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21화

Author: 십일
이미윤은 소리를 질렀다.

“사기꾼! 넌 처음부터 거짓말로 모두를 속였어!”

이미숙이 대답했다.

“난 확실히 기억을 잃었었어. 하지만 최근에야 떠올랐어.”

일부 기억은 여전히 흐릿했기에, 그녀는 일부러 떠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을 줄이야.

“너... 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방금 한 말들... 다 인정하는 거네?”

이미윤은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난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방금 전에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화를 내던 이미윤이 이제 와선 도망치듯 외면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숙은 개의치 않고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언니가 말했잖아? 난 어릴 때부터 사랑을 독차지했고, 언니는 마치 미운 오리 새끼 같았다고. 부모님은 날 아끼고, 정훈 오빠도 날 좋아하고.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이미숙이‘정훈 오빠도 날 좋아하고’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기색이었다.

“먼저 부모님부터 말해볼까? 난 친딸이고, 넌 입양된 아이니까. 하지만 그 전제 아래서도 부모님은 너를 소홀히 한 적 없었어.”

“항상 널 부족함 없이 키웠고, 내가 가진 건 너에게도 똑같이 줬어. 오히려 웬만한 친자식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을걸?”

“하지만 인간은 원래 만족을 모르는 법이야. 많이 가져도 더 갖고 싶고, 남들보다 덜하면 억울한 법이지.”

이미윤이 소리쳤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래, 부모님은 날 차별하지 않았어. 하지만 널 더 사랑했잖아!”

“부모님이 자식을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더 애착이 가는 쪽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걸 탓할 순 없지.”

이미숙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럼 네가 대답해 봐. 만약 너에게 아들이랑 입양한 아이가 있다고 쳐. 너 정말 두 아이를 똑같이 대할 자신 있어?”

이미윤은 말문이 막혔다.

“넌 스스로도 하지 못하는 일로 부모님에게 요구했던 거야.”

사람은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22화

    “사실 네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불구가 되었을 수도 있고, 깊은 산속으로 팔려갔을 수도 있고, 거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렇게 잘 살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이미숙, 넌 왜 항상 운이 좋은 거야? 납치당했는데도 멀쩡히 돌아왔고, 돌아와도 모두들 널 예전처럼 대해 주잖아.”이미숙은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부러워하는구나?”이미윤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부러워. 하지만 그것보다 난 네가 더 미워!”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정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이미숙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안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정은아, 나 여기 있어.”“할머니께서 엄마 어디 갔냐고 찾고 계세요.”“아까 물건 좀 정리하고 있었어. 이제 갈게.”이미윤은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눈송이가 그녀의 어깨 위로 떨어져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고, 차가운 기운이 머리부터 심장 깊숙이 스며들었다.심정훈과 현빈 부자가 서재에서 나왔을 때, 거실에는 이미숙만 남아 있었다.이미윤은 언제 떠났는지도 모른다.심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버지, 저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현빈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심정훈은 이미숙을 바라보며 다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요동쳤다.“새해 복 많이 받아, 미숙아.”“네, 고마워요.”이미숙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한쪽은 깊은 수렁 같았고, 다른 한쪽은 잔잔한 호수 같았다.“아빠랑 얘기 끝났어요?”“응.”심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돌아가려고.”“그래요.”이미숙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여보, 잠깐만 와 봐. 우리 같이 형부 배웅하자.”그 한마디는 마치 화살처럼 심정훈의 가슴을 찔렀다.심정훈은 시선을 드리우며 눈빛 속의 아픔과 쓸쓸함을 감췄다.“그래! 바로 갈게!”소진헌은 부리나케 주방에서 나왔다.손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고, 급하게 닦으며 말했다.“두유 만들고 있어. 금방 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23화

