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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Author: 무안안
심미연은 이제 수치심 따위 뒤로 한 채 강지한의 화를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강지한의 화가 풀리면 그녀 주변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고 수십억도 이대로 사라지길 바랐다.

품에 안긴 여자의 부드러운 몸, 귓가에 들리는 여자의 홀리는 듯한 목소리, 코를 가득 채우는 특유의 향기에 강지한의 몸이 달아오르며 큰 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가장 친밀한 행동을 하면서 입으로는 잔인한 말을 뱉었다.

“사모님 몸 파는 건가? 한 번에 얼마를 받을 생각이지? 얼마나 해야 심씨 가문에서 수십억을 갚을까?”

심미연은 모든 장기가 뒤틀린 것 같고 통증이 극심해 견디기 힘들었다.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마시자 작은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가 번지며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몇 번이나 할 지는 강 대표님의 아량에 달렸죠. 대표님께서 너그럽게 봐주시면 한 번으로도 갚을 수 있고 인색하면 여러 번 해야죠 뭐. 그리고 또 하나, 대표님께서 너그럽게 제 주변 사람들은 봐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녀의 슬픔과 연약함은 강지한의 짜증만 불러오기에 강지한 앞에서는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자극받은 강지한의 눈이 새빨갛게 변하며 큰 손으로 그녀의 허리 여린 살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 이 모습이 3년 전 그날 밤과 똑같네. 두 번 다 목적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나를 기쁘게 하려고 하잖아.”

역시나 그의 생각이 맞았다. 주변 사람들을 건드릴까 봐 그를 기쁘게 해주려는 거다.

곧 거칠게 그녀의 치마를 찢어버렸고 심미연의 작은 얼굴은 고통에 하얗게 질리더니 두 손으로 급히 배를 감쌌다.

“강지한, 살살해! 아파!”

그녀는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강지한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몸을 파는 거면 주인님께 뭐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지. 살살해? 그럼 난 즐겁지 않잖아!”

심미연은 몸도 마음도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강지한, 움직이지 마. 아프다고!”

강지한은 그녀가 꽉 조이는 것을 느끼며 숨이 막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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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자
여기 여주들은 다들 병신들인가요 로펌변호산데 쓰레기들한테 매일 당하기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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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너를 붙잡다   제83화

    배가 무척 아파서 심미연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강지한이 차에서 내린 뒤 황급히 통증을 참으며 일어나 옷을 입었다.우연히 차창 밖의 남자가 택시를 타는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조금 전까지 그녀가 택시를 타자고 했을 땐 더럽다더니 서둘러 온지유를 만나러 갈 땐 더럽지 않나 보다.이중적인 남자.심미연은 몸을 정리하고 몸에 걸친 옷을 모두 입었는지 확인한 후 차에서 내리려고 문을 열었다.운전기사가 그녀를 보고 서둘러 다가왔다.“사모님, 왜 차에서 내리셨어요? 도련님께서 집까지 모시라고 했어요.”“됐어요, 택시 타고 갈게요.”강지한의 차는 전부 온지유가 탔기에 역겨운 데다 조금 전 안에서 남자에게 이리저리 휘둘렸기 때문에 더욱 메스껍고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사모님...”운전기사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어 감히 그녀 혼자 보낼 수 없었다.배가 아픈 심미연은 손을 뻗어 택시를 부르며 말했다.“강지한이 뭐라고 하면 온지유가 탔던 차라 역겹다고 전해요.”“사모님, 그건...”운전기사는 감히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심미연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그렇게 얘기하세요.”그렇게 말해도 어차피 사실이기에 강지한이 어쩌진 못할 거다.“사모님, 안색이 좋지 않은데 제가 모셔다드릴게요.”강씨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 중 강지한과 온지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운전기사는 심미연을 말릴 수는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고 했다.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됐어요.”운전기사가 다른 말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한 차가 심미연 앞에 멈추더니 창문이 열리고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연아, 차에 타.”그 목소리를 들은 심미연은 시선을 들어 박유진의 부드러운 눈빛을 마주했고 잠시 마음속으로 고민하다가 기사에게 말했다.“친구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면 돼요. 먼저 갈게요.”운전기사는 그녀가 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심미연이 차에 앉자 박유진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84화

