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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0화

Author: 십일
이미숙은 귀가 윙윙거렸고, 머리는 새하얘졌다.

곧이어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이미숙은 누군가의 어깨에 짊어진 채로 끌려갔다.

떠나기 전, 이미숙은 동굴 입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두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이미윤의 눈에서 당혹감과 두려움, 그리고 눈물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믿음을 택했다.

입술을 움직였지만, 상대방이 제대로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도망쳐. 경찰에 신고해.”

동시에 납치범들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나밖에 못잡아서 어쩌지? 도망친 아이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우리 끝장 아니야?”

“멀리 못 갔을 거야. 분명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을 텐데. 다시 한번 찾아볼까?”

“안 돼. 도망치는 동안 신고했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우리 당장 장소를 옮겨야 해. 시간 끌 순 없어.”

“다행히도 돈값 하는 애를 잡았으니 됐지. 시중 하나쯤은 뭐, 신경 쓸 필요 없잖아.”

“그러게, 그럴 필요 없겠네.”

하지만 우두머리는 쉽게 속아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는 이미숙을 바닥에 내던진 다름 그녀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 아인 어디 있어?”

이미숙은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 천한 것은 혼자 도망친 것도 모자라 내 다이아몬드 목걸이랑 팔찌까지 훔쳐 갔어요! 내가 돌아가기만 하면 아빠한테 당장 해고시키라고 할 거예요! 아니, 그냥 죽여버릴 거예요!”

그녀의 격분한 외침에 납치범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돌아간다고?”

그렇다, 이제 이미숙에게 돌아갈 곳 따위가 있을까?

‘시중이 돈을 훔쳐 도망친 거라면, 경찰에 신고할 리 없겠지.'

그들은 안심하고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미숙을 다시 원래 있던 창고로 데려가지 않고, 화물차를 이용해 몇 번을 이동한 뒤 배에 태웠다.

도망칠까 봐 그녀에게 약까지 먹였다.

약기운에 이미숙은 손발에 힘이 풀렸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정신도 몽롱해 하루 대부분을 잔 채로 보냈다.

지금이 몇 월 며칠인지, 여기가 어딘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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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은 만약 핑계를 찾아 진일을 불러내지 않는다면, 그는 하루 종일 실험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다 또 밤을 새우겠지. 자신이 정말 슈퍼맨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이틀을 꼬박 새웠는데, 잠도 겨우 몇 시간밖에 자지 않다니.’‘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일하려고?’정은은 진일의 이런 스케줄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진일이 열심히 노력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자신의 건강을 뭘로 보고!’“뭐하는 거예요? 빨리 씻고 나와요. 나와 교수님은 문 앞에서 기다릴게요.”말을 마치자, 정은은 재석과 함께 나갔다.진일을 제자리에 서서 멍해졌다.‘아니... 밥을 먹자고? 그것도 정은이의 집에서?’정은과 재석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진일은 5분만에 정리하고 나왔다.사실 세수를 한 다음, 실험 가운을 갈아입었을 뿐이었다.그는 머리도 빗지 못한 채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타났다.그래도 나름 괜찮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부러 이런 헤어스타일을 한 것인 줄 알 것이다.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었다.진일은 이렇게 멍하게 정은의 조수석에 올라탔다.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진일을 바라본 후, 자신의 차 문을 열었다.‘아, 내가 교수님의 차에 올라탔어야 했나?’30분 후, 차가 멈추었다.진일은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 그리고 얼떨결에 정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의 집을 본 순간, 진일은 놀라 졸음이 싹 가셨다.‘이 집... 너무 큰데?’인테리어가 어떤 스타일인지 몰랐지만, 유난히 아름다웠고, 또 하나의 큰 화원이 있었다.화원을 지나갈 때, 진일은 멀지 않은 곳에 뜻밖에도 채소밭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더 먼 곳을 바라보니 뜻밖에도 비닐하우스가 있었다.“정, 정은아, 우리 밥 먹으러 가는 거 아니었어?”‘그런데 이 큰 별장에 온 이유가 뭐지?’진일의 말이 떨어진 순간, 안에서 엔진 소리를 들은 봉수진이 웃으며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정은아, 왔어!”이어 재석과 진일을 바라보았다.봉수진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92화