    “당신 어떻게 감히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어?”남자는 핏줄이 불끈 솟아오르며 이를 악문 채 한 글자 한 글자 쥐어짜듯 내뱉었다.이미윤은 시선을 피하더니 이내 질문을 했다.“여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심정훈은 냉소를 지으며 차갑게 이미윤을 쏘아붙였다.“여보? 떳떳했다면 따귀를 맞고도 날 그렇게 불렀을까? 욕부터 퍼붓는 게 정상 아니야?”이미윤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싸늘한 기운이 등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졌다.“나... 나는 그저 당신이 술에 취해서 그랬다고 생각했을 뿐인데...”“나 오늘 술 한 방울도 안 마셨어.”이미윤은 힘겹게 침을 삼키며 억울한 기색을 띠었다.“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화를 내는 거예요? 나는...”말을 잇던 이미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세월이 지나도 고운 눈매와 정교한 이목구비는 여전했다. 성숙한 분위기 속에 풍겨 나오는 그윽한 매력은 변함없었다.“나도 귀하게 자란 사람이에요.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함부로 손을 대면 내 체면은 뭐가 돼요?”이미윤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속상한 아내가 남편에게 토라지듯이.서운함, 애교, 그리고 은근한 유혹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심정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차갑게 굳은 얼굴로 이미윤을 위아래로 훑었다.그 시선에는 조롱이 서려 있었다.“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할 줄은 몰랐네. 아니, 감히 이런 배짱까지 키웠을 줄이야?”심정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귀한 몸이라고? 방금 이원에서 당신이 한 말과 좀 다르던데?”‘나와 이미숙이 하는 말을 들었어.’이미윤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눈빛이 흔들렸다. 당혹, 두려움, 그리고 절망.“여보, 내 말 좀 들어봐요. 나... 나 일부러 미숙이랑 싸운 게 아니에요. 당신 혹시 서재 발코니에 서서 뭐라도 본 거예요?”“하, 이미윤. 아직도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심정훈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난 발코니에서 본 게 아니야. 정원에 나가 바람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24화

    “왜?! 대체 왜 그랬어! 미숙이는 당신 동생이잖아!”“동생? 그래요, 이미숙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잖아요, 늘 나보다 사랑을 많이 받았고요! 당신도 그 여자를 좋아하잖아요. 도대체 왜요?”“그래서 그런 이유로 미숙이를 죽이려 했단 말이야?!”“맞아요! 부러워서 그랬어요! 질투도 나고요!”“이미윤, 당신 미쳤어! 정말 미쳤다고!”“하하하... 그래요, 나 미쳤어요. 20년 전부터 난 이미 미쳤겠죠! 특히 당신이 이미숙과 다정하게 붙어 있을 때마다, 난 달려가서 이미숙의 목을 조르고 싶었으니까요!”“오늘까지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신이 애틋한 눈빛으로 이미숙을 바라볼 때마다, 평생을 함께해도 부족할 것처럼 바라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미쳐가고 있었는지 알아요?!”“심정훈, 당신은 이제 내 남편이에요. 우리가 한 가족이라고요! 20년이 넘었는데도 왜 아직도 이미숙을 못 잊는 거죠? 그 여자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 이미숙을 그리워하고 있잖아요!”“소진헌을 볼 때마다 질투가 나겠죠? 아마도 소 서방이 사라지길 바랐을 거예요, 안 그래요? 소진헌이 당신에게 있어 그런 존재라면, 나에게 있어 이미숙도 마찬가지예요.”“우리는 같은 사람이에요. 가질 수 없어서, 사랑에 미쳐서,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발버둥 치는 불쌍한 인간들이라고요!”심정훈은 차갑게 말했다.“당신 그 말 틀렸어. 내가 소진헌을 아무리 질투해도 절대로 그 사람을 해치진 않을 거야. 왜냐하면... 그 사람이 없다고 해도, 미숙이가 내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하하하! 잘 말했어요! 그럼 우리 확실히 다르네요. 나는 이미숙을 없애버리면, 당신은 내 것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하하!”“그러니까 결국 난 틀리지 않았어요. 이미숙이 사라지자, 당신은 나와 결혼했고, 우린 아이까지 낳았잖아요. 20년 넘게 함께 살았고요. 이거면 충분하지 않나요?”심정훈은 온몸이 굳었다.이미윤은 다시 한번 비수 같은 말을 내뱉었다.“만약 내가 냉혹한 킬러라면, 당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25화

    [정은아, 새해 복 많이 받아.]남자의 목소리는 고요한 밤에 흐르는 첼로 선율처럼 낮고 깊었다.주위는 조용했지만, 재석의 목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정은은 귀가 간질거려 손끝으로 살짝 긁고는 핸드폰을 반대쪽으로 옮겼다.“선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그때, TV에서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 울려 퍼졌다.“5, 4, 3, 2...”[정은아, 고개 들어봐.]재석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은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가득 터지는 불꽃을 보았다.수많은 불꽃이 땅으로 쏟아지는 듯한 모습에 정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어머, 이 많은 불꽃놀이를 어떻게 동시에 터뜨린 거지?”“어? 이거 일반 불꽃이 아니야! 전자 불꽃이잖아!”“뉴스에서는 아직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벌써 출시된 거죠?”“이미 해결된 거겠지!”“와, 너무 예쁘네! 화약 냄새 하나도 안 나!”“게다가 전자 불꽃놀이는 더 오래 머물고, 손만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워 보여...”“앞으로 매년 설날마다 볼 수 있는 거야?”“당연하지! 개발한 기술은 이렇게 써먹야지!”이웃들도 모두 밖으로 나왔는데, 떠들썩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정은도 넋을 잃고 하늘을 올려다봤다.어둠 속에서 터지는 불꽃은 눈앞에서 피어나다 사라졌다.한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 찬란했다.아름다운 것은 사라진다 해도 후회할 필요가 없었다.꽃이 피고 지는 것도 다 자연의 법칙이니까.전화기 너머로 재석이 말했다.[정은아, 벌써 세 번째 해가 찾아왔어.]정은은 미소를 지었다.하늘에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시간 참 빠르네요... 같이 설날을 두 번이나 보냈다니.”[영상통화 할 수 있어?]“네, 할 수 있어요.”곧 영상통화가 들어왔고, 정은이 바로 받았다.화면 속의 재석은 목폴라 니트를 입고 있었다. 조명이 비추자, 옆모습은 부드러운 빛에 감싸여 평소보다 온화해 보였다.그의 뒤로는 끝없이 터지는 불꽃이 있었고, 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26화

