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핑계 같은 거 대지 마. 난 도시 사람이 아니니, 바깥에서 파는 것들을 먹고 싶지 않구나. 그대도 난 어쨌든 어른인데, 아침밥을 좀 해 달라고 하면 뭐가 어때서? 싫으면 내가 네 시어머니 찾아가서 잘 좀 이야기해야겠구나!”말하면서 소순자는 소리를 지르며 화가 나서 머리가 아프다니, 또 배가 고프다니 하며 난리를 피웠다.다른 사람들은 이를 듣고 이미숙을 비난하기 시작했다.이미숙은 이 징그러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마 평소에 적지 않게 뭉쳐서 남을 많이 괴롭혔을 것이다.“고모 할머니, 집에서 만든 아침을 드시고 싶은 거예요? 그래요, 제가 정은이 아버지한테 만들라고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아니! 내 말을 못 알아들겠어? 너보고 하라는 거지. 진헌이를 시키라는 게 아니잖아!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내조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다 알겠는데요...”이미숙은 살짝 웃었다.“저희 집에선 제가 정은이 아버지보다 더 많이 벌거든요. 이 별장조차도 다 제 돈으로 샀어요. 할머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라면, 그이가 요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네요.”“뻥치고 있네, 네가 이렇게 큰 별장을 샀다고?!”소순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미숙은 담담하게 말했다.“맞아요.”옆에 있던 나정혜는 소순자의 어깨를 힘껏 부딪치더니 목소리를 억누르며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어제 진헌에게 물어봤는데, 이 별장은 확실히 정은이 엄마가 산 거예요...”소순자는 멍해졌다.이미숙은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서재로 돌아섰다.‘아니...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지? 이렇게 큰 별장까지 샀다고?!’소순자는 이미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나정혜는 입을 삐죽거렸다.“제가 이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저도 밥을 하지 않고 남자가 다 해 주기를 기다릴 거예요. 돈이 있는 이상, 누가 주방에 가서 일하고 싶겠어요? 어르신이라면 그렇고 싶으시겠어요?”소순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 돈이 있다면 누가 집구석에 박혀 있
주덕순은 먼저 별장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웃으며 친척들의 안부를 물었다.그러고는 팔짱을 끼고 이미숙의 앞으로 다가갔다.“동서, 집이 너무 어지러운 것 같은데, 왜 치우지도 않는 거니?”이미숙은 전에 치웠지만, 매번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집이 전보다 더 더러워졌던 것이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서가 게으름뱅이인 줄 알겠어. 이 바닥 좀 봐, 심지어 흙이 있네. 탁자 위의 그 쓰레기 더미에서 악취가 진동하는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어머, 이 수건은 이렇게 까맣게 되었는데도 버리지 않는 거야? 왜, 변기라도 닦으려고?”이때 소순자가 다가와서 수건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내 얼굴 닦는 수건을 왜 가져간 거야?”주덕순은 소름이 돋았다.“어, 어차피 내일은 어머님 팔순잔치니까, 우리야 뭐 집안이 좀 어지럽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이 보게 된다면 창피를 당하는 사람은 동서야, 그러니까 신경 좀 써!”말하면서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이미숙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소진호는 주덕순의 옷을 잡아당기며 그만 좀 하라고 표시했다.주덕순은 불만스럽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왜 날 말리는 건데? 나 아직 말 다 안 했어!’이미숙은 갑자기 웃었다.“사람이 많으면 집안도 당연히 어지러워지겠죠? 그나저나, 형님은 저희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희가 나서지 않았다면, 형님의 집이 이렇게 더럽고 어지러워졌을 테니까.”주덕순은 말문이 막혔다.이미숙은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이득을 본 이상 조용히 있어요. 괜히 호들갑 떨지 말라고요.”“너...”“형님 만약 그렇게 할 일이 없으시면, 집안을 좀 치워주시는 건 어때요? 우리 소씨 가문을 망신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말을 마치자, 이미숙은 빗자루를 가지러 갔다.주덕순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나, 나 갑자기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갈게!”그러고는 소진호를 끌고 얼른 줄행랑을 쳤다....다행히 다음 날이 바로 팔순잔치였다.친척들은 호텔에서 식사를
