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한이 박유진을 언급하자 전에 자신을 구해주기까지 한 사람인데 강지한이 괜히 귀찮게 할까 봐 걱정된 심미연은 다급히 부인했다.“나랑 박유진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해명을 하는 심미연을 보며 표정을 굳히며 손에 힘을 준 강지한이 말했다.“왜, 내가 박유진 귀찮게 할까 봐 걱정돼?”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의 손길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 박유진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표정부터 변하는 걸 보니 심미연이 박유진을 얼마나 아끼는지 짐작이 가서 강지한은 기분이 더 나빠졌다.강지한에게 속마음을 들켜버린 심미연은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제 손에 느껴지는 움직임이 확연히 달라지자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내 아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거짓말을 잘했지?”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심미연도 그냥 다른 남자를 감싸고 돌았을 뿐인데 강지한은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올라 목소리까지 떨려왔다.폭풍전야 같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심미연은 여전히 부정하느라 애썼다.“거짓말 아니야, 나랑 박유진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어제 박유진에게서 빌린 외투도 신하린 집에 그대로 있는데 내일 세탁소에 맡기고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했다.그런데 심씨 집안에서 박유진의 귀국을 알게 되면 사람을 붙여서 미행할 텐데 그러면 다시 만나기도 어려워질 것 같아 심미연은 옷을 어떻게 돌려줄지도 걱정이었다.한편 강지한은 달싹이는 심미연의 입술을 보고 있으니 더 화가 나서 마치 분노를 표출하듯 거칠게 입술을 빨아들였다.“강지한, 아파...”갑작스러운 고통에 심미연이 몸부림을 치자 강지한은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뭐 하는 짓이야? 지금 나 밀어낸 거야?”“그게 아니라 아프다고!”심미연의 해명에 고개를 숙이던 강지한이 입을 열려던 찰나, 그는 그녀의 어깨에 새겨진 빨간 자국을 보게 되었다.색깔을 보니 어제 새겨진 것 같아서 강지한은 자연스레 어젯밤 박유진 품에 안겨있던 심미연의 모습이 떠올라 그녀의 턱을 우악스럽게
“박유진 씨가 날 안은 건 그때 내 옷이 다 찢겨져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야. 박유진 씨는 나를 그저 차에만 태워주고 나는 하린이랑 같이 갔어.”강지한이 믿든 말든 심미연이 한 말들은 전부 사실이었다.하지만 그 말을 다 들은 강지한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그런 기사 난 적 없었어.”역시나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내연녀랑 쌍으로 하루가 멀다 하게 기사에 이름을 올릴 때는 자신에게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으면서 고작 자국 하나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강지한에 심미연은 점점 더 실망스러워졌다.“왜 말이 없어? 이젠 거짓말도 못 하겠어?”이미 박유진과 심미연이 부정당한 관계일 거라고 확신한 강지한은 두 눈으로 증거를 확인하기 전에는 심미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눈물이 고인듯한 눈으로 강지한을 올려다보던 심미연은 갑자기 웃음을 흘리더니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그럼 성무진 씨한테 어젯밤 고속도로 CCTV랑 내 입원기록 확인해보라고 연락해. 그럼 거짓인지 아닌지 알 수 있잖아.”한마디 한마디 내뱉을수록 심미연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전에는 강지한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를 이해해보려고 몇 년이나 애를 써왔지만 이제는 그런 생활을 끝낼 때가 된 것 같았다.더 이상 강지한을 보아도 그녀의 심장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하지만 심미연을 보는 강지한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만약 심미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를 사지로 밀어 넣은 게 자신이었기에 강지한은 본인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우리 이혼하자.”하지만 강지한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심미연이 눈을 꼭 감은 채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다시 한번 이혼을 언급했다.같이 있으면 괴롭기만 한 사이니 빨리 끝내는 편이 서로에게 좋은 것 같았다.“전에 할아버지한테 절대 이혼 안 하겠다고 맹세하고 결혼한 거 잊었어? 이제 와서 이혼이 가능할 것 같아?”경성에 있는 수많은 여자들은 다 강지한의 아내가 되지 못해서 안달인데 그런 저를 제 손으로 버리겠다는 심미연의 이혼 제의에 강지한
의미심장한 심미연의 말에 강지한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 네가 한 말 똑바로 기억하라고. 화 풀렸으면 넥타이나 풀어, 나 갈거야.”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담담히 말하는 심미연에 강지한은 대꾸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버렸다.혹시라도 듣지 말아야 할 걸 듣게 될까 봐 멀찍이 떨어져 있긴 했지만 신경은 온통 차에 쏠려있던 성무진은 강지한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에게로 다가갔다.“대표님.”“어젯밤 고속도로 CCTV 확인하고 심미연 이틀 동안 입원한 기록 있는지도 알아봐.”강지한은 심미연의 말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눈앞에 놓인 증거를 더 믿는 것뿐이었다.갑작스러운 제 상사의 지시가 의아했지만 성무진은 알겠다는 대답만 남기고 바로 해당 부문에 연락을 했다.