    “왜 안 좋은데요?”“마음이 쓰려서 가만히 못 있겠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기다려요, 어머니는 형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래서 내가 나온 거지. 그런데 너 아까 누구랑 통화했길래 그렇게 웃고 있었던 거야?”재석이 되물었다.“그게 형과 무슨 상관인데요?”“야, 재석아. 그건 아니지. 내가 그래도 형인데, 형 체면 좀 세워주면 안 되냐?”“싫은데요.” 재석이 고개를 저었다.“흥, 꽁꽁 숨기는 거 보니... 혹시 여자친구냐?”“헛소리 하지 마요.”“와, 진짜 여자친구인가 보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어머니! 재석이가 여...”재석도 동시에 외쳤다. “어머니! 형이 또 담배...”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닫았다.“야, 너희 둘 왜 눈을 마주치고 그러냐?”조지훈이 웃으며 다가와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아까 뭐라고 소리쳤어? 무슨 중요한 일인 거 같은데?”재석과 지언은 동시에 말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그게 형이랑 무슨 상관이에요?”말하면서 두 사람은 얼른 자리를 떠났다.“야! 도망가지 마! 뭐 그리 대단한 비밀이라고 나만 못 듣게 하는 건데?!”지훈도 두 사람을 쫓아갔다.세 사람은 앞뒤로 들어섰고, 그렇게 강서원과 맞닥뜨렸다.그녀는 솔로인 세 아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바람 좀 쐬다 왔어요.”“집이 그렇게 답답한 거야?”“참, 지언아, 모레 나랑 같이 지씨 가문에 가자.”“왜요?”“설 인사해야지.”지훈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겸사겸사 지씨 가문의 아가씨랑 맞선도 봐야 하지 않아?”지언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 갑자기 생각났네요. 모레 출장이 있어서 안 돼요. 어머니, 그냥 지훈이 데려가세요. 얘 엄청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안 돼요!” 지훈은 손을 내저었다. “전 절에 가서 향을 올려야 해요. 올해 우리 집 운세는 제 손에 달렸다고요! 지씨 가문이 일부러 맞선 핑계 대고 우리 집 자리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27화

    친척과 친구들이 묻자, 서영숙은 그저 도겸이 출장을 갔다며 핑계를 댔다.하지만 다들 바보가 아니었다. 누가 섣달 그믐날에 출장을 가겠는가?그렇다고 굳이 분위기를 깨며 캐묻는 사람도 없었다.서영숙은 문득 예전이 떠올랐다.도겸이 사업에 성공해 승승장구하던 시절, 그녀도 덩달아 고개를 들 수 있었다.친척이며 친구들이 서영숙을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대단한 아들 하나 두셨네요.”“그러게, 정말 훌륭한 아들 하나 낳았어.”세정도 예쁘고 다정하며, 효심까지 깊어 곁에서 명절 손님맞이까지 도왔다.그런 모습을 보며 다들 세정을 ‘우아하고 품위 있다’며 감탄하곤 했다.정은은 강씨 가문의 명절 식탁에 앉을 자격조차 없었지만, 해마다 빠짐없이 선물을 보냈다.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하고, 그 어떤 것도 허투루 준비한 것이 없었다.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과거의 일로 되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서영숙은 마음이 공허해졌다.‘만약 그때, 서정은이 우리 가문에 들어오는 걸 막지 않았다면, 도겸도 지금처럼 변하진 않았겠지?’‘우린 여전히 화목한 가족으로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웃음이 넘치고, 모자간의 정이 변함없는 그런 모습으로.’서영숙은 지친 듯 눈을 감았다.그녀는 지금 후회를 하고 있었다. 뼈저린 후회를. 그러나 이미 돌이킬 길이 없었다....“도겸이 형, 정말 혼자 들어갈 거예요?”“그래.” 도겸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너 먼저 가.”“정말이죠? 그럼 나 먼저 간다?”“그래, 빨리 가.”그가 별장 문을 여는 걸 보며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섣달 그믐날, 그는 본래 가족들과 밥을 먹고, 카드놀이도 하고, 설 특집 방송을 보며 한가롭게 보낼 예정이었다.그러나 술집 매니저의 다급한 전화 한 통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도겸이 취했던 것이다.두 사람 모두 그 술집의 단골 손님이었기에, 매니저는 가장 먼저 선우에게 연락했다.하는 수 없이 그는 배탈이 났다며 핑계를 대고 가족들 몰래 빠져나와 도겸을 데리러 갔다.하지만 오래 자리를 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28화