    그렇게 정은은 이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할머니, 저...”[당신, 가서 불 좀 봐봐요. 이거 세 시간 끓였는데, 조금만 더 졸여야 돼요. 여긴 너무 시끄러우니 나 밖에 나가서 정은에게 전화할게요...]봉수진은 거실로 나왔는지, 환풍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정은아, 지금 잘 들려? 방금 뭐라고 했어?]“아무것도 아니에요... 제시간에 도착할게요. 맛있는 음식 많이 만들어주시느라 수고하셨어요.”[수고는 무슨! 하나도 힘들지 않아!]봉수진은 즐겁게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정은은 통화를 끝낸 뒤 즉시 재석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시간이 아직 이르니까, 선배님은 아직 출발하지 않았겠지?’잠시 후, 재석이 전화를 받았다.[정은아?]“선배님, 미안해요. 오늘 아마도...”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블릿에서 출입 신청에 관한 알림이 울렸고, 문밖 카메라에 찍힌 화면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재석이었다.[정은아, 나 지금 밖에 있는데, 출입 신청 받았어?]‘선배님 너무 일찍 왔잖아!’재석은 들어온 후, 정은이 실험 구역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실험대도 깨끗이 정리되었다.“선배님, 미안해요...”“왜? 갑자기 왜 사과를 하는 거지?” 재석은 조금 놀랐다.“그냥... 할머니께서 오늘 집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부르셨거든요. 전에 약속했는데 내가 깜박했어요. 그래서... 미안해요.”“오늘은 선배님과 같이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방금 전화해서 선배님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재석은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반응했다.“이게 뭐라고 이렇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거야? 집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있어줘, 나 혼자 먹어도 돼.”재석이 동료, 친구들과의 회식을 밀고 특별히 자신을 찾아와 점심을 먹었는데, 결국 자신까지 거절한 것을 생각하니 정은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선배님, 나와 같이 이원에 가서 밥 먹을래요?”어차피 이춘재와 봉수진도 재석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인상도 매우 좋아서 틀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91화

    남자는 멈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지었다.“왜 그렇게 묻는 거야?”정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냥 선배님인 것 같아서요. 정말인가요?”한참 후,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정은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그럴 줄 알았어요... 어쩐지 그때 좀 더 기다리라고 했더라니, 진작에 이런 생각을 했던 거였네요?”“생각해 봤지만,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어.”그래서 재석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장담할 수 없는 일을 말해서 남에게 희망을 주었다가, 실패하면 괜히 실망만 느끼게 할 뿐이었다.“나도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정은은 눈을 깜박였다.“뭔데요?”“왜 심 대표가 아니라 나라고 생각했던 거야? 아니면 그 사람에게도 물어본 거야?”“아니요. 물어본 적 없어요.”“그럼 왜 나란걸 확신할 거지?”정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때 두 사람은 이미 계단을 다 올라 각자의 집 앞에 멈추었다.“왜냐하면...”그녀는 재석의 눈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선배가 진일 선배의 가정이 어렵단 것을 알아볼 수 있고, 마을 사람들의 우매함을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선배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으니까요.”현빈도 그런 진일네의 형편을 보며 진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그러나 그는 단지 알려줬을 뿐, 진일의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빈에게 있어, 이건 다른 사람의 운명이기 때문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진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후, 현빈은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재석은 달랐다.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일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정은이 진일을 도와 ‘돈'이라는 난제를 해결했지만, 하백 마을의 현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뉴스에서는 정부가 도로 건설에 투자해 마을 교통을 정돈하고 농수산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선배님이 제안한 건가요?”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90화

    심지어 점심 식사까지 대충 했다.민지가 말했다.“넌 몰라.”서준은 영문을 몰랐다.“너무 스트레스 받아.”“그, 그럼 어떡하지?” 민지가 정말 울 것 같은 것을 보고 서준은 갑자기 당황해졌다.“잠을 잘 자지도 못했단 말이야... 아침 달리기 시간을 10분 줄일 수 없을까? 흑흑...”“응.”‘어? 이렇게 흔쾌히 동의한 거야? 10분이 너무 적은 건가?’서준은 마치 민지의 꿍꿍이를 간파한 것 같았다.“더 이상은 안 돼.”“알았어.”그러나 그 순간, 민지의 눈에 비친 눈물은 거짓이 아니었다.그녀는 정말 울고 싶었다.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민지도 단지 그 순간 약간 멘붕을 느꼈을 뿐이었다.민지는 곧 감정을 추스렀다.“일하자!”저녁 무렵, 민지는 임무를 완수하고 바로 기지개를 켜며 한숨을 돌렸다.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30분 빨랐다.민지는 아주 만족했다.“쮼, 넌 끝났니?”“곧 끝날 거야.”“우리 이따가 시내에 가서 영화 볼까?”서준은 멍하니 있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나랑 같이 영화를 보자고?!’서준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서준이 대답하지 않자, 민지는 다시 한번 물었다.“갈거야?”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응!”민지는 웃으며 고개를 돌려 정은을 초대했다.“정은 언니, 어제 새 코미디 영화가 개봉됐어요.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우리 같이 보러 갈까요?”‘아, 나만 초대한 게 아니구나...’정은은 손을 흔들었다.“난 아직 좀 더 있어야 끝나니까 너희들끼리 가.”민지도 정은을 정말 불러낼 생각을 하지 않아, 실망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그래요, 그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영화 다 보면 언니에게 배달해 줄게요.”“아니야, 난 실험이 끝나는 대로 바로 갈 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너희들 얼른 가. 다시 돌아오면 시간이 너무 늦잖아.”“그래요,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마요!”“응!”민지와 서준이 떠난 후, 정은은 30분 후에야 실험을 마쳤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89화

