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어떻게 감히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어?”남자는 핏줄이 불끈 솟아오르며 이를 악문 채 한 글자 한 글자 쥐어짜듯 내뱉었다.이미윤은 시선을 피하더니 이내 질문을 했다.“여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심정훈은 냉소를 지으며 차갑게 이미윤을 쏘아붙였다.“여보? 떳떳했다면 따귀를 맞고도 날 그렇게 불렀을까? 욕부터 퍼붓는 게 정상 아니야?”이미윤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싸늘한 기운이 등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졌다.“나... 나는 그저 당신이 술에 취해서 그랬다고 생각했을 뿐인데...”“나 오늘 술 한 방울도 안 마셨어.”이미윤은 힘겹게 침을 삼키며 억울한 기색을 띠었다.“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화를 내는 거예요? 나는...”말을 잇던 이미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세월이 지나도 고운 눈매와 정교한 이목구비는 여전했다. 성숙한 분위기 속에 풍겨 나오는 그윽한 매력은 변함없었다.“나도 귀하게 자란 사람이에요.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함부로 손을 대면 내 체면은 뭐가 돼요?”이미윤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속상한 아내가 남편에게 토라지듯이.서운함, 애교, 그리고 은근한 유혹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심정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차갑게 굳은 얼굴로 이미윤을 위아래로 훑었다.그 시선에는 조롱이 서려 있었다.“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할 줄은 몰랐네. 아니, 감히 이런 배짱까지 키웠을 줄이야?”심정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귀한 몸이라고? 방금 이원에서 당신이 한 말과 좀 다르던데?”‘나와 이미숙이 하는 말을 들었어.’이미윤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눈빛이 흔들렸다. 당혹, 두려움, 그리고 절망.“여보, 내 말 좀 들어봐요. 나... 나 일부러 미숙이랑 싸운 게 아니에요. 당신 혹시 서재 발코니에 서서 뭐라도 본 거예요?”“하, 이미윤. 아직도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심정훈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난 발코니에서 본 게 아니야. 정원에 나가 바람을
“왜?! 대체 왜 그랬어! 미숙이는 당신 동생이잖아!”“동생? 그래요, 이미숙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잖아요, 늘 나보다 사랑을 많이 받았고요! 당신도 그 여자를 좋아하잖아요. 도대체 왜요?”“그래서 그런 이유로 미숙이를 죽이려 했단 말이야?!”“맞아요! 부러워서 그랬어요! 질투도 나고요!”“이미윤, 당신 미쳤어! 정말 미쳤다고!”“하하하... 그래요, 나 미쳤어요. 20년 전부터 난 이미 미쳤겠죠! 특히 당신이 이미숙과 다정하게 붙어 있을 때마다, 난 달려가서 이미숙의 목을 조르고 싶었으니까요!”“오늘까지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신이 애틋한 눈빛으로 이미숙을 바라볼 때마다, 평생을 함께해도 부족할 것처럼 바라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미쳐가고 있었는지 알아요?!”“심정훈, 당신은 이제 내 남편이에요. 우리가 한 가족이라고요! 20년이 넘었는데도 왜 아직도 이미숙을 못 잊는 거죠? 그 여자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 이미숙을 그리워하고 있잖아요!”“소진헌을 볼 때마다 질투가 나겠죠? 아마도 소 서방이 사라지길 바랐을 거예요, 안 그래요? 소진헌이 당신에게 있어 그런 존재라면, 나에게 있어 이미숙도 마찬가지예요.”“우리는 같은 사람이에요. 가질 수 없어서, 사랑에 미쳐서,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발버둥 치는 불쌍한 인간들이라고요!”심정훈은 차갑게 말했다.“당신 그 말 틀렸어. 내가 소진헌을 아무리 질투해도 절대로 그 사람을 해치진 않을 거야. 왜냐하면... 그 사람이 없다고 해도, 미숙이가 내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하하하! 잘 말했어요! 그럼 우리 확실히 다르네요. 나는 이미숙을 없애버리면, 당신은 내 것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하하!”“그러니까 결국 난 틀리지 않았어요. 이미숙이 사라지자, 당신은 나와 결혼했고, 우린 아이까지 낳았잖아요. 20년 넘게 함께 살았고요. 이거면 충분하지 않나요?”심정훈은 온몸이 굳었다.이미윤은 다시 한번 비수 같은 말을 내뱉었다.“만약 내가 냉혹한 킬러라면, 당신
