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은 집 사는 일을 숙희에게 맡겼다.숙희는 일을 빠르게 처리하여 저녁 무렵 정암네 가족은 이미 새집에 들어갔다. 이 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정암네 가족은 이런 좋은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숙희가 나서서 정암네 가족에게 집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앞마당부터 뒤뜰까지, 심지어 뒤뜰에 심은 꽃까지 일일이 설명했다.김단은 맨 뒤에 따라다니며 눈앞의 화목한 광경을 보면서 계속 눈웃음을 지었다.그러나 갑자기 정암이 그녀의 뒤에 나타나, 오른손에 나무로 만든 원형 목걸이를 들고 와서 그녀의 눈앞에서 흔들거렸다.김단은 깜짝 놀라 목걸이를 들고 자세히 봤더니 그 위에 ‘평안’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이게 뭡니까?”김단은 궁금해서 물었다.그러나 정암은 이미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달았다.“제가 14살 때부터 전쟁터에 나가 몇 번이나 죽다 살아난 것이, 모두 이 목걸이 덕입니다.”김단은 이 말을 듣고 놀라서 두 손으로 목걸이를 누르고 당황하여 정암을 돌아봤다.“이렇게 귀중한 걸 어찌 저한테 주십니까?”“어머니께서는 대대로 이어지는 보물까지 당신에게 주셨는데, 이 목걸이 하나가 뭐 대수라고?”정암은 유난히 밝게 웃으며 목걸이를 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모든 사람이 꺼리는 이름을 말했다.“이것은 평양원군이 직접 새긴 것입니다.”평양원군?김단은 매우 의아해했고, 목소리를 더욱 낮게 눌렀다.“8년 전에 다섯 원군의 병란을 평정한 후 사라진 그 평양원군 말인가요?”정암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처음으로 전쟁터에 나갔을 때, 매복을 당해 마지막에는 나와 평양원군 두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나서 저는 너무 놀라서, 평양원군께서 직접 이 평안 목걸이를 새겨 저에게 선물하셨습니다..”김단은 의아했다.“제 기억으로 당신은 소하 오라버니의 선봉이었잖아요?”그녀가 12세 때, 소한 뒤에 따라가서 정암이 소하가 거느리고 있는 군대 맨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정암은 가볍게 웃
진산군은 이렇게 말하고는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김단은 불쾌해서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진산군이 너무 무례하다고 느꼈다.다행히도 정암은 개의치 않았고 그저 김단을 향해 말했다.“그럼, 내일 다시 보러 오겠습니다.”김단은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진산군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대청에 도착하자, 진산군은 자리에 앉아서 김단을 쳐다봤다.그녀는 아무런 표정 없이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 전에 정암 앞에서 기뻐하는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진산군은 기분이 언짢아서 말했다.“아버지를 보고는 웃을 줄도 모르느냐?”김단은 담담하게 진산군을 한 번 보고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문제에 대답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대감마님께서 저한테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요?”진산군은 이미 김단의 이런 태도에 익숙해져 마음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그저 소매 주머니에서 청첩 한 통을 꺼냈다.“태부댁에서 보낸 거다.”진산군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청첩을 탁자 위에 던졌다.김단은 눈썹을 찌푸렸다.“오늘 구서를 만나서 알아듣게 말했습니다.”그녀의 말은 다시는 구서를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다.진산군은 손가락으로 청첩을 가리키며 말했다.“구태부가 직접 보낸 것이다.”그럴 리가 없는데...김단은 미간을 세게 찌푸리더니 믿지 않은 듯 청첩을 열어 봤는데 진짜 태부의 서명이었다.김단이 의아해하자, 진산군은 입을 열었다.“나도 구서가 무슨 수를 써서 태부가 직접 청첩을 보내게 했는지 모르지만, 네가 태부의 청을 거절할 수 없다.”그녀가 가지 않으면 구서의 체면을 구기는 것이 아니라, 진산군댁이 태부를 경멸하는 뜻이 될 것이다.김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대감마님께서 이미 청첩을 받았는데, 제가 안 갈 자격이나 있나요?”전에 구서의 청첩도 결국에는 그녀의 손에 주지 않았나?“너!”진산군은 급하더니 말투가 좋지 않았다.“다 너 위해서다! 구서가 아무리 비열한 놈이라도 태부의 손자다. 뒤에 태부
