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나인은 너무 흐느껴서 말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큰..., 큰 마님이 아씨와 대감마님이 연을 끊겠다는 것을 듣고 저한테 물으셨는데, 제가 감히 말하지 못하자, 큰 마님께서 또 이 망할 것들한테 물었습니다...”“큰 마님은 아씨와 대감마님이 연을 끊겠다는 것 외에도 아씨가 전에 명정대군께 맞아서 죽을 뻔한 것과, 도련님이 아씨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다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수 나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단 역시 화가 나서 온몸이 후들거렸다.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시녀들에게 걸어갔다.시녀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마음이 조여서 감히 김단을 보지 못했다.김단은 화가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그렇게 내 일을 큰 마님께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너희가 어찌 감히 안채에서 내 말을 꺼내?”시녀들은 무서워서 계속 울면서 절했다.“잘 못했어요! 아씨,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잘 못 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김단의 시선은 그중 한 시녀에게 끌렸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소리로 명령했다.“고개를 들라!”다른 시녀들은 모두 머리를 들었지만, 한 시녀만 여전히 절하는 자세를 하면서 감히 김단을 보지 못했다.몸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떨었다.김단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더 크게 말했다.“고개를 들라 하지 않았더냐!”그 시녀는 놀라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김단을 바라봤다.김단은 숨이 멎고 주먹을 꽉 쥐었다.“네가 어찌 안채에 있는 것이냐?”이 시녀는 임원의 하인이다!시녀는 감히 말하지 못하고 다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김단은 발로 그 시녀의 가슴을 찼다.시녀는 넘어져 일어나기도 전에 김단에게 밟혔다.김단은 화가 나서 마치 저승에서 온 악귀처럼 그 시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네 입을 찢을 것이다!”그 시녀는 바로 울면서 말했다.“우우, 큰 아씨 살려주세요. 둘째 아씨께서 보냈습니다.”김단은 이를 갈았다!그녀가 임원을 너무 깔봤다!
매화당의 대문은 꼭 잠겨져 있었다.김단은 대문을 차고 매화당으로 들어갔다.매화당에 있는 하인들은 김단이 올 줄 알고 단단히 준비했지만, 김단이 검을 들고 올 줄 몰랐다.그들은 김단의 흉악한 모습은 봤던 적이 있지만, 그녀가 사람 죽이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그저 김단이 그들에게 겁을 주려는 줄 생각했다.간이 큰 머슴애가 다가가서 설득했다.“큰 아씨, 노여움 푸시고 어리석은 짓 하지 마십시오. 대감마님께서 오시면..., 악!”머슴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단은 검을 휘둘러 그의 팔을 찔렀다. 머슴애 팔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김단은 두 눈이 시뻘게졌고, 크게 소리쳤다.“임원, 기가 나와!”그러고는 계속 그녀를 막고 있는 하인들을 보면서 차갑게 소리 질렀다.“누가 감히 날 막나 보자!”겁을 먹은 하인들은 황급히 달아났지만, 간이 큰 사람은 여전히 김단 앞에서 그녀를 막았다.“큰 아씨, 침착하게 생각해 보세요. 진짜로 둘째 아씨를 죽인다면 대감마님께서 큰 아씨를 가만히 놔두시겠어요?”김단은 그 머슴애를 뚫어지게 보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죽으려고 작정했구나!”검을 앞으로 뻗더니 순식간에 머슴애의 견갑골을 찔렀다.머슴애의 비명을 듣고, 누구도 더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김단은 검을 회수하고 머슴애를 옆으로 걷어차고는 임원의 침실로 향했다.방 앞에도 두 명의 시녀가 지키고 있었다.김단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가지고 걸어오는 것을 보자, 두 명의 시녀는 다리에 힘이 풀어지더니 무릎을 꿇었다. 설득하고 싶고,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체 그저 울었다.“큰 아씨, 큰 아씨...”“꺼져!”김단은 차갑게 꾸짖었다.시녀들은 허겁지겁 달아났다.김단은 그제야 방문을 찼다. 임원이 놀라서 탁자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김단은 임원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의 노여움이 더 커졌다.그녀는 검을 들고 임원을 향해 걸어갔다. 임원은 오히려 김단을 향해 무릎을 꿇으면서 기어갔다.“언니, 제가 잘 못