[정은아, 새해 복 많이 받아.]남자의 목소리는 고요한 밤에 흐르는 첼로 선율처럼 낮고 깊었다.주위는 조용했지만, 재석의 목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정은은 귀가 간질거려 손끝으로 살짝 긁고는 핸드폰을 반대쪽으로 옮겼다.“선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그때, TV에서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 울려 퍼졌다.“5, 4, 3, 2...”[정은아, 고개 들어봐.]재석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은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가득 터지는 불꽃을 보았다.수많은 불꽃이 땅으로 쏟아지는 듯한 모습에 정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어머, 이 많은 불꽃놀이를 어떻게 동시에 터뜨린 거지?”“어? 이거 일반 불꽃이 아니야! 전자 불꽃이잖아!”“뉴스에서는 아직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벌써 출시된 거죠?”“이미 해결된 거겠지!”“와, 너무 예쁘네! 화약 냄새 하나도 안 나!”“게다가 전자 불꽃놀이는 더 오래 머물고, 손만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워 보여...”“앞으로 매년 설날마다 볼 수 있는 거야?”“당연하지! 개발한 기술은 이렇게 써먹야지!”이웃들도 모두 밖으로 나왔는데, 떠들썩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정은도 넋을 잃고 하늘을 올려다봤다.어둠 속에서 터지는 불꽃은 눈앞에서 피어나다 사라졌다.한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 찬란했다.아름다운 것은 사라진다 해도 후회할 필요가 없었다.꽃이 피고 지는 것도 다 자연의 법칙이니까.전화기 너머로 재석이 말했다.[정은아, 벌써 세 번째 해가 찾아왔어.]정은은 미소를 지었다.하늘에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시간 참 빠르네요... 같이 설날을 두 번이나 보냈다니.”[영상통화 할 수 있어?]“네, 할 수 있어요.”곧 영상통화가 들어왔고, 정은이 바로 받았다.화면 속의 재석은 목폴라 니트를 입고 있었다. 조명이 비추자, 옆모습은 부드러운 빛에 감싸여 평소보다 온화해 보였다.그의 뒤로는 끝없이 터지는 불꽃이 있었고, 밤
“왜 안 좋은데요?”“마음이 쓰려서 가만히 못 있겠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기다려요, 어머니는 형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래서 내가 나온 거지. 그런데 너 아까 누구랑 통화했길래 그렇게 웃고 있었던 거야?”재석이 되물었다.“그게 형과 무슨 상관인데요?”“야, 재석아. 그건 아니지. 내가 그래도 형인데, 형 체면 좀 세워주면 안 되냐?”“싫은데요.” 재석이 고개를 저었다.“흥, 꽁꽁 숨기는 거 보니... 혹시 여자친구냐?”“헛소리 하지 마요.”“와, 진짜 여자친구인가 보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어머니! 재석이가 여...”재석도 동시에 외쳤다. “어머니! 형이 또 담배...”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닫았다.“야, 너희 둘 왜 눈을 마주치고 그러냐?”조지훈이 웃으며 다가와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아까 뭐라고 소리쳤어? 무슨 중요한 일인 거 같은데?”재석과 지언은 동시에 말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그게 형이랑 무슨 상관이에요?”말하면서 두 사람은 얼른 자리를 떠났다.“야! 도망가지 마! 뭐 그리 대단한 비밀이라고 나만 못 듣게 하는 건데?!”지훈도 두 사람을 쫓아갔다.세 사람은 앞뒤로 들어섰고, 그렇게 강서원과 맞닥뜨렸다.그녀는 솔로인 세 아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바람 좀 쐬다 왔어요.”“집이 그렇게 답답한 거야?”“참, 지언아, 모레 나랑 같이 지씨 가문에 가자.”“왜요?”“설 인사해야지.”지훈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겸사겸사 지씨 가문의 아가씨랑 맞선도 봐야 하지 않아?”지언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 갑자기 생각났네요. 모레 출장이 있어서 안 돼요. 어머니, 그냥 지훈이 데려가세요. 얘 엄청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안 돼요!” 지훈은 손을 내저었다. “전 절에 가서 향을 올려야 해요. 올해 우리 집 운세는 제 손에 달렸다고요! 지씨 가문이 일부러 맞선 핑계 대고 우리 집 자리를
친척과 친구들이 묻자, 서영숙은 그저 도겸이 출장을 갔다며 핑계를 댔다.하지만 다들 바보가 아니었다. 누가 섣달 그믐날에 출장을 가겠는가?그렇다고 굳이 분위기를 깨며 캐묻는 사람도 없었다.서영숙은 문득 예전이 떠올랐다.도겸이 사업에 성공해 승승장구하던 시절, 그녀도 덩달아 고개를 들 수 있었다.친척이며 친구들이 서영숙을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대단한 아들 하나 두셨네요.”“그러게, 정말 훌륭한 아들 하나 낳았어.”세정도 예쁘고 다정하며, 효심까지 깊어 곁에서 명절 손님맞이까지 도왔다.그런 모습을 보며 다들 세정을 ‘우아하고 품위 있다’며 감탄하곤 했다.정은은 강씨 가문의 명절 식탁에 앉을 자격조차 없었지만, 해마다 빠짐없이 선물을 보냈다.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하고, 그 어떤 것도 허투루 준비한 것이 없었다.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과거의 일로 되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서영숙은 마음이 공허해졌다.‘만약 그때, 서정은이 우리 가문에 들어오는 걸 막지 않았다면, 도겸도 지금처럼 변하진 않았겠지?’‘우린 여전히 화목한 가족으로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웃음이 넘치고, 모자간의 정이 변함없는 그런 모습으로.’서영숙은 지친 듯 눈을 감았다.그녀는 지금 후회를 하고 있었다. 뼈저린 후회를. 그러나 이미 돌이킬 길이 없었다....“도겸이 형, 정말 혼자 들어갈 거예요?”“그래.” 도겸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너 먼저 가.”“정말이죠? 그럼 나 먼저 간다?”“그래, 빨리 가.”그가 별장 문을 여는 걸 보며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섣달 그믐날, 그는 본래 가족들과 밥을 먹고, 카드놀이도 하고, 설 특집 방송을 보며 한가롭게 보낼 예정이었다.그러나 술집 매니저의 다급한 전화 한 통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도겸이 취했던 것이다.두 사람 모두 그 술집의 단골 손님이었기에, 매니저는 가장 먼저 선우에게 연락했다.하는 수 없이 그는 배탈이 났다며 핑계를 대고 가족들 몰래 빠져나와 도겸을 데리러 갔다.하지만 오래 자리를 비
