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연은 순간 당황하다가 작은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방금 실수로 입술을 깨물었어.”하지만 물린 것은 강지한의 입술이었다.“자, 닦아.” 신하린은 휴지를 건넸다.박유진의 깊고 검은 눈동자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심미연은 티슈를 받아 입을 닦으며 화장실 밖에서 강지한의 무례한 행동을 떠올리고는 짜증이 밀려왔다.강지한은 대체 그녀를 뭐로 보고 틈만 나면 강제로 입을 맞추는 걸까.그녀가 남들에게 욕먹는 건 신경도 안 쓴다.온지유였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면서!“참 미연아, 박유진 씨가 나한테 큰 프로젝트를 소개해 줬는데 시간 있으면 와서 도와줘. 나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신하린이 밝은 어투로 말하자 심미연은 휴지를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고를 끄덕였다.“좋아, 마침 나도 요즘 한가해.”온지유가 리우로 오면 분명 그녀의 사건을 빼앗을 것이기에 앞으로 담당할 사건이 줄어들 게 뻔했다.“왜, 리우 망한대? 네가 한가할 리가 없잖아.”신하린은 리우에서 심미연이 얼마나 바쁘게 보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이혼한 부부가 왜 그렇게 많은지.“아니, 리우는 지금 강지한이 인수하고 온지유가 낙하산으로 내 상사가 됐어.”심미연이 웃었다.“그동안 소송으로 바쁘게 살다 보니 너무 피곤했는데 이제 좀 여유가 생기겠어.”몇 년 동안 이혼 사건을 맡으면서 이혼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부부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그래서 자신은 강지한과 이혼을 하더라도 보기 좋게 헤어지고 싶었다.밑바닥까지 드러내는 건 너무 추하니까.“강지한 개자식이 망할 년한테 홀려서 앞뒤 구분도 못하네. 진짜 열 받아!”신하린은 씩씩거리며 달려가서 강지한을 두들겨 패고 싶었다.“괜찮아, 휴가라고 생각하지 뭐.”심미연이 웃었다.“마침 너 일 도와주면서 돈 벌 수 있잖아. 소송보다 훨씬 쉽지.”“너는 재능이 있는데도 왜 숨겨? 네가 회사 차렸으면 내건 진작 문 닫았겠다.”신하린은 한숨을 내쉬었다.“그 개 같은 강지한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잃었어.”“
그래서 박유진은 가족 몰래 심미연을 가르칠 전문 선생님을 모셔 왔다.피아노, 체스, 서예, 그림, 글쓰기, 격투기까지 다 해냈고 그의 눈에 그녀는 항상 반짝반짝 빛났다.그해에 강지한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쯤 그의 아내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안타까운 일이다.신하린은 어렸을 때 심미연이 겪은 일을 알고 있었기에 심미연이 박유진에게 고마워해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때로는 심미연이 박유진을 만난 덕분에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자신도 다행히 심미연을 만났기에 살 수 있었다.“재능은 무슨. 오빠가 돈을 쓰니까 오빠 성의도 있고 돈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배운 거야.”과거를 떠올려보면 심미연이 행복하다고 느낀 유일한 순간은 박유진과 함께 있을 때였다.그해 강지한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박유진의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박유진의 아내였으면 무척 행복하게 살았겠지.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만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자, 과거 얘기는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신하린은 심미연의 눈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박유진은 그릇을 들고 국을 한 그릇 떠서 심미연에게 건넸다.“먹어봐.”“고마워, 오빠.”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넨 심미연은 박유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둘은 이미 엇갈렸고 다시는 접점이 생겨선 안 된다.강지한은 박유진을 향해 미소 짓는 심미연과 박유진의 부드러운 눈빛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유난히 짜증이 났다.아직 이혼도 안 한 여자가 다른 남자를 꼬시고 있었다.온지유는 찢어진 그의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심미연을 찢어버리고 싶었다.조금 전 강지한이 화장실에 갔을 때 심미연도 화장실에 간 것을 보았다.분명 심미연이 강지한의 입술을 깨문 거다.‘감히 화장실에서 강지한을 꼬시다니, 빌어먹을 것!’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하며 식사를 마쳤다.식사 후 심미연이 쇼핑을 가자며 신하린
심미연의 작은 얼굴이 붉어졌고 신하린은 고개를 기울여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입술에 묻은 피가 저 남자 깨물어서 생긴 거구나.”어쩐지 물어봤을 때 심미연의 얼굴이 붉어지더라니.온지유는 너무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었다.전에는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만 하고 괜한 생각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강지한의 말을 직접 들으니 질투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심미연 망할 년! 감히 화장실에 강지한을 꼬드겨? 뻔뻔한 것!’강지한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입가를 누른 채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심미연을 바라봤다.“왜, 책임지기 싫어?”심미연은 이를 악물고 신하린에게 말했다.“먼저 작업실로 가서 협업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줘. 다 보고 통화로 얘기할게.”“근데 너...”신하린은 심미연이 강지한과 단둘이 있는 것이 불안했다.“괜찮아, 보배둥이가 옆에 있으니까 나한테 무슨 짓 못 해.”심미연은 무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신하린에게 말했다.“알았어, 그럼 조심해!” 신하린은 낮게 당부하며 자리를 떠났다.