    가족사진도 찍었고, 부모님도 만났고, 심지어 함께 설까지 보냈다.지난번처럼 밥상만 찍고 겨우 정은의 반쪽 얼굴만 찍은 게 아니라, 이번엔 당당하게 온 가족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이 정도면 단순히 사귀는 게 아니라, 결혼 이야기까지 오가는 분위기 아닌가? 이러니 도겸이 형이 미쳐버릴 만도 하지.’선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떠보기로 했다.‘만약, 만약 정은 누나가 현빈이 형 가족을 만난 게 단순한 오해라면, 도겸이 형도 술로 속을 달랠 필요가 없을 거야.’“현빈이 형,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제야 새해 인사 하네요!”[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선우야.]“집에서 설 보내고 있는 거예요? 아저씨 아주머니께도 안부 전해줘요.”[그래, 고맙다.]“우리 집이랑 형 집도 가까운데, 기다려요. 좋은 술 두 병 갖다 줄게요.”[아냐, 난 지금 본가에 있는 게 아니야.]“네?” 정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럼 어디에 있는 거죠?”[할아버지 댁에.]“아.” 선우는 일부러 맞장구쳤다. “이 술 진짜 괜찮은 건데, 그럼 아저씨랑 아주머니께 보내드릴게요. 형이 돌아오면 같이 마시면 되니까요. 그런데, 외갓집에서 설을 보내면 아무래도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거 아니에요?”반대편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선우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돌렸다.“아니, 어른들도 좀 다르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건가요? 매년 같은 이야기, 똑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니 진짜 질린다니까요.”현빈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너에 비하면 난 오히려 편한 거야. 올해는 결혼 이야기 한 마디도 안 꺼내셨거든.]이춘재와 봉수진의 관심은 오랜만에 돌아온 딸에게 쏠려 있었으니, 현빈을 신경 쓸 틈이 없었던 것이다.선우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결혼 이야기를 안 꺼내셨다고? 그럼 이미 결혼할 사람이 있다는 뜻 아닌가?!’‘도겸이 형이 이 말 들으면 완전히 미쳐버릴지도 몰라.’...별장 안.도겸은 불을 켜며 안으로 들어왔다.밖에서 눈바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29화

    그러나 들어온 사람은 정은이 아니라 경혜였다.남자의 어두운 표정을 본 여자는 가슴이 철렁하더니 급히 해명했다.“선우 씨가 전화했어요. 도겸 씨가 취했다고요. 혼자 두는게 걱정돼서 나보고 와보라고 했고요.”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도겸 앞으로 다가갔다.“괜찮아요? 그렇게 많이 취한 것 같진 않은데요?”남자는 눈에 스친 실망을 감추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경혜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럼... 난 먼저 가볼게요.”“응.”여자는 뒤돌아서 나가려 했다.그때였다.“꺄악!”밖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도겸은 미간을 찌푸리며 급히 나가보았다.경혜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발목을 살펴보았다.“괜찮아? 어디 다친 거 아니야?”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경혜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괜찮아요, 괜찮으니까 별거 아니에요.”도겸은 그녀의 발목을 훑어보며 무심하게 말했다.“부었네.”“아, 그냥 살짝 접질린 거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경혜는 일어서려 했다.그러나 발에 힘을 주는 순간, 찌릿한 통증이 몰려왔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남자는 미간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그럼에도 경혜는 애써 태연한 척 웃고 있었다.“정말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나아질 거예요.”그러나 다음 순간, 도겸은 말없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거실로 데려갔다.경혜는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속으로는 기쁨이 넘쳐났다.‘제대로 걸렸군!’도겸은 원래 홈닥터를 부르려 했지만, 연말인 데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그만두었다.대신 경혜에게 물었다.“심하게 다친 거야?”“아니에요, 괜찮아요. 조금 쉬면 나아질 거예요.”경혜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도겸은 여전히 약상자를 꺼냈다. 안을 뒤적이더니 연고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거 발라.”“아, 고마워요.”십 분 후.경혜가 발목을 문지르며 말했다.“이거 바르니까 처음엔 시원하더니 점점 따뜻해

