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부인의 말을 듣고 태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정암은 턱을 약간 치켜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둘째 부인을 쳐다봤다.“구서가 나쁜 일을 하지 않았으면, 단이는 절대로 그를 다치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 구서의 자업자득입니다!”“허튼소리 하지 마!”둘째 부인은 울면서 소리쳤다.“분명히 김단이 내 아들을 꼬시려다가 실패하고 화가 나서 그랬어!”아무튼, 오늘 일은 누구도 보지 못했고,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텐데, 그녀가 말하는데 달렸다!모든 사람이 자기 아들이 나쁜 놈인 걸 알면 어때?김단도 정암이랑 그렇고 그런 사인데, 뭐 좋은 년이겠어?정암은 화내며 소리쳤다.“어처구니없군요! 단이가 어찌 구서 같은 놈을 좋아하겠습니까?”둘째 부인은 오히려 염치없이 소리 질렀다.“김단이 꼬셨다고 하면 그런 거야! 태부댁의 모든 사람이 다 증명할 수 있어!”그녀는 머리를 돌려 뒤에 있는 머슴애들에게 물었다.“그렇지?”머슴애들은 당연히 자기 주인 편이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김 낭자가 도련님을 꼬셨습니다. 제가 직접 봤습니다!”정암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정신을 잃지 않아서 그렇지, 아니면 벌써 검으로 둘째 부인이 다시는 말 못 하게 그녀의 목을 찔렀을 것이다.김단이 정암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정암이 병사를 데리고 태부댁을 둘러싸서, 지금 주위에는 백성들이 많이 모여졌다.둘째 부인이 이런 식으로 머슴애들을 데리고 마구 짓거리면, 백성들도 나중에 헛소문을 퍼뜨릴 것이다.그녀는 개의치 않지만, 이 일로 정암 가족까지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된다면, 그녀의 마음이 괴로워질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구서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온갖 나쁜 일을 다 저질렀습니다. 오늘은 또 청첩을 위조해 저를 속여 태부댁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먼저 저에게 나쁜 일을 하려고 해서 제가 실수로 그를 다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자, 둘째 부인은 격동되어 손가락으
하지만, 정암 손등에서 갑자기 아픔이 전해오더니, 그는 아파서 심지어 비녀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쟁쟁한 소리와 함께 비녀와 동그란 돌이 같이 바닥에 떨어졌다.이것은...주위가 모두 조용해지더니, 말발굽 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모든 사람이 소리를 따라가 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마차 한 대가 태부댁을 향해 오고 있었다.소 씨네 마차다!김단은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정암의 손을 꼭 잡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소한이 어떻게 왔지?마차가 태부댁 앞에 멈춰서더니, 하얗고 긴 손이 발을 들더니 맑은 목소리가 전해져 나왔다.“구태부님, 오래간만이오.”김단은 또 놀랐다. 소한의 목소리가 아니다!그녀는 그제야 마차를 바라봤는데, 차 발을 올린 사람의 얼굴은 병적으로 하얗다. 수척한 얼굴은 차갑고 엄숙해 보여서 대장군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소하였다!정암 역시 소하가 올 줄 모르고 놀라서 불렀다.“장군님!”그는 소하 밑에서 3년 동안 선봉을 했었고, 직접 죽은 사람 무더기에서 소하를 구했다.하지만, 그 후로 소하가 다리를 다쳐서 좌절하고 분발하지 못해 평소에 문밖에도 잘 나가지 않았다.그는 자주 소하를 보러 갔지만, 그저 가끔 만날 수 있었다.하지만, 소하는 오늘 집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태부댁까지 왔다.그는 소하가 자기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누가 그의 일을 소하에게 알렸는가?구태부도 매우 놀라서 급히 앞으로 다가갔다.“소하장군께서 어찌 오셨소?”구태부가 이렇게 격동되는 것은 5년 전에 다섯 원군의 병란 때 소하가 그를 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소하가 다친 이후, 구태부는 몇 번이나 찾아갔지만 소하는 누구도 만나주지 않아, 결국 5년 동안 소하를 볼 수 없었다. 구태부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 이렇게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마음속 깊이 아픔을 느꼈다.소하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구태부에게 웃음을.지었다.“정암은 전에 나의 선봉이었소. 나랑 몇 년 동안 위험을 같이 무릅쓰던 사람이었소. 오늘 정암이 예의 없이 병사를 거느