이튿날.김단은 태부가 보낸 청첩을 정암에게 보여주었다.두 사람은 햇빛이 좋은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정암은 햇빛에 청첩을 몇 번 돌려보아도 이해하지 못했다.“태부가 어찌 친히 구서를 위해 청첩을 보냈을까요?”태부는 구서가 손자라서 억지로 그런 몹쓸 인간을 먹여 살리고, 가끔 그를 위해 뒷일을 처리해 주었지만, 구서의 혼사까지는 응당히 관계하지 않을 텐데.구서가 비열한 놈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어서, 어느 성한 집에서 딸을 그에게 보낼 것인가?태부가 진짜로 관여한다고 할지라도 집안이 변변치 못하고, 또 태부택에 얹혀가고 싶은 집안을 선택했을 것이다.어찌 진산군댁의 김단을 선택했을까?이렇게 생각하자, 정암은 또 인장 흔적을 문질렀다.“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태부의 인장입니다.”김단은 청첩을 손에 넣더니 탄식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태부도 자기의 생각이 있겠지요? 다만, 태부가 직접 나섰으니, 구서도 막 나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가겠다고도 했어요.” 정암은 김단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여전히 걱정됐다.“그럼, 갈 때 머슴애 두 명 데리고 가요! 숙희도 데리고, 숙희는 어리지만, 몸체가 꽤 있어서 힘이 다른 사람보다 크고 영리하기까지 해서 진짜로 위험에 닥치면 숙희가 당신 앞에서 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 말을 듣자, 김단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정암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정말 간이 크네요. 이 말을 숙희가 들었으면 당신을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정암도 웃으면서 처마 밑에서 정유이와 함께 옷을 씻고 있는 숙희를 봤다.“당신이 숙희를 데려가지 않을 것 같아서 농담했어요.”김단이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도, 상대는 구서다. 그녀는 절대로 숙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김단은 정암의 걱정하는 말투를 알아듣고,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 목에 있는 평안 목걸이를 만졌다.“당신이 준 평안 목걸이가 있어서, 아무 일 없을 겁니다.”3일 후.김단은
김단이 머리를 돌려 왕철을 한 번 보더니, 왕철 역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불안하다고 느꼈다.얼마 지나지 않아, 김단은 태부 둘째 아들의 마당에 도착했다.먼저 다가온 사람은 옷차림이 화려한 부인이었다. 그녀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김단이 인사하기도 전에 김단의 손을 덥석 잡았다.“네가 김 낭자구나. 아이고, 우리 집 서아가 왜 너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겠네. 정말로 선녀가 따로 없구나.”이런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집 아씨가 들으면 아마도 얼굴이 빨개지고 믿었을 것이지만, 김단은 태연하게 부인의 손에서 손을 빼더니, 인사를 올렸다.“둘째 부인께 인사 올립니다.”둘째 부인은 자기가 이렇게 웃으면서 대하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경직되다가, 바로 열정적으로 김단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이 방으로 들어가자, 구서를 봤다.그는 턱을 약간 치켜올리면서 김단을 향해 인사했다. 여전히 사람 탈을 쓴 짐승의 모양이었다.김단은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물었다.“태부님께서 언제 오시는지요?”둘째 부인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아버님께서 조금 전에 사람을 시켰는데 오늘은 바빠서 조금 늦을 것 같으니 너를 소홀히 대하지 말고, 먼저 먹으라고 전해라 하셨다.”이렇게 말하고는, 둘째 부인이 하인에게 명했다.“어서 요리를 올려라!”순식간에, 탁자 위에는 요리가 가득 차려졌다.둘째 부인이 구서를 향해 눈치 주자, 구서는 술잔을 들고 일어섰다.“며칠 전에 제가 무례하게 굴어, 김 낭자를 화나게 해서 오늘 이렇게 용서 구합니다. 김 낭자께서 대인배로 저를 용서해 주시지오.”구서가 이렇게 말하고는 한꺼번에 술을 다 마셨다.둘째 부인도 옆에서 도우며 말했다.“서아가 성격이 좀 급해서 그렇지 나쁜 마음은 없을 거다. 김 낭자도...”둘째 부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김단 앞에 놓인 술잔을 쳐다봤다. 김단이 앞에 있는 술을 마시고 구서를 용서해 주라는 뜻이다.김단은
같은 시각, 김단은 길을 안내하는 시녀를 따돌리고 빠르게 태부댁 밖으로 달려갔다.그녀는 길을 알지 못하지만, 대충 방향을 알고 있다.그녀도 구서가 정말로 태부댁 안에서 허튼짓할지 몰랐다.태부가 청첩을 보냈지만, 연석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녀를 조롱했다는 것이다.그리고, 둘째 부인도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 구서 같은 인간 말종을 가르쳐 낸 것을 보니 아마도 마음속은 구서보다 더 비열할 것이다!김단은 생각 할수록 당황했다. 그리고 태부가 왜 이렇게 그들을 도와 나쁜 짓을 하는지도 이해 못 했다.그 인장은 분명히 태부것이다!이때, 그녀 뒤에서 크게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거기 서!”김단은 놀라서 뒤돌아보니, 전에 길을 안내하던 머슴애가 한 무리 사람을 거느리고 쫓아오고 있었다!김단은 바로 뛰었다. 하지만, 머슴애는 태부댁의 길을 잘 알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김단은 길 중간에 갇히게 되었다.