성무진이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던 강지한은 심미연의 어깨에 새겨진 자국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한편 손이 묶인 채 차에 혼자 남은 심미연은 차 좌석에 넥타이를 마찰하여 끊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문득 차창 너머로 보이는 강지한의 얼굴에 눈이 가버렸다.꿈에도 나올 정도로 9년이나 사랑한 남자였지만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나니 이 관계를 끝내는 게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다.그때 빠르게 일 처리를 마친 성무진이 CCTV 영상이 담긴 노트북을 건네자 강지한은 30분이나 되는 영상을 클릭해보았다.그 시간 동안 열심히 넥타이를 풀어낸 심미연은 빨리 옷을 정리하고 강지한 몰래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하지만 당연히 인기척을 느낀 강지한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자 성무진은 빠르게 달려가 붙잡으려 했지만 영상을 다 확인한 강지한이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됐어, 그냥 보내줘.”그에 성무진이 바로 발걸음을 멈추자 그에게 노트북을 건네며 미간을 매만지던 강지한이 나지막하게 말했다.“회사로 가.”영상을 다 보고 심미연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강지한이 자신이 했던 행동들과 못된 말들이 떠올라 어떻게 그녀를 봤으면 좋을지 몰랐
“대표님께서 사모님과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일이라는데 혹시 회사로 와주실 수 있으세요?”성무진의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자 심미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일 때문에 바빠요, 급하면 로펌으로 찾아오라고 대표님께 전해요. 별로 안 급하면 일 다 끝내고 갈게요.”예전 같았으면 성무진의 전화 한 통에 바로 강지한의 회사로 달려갈 정도로 강지한이 최우선이었지만 이혼을 논의하는 사이가 된 지금에 와서는 강지한보다 일이 먼저였다.“알겠습니다.”성무진에게서 심미연의 말을 전해 듣던 강지한은 그녀가 거절했다는 게 의외였다.전에는 쿠키나 밀크티를 사 들고 사무실로 오는 걸 아주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단칼에 거절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강지한은 성무진이 제대로 전달을 못 한 건가 싶었다.“중요한 일이라고 얘기했어?”이래 봬도 일 잘하는 비서인데 말 한마디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오해를 받은 성무진은 억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에 미간을 짓누르던 강지한이 말했다.“조금 있다가 할아버지가 주신 주식 심미연한테로 양도할 거니까 담당자들 불러와, 오늘 내로 해결해야 해.”심미연이 사무실에 오려 하지 않는 건 팔찌 때문일 텐데 주식을 내어준다면 그녀의 화도 풀릴 것 같아서 강지한은 어느 때보다도 서둘렀다.성무진이 일을 처리하러 나가자 차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킨 강지한이 심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비서와 일 얘기를 하고 있던 심미연은 핸드폰에 뜬 강지한의 이름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성무진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의사는 제대로 전달한 것 같은데 또 전화를 해대는 강지한이 귀찮아서 전화를 받지 않고 있자 궁금했던 비서가 넌지시 물었다.“왜 전화 안 받으세요? 설마 심 변호사님 쫓아다니는 남자예요?”심미연이 차갑고 도도해 보여도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빠지는 데가 없어서 로펌 내에서도 인기가 많았기에 혹시나 해서 한 질문이었지만 심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그런 거 아니야.”“일단 서류 먼저 보고 있어, 이상한 부분은
온지유가 매번 문자를 보내서 하는 얘기는 똑같았다.임신 아니면 강지한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떠들어댔기에 심미연은 그녀를 상대하기도 이젠 귀찮았다.이혼을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건 강지한인데 꼭 자신이 매달리는 것처럼 얘기하는 온지유의 말들도 듣기 불편했다.그런데 생각해보면 온지유에 대한 강지한의 사랑이 그녀가 말한 것처럼 큰 것 같진 않았다.임신을 한 걸 뻔히 알면서도 이혼을 안 한다는데 만약 정말 사랑한다면 자신의 여자가 내연녀라는 소리를 듣는 걸 견디지 못할 텐데 강지한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심미연을 답장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렸고 심미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오늘 내 생일인데 밥이라도 같이 먹자, 센추리 파크 근처에 있는 에빈 레스토랑에서 봐.”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온지유에 헛웃음이 나온 심미연이 대답했다.“밥은 됐고 사람 시켜서 선물이나 보내줄게.”매일 눈에 띄지 못해서 안달인 온지유에게 그토록 원하는 관심을 주기로 한 심미연이었다.“선물은 지한 씨가 이미 줬으니까 괜찮아, 너흰 부부잖아, 하나만 하면 되지.”온지유가 가리키는 선물이라는 게 팔찌를 뜻하는 것이었기에 심미연은 단호하게 말했다.“강씨 집안 팔찌 말하는 거야? 며칠 빌려줬다고 해서 그게 네 물건이 되는 건 아니야, 썼으면 돌려줘야지 주인한테. 안 그러면 나중에 찾으러 갈 거야 내가.”말을 마친 심미연은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온지유가 팔찌를 뺏고 우쭐대면 자신은 그녀를 가차 없이 무시할 수 있는 이 관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이 팔찌는 강씨 집안 안주인 거지, 네 건 아니잖아.”강지한 앞에서 연기 좀 했다고 정말 팔찌를 되돌려받으려 하는 심미연이 어이가 없었던 온지유가 톡 쏘아붙였지만 심미연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대꾸했다.“그 팔찌는 할아버지가 나한테 주신 거야, 강지한은 내 동의도 없이 너한테 줘버린 거고, 그러니까 넌 내 물건을 훔친 거지.”“그 팔찌는 2억 정도 되거든, 형법 제329조에 의하면 절도죄는