    “마침 로펌에서 시니어 파트너를 구하는데 할 생각 있어?” 박유진의 말투는 여느 때처럼 부드러웠다.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됐어.”정말로 로펌 파트너 변호사가 된다면 심씨 가문 사람들이 죽이려고 칼을 들고 쫓아올 텐데, 그렇게 위험한 짓은 할 수 없었다.“내가 자리를 비워둘 테니 생각나면 언제든지 와” 박유진은 강요하지 않았다.그저 그녀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데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이었다.“그래.” 심미연은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의 슬픔을 본 박유진은 음악을 틀어놓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익숙한 멜로디를 듣던 심미연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박유진이 잘해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하지만 이미 놓친 사람이라 고개를 돌리지 말고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박유진은 얼굴을 옆으로 돌려 차 유리창에 비친 여자의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자 누군가 무딘 칼로 자기 심장 부위를 하나하나 베는 듯한 고통이 극심했다.그는 3년 전의 결정을 정말 후회하고 있다.그때 고집을 부렸다면 심미연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가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생각을 했고 곧 차는 병원 앞에 멈췄다.박유진은 차를 주차하고 내려 심미연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걸을 수 있어?”심미연은 울고 난 후 살짝 눈이 부었지만 박유진에게 들킬까 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걸을 수 있어. 오빠, 먼저 가. 나 혼자 들어가면 돼.”박유진은 얼굴을 찡그렸다.“몸이 안 좋은데 내가 챙겨주는 게 뭐 어때서? 왜 나를 자꾸 밀어내? 미연아, 우리 이렇게 서먹한 사이 아니잖아.”심미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오빠, 나 혼자서도 괜찮아. 가서 일해.”그녀와 박유진 사이에는 더 이상 접점이 없어야 했다.아니면 강지한이 그 모습을 봤다가 또 성가시게 굴 텐데 자신 때문에 박유진이 강지한의 표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조용히 한숨을 쉰 박유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85화

    사진 속 낯익은 여자가 유난히 부드러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강지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온지유는 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지한 씨, 누가 메시지를 보냈어요? 뭐래요?”방금 메시지를 슬쩍 확인한 그녀는 사진 속 인물을 명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심미연이 다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강지한에게 보여줬다.심미연이 바람을 피웠다면 강지한은 당연히 이혼할 것이다.곧 온지유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두 사람이 하루라도 빨리 이혼할 수 있도록 부추겨야 한다.강지한은 빠르게 사진을 자기 휴대폰에 전송하고 지워버렸다.“스팸이야. 내가 지웠어.”온지유는 당황하다가 이내 그의 말을 알아듣고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아, 그래요. 고마워요.”강지한은 전화기를 다시 건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담배가 당기네. 나가서 피고 올게.”온지유는 전화기를 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다녀와요.”강지한은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온지유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담배를 피우긴, 전화를 걸어 심미연을 욕하려는 거겠지.’그녀는 두 사람이 최대한 많이 다투기를, 차라리 빨리 싸우고 당장이라도 이혼하기를 바랐다.강지한은 병동 밖으로 걸어 나와 육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지한이?”육현성은 온지유와 강지한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온지유가 강지한에게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보여준 것도 몰랐기에 강지한의 전화를 받고 살짝 당황했다.“심미연 어디서 봤어?” 강지한이 곧바로 묻자 육현성은 당황하다가 정신을 차렸다.“지금 큰형수님과 같이 있어?”“네가 찍은 사진 봤어.”“병원 앞에서.”강지한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육현성은 전화기에서 들리는 신호음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무슨 뜻이지?’고민 끝에 그는 황급히 온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현성 오빠, 무슨 일이에요?”“방금 지한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내가 보낸 사진 보여줬어요?”“손이 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86화