구서는 머슴애들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온순한 탈을 벗고, 전에 취향각에서 본 모습처럼 간사해 보였다!김단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속의 당황함을 누르고 아무 일 없듯이 말했다.“태부님께서 구서 도련님의 이러한 행동을 알고 계신가요?”구서는 크게 웃으면서 김단을 향해 걸어갔다.“자네 생각에는?”김단은 여전히 태부가 악인을 도와서 나쁜 일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아무리 구서를 도울 마음이 있어도 이렇게 티 나게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구서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김단은 뒤로 물러서면서 미간을 찌푸렸다.“구서, 태부님은 원래부터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 또 일을 저지르면, 결과를 생각해 봤습니까?”태부가 진짜 이 일을 모른다면, 나중에 이 일을 알고 구서를 내쫓을 수도 있다!구서는 김단의 말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는 노려보더니 소리쳤다.“오늘 내가 너랑 좋은 일을 치르게 되면, 우리의 혼사는 확고부동할 것이오! 여보게, 어서 김 낭자를 데리고 가라!”말이 떨어지자, 머슴애 몇 명이 다가와서 김단을 잡았다.
그녀는 왜 진산군을 믿었을까?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떨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리가 무겁다고 느껴져서 그녀는 머리를 들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향로를 바라봤다. 향로에서 연기가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구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김단은 이미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둘째 부인이 구서의 뒤를 따라 들어와서 땅에 누워 있는 김단을 보고는 콧방귀를 꼈다.“이 계집애가 좀 영리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안 되지!”그러고는 뒤에 있는 시녀에게 명했다.“어서 작은 부인을 침대에 올리지 않고 뭣하냐?”김단을 ‘작은 부인’이라 호칭하자, 구서는 언짢았다.“진산군댁을 봐서 그렇지, 아니면 절대 김단을 얻지 않을 것입니다!”“됐어. 빨리 일이나 봐!”둘째 부인은 구서의 등을 두드리면서 재촉했다. 시녀들이 김단을 침대 위로 올린 것을 보고 다시 말했다.“어서 내려가! 도련님의 좋은 일을 방해하지 말고!”“네!”모두가 명을 받고 나가자, 방문이 다시 닫혔다.구서는 향로 앞에 다가가서 연기를 끄고는 단추를 열면서 김단을 향해 걸어갔다.침대 옆에 다가가자, 그는 김단을 내려다보더니 콧방귀를 꼈다.“몸태는 그럴 만하네, 내가 너무 밑지는 것도 아니군.”그러고는 침대에 있는 김단 몸에 엎드리려 했다.하지만, 그는 재빨리 일어서더니, 온 몸이 굳었고, 두 손을 높게 들고는 아무런 동작도 감히 하지 못 했다.김단은 차가운 표정으로 손에 쥔 비녀를 구서의 목에 댔다. 비녀의 끝자락은 이미 구서의 피부에 찔려서 선홍색 피가 그의 목을 따라 흘러내렸다.구서는 자기 목에 피가 흘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놀라서 바삐 김단을 잘 설득하려 했다.“김 낭자, 우리 좋게 얘기합시다. 충동하지 마시오!”“태부의 인장, 도대체 어찌 된 것이오?”김단은 차가운 소리로 물었다. 쓰러졌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구서는 무의식적으로 향로를 보고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어머니께서 어의가 조부 병을 보는 사이에 몰래 찍은 것이오.”그러니깐, 인장은 진짜였다!김단은 불안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리자, 마당을 지키던 둘째 부인이 빨리 다가왔다.문을 열어 보니, 구서가 눈을 움켜쥐고 처참하게 소리 지르는 모습을 봤다. 심지어 눈에는 아직 비녀가 꽂혀있었다!둘째 부인은 곧바로 놀라서 고함을 지르더니, 갑자기 김단을 쳐다봤다.“네가 감히 서아를 다치게 해? 여봐라! 이 년을 잡아라!”말이 떨어지자, 머슴애들이 앞으로 다가왔다.김단은 계속 뒤로 물러섰지만, 상대방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녀는 달아날 수 없었다!바로 이때, 밖에서 또 머슴애 한 명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둘째 마님, 큰일 났어요! 누가 병사를 거느리고 태부댁을 둘러쌌어요!”“뭐?”둘째 부인은 놀랐다.“누군지 알아?”“우두머리가, 자기가 정암이라고 했습니다!”정암이다!김단은 그제야 한숨을 놓았다.그가 자기를 구하러 왔다!구서는 아직도 울부짖고 있다. 둘째 부인은 구서를 보다가, 또 김단을 보더니 낮은 소리로 명령했다.“이 년을 가두거라! 둘째 도련님을 데리고 의원한테 가거라! 다들 명심해! 절대 태부가 알아서는 안 돼!”“알겠습니다!”머슴애 몇 명이 답하고 구서를 부축해서 나가고는 방문을 잠갔다.김단은 다시 가두어졌다. 공기 속에 아직 담담한 피비린내가 나고 있었다.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전처럼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다.정암이 태부댁 밖에 있다.그녀는 정암이 모든 방법을 써서 그녀를 구할 거라 믿는다!같은 시각, 정암은 말을 타면서 태부댁 밖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고, 그의 뒤에는 백여 명의 병사들이 긴 창을 들고 태부댁을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태부댁 문이 안에서 열렸다.태부는 머리카락도 하얗고 허리도 좀 구부려 보였지만, 여전히 꿋꿋한 기세로 하인들을 거느리고 태부댁 밖으로 나왔다.생기가 넘치는 눈빛으로 정암을 쳐다보면서 물었다.“자네는 누구인가?”정암은 그제야 말에서 내려와, 앞으로 다가가서 태부에게 인사를 올렸지만, 태도는 꽤 강경했다.“정암입니다. 진산군댁의 큰 아씨를 모시러 왔습니다.”진산군댁 큰 아씨?
