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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Author: 무안안
심미연은 순간 당황하다가 작은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방금 실수로 입술을 깨물었어.”

하지만 물린 것은 강지한의 입술이었다.

“자, 닦아.”

신하린은 휴지를 건넸다.

박유진의 깊고 검은 눈동자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심미연은 티슈를 받아 입을 닦으며 화장실 밖에서 강지한의 무례한 행동을 떠올리고는 짜증이 밀려왔다.

강지한은 대체 그녀를 뭐로 보고 틈만 나면 강제로 입을 맞추는 걸까.

그녀가 남들에게 욕먹는 건 신경도 안 쓴다.

온지유였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면서!

“참 미연아, 박유진 씨가 나한테 큰 프로젝트를 소개해 줬는데 시간 있으면 와서 도와줘. 나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

신하린이 밝은 어투로 말하자 심미연은 휴지를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고를 끄덕였다.

“좋아, 마침 나도 요즘 한가해.”

온지유가 리우로 오면 분명 그녀의 사건을 빼앗을 것이기에 앞으로 담당할 사건이 줄어들 게 뻔했다.

“왜, 리우 망한대? 네가 한가할 리가 없잖아.”

신하린은 리우에서 심미연이 얼마나 바쁘게 보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혼한 부부가 왜 그렇게 많은지.

“아니, 리우는 지금 강지한이 인수하고 온지유가 낙하산으로 내 상사가 됐어.”

심미연이 웃었다.

“그동안 소송으로 바쁘게 살다 보니 너무 피곤했는데 이제 좀 여유가 생기겠어.”

몇 년 동안 이혼 사건을 맡으면서 이혼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부부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자신은 강지한과 이혼을 하더라도 보기 좋게 헤어지고 싶었다.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건 너무 추하니까.

“강지한 개자식이 망할 년한테 홀려서 앞뒤 구분도 못하네. 진짜 열 받아!”

신하린은 씩씩거리며 달려가서 강지한을 두들겨 패고 싶었다.

“괜찮아, 휴가라고 생각하지 뭐.”

심미연이 웃었다.

“마침 너 일 도와주면서 돈 벌 수 있잖아. 소송보다 훨씬 쉽지.”

“너는 재능이 있는데도 왜 숨겨? 네가 회사 차렸으면 내건 진작 문 닫았겠다.”

신하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개 같은 강지한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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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미연은 그의 반응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도 스스로 너무 놀랐다는 걸 눈치챘는지 급히 감정을 누르고는 심미연에게 물었다. “신 대표님...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왜 입원하신 거죠?” 며칠째 신하린과 연락이 닿지 않길래 출장이라도 간 줄 았았는데 설마 병원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미연의 시선이 도진혁의 얼굴에 멈췄다. 한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심미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통사고가 났어요. 다리가 부러져서 당분간 병원에 있어야 해요.” 도진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지금은 괜찮으세요?” ‘다리가 부러졌다니...’‘엄청 아팠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그런데도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겉으론 괜찮아 보였어요. 그래도... 속은 많이 힘들 거예요.” 심미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진혁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평소와는 달랐다. 순간적인 반응, 흔들리는 눈빛. 뭔가 이상했다. ‘혹시 하린이를 좋아하는 거야?’ “병원에 가서 직접 봐야겠어요.” 도진혁은 말을 끝내자마자 서류를 안고 황급히 돌아섰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문밖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심미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노트북을 꺼내 도진혁의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클릭 끝에 검색 결과가 뜨자 손이 멈췄다. 도진혁, 진성 최고 재벌가의 아들.심미연은 놀라움에 숨이 턱 막혔다. 그가 서류를 정리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 유난히 능숙했던 이유가 그제야 이해됐다. ‘그런데 이런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어떻게 하린이의 비서 자리에 만족할 수 있지?’심미연은 갑자기 예전 이야기가 떠올랐다. 은성이 막 설립된 초기에 신하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정말 능력 있는 비서를 뽑았어. 뭐든지 잘하고 서류 처리도 완벽하게 해.’ 그때 신하린이 말한 대로 도진혁은 은성을 하나하나 키워가며 함께한 인물이었다. 그가 회사에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8화