    “긴장하지 말고 힘 푸세요. 아니면 검사할 수 없어요.”의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초보 엄마들은 다 그래요. 그래도 배 속의 아기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기는 생각보다 강해서 쉽게 유산되지 않아요.”심미연은 의사의 말에 겨우 안심했다.의사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진찰하고 배를 만지며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이렇게 말했다.“바지 입고 내려오세요. 약 처방해 드릴게요.”그러고는 장갑을 벗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손을 씻고 닦은 다음 책상 앞에 앉았다.심미연은 바지를 입고 침대에서 일어나면서도 여전히 배가 아파서 문지르며 의자에 앉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선생님, 제 아기는 괜찮아요?”그때 문 앞에서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연아,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렸어.”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서서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 온화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박유진을 발견했다.“남편분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들어오시라고 해요.”의사의 눈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심미연에게 말을 건넸다.“저 사람은...”심미연이 막 설명하려던 찰나, 박유진이 다가와 전화기를 건네며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였다.“괜찮아.”의사는 박유진에게 진단서를 건네며 심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부인께서 아직 임신 3개월이 채 안 됐으니까 부부 관계는 절제하시고 도저히 못 참겠으면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해야 해요. 오늘은 작은 출혈이지만 다음엔 유산할 수도 있어요. 임신 초기 3개월은 성관계를 피하는 것이 좋으며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으면 각방을 쓰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3개월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의사로서 정력이 넘치는 젊은 부부를 수없이 만났고 잦은 성관계를 가진다는 걸 알지만 임신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임신했다면 배 속의 아기를 생각해야 했다.의사의 말에 심미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박유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여전히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의사에게 말했다.“네,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87화

    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아뇨.”박유진은 입술을 다물고 심미연을 돌아보다가 결국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강지한이 무서운 게 아니라 괜히 말했다가 강지한이 심미연을 힘들게 할 것 같았다.지금 심미연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마음 아픈데 더 이상 그녀를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선 박유진의 미련 가득한 시선이 심미연에게 향했지만 그대로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박유진이 떠난 후 강지한은 심미연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화가 난 탓인지 그에게선 적대적인 기운이 짙게 풍겼다.심미연은 박유진이 소개해 준 대형 프로젝트에 관해 신하린과 통화 중이었고 어쩔 수 없이 박유진 얘기를 꺼냈다.신하린이 물었다.“이혼하고도 만날 생각은 없는 거야?”다정한 박유진이 강지한보다 몇 배는 나았고 어떤 여자라도 그와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았다.심미연이 미간을 꾹 눌렀다.“나랑 오빠는 안 되는 사이야.”과거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무의식적으로 몸이 떨렸다.몇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두려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신하린은 한숨을 쉬었다.“그렇게 좋은 남자를... 아깝게.”심미연은 피식 웃었다.“오빠는 좋은 사람이지. 하지만 함께하지 않아도 아쉽지는 않아.”강지한도 경성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였지만 그와 이혼해도 미련 하나 남기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항상 과거에 머물 수는 없다.아니면 새 삶을 시작할 수가 없으니까.강지한은 이 말을 듣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익숙한 소리에 심미연은 놀란 듯 고개를 돌렸고 마침 남자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그녀는 흠칫하며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나 일이 있어서 먼저 끊을게.”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고 천천히 돌아서 강지한과 마주한 그녀는 문득 임신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처방전을 등 뒤로 숨겼다.“온지유 보러 간 것 아니야? 왜 여기 있어?”‘일부러 날 찾아온 것 같은데, 온지유가 보내줬다고?’강지한이 피식거렸

  • 다시, 너를 붙잡다   제88화

    그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한 마디를 뱉어냈다.심미연은 처방전을 꺼내 강지한에게 보여주며 조금 전 진료실에서 의사가 당부했던 말을 전하려 했지만 강지한의 말을 듣고 처방전을 가방에 욱여넣고는 고개를 들어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다시 강지한을 바라보는 그녀의 여리고 작은 얼굴에는 완벽한 미소가 지어졌다.“요 며칠 속이 메스껍고 토하고 싶어서 임신한 줄 알고 검사받으러 왔는데 임신이 아니라 위가 안 좋다네. 당분간 약 먹으면 나아질 거래.”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에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미소는 전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강지한은 비웃었다.“위가 안 좋은데 남자가 에스코트까지 해줘?”그는 여전히 박유진의 존재를 신경 쓰고 있었다.심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질투해?”물론 강지한이 질투할 리가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를 역겹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그럴 리가!” 강지한은 차가운 얼굴로 돌아서서 걸어갔고 심미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심호흡했다.강지한이 억지로 처방전을 꺼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숨길 수 없었을 테니까.생각해 보니 강지한은 온지유의 기분이 좋은지, 배 속의 아이가 괜찮은지 신경 쓰느라 그녀가 어디 아픈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이로 인해 그녀는 임신 사실을 그에게 말하려는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손을 뻗어 배를 문지르며 속삭였다.“아가, 미안해.”결혼한 3년 동안 그녀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돌아온 건 이혼이었다. 고통스럽지 않은 게 아니라 고통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다음에는 그녀를 사랑하고 가슴에 품어주는 남자를 만나겠지.강지한은 엘리베이터에 들어섰을 때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심미연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어지면서 그녀를 부르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닫힘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터에 몸을 기댄 강지한의 머릿속에는 박유진을 바라보는 심미연의 눈빛에 담긴 그리움만 떠올랐다.왠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89화