심미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심미연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신하린이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벤틀리 쪽으로 걸어갔다.성무진은 차 문을 열고 일찌감치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다가오자 정중하게 손짓하며 말했다.“타세요, 사모님.”심미연이 그를 향해 담담하게 웃었다.“고마워요.”그러고는 허리를 굽혀 차에 타자 성무진은 차 문을 닫았다.심미연은 창가 자리에 앉아 중간에 앉은 온지유를 조용히 바라봤다.온지유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이 년이 진짜 타?’온지유의 매서운 눈빛을 받은 심미연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형님께서 여기 계시니까 상처를 치료할 방법이 없네.”남자의 입가에 난 상처는 조금만 지나면 아물 테지만 온지유를 불쾌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너!”온지유는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빌어먹을
언제는 차에 타라고 하더니 이제는 내리란다. 미친놈!강지한은 입술을 다물고 허리를 굽혀 그녀를 품에 안더니 옆에 있던 성무진에게 말했다.“지유 데려다줘.”심미연은 남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온지유가 바람이 많이 불어 춥다고 하니 그녀를 내리게 하고 성무진에게 온지유를 데려다주라는 거다.배려하는 모습에 칭찬을 해줘야 할까?성무진은 심미연의 핏기 없는 얼굴을 슬쩍 보고 머뭇거렸다.강지한은 이렇게 하면 아내가 슬퍼할 거란 걸 모르는 걸까.그는 강지한이 점점 더 파국을 초래하는 것 같았다.“지한 씨, 나랑 같이 안 가요?”온지유는 남자가 품에 안고 있는 심미연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질투에 미쳐 날뛰었다.혼자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차라리 강지한과 함께 추위에 떠는 게 나았다.심미연은 온지유의 말을 듣고 그녀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하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허, 질투에 화까지 내네?’생각 끝에 그녀는 남자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나지막이 불렀다.“여보...”‘연기? 누군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나.’온지유는 화가 나서 쓰러질 지경이었다.‘심미연 이 빌어먹을!’여자의 나긋하면서도 유혹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자 넋이 나간 강지한은 순식간에 머리에 적나라한 화면들이 떠올랐다.여자가 가느다란 다리로 그의 허리를 옭아맨 채 나지막이 ‘여보’라고 불렀다.그때마다 그는 그녀 위에서 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강지한은 몸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성무진이 여전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안 가고 뭐 해!”목소리가 눈에 띄게 잠겨 있었다.성무진은 놀라서 황급히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어쩐지 강지한이 매일 밤 잠은 꼭 집에 가서 자더라니, 저런 이유가 있었다.저렇게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다면 그였어도 매일 잠은 꼭 집에서 잤을 거다.온지유는 너무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고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심미연을 영원히 사라지게 해야지!’그러면 심미연에게 강지한을 빼앗길 걱정을 하지
심미연은 박유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말해도 강지한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할 말이 없었다.“전에는 내가 이혼하려고 일부러 당신과 온지유 동영상을 휴대폰으로 찍었다고 하더니, 이제는 내가 다음 남자를 찾는 데 급급하다고 하네. 강지한, 그렇게 한가해?”생각이 단순하다고 욕하고 싶었지만 아직 이 남자를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심미연, 내가 원하지 않는 한 네가 나와 이혼하고 싶어도 소용없어! 내겐 이노하이브 법률팀 전체가 있는데 너 혼자 소송에서 어떻게 날 이겨? 결국 고생하는 건 너야.” 강지한은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비웃었고 그의 눈은 조롱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 여자가 그의 법률팀을 우습게 보고 있으니 자신과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심미연은 남자의 고고한 눈매를 바라보며 가슴속에서 슬픔이 솟구쳐 올랐다.“강지한, 당신과 온지유는 아이까지 있으면서 왜 이혼을 안 해, 왜 날 안 놔주는 건데? 대체 날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 생각이야?”최대한 침착하려 했다. 남자가 아무리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여도 다른 여자들처럼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강지한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소용없다는 걸 잘 알았다.그의 눈엔 한낱 웃음거리일 뿐이겠지.생각하니 서글펐다.9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왜겠어?”강지한의 눈동자에 싸늘한 서리가 내려앉았다.“3년 전 나를 속여 결혼을 강요했으면 남은 인생 시달릴 각오를 했어야지. 이제 겨우 3년이 지났는데 벌써 보내주면 너만 좋은 일이 되잖아.”홧김에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3년 전 심미연에게 당했던 게 강지한의 마음속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벽이었다.심미연은 평생 자신을 괴롭히겠다는 그의 말을 듣고 가슴이 저도 모르게 저릿했지만 굳이 3년 전 일을 그에게 다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여러 번 설명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어차피 중요하지도 않으니 원하는 대로 생각하라지.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두 사람을 위해서?” 강지한의 얼굴에 비꼬는 기색이 역력했다.