가족사진도 찍었고, 부모님도 만났고, 심지어 함께 설까지 보냈다.지난번처럼 밥상만 찍고 겨우 정은의 반쪽 얼굴만 찍은 게 아니라, 이번엔 당당하게 온 가족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이 정도면 단순히 사귀는 게 아니라, 결혼 이야기까지 오가는 분위기 아닌가? 이러니 도겸이 형이 미쳐버릴 만도 하지.’선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떠보기로 했다.‘만약, 만약 정은 누나가 현빈이 형 가족을 만난 게 단순한 오해라면, 도겸이 형도 술로 속을 달랠 필요가 없을 거야.’“현빈이 형,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제야 새해 인사 하네요!”[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선우야.]“집에서 설 보내고 있는 거예요? 아저씨 아주머니께도 안부 전해줘요.”[그래, 고맙다.]“우리 집이랑 형 집도 가까운데, 기다려요. 좋은 술 두 병 갖다 줄게요.”[아냐, 난 지금 본가에 있는 게 아니야.]“네?” 정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럼 어디에 있는 거죠?”[할아버지 댁에.]“아.” 선우는 일부러 맞장구쳤다. “이 술 진짜 괜찮은 건데, 그럼 아저씨랑 아주머니께 보내드릴게요. 형이 돌아오면 같이 마시면 되니까요. 그런데, 외갓집에서 설을 보내면 아무래도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거 아니에요?”반대편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선우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돌렸다.“아니, 어른들도 좀 다르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건가요? 매년 같은 이야기, 똑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니 진짜 질린다니까요.”현빈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너에 비하면 난 오히려 편한 거야. 올해는 결혼 이야기 한 마디도 안 꺼내셨거든.]이춘재와 봉수진의 관심은 오랜만에 돌아온 딸에게 쏠려 있었으니, 현빈을 신경 쓸 틈이 없었던 것이다.선우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결혼 이야기를 안 꺼내셨다고? 그럼 이미 결혼할 사람이 있다는 뜻 아닌가?!’‘도겸이 형이 이 말 들으면 완전히 미쳐버릴지도 몰라.’...별장 안.도겸은 불을 켜며 안으로 들어왔다.밖에서 눈바람
그러나 들어온 사람은 정은이 아니라 경혜였다.남자의 어두운 표정을 본 여자는 가슴이 철렁하더니 급히 해명했다.“선우 씨가 전화했어요. 도겸 씨가 취했다고요. 혼자 두는게 걱정돼서 나보고 와보라고 했고요.”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도겸 앞으로 다가갔다.“괜찮아요? 그렇게 많이 취한 것 같진 않은데요?”남자는 눈에 스친 실망을 감추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경혜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럼... 난 먼저 가볼게요.”“응.”여자는 뒤돌아서 나가려 했다.그때였다.“꺄악!”밖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도겸은 미간을 찌푸리며 급히 나가보았다.경혜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발목을 살펴보았다.“괜찮아? 어디 다친 거 아니야?”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경혜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괜찮아요, 괜찮으니까 별거 아니에요.”도겸은 그녀의 발목을 훑어보며 무심하게 말했다.“부었네.”“아, 그냥 살짝 접질린 거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경혜는 일어서려 했다.그러나 발에 힘을 주는 순간, 찌릿한 통증이 몰려왔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남자는 미간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그럼에도 경혜는 애써 태연한 척 웃고 있었다.“정말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나아질 거예요.”그러나 다음 순간, 도겸은 말없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거실로 데려갔다.경혜는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속으로는 기쁨이 넘쳐났다.‘제대로 걸렸군!’도겸은 원래 홈닥터를 부르려 했지만, 연말인 데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그만두었다.대신 경혜에게 물었다.“심하게 다친 거야?”“아니에요, 괜찮아요. 조금 쉬면 나아질 거예요.”경혜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도겸은 여전히 약상자를 꺼냈다. 안을 뒤적이더니 연고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거 발라.”“아, 고마워요.”십 분 후.경혜가 발목을 문지르며 말했다.“이거 바르니까 처음엔 시원하더니 점점 따뜻해