태부는 둘째 부인이 그의 인장을 몰래 찍은 것으로 확신했다!그가 늙어서 만만해진 건가?태부는 화가 나서 갑자기 청첩을 둘째 부인 발에다 던지고는 소리치며 물었다.“어서 진실을 말하거라!”둘째 부인은 바로 무릎을 꿇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요. 서아가 오늘 진산군댁의 큰 아씨를 청했어요. 서아는 진심으로 김 낭자를 대했지만 김 낭자는 서아의 마음을 받기는커녕 비녀로 서아의 눈을 찔렀어요. 서아가 아무리 나쁜 놈이어도 아버님의 손자입니다. 제발 서아를 위해 나서주세요!”이 말을 듣자, 모든 사람이 놀랐다.정암이 가장 먼저 반응해서 소리쳤다.“당신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습니까?”김단은 아무 이유 없이 구서의 눈을 찌르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둘째 부인은 그저 태부를 보고 울며 말했다.“아버님, 서아의 눈이 멀어지면 나중에 더욱 장가들기 힘들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서아를 버리시면 안 됩니다.”태부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기 손자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고 있지만, 진산군댁의 큰 아씨도 세답방에서 3년 동안 노예로 지내서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는 차가운 소리로 말했다.“먼저 사람을 내놓아라!”이 말을 듣자, 둘째 부인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김단을 풀어주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단이 나타났다.정암은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앞으로 나가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김단을 아래위로 훑어봤다.김단이 아무렇지 않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이 놓였다.김단도 계속 정암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전쟁터에 갈 때만 입는 갑옷을 입었다.그는 오늘 태부댁을 억지로 쳐들어가서라도 그녀를 구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준 것이다.그녀의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녀는 빨리 정암을 향해 걸어가려 했지만, 태부가 큰 소리로 불렀다.“거기 서!”김단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태부를 바라봤다.태부는 화가 잔뜩 난 눈으로 김단을 한 번 보고, 또 정암을 봤다.“한 사람은 내 손자 눈멀게 하고, 한 사람은
의원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의원은 소 총령 다리의 퍼진 독은 융골산이라 했다.“그 독은 몸 전체의 뼈를 녹이는 것이 아닌, 두 다리만 녹여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네. 더하여 독에 걸린 사람은 종종 독성이 일어나, 두 다리의 뼈가 끊어 질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지. 초반의 소 총령의 증상과 같아.”김단은 의원의 말을 경청했다.사실 융골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이제 소하 오라버니는 걸을 수 있지 않은 가.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소하 안의 다른 종의 독이다.의원이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소 총령 체내 안의 독은 아마도 한빙산 일 것이야.초반에는 그저 손과 발이 차가울 뿐이지,허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 죽고 말 것이야.”그의 말에 김단은 등에 서늘함이 느껴졌다.의원이 수염을 쓰다듬었다.“허나 그 독은 약왕곡에 있다네. 그리 위험한 독은 아니야, 하지만 독성이 쉽게 퍼져 팔 전체가 차가워 지기도 전에, 체내에 있는 독성은 사라질 거야. 그 탓에 네가 소 총령의 손이 차갑다 하였을 때,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네.”의원의 말에 김단은 안도를 했다.“그리하면 소하 오라버니께서는 괜찮으신 것이옵니까?”“장담은 하지 못하네.”의원이 김단의 말을 끊었다.“세상 만물에는 상생상극의 이치가 있듯이, 독성도 마찬가지네. 이전에는 융골산에 억눌려 제대로 퍼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네. 오 년이야. 오 년 동안, 한빙산이 혈을 따라 소 총령의 몸 구석구석에 퍼졌을 거야. 오늘날에는 폐로 들어가서, 빼내기 어려울 것이야.”“다른 방도가 있으십니까?”김단이 서둘러 물었다.의원은 화월, 융골산 모두 침으로 해독했다.그리하면 한빙산도 침으로 해독 할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의 말에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퍼지기 쉬운 한빙산의 독성은 그 누구도 연구하려 들지 않았네.”그는 김단을 바라보았다.“자네는 내가 귀식환을 연구하길 바라는가, 아니면 한빙산을 연구하길 바라는가.”그는 몸이 하나였기에 두 가지를