진유영은 원래부터 심미연을 존경하는 그녀의 팬이었다.진유영은 팀장직도 심미연에게는 부족한 자리라고 여기며 수석 파트너 변호사쯤은 되어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내가 아닐 수도 있잖아, 이런 얘기는 내 앞에서나 하지 어디 나가서 떠들고 다니지 마, 남들 비웃겠다.”심미연은 미소를 거두며 진지하게 말했다.로펌에서 다른 사람들과 사이도 별로 안 좋은데 이런 소문이 떠돌다가 혹시라도 승진을 못 하게 되면 한동안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에 그녀는 주위 사람들 입도 단속시켜야 했다.“당연히 변호사님 앞에서만 얘기하죠, 그런데 저녁에 있는 회식엔 참석하실 거예요?”2년 동안 심미연의 비서로 있으면서 얘기도 많이 하다 보니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눔에 있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진유영의 질문에 시간을 확인하던 심미연이 답했다.“나 지금 잠깐 나갔다 와야 해서, 회식 잡히면 주소 보내줘, 내가 그리로 갈게.”이노하이브의 주식은 할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건데 심미연이 안 받는다면 또 온지유에게로 갈 게 뻔해서 심미연은 바로 강지한의 회사로 이동하려 했다.“알겠어요.”그에 진유영도 서류를 정리하며 대답하고는 그녀를 배웅해주었다.“좀 있다 주소 보내드릴게요.”서둘러 로펌을 나선 심미연이 한창 이노하이브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강준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그 이름을 보고 잠시 고민하던 심미연이 전화를 받자 화를 참는듯한 강준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할아버님.”“미연아, 지금 바로 지한이 회사로 와, 할 얘기 있다.”“네, 바로 갈게요.”강준형이 심미연을 이렇게 급하게 부를 일은 이틀 전에 난 기사뿐이었기에 심미연은 빠르게 회사로 향했다.한편 강지한 사무실 소파에 앉은 강준형은 불같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난 네가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내 후계자 자리를 맡긴 건데, 봐봐,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나!”“병원에서 청혼한 것도 모자라서 강씨 집안 팔찌를 줘?!”“내가 그거 주면서 꼭 미연이한테 전해주라고 했지, 어떻게 그새 외간여자한테
강준형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기에 강지한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진짜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요?”“없어!”심미연에게 준 건 심미연의 것이었기에 강준형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한쪽에서 숨을 죽이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성무진도 심미연의 팔찌를 온지유에게 선물해준 건 강지한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그저 직장인 일뿐인 성무진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그럼 심미연 오면 물어보고 결정하는 건 어때요?”전에 자신이 도망 다니는 처지일 때 제 손에 돈뭉치를 쥐여주던 온지유가 떠올라 강지한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때 그 돈이 없었다면 강지한은 진작 죽었을 텐데 목숨을 빚진 사람이 원하는 게 고작 팔찌 하나인데 강지한은 그것만큼은 해주고 싶었다.“물어볼 필요도 없어!”염라대왕이라는 소문과 달리 우물쭈물하기만 하는 손자에 강준형은 또 소리를 쳤다.“멀쩡하던 놈이 어쩌다 이렇게 됐어!”“지한 씨, 나왔어!”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해맑은 온지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전에 강지한이 온지유가 오면 그냥 들여보내라고 지시한 탓에 회사 내에서 감히 그녀를 막는 이는 없었다.며칠 전 직원들이 탕비실에서 온지유를 부러워하며 빨리 그녀에게 붙어야겠다는 대화를 나누던 게 떠올라 성무진은 만약 그들이 진짜 사모님이 심미연인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일지 문득 궁금해졌다.갑자기 나타난 온지유에 놀라던 강지한은 이내 얇은 외투 하나만 걸친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여긴 왜 왔어? 그리고 옷은 왜 또 그렇게 얇게 입고 다녀, 임신한 몸이라 면역력도 예전 같지 않은데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 아프다고 또 울 거야?”자신을 타박하면서도 빠르게 옷걸이에 걸려있던 외투를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는 강지한을 온지유는 다정하게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한 씨, 나 팔찌 돌려주러 온 거야.”팔찌를 빼서 강지한에게 건네주면서도 온지유는 아쉬운지 손에 힘은 풀지 않고 있었다.그 얼굴을 보자마자 화를 내려던 강준형은 팔
그녀는 굳이 눈앞의 손익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강준형은 콧방귀를 뀌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온지유는 그 모습을 보고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을 참지 못하며,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말했다.“팔찌 돌려줬으니 나 먼저 갈게.”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강지한을 바라보는 눈빛도 한없이 다정했다.“내가 데려다줄게.”강지한이 말했다.“됐어. 나 혼자 갈게. 지한 씨는 할아버지랑 더 있어.”온지유의 마음속으로는 사실 강지한이 자신을 데려다주길 바랐다. 하지만 속으로는 저 고약한 노인이 허락하지 않는 한 강지한이 자신을 배웅하는 것은 오히려 갈등만 더 키울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강씨 가문에 남아 앞으로 호강하며 살려면 이 노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지금은 조금 참아도 괜찮아. 나중에 저 고약한 늙은이에게 배로 갚아줄 거야!’강지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항상 남 생각만 해? 바보 아니야?”“지한 씨, 나...”온지유는 목구멍에 맺힌 말을 겨우 꺼내려 했지만, 강준형이 그녀를 가로막았다.“가고 싶으면 얼른 가! 미연이가 오면 너 보는 게 불편할 거 아니야!”그녀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강준형은 속이 상했다.온지유는 금세 눈가가 붉어지며 말했다.“이만 갈게...”