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심미연은 발걸음을 멈췄다.“안녕하세요, 누구를 찾으시나요?”“그쪽 대표님 만나러 왔는데요.” 심미연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약속 잡으셨나요?”프런트 직원은 그녀를 들러붙으려는 다른 여자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고 말투가 차가워지며 다소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이 말을 들은 심미연은 오늘 강지한에게 직접 전화를 걸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여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 강지한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처음 걸었을 때 전화가 끊기자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또 끊어버렸다.심미연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콧방귀를 뀌며 성무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성무진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안녕하세요!”“저 지금 회사 1층 로비에 있는데 데리러 와요.”그리고는 성무진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위층에서 성무진은 전화를 받은 후 사무실로 달려가 보고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아래층에 있는데 제가 모시러 갈까요?”강지한은 미간을 문지르며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올라오라고 해!”아래층에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전화한 건가?감히 회사까지 찾아오다니, 분명 온지유 교통사고 때문일 거다.‘참 대담해, 그런 짓을 하고도 감히 찾아왔다니!’성무진은 곧바로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미연이 위층으로 올라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살기 가득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성무진은 심장이 철렁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사모님은 대체 뭐 하려는 걸까?’“성 비서님 나가 있으세요. 그쪽 대표님과 할 얘기가 있어요.”심미연은 이 일이 자신과 강지한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고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성무진은 강지한에게 의견을 구하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가서 물 한 잔 가져와.” 강지한이 명령하자 성무진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그는 곧 물 한 잔을 따라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서둘러 다시 자리를 떴다.심미연이 강지한
심미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컵에 담긴 물을 강지한의 얼굴에 뿌렸다.“당신이랑 그래도 3년 동안 부부로서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잤으니까 여기 오기 전에는 내가 어떤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도 당신이 내 결백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네. 이번 일 사실대로 밝히고 싶으면 뒤에서 수작 부리지 마. 내가 꼭 진실을 밝혀줄 테니까.”지금 강지한을 찾으러 여기 올 게 아니라 바로 병원으로 가서 온지유를 한바탕 두들겨 팼어야 했다.강지한은 손을 뻗어 얼굴에 묻은 물을 닦아내고는 검은 눈동자로 심미연을 바라보며 비웃었다.“그렇게 자신 있는데 왜 나한테 와서 큰소리야?”이 여자가 무슨 배짱으로 그에게 물을 뿌리는 걸까.그와 시선을 마주한 심미연은 진작 마음이 산산조각 났다.이번에야말로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이 일이 밝혀지면 그와 온지유의 소원대로 반드시 강지한과 이혼할 거다.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갑자기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며 정적을 깨뜨렸고 강지한이 휴대전화를 꺼내자 심미연은 화면에 뜬 온지유 이름에 입꼬리가 피식 올라갔다.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심미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오붓하게 통화해.’강지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잃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불렀다.“심미연!”심미연의 발걸음이 살짝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사람 시켜서 교통사고에 대해 조사할 거야.”그가 당황했다.심미연에게 뭘 해명할 생각도 없었고 그녀가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는 것은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 다 큰 성인인데 그녀의 감정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으니까.하지만 이번엔 심미연의 감정이 조금 신경 쓰였다.“전화 받고 얘기해.”3년 동안 심미연은 한가지 규칙을 발견했다. 강지한과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풀릴 기세가 보이면 온지유는 전화를 걸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둥, 몸이 안 좋다는 둥 온갖 핑계를 댔고 강지한은 매번 철석같이 믿으며 심미연을 혼자 버려둔 채 온지유에게 달려갔다