죽음을 가장 한다니.의원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깊게 고민하고는 대답했다.“약왕곡에 귀식환이라 하는 약이 있네. 먹고 나면 한 시진 안에 숨이 멈추어 죽은 자와 같지. 허나 제조하기가 지극히 까다로워. 위의 분들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거야.”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혹여 다른 방법이 있사옵니까?”“있긴 하지.”의원이 말을 이었다.“폐와 심경 양쪽 혈에 침을 일촌삼푼 으로 놓으면, 숨을 멈춘 것과 같은 상태를 만들 수 있네. 허나 위험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곧 귀식환이 더 신뢰할 만한 수법이었다.김단은 잠깐 생각하고는 의원에게 절을 했다.“부탁드리옵니다, 스승님. 귀식환을 만들어 주시 옵소서.”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단을 일으켰다.“고운 마음씨를 보아, 이 스승도 최선을 다할 것이야. 허나 위험한 일이라 만일 잘못된다면, 공주와 중전의 의심을 받게 될 것이야.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야.”“예, 알겠나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그리고 의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스승님께서 남은 일이 있사옵니까?”의원은 단번에 김단의 뜻을 알아챘다.“맥을 배우고 싶으냐?”김단이 예, 라며 대답했다.이전에도 의원을 따라 맥을 배웠지만,소하의 맥을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더 배우고 싶었다.날이 밝자마자 왔으니,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진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원은 은침을 꺼냈다.곧이어 두 사람은 작은 방 안에서, 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두 시진이 지난 뒤에야 멈추었다.의원도 지친 모습을 보였다.“시진도 꽤 지났지 않느냐. 배가 고프구나, 같이 식사를 하지 않으련?”김단의 손은 의원의 손목에 맥을 짚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을 거두지는 않았다.이때, 검지와 중지 사이에 익숙한 움직임이 느껴졌다.김단이 깜짝 놀랐다.의원이 은침을 천천히 빼려고 하자 서둘러 말했다.“움직이지 마십시오!”의원도 깜짝 놀라
복화궁을 나오고 나서도,김단은 쉬지 않고 서원 공주의 침실로 향했다.그녀가 올 것이라 예상했는지,서원 공주는 윤이만 두고 다른 이들을 모두 내보냈다.곧이어 김단을 보고,서원 공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어찌 이리 늦은 것이오?”김단이 허리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그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아뢰옵기 송구하옵니다. 숙원 마마의 형세가 여의치 않으셔, 부득이 지체를 하였사옵니다.”서원 공주가 미간을 찌푸렸다.“여의치 않으시다?”“배가 심히 불러 있사온데,맥이 허하여 조산이 될 위험이 있사옵니다.”모두 사실이었다.곧이어 서원 공주가 물었다.“어찌하여 진맥을 하였소?”“소신은 숙원 마마께 침을 두 자리를 놓아드렸사온데,마마께서 편히 잠드실 수 있으실 듯 하옵니다.”서원 공주의 얼굴에는 성가시다는 표정이 드러났다.“또 있소?”“없사옵니다.”김단이 담담하게 말했다.“소 내관께서 소신을 데려다주었나이다.”이 말은 그녀의 경고를 알아들었다는 뜻이다.예상대로 서원 공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그저 침 두 대를 놓았을 뿐, 약을 처방 하지도 않았소. 만일 일이라도 생기면, 아바마마께 어찌 아뢰 할 생각이오?”김단은 서원 공주를 바라 보았다.“그리하여 소신은 공주 마마께 무슨 명을 청하 실지 여쭙고자 하옵니다.그렇지 않으면, 전하께 아뢰하기 어려워 지옵니다.”서원 공주의 미소가 짙어졌다.허나 미간은 여전히 찌푸려져 있다.그녀는 위아래로 김단을 훑었다.“참으로 총명하오. 혹여 본궁이 고작 숙원 하나 때문에 자네의 목을 벨 것이라 생각했소?”“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신은 공주 마마와 중전 마마의 일을 흩트리게 될까 염려하였사옵니다.”조금도 근심하지 않았다고 하면, 서원 공주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그녀의 말에 인지상정이라 느꼈다.곧이어 코웃음을 쳤다.“염려 마시오. 흐트러 지지 않을 것이니.자네는 나의 사람이오. 어찌 그리 쉽게 죽음으로 몰겠소? 복화궁이 외진 곳에 있어 조산이라도 하시거든, 이 몸이 대신 뒤집어쓸 사람을