소하의 마차가 멀리 떠나서야 정암은 손을 휘저으면서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철수하라고 명령했다.그리고 정암은 몸을 숙여 바닥에 있는 비녀를 주워, 김단의 뒤로 돌아가 그녀를 위해 간단하게 머리를 묶어주려 했지만, 그제야 자신의 오른손이 아직도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소하가 비록 5년 동안 줄곧 집에만 있었는데도 무예는 여전히 훌륭하다고 생각하자, 정암은 참지 못하고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정암이 진심으로 웃는 것을 보자, 김단은 의아했다.“왜 그러시는데요?”정암은 그제야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그는 말하면서 태부댁의 간판을 한번 보고는 눈동자가 어두워지더니 말했다.“먼저 집으로 모실게요.”김단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집으로 돌아가야지.얼마 지나지 않아, 김단은 진산군댁으로 돌아갔다.마침, 집을 나서는 진산군과 임학을 마주했다.김단과 정암을 보니, 진산군과 임학은 놀랐다.그들은 태부댁에 가려 했는데, 김단이 먼저 돌아올 줄 몰랐다.진산군이 먼저 반응하더니 화내며 말했다.“정암, 네가 감히 사적으로 병사를 호출해? 넌 그게 머리 잘리는 일인지 알아?”정암은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제 일입니다.”진산군이 관계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진산군은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어 정암을 흘겨보고는 김단을 향해 소리 질렀다.“빨리 들어가지 않고 뭐해?”김단은 냉담하게 진산군을 보고는 머리를 돌려 정암을 바라봤다.“먼저 가요.”정암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김단은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진산군도 따라서 들어갔다.임학도 들어가려 하자, 정암은 그를 불렀다.“단이는 오늘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두 분께서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임학은 화가 솟구쳐서 정암에게 김단이 자기 동생이고, 자기가 동생을 어떻게 교육하던 정엄과 관계없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암이 갑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갑자기 정암이 오늘 종사관의 신분으로 태부댁을 둘러싼 게 얼마나 간 큰 짓인지 인식
김단의 말투는 매우 담담했지만, 임학은 엄청나게 화났다.“꼼수? 김단, 네까짓 게 뭔데? 아버님, 어머님이 아직도 너를 딸이라 생각해서 네 혼사에 신경 쓰는 것이야, 연을 끊으면, 진산군댁에서 너를 관계할 것 같아?”이 말을 듣자, 김단은 오히려 웃었다.“그래서 연을 끊는 것입니다.”임학이 말한 것이 김단이 연을 끊겠다는 이유다.임학은 멍했다.그는 김단이 귀신에 씌었다고 생각했다.어떻게 해야 그녀를 정신 차리게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김단이 먼저 입을 열었다.“대감마님께서는 인장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보셨습니까?”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워서 화난 티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마치 이 일이 아주 평범하고 그녀와 관계없는 일 같았다.이 말은 임학과 임씨 부인의 눈썹을 찌푸리게 했다.“가짜 인장이라니? 태부의 인장이 가짜였다고?”김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하게 진산군을 쳐다봤다.진산군은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말투가 강경했다.“태부의 인장이었어! 가짜는 무슨!”김단은 고개를 숙이고 씁쓸하게 웃었다.“하지만 구서가 인장이 비틀어지게 박혔다고, 태부와 오랫동안 일한 진산군이 모를 일이 없다고 하던데요.”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으면 그저 지나갔을 텐데, 천하의 나쁜 놈인 구서가 말했으니!진산군은 마음이 덜컥하더니 더 이상 발뺌하지 못했다.“알아봤으면 뭐? 너도 오늘 봤을테야, 태부가 얼마나 자기 가족을 보호하는지. 구서도 태부가 계속 보호해 줘서 이렇게 막무가내야. 태부는 구서 같은 인간쓰레기도 보호할 수 있는데, 나중에 네가 태부댁으로 시집가면 태부도 반드시 너를 아낄 것이야! 태부의 보호가 있으면 아무 걱정 없어도 된다.”진산군은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임씨 부인이 김단에게 명정대군을 소개해준 것도, 임학이 그녀를 소하의 침대로 보낸 것도, 그들은 모두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들은 그녀를 위한다는 핑계로 계속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김단 입가의 웃음은 하마터면 내려앉을 뻔했다.다행히도 그녀는