    “네, 대표님.” 성무진은 정중하게 말했다.“온지유 교통사고 조사 결과 나왔어?” 강지한이 깊은 목소리로 물었다.카트를 밀고 지나가던 간호사가 그를 흘깃 쳐다봤다. 어머나! 너무 잘생긴 남자다!“경찰이 아직 조사 중입니다.”“지금 당장 사람 보내 알아보고 30분 안에 전화해.”“대표님께선 온지유 씨의 교통사고가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강지한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답게 강지한의 한 마디로 그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사람 보내서 알아보는 거야. 결과는 몰라.”당연히 강지한은 문 앞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성무진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한 거다.육현성이 진실을 알아내려고 하니 그보다 먼저 알아내서 심미연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그 생각이 들자 순간 멈칫했다.심미연이 했든 안 했든 그와 무슨 상관이지?“그러면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 보죠.” 성무진은 마음속으로 막연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빨리 움직여!” 그는 육현성보다 먼저 결과를 알아내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성무진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강지한은 닫힌 병동 문을 힐끗 쳐다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1층 약국에서 약을 받기 위해 줄을 서던 심미연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강지한의 모습을 보고는 그에게 들킬까 봐 황급히 고개를 낮춰 자신의 존재를 감췄다.강지한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심미연은 멀리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미연 씨, 약 받아 가세요.”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며 약을 받기 위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약국 의사는 포장지 상단에 적힌 대로 복용하라는 말 한마디를 건넸고 심미연은 알았다고 대답한 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약을 챙겨 자리를 떴다.병원 정문을 나오던 그녀는 아까 자신을 병원까지 데려다준 사람이 박유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급히 휴대폰을 꺼내 택시를 불렀다.강지한은 차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 다시, 너를 붙잡다   제90화

    “푹 쉬어.”그렇게 말한 뒤 강지한은 전화를 끊었다.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서류를 집어 들고 살펴보기 시작했다.하지만 반나절이 지나도록 서류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온지유의 병실 밖에서 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문 두드리는 소리가 그의 생각을 방해했고 그는 손에 든 문서를 내려다보며 외쳤다.“들어와.”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대표님.”강지한은 그를 올려다봤다.“트럭 운전기사가 누가 시켜서 한 짓이랍니다.”성무진은 이쯤에서 감히 더 이상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가 아는 사모님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상대는 그녀가 시켰다고 주장하며 계좌 이체 기록까지 제시했다.확실한 증거에 사모님의 억울함을 풀려면 도움을 받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강지한은 성무진의 표정을 보고 바로 알아챘다.심미연이다!심미연은 택시를 타고 로펌으로 돌아오던 중 경찰서에서 살인 교사 혐의로 수사에 협조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경찰서 사람들과 꽤 친분이 있던 그녀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경찰서 측에서 조용히 사실을 알려주고는 그녀에게 반드시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굴며 와서 수사에 협조하라고 했다.심미연은 의자에 앉을 틈도 없이 서둘러 다시 자리를 떠났다.그녀가 사라지자 백현지는 곧바로 임현에게 달려가 소식을 알렸다.“임현 씨, 아까 미연 씨 무슨 전화 받았어요? 표정이 살벌하던데.”흥미로운 표정이었다.임현은 서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궁금하면 직접 물어봐요. 나도 모르는데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알아요.”알아도 알려줄 리가 없었다.심미연 일인데 왜 뒤에서 함부로 떠들겠나.“이제 리우에 새로운 대표님이 오시고 팀장도 낙하산으로 들어와서 사사건건 심미연 씨를 압박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지는 모르죠. 비서로서 빨리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겠어요? 왜 계속 미연 씨만 싸고돌아요?”백현지는 경멸에 찬 말투와 표정을 보였다.임현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웃었다.“그렇게 멀리 내다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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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5화