강지한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덤덤하게 말했다.“그래.”“그러면 미연 씨가 사과를 하면 내가 직접 경찰서에 가서 고소를 취하하는 게 어떨까요, 지한 씨?”달래는 듯한 말투였다.“지한 씨...”머뭇거리는 온지유가 난감한 듯 보였다.“할 말 있어?” 강지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심미연은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셔츠가 젖어 가슴에 꽉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절제되고 섹시했다.심미연은 수년 전 강지한을 처음 봤을 때 믿기지 않는 그의 얼굴에 반해 바로 넘어갔던 걸 떠올렸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자신이 참 한심했다.온지유는 망설이다가 말했다.“미연 씨가 내 번호를 차단해서 연락이 안 돼요.”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데려갈게.”“지한 씨, 미연 씨가 원하지 않으면요?”온지유가 다시 물었다.“잘못했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지. 됐어,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몸조리나 잘해.”“지한 씨, 미연 씨가 원하지 않으면 너무 강요하지 마요.”“내가 이따가 데려갈게”이 말을 들은 온지유는 뜻대로 흘러가자 순순히 강지한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강지한의 이 말을 들은 심미연은 마음속으로 막연한 안 좋은 기분이 들었다.온지유가 무슨 말을 했을까.“심미연, 지금 나랑 같이 병원으로 가.”강지한은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심미연을 향해 걸어가며 강압적인 어투로 말했다.심미연은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소리야?”온지유가 또 무슨 짓을!강지한이 말했다.“네가 사람을 시켜서 지유를 차로 쳤잖아. 다행히 지유는 다른 데는 괜찮은데 손만 부러졌고 뱃속 아기도 멀쩡해. 나랑 같이 병원에 가서 지유에게 사과하면 지유가 바로 고소 취하할 거야.”이 말을 들은 심미연은 경악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 여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꾸민 일인데 내가 그런 거라고 모함하고 나한테 사과까지 하라는 거잖아. 어떻게 그런 허술한 연기에 속아?”이노하이브를 인수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이노하이브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어쨌든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든 증거가 심미연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배후는 그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온지유가 고소하면 심미연은 법의 심판을 받는다.이제 온지유에게 사과만 하면 될 일인데 뭐가 문제일까.심미연은 이를 악물고 분명하게 말했다.“강지한, 나한테 계속 이렇게 상처를 주면 언젠가 내가 당신한테 너무 상처받아서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강지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떠날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떠났어야지! 3년이나 기다릴 게 아니라!” 그의 말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심미연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강지한의 말이 맞다. 그녀는 떠나지 못한다.그에게 계속해서 상처받으면서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곁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전에는 그것이 깊은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자신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강지한의 눈에 그녀의 사랑은 아무 가치도 없었다.“내가 말 바꿀까 봐 걱정되면 지금 당장 사람 시켜서 약 보내줄게. 할머니가 약 받고 사과하러 가도 돼.”강지한은 이미 자신이 많이 양보했으니 심미연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그녀가 멍청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면 지금 전화해. 난 약을 먼저 받아야겠어.”강지한이 이렇게 말하니 심미연은 아무리 억울해도 삭힐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몸이 더 중요했기에 할머니가 고통받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불효였다!강지한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고 심미연은 전화를 거는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아팠지만 동시에 남몰래 결심했다.통화를 마친 강지한은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약 곧 올 테니까 앉아서 기다려.”심미연은 그가 뻗은 손을 피해 한 발짝 물러서서 말했다.“할머니 주치의한테 특효약에 대해 말하고 올게.”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강지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냥 온지유에게 사과하는 건데, 무릎 꿇으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대체 뭐가
“미연 씨, 날 싫어하는 건 알지만 난 진심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내가 무슨 짓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온지유의 진지한 말투에 심미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래요, 그러면 지금 강지한 사무실로 와요. 셋이 함께 얘기하죠.”단지 수작을 부리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던 거다. 아니면 온지유가 지금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 오를 수나 있었겠나.“지한 씨한테 갔다고요? 왜 지한 씨를 찾아갔어요?”온지유가 한층 언성을 높이며 다급하게 말했다.“당연히 내 남편과 부부 사이 친밀한 일을 하려는 거죠. 왜 그렇게 불안해해요?”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온지유가 전화를 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 아니었다.절대 사적으로 그녀와 만나지 않을 거다.전화를 끊은 그녀는 세수하고 손을 닦은 후 화장실을 나섰다.사무실 문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순간 강지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냥 육체적 욕구 해결하려고 자는 거예요. 밖에서 만난 여자들보다 깨끗하니까. 그 여자가 이혼을 원하면 어떡하냐고요? 허, 절대 안 되죠. 3년 동안 내가 심전그룹에 얼마나 투자했고 그 여자한테 얼마를 썼는데 이혼하면 내 돈도, 청춘도 다 버리는 거잖아요. 게다가 난 아직 질리지 않았어요. 충분히 갖고 놀다가 질리면 회사 법무팀 통해 소송해서 한 푼도 안 주고 내보낼 거예요.”여기까지 들은 심미연은 더 이상 듣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황급히 엘리베이터 입구로 걸어갔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왔고 그 남자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알고 보니...