    심미연이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마친 후 대문을 나서자 마이바흐 한 대가 일부러 그녀의 차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는 다가가 차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이 내려가며 강지한의 냉담한 얼굴이 드러났다.“차 좀 옮겨.” 심미연은 차분히 예의 있게 말했다. “타. 내가 데려다줄게.” 강지한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단호하게 들렸다. 심미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대답했다. “차로 왔어. 혼자 갈 수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심미연은 어젯밤 일이 있고 나면 강지한이 한동안 잠잠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또 다시 나타나다니. ‘정말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네.’“언제 아들 데리고 나랑 같이 살 거야?” 강지한은 그녀의 얼굴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며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강지한, 너 제정신이야?” 심미연은 그와 대화하는 게 힘들었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도 전혀 듣지 않으니 점점 지치기만 했다. “제정신이지. 너랑 태하가 돌아와서 나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게 뭐가 이상해?” 강지한은 이게 아버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아이가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말했잖아. 태하는 내 아들이야. 너랑은 아무 상관 없어.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같이 사는 건 절대 안 돼.” 심미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강지한이 차를 옮길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걸 보자 그녀는 더 이상 말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두 차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 운전석에 앉은 후 바로 엔진을 켰다. 그리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차 앞부분이 마이바흐 운전석 문을 향해 돌진했다. 차는 크게 흔들렸고 마이바흐의 차문은 한쪽이 심하게 움푹 들어갔다.강지한은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여자는 운전석에 앉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에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7화

    신하린은 심미연과 눈을 마주치고는 웃으며 심태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유치원 잘 다녀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이모가 태하 많이 보고 싶을 거야.”신하린의 다정한 목소리에 심미연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정작 심태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더니 서운함에 눈가까지 벌겋게 물들었다. 결국 발을 쾅 구르며 토라진 채 나가버렸다. “태하 많이 화난 거 아니야?” 신하린이 걱정스럽게 묻자 심미연은 피식 웃었다. “당연히 화났지. 너는 태하가 마지막 희망처럼 붙잡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네가 그렇게 단칼에 잘라버렸잖아. 그래도 걱정 마. 태하는 금방 풀려. 살살 달래주면 금방 넘어가.” “그럼 다행이다. 얼른 가서 달래줘.” 신하린은 한심을 내쉬며 안심했다. “아침 먹고 좀 쉬어. 이따가 도진혁 씨 불러서 오라고 할게.” 심미연은 손을 흔들며 병실을 나섰고 문이 조용히 닫히자 병실엔 다시 고요함만 남았다. 간호사 스테이션 앞. 심태하는 간호사들과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 반에 진짜 뚱뚱한 친구가 있는데 다들 그 애를 뚱땡이라고 불러요.” “우리 반에는 진짜 예쁜 여자애도 있어요. 반에 있는 남자애들이 다 그 친구를 좋아해요. 어떤 남자애들은 몰래 초콜릿도 줘요.” “그 여자애가 저한테 초콜릿을 줬는데 우리 엄마가 어린이는 초콜릿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초콜릿을 선생님한테 줬어요. 그리고 선생님한테 너무 예쁘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저한테 착한 아이라고 칭찬해줬어요.” 심미연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이 꼬맹이가 유치원에 간 지 겨우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다고?’ “우리 엄마 왔어요. 예쁜 누나들, 안녕히 계세요. 우리 이모 잘 부탁드려요.” 심태하는 통통한 손을 들어 올리며 앙증맞게 손을 흔들었다. 심미연이 막 걸어가자 심태하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 너무 예뻐요.” 심미연은 고개를 숙여 그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6화