Latest chapter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8화

    다음 날 아침, 세 사람은 516번 버스에 올라탔다.그런데... 차 안은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광주리와 바구니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안에는 갓 딴 채소와 농산물이 가득했다. 민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죠?”세 사람은 승차하자마자 중간으로 밀려났다. 발밑에는 광주리들이, 옆에는 앉지 못하고 서 있는 노인들이 바글거렸다. 상대방이 하품만 해도 아침에 뭘 먹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정은 언니, 무서워요...” 민지는 눈물이 맺힌 채 정은을 찾았지만, 이미 뒤로 밀려난 정은 대신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너...”“쮼, 나 무서워...”서준의 마음이 약해졌다. “이...이쪽으로 와.” 그는 옆을 가리키며 자리를 비켰다.민지가 다가오자 서준이 설명했다. “아침에 채소를 팔려고 나가시는 거야.”그리고 그 노인들은 딱 봐도 시골 사람들이었다.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민지를 밀쳤고, 그녀는 앞으로 넘어졌다. 서준은 재빨리 품으로 민지를 안으며 그녀가 의자에 부딪히는 걸 막았다.“괜찮아?” 서준은 긴장해하며 민지를 살폈다.“서준아, 숨... 숨 막혀...”서준이 즉시 창문을 열자, 주변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추운데 창문을 왜 열어!”“머리 아프니까 닫아!”“빨리 닫으라고!”서준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제 친구가 숨이 막혀서 그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뚱뚱하면 버스 타지 말지 그래!”“우리 노인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민지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떨구었다.서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몸무게와 상관없이 표 샀으면 버스를 탈 권리가 있어요. 여러분의 광주리들도 자리 많이 차지하시던데, 광주리의 표까지 사신 거예요?”차 안이 조용해졌다. 기사도 거울로 서준을 흘끗 보았다.“요즘 애들 입만 살았네...” 누군가 중얼거렸다.서준은 태연한 표정이었다.민지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숨을 고르더니 감탄했다. “쮼, 너 방금 완전 멋있었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7화

    J시의 건조한 기후와 달리, Y시는 전형적인 습한 기후였다.고속열차가 도착할 때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은 일행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을 스치는 찬바람에 목을 움츠렸다. 추위가 모공마다 스며들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민지는 목도리를 꽉 조이며 어깨를 움츠린 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마치 살찐 메추라기와 같았다. “정은 언니, 빨리 가요. 열차역은 사방으로 뚫려서 너무 추워요.”입으로 말을 할 때마다 하얀 김이 서렸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먼저 역을 나가자.”커다란 역도, 북적이는 인파도 없는 작은 시골역은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부유하지 않은 마을답게 한적하기 그지없었다.“방금 알아봤는데, 역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버스는 하루 한 대뿐이래요. 막차는 이미 떠났으니 오늘은 탈 수 없어요.”서준이 냉정하게 분석했다. “오늘 내로 가려면 승합차를 타거나 전세를 내어 차 한 대 빌릴 수밖에 없어요.”“전세차?”정은이 물었다.“호객하는 사설 승용차예요.” 서준이 보충했다.정은은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아침에 버스를 타는 게 낫지 않을까?”민지는 즉시 동의했다. “그래요! 낮에 움직이는 게 안전할 거예요.”서준도 수긍했다.세 사람이 작은 여관에 체크인할 때는 이미 밤 8시, 거리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민지가 창문을 열자, 몇 안 되는 가게 불빛만이 어둠을 가르고 있을 뿐이었다.“정은 언니... 너무 조용해서 소름 끼쳐요...”정은은 인스턴트 푸드와 라면을 건넸다. “이것밖에 없어. 참아.”원래는 바비큐를 먹으러 가려 했지만, 가게 주인이 철판 닦던 수건으로 고기를 닦는 걸 보고 세 사람은 식욕이 떨어져 버렸다.민지는 라면 냄새를 맡으며 환호했다. “맛있겠다.”“너답지 않네.” 정은이 웃었다.“왜요?”“입맛이 까다로운 네가 라면을 좋아하다니.”“배고프면 뭐든 맛있죠.” 민지는 후루룩 라면을 들이켰다.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6화