“빨리 이혼해서 박유진과 함께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지 그래!”조금 전 식당에서 달려들어 박유진을 때리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봐줬다.“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얘기 다 끝났어? 그러면 택시 타고 로펌으로 가.”차를 몰고 왔지만 강지한이 전에 그녀의 차가 편하지 않다고 싫어한 이후로 다시는 차에 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강지한이 인상을 찌푸렸다.“택시는 많은 사람들이 타서 더럽잖아. 안 타!”심미연은 어이가 없었다. 참 모시기 힘든 남자다.‘됐다, 그냥 기다리지 뭐.’그 순간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오자 강지한은 심미연을 차로 끌고 갔다.“집으로 가!”심미연의 심장이 철렁했다.대낮에 집으로 돌아간다니, 또 그런 짓을 하려고?아까 화장실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걸 이어가려는 거다.강지한과 3년 동안 부부로 지내오면서 그가 밤일에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았다.처음 결혼했을 때는 매일 밤부터 새벽까지 지칠 줄 모르고 달리다가 나중엔 서서히 줄어들었다.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누울 때면 그는 매번 원했다.과거에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임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가 원한다면 기꺼이 응했지만 이제 그녀는 임신과 함께 이혼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그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하지만...강지한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외할머니 약은 어떡하나.“지한 씨, 나 로펌에 출근해야 해. 오후에 할 일이 많아서 지체할 여유가 없어!” 그녀가 서둘러 말하자 강지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심미연, 나 화난 거 안 보여? 온지유라면 벌써 눈치챘어.”온지유는 눈치챌 뿐만 아니라 그를 달래줬을 거다.“안 보여, 나 눈이 멀었어.”심미연은 사랑하고 달래주는 사람이 있다고 과시하는 남자에게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비열해!’강지한은 그녀의 얼굴을 꼬집었다.“계속 고집부려봐. 이따가 울면서 빌게 될 거니까.”그와 심미연 사이의 갈등은 대부분 침대에서 해결됐다.그게 이젠 두 사람의 암
심미연은 깜짝 놀랐다.강지한은 대체 뭐 하려는 걸까.운전기사는 눈치껏 차를 세우고 곧바로 내렸다.‘도련님께서 밖에서 즐기려고 하시네, 그런 취향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차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던 강지한은 손을 뻗어 심미연을 품에 안으며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이제 운전기사도 없으니까 해도 되지?”심미연은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방금 많이 먹어서 운동을 못 해! 안 그러면 차에 토해서 더러워질 거야!”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핑계를 대자 강지하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심미연, 아직 이혼한 것도 아닌데 벌써 박유진을 위해 몸을 사리는 거야? 왜, 할머니 약 받기 싫어? 친구 작업실도 버리는 거야? 아, 사랑하는 박유진이 새로 차린 로펌도 문 닫게 해줄까?”속에서 분노가 이글거리던 강지한은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고 심미연은 순간 등줄기에 오싹한 한기만 느껴졌다.강지한은 그녀 주위 사람들로 협박하고 있었다.“심미연, 분명히 말하는데 난 이혼 안 해! 네가 밖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것도 용납하지 않을 거야. 안 그럼 내가 방금 한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게 되겠지.”그렇게 말하며 강지한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여 키스하려는데 심미연은 분노에 치를 떨며 격렬하게 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때렸다.“강지한, 이건 너무하잖아!”지난 3년 동안 그의 수발을 들어준 걸로도 모자라서 이런 식으로 그녀를 대하는 걸까.강지한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이혼하기 싫다니까 이젠 폭력을 행사해? 사모님, 변호사라서 잘 알 텐데. 그러다 내가 널 고소할 수가 있어!”“강지한, 우리 둘 사이 일에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지 마. 그 사람들이 뭘 잘못했다고 그래?”심미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어깨를 살짝 떠는 모습이 무척 불쌍해 보였다.온지유였다면 강지한은 절대 그녀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이게 애정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그 사람들은 잘못이 없지. 잘못은 네가 했지.
심미연은 이제 수치심 따위 뒤로 한 채 강지한의 화를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강지한의 화가 풀리면 그녀 주변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고 수십억도 이대로 사라지길 바랐다.품에 안긴 여자의 부드러운 몸, 귓가에 들리는 여자의 홀리는 듯한 목소리, 코를 가득 채우는 특유의 향기에 강지한의 몸이 달아오르며 큰 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움켜쥐었다.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가장 친밀한 행동을 하면서 입으로는 잔인한 말을 뱉었다.“사모님 몸 파는 건가? 한 번에 얼마를 받을 생각이지? 얼마나 해야 심씨 가문에서 수십억을 갚을까?”심미연은 모든 장기가 뒤틀린 것 같고 통증이 극심해 견디기 힘들었다.필사적으로 숨을 들이마시자 작은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가 번지며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몇 번이나 할 지는 강 대표님의 아량에 달렸죠. 대표님께서 너그럽게 봐주시면 한 번으로도 갚을 수 있고 인색하면 여러 번 해야죠 뭐. 