듣자, 호위장도 난감했다.“이러면...”“모두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그들도 집에 살려 먹여야 할 사람이 있는데, 주인인 내가 잘못했다고 그들까지 연루해야 하오?”김단은 말하면서 머리에서 비녀 하나를 뽑아서 호위장 손에 넣어 줬다.“좀 봐주시죠.”이 비녀는 전에 궐에서 하사한 것이다. 비녀 위에 있는 진주만이라도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호위장은 바로 마음이 움직였다. 생각해 보면 김단의 말도 도리가 있다.더군다나, 진산군은 큰 아씨를 연금하라 했지, 미리 별당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