강지한은 단지 육체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다.그녀가 밖에 있는 여자들보다 깨끗해서!그리고 아직 충분히 갖고 놀지 못해서 이혼하지 않는 것이고 지겨워지면 그때 소송해서 빈털터리로 쫓아낼 생각이었다.영리한 사업가인 강지한은 그녀를 내쫓기 전에 마지막 남은 가치까지 쥐어짜 내려 했다.그런 남자를 9년이나 사랑했다니.참 우스웠다.그 시각 사무실에서 강지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강지한은 고개를 들어 그의 뒤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심미연은?”성무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여자 화장실에 사람 시켜서 찾아봤는데 아무도 없어요!”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지한의 얼굴은 곧바로 굳어졌다.“전화해서 당장 여기로 오라고 해! 안 그러면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성무진은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심미연 대신 식은땀을 흘렸다.도대체 사모님이 무슨 짓을 했길래 대표님이 저렇게 화가 난 걸까.강지한은 극도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빨리 전화해!”강지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재촉했다.그 시각 심미연은 회사 밑 정원에서 통화 중이었다.할머니의 주치의는 누군가 특효약을 일주일 치 보내왔다며 방금 할머니에게 투여해서 상태가 좋아졌다는 말을 전했다.의사의 말을 들은 심미연은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솟구쳤다.“이따가 할머니 뵈러 갈게요,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저한테 감사할 게 아니라 약을 전해준 분께 감사해야죠!” 의사가 겸손하게 말하자 심미연은 의사가 말하는 ‘약을 전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당연히 알았다.하지만 의사는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다.할머니의 상태에 대해 한참을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심미연은 의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강지한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성무진의 연락이 와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성 비서님, 무슨 일이세요?”사실 성무진이 왜 전화를 했는지 마음속으로는 알았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사모님, 길 잃으셨나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성무진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직접 묻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나 아래층 정원에 있으니까 오세요.”마음속으로는 강지한이 미웠지만 강지한의 뜻을 거스르는 순간 할머니가 쓰던 특효약은 순식간에 모두 회수될 것이기에 할머니가 더 이상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강지한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알겠습니다.”성무진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려 심미연의 말을 강지한에게 전달했다.강지한은 얼굴을 찡그
심미연은 그를 돌아보며 덤덤하게 물었다.“왜요?”예전에는 강지한을 사랑해서 24시간 내내 그의 곁에 붙어 있기를 바랐던 그녀였지만 조금 전 강지한의 그런 말을 듣고도 어떻게 그의 곁에 있겠나.최대한 멀어지는 게 좋았다.성무진은 그녀의 질문에 당황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강지한이 화가 났다고 말해야 하나.“그쪽 대표님은 안 바쁘대요? 왜 차에 안 타요? 아니면, 우리가 먼저 갈까요?”심미연이 덤덤하게 말했다.“나 일이 있어서 서둘러야 해요.”할머니에게 일주일 치 약이 있으니 일주일은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다.그것만으로도 기꺼이 온지유에게 사과할 수 있었다.게다가 온지유가 그녀를 해친 것에 대해서 나중에 진실을 밝히고 되돌려주면 그만이다.아무리 늦어도 복수를 하기만 하면 되니까.성무진은 두려움에 차 밖을 내다봤다.다행히 강지한은 못 들은 것 같았다. 아니면 심미연이 또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당연히 강지한은 심미연의 말을 듣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지 않을 수 없었다.그의 비서에게 그를 놔두고 가자고 하다니, 참 대단한 여자다.허리를 굽혀 차에 앉으려던 그는 심미연을 차갑게 노려보았다.“뒤에 앉아, 물어볼 게 있어!”심미연은 짜증을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이미 사과하라고 했는데 대체 왜 화를 내는 건지.’“심미연, 다시 한번 말할게. 뒤에 와서 앉아.”강지한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심미연은 심호흡을 하고 필사적으로 마음속에 치미는 분노를 삭였다.“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봐, 다 들리니까!”그녀는 이제 그에게 거부감을 느꼈다.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성 비서, 전화해서 약 다시 가져오라고 해.”강지한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목소리가 싸늘했다.심미연은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강지한은 정말 나쁜 놈이다!성무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심미연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모님, 뒤에 앉으시죠.” 한순간 홧김에 힘들게 얻은 약을 잃을 수는 없었다.심미연의 작은 얼굴이 창백해지