강지한은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보며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가자. 내가 데려다줄게.”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안쓰럽게 고개를 저은 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보이는 표정이었다.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르게 걷던 그녀는 문 앞에서 막 들어오던 심미연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심미연은 온지유보다 키가 훨씬 컸고, 온지유의 이마는 그대로 심미연의 가슴에 닿았다.“아, 미안!”온지유가 급히 사과하자, 심미연은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온지유는 심미연의 목소리를 듣고 눈빛에 순간 꿍꿍이가 스쳤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배를 감싸며
[한 잠 자고 일어났을 때 위치 정보가 사라진 걸 알게 되었어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도저히 위치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동생분의 핸드폰에 접근해 통화 기록을 확인했죠.][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강씨 사모님이었어요.] 심미연은 눈을 반쯤 감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심서연은 무슨 일로 문소영을 찾았을까?’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친한 관계였나?’[보스, 지금 심서연 씨가 소식이 끊긴 상태인데 계속 추적할까요?] [네. 추적하세요.] 심미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느꼈다. ‘심서연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찾아서 추적하겠습니다. 그럼 신하린 씨 교통사고는 어떻게 할까요?] [제가 일이 끝나면 그 사람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진짜 신원을 정확히 파악해볼게요.] [네. 알겠습니다.]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 섰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때 병실 안에서 심태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빨리 와요!” 심미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급히 생각을 정리한 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엄마, 빨리 와서 이모 다리 어디 갔는지 찾아봐요.” 심태하가 그녀를 보고 급하게 달려왔다.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들어 심미연을 애타게 바라봤다. 심미연은 허리를 굽혀 그를 부드럽게 안아 올리며 심태하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조용히 말했다. “이모는 사고로 다리를 잃었어. 이제 의족으로 대신해야 해. 그러니까 이모 앞에서 다리가 없다고 말하면 안 돼.”심태하는 눈가가 갑자기 붉어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이모는 다리를 잃었어. 이모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서 이모가 요즘 그렇게 기운도 없고 얼굴이 안 좋았던 거구나.’ ‘다리를 잃은 거였어.’어린 아이는 마음이 먹먹하고 아픈 감정이 밀려왔다. “태하가 불어주면 이모가 안 아플 거야.” 신하린은 웃으며 말했다. 마음속에 슬픔이 밀려왔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간병인은 이미 출근해 신하린의 손을 조심스럽게 닦고 있었다. 심태하는 병실 문을 열자마자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모, 나 왔어요!”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치며 병상으로 달려가자 신하린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간병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침 준비해 주세요.” 간병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심태하는 침대 곁으로 뛰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신하린을 바라봤다. “이모, 저 보고 싶었어요?”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에 신하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엄청엄청 보고 싶었지.” 심태하는 까치발을 들고 침대에 올라가려고 애썼지만 키가 닿지 않자 포기하고 조그만 얼굴을 숙여 신하린의 손등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저도 엄청 보고 싶었어요.”심미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시리게 아려왔다. 손에 든 죽을 옆의 서랍장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혹여 자신의 감정이 신하린에게 전해질까 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침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심미연은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서둘러 말했다. “전화 좀 받고 올게.” 짧은 말만 남긴 채 병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신하린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에 담긴 쓸쓸함이 선명하게 느껴져 마음 한쪽이 시큰해졌다.지금 심미연이 자신을 보고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신하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미연이 조금이라도 덜 걱정하도록 신하린은 아픈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치료에 임했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서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그래야 심미연이 더는 자신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을 테니까.