    재운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리 없었다.“그래서 계속 생각해봤는데, 너무 이상해요.”정은은 이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확실히 이상하네.”“그 3학년 선배 말로는, 진일 선배 부모님이 건강이 안 좋으시고 자주 편찮으시다고 했어요. 그래서 학교에 늦게 오는 거 아닐까요?”서준은 차분하게 분석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전에도 늦은 적 없으니 이렇게 갑자기 늦을 리 없어. 다른 돌발 상황이 생긴 게 분명해.”“다른 상황?”“응. 예를 들어 부모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떠날 수 없거나, 집안에 무슨 변고가 생겨서 올 수 없다든가.”“만약 진일 선배의 집안 문제라면, 재운이까지 안 온 건 어떻게 설명하지?”“그건...”정은이 말했다.“추측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지금은 직접 선배에게 연락하는 수밖에 없어.”그러나 이후 며칠 동안 세 사람은 전화, 이메일, 문자, SNS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진일의 답장이 없었다. 문자는 모두 바다에 빠진 돌처럼 소식이 없었다.“이젠 어떡하죠?”개학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다행히 정은은 오미선에게 설명했고, 오미선은 학교 측과 협의해 두 사람의 처분을 면하게 했다.“3주까지만 기다려줄 수밖에 없어. 그 이상은 안 돼.”오미선이 말했다....“벌써 2주 지났는데... 남은 일주일 안에 안 오면 정말 제적당하는 거잖아요?”민지는 초조해하며 실험실을 왔다갔다했다.서준이 말했다.“우리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이젠... 운명에 맡길 수밖에.”“하지만... 정은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정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선배 집 주소부터 찾아보자.”“주소를요?” 민지가 놀라며 물었다. “직접 찾아가려고요?”“무슨 일인지 확실히 알아야 해. 가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야.”“나도 갈래요!”“여자 둘이 가기엔 위험하니 나도 함께 가요.”“네가?” 민지는 서준을 훑어보았다. “너 싸움 잘 해?”‘얘는 자신이 무슨 조폭인 것처럼 말하네.’“꼭 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5화

    서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아, 신경 쓰지 마!” 민지는 가볍게 팔을 저으며 말했다.“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요. 학교에서 정말 뭔가 의도가 있다면 알아서 연락 올 거예요. 그럼 그때 가서 대응하면 되지. 여기서 괜히 혼자 추측해봤자 뭐하겠어요?”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차피 문제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지. 뭐가 두려워?”“응! 맞아요! 우리가 또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논문을 발표했잖아요! 이렇게 대단한 일을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그래.”민지가 서준을 바라보자,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좋네요! 오늘 시내 나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도심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이 있는데, SNS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어요. 설 보낼 때부터 가보고 싶었어요!”민지의 맛집 탐지 레이더가 작동하기 시작했다.실험실이 교외에 위치해 있어서, 그녀는 도심을 갈 때마다 항상 ‘시내에 간다'고 표현했다.서준은 풀이 죽었다. “다른 방식으로 축하할 순 없어?”“양식도 괜찮아.” 민지가 대답했다.서준은 말문이 막혔다.“아니면 샤브샤브? 매운탕? 난 다 괜찮아.”결국 세 사람은 그 새 레스토랑을 찾아갔다.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벌써 저녁 8시가 되었고, 도시의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참, 진일 선배는 왜 안 보이는 거죠?” 민지는 문득 실험실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본 진일의 깨끗한 실업대가 떠올랐다.서준이 말했다. “개학 후로 한 번도 못 봤는데. 누나는요?”정은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못 봤어.”“이상하네...” 민지가 중얼거렸다. “졸업을 앞둔 이상, 수업도 없을 텐데. 진일 선배는 당연히 실험실에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설 전에 진일은 두 개 데이터를 처리한 다음, 논문을 완성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었다.정은이 추측했다. “아직 학교에 안 온 거 아니야?”서비대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비교적 자유로웠는데, 온라인 등록만 완료하면 등교 시간이 조금 늦어도 괜찮았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4화