온지유가 사고를 당한 건 그녀가 시킨 일이고, 할아버지가 화를 내며 온지유를 해외로 보내려는 것도 그녀가 일러바친 거다?한마디로 온지유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다 그녀가 했다는 뜻이다.강지한의 마음은 참 변함없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강지한이 화가 난 듯 낮게 으르렁거렸다.“심미연, 제대로 설명해.”심미연은 화를 억누르며 작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강지한, 내가 할아버지한테 전화하지 않았다고 해도 믿지 않을 거면서 무슨 설명을 하라는 거야?”온지유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자 강지한은 머리가 없는 사람처럼 정상적인 생각이 불가능한 듯 보였다.성무진은 황급히 차 칸막이를 올리고 시동을 걸었다.그 역시 강지한이 심미연을 대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강지한을 설득할 수도, 심미연을 도울 수도 없었다.가끔은 정말 심미연이 안쓰러웠다.강지한은 이미 온지유 일 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심미연이 이런 식으로 대꾸하자 순식간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심미연의 목을 움켜잡더니 험악하게 말했다.“오늘 온지유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너도 죽어.”목이 잡힌 심미연은 숨쉬기가 힘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눈동자를 크게 뜨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강지한,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지난 3년 동안 나에게 계속 상처를 줬어! 나도 인간이야, 강철이 아니라 피와 살로 만들어진 인간이라 아프고 괴롭다고! 강지한, 이혼하자는 말 진심이야. 내가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진심이고.”그녀는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에 유난히 힘을 주며 말했다.한때는 그와 평생을 함께 할 거라는 환상을 가졌다.그러다 이 결혼 생활에서 아무리 진심을 다 바쳐도 강지한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과거엔 사랑하지 않아도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려 했는데 이제야 자존심도 버린 사랑은 상대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뚝뚝 맑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찢어지는
신하린의 눈빛은 마치 두 개의 날카로운 얼음 조각처럼 조금의 온도도 없이 이진영의 깊은 눈동자를 찔렀다. 그 눈빛에는 의외와 분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가 가득했다.“무슨 일이 있어요?”그녀의 말은 나지막하고 힘차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이 사이로 비집고 나온 듯 거부할 수 없는 무거움을 띠고 있었다.이진영은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녀가 이 한마디를 뱉는 순간 그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암울하게 변했고 마음속에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그는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내디디며 꿈에도 그리지만 아득히 먼 이 그림자에 접근하려 했지만 신하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담함과 거부감은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그를 격리했다.“괜찮으시다면 먼저 나가서 기다렸다가 나중에 들어오세요!”그녀가 계속 말했다. 말투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확고함과 결단만이 있었다.그녀의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는데 핏줄이 하얀 손등에 내비쳐 그녀의 마음속 거친 정서를 드러냈다.이 순간, 그녀는 더는 그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니라 복수의 사신으로 변신하여, 죽은 절친을 위해 따지려는 듯했다.이진영의 마음이 아프게 조여왔다. 그는 신하린의 증오로 가득 찬 두 눈을 바라보며 전례 없는 무력함과 고통을 느꼈다.그는 앞으로 나가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위로해주고 싶고그녀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신하린의 눈빛은 너무 차가웠다.두 사람은 이렇게 대치하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긴장과 억압이 가득 차 있어 마치 시간조차 이 순간에 정체된 것 같았다.“왜 아직도 안 가?”신하린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느껴졌다. 그녀는 더는 이 남자와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는 복수의 불길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이진영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충격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왕 만났으니 우리 얘기 좀 할까?”신하린은 가슴이 아파지는 걸 느끼며 입을 벌리고 그를 불렀다.“진영 씨.”그녀의
짝! 짝!맑은 따귀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서 터져 마치 여름에 갑자기 닥친 천둥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신하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머금은 두 눈엔 억울함과 한이 반짝이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흐느낌을 참으며 마치 모든 억울함과 고통을 이 간단한 동작을 통해 털어놓으려는 것 같았다.강지한은 눈앞에 별이 보이도록 얻어맞았지만 그 따가운 통증이 뺨에 번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려 했다. 머릿속에는 꽃처럼 예쁘게 웃고 있는 심미연의 모습이 떠올랐고 심미연의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함께 보낸 따스한 시간이 조수처럼 밀려와 그를 파묻었다.“만약 심미연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낮고 잠긴 목소리에는 끝없는 슬픔과 후회를 품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많은 장애물을 뚫을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멀어졌지만 영원히 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 모습을 보았다.그런 그의 모습에도 신하린의 마음속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용솟음쳤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서 두 손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확고했다.“강지한 씨, 무슨 자격으로 미연이를 언급해요? 강지한 씨가 뱉는 모든 글자가 미연이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에요!”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그 순간 더 격렬한 충돌이 일어날 것처럼 극도로 팽팽해졌다.그러나 바로 이 긴장된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강지한이 갑자기 웃었다. 그것은 일종의 씁쓸하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그래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미연이를 죽였어요.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반드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신하린은 모든 슬픔을 삼킨 것 같은 강지한의 얼굴을 보고 입가에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 속에는 풍자와 경멸이 숨어 있었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졸렬한 연기를 비웃는 것 같았다.“허, 정말 가소롭네