그리고 또 하나, 대표님께서 너그럽게 제 주변 사람들은 봐주셨으면 좋겠는데요?”그녀의 슬픔과 연약함은 강지한의 짜증만 불러오기에 강지한 앞에서는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그녀의 말에 자극받은 강지한의 눈이 새빨갛게 변하며 큰 손으로 그녀의 허리 여린 살을 꽉 움켜쥐었다.“지금 이 모습이 3년 전 그날 밤과 똑같네. 두 번 다 목적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나를 기쁘게 하려고 하잖아.”역시나 그의 생각이 맞았다. 주변 사람들을 건드릴까 봐 그를 기쁘게 해주려는 거다.곧 거칠게 그녀의 치마를 찢어버렸고 심미연의 작은 얼굴은 고통에 하얗게 질리더니 두 손으로 급히 배를 감쌌다.“강지한, 살살해! 아파!”그녀는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강지한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몸을 파는 거면 주인님께 뭐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지. 살살해? 그럼 난 즐겁지 않잖아!”심미연은 몸도 마음도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강지한, 움직이지 마. 아프다고!”강지한은 그녀가 꽉 조이는 것을 느끼며 숨이 막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 잠 자고 일어났을 때 위치 정보가 사라진 걸 알게 되었어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도저히 위치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동생분의 핸드폰에 접근해 통화 기록을 확인했죠.][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강씨 사모님이었어요.] 심미연은 눈을 반쯤 감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심서연은 무슨 일로 문소영을 찾았을까?’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친한 관계였나?’[보스, 지금 심서연 씨가 소식이 끊긴 상태인데 계속 추적할까요?] [네. 추적하세요.] 심미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느꼈다. ‘심서연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찾아서 추적하겠습니다. 그럼 신하린 씨 교통사고는 어떻게 할까요?] [제가 일이 끝나면 그 사람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진짜 신원을 정확히 파악해볼게요.] [네. 알겠습니다.]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 섰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때 병실 안에서 심태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빨리 와요!” 심미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급히 생각을 정리한 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엄마, 빨리 와서 이모 다리 어디 갔는지 찾아봐요.” 심태하가 그녀를 보고 급하게 달려왔다.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들어 심미연을 애타게 바라봤다. 심미연은 허리를 굽혀 그를 부드럽게 안아 올리며 심태하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조용히 말했다. “이모는 사고로 다리를 잃었어. 이제 의족으로 대신해야 해. 그러니까 이모 앞에서 다리가 없다고 말하면 안 돼.”심태하는 눈가가 갑자기 붉어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이모는 다리를 잃었어. 이모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서 이모가 요즘 그렇게 기운도 없고 얼굴이 안 좋았던 거구나.’ ‘다리를 잃은 거였어.’어린 아이는 마음이 먹먹하고 아픈 감정이 밀려왔다. “태하가 불어주면 이모가 안 아플 거야.” 신하린은 웃으며 말했다. 마음속에 슬픔이 밀려왔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간병인은 이미 출근해 신하린의 손을 조심스럽게 닦고 있었다. 심태하는 병실 문을 열자마자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모, 나 왔어요!”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치며 병상으로 달려가자 신하린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간병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침 준비해 주세요.” 간병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심태하는 침대 곁으로 뛰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신하린을 바라봤다. “이모, 저 보고 싶었어요?”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에 신하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엄청엄청 보고 싶었지.” 심태하는 까치발을 들고 침대에 올라가려고 애썼지만 키가 닿지 않자 포기하고 조그만 얼굴을 숙여 신하린의 손등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저도 엄청 보고 싶었어요.”심미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시리게 아려왔다. 손에 든 죽을 옆의 서랍장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혹여 자신의 감정이 신하린에게 전해질까 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침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심미연은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서둘러 말했다. “전화 좀 받고 올게.” 짧은 말만 남긴 채 병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신하린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에 담긴 쓸쓸함이 선명하게 느껴져 마음 한쪽이 시큰해졌다.지금 심미연이 자신을 보고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신하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미연이 조금이라도 덜 걱정하도록 신하린은 아픈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치료에 임했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서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그래야 심미연이 더는 자신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을 테니까.