이때, 그림자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김단과 부딪히는 바람에 검이 임원의 가슴팍을 스쳤다.결국 그녀의 가슴에 상처가 나고 말았다.임학은 깜짝 놀라 서둘러 임원을 안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김단이 미친듯이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그리고 손에 든 검으로 임학의 등을 향해 휘둘렀다.마저 피하지 못한 바람에 길게 상처가 났다.그는 두 손에 힘이 풀려 임원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곧이어 뒤따라오던 진산군이 김단의 두 손을 낚아챘다.“미쳤어?!”만약 김단에게 검을 빼앗긴 호위병이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그의 자식들은 모두 김단에게 죽었을 것이다.진산군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김단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소리쳤다.“예, 미쳤습니다! 저 계집이 사람을 시켜 조모께 망언을 하지 아니하였더면, 조모께서도 아무런 일이 없으셨을 겁니다! 지금 당장 저 계집의 혀를 베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다시는 조모님을 괴롭히지 못할 겁니다!"진산군은 그제야 임원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 같은 표정이다.그리고 경악을 감추지 못한 채 임원을 바라보았다.임원은 바닥에 엎드렸다.피를 토하며 훌쩍 거리기 시작했다.“소, 소녀는 그저 누이와 아버지가 절연하는 것이 싫어서… 소, 소녀는 누이를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진산군은 그녀의 가여운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김단은 임원의 가식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힘을 주어 검을 다시 임원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진산군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그 바람에 팔에 큰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진산군이 아파하기도 전에 김단이 다시 임원에게 다가갔다.그는 그 모습을 보고 김단의 등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김단은 결국 바닥으로 날아가더니 피를 토했다.그는 김단이 조용해진 줄 알고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의원이 네 조모를 치료하는 중이다,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다! 헌데 왜 이리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냐, 어린 누이한테 검을 들이밀다니!”하지만 김단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그저 임원을 죽일 듯
김단은 뛰면서 입가의 혈흔을 닦아냈다.자신이 피를 토했다는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조모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수 나인과 의원이 방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곧이어 김단을 보고 의원이 예의를 갖추었다.“큰 마님께서는 괜찮으신 겁니까?”의원이 입을 열었다.“큰 아씨, 큰 마님의 몸이 좋지 않습니다. 침을 통하여 큰 마님의 심맥을 안정시켰사옵니다만, 열흘도 못 버티실 겁니다.”김단이 자리에 얼어 붙었다.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아닙니다. 수 나인께서는 조모의 상태가 좋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침대에서 일어나실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어찌하여 열흘도 못 버티시는 걸까.수 나인은 눈물을 훔칠 뿐 이다.의원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만약 충격을 받지 않았더라면, 두 달은 더 버티셨을 겁니다.”그의 말에 김단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순간 숨도 쉬기 어려워졌다.결국 자신의 일 때문에 조모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김단은 임원을 죽이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수 나인은 서둘러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그리고 다정한 말투로 달랬다.“아씨, 큰 마님께서 아직 깨어 계십니다. 들어가셔서 큰 마님을 찾아뵈시지요, 이제 그만 우세요.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슬픔을 억눌렀다.또한 얼굴에 혈흔이 있을까 봐 얼굴을 닦았다.눈물을 닦고 진정하고 나서야 방 문을 열었다.방 안은 썩은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냄새 같았다.김단은 또 다시 눈물이 차올랐지만 있는 힘을 다해 억눌렀다.다시 심호흡을 하고 조모의 곁으로 다가갔다.조모는 잠에 든 것 같이 보였다.김단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조모는 인기척을 느낀 듯이 천천히 눈을 떴다.“단이냐?”김단은 무엇인가 자신을 때린 것 같이 코 끝이 찡해졌다.곧이어 부드러운 말투로 답했다.“예, 단이 여기 있습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이때,