성무진은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뻗어 신하린을 붙잡았다.“신하린 씨,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신하린은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성무진의 손을 한입 물었다.“놔요!”성무진이 아파서 손을 놓자 신하린은 또 강지한을 덮쳤다.순간 강지한이 갑자기 그녀를 노려보았다.그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신하린은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신하린 씨, 지금 하린 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일은 우리 강 대표님과 무관해요.”성무진은 황급히 입을 열어 강지한을 대신해서 설명했다.신하린은 몸을 곧게 펴고 머리카락이 국에 젖은 강지한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강지한 씨가 온지유를 밑도 끝도 없는 포용하지 않았다면 온지유가 어떻게 감히 미연이 앞에서 그렇게 날뛰고 방자할 수 있겠어요? 강지한 씨가 미연이를 믿지 않은 게 아니었다면 미연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억울함을 당할 수 있었을까요!”“강지한 씨, 그거 알아요? 미연이는 강지한 씨를 꼬박 10년 동안 사랑했어요!”심미연은 26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러니 계산해 보면 심미연은 정말 강지한을 10년 동안 사랑했다.결국 그녀는 10년 동안 자신을 다른 세계로 보내버렸는데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강지한의 차가운 표정이 마침내 흔들렸다.심미연이 그를 10년 동안 사랑했다니, 이것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성무진도 놀란 표정이었다.강 대표님의 부인이 강 대표님을 10년 동안 사랑했다니.10년이란 시간은 참 긴 세월인데 말이다.“강지한 씨, 나도 알아봤어요. 온지유가 안에서 맛있는 걸 먹으며 잘 지낸다는데 이렇게 하면 미연이게게 미안하지 않아요?”신하린은 화가 난 나머지 눈물이 흘러 내렸다.그 악독한 여자가 미연이와 외할머니를 죽였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빌어먹을!강지한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그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기에 온지유의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성무진은 그제야 반응하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그는 온지유를 잘 모시라고 당부했었다.설마...그들이
임혜자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말했다.“성 비서님께서 아까 사모님 유품을 가져왔더라고요. 그리고 둘째 도련님께서는 지금 응급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임혜자는 강지한이 너무 걱정되었고 혹시나 그에게 일이 생기면 아무것도 모르는 강준형이 그들을 탓하지는 않을지도 걱정되었다.“네...”강준형을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순간 본가 쪽도 아수라장이 되어 집사들은 그를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의사와 간호사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강준형은 깨어날 수 있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김준혁은 그가 깨어난 모습을 보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어르신,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강준형은 겨우 침상에서 일어나 앉더니 온 힘을 다해 집사에게 말했다.“지금 당장 성 비서한테 전화해서 그 팔찌를... 가져오라고 해.”성무진도 마침 병원에 있었기에 빠르게 그의 병실로 오게 되었고 오자마자 주머니에서 그 팔찌를 그에게 넘겨줬는데 조명 아래 비치니 더욱 반짝거리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했다.강준형은 떨리는 손으로 팔찌를 건네받고 만져보다가 익숙한 촉감에 결국에는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문득 심미연의 해맑은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녀의 것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강준형은 마음이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팔찌를 움켜쥐고 몸을 잘게 떨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칼로 찌르기라도 한 듯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순간 그는 마치 온 세상을 잃은 듯 끝없는 공허함과 절망에 빠져버렸다.김준혁은 그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어르신,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너무 흥분하시면 심장에 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잠깐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떠세요?”그러나 강준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가 그토록 아끼던 심미연이 이렇게 떠나버렸다.시신도 남기지 않고 가버린 사실을 강지한이 깨어나 알게 되면 얼마나 절망적일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3일 후, 강지한이 드디어