경혜는 몸을 돌려 도겸의 가슴을 가볍게 쳤다.그는 그 기세를 몰아 경혜를 품으로 끌어안았다.“일어났어요?”경혜는 돌아서며 도겸을 발견하고는 다소 놀란 듯 물었다.기억에서 정신을 차린 도겸이 고개를 끄덕였다.“응.”“저기... 어젯밤에 택시를 잡지 못해서 결국 객실에서 잤어요. 도겸 씨 술 마셨으니까 아침에 속이 안 좋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준비했는데. 괜찮죠?”“괜찮아. 신경 써줘서 고마워.”“하룻밤 신세 졌으니까, 나도 당연히 보답해야죠! 금방 다 될 거예요!”도겸은 식탁으로 가서 의자를 당기고 앉았다.잠시 후, 경혜는 뜨끈한 죽과 노릇하게 부친 계란을 들고 왔고, 그의 앞에 내려놓은 뒤 숟가락과 젓가락까지 놓아주었다.도겸은 원래부터 남의 시중을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경혜는 도겸의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에, 순간 입술을 깨물며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자신이 먼저 챙겨주겠다고 해놓고도, 막상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남자를 보니 그래도 서운했던 것이다.자신의 태도를 은근히 떠보는 경혜를 보며, 도겸은 처음부터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대신 도겸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번쩍 스쳤다.여기에 남기로 한 것도, 아침을 준비한 것도 전부 경혜 스스로 결정한 일인 데다가, 도겸은 아무것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그렇다면 그 결과도 당연히 경혜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법이었다.도겸은 앞에 놓인 죽을 바라보다가, 문득 눈빛이 부드러워졌다.한 숟갈 떠서 맛을 보니, 지난번보다 더 잘 만들었던 것이다.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그 모습을 본 경혜는 속으로 살짝 안도했다.‘그동안 연습한 보람이 있었네. 이 정도면, 마음에 든 거겠지?’“어때요?”경혜는 조심스레 물었다.도겸은 별다른 감정 없이 말했다.“너도 먹어. 다 먹으면 차 불러줄게.”“네...”같은 시각, 이원에서.정은은 아침에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이미 모두가
이미윤은 멍하니 서서 얼굴은 점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변해갔다.“당... 당신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녀는 손발이 차갑게 식으며 온몸을 떨었다.심정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호구로 보여? 남의 남자 자식이나 키워주는 호구 말이야. 천만에!”심씨 가문의 아이는 출생 후 신생아 검진과 동시에 친자 확인 검사를 기본으로 했다.그래서 심정훈은 현빈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란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이미윤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수작은 조금만 조사하면 바로 들통날 일이었다.이미윤은 20년 넘게 심씨 가문을 속였다고 흐뭇해했지만 알고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속고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왜... 왜 그런 거예요?” 이미윤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알면서 왜 나한테 묻는 거예요?”“이런 심각한 일로 몰아붙이지 않으면, 당신은 덜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스스로 털어놓겠어?”방금 이미윤은 심정훈의 질문에 수많은 일을 폭로했다.“내가 이미숙을 해쳤다고 말해도 좋고, 처음부터 계획하고 당신과 결혼했다고 비난해도 좋아요. 하지만 현빈이의 신분을 의심하면 안 되죠!”앞의 두 대답이 바로 심정훈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설마... 그 전에 비서가 가져온 이혼 서류도 다 당신의 연기였던 거예요?” 이미윤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심정훈은 냉소를 지었다. “나도 가문의 어르신들도 모두 상속자인 현빈이 무척 마음에 들거든. 내 후계자를 위해 이혼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이미윤은 마음이 잠시 놓였다.“대신 우리 사이에 다른 아이도 없을 거야.”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당신은 영원히 심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남을 거야. 훌륭한 후계자를 낳아준 대가로.” 심정훈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야. 이 집에 난 다시 오지 않을 거고, 당신 전화도 받지 않을 거야. 매달 생활비는 계속 줄 수 있지만, 모든 모임은 금지야.”“집에는 당신을 감시할 집사가, 외출할 땐 따라다닐 기사가 붙을 거야. ‘사모님'이라는 이