    “일상 연구와 학술 경기는 별개야. 더구나 올해 해외 교류 연구진을 확정했고, 지금도 긴박하게 경기 훈련을 진행하고 있지. 지금 임시로 선수를 교체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부총장은 한숨을 내쉬었다.“저도 다 알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저희 학교는 이미 5년 연속 외국 대학과의 경기에서 졌습니다. 올해 또 진다면...”국내 각 대학교 간의 경기가 아니라, 국내외의 싸움이었다.같은 나라 학생들에게 지는 것은 수치스럽지 않고 오히려 괜찮았다.하지만 외국인에게 진다면...국내외 대학 간의 우호적인 경기이니, 그들이 남보다 못하다면 당연히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명예, 과학연구수준, 민족 자신감과 관련된다.“총장님, 올해는 정말 질 수 없습니다.”송영한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소정은 팀이 출전하면 반드시 이기는 건 아니잖아? 그건 어떻게 확신하는 건데?”“확신할 수 없지만, 위기를 직면할 때, 기발한 계략을 써야 승리할 수 있죠!”...무한 실험실, 휴식 구역.“에취! 에취! 에취!”민지는 연속 재채기를 세번 하더니 코를 비비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틀림없이 누군가 뒤에서 내 험담을 하고 있는 거야...”서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건 아... 에취!”“봐봐!”민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서준을 가리켰다.“너도 시작했네!”서준은 쓰던 휴지를 뭉쳐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난 감기에 걸린 거야. 만약 정말 누군가가 험담을 했다면, 정은 누나는 왜 멀쩡한...”“에취!” 정은은 궁색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그게... 나도 왜 이렇게 공교로운지 모르겠지만, 난 확실히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서준은 말문이 막혔다.민지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헤헤, 나 정말 똑똑해.”그녀는 언제나 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서준은 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개학하자마자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 쪽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니. 지금은 이미 전 대학원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3화

    대학원 측과 학교 측이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당연했다.왜냐하면 JCR(저널 인용 보고서)의 최신 글로벌 학술지 영향력 순위에 따르면, ‘네이처’는 인용지수 40.137로 10위를 기록한 반면, 그 하위 간행물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는 41.677로 8위에 올랐기 때문이다.단순히 영향 인자만 놓고 보면, 하위 저널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오히려 본지인 네이처를 앞지른 셈이다.그리고 1년 만에 정은 팀은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이게 무슨 뜻인가?아무리 천재라 해도 이건 무리였다.“이 아이들, 정말 대단하군...” 송영한은 한숨을 쉬었다. “원래 이 학술 성과는 우리 학교 이름으로 발표됐어야 했는데, 참...”말을 하던 그는 잠시 멈췄다.처음에 정은 세 사람이 스스로 실험실을 세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송영한은 놀랐다. 하지만 곧 그게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실험실은 정말로 건설되었고, 학교 실험실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과 조건을 갖춘 실험실이었다. 게다가 많은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커팅식을 열었다.그때 송영한은 자신이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다.정은은 절대 간단한 학생이 아니었다.다행히도 그녀는 서비대학교 학생이었기에, 그 능력을 인정해도 안 될 게 없었고, 이건 대학원과 학교 전체에게 있어 엄청난 경사였다.하지만 오미선은 정은 팀의 연구 성과가 학교와 무관하다고 선언했는데, 논문 서명까지 하지 않겠다고 했다.그 순간, 마치 누군가 학교의 뺨을 내리친 것 같았다.서명하지 않겠다는 말은 곧 학교 측이 연구 성과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송영한은 그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하지만, 학교의 총장인 그는 침착하게 감정을 추스르고, 아무런 실수 없이 대처했다.그렇지만 몇 일 후, 그는 부총장과 생명과학대학의 학장에게 크게 화를 냈다.왜 송지혜라는 장본인에게 직접 화를 내지 않았을까?그건 그녀가 아직 욕을 먹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생명과학대학의 학장은 그 후로 송지혜를 처리할 것이다.지위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2화

    현빈은 자신이 어떻게 들킨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네가 한번 말해봐, 왜 우리 부자는 미숙이와 미숙이 딸이란 고비를 넘지 못한 걸까?”현빈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설마 유전 때문인가? 하하, 그럼 정말 신기하군...” 심정훈은 술잔을 흔들며 담담하게 웃었다. “제기랄!”“왜 그러세요?” 현빈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심정훈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센 척 안 할 거야?”현빈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심정은 잠시 침묵한 후, 경험자로서 한 마디 덧붙였다.“내가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해주지, 네가 마음을 이미 많이 꺼내 놓았다면, 그걸 잡기엔 이미 늦었어.”“가능하면 지금 그만두고, 아직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틈에 최대한 빨리 손을 떼야 해. 너무 깊이 빠져들면, 너 자신까지 망칠 수 있어.”“아버지 경험 얘기는 그만하세요. 그렇게 성공적인 사례도 아니잖아요.”심정훈은 그 말에 잠시 묵묵히 앉아있었다. 이번엔 그가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두 사람은 술에 취하지 않고, 술집에서 나와 각자 떠났다.“정말 집에 안 가실 거예요?” 현빈이 물었다.“응.” 심정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알겠어요, 그럼 시간 나시면 비서더러 어머니에게 소식 전해주라고 하세요. 완전히 관계를 끊어버리면, 사회적으로도 좋은 영향이 없을 거예요.”“누구에게 좋은 영향이 없다는 거야?” 심정훈은 다시 물었다.“저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심씨 가문에도 모두 좋지 않아요.”심정훈은 손에 든 담배를 흔들며 대답했다.“싫어. 그럼 먼저 갈게.”현빈은 한숨을 쉬며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정은은 학교에 있으면서도 이씨 가문과 심씨 가문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이미 캠퍼스로 돌아온 그녀는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있었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실험실로 향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그녀가 속한 연구팀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1화