걱정스러운 김단의 눈빛을 보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첩은 참으로 쓸모가 없사옵니다.”자신의 나인보다 더 오랜 시간 나인으로 살아왔지만, 작은 나인 하나에 쩔쩔 매고 만 것이다.김단이 나서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김단비 나인을 막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서아름은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그녀의 모습에 김단이 천천히 다가갔다.위로하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마마께서는 훌륭하신 분이옵니다.”서아름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눈물을 닦지도 않고 김단을 바라보았다.김단이 계속 말을 이었다.“덕빈 마마께서 소신에게 전하셨사온데, 숙원 마마께서는 자의로 그리하신 것은 아니라 하셨나이다. 만일 다른 여인이 마마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벌써 스스로 생을 마감 하셨을 터 입니다. 허나 물고 찢기는 궁 안에서, 마마께서는 굳건히 살아 내셨습니다.마마를 노리시는 자들이 많다 하오나,이리 꿋꿋하게 버티셨으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서아름은 단 한번도 자신을 훌륭하다며 위로해 주는 이가 없었다.곧이어 그녀의 눈물이 쏟아졌다.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잠시 뒤, 서아름이 흐느끼며 말했다.“소,소첩도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나이다.덕빈 마마께서 소첩을 생각해 주시지만, 머지않아 류 나인처럼 궁을 떠나게 될 것이옵니다.”오랜 시간 억눌린 억울함이 순식간에 터지는 모습이었다.서아름은 비통함에 눈물을 흘렀다.그 바람에 김단도 같이 눈물을 훔쳤다.그녀는 서아름을 안아 주었다.목소리가 온전하게 들리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켰다.“잘못하지 않았나이다! 마마께서는 그저 이전에 입었던 옷을 입고, 왔던 길을 걷고, 늘 하시던 일을 묵묵히 해내신 것뿐이옵니다. 그 수많은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살아내신 것뿐이온데, 어찌 그것이 마마의 탓이라 할 수 있겠나이까.”견고한 김단의 말에 서아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김단은 그녀의 눈을 직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그 죄는 온전히 다른 이의 탓이옵니다. 허
조급한 나인의 모습에 김단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나인은 틀림없이 중전의 분부를 받아,날마다 서아름이 보약을 끝까지 들이는지 지켜보는 것이었다.김단은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녀가 나서려 하자, 서아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못 먹겠네. 맡기만 해도 토가 나올 지경이야!”곧이어 서아름은 헛구역질을 해보였다.허나 나인은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서아름이 거짓으로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안 드시면 노비가 중전 마마께 알리는 수밖에 없나이다!”“알려드려라!”서아름의 몸이 후들거렸다.허나 자신이 나선다 하여도 김단이 나서게는 할 수 없었다.김단은 덕빈의 사람이기에, 김단의 신분을 알릴 수 없었다.하물며 덕빈의 호의를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 가.앞에 서 있는 나인이 자신을 믿지 않자, 서아름은 다시 헛구역질을 해보였다.곧이어 그녀는 토를 하더니, 눈물까지 흘러내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오히려 서아름이 중전에게 반항을 한다는 생각에, 곧장 밖으로 나갔다.“예, 중전 마마께 알리겠나이다!”나인이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김단이 서둘러 그녀 앞을 막았다.“멈추어라!”나인은 김단을 한 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나리께서 중전 마마께 불경을 표하시는 것이옵니까?”김단은 심장이 철렁했다.허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나인을 옆으로 끌었다. “숙원 마마께서 토를 하셨는데도 어찌 강제로 먹이려 한단 말이오. 만일 뱃속의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주상 전하께서 자네의 죄를 묻겠소, 아니면 중전 마마의 죄를 묻겠소?”김단의 말에 나인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육안으로 보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서아름의 시중을 둘고 있는 자는 그녀 자신이다.곧 뱃속의 아기가 잘못된다면 자신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열 셋,넷 밖에 되지 않은 나인은 잔뜩 겁에 질렸다.김단은 그녀의 표정을 눈치챘다.양팔을 가슴팍으로 모은 채 말했다.“소신은 전하의 명을 받아 들렀소. 곧 뱃속의 아기를 보살 피라는 뜻