    [한 잠 자고 일어났을 때 위치 정보가 사라진 걸 알게 되었어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도저히 위치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동생분의 핸드폰에 접근해 통화 기록을 확인했죠.][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강씨 사모님이었어요.] 심미연은 눈을 반쯤 감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심서연은 무슨 일로 문소영을 찾았을까?’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친한 관계였나?’[보스, 지금 심서연 씨가 소식이 끊긴 상태인데 계속 추적할까요?] [네. 추적하세요.] 심미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느꼈다. ‘심서연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찾아서 추적하겠습니다. 그럼 신하린 씨 교통사고는 어떻게 할까요?] [제가 일이 끝나면 그 사람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진짜 신원을 정확히 파악해볼게요.] [네. 알겠습니다.]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 섰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때 병실 안에서 심태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빨리 와요!” 심미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급히 생각을 정리한 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엄마, 빨리 와서 이모 다리 어디 갔는지 찾아봐요.” 심태하가 그녀를 보고 급하게 달려왔다.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들어 심미연을 애타게 바라봤다. 심미연은 허리를 굽혀 그를 부드럽게 안아 올리며 심태하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조용히 말했다. “이모는 사고로 다리를 잃었어. 이제 의족으로 대신해야 해. 그러니까 이모 앞에서 다리가 없다고 말하면 안 돼.”심태하는 눈가가 갑자기 붉어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이모는 다리를 잃었어. 이모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서 이모가 요즘 그렇게 기운도 없고 얼굴이 안 좋았던 거구나.’ ‘다리를 잃은 거였어.’어린 아이는 마음이 먹먹하고 아픈 감정이 밀려왔다. “태하가 불어주면 이모가 안 아플 거야.” 신하린은 웃으며 말했다. 마음속에 슬픔이 밀려왔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4화

    간병인은 이미 출근해 신하린의 손을 조심스럽게 닦고 있었다. 심태하는 병실 문을 열자마자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모, 나 왔어요!”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치며 병상으로 달려가자 신하린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간병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침 준비해 주세요.” 간병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심태하는 침대 곁으로 뛰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신하린을 바라봤다. “이모, 저 보고 싶었어요?”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에 신하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엄청엄청 보고 싶었지.” 심태하는 까치발을 들고 침대에 올라가려고 애썼지만 키가 닿지 않자 포기하고 조그만 얼굴을 숙여 신하린의 손등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저도 엄청 보고 싶었어요.”심미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시리게 아려왔다. 손에 든 죽을 옆의 서랍장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혹여 자신의 감정이 신하린에게 전해질까 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침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심미연은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서둘러 말했다. “전화 좀 받고 올게.” 짧은 말만 남긴 채 병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신하린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에 담긴 쓸쓸함이 선명하게 느껴져 마음 한쪽이 시큰해졌다.지금 심미연이 자신을 보고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신하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미연이 조금이라도 덜 걱정하도록 신하린은 아픈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치료에 임했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서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그래야 심미연이 더는 자신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을 테니까.심미연은 병실을 나온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보스, 신하린 씨 사고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심미연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누구예요?] [한유나 씨 아버지입니다.]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그날 밤 경비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3화

    심미연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박유진과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박유진은 심미연이 멍하니 있는 걸 보며 잠시 마음이 조금 씁쓸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말을 이어갔다. “농담이야. 결혼 강요하려던 건 아니었어. 이렇게 하자. 오후에 시간이 되면 같이 보러 가자. 마음에 들면 내일 바로 이사도 가능해. 어때?”그는 심미연의 마음속에 강지한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건 심미연이 그와 함께 평생을 살아갈 만큼 감정이 깊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심미연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오빠...” 심미연은 박유진이 억지로 웃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 모습에 마음속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박유진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지금은 오빠한테 결혼을 약속할 수 없어.” 그녀는 아직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박유진을 평생 고통 속에 두고 싶지 않았다. “알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돼.” 박유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다. “내가 너무 서둘렀어.”심미연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고 말하며 그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진성에 있을 때였다면 이렇게 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경성에 돌아온 후 강지한이 언제든지 심미연과 심태하를 빼앗아 갈 것만 같아 점점 더 초조해졌다.“나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 받을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확신시키려 애썼다. 매번 의사 말을 순순히 따르며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심미연은 이제 더 이상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2화