심미연은 병실을 나온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보스, 신하린 씨 사고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심미연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누구예요?] [한유나 씨 아버지입니다.]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그날 밤 경비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심미연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박유진과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박유진은 심미연이 멍하니 있는 걸 보며 잠시 마음이 조금 씁쓸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말을 이어갔다. “농담이야. 결혼 강요하려던 건 아니었어. 이렇게 하자. 오후에 시간이 되면 같이 보러 가자. 마음에 들면 내일 바로 이사도 가능해. 어때?”그는 심미연의 마음속에 강지한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건 심미연이 그와 함께 평생을 살아갈 만큼 감정이 깊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심미연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오빠...” 심미연은 박유진이 억지로 웃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 모습에 마음속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박유진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지금은 오빠한테 결혼을 약속할 수 없어.” 그녀는 아직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박유진을 평생 고통 속에 두고 싶지 않았다. “알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돼.” 박유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다. “내가 너무 서둘렀어.”심미연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고 말하며 그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진성에 있을 때였다면 이렇게 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경성에 돌아온 후 강지한이 언제든지 심미연과 심태하를 빼앗아 갈 것만 같아 점점 더 초조해졌다.“나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 받을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확신시키려 애썼다. 매번 의사 말을 순순히 따르며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심미연은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심미연은 세수를 하고 간단히 준비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박유진은 이미 아침을 준비해 놓고 거실을 정리하고 있었다.“일찍 일어났네? 조금 더 자.” 박유진은 청소기를 끄고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할 일이 많아서 더 이상 못 자. 정신없이 바쁠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먼저 아침 먹어. 나는 위층 가서 태하 깨울게.” 박유진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알겠어. 오빠가 태하 깨워줘.” 심미연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살짝 비벼댔다.박유진과 함께하는 시간은 평온하고 따뜻했다. 그저 이런 일상이 이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아침 먹어. 난 위층 가서 좀 보고 올게.” 박유진은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으며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심미연은 그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걸 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식탁으로 향했다. 박유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깊은 숨을 내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심미연의 방에 들어서자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심태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박유진의 마음은 저절로 따뜻해졌다. 심미연과 심태하를 돌보는 건 그에게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다.심미연은 식탁에 앉아 보온병을 열었다. 따뜻한 우유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가 퍼졌다. 빵은 부드럽고 입 안에서 살살 녹으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박유진은 예전엔 찐빵이나 만두 같은 것만 만들 줄 알았고 빵과 케이크는 나중에 배우게 된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녀와 심태하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심미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심미연은 복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아침을 마치고 거실로 나가자 박유진이 심태하를 안고