이미윤은 이 말을 듣고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내가 이미숙을 해쳤다고 말해도 좋고, 처음부터 계획하고 당신과 결혼했다고 비난해도 좋아요.”“하지만 현빈이의 신분을 의심하면 안 되죠!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현빈이에게도 상처를 주는 짓이잖아요!”심정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럼 처음부터 날 속였다는 건 인정하는 거야?”이미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요. 내가 친구들에게 당신을 취하게 만들라고 했고, 나도 술에 취한 척 옷을 벗고 당신 침대에 누웠던 거예요.”“하지만 이미 눈치챘잖아요? 그날 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이미윤은 울면서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심정훈은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럼 한 달 뒤 나한테 임신했다고 알린 것도 거짓말이었어?”이미윤은 냉소를 지었다.“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날 아내로 맞아들였겠어요?”수년이 지났지만, 이미윤은 그날 아침 심정훈이 깨어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표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잠시 당황한 뒤, 그는 금방 침착해졌다.두 사람이 정말 관계를 가졌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이미윤이 확신에 찬 대답을 하자, 심정훈은 옷을 입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경고했다.“진짜든 가짜든, 이 일은 입 밖으로 내뱉지 마.”사과 한마디 없었고, 오히려 그녀를 꽃뱀으로 취급하는 듯했다.아니, 꽃뱀보다도 못했다. 꽃뱀은 적어도 돈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한 달 후, 이미윤은 임신 검사 결과를 들고 이춘재와 봉수진을 찾아가 울며 하소연했다.하지만 두 사람의 분노는 오히려 그녀를 향했다.이미윤은 왜 피해자인 자신이 비난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결국 이춘재 부부는 심정훈을 찾아갔고, 다음날 심정훈은 결혼을 수락했다.“내가 왜 동의했는지 아니?”심정훈의 미소는 차갑기만 했다.“내가 임신했기 때문 아니었어요?”“아니.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너와 이런 관계가 생겼으니 너랑 결혼하지 않아도 앞으로 미숙이와 인연이 없다고 하셨
‘아니... 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어.’이미윤은 평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서야 심정훈과 결혼했다.이제 아이도 이렇게 컸고,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로서, 절대로 이 시점에서 버려질 수는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헛된 노력을 한 것과 다름이 없잖아?’이미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눈물을 닦으며 위층으로 올라가 옅은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연회에서 문제가 생겼고, 심정훈이 이미숙을 위해 복수를 하려 한다면, 이미윤은 이미숙을 찾아가야 했다.‘만약 이미숙이 정훈 씨에게 떠나지 말라고 설득한다면, 그이도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하지만 환상은 완전히 무너졌다.“안 본다고?!” 이미윤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내가 왜 왔는지 제대로 말해줬어?”가정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말씀드렸어요.”“그럼 이혼에 대해서는...” 이미윤은 가정부에게 이혼 얘기를 전하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 시점에서 그리 많은 것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이혼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가정부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두 분 뭐라고 하셨는데?”“어르신께서는 안 보신다고 하셨고, 사모님께서도 돌아가라고 하셨어요. 이제 아가씨의 집안일은 어르신들과 무관하다고 하셨어요.”이미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좋아, 이렇게 말한 이상, 나도 뭐라 할 필요가 없겠군!” 말을 마친 이미윤은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그러나 두 걸음도 채 걷지 못한 그녀는 갑자기 멈추고 다시 돌아섰다.“이미숙은? 그 여자 지금 어디 있어?”가정부는 망설이며 대답했다.지금 이씨 가문은 모두 두 어르신이 이미 이미윤과 관계를 끊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만약 정보를 누설하여 심각한 결과라도 초래한다면 그것은 정말 큰일이었다.이미윤은 냉소를 지었다.“왜? 지금 뭐 좀 물어보니까 우물쭈물하기 시작하는 거야?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예전에 내가 집에 있을 때도 널 괜찮게 대하지 않았니? 너 정말 양심도 없구나!