심미연은 병실을 나온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보스, 신하린 씨 사고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심미연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누구예요?] [한유나 씨 아버지입니다.]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그날 밤 경비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심미연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박유진과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박유진은 심미연이 멍하니 있는 걸 보며 잠시 마음이 조금 씁쓸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말을 이어갔다. “농담이야. 결혼 강요하려던 건 아니었어. 이렇게 하자. 오후에 시간이 되면 같이 보러 가자. 마음에 들면 내일 바로 이사도 가능해. 어때?”그는 심미연의 마음속에 강지한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건 심미연이 그와 함께 평생을 살아갈 만큼 감정이 깊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심미연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오빠...” 심미연은 박유진이 억지로 웃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 모습에 마음속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박유진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지금은 오빠한테 결혼을 약속할 수 없어.” 그녀는 아직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박유진을 평생 고통 속에 두고 싶지 않았다. “알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돼.” 박유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다. “내가 너무 서둘렀어.”심미연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고 말하며 그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진성에 있을 때였다면 이렇게 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경성에 돌아온 후 강지한이 언제든지 심미연과 심태하를 빼앗아 갈 것만 같아 점점 더 초조해졌다.“나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 받을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확신시키려 애썼다. 매번 의사 말을 순순히 따르며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심미연은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심미연은 세수를 하고 간단히 준비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박유진은 이미 아침을 준비해 놓고 거실을 정리하고 있었다.“일찍 일어났네? 조금 더 자.” 박유진은 청소기를 끄고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할 일이 많아서 더 이상 못 자. 정신없이 바쁠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먼저 아침 먹어. 나는 위층 가서 태하 깨울게.” 박유진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알겠어. 오빠가 태하 깨워줘.” 심미연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살짝 비벼댔다.박유진과 함께하는 시간은 평온하고 따뜻했다. 그저 이런 일상이 이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아침 먹어. 난 위층 가서 좀 보고 올게.” 박유진은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으며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심미연은 그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걸 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식탁으로 향했다. 박유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깊은 숨을 내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심미연의 방에 들어서자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심태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박유진의 마음은 저절로 따뜻해졌다. 심미연과 심태하를 돌보는 건 그에게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다.심미연은 식탁에 앉아 보온병을 열었다. 따뜻한 우유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가 퍼졌다. 빵은 부드럽고 입 안에서 살살 녹으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박유진은 예전엔 찐빵이나 만두 같은 것만 만들 줄 알았고 빵과 케이크는 나중에 배우게 된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녀와 심태하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심미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심미연은 복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아침을 마치고 거실로 나가자 박유진이 심태하를 안고