김단은 절하고는 일어서더니, 밖에 있는 머슴애를 불렀다.“가서 종이와 붓을 가져오거라!”머슴애는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난처한 눈빛으로 진산군을 바라봤다.진산군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이고 있고, 임씨 부인은 계속 눈물만 흐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임학만 말할 수 있었다.“김단, 잘 생각했어? 진산군댁이 없으면...”“잘 생각했어요.”김단은 담담하게 임학의 말을 끊고는 조용히 진산군을 바라보면서 조롱하는 말투로 말했다.“이렇게 계속 회피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진산군댁에서 제가 없으면 안 되는 걸로 보이네요.”진산군댁에서 계속 그녀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이 말을 듣자, 진산군은 드디어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느라!”진산군댁이 그녀가 없으면 안 된다니!무슨 우스갯소리야!진산군이 아무리 쇠약해졌다고 해도 김단을 의지할 처지는 아니다.그는 계속 그녀의 앞날을 생각해 주고 있지만, 그녀는 감사하게 여기기는커녕 이렇게 조롱하다니! 만약에 정말로 진산군댁에서 놔주지 않는다면 진짜로 그녀가 말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머슴애가 명을 받고 떠나자, 임씨 부인은 울어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임학도 미간을 계속 찌푸리면서 화가 나 있는 진산군을 한 번 보고, 또 담담하고 소외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듣지 않는 김단을 보고 누구를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머슴애가 종이와 붓을 가지고 왔다.진산군은 받아서 종이를 탁자에 피고 붓을 들고 쓰려는데 자기도 모르게 멈칫하더니 천천히 머리를 들고 김단을 봤다. 그녀가 혹시라도 후회하면 기회를 주고 싶었다.하지만, 김단은 진산군의 눈빛을 보고 그저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 아직도 쓰지 않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계속 주저한다면 오히려 웃음거리로 남을 뿐이다!진산군은 화가 나서 ‘단친서’ 세글자를 쓰고는 격한 감정에 북받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김단의 모든 죄명을 다 쓰고 싶은 듯했다.김단은 그 위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관심이 없고, 그저 진산군이
수 나인은 너무 흐느껴서 말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큰..., 큰 마님이 아씨와 대감마님이 연을 끊겠다는 것을 듣고 저한테 물으셨는데, 제가 감히 말하지 못하자, 큰 마님께서 또 이 망할 것들한테 물었습니다...”“큰 마님은 아씨와 대감마님이 연을 끊겠다는 것 외에도 아씨가 전에 명정대군께 맞아서 죽을 뻔한 것과, 도련님이 아씨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다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수 나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단 역시 화가 나서 온몸이 후들거렸다.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시녀들에게 걸어갔다.시녀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마음이 조여서 감히 김단을 보지 못했다.김단은 화가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그렇게 내 일을 큰 마님께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너희가 어찌 감히 안채에서 내 말을 꺼내?”시녀들은 무서워서 계속 울면서 절했다.“잘 못했어요! 아씨,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잘 못 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김단의 시선은 그중 한 시녀에게 끌렸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소리로 명령했다.“고개를 들라!”다른 시녀들은 모두 머리를 들었지만, 한 시녀만 여전히 절하는 자세를 하면서 감히 김단을 보지 못했다.몸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떨었다.김단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더 크게 말했다.“고개를 들라 하지 않았더냐!”그 시녀는 놀라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김단을 바라봤다.김단은 숨이 멎고 주먹을 꽉 쥐었다.“네가 어찌 안채에 있는 것이냐?”이 시녀는 임원의 하인이다!시녀는 감히 말하지 못하고 다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김단은 발로 그 시녀의 가슴을 찼다.시녀는 넘어져 일어나기도 전에 김단에게 밟혔다.김단은 화가 나서 마치 저승에서 온 악귀처럼 그 시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네 입을 찢을 것이다!”그 시녀는 바로 울면서 말했다.“우우, 큰 아씨 살려주세요. 둘째 아씨께서 보냈습니다.”김단은 이를 갈았다!그녀가 임원을 너무 깔봤다!