    그때 그녀는 교장실에서 급히 나와 서둘러 걷다가 도진혁의 자전거와 부딪히며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도진혁은 자건거를 급히 세우고 그녀를 재빨리 안아 의무실로 데려갔다. 그녀는 괜찮다고 반복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도진혁은 그런 그녀를 끝까지 놓지 않고 회사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후 도진혁이 회사에 처음 출근했을 때 그녀는 그가 바로 그날 자신을 넘어뜨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도진혁은 그녀의 곁에 남게 되었고 지금까지 함께했다. 몇 년간 함께 지내면서 그녀는 그때의 결정을 정말 잘한 것이라고 깊이 감사하고 있었다.“그럼 도진혁 씨한테 경인대로 가서 그 사람처럼 뛰어난 인재 몇 명을 더 찾아오게 해. 우리 회사의 발전에 그들이 꼭 필요해.” 심미연은 도진혁에 대해 매우 만족했다. 어차피 그녀는 몇 명을 곁에 두고 배우게 하려던 계획이었기에 도진혁이 학교에서 사람을 구하면 훨씬 믿음이 갈 것 같았다. “그럼 내가 도진혁한테 말해둘게.” 심미연의 기분이 좋아지자 신하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알았어. 그럼 도진혁 씨한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몇 명 더 데려오게 해.” 심미연은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신하린은 의족을 착용하더라도 예전처럼 무리해서 일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는 몇몇 도움이 될 사람들을 두어야 했다. 신하린은 심미연의 말을 듣고 그녀의 의도를 어렴풋이 깨달은 뒤 회사에 관한 얘기를 잠시 나누었다.간병인이 아침을 준비해 가져오자 심미연은 그제야 자신이 죽을 사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리를 한 대 톡 치며 말했다. “내 정신 좀 봐. 죽을 사왔는데 말하다 보니 깜빡했네.” 그렇게 말하며 작은 테이블을 펼쳤다. “정담 죽이네.” 신하린은 그 냄새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그녀는 제대로 된 아침을 먹은 지 오랜된 것 같았다. “맞아. 예전에 네가 좋아하던 걸로 기억해.” 심미연은 숟가락을 들어 신하린에게 건넸다. “먼저 먹어.”신하린은 숟가락을 들고 간병인에게 말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5화

    [한 잠 자고 일어났을 때 위치 정보가 사라진 걸 알게 되었어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도저히 위치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동생분의 핸드폰에 접근해 통화 기록을 확인했죠.][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강씨 사모님이었어요.] 심미연은 눈을 반쯤 감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심서연은 무슨 일로 문소영을 찾았을까?’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친한 관계였나?’[보스, 지금 심서연 씨가 소식이 끊긴 상태인데 계속 추적할까요?] [네. 추적하세요.] 심미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느꼈다. ‘심서연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찾아서 추적하겠습니다. 그럼 신하린 씨 교통사고는 어떻게 할까요?] [제가 일이 끝나면 그 사람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진짜 신원을 정확히 파악해볼게요.] [네. 알겠습니다.]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 섰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때 병실 안에서 심태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빨리 와요!” 심미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급히 생각을 정리한 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엄마, 빨리 와서 이모 다리 어디 갔는지 찾아봐요.” 심태하가 그녀를 보고 급하게 달려왔다.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들어 심미연을 애타게 바라봤다. 심미연은 허리를 굽혀 그를 부드럽게 안아 올리며 심태하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조용히 말했다. “이모는 사고로 다리를 잃었어. 이제 의족으로 대신해야 해. 그러니까 이모 앞에서 다리가 없다고 말하면 안 돼.”심태하는 눈가가 갑자기 붉어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이모는 다리를 잃었어. 이모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서 이모가 요즘 그렇게 기운도 없고 얼굴이 안 좋았던 거구나.’ ‘다리를 잃은 거였어.’어린 아이는 마음이 먹먹하고 아픈 감정이 밀려왔다. “태하가 불어주면 이모가 안 아플 거야.” 신하린은 웃으며 말했다. 마음속에 슬픔이 밀려왔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4화