신하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스친 냉소는 차갑고 깊었다. ‘내가 멀쩡할 때는 단 한 번도 결혼 얘기 안 하더니. 이제 다리 하나 못 쓰게 되니까 그제야 날 데려가겠다고?’ ‘날 데려가서 네 부모한테 실컷 조롱당하게 하려고?’“왜 그렇게 봐?” 이진영은 신하린의 시선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숨을 삼키듯 숨을 들이마신 뒤에야 겨우 물었다. 신하린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이진영 씨, 난 예전에도 당신과 만나겠다고 한 적 없어요. 앞으로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고요.” “당신과 결혼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예요.”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내뱉는 말들이 조금의 여지도 없이 이진영을 꿰뚫었다.이진영은 허리를 숙여 수건을 적셨다. 꾹 짜낸 뒤 조용히 걸음을 옮겨 신하린 앞에 섰다. 수건을 조심스럽게 들어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널 데려가겠다고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갈 거야.” “예전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너한테 약속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모든 일 정리되는 대로 너랑 결혼할 거야.” “한 말은 반드시 지킬 거야.”지난 4년 동안 이진영은 많은 일을 해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만들어낸 적도 많았다. 그의 곁에 신하린이 있으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고싶어도, 미칠 듯 그리워도 끝내 연락하지 않았다. “전 안 해요. 절대 당신이랑 결혼 안 해요.”“이진영 씨, 당장 나가세요.” 그날 갑자기 나타난 그 여자...억지로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듯이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쏟아졌다. 그녀가 견뎌온 모든 고통은 전부 이진영 때문이었다. 이진영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낸 뒤 손까지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네가 기분 안 좋다는 거 알아. 그럼 나 한 대 쳐서라도 기분 풀래?” 신하린은 그 손을 냉정하게 뿌
강지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얼굴의 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심미연은 분명 병실에 와서 강상미를 만났지만 의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말 독한 여자야.’“시간도 늦었고 나도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먼저 간다.” 이진영은 담배를 끄고 일어나 곧장 밖으로 나갔다. 강지한은 술을 따라 마시며 심미연에 관한 생각에 잠겼다. ‘심미연은 언제 의술을 배운 거지?’ ‘이 3년 동안 이 여자는 도대체 뭘 했던 걸까?’이진영이 차에 올라타자 기사가 물었다. “도련님,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이진영은 미간을 문지르며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순간 마음 속이 답답해졌다. “병원으로 가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엔진을 돌렸다.신하린의 병실 앞에 도착한 이진영은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 이진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들어가서 잠깐 보고 올게요.” “신 대표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심미연 대표님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결론은 한 마디였다. 그들은 명령을 따랐기에 규칙을 어길 수 없었다.이진영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여기는 내 병원인데 병실도 맘대로 들어가지 못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돌아가 주세요.” 경호원이 좋은 말로 타일렀다. 하지만 그때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이진영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급하게 말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어요. 들어가게 해줘요.” 경호원은 그를 막으려 했지만 그때 또 한 번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경호원도 놀라서 급하게 병실 문을 열었다.이진영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하린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조명 아래서 그 모습은 다소 섬뜩하게 보였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다가가 신하린을 침대에 눕히고 몸에 상처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면서 옆에 멍하니 서 있던 경호원에게는 급히 소치쳤다. “의사
“너희 아버지가 최근에 한석훈과 많이 가까워졌다고 들었어. 내가 알기로 한석훈과의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더라.” 강지한은 박시훈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이진영에게 전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 사실 지난 4년 동안 그는 한석훈의 배후 세력을 조사해왔고 조사할수록 그 배후는 점점 더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너와 한유나 씨 사이의 일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야?” 이진영은 조용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혼약을 해제할 생각이야.” 그는 이미 한유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한유나는 최근 들어 그를 피하는 듯했다. 그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구아정은 어떻게 할 거야?” 강지한이 다시 물었다. “네 첫사랑이라고 했지?”“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고 그 뒤로 그냥 끝났어.” 이진영은 무의식적으로 신하린의 얼굴을 떠올렸다.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지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신하린이었다.이제 그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느꼈다. 그녀의 다리가 이렇게 된 지금 그녀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녀를 돌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구아정, 그 여자에 대해 조사해본 적 있어?” 강지한이 상기시키듯 말했다.“조사 중이야.” 이진영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겠어.”구아정은 분명 그를 찾으러 온 거였다.‘왜일까?’“신하린 씨의 일은 잘 해결됐나?” 강지한은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었다.“하린이 오른쪽 다리가 절단됐어.” 이진영은 말하면서도 짜증이 치밀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흡입했다. 연기가 흩어질 때 그는 다시 한 번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 강지한은 잠시