    봉수진이 물었다. “정은이 요즘 왜 그렇게 바쁜 거죠? 집에 와서 밥 먹으라고 몇 번 불렀는데 줄곧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한 달 넘게 못 봤는데...”이춘재는 신문을 내려놓고 봉수진을 바라보았다.“당신도 참,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손녀에게 같이 있어달라고 떼를 쓰는 거야? 정은이가 뭐 때문에 바쁘겠어?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쓰고 있겠지. 그래서 올 시간이 없는 거야.”“알아요...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했으니 꽤 보고 싶단 말이에요...”이춘재는 멈칫했다.그렇게, 그도 정은이 보고 싶었다.설이 끝나자마자 두 노인은 L시의 같은 주택단지에 별장을 샀고, 계약을 체결한 후 재빨리 이사했다.이미숙은 돌아올 때, 부모님과 이웃이 된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무척 반가웠다.이춘재와 봉수진은 그제야 기분이 좋아졌다. 매일 딸과 사위를 만날 수 있었지만 같은 집에 살지 않아 서로에게 공간을 남겨주었다.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얼마 전에 이춘재는 이사회를 주재해야 했기에 J시로 돌아가야 했다.돌아온 후, 두 사람은 좀처럼 쉬지 않았다.이춘재는 일 때문에 바빴고, 봉수진은 화초를 가꾸며 채소를 심느라 바빴다. 게다가 시간을 내어 정은에게 전화를 하며 집에 와서 밥을 먹게 했다....어느덧 또 토요일이 찾아왔다.정은은 어젯밤 실험을 하느라 밤을 새웠기에,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차피 실험실에 침대, 이불, 세면용품과 갈아입을 옷이 다 있었다.아침 8시까지 자고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다시 실험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마침 8시 30분이었는데, 두 번째 데이터도 다 나왔다.어젯밤 못 다한 실험을 계속 할 수 있었다.“언니, 굿모닝.”9시, 민지와 서준이 도착했다.“응.” 정은은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서준은 단번에 문제를 발견했다.“누나, 어제 밤을 지새웠어요?”“뭐라고요?!”민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정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3시에 잤어.”‘이게 밤새는 거랑 뭐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88화

    정은은 그 돈을 받았다.“그러나 선배는 받지 않을 거예요.”“그냥 내가 줬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돼. 어른이 준 용돈이라 생각하면 알아서 받을 거야.”“네.”모든 일을 해결한 다음, 정은은 또다시 실험실, 학교, 집을 드나드는 생활을 반복하기 시작했다.일단 그 안에 몸을 던지면,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민지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은 언니는 정말 날 재촉할 수 있는 존재 같아. 고개를 들어 바라보기만 하면, 힘들어 죽더라도 억지로 따라고 싶단 말이야.”서준은 듣자마자 웃었다.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웃어? 넌 아니야?”“난 자제력이 있거든.”“아니, 그게 무슨 뜻이야? 난 뭐 자제력이 없는 줄 알아?”진일 쪽도 일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정은 일행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진일은 부모님을 모시고 마을에서 이사를 갔다.이웃 사람들은 모두 그 앵두나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을 가졌다.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어찌 서씨 형제뿐이겠는가?다만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서 감히 손을 대지 못할 뿐이었다.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줄곧 탐내고 있었다.그것은 돈을 벌 수 있는 과수원이었다.이번에 진일네가 이사 간다는 말을 듣고, 또 서씨 형제가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하나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매일 진일네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 남봉수에게서 정보를 알아내려 했다.진일의 말을 빌리자면, 설에도 그의 집은 이렇게 떠들썩하지 않았다.어떤 사람은 직접 남봉수에게 말했다. “어차피 너희들도 이사를 가야 하니까, 그 과수원은 그냥 나에게 줄 수 없어?”남봉수는 모두 화가 나서 웃었다.이웃 마을에서 친척이나 전에 친분이 좀 있던 사촌들조차도 모두 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남봉수가 말했다.“모두들 온 이상, 나도 한마디 좀 할게. 그 과수원을 양도할 생각은 없어. 물론 공짜로 남에게 주지도 않을 거야.”“그럼, 너희들 모두 이사를 가면 누가 그 앵두나무를 키우겠어? 이렇게 내버려둘 순 없잖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87화