정은은 즉시 컴퓨터를 켰다.그녀의 방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바로 오늘의 영상 화면을 찾을 수 있었다.화면을 확대하자, 정은은 단번에 소순자의 귀염둥이 손자가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정은은 즉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순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웅이의 부모님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웅이는 소진헌이 이미 맞춘 다른 한 퍼즐을 가져가려 했다.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웅이가 퍼즐을 잡은 순간, 정은은 덥석 가져왔다.“너 내 방에 들어왔었지? 탁자 위의 자료는 어디로 가져간 거야? 지금 늦지 않았으니까 얼른 내 물건 돌려줘.”정은의 표정은 엄숙했고 목소리는 차가웠다.웅이는 여섯 살짜리 아이였기에 눈치를 살필 줄 알았다.정은이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자, 그는 일이 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눈알을 빙빙 굴리더니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어머! 멀쩡한 우리 웅이가 왜 우는 거야? 울지 마, 울지 마,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아빠도 있으니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핸드폰을 가지고 놀던 남녀는 울음소리를 듣고 얼른 다가왔다.하나는 애틋하게 아이를 품에 안았고, 다른 하나는 모자의 곁을 지키며 주먹을 불끈 쥐더니 수시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사실 두 사람은 정은이 입을 열었을 때부터 이쪽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제때에 나서서 사건의 경과를 묻거나 자신의 아이를 훈계하지 않고 계속 핸드폰을 놀았다. 그리고 아이가 울고 나서야 이렇게 뛰쳐나왔다.“정은아, 촌수를 따지면 우리 웅이는 네 삼촌이야! 넌 웅이보다 나이도 많은데 어떻게 아이를 괴롭힐 수 있어?” 여자는 가슴 아파하며 정은을 보는 눈빛은 원망을 품고 있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은이 웅이를 어떻게 한 줄로 오해할 것이다.“그냥 내 물건을 돌려주라고 했을 뿐이에요.”정은은 평온하게 말했다.“만약 이게 괴롭힘이라면, 두 분 평소에도 남들을 적지 않게 괴롭혔겠죠?”“얘
“정말 가져갔어도 뭐가 어때서? 쓸데없는 종이 같은 거 아냐? 때릴 거야 아니면 죽일 거야?! 돈도 많은 사람들이 몇 살짜리 애랑 뭘 따지는 거냐고?”“이것 좀 봐, 웅이를 이렇게 놀라게 하다니! 내 아들은 몸이 좋지 않단 말이야. 앞으로 대학에 갈 건데, 울어서 눈이 망가지면, 네가 배상할 거야?!”정은은 여자의 생쇼를 지켜보며 냉소를 지었다.“제가 언제 웅이가 종이를 가져갔다고 말했죠?”여자는 경직해졌다.그러나 소진헌과 이미숙은 다급해졌다.“정은이 방에 있는 그 물건들은 결코 쓸데없는 종이가 아니에요. 모두 매우 중요한 자료란 말이에요! 게다가 우리 정은은 여태껏 남을 모함한 적이 없어요. 지금 웅이가 가져갔다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증거가 있을 거예요. 얼른 웅이더러 돌려주라고 해요. 그럼 이 일은 그냥 넘어갈게요.”여자는 전혀 듣지 않았다.“정은이가 무슨 왕이야? 하는 말 전부 다 믿게? 오늘 정말 속이 터져서 가만히 있고 싶지 않네! 우리 웅이가 그 물건을 가져갔든 안 가져갔든 절대 돌려주지 않을 거야. 날 어쩌겠어?”정은도 말을 하기 귀찮아 직접 그들의 면전에서 경찰에 신고했다.여자는 이 상황을 보고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내가 법을 모를 것 같아? 종이 몇 장일 뿐, 무슨 값어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경찰들이 신경 쓸 것 같아?’그러나 30분 후, 경찰들이 정말 찾아왔다.그것도 네 명이 왔다.“신고를 받았는데, 누가 물건을 훔쳤다고요? 그것도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렸다고. 소정은 씨가 누구시죠?”여자는 이 상황을 보자 먼저 입을 열었다.“그냥 아이가 소란을 피우다가 종이 몇 장을 잃어버렸을 뿐인데, 굳이 이렇게 찾아오실 필요가 어딨겠어요?”“제가 나중에 이 사람들 잘 교육시킬게요. 호들갑은 정말! 너희들 경찰의 귀중한 시간을 지체한 거 몰라...”“제가 신고했어요.”정은이 나서서 직접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건 제가 방금 방에 돌아가서 찾아낸 감시 카메라 화면이에요. 그 안에는 이 사람의 아이가 제 자료