매화당의 대문은 꼭 잠겨져 있었다.김단은 대문을 차고 매화당으로 들어갔다.매화당에 있는 하인들은 김단이 올 줄 알고 단단히 준비했지만, 김단이 검을 들고 올 줄 몰랐다.그들은 김단의 흉악한 모습은 봤던 적이 있지만, 그녀가 사람 죽이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그저 김단이 그들에게 겁을 주려는 줄 생각했다.간이 큰 머슴애가 다가가서 설득했다.“큰 아씨, 노여움 푸시고 어리석은 짓 하지 마십시오. 대감마님께서 오시면..., 악!”머슴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단은 검을 휘둘러 그의 팔을 찔렀다. 머슴애 팔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김단은 두 눈이 시뻘게졌고, 크게 소리쳤다.“임원, 기가 나와!”그러고는 계속 그녀를 막고 있는 하인들을 보면서 차갑게 소리 질렀다.“누가 감히 날 막나 보자!”겁을 먹은 하인들은 황급히 달아났지만, 간이 큰 사람은 여전히 김단 앞에서 그녀를 막았다.“큰 아씨, 침착하게 생각해 보세요. 진짜로 둘째 아씨를 죽인다면 대감마님께서 큰 아씨를 가만히 놔두시겠어요?”김단은 그 머슴애를 뚫어지게 보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죽으려고 작정했구나!”검을 앞으로 뻗더니 순식간에 머슴애의 견갑골을 찔렀다.머슴애의 비명을 듣고, 누구도 더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김단은 검을 회수하고 머슴애를 옆으로 걷어차고는 임원의 침실로 향했다.방 앞에도 두 명의 시녀가 지키고 있었다.김단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가지고 걸어오는 것을 보자, 두 명의 시녀는 다리에 힘이 풀어지더니 무릎을 꿇었다. 설득하고 싶고,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체 그저 울었다.“큰 아씨, 큰 아씨...”“꺼져!”김단은 차갑게 꾸짖었다.시녀들은 허겁지겁 달아났다.김단은 그제야 방문을 찼다. 임원이 놀라서 탁자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김단은 임원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의 노여움이 더 커졌다.그녀는 검을 들고 임원을 향해 걸어갔다. 임원은 오히려 김단을 향해 무릎을 꿇으면서 기어갔다.“언니, 제가 잘 못
이때, 그림자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김단과 부딪히는 바람에 검이 임원의 가슴팍을 스쳤다.결국 그녀의 가슴에 상처가 나고 말았다.임학은 깜짝 놀라 서둘러 임원을 안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김단이 미친듯이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그리고 손에 든 검으로 임학의 등을 향해 휘둘렀다.마저 피하지 못한 바람에 길게 상처가 났다.그는 두 손에 힘이 풀려 임원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곧이어 뒤따라오던 진산군이 김단의 두 손을 낚아챘다.“미쳤어?!”만약 김단에게 검을 빼앗긴 호위병이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그의 자식들은 모두 김단에게 죽었을 것이다.진산군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김단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소리쳤다.“예, 미쳤습니다! 저 계집이 사람을 시켜 조모께 망언을 하지 아니하였더면, 조모께서도 아무런 일이 없으셨을 겁니다! 지금 당장 저 계집의 혀를 베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다시는 조모님을 괴롭히지 못할 겁니다!"진산군은 그제야 임원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 같은 표정이다.그리고 경악을 감추지 못한 채 임원을 바라보았다.임원은 바닥에 엎드렸다.피를 토하며 훌쩍 거리기 시작했다.“소, 소녀는 그저 누이와 아버지가 절연하는 것이 싫어서… 소, 소녀는 누이를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진산군은 그녀의 가여운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김단은 임원의 가식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힘을 주어 검을 다시 임원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진산군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그 바람에 팔에 큰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진산군이 아파하기도 전에 김단이 다시 임원에게 다가갔다.그는 그 모습을 보고 김단의 등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김단은 결국 바닥으로 날아가더니 피를 토했다.그는 김단이 조용해진 줄 알고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의원이 네 조모를 치료하는 중이다,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다! 헌데 왜 이리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냐, 어린 누이한테 검을 들이밀다니!”하지만 김단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그저 임원을 죽일 듯