    “응.” 심정훈은 담담하게 답했다.지금 이렇게 보면, 아버지와 아들은 정말 놀랍도록 닮았다.심정훈은 이미윤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나갔다. 현빈의 옆을 지날 때, 그는 잠시 멈추어 아들의 어깨를 두드린 후 계속 걸음을 옮겼다.이미윤은 이 모든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평온한 두 부자를 보면서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현빈! 너 알고 있었지, 그렇지?!”이미윤은 달려가 현빈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너 다 알고 있었어?! 응?!”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언제부터?”“처음부터요.”“하하하...” 이미윤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알고 있었군... 나만 바보였어!”“좋아, 내 남편과 아들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어!”“어머니, 잘못을 저지르신 이상, 그 대가를 치러야 하죠. 아버지께서 기회를 주셨지만...”“내가 자초했다는 거야?!”“그렇게 볼 수 있죠.”...심정훈은 이미윤의 처분에 대해 직접 이씨 가문을 방문하여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이춘재는 오랫동안 침묵하다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봉수진이 덧붙였다. “앞으로 우지영은 우지영이고, 현빈이는 우리의 손자야. 그 아이는 우리 집안과 아무 관련도 없어.”“알겠습니다.” 예상된 대답이었다.하지만 심정훈은 묻고 싶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그러나 그는 끝내 입밖에 내지 못했다.떠날 때 봉수진이 문앞까지 배웅하며 말했다.“미숙이 없으니까 그만 둘러봐.”심정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봉수진은 잠시 동정을 느꼈다.“심 서방, 넌 좋은 아이야. 하지만 너와 미숙이는 앞으로 인연이 없을 거야. 세상일이란 그래...”“다행히 미숙이는 20년간 큰 고생을 안 했어. 소 서방이 잘 보살펴 줬지. 요즘 같이 지내보니, 소 서방도 참 좋은 사위더라고. 너도...” 봉수진은 말을 멈추었다.“이젠 내려놓아야 해. 집착과 사랑은 달라. 우리는 네가 과거에 갇히는 걸 원치 않아. 미숙이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0화

    이미윤은 멍하니 서서 얼굴은 점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변해갔다.“당... 당신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녀는 손발이 차갑게 식으며 온몸을 떨었다.심정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호구로 보여? 남의 남자 자식이나 키워주는 호구 말이야. 천만에!”심씨 가문의 아이는 출생 후 신생아 검진과 동시에 친자 확인 검사를 기본으로 했다.그래서 심정훈은 현빈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란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이미윤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수작은 조금만 조사하면 바로 들통날 일이었다.이미윤은 20년 넘게 심씨 가문을 속였다고 흐뭇해했지만 알고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속고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왜... 왜 그런 거예요?” 이미윤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알면서 왜 나한테 묻는 거예요?”“이런 심각한 일로 몰아붙이지 않으면, 당신은 덜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스스로 털어놓겠어?”방금 이미윤은 심정훈의 질문에 수많은 일을 폭로했다.“내가 이미숙을 해쳤다고 말해도 좋고, 처음부터 계획하고 당신과 결혼했다고 비난해도 좋아요. 하지만 현빈이의 신분을 의심하면 안 되죠!”앞의 두 대답이 바로 심정훈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설마... 그 전에 비서가 가져온 이혼 서류도 다 당신의 연기였던 거예요?” 이미윤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심정훈은 냉소를 지었다. “나도 가문의 어르신들도 모두 상속자인 현빈이 무척 마음에 들거든. 내 후계자를 위해 이혼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이미윤은 마음이 잠시 놓였다.“대신 우리 사이에 다른 아이도 없을 거야.”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당신은 영원히 심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남을 거야. 훌륭한 후계자를 낳아준 대가로.” 심정훈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야. 이 집에 난 다시 오지 않을 거고, 당신 전화도 받지 않을 거야. 매달 생활비는 계속 줄 수 있지만, 모든 모임은 금지야.”“집에는 당신을 감시할 집사가, 외출할 땐 따라다닐 기사가 붙을 거야. ‘사모님'이라는 이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