연회장에서 한바탕 소란을 벌인 이미윤은, 끝내 가족들에게 이끌려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심정훈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들으니 해외로 출장을 다녀갔다고 한다.그 후 이틀 동안 이미윤은 남편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심정훈의 핸드폰은 꺼져 있거나 연결할 수 없었다.그녀는 화가 나서 핸드폰 두 대를 부쉈다.가정부들은 그런 이미윤 때문에 모두 전전긍긍하며 행여나 그녀의 화풀이로 될까 봐 두려웠다.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평범한 아침이 찾아왔다.이미윤은 아침을 먹고 외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심정훈의 비서가 갑자기 나타나 간단한 인사를 한 뒤, 그녀에게 서류 한 부를 건넸다.이미윤은 영문을 몰랐고, 다음 순간, ‘이혼 합의서'라는 다섯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그 순간, 이미윤의 머리는 새하얘졌다.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이미윤은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비서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이게 무슨 뜻이죠?”비서는 공손하게 대답했다.“회장님께서 사모님에게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가서 그이에게 말해요, 이혼을 하고 싶다면 스스로 와서 제기하라고! 이혼 협의서만 보내서 뭘 하려고요? 내가 사인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네, 회장장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비서는 상대방이 자신의 얼굴에 던진 합의서를 차분하게 주워서 돌아섰다.비서가 떠나자, 이미윤은 그제야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그녀는 즉시 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너희 아버지가 나랑 이혼을 하려 하다니!”맞은편은 아주 조용했다. 이미윤이 말을 끝내고 나서야 현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알았어요.]이미윤은 말문이 막혔다.[또 다른 일 있으세요?]“심현빈! 너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는 거야?! 너희 아버지가 나와 이혼하려고 하잖아!”[알아요. 할아버지 생신잔치가 끝나는 대로 바로 이혼하실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나 더 끌 줄은 몰랐어요.]“너, 너 지금 당장 돌아와! 그렇지 않으면, 날 엄마라 부르지도 마!”현빈은 결국 이 말 때문에 집으로 돌
설날에 찾아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설날 보낸 후에도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해줬으니 이춘재와 봉수진은 이미 감동을 느끼며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다.이미숙과 소진헌이 하루만 떠났을 뿐인데, 갑자기 조용해진 집안을 보니 봉수진은 어색함을 느꼈다.‘예전에도 이렇게 지냈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검소함에서 사치로 넘어가는 것은 쉽지만, 사치에서 검소함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딸과 사위가 곁에 있는 시간을 맛본 후, 어떻게 다시 쓸쓸한 시간을 견딜 수 있겠는가?“안 돼!” 봉수진은 벌떡 일어섰다. “나도 L시로 갈 거예요!”이춘재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소란 좀 피우지 마. 미숙이는 아직 다른 도시에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당신 혼자 L시로 가서 뭐 하려고?”“소 서방을 찾으러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아니면 직접 미숙이 찾아가도 되잖아요! 어쨌든 더 이상 집에 못 있겠어요!”이춘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소 서방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데, 이번 학기에도 담임을 한다고 들었어. 지금 소 서방을 찾아가면 방해만 될 뿐이야.”“나는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그냥 집에 있으면서 밥도 해 주고, 미숙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당신도 참, 나이를 먹었는데도 왜 자꾸 아이처럼 구는 거야? 아이들 없이는 못 사는 거야?”봉수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당신은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이춘재는 말문이 막혔다.그렇다, 사실 그도 가고 싶었다.봉수진이 말했다.“산이 나에게 오지 않으면, 내가 산으로 가야죠! 당신도 나랑 같이 갈 거죠?”다음날 아침, 봉수진은 일어나 아침을 먹고는 다시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이춘재는 침착하게 돋보기 안경을 쓰고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봉수진은 옆에 앉아 그가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도 않고, 그저 탁자 위의 과일을 보며 이미숙이 생각나서 괴로워했다.한순간, 그리움과 슬픔이 밀려왔다.이춘재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해 태블릿을 건네주며