얼마나 아팠을까,단이는 얼마나 아팠을까.조모는 생각하면 할 수록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자신 같은 늙은이는 아무 도움이 될 수 없었다.매일 관저에 있지만 어찌 소식도 들을 수 없었을까.그녀는 자신을 탓하기 바빴다.만약 명정 대군이 어떤 사람인 지 알았다면, 단이를 궁으로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만약 임학 그 못난 놈이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면, 죽기 전까지 때렸을 것이다.만약...만약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단이가 그러한 수모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늙어서 김단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에게 짐이 되고 말았다.감히 어찌 자신이 아끼던 친 손녀에게 지꺼기 물을 먹일 수 있을까, 조모는 다시 마음이 아파왔다.결국 울음소리를 내고 말았다.그 소리에는 처량함과 절망이 담겼다.심지어 김단이 세답방을 나온 것이 틀린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자신이 그녀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빼낸 것인지, 호랑이의 입 앞에 가져다 둔 것 인지 알지 못했다.가여운 팔자가 아니지 아니한가!김단의 눈물은 더욱 거세졌다.그녀가 조모의 눈물을 닦아내도 계속 흘렀다.곧이어 그녀가 조모를 위로 했다.“조모, 다 지나간 일이옵니다. 소녀, 은애하는 사람이 생겼사옵니다. 그러니 울지 마십시오, 조모께서는 소녀가 혼례복을 입은 모습을 보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조모는 그제야 울음을 멈추었다.슬픔에 잠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혼례복 입은 단이의 모습은 실로 고울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김단은 조모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예, 조모께서 쾌차하시면 보여 드리겠사옵니다.”하지만 조모는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곧이어 눈물이 다시 맺혔다.“단아, 은애하는 분과 멀리 가거라!나도 이제, 이곳에서는 머무르지 않을 생각이니라. 가거라...”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소녀와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소녀가 조모의 곁에 있겠사옵니다!”조모가
한편, 정암이 소 씨 가문 관저에 도착했다.소한은 서재에서 병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정암이 양손에 들고 온 술을 보고 나서야 책을 내려놓았다.그윽한 시선에 정암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신, 장군과 함께 술을 하려 찾아 왔사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한에게 술을 권했다.소한은 술을 건네 받고는 한 입 들이켰다.뜨거운 열기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이것은 취향각의 구담술이 아닌가.”곧이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집에 횡재가 난 것이냐?”정암이 비싼 술을 두 병이나 가져왔기 때문이다.곧이어 정암이 의자를 가져와 소한의 앞에 앉았다.손에 쥔 술병을 흔들었다."소신이 들고 있는 술은 구담술이 아니 옵니다."그가 들고 있는 술은 소주에 불과했다.소한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정암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장군께 감사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소한은 웃음이 튀어나왔다.“도와준 자는 내 아우다. 헌데, 왜 내게 감사를 표하느냐?”그리고 술을 한 입 들이켰다.정암도 술을 한 입 마시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하 장군께서 방 안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아시고 늦지 않게 도와 주셨겠사옵니까.”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눈동자만 점점 어두워질 뿐이다.정암이 다시 말을 이었다.“더하여 소신은 군을 이끌 힘이 없사 옵니다. 형제들이 소신과 함께 태부댁에 가겠다 한 것은, 모두 장군의 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하옵니다.”그는 들고 있던 술병을 소한 앞으로 내밀었다.“장군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소한은 그제야 정암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정암의 술병에는 맞대지 않았다.그저 술을 한 입 들이키고는 물었다.“이후에 어떻게 낭자를 지킬 생각이냐.”쌀쌀한 말투였다.그의 목소리가 큰 서재 안에 퍼졌다.정암은 움찔했다.하지만 소한의 눈동자는 계속 그를 바라볼 뿐이다.“오늘은 눈이지만 내일은? 네 몸의 모든 것을 다 쓰고 나면 무엇으로 지키겠냐 물었다.”소한은 알고 있다