사실 잊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녀도 이전에는 많은 하인들 중 하나였다.하인 하나가 어찌 고귀한 덕빈 마마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단 말인 가.그 날, 서아름을 구한 것은 덕빈이 최선을 다한 일이었다.허나..“사실 소첩은 나으리를 알고 있사옵니다.”서아름이 훌쩍 거리며 입을 열었다.“진산군 관저의 큰 아씨.”명정 대군 때문에 김단은 덕빈궁에 여러 차례 드나들었기에, 어찌 모를 수 있겠는 가.그리하여 덕빈이 그녀를 보냈다는 말을 서아름은 믿을 수 있었다.우는 서아름을 보고 김단은 서둘러 수건 자락을 꺼내 닦아주었다.“덕빈 마마께서 모자의 평안을 지키라 하셨나이다. 소신이 온 힘을 다해 도울 터이니,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소신이 있는 한,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옵니다.”서아름이 훌쩍거리며 말했다.“사실 오늘 이 몸이 목을 매어 죽는다 한들, 별다를 것이 없사옵니다. 죽지 않고 살아간다 하여도, 그저 이 높은 벽 안에 둘러싸여 남은 생을 보내게 될 뿐이옵니다. 오히려 죽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죽기 전에, 덕빈 마마를 위해서라도 이 아이만은 낳고 싶습니다.”덕빈의 상황은 노비들이 제일 아는 법이다.만일 덕빈을 대신하여 아이를 낳는다면, 이전에 덕빈이 그녀를 살려준 은혜를 갚는 것이다.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잠시 침묵하고는 입을 열었다.“숙원 마마께서 덕빈 마마를 대신하여 아이를 낳고자 하시니, 마마의 건강이 우선이옵니다. 오늘 후로 중전 마마께서 내리신 보약이라 하여도 들지 마시 옵소서. 마마께서는 숙원의 품계로 회임 중이시니, 나인들이라 하여도 감히 건들 수 없을 것이옵니다.”서아름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김단이 계속 말을 이었다.“숙원 마마께서는 근래에 편히 잠자리에 드신 적이 없사옵니까?”서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침상에 누워 있으면 배 속이 아려 옵니다. 몸을 달리 움직여 보아도 차도가 없어, 밤이면 침상에 앉아 새벽을 맞는 일이 허다 하옵니다.”김단은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소신이
“거기 누구인가.”서아름이 입을 열었다.허약한 목소리였다.곧이어 김단이 다가와 절을 했다.“소신 김단, 어의원의 의녀이옵니다.전하의 명을 받아 숙원 마마의 안부를 살피러 들렀나이다.”전하의 명 이라니.서아름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곧이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손을 짚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 날 수 있었다.곧이어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휘청거렸다.김단이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순간 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서아름의 팔이 너무 두꺼웠기 때문이다.의자에 누워 있을 때는 몸 전체를 볼 수 없었다.허나 자신의 옆에 서있자, 덩치가 크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백육십 근에 달하는 무게였다.서아름은 깜짝 놀라 자신의 가슴팍을 쓸어내렸다.그제야 김단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나으리 덕분에 목숨을 구했나이다.”그녀는 소복 보다 더 겸손한 말투였다.김단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물었다.“마마의 하인들이 보이지 않사옵니다.”그녀의 말에 서아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하,하인 하나가 제게 들일 음식을 가져오는 중이옵니다.”그녀의 표정으로 추측하건대, 서아름이 말한 하인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분명했다.임금에게 총애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따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사실 서아름은 이전에 나인에 불과했다.총애를 받지 못하는 숙원은 결국 자신의 나인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김단이 미간을 찌푸렸다.“숙원 마마께 맥을 짚어드리자 하오니,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떠하옵니까.”서아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허나 방 안으로 움직인 지 몇 걸음 되지 않아, 그녀는 호흡이 가빠졌다.김단은 그녀의 맥을 짚고는 미간을 찌푸렸다.김단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서아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으리는 누구의 사람이시옵니까?”김단이 움찔했다.서아름이 대뜸 물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빠른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서아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사실 다 알고 있사옵니다. 송구하오나, 나으리께서