    “정말 잘 됐네요!” 진일은 기뻐서 하마터면 펄쩍 뛸 뻔했다.“알았어요, 아저씨. 이틀 후에 저도 부모님과 같이 시내에 갈 거예요. 그때 가서 재운이 보러 갈게요...”“네, 안심하세요. 다 해결됐어요... 정말이에요, 거짓말 아니에요. 서씨 형제는 어제 이미 경찰에 잡혀갔어요... 네, 만나서 다시 얘기해요.”민지는 진일이 전화를 끊은 순간 바로 물었다.“재운이에 관한 소식인가요?”진일은 즉시 재석을 보더니 눈시울을 붉혔다.“조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꼭 면전에서 고마움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감사합니다!”민지는 눈을 깜박였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방금 전화하신 분은 재운이 아버지인데, 재운이가 이미 깨어났다고 말씀하셨어.”“정말요? 잘됐네요!” 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교수님한테 고마운 거죠?”“조 교수님이 재운이를 시내의 병원으로 옮기셨다는 거야. 또 전문가를 청해 수술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운이를 치료하셨고.”정은은 놀란 눈빛으로 재석을 바라보았다.“언제 안배한 거예요?”“어제.”“왜 이런 얘기하는 거 못 들었죠?”“오는 길에 시내 병원에 연락했거든.“그래도 교수님밖에 없네요.”현빈도 의혹을 느꼈다. ‘언제 연락한 거지? 어제 우리 두 사람은 줄곧 함께 있지 않았어? 아, 내가 구정배 찾아갔을 때 빼고... 이런! 이 기회를 잡았다니!’...몇 사람은 또 마을의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고, 이튿날 J시로 출발했다.진일은 함께 가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을 챙겨야 했고, 그 후에야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그 사이, 서씨 집안이 또 다른 수작을 부릴까 봐 현빈은 특별히 두 경호원을 찾아와 진일네 집 앞을 지키게 했다.그들은 현빈의 경호원이었고, 구정배의 사람이 아니었다.민지는 매우 궁금해했다.“심 대표님, 그렇게 하신 이유가 뭐예요?”현빈은 기분이 좋아서 민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나와 그 사람은 별다른 친분이 없거든. 친구에게 부탁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86화

    계약서를 다 보고 난 진일은 정중하게 사인했다.그리고 두 손으로 정은에게 건네준 다음 맹세했다.“절대로 실험실 손해 보지 않게 할 거야.”정은은 웃으며 대답했다.“나도 나 자신의 안목을 믿어요.”정은이 진일을 도운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진일은 감격에 할 말이 많았지만,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평생 이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남봉수와 진영매는 이런 전기를 맞이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정은이 고마운 동시에, 아들에 대해 깊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우리가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진일은 더 멀리 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아버지, 어머니, 우리에게 돈이 생겼어요.”진일은 웃으며 부모님을 쳐다보았다.그 순간, 그는 마침내 자신이 헛되게 공부하지 않았으며, 지식 덕분에 언젠가는 부자가 될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남봉수도 엄청 기뻐했다.도시로 이사하면 진영매는 최고의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수 있었고, 게다가 재석이 소개한 그 전문가 덕에 건강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이현도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그 자신으로 말하자면, 도시에 가면 당연히 마을에 있을 때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남봉수는 비록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아직 멀쩡했고, 간식도 좀 만들 줄 알았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꼭 돈을 벌 수 있을 거야!’그들은 바로 희망이 생겼다.이제 유일하게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뒷산의 앵두나무들은 어떡하지?”재석이 입을 열었다.“이건 간단해요. 시중에 농산물 도급회사가 있거든요. 재배지는 전국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요. 대부분 토지를 도급하여 과일과 채소를 재배한 후, 원산지에서 직접 마트나 시장에 보내는 거죠.”“제가 조사해 보았는데, Y시에 마침 이런 회사가 하나 있어요. 규모도 꽤 크고요.”“이 작은 과수원을 보고 실망하진 않을까?”외지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남봉수도 이런 도급 회사에 대해 들은 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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