혹여 김단과 연관이 있는 일 인가.혹여 김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기분이 좋지 않던 임학은 정암을 보자 더욱 화가 났다.하지만 의원의 경고를 떠올리고는 크게 움직이지 못했다.그저 차가운 말투로 답했다.“그게 자네와 무슨 상관인가?”그리고는 진산군의 관저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정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쫓았다.“단이는 어디에 있사옵니까? 관저에 의원이 있사온데, 어찌 밖에서 의원을 찾아오셨습니까? 혹여 관저의 의원께서는 단이를 치료하고 계신 겁니까?”임학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정암이 그의 앞을 막았다.“도련님, 단이는 어찌 되었습니까?”임학은 양손에 약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그는 정암의 다급한 모습을 보고 잔뜩 화가 났다.“우리 가문의 일이다, 종사관 따위가 감히 상관 쓸 일이 아니다!”하지만 정암은 길을 비키지 않았다.“저는 가문이 아니라, 단이에 대해 물었사옵니다.”“감히!”정암은 여전히 길을 비키지 않았다.임학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자신을 끝까지 붙잡을 것이라 생각했다.게다가 등의 상처가 심한 탓에 얼른 돌아가 누워 있고 싶었다.“네 단이는 멀쩡하다! 내 등의 상처가 바로 그 계집이 낸 것이다! 그 계집은 멀쩡한데, 임원이 많이 다쳤다. 의원께서는 지금 임원을 치료하고 계신다.그리하여 내가 다른 의원을 찾아 나온 것이다! 이제 되었느냐? 비키거라!”임학은 크게 외치고 나서 정암을 치고 앞으로 걸어갔다.정암은 김단이 무사하다는 말에 안도했다.하지만 무언가 생각 난 듯이 서둘러 다시 임학을 쫓았다.“낭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헤칠 여인이 아니옵니다. 혹여 낭자를 괴롭히셨습니까?”임학은 정암이 미쳤다고 생각했다.“다친 것은 나와 원이다. 우리가 어찌 그 계집을 괴롭힐 수 있겠는가?"그는 정암을 바라보았다.어리석기 그지없다.하지만 과거 일을 떠올리면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정암의 말이 맞다.그 계집은 무고하게 누군가를 헤칠 인간이 아니다
임학은 한참 걸어도 화가 수그려지지 않았다.의원의 당부가 없었다면, 당장 돌아가 정암에게 주먹을 휘둘렀을 것이다.그는 관저로 돌아오자마자 매화당으로 향했다.임원의 상황도 살펴보고, 자신의 상처도 의원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지혈은 했지만 밖의 의원은 믿음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매화당의 문 앞에 도착하자 금방 치료를 끝낸 의원과 마주쳤다.의원은 그를 보고 예의를 갖추었다.“도련님을 뵙습니다.”임학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원이의 상처는 어떠하오?”의원이 답했다.“우려 안 하셔도 돼옵니다, 큰 아씨의 검이 완벽하게 빗겨 나가 생명에는 위험이 없사옵니다. 가슴 팍의 상처도 깊지 않아 몸종에게 약을 바르라 시켰사옵니다.”임학은 그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김단의 검술은 자신이 가르쳤기 때문이다.하지만 잠시뿐 이었다.어렸을 때 괴롭히는 사내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알려 준 기술이다.그 기술이 자신의 여동생에게 쓰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임학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이 옆에 잠시 있다가 의원을 찾아가겠소이다.”그는 매화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이때,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작은 아씨는 지금 매화당에 계시지 않습니다.”임학은 깜짝 놀랐다.“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는데, 어디 갔단 말이오?”의원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입가에는 비웃음이 섞였다.“아씨께서는 아씨가 큰 마님을 다치게 하였으니, 안채로 가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비겠다 하였나이다.”그의 말에 임학은 심장이 떨려왔다.곧바로 몸을 돌려 안채로 향했다.의원은 멀어져가는 임학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저 고개를 저으며 한숨만 내쉴 뿐 이다.잠시 뒤, 임학이 안채에 도착했다.의원의 말대로 임원이 조모의 방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양옆으로 진산군과 임 씨 부인이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다.하지만 임원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상처에 피가 흘러도, 얼굴이 창백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임학은 눈살을 찌푸렸다.다가가서 그녀를
“네 이놈! 주인을 믿고 미쳐 날뛰는구나!”참으로 익숙한 말이었다.김단은 며칠 전 자신이 소복을 보며 그렇게 욕했던 것을 떠올렸다.이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저는 공주 마마를 믿고 감히 영의정 댁에서 날뛰는 것입니다! 대감께서 아무리 맹 부인을 치료하지 못하게 막으셔도, 저는 기어코 치료할 것입니다! 어디 한번 저를 쫓아내 보시지요, 공주 마마께서 잘난 당신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으실지 없으실지 한번 지켜보시지요! 그리고 잘난 당신의 할아버님께서도 당신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봅시다!”“네 이놈!”“지나가겠습니다!”김단은 민태훈을 밀치고 맹영지의 방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아침에 한 번 와봤기에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민태훈은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가슴이 답답했다. 그는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돌아서서 가버렸다.