강지한은 심미연이 이제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는데 도저히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살짝 벌렸지만 너무 떨려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용솟음쳐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 뒤 낮은 신음을 내뱉더니 곧바로 입에서 피를 쏟아내면서 픽 하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그리고 마치 온몸의 모든 공기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힘없이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성무진은 갑자기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임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주머니, 혹시 지금 위층 안방에 가서 강 대표님이 괜찮은지 확인 할 수 있으실까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너무 걱정돼서요.”전화 받은 임혜자도 그의 말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그러나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녀는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킨 뒤 성무진을 위로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강지한은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방안에는 이미 피비린내가 가득 퍼져있었다.임혜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가능한 빨리 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기다리는 1분 1초가 너무 괴로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집 앞에 도착했고 의료진들은 신속하고 질서 있게 방에 들어가 강지한을 조심스럽게 들것에 옮겨 데리고 나갔다.임혜자는 구급차가 떠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강지한이 이 고비를 빨리 넘길 수 있도록 기도했다.그렇게 강지한은 빠르게 응급실로 옮겨졌다.응급처치가 끝난 뒤 그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는데 여전히 깨나지 못한 채 긴 꿈을 꾸게 되었다.꿈속은 마치 길고 인상 깊었던 영화와 같았는데 프레임마다 그가 심미연과 함께한 3
“미연 씨랑 완전히 깨진 거야? 그럼 찾으면 이제 내 차례네?”박시훈은 어차피 이제 강지한이 심미연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박시훈, 지금 너랑 농담할 기분이 아니니까 빨리 사람 풀어서 찾아봐.”강지한의 마음속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만약 박시훈도 못 찾는 거라면 심미연은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봐야 한다.“강지한,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줘. 미연 씨를 아직 사랑하지?”박시훈은 만약 그가 여전히 심미연을 좋아하는 거라면 여기서 깔끔하게 포기하겠다고 다짐했다.친구의 여자를 뺏는 건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그러나 강지한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큰 소리로 답했다.“전혀!”그는 여전히 자존심을 부렸다.강지한의 말에 박시훈은 또다시 히죽거리며 말했다.“그럼 미연 씨를 찾아도 나만 볼 수 있게 어디 숨겨둬야겠다.”강지한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박시훈, 싫다는 사람을 왜 억지로 데려가려고 해. 그리고 어디까지나 내 전 아내였던 사람인데 들이대고 싶어?”“난 미연 씨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그게 네 전 아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인데?”박시훈도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답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됐어. 난 그만 사람 찾으러 가야겠다.”박시훈과의 통화 뒤에 강지한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모태 솔로인 박시훈이 심미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그는 모든 잡생각을 다 집어치운 뒤 강준형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연이한테 사과했어? 용서는 받았어?”“혹시 오늘 미연이 만나셨어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어요?”강지한은 다짜고짜 그녀가 사라졌다고 할 수 없었기에 에둘러 물었다.“미연이가 사라졌어?”강준형의 물음에 강지한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에게 거짓말했다.“혹시 할아버지한테 찾아가서 무슨 이야기 나눴나 궁금해서요.”보아하니 강준형을 만나러 가지도 않은 것 같았다.“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그런데 너한테는 비밀이야.”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자 강지한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설마 일부러 못 들은 척하는 건가 싶어 머뭇거리다가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미연아, 나 왔어.”들어가 보니 침대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는데 순간 강지한은 깜짝 놀라 온몸이 굳어졌다.침대 머리맡의 결혼사진은 틀이 깨진 채 신부 머리는 잘려 나가고 웨딩드레스만 남겨져 있었고 침대 위에는 온통 유리 파편이 널려져 있었다.강지한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그러다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문을 박차고 아래층에 대고 소리 질렀다.“아주머니, 빨리 올라와 보세요!”임혜자는 무슨 일인지 몰라 부리나케 위층으로 달려갔다.“도련님, 무슨 일이에요?”강지한은 마음속의 화를 애써 억누른 뒤 침실을 가리키며 물었다.“오늘 누가 침실에 들어왔어요?”임혜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그에게 답했다.“오늘 사모님만 침실에 들어갔고 누구도 오지 않았는데요? 왜요? 뭐 귀중한 물건이라도 없어졌을까요?”강지한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미연이는 지금 어디 있어요?”“도련님께서 아까 나가시고 얼마 안 돼서 사모님도 나갔어요. 어디 가시냐고 물어보니까 급한 일이 있다고만 하시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도련님께 따로 연락하지 않으셨을까요?”임혜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심미연은 어디 가면 꼭 강지한에게 먼저 알려줬던 것 같은데 왜 오늘은 나가면서 아무런 말도 없었는지 의문스러웠다.강지한은 마음속의 불안이 점점 커지더니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내려가서 혹시나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지 않는지 한번 물어봐요.”그는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애써 덤덤한 척했다.임혜자는 그렇게 방문을 나오자마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러나 강지한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가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임혜자는 내려가서 모든 사람에게 한 바퀴 물어봤지만 누구도 심미연의 행방을 알지 못했고 그녀는 이제야