의원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의원은 소 총령 다리의 퍼진 독은 융골산이라 했다.“그 독은 몸 전체의 뼈를 녹이는 것이 아닌, 두 다리만 녹여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네. 더하여 독에 걸린 사람은 종종 독성이 일어나, 두 다리의 뼈가 끊어 질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지. 초반의 소 총령의 증상과 같아.”김단은 의원의 말을 경청했다.사실 융골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이제 소하 오라버니는 걸을 수 있지 않은 가.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소하 안의 다른 종의 독이다.의원이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소 총령 체내 안의 독은 아마도 한빙산 일 것이야.초반에는 그저 손과 발이 차가울 뿐이지,허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 죽고 말 것이야.”그의 말에 김단은 등에 서늘함이 느껴졌다.의원이 수염을 쓰다듬었다.“허나 그 독은 약왕곡에 있다네. 그리 위험한 독은 아니야, 하지만 독성이 쉽게 퍼져 팔 전체가 차가워 지기도 전에, 체내에 있는 독성은 사라질 거야. 그 탓에 네가 소 총령의 손이 차갑다 하였을 때,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네.”의원의 말에 김단은 안도를 했다.“그리하면 소하 오라버니께서는 괜찮으신 것이옵니까?”“장담은 하지 못하네.”의원이 김단의 말을 끊었다.“세상 만물에는 상생상극의 이치가 있듯이, 독성도 마찬가지네. 이전에는 융골산에 억눌려 제대로 퍼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네. 오 년이야. 오 년 동안, 한빙산이 혈을 따라 소 총령의 몸 구석구석에 퍼졌을 거야. 오늘날에는 폐로 들어가서, 빼내기 어려울 것이야.”“다른 방도가 있으십니까?”김단이 서둘러 물었다.의원은 화월, 융골산 모두 침으로 해독했다.그리하면 한빙산도 침으로 해독 할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의 말에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퍼지기 쉬운 한빙산의 독성은 그 누구도 연구하려 들지 않았네.”그는 김단을 바라보았다.“자네는 내가 귀식환을 연구하길 바라는가, 아니면 한빙산을 연구하길 바라는가.”그는 몸이 하나였기에 두 가지를
죽음을 가장 한다니.의원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깊게 고민하고는 대답했다.“약왕곡에 귀식환이라 하는 약이 있네. 먹고 나면 한 시진 안에 숨이 멈추어 죽은 자와 같지. 허나 제조하기가 지극히 까다로워. 위의 분들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거야.”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혹여 다른 방법이 있사옵니까?”“있긴 하지.”의원이 말을 이었다.“폐와 심경 양쪽 혈에 침을 일촌삼푼 으로 놓으면, 숨을 멈춘 것과 같은 상태를 만들 수 있네. 허나 위험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곧 귀식환이 더 신뢰할 만한 수법이었다.김단은 잠깐 생각하고는 의원에게 절을 했다.“부탁드리옵니다, 스승님. 귀식환을 만들어 주시 옵소서.”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단을 일으켰다.“고운 마음씨를 보아, 이 스승도 최선을 다할 것이야. 허나 위험한 일이라 만일 잘못된다면, 공주와 중전의 의심을 받게 될 것이야.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야.”“예, 알겠나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그리고 의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스승님께서 남은 일이 있사옵니까?”의원은 단번에 김단의 뜻을 알아챘다.“맥을 배우고 싶으냐?”김단이 예, 라며 대답했다.이전에도 의원을 따라 맥을 배웠지만,소하의 맥을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더 배우고 싶었다.날이 밝자마자 왔으니,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진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원은 은침을 꺼냈다.곧이어 두 사람은 작은 방 안에서, 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두 시진이 지난 뒤에야 멈추었다.의원도 지친 모습을 보였다.“시진도 꽤 지났지 않느냐. 배가 고프구나, 같이 식사를 하지 않으련?”김단의 손은 의원의 손목에 맥을 짚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을 거두지는 않았다.이때, 검지와 중지 사이에 익숙한 움직임이 느껴졌다.김단이 깜짝 놀랐다.의원이 은침을 천천히 빼려고 하자 서둘러 말했다.“움직이지 마십시오!”의원도 깜짝 놀라
복화궁을 나오고 나서도,김단은 쉬지 않고 서원 공주의 침실로 향했다.그녀가 올 것이라 예상했는지,서원 공주는 윤이만 두고 다른 이들을 모두 내보냈다.곧이어 김단을 보고,서원 공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어찌 이리 늦은 것이오?”김단이 허리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그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아뢰옵기 송구하옵니다. 숙원 마마의 형세가 여의치 않으셔, 부득이 지체를 하였사옵니다.”서원 공주가 미간을 찌푸렸다.“여의치 않으시다?”“배가 심히 불러 있사온데,맥이 허하여 조산이 될 위험이 있사옵니다.”모두 사실이었다.곧이어 서원 공주가 물었다.“어찌하여 진맥을 하였소?”“소신은 숙원 마마께 침을 두 자리를 놓아드렸사온데,마마께서 편히 잠드실 수 있으실 듯 하옵니다.”서원 공주의 얼굴에는 성가시다는 표정이 드러났다.“또 있소?”“없사옵니다.”김단이 담담하게 말했다.“소 내관께서 소신을 데려다주었나이다.”이 말은 그녀의 경고를 알아들었다는 뜻이다.예상대로 서원 공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그저 침 두 대를 놓았을 뿐, 약을 처방 하지도 않았소. 만일 일이라도 생기면, 아바마마께 어찌 아뢰 할 생각이오?”김단은 서원 공주를 바라 보았다.“그리하여 소신은 공주 마마께 무슨 명을 청하 실지 여쭙고자 하옵니다.그렇지 않으면, 전하께 아뢰하기 어려워 지옵니다.”서원 공주의 미소가 짙어졌다.허나 미간은 여전히 찌푸려져 있다.그녀는 위아래로 김단을 훑었다.“참으로 총명하오. 혹여 본궁이 고작 숙원 하나 때문에 자네의 목을 벨 것이라 생각했소?”“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신은 공주 마마와 중전 마마의 일을 흩트리게 될까 염려하였사옵니다.”조금도 근심하지 않았다고 하면, 서원 공주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그녀의 말에 인지상정이라 느꼈다.곧이어 코웃음을 쳤다.“염려 마시오. 흐트러 지지 않을 것이니.자네는 나의 사람이오. 어찌 그리 쉽게 죽음으로 몰겠소? 복화궁이 외진 곳에 있어 조산이라도 하시거든, 이 몸이 대신 뒤집어쓸 사람을