김단은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 민태훈의 분노한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냉소했다.바로 이거다. 더 화낼수록 좋다. 민태훈이 공주와 개처럼 싸우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일 것이다. 그들이 심하게 싸울수록 그녀는 더욱 기뻤다!맹영지의 어린 하녀는 김단이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김단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김단은 그녀를 위로할 시간이 없었고, 다시 맹영지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러다 맹영지의 뒤통수에 작은 혹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건 언제 생긴 것이냐?”김단이 물었다.어린 하녀는 앞으로 나와 한번 보고는 말했다. “오래됐습니다. 아마 3년 전쯤일 거예요. 대감...께서 찻주전자로 뒤통수를 때리셨는데, 부인께서 그 자리에서 기절하셨습니다. 나중에 깨어나셨지만 뒤통수에 혹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부인께 여쭤보니 아프지 않다고 하셔서 의원을 부르지 않았습니다.”김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민태훈이 맹영지가 3, 4년 동안이나 아팠다고 말한 것과 혹이 생긴 지 3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쩌면 맹영지가 지금처럼 반응
한 시진 후, 김단은 다시 영의정 저택으로 돌아갔다.소복이 앞장서 김단을 데려갔다.궁궐에서와는 달리 소복은 영의정 댁 문을 들어서자 거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영의정이 직접 나와 그들을 맞이했고, 소복은 깍듯하게 영의정에게 예를 표하면서도 꽤나 득의양양한 말투로 말했다. “대감, 평안하셨소? 실은 공주 마마께서 사촌 분을 염려하시어 나에게 낭자를 데리고 가 살펴보라고 명하셨네.”맹영지와 서원 공주는 사촌 자매였다.소복의 말이 떨어지자 영의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일이 커졌음을 직감했다.그는 곧장 옆에 있는 민태훈을 노려보았다.민태훈은 굳어진 표정으로 김단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고, 이내 앞으로 나와 소복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대감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으십니다. 제 부인은 이미 병세가 깊어 낭자가 오늘 아침에 와서 보았음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중전 마마와 공주 마마께서도 이미 낭자가 다녀갔다는 것을 알고 계시오!” 소복은 미소를 지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심지어 낭자는 그 때문에 중전 마마의 맥을 짚어 드리는 일정에도 늦었소! 하지만 중전 마마께서도 조카 분을 가엾게 여기시어 꾸짖지 않으셨네.”꾸짖지는 않았지만, 민씨 가문 때문에 중전 마마의 일을 그르쳤다고 면전에 대고 말하는 격이었다.민태훈의 표정은 이미 매우 험악해져 있었다.사실 그는 시간을 계산해 두었었다. 김단이 매번 사시쯤 중전의 맥을 짚으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침 일찍 사람을 보내 청하면 전혀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더욱이 그는 김단이 궁궐에 먼저 다녀와 일을 본 뒤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렇게 부르자마자 냉큼 올 줄이야!아무래도 역시 영의정 가문의 병을 고치면 자신의 명성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서둘러 온 것일 것이다!그 생각에 민태훈의 음흉한 눈빛이 다시 김단을 향했다.김단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태연하게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소복이 영의정을 향해 말했다. “중전
이 어찌 속임수가 아니란 말인가?그는 당장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싸늘해진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보았다.김단은 황급히 말했다. “사실 소인은 부인보다 완벽한 환자를 본적이 없습니다.”말을 하면서 김단은 목소리를 낮추고 마치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듯 조심스레 말했다. “부인은 반응이 둔하셔서 소인이 어떻게 손을 써도 아파하지 않으시니, 소인의 침술을 시험해 보기에 딱 이십니다.”이 말을 들은 민태훈은 순간 크게 소리쳤다. “어딜 감히! 공주 마마를 믿고 감히 내 부인에게 이토록 무례하게 대하시는 것이란 말이오!”김단은 민태훈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며 속이 메슥거렸으나, 고개를 숙여 공손히 예를 올렸다. “대감, 부디 용서해주시지요. 다만 부인의 상태가...”“꿈도 꾸지 마시오!” 민태훈은 코웃음을 쳤다. “비록 곧 죽을지라도 내 부인인데, 어찌 자네의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겠소!”그 말인 즉, 민태훈이 김단의 요청을 거절한 이유는 그의 체면이 구겨지기 때문이었다.맹영지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민태훈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어리석었다!