온지유는 박시훈의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기절했고 경찰은 그녀를 연행해 갔다.박시훈은 차에 앉아 멀리서 사진을 찍어 강지한에게 보여준 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지한아, 일은 이미 해결됐어.”“그래.”“내가 이렇게 고생한 걸 봐서라도 미연 씨한테 제대로 고백할 수 있게 허락해 줘.”박시훈은 이미 비서 쪽에서 오늘 심미연이 모든 증거를 가지고 혼자 경찰서에 갔다는 소리를 듣고 그녀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저런 패기 있는 여자와 함께하면 분명 하루하루가 즐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꺼져!”강지한은 어두운 얼굴로 그에게 소리를 쳤다.‘감히 누구 여자를 탐내?’“두 사람은 이미 이혼했잖아. 그럼 남남이고 내가 도전해 보겠다는 데 뭐 어때서? 설마 미연 씨랑 다시 합칠 마음이 있는 건 아니겠지?”“신경 쓰지 마!”강지한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그러다가 머리가 복잡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밖의 오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지금껏 심미연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줬기에 아무리 빌어도 이제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문득 심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이 너무 후회스러웠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이미 흘렀고 후회해도 늦었다.바로 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강형준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지한, 당장 온지유를 데려오지 않으면 지금 네 눈앞에서 혀 깨물고 죽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심미연은 인터넷에 녹음 하나를 공개했는데 내용에는 그날 밤 온지유와 양경자가 죽기 전의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이 소식은 이미 널리 널리 퍼져 전 경성의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그리고 드디어 강준형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는데 그는 이 악독한 여자를 한시라도 빨리 감옥에 가두고 싶었다.사람을 죽였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이미 경찰서에 잡혀갔어요.”강지한은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박시훈은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이미 온지유가 저질렀던 모든 추잡한 일을 다 조사해 냈다.그리고 강지한은
온지유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강지한은 비록 몇 년 동안 그녀 앞에서는 항상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만 보여줬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거의 피도 눈물도 없다고 봐야 한다.그런데 강지한은 그날 밤 모든 사실을 다 알게 되었는데도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걸 보면 분명 뭔가가 이상했다.또한 육현성은 분명 그녀에게 내일 저녁에 출발한다고 말했었는데 갑자기 오후에 전화 와서는 오늘 저녁으로 앞당겨졌다고 알렸다.‘함정인가?’온지유는 순간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만약 이 모든 게 강지한의 계획이라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절대 그럴 수는 없다.그리고 그날 강지한이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삶을 살게 할 거란 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설마 진짜 도망칠 수 없단 말인가?’‘아니!’바로 이때, 한 줄기 눈 부신 불빛이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비쳤다.순간 깜짝 놀란 심미연은 습관적으로 도망치려고 몸을 돌렸다.하지만 그녀의 뒤에는 이미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한 줄로 서서 그녀를 막고 있었다.“온지유 씨, 경찰입니다.”경찰이 신분증을 보여주는 순간 온지유는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고 더 이상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전화 한 통화만 할게요.”그래도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강지한에게 이 판을 짠 사람이 진짜 그가 맞는지 직접 묻고 싶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강지한 씨가 직접 전해달라고 했거든요...”바로 이때, 박시훈이 차에서 내리더니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왔다.“박시훈 씨? 당신이 어떻게...”온지유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외부 소문에 의하면 현재 전 경성의 정보망은 다 박시훈의 손아귀에 있다고 할 정도로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다.하여 이번 일도 아마 그가 나섰기에 이렇게 쉽게 들켜버렸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래요. 접니다.”불빛이 그의 앳된 얼굴에 비치니 귀여운 외모 때문인지 날카로운 목소리와 많이 상반되는 느낌이었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