걱정스러운 김단의 눈빛을 보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첩은 참으로 쓸모가 없사옵니다.”자신의 나인보다 더 오랜 시간 나인으로 살아왔지만, 작은 나인 하나에 쩔쩔 매고 만 것이다.김단이 나서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김단비 나인을 막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서아름은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그녀의 모습에 김단이 천천히 다가갔다.위로하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마마께서는 훌륭하신 분이옵니다.”서아름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눈물을 닦지도 않고 김단을 바라보았다.김단이 계속 말을 이었다.“덕빈 마마께서 소신에게 전하셨사온데, 숙원 마마께서는 자의로 그리하신 것은 아니라 하셨나이다. 만일 다른 여인이 마마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벌써 스스로 생을 마감 하셨을 터 입니다. 허나 물고 찢기는 궁 안에서, 마마께서는 굳건히 살아 내셨습니다.마마를 노리시는 자들이 많다 하오나,이리 꿋꿋하게 버티셨으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서아름은 단 한번도 자신을 훌륭하다며 위로해 주는 이가 없었다.곧이어 그녀의 눈물이 쏟아졌다.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잠시 뒤, 서아름이 흐느끼며 말했다.“소,소첩도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나이다.덕빈 마마께서 소첩을 생각해 주시지만, 머지않아 류 나인처럼 궁을 떠나게 될 것이옵니다.”오랜 시간 억눌린 억울함이 순식간에 터지는 모습이었다.서아름은 비통함에 눈물을 흘렀다.그 바람에 김단도 같이 눈물을 훔쳤다.그녀는 서아름을 안아 주었다.목소리가 온전하게 들리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켰다.“잘못하지 않았나이다! 마마께서는 그저 이전에 입었던 옷을 입고, 왔던 길을 걷고, 늘 하시던 일을 묵묵히 해내신 것뿐이옵니다. 그 수많은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살아내신 것뿐이온데, 어찌 그것이 마마의 탓이라 할 수 있겠나이까.”견고한 김단의 말에 서아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김단은 그녀의 눈을 직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그 죄는 온전히 다른 이의 탓이옵니다. 허
조급한 나인의 모습에 김단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나인은 틀림없이 중전의 분부를 받아,날마다 서아름이 보약을 끝까지 들이는지 지켜보는 것이었다.김단은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녀가 나서려 하자, 서아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못 먹겠네. 맡기만 해도 토가 나올 지경이야!”곧이어 서아름은 헛구역질을 해보였다.허나 나인은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서아름이 거짓으로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안 드시면 노비가 중전 마마께 알리는 수밖에 없나이다!”“알려드려라!”서아름의 몸이 후들거렸다.허나 자신이 나선다 하여도 김단이 나서게는 할 수 없었다.김단은 덕빈의 사람이기에, 김단의 신분을 알릴 수 없었다.하물며 덕빈의 호의를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 가.앞에 서 있는 나인이 자신을 믿지 않자, 서아름은 다시 헛구역질을 해보였다.곧이어 그녀는 토를 하더니, 눈물까지 흘러내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오히려 서아름이 중전에게 반항을 한다는 생각에, 곧장 밖으로 나갔다.“예, 중전 마마께 알리겠나이다!”나인이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김단이 서둘러 그녀 앞을 막았다.“멈추어라!”나인은 김단을 한 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나리께서 중전 마마께 불경을 표하시는 것이옵니까?”김단은 심장이 철렁했다.허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나인을 옆으로 끌었다. “숙원 마마께서 토를 하셨는데도 어찌 강제로 먹이려 한단 말이오. 만일 뱃속의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주상 전하께서 자네의 죄를 묻겠소, 아니면 중전 마마의 죄를 묻겠소?”김단의 말에 나인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육안으로 보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서아름의 시중을 둘고 있는 자는 그녀 자신이다.곧 뱃속의 아기가 잘못된다면 자신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열 셋,넷 밖에 되지 않은 나인은 잔뜩 겁에 질렸다.김단은 그녀의 표정을 눈치챘다.양팔을 가슴팍으로 모은 채 말했다.“소신은 전하의 명을 받아 들렀소. 곧 뱃속의 아기를 보살 피라는 뜻