김단이 다시 말을 꺼내려 하자 민태훈이 손을 들어 막았다. “됐소, 낭자도 오늘 보았으니 부인이 꺼져가는 등불과 같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오. 이제 그만 돌아가시오!”꺼져가는 등불이라니, 스물다섯도 안 된 아가씨를 두고 할 말이 아니었다.김단은 속으로 분노했지만, 끝내 예를 올리고 자리를 떠났다.상관없었다.민태훈이 그녀를 멸시하고 무시한다면, 그가 수긍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서도록 만들면 된다!이에 김단은 일부러 미시에 이르러서야 중전의 침소로 향했다.그곳에는 서원 공주도 있었다.두 사람은 오랫동안 그녀를 기다렸다. 김단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자 중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원 공주는 다소 화를 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것이오? 오늘 어마마마의 맥을 짚어 드려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오? 아니면 아바마마 곁에 가까워지니 낭자의 재주가 대단한 것처럼
민태훈은 답례하며 말했다. “난 낭자가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올 줄 알았소.”하지만 그의 동작은 어색했고 말투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김단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약간의 경멸감까지 느껴졌다.분명 그는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있었다.김단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민태훈이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몰래 괴롭히겠는가?맹영지의 현재 상황 역시 민태훈의 소행일 가능성이 컸다.민태훈의 학대가 맹영지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리고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들어 조금씩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명 민태훈은 맹영지에게 의원을 불러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맹영지의 상태는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한양 내에서는 맹영지에 관한 소문이 전혀 없었다.오늘 그녀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맹영지가 지금 이런 상태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아마 구 씨의 제안을 민태훈은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맹영지의 하녀를 시켜 그녀를 불러들였을 것이다.그렇게 된 데에는 분명 그녀를 향한 민태훈의 멸시도 한몫했을 것이다.그녀가 명의의 제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음에도 민태훈은 그녀 같은 하찮은 의녀가 맹영지를 치료할 의술을 갖췄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그는 김단이 차를 엎질렀다는 것을 듣고도 슬쩍 하녀를 흘겨볼 뿐 별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그는 김단이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하녀를 물린 뒤 말했다. “내 아내가 3, 4년 전부터 병세가 깊어져 수많은 명의를 불렀으나, 전혀 진전이 없었소.”그의 말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그는 김단에게 명의도 고치지 못한 병이니 그녀는 더더욱 고칠 수 없을 것이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김단은 못 알아들은 척, 속으로 생각했다. 소 오라버니는 5년 동안이나 마비되어 있었고,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김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맹영지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어의원 의녀로, 부인을 진료하러 왔소.”역시나 그녀의 말을 듣고도 맹영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김단은 더 이상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맹영지의 맥을 짚었다.맥은 매우 약했다. 심지어 죽어가는 듯한 맥 기운마저 느껴졌다.보통 이런 맥은 죽음을 코 앞에 둔 사람에게서 나타났다.김단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하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 같은 젊은 나이에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때 방금 전 그 어린 하녀가 차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 “아씨, 차 드세요.”김단은 감사 인사를 하고 손을 뻗어 찻잔을 받으려 했으나, 순간 찻잔이 엎어졌다.김단에게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몽땅 맹영지의 이불 위로 쏟아졌다.“아이고! 이년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어린 하녀는 그 말과 함께 어지러워진 것을 허둥지둥 치우기 시작했다.김단도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어 어린 하녀가 편히 치울 수 있도록 했다.