현빈은 도겸을 똑바로 쳐다봤다.도겸은 그의 시선에 그만 멍해졌다.“허.” 현빈은 갑자기 웃었다. “그래서 날 비웃으려고 남은 거야?”도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맞아.”“방금 그 자리에 있었으니, 왜 끝까지 보지 않은 거야?”도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졌거든.”“그래서?” 도겸이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현빈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이씨 가문의 양딸인 거 몰라?”도겸은 순간 몸이 굳어졌다.“나는 정은이는 혈연관계가 없다고.” 현빈은 담배를 한 모금 빨며 담담하게 말했다.“흥.” 도겸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혈연관계가 있든 없든, 어르신이 정은의 신분을 공개한 순간부터 넌 정은이의 오빠가 될 수밖에 없어! 남들은 사실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너와 정은이 모두 한가족이라는 것밖에 모르거든.”“비록 나와 정은이는 이미 헤어졌지만, 그동안 함께 사귀면서 난 그래도 정은이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오빠라는 신분만으로, 정은이는 절대로 널 선택하지 않을 거야.”“심현빈, 너 아웃이라고, 아직도 모르겠어?”도겸은 웃으며 도발을 띤 말투로 말했다.현빈은 차가운 눈빛으로 도겸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웃기 시작했다.“정은이를 잘 알고 있는 이상, 정은이가 가족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더 잘 알겠지. 나와 정은이는 함께 할 수 없더라도, 가족이라는 신분으로 당당하게 정은이의 곁을 지킬 수 있고, 정은이를 배려하고 보호할 수 있지. 하지만 넌...”“가까이 가는 것조차 헛된 망상일 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 강도겸이라고.”현빈의 말은 도겸의 정곡을 찔렀다.그는 온몸이 떨리더니 두 눈이 붉어졌다. “그럼 우리 두고 보자고!”모진 말을 내뱉으며 도겸은 몸을 돌려 떠났다.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지만 도겸은 기어코 먼저 남을 건드리려 했
봉수진은 자신의 선심이 뱃속의 아이로 이어진 것이라고 믿었다.지영은 그녀의 복덩이였다!부부는 상의 끝에 세 살 난 지영을 입양하기로 결정했고, 그녀의 이름을 ‘이미윤'으로 바꿔 주었다.아름다울 미, 윤택할 윤.그녀가 아름답고 순조로운 삶을 살길 바랐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이렇게 낯선 양녀를 보며, 봉수진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이춘재는 일어나 아내를 부축하며 차갑게 말했다.“넌 우리가 심씨 집안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길 거라 생각하는 거야? 오늘 현빈이를 봐서 그런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난 더 심한 말을 했을 거라고.”“네가 조건을 걸겠다면, 그에 맞는 걸 내놔. 심씨 집안이든, 심 서방이든 모두 우리에겐 아무런 위협이 없으니까.”이미윤은 분노하며 일어섰다.“아니!”현빈이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어머니, 그만하세요!”“너는 내 아들이야! 날 도와주지 않을 거니?!”현빈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 한 마디 내뱉었다.“그때 이모가 실종된 일, 정말 어머니와 관련이 있는 거예요?”“현빈아!”“제 질문에 대답하세요!”“심현빈!”“그럼 관련이 있었던 거네요.”이미윤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아들마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다니.현빈은 무력하게 뒤로 물러나며 눈을 감았다.‘그렇구나... 그래서 할머니가 어머니를 싫어하셨던 거구나. 그래서 부모님이 자주 싸우셨던 거구나. 그래서 어머니의 원한이 이렇게 깊었던 거구나.’현빈은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밤이 깊어지며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이미윤을 억지로 돌려보낸 후, 현빈은 이춘재와 함께 연회장에 남았다.이춘재는 몇 마디 당부했다.“넌 참 좋은 아이야. 그동안 나와 네 할머니는 네 덕분에 잘 지냈어. J시에서 유일하게 걱정되는 사람도 너뿐이고.”“오늘 연회에서 한 말 미리 너에게 알리지 않은 건 미안해. 우리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고, 네 반응도 보고 싶었어.”“현빈아, 넌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어. 그러니 여전히 우리의 손자가 되어줄래?”그들은