사실 잊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녀도 이전에는 많은 하인들 중 하나였다.하인 하나가 어찌 고귀한 덕빈 마마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단 말인 가.그 날, 서아름을 구한 것은 덕빈이 최선을 다한 일이었다.허나..“사실 소첩은 나으리를 알고 있사옵니다.”서아름이 훌쩍 거리며 입을 열었다.“진산군 관저의 큰 아씨.”명정 대군 때문에 김단은 덕빈궁에 여러 차례 드나들었기에, 어찌 모를 수 있겠는 가.그리하여 덕빈이 그녀를 보냈다는 말을 서아름은 믿을 수 있었다.우는 서아름을 보고 김단은 서둘러 수건 자락을 꺼내 닦아주었다.“덕빈 마마께서 모자의 평안을 지키라 하셨나이다. 소신이 온 힘을 다해 도울 터이니,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소신이 있는 한,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옵니다.”서아름이 훌쩍거리며 말했다.“사실 오늘 이 몸이 목을 매어 죽는다 한들, 별다를 것이 없사옵니다. 죽지 않고 살아간다 하여도, 그저 이 높은 벽 안에 둘러싸여 남은 생을 보내게 될 뿐이옵니다. 오히려 죽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죽기 전에, 덕빈 마마를 위해서라도 이 아이만은 낳고 싶습니다.”덕빈의 상황은 노비들이 제일 아는 법이다.만일 덕빈을 대신하여 아이를 낳는다면, 이전에 덕빈이 그녀를 살려준 은혜를 갚는 것이다.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잠시 침묵하고는 입을 열었다.“숙원 마마께서 덕빈 마마를 대신하여 아이를 낳고자 하시니, 마마의 건강이 우선이옵니다. 오늘 후로 중전 마마께서 내리신 보약이라 하여도 들지 마시 옵소서. 마마께서는 숙원의 품계로 회임 중이시니, 나인들이라 하여도 감히 건들 수 없을 것이옵니다.”서아름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김단이 계속 말을 이었다.“숙원 마마께서는 근래에 편히 잠자리에 드신 적이 없사옵니까?”서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침상에 누워 있으면 배 속이 아려 옵니다. 몸을 달리 움직여 보아도 차도가 없어, 밤이면 침상에 앉아 새벽을 맞는 일이 허다 하옵니다.”김단은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소신이
“거기 누구인가.”서아름이 입을 열었다.허약한 목소리였다.곧이어 김단이 다가와 절을 했다.“소신 김단, 어의원의 의녀이옵니다.전하의 명을 받아 숙원 마마의 안부를 살피러 들렀나이다.”전하의 명 이라니.서아름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곧이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손을 짚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 날 수 있었다.곧이어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휘청거렸다.김단이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순간 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서아름의 팔이 너무 두꺼웠기 때문이다.의자에 누워 있을 때는 몸 전체를 볼 수 없었다.허나 자신의 옆에 서있자, 덩치가 크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백육십 근에 달하는 무게였다.서아름은 깜짝 놀라 자신의 가슴팍을 쓸어내렸다.그제야 김단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나으리 덕분에 목숨을 구했나이다.”그녀는 소복 보다 더 겸손한 말투였다.김단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물었다.“마마의 하인들이 보이지 않사옵니다.”그녀의 말에 서아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하,하인 하나가 제게 들일 음식을 가져오는 중이옵니다.”그녀의 표정으로 추측하건대, 서아름이 말한 하인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분명했다.임금에게 총애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따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사실 서아름은 이전에 나인에 불과했다.총애를 받지 못하는 숙원은 결국 자신의 나인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김단이 미간을 찌푸렸다.“숙원 마마께 맥을 짚어드리자 하오니,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떠하옵니까.”서아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허나 방 안으로 움직인 지 몇 걸음 되지 않아, 그녀는 호흡이 가빠졌다.김단은 그녀의 맥을 짚고는 미간을 찌푸렸다.김단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서아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으리는 누구의 사람이시옵니까?”김단이 움찔했다.서아름이 대뜸 물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빠른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서아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사실 다 알고 있사옵니다. 송구하오나, 나으리께서