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싸늘했다.어린 하녀는 분명 고의로 그런 것이다.맹영지를 그토록 걱정하면서 왜 일부러 침상에 차를 쏟았을까?김단은 의심을 품은 채 하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초가을의 얇은 이불은 차에 금세 젖어 들었고, 맹영지의 옷과 바지까지 전부 젖었다.어린 하녀는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외치며 옷장에서 깨끗한 옷과 바지를 꺼내 맹영지를 갈아입히려 했다.하지만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동작이 어설펐기 때문에 어린 하녀는 애를 먹으며 난처한 표정으로 김단을 바라보았다. “아씨, 혹시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김단은 이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그녀가 맹영지를 부축하자 어린 하녀는 맹영지의 바지를 벗겼다.그러자 그녀의 다리에 있는 서슬 퍼런 보라색 멍 자국이 김단의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깜짝 놀라
명일.김단은 다시 어의원으로 돌아가야 했다.마차가 평양 대군의 관저에서 곧 도착하려 하자, 누군가에 의해 저지 당했다.“무엄하도다! 감히 평양 대군 관저의 마차를 막는 것이냐!”마부의 목소리는 두터워 마치 무예를 하는 자의 기운이 느껴졌다.김단은 마차 안에서, 마부가 검을 꺼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이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나으리,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노비는 도련님의 명을 받아 찾아 왔나이다. 도련님께서 관저에 들르시어, 큰 며늘 아씨의 목숨을 구해주시어라 청 하셨사옵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차 안으로 손 하나가 들어왔다.마부가 옥패를 쥐고 있었다.옥패는 투명하여 윤기가 돌았다.마치 드문 옥패 같았다.중요한 것은 옥패 위로 ‘민’ 자가 새겨있다.곧 정승댁 민 씨 집안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다.큰 며늘 아씨 라니.김단은 소하의 말이 떠올랐다.맹영지가 이후에 정승댁의 장남과 혼인을 했다는 것이다.어제만 하여도 어찌 맹영지에게 다가갈까 머리가 아팠는데, 민 씨 집안이 자처하여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마차 안에서 대답이 들리지 않자, 민 씨 집안의 몸종이 소리를 높였다.“구 씨 집안의 셋째 아씨가 제 큰 도련님께 나으리를 소개하셨다고 하옵니다!아씨께서 이르시길, 나으리의 의술이 높고 인자하셔서, 큰 며늘 아씨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거라 하셨나이다!”몸종은 초조해하며 마차를 보고 있었다.드디어 마차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구 아씨의 소개라면 저도 거절할 수 없소이다. 정승댁으로 가시오!”“감사하옵니다, 나으리! 감사하옵니다!”몸종의 말투에는 기쁨이 섞여있었다.김단은 순간 숙희를 떠올렸다.만일 김단이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숙희는 이 몸종 보다 더 조급할 것이 분명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정승댁에 도착했다.김단은 처음이 아니었다.어렸을 때, 민 씨 집안에서 연회를 연 적이 있었다.그 당시에 진산군과 임 씨 부인과 같이 참석했었다.어찌 된 일 인지, 민 씨 집안의 큰 도련님께
서아름의 상황을 보아, 조산을 면할 수 있다고 하나 중전의 손에 죽을 것이 분명하다.허나 서아름을 살펴야, 두 사람 모두 구할 수 있을 것이다.잠시 생각하고는 김단이 말했다.“스승님, 부디 제게 귀식환의 제조 법을 알려 주시옵소서. 저도 스승님과 같이 연구를 하겠나이다, 소하 오라버니는 제가 틈틈이 살필 터이오니, 오라버니의 팔이 차가워지면, 저와 스승님이 같이 한빙산을 연구하시는 것이 어떠시옵니까? 스승님께서도 강한 독은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나이까, 그러하면 어렵지 않을 것 이옵니다!”화월과 융골산 같은 독을 의원이 해독 법을 연구하지 않았는 가.의원은 김단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허나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그 해독 법은 그가 연구한 것이 아니다.약왕곡의 주인이 직접 연구해 낸 것이었다.독에 대해 모르는 이가 한빙산의 독성을 연구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의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곧이어 그의 시선이 바구니로 향했다.순간 무언가를 떠올렸다.“사실, 다른 방법이 있긴 하네.”김단이 눈을 크게 뜬 채로 다급하게 물었다.“무슨 방법이옵니까?”“약왕곡의 독은 해독약과 같이 판다네. 소 총령에게 독을 푼 자가 분명 해독약을 가지고 있을 것이야.”곧 소하에게 독을 푼 자를 찾으면, 해독약을 빼내어 더 일찍 고칠 수 있을 것 이다.허나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탓에,독을 푼 자를 찾아도 해독약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김단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소하 오라버니는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었다.다른 이가 용골산을 풀고 나서, 오 년 동안 하반신은 움직이지도 못할뿐더러,밤 마다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지 않았는 가.이토록 잔인하고, 악독한 자가 어찌 해독약을 순순히 내어 놓겠는 가.허나 시도는 할 수 있다.만일 다른 방도가 없다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맹 씨에게 해독약을 내어 놓아라 해야 할 것이다.김단은 관저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의원이 귀식환의 제조 법을 알려주자마자, 김