    간병인은 이미 출근해 신하린의 손을 조심스럽게 닦고 있었다. 심태하는 병실 문을 열자마자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모, 나 왔어요!”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치며 병상으로 달려가자 신하린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간병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침 준비해 주세요.” 간병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심태하는 침대 곁으로 뛰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신하린을 바라봤다. “이모, 저 보고 싶었어요?”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에 신하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엄청엄청 보고 싶었지.” 심태하는 까치발을 들고 침대에 올라가려고 애썼지만 키가 닿지 않자 포기하고 조그만 얼굴을 숙여 신하린의 손등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저도 엄청 보고 싶었어요.”심미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시리게 아려왔다. 손에 든 죽을 옆의 서랍장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혹여 자신의 감정이 신하린에게 전해질까 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침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심미연은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서둘러 말했다. “전화 좀 받고 올게.” 짧은 말만 남긴 채 병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신하린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에 담긴 쓸쓸함이 선명하게 느껴져 마음 한쪽이 시큰해졌다.지금 심미연이 자신을 보고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신하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미연이 조금이라도 덜 걱정하도록 신하린은 아픈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치료에 임했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서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그래야 심미연이 더는 자신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을 테니까.심미연은 병실을 나온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보스, 신하린 씨 사고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심미연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누구예요?] [한유나 씨 아버지입니다.]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그날 밤 경비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3화

    심미연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박유진과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박유진은 심미연이 멍하니 있는 걸 보며 잠시 마음이 조금 씁쓸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말을 이어갔다. “농담이야. 결혼 강요하려던 건 아니었어. 이렇게 하자. 오후에 시간이 되면 같이 보러 가자. 마음에 들면 내일 바로 이사도 가능해. 어때?”그는 심미연의 마음속에 강지한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건 심미연이 그와 함께 평생을 살아갈 만큼 감정이 깊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심미연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오빠...” 심미연은 박유진이 억지로 웃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 모습에 마음속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박유진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지금은 오빠한테 결혼을 약속할 수 없어.” 그녀는 아직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박유진을 평생 고통 속에 두고 싶지 않았다. “알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돼.” 박유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다. “내가 너무 서둘렀어.”심미연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고 말하며 그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진성에 있을 때였다면 이렇게 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경성에 돌아온 후 강지한이 언제든지 심미연과 심태하를 빼앗아 갈 것만 같아 점점 더 초조해졌다.“나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 받을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확신시키려 애썼다. 매번 의사 말을 순순히 따르며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심미연은 이제 더 이상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42화

    어린 아이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심미연은 세수를 하고 간단히 준비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박유진은 이미 아침을 준비해 놓고 거실을 정리하고 있었다.“일찍 일어났네? 조금 더 자.” 박유진은 청소기를 끄고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할 일이 많아서 더 이상 못 자. 정신없이 바쁠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먼저 아침 먹어. 나는 위층 가서 태하 깨울게.” 박유진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알겠어. 오빠가 태하 깨워줘.” 심미연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살짝 비벼댔다.박유진과 함께하는 시간은 평온하고 따뜻했다. 그저 이런 일상이 이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아침 먹어. 난 위층 가서 좀 보고 올게.” 박유진은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으며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심미연은 그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걸 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식탁으로 향했다. 박유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깊은 숨을 내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심미연의 방에 들어서자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심태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박유진의 마음은 저절로 따뜻해졌다. 심미연과 심태하를 돌보는 건 그에게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다.심미연은 식탁에 앉아 보온병을 열었다. 따뜻한 우유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가 퍼졌다. 빵은 부드럽고 입 안에서 살살 녹으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박유진은 예전엔 찐빵이나 만두 같은 것만 만들 줄 알았고 빵과 케이크는 나중에 배우게 된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녀와 심태하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심미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심미연은 복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아침을 마치고 거실로 나가자 박유진이 심태하를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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