서원 공주가 김단이 복화궁에 가려는 소식을 어찌 이리 빨리 들었을까.더하여 궁침에서 나눈 대화이지 않은가.혹여 그녀가 임금의 근처에 사람이라도 심어 둔 것일까.김단은 심장이 철렁했다.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오늘 날, 임금 앞에 서아름을 입에 올린 자는 혜비였기 때문이다.자신이었다면 이전에 쌓아온 신뢰가 한번에 무너졌을 것이다.얼굴에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공주 마마께서 소신을 이리도 아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소복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미소를 지었다.“나으리께서 공주 마마를 생각해 주시면 돼옵니다.”그리고는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나으리, 들어 오십시오.”“소 내관께 부탁드리옵니다.”김단도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그리고 소복의 뒤를 따라 복화궁으로 향했다.사실 궁 안의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복화궁은 서쪽의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길만 따라가면 금방 찾을 수 있었다.소복이 앞장 서서 길을 안내했다.얼마나 걸었을까.궁녀와 내시들이 주위에 보이지 않았다.소복은 고개를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다.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김단을 바라보았다.김단은 일부로 놀라는 척을 했다.“소 내관, 어찌 멈추시는지요? 복화궁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이다!”소복이 웃음소리를 내었다.“나으리, 당황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공주 마마께서 나으리께 전하라 하신 말씀이 있사옵니다.”김단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곧이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말씀을 전하셨나이까?”소복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서아름은 이전에 덕빈의 사람이었나이다.”말을 더 할 필요가 없었다.그의 한 마디는 그녀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서원 공주의 뜻은 김단의 뺨을 내려친 덕빈의 행동을 기억하고, 덕빈을 향한 한은 가슴에 묻어놓은 채, 서아름의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라는 뜻이다.김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이어 소복이 말을 이었다.“공주 마마께서 말씀하시길, 나으리께서는 현명하신 분이라 알아들을 수 있다 하셨
며칠이 더 흘렀다.김단은 중전의 진맥을 끝낸 뒤 전하의 침전으로 향했다.그곳에는 혜비도 함께 있었다.김단을 보자 혜비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익살스럽게 말했다.“전하, 김 의원의 의술은 그야말로 신통합니다. 신첩을 좀 보시지요. 요즘 얼마나 생기 넘치는지... 얼굴이 더 환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자신을 스스럼없이 치켜세우는 혜비의 말에 전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내 여인은 원래부터 아리따웠소.”혜비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전하 옆에 앉아 있었다.그 둘의 대화는 신경 쓰지 않고 맥을 짚는데만 집중하던 김단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전하의 맥은 안정되고 힘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매일 약을 드실 필요는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이틀에 한 번씩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전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혜비가 입을 열었다.“역시 전하는 다르시군요. 신첩보다 연배가 많으신데 어찌 이리도 정정하십니까? 그에 비해 복 없는 자들은… 뭐... 그 서아름이라든가. 이제 갓 스무 살 넘은 나이인데도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지 않사옵니까?”서아름.그 이름에 김단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김단은 마침 서아름의 일을 어떻게 전하 앞에서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혜비가 먼저 그녀를 언급해 주었다.그녀 역시 덕빈과 같은 배를 탄 사람이었다.서아름의 이름이 언급되자 전하는 미간을 찌푸렸다.“중전이 그 아이에게 좋은 보양식들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기운을 못 차렸단 말이냐?”혜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어제 매화원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안색이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배도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고 말입니다. 제발 전하의 자손만은 무사히 태어나야 할 텐데 말이죠.”그 말에 전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그에게 있어 서아름은 눈엣가시였다.신분이 낮을 뿐만 아니라 용모도 평범했으니 전하의 마음에 들 리 없었다.그날 술에 취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