의원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의원은 소 총령 다리의 퍼진 독은 융골산이라 했다.“그 독은 몸 전체의 뼈를 녹이는 것이 아닌, 두 다리만 녹여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네. 더하여 독에 걸린 사람은 종종 독성이 일어나, 두 다리의 뼈가 끊어 질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지. 초반의 소 총령의 증상과 같아.”김단은 의원의 말을 경청했다.사실 융골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이제 소하 오라버니는 걸을 수 있지 않은 가.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소하 안의 다른 종의 독이다.의원이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소 총령 체내 안의 독은 아마도 한빙산 일 것이야.초반에는 그저 손과 발이 차가울 뿐이지,허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 죽고 말 것이야.”그의 말에 김단은 등에 서늘함이 느껴졌다.의원이 수염을 쓰다듬었다.“허나 그 독은 약왕곡에 있다네. 그리 위험한 독은 아니야, 하지만 독성이 쉽게 퍼져 팔 전체가 차가워 지기도 전에, 체내에 있는 독성은 사라질 거야. 그 탓에 네가 소 총령의 손이 차갑다 하였을 때,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네.”의원의 말에 김단은 안도를 했다.“그리하면 소하 오라버니께서는 괜찮으신 것이옵니까?”“장담은 하지 못하네.”의원이 김단의 말을 끊었다.“세상 만물에는 상생상극의 이치가 있듯이, 독성도 마찬가지네. 이전에는 융골산에 억눌려 제대로 퍼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네. 오 년이야. 오 년 동안, 한빙산이 혈을 따라 소 총령의 몸 구석구석에 퍼졌을 거야. 오늘날에는 폐로 들어가서, 빼내기 어려울 것이야.”“다른 방도가 있으십니까?”김단이 서둘러 물었다.의원은 화월, 융골산 모두 침으로 해독했다.그리하면 한빙산도 침으로 해독 할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의 말에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퍼지기 쉬운 한빙산의 독성은 그 누구도 연구하려 들지 않았네.”그는 김단을 바라보았다.“자네는 내가 귀식환을 연구하길 바라는가, 아니면 한빙산을 연구하길 바라는가.”그는 몸이 하나였기에 두 가지를
죽음을 가장 한다니.의원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깊게 고민하고는 대답했다.“약왕곡에 귀식환이라 하는 약이 있네. 먹고 나면 한 시진 안에 숨이 멈추어 죽은 자와 같지. 허나 제조하기가 지극히 까다로워. 위의 분들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거야.”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혹여 다른 방법이 있사옵니까?”“있긴 하지.”의원이 말을 이었다.“폐와 심경 양쪽 혈에 침을 일촌삼푼 으로 놓으면, 숨을 멈춘 것과 같은 상태를 만들 수 있네. 허나 위험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곧 귀식환이 더 신뢰할 만한 수법이었다.김단은 잠깐 생각하고는 의원에게 절을 했다.“부탁드리옵니다, 스승님. 귀식환을 만들어 주시 옵소서.”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단을 일으켰다.“고운 마음씨를 보아, 이 스승도 최선을 다할 것이야. 허나 위험한 일이라 만일 잘못된다면, 공주와 중전의 의심을 받게 될 것이야.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야.”“예, 알겠나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그리고 의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스승님께서 남은 일이 있사옵니까?”의원은 단번에 김단의 뜻을 알아챘다.“맥을 배우고 싶으냐?”김단이 예, 라며 대답했다.이전에도 의원을 따라 맥을 배웠지만,소하의 맥을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더 배우고 싶었다.날이 밝자마자 왔으니,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진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원은 은침을 꺼냈다.곧이어 두 사람은 작은 방 안에서, 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두 시진이 지난 뒤에야 멈추었다.의원도 지친 모습을 보였다.“시진도 꽤 지났지 않느냐. 배가 고프구나, 같이 식사를 하지 않으련?”김단의 손은 의원의 손목에 맥을 짚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을 거두지는 않았다.이때, 검지와 중지 사이에 익숙한 움직임이 느껴졌다.김단이 깜짝 놀랐다.의원이 은침을 천천히 빼려고 하자 서둘러 말했다.“움직이지 마십시오!”의원도 깜짝 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