문소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살려주지 않으면 우리가 두 명의 아들을 뒀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 거야. 그럼 당신도 명예를 잃고 끝장날 거라고.” 그녀는 지금 이 남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가 두 아들을 뒀다고? 증거 없이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남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하며 눈빛은 강렬하게 빛났다. “당시 내 임신 검진서도 여전히 남아 있고 병원에 가면 내 출산 기록도 확인할 수 있어. 그 아이들의 혈액형은 당신이랑 똑같아.” 문소영은 그동안 이 모든 것을 철저히 보관해 왔다.“문소영, 나를 망치려고 하는 거야?” 남자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나는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래.” 문소영은 감정을 정리한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나에게 유리해.” “내가 원칙을 깨고 너를 돕기를 바란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남자는 술잔을 비운 후 탁자 위에 쿵 하고 내려놓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소영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며 부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에게 경고만 준 것뿐이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한 대로였다.잠시 후 문소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모님, 지시하신 대로 사람을 공해에 던졌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해외로 잠시 숨어 있어. 여기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기다려.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된다.] 문소영의 얼굴엔 차가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들이 돌아올 때쯤 심서연의 죽음은 이미 잠잠해지고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문소영은 전화를 끊고 술을 따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진영은 술을 많이 마셨고 잠간 밖으로 나왔다. 그때 한 남자의 뒷모습이 아버지를 닮은 듯해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멈칫하며 발걸음
문소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말없이 있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TV 뉴스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미칠 듯했다. 문소영은 자신이 더 이상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믿어왔다. 남자는 그녀의 침묵을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문소영은 깊은 생각을 떨쳐내고 몸을 곧게 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필요해서 왔어. 우리 아들에 관한 일이야.”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우리가 아들이 있다고? 그럴 리가...” “쌍둥이였어. 작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납치됐고 큰 아이는 강지성. 몇 년 전에 사고로 죽었어.” 문소영은 눈물을 훔치며 말을 급히 이어갔다.이건 그녀가 삼십 년 넘게 숨겨온 비밀이었다. 그녀는 이 생에서 절대 말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 이렇게 쉽게 입 밖으로 내뱉게 되었다. 문소영의 말은 마치 폭탄처럼 남자의 가슴 속에 떨어졌고 남자는 동공이 급격히 축소되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문소영과 자신이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사실 처음 내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당신에게 말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에서 강제로 나를 강우석과 결혼시키려 했고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어. 그러자 부모님은 나를 감금하고 내 핸드폰도 압수했어.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어.” 문소영은 말하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로 강씨 가문에 보내졌었다. 강우석과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석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강우석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그 상대가 바로 강지한의 어머니였다. 7개월 후 그녀는 쌍둥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그 중 한 명이 사라졌다. 그녀는 30년 동안 그 아이를 훔쳐간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그 사람이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