“강 여사? 강 여사!”“네? 뭐라고요?” 서영숙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식사해야죠, 자리에 안 앉을 거예요?”“아, 그래요. 앉아야죠.”서영숙은 서둘러 세정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물어보던 사람은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궁금해했다.‘오늘은 왜 이 두 집안의 사모님과 아가씨들이 모두 이렇게 이상한 거지?'...연회가 끝나자, 사람들 하나둘씩 떠났다.위층 휴게실에서, 현빈이 어쩔 수 없단 듯이 말했다.“어머니, 이제 돌아가세요.”“난 안 가! 내가 왜 가야 해?! 나와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겠다는 거야?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그래요.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현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미윤의 눈빛이 흔들렸다.“아버지는 아직도 전화를 안 받으세요?”“그래.”마침내 이춘재와 봉수진이 방에 들어왔다.이미숙과 그녀의 가족은 이미 떠났다.봉수진은 문을 열고 들어서며 무표정으로 이미윤을 바라보았다.“현빈이가 그랬어, 네가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엄마...”“그렇게 부르지 마. 듣기 싫으니까.”봉수진은 더 이상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다는 듯이, 혐오하는 표정을 드러냈다.이미윤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알겠어요.”이제 그녀는 완전히 냉정을 되찾았다.“앉으세요. 저와 이야기 좀 해요.”봉수진은 궁금했다.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더 있는 건지,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게 자신들을 만나려고 하는 건지.어르신은 자리에 앉았다.이미윤이 말했다.“다 아신 거죠?”봉수진은 냉소를 지으며 되물었다.“뭘 알아? 네가 직접 말해 봐.”이미윤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봉수진에게 시선을 돌렸다.“이 방에 CCTV가 있고, 아니면 녹음기로 저한테서 증거를 얻으시려는 건지 모르겠네요.”“어떤 일들은 말로 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계시잖아요. 굳이 소문을 퍼뜨릴 필요는 없죠.”두 어르신은 이미윤의 당당한 태도에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현빈도 눈살을 찌푸렸다.이미윤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천만에요, 천만에요...”남의 집안 이야기를 이렇게 들으니, 손님들은 오히려 재밌는 구경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정말로 대박이야.’해프닝이 끝나자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자리로 돌아갔지만, 강서원만이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었다.방금 이미윤이 바로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미윤의 반응을 가장 먼저 눈에 담을 수 있었다.공포, 당황, 무력감, 원망...너무나도 많은 감정이 이미윤의 얼굴에 드러났다.‘그럼 그때 정말로 자신의 동생을...’하지만 기억 속의 이미윤은 너무나도 당당하고 현명하며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강서원은 처음으로 자신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느꼈다.“강 여사? 왜 서 계세요? 자리로 가시죠?”“그래요, 곧 갈게요!”...이와 동시, 서영숙과 세정 모녀도 멍하니 있었다.세정은 설날 내내 집에서 보내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음식도 가정부가 직접 들고 올라갔으니, 장애인과 다를 바 없었다.서영숙은 간신히 세정을 설득해 이춘재의 생일 잔치에 참석시켰다.그런데 이렇게 큰 충격을 받을 줄이야...“엄마... 이거 꿈이죠? 다 가짜죠, 그렇죠?”세정은 어쩔 줄 몰라 서영숙의 손을 잡았다.서영숙은 이미 멍해졌다.무대 위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곳을 응시하고 있었다.마치 그곳의 무언가를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맞아, 꿈일 거야...”그녀는 세정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서정은이 어떻게 이씨 가문의 사람이란 말인가?’이씨 가문은 오래된 명문 집안이었다.부자는 3대를 못 이어간다는 말이 있지만, 이씨 가문은 조상부터 직위가 놓았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실업으로 나라를 구한 집안이었다.돈도 많았지만, 인성도 바르고 명망도 높았다.최근 20, 30년 사이에 조용해졌을 뿐이었다.정은이 이런 대가족, 이런 배경과 실력을 가진 집안의 귀한 손녀라니.서영숙은 어느 해 설날, 정은이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다.그때 그녀는 정은이를 문턱에도 들이지 않았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