신하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스친 냉소는 차갑고 깊었다. ‘내가 멀쩡할 때는 단 한 번도 결혼 얘기 안 하더니. 이제 다리 하나 못 쓰게 되니까 그제야 날 데려가겠다고?’ ‘날 데려가서 네 부모한테 실컷 조롱당하게 하려고?’“왜 그렇게 봐?” 이진영은 신하린의 시선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숨을 삼키듯 숨을 들이마신 뒤에야 겨우 물었다. 신하린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이진영 씨, 난 예전에도 당신과 만나겠다고 한 적 없어요. 앞으로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고요.” “당신과 결혼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예요.”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내뱉는 말들이 조금의 여지도 없이 이진영을 꿰뚫었다.이진영은 허리를 숙여 수건을 적셨다. 꾹 짜낸 뒤 조용히 걸음을 옮겨 신하린 앞에 섰다. 수건을 조심스럽게 들어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널 데려가겠다고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갈 거야.” “예전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너한테 약속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모든 일 정리되는 대로 너랑 결혼할 거야.” “한 말은 반드시 지킬 거야.”지난 4년 동안 이진영은 많은 일을 해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만들어낸 적도 많았다. 그의 곁에 신하린이 있으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고싶어도, 미칠 듯 그리워도 끝내 연락하지 않았다. “전 안 해요. 절대 당신이랑 결혼 안 해요.”“이진영 씨, 당장 나가세요.” 그날 갑자기 나타난 그 여자...억지로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듯이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쏟아졌다. 그녀가 견뎌온 모든 고통은 전부 이진영 때문이었다. 이진영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낸 뒤 손까지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네가 기분 안 좋다는 거 알아. 그럼 나 한 대 쳐서라도 기분 풀래?” 신하린은 그 손을 냉정하게 뿌
강지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얼굴의 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심미연은 분명 병실에 와서 강상미를 만났지만 의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말 독한 여자야.’“시간도 늦었고 나도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먼저 간다.” 이진영은 담배를 끄고 일어나 곧장 밖으로 나갔다. 강지한은 술을 따라 마시며 심미연에 관한 생각에 잠겼다. ‘심미연은 언제 의술을 배운 거지?’ ‘이 3년 동안 이 여자는 도대체 뭘 했던 걸까?’이진영이 차에 올라타자 기사가 물었다. “도련님,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이진영은 미간을 문지르며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순간 마음 속이 답답해졌다. “병원으로 가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엔진을 돌렸다.신하린의 병실 앞에 도착한 이진영은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 이진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들어가서 잠깐 보고 올게요.” “신 대표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심미연 대표님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결론은 한 마디였다. 그들은 명령을 따랐기에 규칙을 어길 수 없었다.이진영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여기는 내 병원인데 병실도 맘대로 들어가지 못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돌아가 주세요.” 경호원이 좋은 말로 타일렀다. 하지만 그때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이진영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급하게 말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어요. 들어가게 해줘요.” 경호원은 그를 막으려 했지만 그때 또 한 번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경호원도 놀라서 급하게 병실 문을 열었다.이진영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하린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조명 아래서 그 모습은 다소 섬뜩하게 보였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다가가 신하린을 침대에 눕히고 몸에 상처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면서 옆에 멍하니 서 있던 경호원에게는 급히 소치쳤다. “의사
“너희 아버지가 최근에 한석훈과 많이 가까워졌다고 들었어. 내가 알기로 한석훈과의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더라.” 강지한은 박시훈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이진영에게 전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 사실 지난 4년 동안 그는 한석훈의 배후 세력을 조사해왔고 조사할수록 그 배후는 점점 더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너와 한유나 씨 사이의 일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야?” 이진영은 조용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혼약을 해제할 생각이야.” 그는 이미 한유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한유나는 최근 들어 그를 피하는 듯했다. 그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구아정은 어떻게 할 거야?” 강지한이 다시 물었다. “네 첫사랑이라고 했지?”“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고 그 뒤로 그냥 끝났어.” 이진영은 무의식적으로 신하린의 얼굴을 떠올렸다.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지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신하린이었다.이제 그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느꼈다. 그녀의 다리가 이렇게 된 지금 그녀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녀를 돌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구아정, 그 여자에 대해 조사해본 적 있어?” 강지한이 상기시키듯 말했다.“조사 중이야.” 이진영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겠어.”구아정은 분명 그를 찾으러 온 거였다.‘왜일까?’“신하린 씨의 일은 잘 해결됐나?” 강지한은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었다.“하린이 오른쪽 다리가 절단됐어.” 이진영은 말하면서도 짜증이 치밀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흡입했다. 연기가 흩어질 때 그는 다시 한 번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 강지한은 잠시