    어린 아이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심미연은 세수를 하고 간단히 준비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박유진은 이미 아침을 준비해 놓고 거실을 정리하고 있었다.“일찍 일어났네? 조금 더 자.” 박유진은 청소기를 끄고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할 일이 많아서 더 이상 못 자. 정신없이 바쁠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먼저 아침 먹어. 나는 위층 가서 태하 깨울게.” 박유진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알겠어. 오빠가 태하 깨워줘.” 심미연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살짝 비벼댔다.박유진과 함께하는 시간은 평온하고 따뜻했다. 그저 이런 일상이 이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아침 먹어. 난 위층 가서 좀 보고 올게.” 박유진은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으며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심미연은 그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걸 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식탁으로 향했다. 박유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깊은 숨을 내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심미연의 방에 들어서자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심태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박유진의 마음은 저절로 따뜻해졌다. 심미연과 심태하를 돌보는 건 그에게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다.심미연은 식탁에 앉아 보온병을 열었다. 따뜻한 우유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가 퍼졌다. 빵은 부드럽고 입 안에서 살살 녹으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박유진은 예전엔 찐빵이나 만두 같은 것만 만들 줄 알았고 빵과 케이크는 나중에 배우게 된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녀와 심태하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심미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심미연은 복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아침을 마치고 거실로 나가자 박유진이 심태하를 안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1화

    신하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스친 냉소는 차갑고 깊었다. ‘내가 멀쩡할 때는 단 한 번도 결혼 얘기 안 하더니. 이제 다리 하나 못 쓰게 되니까 그제야 날 데려가겠다고?’ ‘날 데려가서 네 부모한테 실컷 조롱당하게 하려고?’“왜 그렇게 봐?” 이진영은 신하린의 시선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숨을 삼키듯 숨을 들이마신 뒤에야 겨우 물었다. 신하린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이진영 씨, 난 예전에도 당신과 만나겠다고 한 적 없어요. 앞으로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고요.” “당신과 결혼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예요.”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내뱉는 말들이 조금의 여지도 없이 이진영을 꿰뚫었다.이진영은 허리를 숙여 수건을 적셨다. 꾹 짜낸 뒤 조용히 걸음을 옮겨 신하린 앞에 섰다. 수건을 조심스럽게 들어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널 데려가겠다고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갈 거야.” “예전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너한테 약속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모든 일 정리되는 대로 너랑 결혼할 거야.” “한 말은 반드시 지킬 거야.”지난 4년 동안 이진영은 많은 일을 해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만들어낸 적도 많았다. 그의 곁에 신하린이 있으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고싶어도, 미칠 듯 그리워도 끝내 연락하지 않았다. “전 안 해요. 절대 당신이랑 결혼 안 해요.”“이진영 씨, 당장 나가세요.” 그날 갑자기 나타난 그 여자...억지로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듯이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쏟아졌다. 그녀가 견뎌온 모든 고통은 전부 이진영 때문이었다. 이진영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낸 뒤 손까지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네가 기분 안 좋다는 거 알아. 그럼 나 한 대 쳐서라도 기분 풀래?” 신하린은 그 손을 냉정하게 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0화

    강지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얼굴의 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심미연은 분명 병실에 와서 강상미를 만났지만 의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말 독한 여자야.’“시간도 늦었고 나도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먼저 간다.” 이진영은 담배를 끄고 일어나 곧장 밖으로 나갔다. 강지한은 술을 따라 마시며 심미연에 관한 생각에 잠겼다. ‘심미연은 언제 의술을 배운 거지?’ ‘이 3년 동안 이 여자는 도대체 뭘 했던 걸까?’이진영이 차에 올라타자 기사가 물었다. “도련님,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이진영은 미간을 문지르며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순간 마음 속이 답답해졌다. “병원으로 가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엔진을 돌렸다.신하린의 병실 앞에 도착한 이진영은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 이진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들어가서 잠깐 보고 올게요.” “신 대표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심미연 대표님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결론은 한 마디였다. 그들은 명령을 따랐기에 규칙을 어길 수 없었다.이진영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여기는 내 병원인데 병실도 맘대로 들어가지 못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돌아가 주세요.” 경호원이 좋은 말로 타일렀다. 하지만 그때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이진영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급하게 말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어요. 들어가게 해줘요.” 경호원은 그를 막으려 했지만 그때 또 한 번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경호원도 놀라서 급하게 병실 문을 열었다.이진영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하린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조명 아래서 그 모습은 다소 섬뜩하게 보였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다가가 신하린을 침대에 눕히고 몸에 상처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면서 옆에 멍하니 서 있던 경호원에게는 급히 소치쳤다. “의사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39화