서원 공주가 김단이 복화궁에 가려는 소식을 어찌 이리 빨리 들었을까.더하여 궁침에서 나눈 대화이지 않은가.혹여 그녀가 임금의 근처에 사람이라도 심어 둔 것일까.김단은 심장이 철렁했다.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오늘 날, 임금 앞에 서아름을 입에 올린 자는 혜비였기 때문이다.자신이었다면 이전에 쌓아온 신뢰가 한번에 무너졌을 것이다.얼굴에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공주 마마께서 소신을 이리도 아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소복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미소를 지었다.“나으리께서 공주 마마를 생각해 주시면 돼옵니다.”그리고는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나으리, 들어 오십시오.”“소 내관께 부탁드리옵니다.”김단도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그리고 소복의 뒤를 따라 복화궁으로 향했다.사실 궁 안의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복화궁은 서쪽의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길만 따라가면 금방 찾을 수 있었다.소복이 앞장 서서 길을 안내했다.얼마나 걸었을까.궁녀와 내시들이 주위에 보이지 않았다.소복은 고개를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다.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김단을 바라보았다.김단은 일부로 놀라는 척을 했다.“소 내관, 어찌 멈추시는지요? 복화궁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이다!”소복이 웃음소리를 내었다.“나으리, 당황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공주 마마께서 나으리께 전하라 하신 말씀이 있사옵니다.”김단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곧이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말씀을 전하셨나이까?”소복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서아름은 이전에 덕빈의 사람이었나이다.”말을 더 할 필요가 없었다.그의 한 마디는 그녀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서원 공주의 뜻은 김단의 뺨을 내려친 덕빈의 행동을 기억하고, 덕빈을 향한 한은 가슴에 묻어놓은 채, 서아름의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라는 뜻이다.김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이어 소복이 말을 이었다.“공주 마마께서 말씀하시길, 나으리께서는 현명하신 분이라 알아들을 수 있다 하셨
며칠이 더 흘렀다.김단은 중전의 진맥을 끝낸 뒤 전하의 침전으로 향했다.그곳에는 혜비도 함께 있었다.김단을 보자 혜비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익살스럽게 말했다.“전하, 김 의원의 의술은 그야말로 신통합니다. 신첩을 좀 보시지요. 요즘 얼마나 생기 넘치는지... 얼굴이 더 환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자신을 스스럼없이 치켜세우는 혜비의 말에 전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내 여인은 원래부터 아리따웠소.”혜비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전하 옆에 앉아 있었다.그 둘의 대화는 신경 쓰지 않고 맥을 짚는데만 집중하던 김단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전하의 맥은 안정되고 힘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매일 약을 드실 필요는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이틀에 한 번씩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전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혜비가 입을 열었다.“역시 전하는 다르시군요. 신첩보다 연배가 많으신데 어찌 이리도 정정하십니까? 그에 비해 복 없는 자들은… 뭐... 그 서아름이라든가. 이제 갓 스무 살 넘은 나이인데도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지 않사옵니까?”서아름.그 이름에 김단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김단은 마침 서아름의 일을 어떻게 전하 앞에서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혜비가 먼저 그녀를 언급해 주었다.그녀 역시 덕빈과 같은 배를 탄 사람이었다.서아름의 이름이 언급되자 전하는 미간을 찌푸렸다.“중전이 그 아이에게 좋은 보양식들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기운을 못 차렸단 말이냐?”혜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어제 매화원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안색이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배도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고 말입니다. 제발 전하의 자손만은 무사히 태어나야 할 텐데 말이죠.”그 말에 전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그에게 있어 서아름은 눈엣가시였다.신분이 낮을 뿐만 아니라 용모도 평범했으니 전하의 마음에 들 리 없었다.그날 술에 취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