문소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살려주지 않으면 우리가 두 명의 아들을 뒀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 거야. 그럼 당신도 명예를 잃고 끝장날 거라고.” 그녀는 지금 이 남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가 두 아들을 뒀다고? 증거 없이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남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하며 눈빛은 강렬하게 빛났다. “당시 내 임신 검진서도 여전히 남아 있고 병원에 가면 내 출산 기록도 확인할 수 있어. 그 아이들의 혈액형은 당신이랑 똑같아.” 문소영은 그동안 이 모든 것을 철저히 보관해 왔다.“문소영, 나를 망치려고 하는 거야?” 남자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나는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래.” 문소영은 감정을 정리한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나에게 유리해.” “내가 원칙을 깨고 너를 돕기를 바란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남자는 술잔을 비운 후 탁자 위에 쿵 하고 내려놓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소영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며 부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에게 경고만 준 것뿐이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한 대로였다.잠시 후 문소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모님, 지시하신 대로 사람을 공해에 던졌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해외로 잠시 숨어 있어. 여기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기다려.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된다.] 문소영의 얼굴엔 차가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들이 돌아올 때쯤 심서연의 죽음은 이미 잠잠해지고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문소영은 전화를 끊고 술을 따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진영은 술을 많이 마셨고 잠간 밖으로 나왔다. 그때 한 남자의 뒷모습이 아버지를 닮은 듯해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멈칫하며 발걸음
문소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말없이 있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TV 뉴스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미칠 듯했다. 문소영은 자신이 더 이상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믿어왔다. 남자는 그녀의 침묵을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문소영은 깊은 생각을 떨쳐내고 몸을 곧게 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필요해서 왔어. 우리 아들에 관한 일이야.”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우리가 아들이 있다고? 그럴 리가...” “쌍둥이였어. 작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납치됐고 큰 아이는 강지성. 몇 년 전에 사고로 죽었어.” 문소영은 눈물을 훔치며 말을 급히 이어갔다.이건 그녀가 삼십 년 넘게 숨겨온 비밀이었다. 그녀는 이 생에서 절대 말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 이렇게 쉽게 입 밖으로 내뱉게 되었다. 문소영의 말은 마치 폭탄처럼 남자의 가슴 속에 떨어졌고 남자는 동공이 급격히 축소되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문소영과 자신이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사실 처음 내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당신에게 말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에서 강제로 나를 강우석과 결혼시키려 했고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어. 그러자 부모님은 나를 감금하고 내 핸드폰도 압수했어.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어.” 문소영은 말하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로 강씨 가문에 보내졌었다. 강우석과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석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강우석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그 상대가 바로 강지한의 어머니였다. 7개월 후 그녀는 쌍둥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그 중 한 명이 사라졌다. 그녀는 30년 동안 그 아이를 훔쳐간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그 사람이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