    “너희 아버지가 최근에 한석훈과 많이 가까워졌다고 들었어. 내가 알기로 한석훈과의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더라.” 강지한은 박시훈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이진영에게 전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 사실 지난 4년 동안 그는 한석훈의 배후 세력을 조사해왔고 조사할수록 그 배후는 점점 더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너와 한유나 씨 사이의 일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야?” 이진영은 조용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혼약을 해제할 생각이야.” 그는 이미 한유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한유나는 최근 들어 그를 피하는 듯했다. 그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구아정은 어떻게 할 거야?” 강지한이 다시 물었다. “네 첫사랑이라고 했지?”“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고 그 뒤로 그냥 끝났어.” 이진영은 무의식적으로 신하린의 얼굴을 떠올렸다.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지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신하린이었다.이제 그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느꼈다. 그녀의 다리가 이렇게 된 지금 그녀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녀를 돌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구아정, 그 여자에 대해 조사해본 적 있어?” 강지한이 상기시키듯 말했다.“조사 중이야.” 이진영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겠어.”구아정은 분명 그를 찾으러 온 거였다.‘왜일까?’“신하린 씨의 일은 잘 해결됐나?” 강지한은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었다.“하린이 오른쪽 다리가 절단됐어.” 이진영은 말하면서도 짜증이 치밀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흡입했다. 연기가 흩어질 때 그는 다시 한 번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 강지한은 잠시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38화

    문소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살려주지 않으면 우리가 두 명의 아들을 뒀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 거야. 그럼 당신도 명예를 잃고 끝장날 거라고.” 그녀는 지금 이 남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가 두 아들을 뒀다고? 증거 없이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남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하며 눈빛은 강렬하게 빛났다. “당시 내 임신 검진서도 여전히 남아 있고 병원에 가면 내 출산 기록도 확인할 수 있어. 그 아이들의 혈액형은 당신이랑 똑같아.” 문소영은 그동안 이 모든 것을 철저히 보관해 왔다.“문소영, 나를 망치려고 하는 거야?” 남자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나는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래.” 문소영은 감정을 정리한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나에게 유리해.” “내가 원칙을 깨고 너를 돕기를 바란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남자는 술잔을 비운 후 탁자 위에 쿵 하고 내려놓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소영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며 부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에게 경고만 준 것뿐이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한 대로였다.잠시 후 문소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모님, 지시하신 대로 사람을 공해에 던졌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해외로 잠시 숨어 있어. 여기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기다려.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된다.] 문소영의 얼굴엔 차가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들이 돌아올 때쯤 심서연의 죽음은 이미 잠잠해지고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문소영은 전화를 끊고 술을 따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진영은 술을 많이 마셨고 잠간 밖으로 나왔다. 그때 한 남자의 뒷모습이 아버지를 닮은 듯해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멈칫하며 발걸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37화

    문소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말없이 있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TV 뉴스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미칠 듯했다. 문소영은 자신이 더 이상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믿어왔다. 남자는 그녀의 침묵을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문소영은 깊은 생각을 떨쳐내고 몸을 곧게 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필요해서 왔어. 우리 아들에 관한 일이야.”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우리가 아들이 있다고? 그럴 리가...” “쌍둥이였어. 작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납치됐고 큰 아이는 강지성. 몇 년 전에 사고로 죽었어.” 문소영은 눈물을 훔치며 말을 급히 이어갔다.이건 그녀가 삼십 년 넘게 숨겨온 비밀이었다. 그녀는 이 생에서 절대 말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 이렇게 쉽게 입 밖으로 내뱉게 되었다. 문소영의 말은 마치 폭탄처럼 남자의 가슴 속에 떨어졌고 남자는 동공이 급격히 축소되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문소영과 자신이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사실 처음 내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당신에게 말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에서 강제로 나를 강우석과 결혼시키려 했고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어. 그러자 부모님은 나를 감금하고 내 핸드폰도 압수했어.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어.” 문소영은 말하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로 강씨 가문에 보내졌었다. 강우석과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석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강우석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그 상대가 바로 강지한의 어머니였다. 7개월 후 그녀는 쌍둥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그 중 한 명이 사라졌다. 그녀는 30년 동안 그 아이를 훔쳐간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그 사람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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