경쾌하면서도 깔끔한 소리였다.“집에 있을 때,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말을 잘 듣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넌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거야?! 빨리 돌려주지 못해?! 넌 감옥에 가서 콩밥을 먹고 싶은 거야! 말 안 듣는 녀석...”소순자는 동작이 아주 빨라서 때리고 난 다음 바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아이는 어리둥절해졌고, 여자와 남자도 어안이 벙벙했다.정은조차도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엉엉, 할머니가 나 때려요! 흑흑흑!”웅이는 반응한 다음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이번에는 진심으로 우는 것이었다.“나 안 훔쳤어요! 나도 그게 어디 있는지 몰라요!”“다시 한번 말해봐? 확 때려죽여버린다?!” 소순자는 화가 나면서도 두려움을 느꼈다.“말하기 싫어요! 메롱!”“계속 말 안 들을 거야! 물건 가져오라고! 빨리 내놔!” 소순자는 정말 심하게 때렸는데, 아이의 엉덩이가 빨개졌다.이때 남자와 여자는 가서 소순자를 말리고 잡아당겼지만 아무 소용없었다.“할망구! 왜 날 때리는 거예요? 할망구나 가서 죽어요?!”소순자는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화가 나서 쓰러질 뻔했다.결국 경찰이 나서서야 겨우 손을 멈추었다.그러나 웅이도 실컷 얻어맞아 울먹이며 소파 밑에서 자료 한 뭉치를 꺼냈다.“학생, 한번 검사해 보지 그래?”정은은 그것이 자료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제 보고서가 맞아요.”“그럼 됐어.”정은은 서류를 받고 생각하다 웅이의 부모님을 바라보았다.“제 방은 문이 잠겨 있었어요. 웅이는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요. 2층이라고 해도 엄청 높지 않은 가요? 이렇게 어린 아이가 추락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두 분은 잘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되면 자료가 아니라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남자와 여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웅이는 가슴이 찔려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그날 밤, 소순자네 가족은 짐을 정리하고 시골로 돌아갔다.한밤중이라서 소진헌은 여기서
정은은 문을 열고 나가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큰 오빠?”남자는 고개를 돌리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정은아?”‘정말 인훈 오빠였어!’소진우와 박나영의 외아들 소인훈.인훈은 우산을 챙기지 않아 티셔츠는 이미 반쯤 젖었고, 머리에서도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정은은 재빨리 휴지를 꺼내 건네주었다.“좀 닦아, 여름이지만 머리카락이 젖으면 감기에 걸리기 쉬워.”“고마워.” 인훈은 닦으면서 감탄했다.“넌 여전히 어렸을 때와 똑같구나. 세심하고 다정하고.”서점과 옆의 백화점은 연결되어 있었다. 기왕 만난 이상, 밖에 비가 내리고 있으니 남매는 같이 밥을 먹으려 했다.정은은 이미숙에게 전화로 오늘 점심에 돌아가서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이미숙은 몇 마디 물었지만 뭐라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레스토랑 안.경쾌한 음악은 흐리고 궂은 날씨를 밝게 만들었다.두 사람은 창가에 자리를 잡았고, 커다란 유리는 빗소리를 차단하며 오직 빗방울이 떨어지는 풍경만 남겼다.정은은 종업원의 추천으로 몇 가지 간판 요리를 골랐다.음식을 기다리는 사이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행인이 매우 적었지만 차가 엄청 많았다.눈빛을 돌리자, 뜻밖에도 인훈과 눈을 마주쳤다. 정은은 멈칫하더니 수줍게 웃었다.사실 어렸을 때 그녀는 인훈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두 사람은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자주 함께 놀았다.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도 남매는 자주 연락했다.인훈은 매번 정은을 찾아올 때마다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었다.정은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때로는 과일빵, 때로는 과자, 때로는 아이스크림.그것은 무미건조한 시간들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대학 다닐 때부터, 정은은 학업과 연애 때문에 바쁘기 시작했고, 인훈은 일을 하느라 바쁘게 돌아쳤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대학을 졸업하자, 정은은 도겸 만을 바라보면서 그와 함께 고생하고 회사를 차리며, 그의 일상을 돌보았다. 그리고 인훈은 회사에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올라왔다.밥을 먹는 동안, 인훈의 전화는 거의 끊어지지 않았으며, 모두 회사 일이었다.가까스로 잠잠해질 때에야 그는 미안해하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어제 할머니 생신잔치에서 너무 바빠서 너와 인사도 못 했어.”“괜찮아.”인훈은 소씨 가문의 장손이며 또래의 유일한 남자아이이기에 자연히 접대를 면할 수 없었다.“지금 서비대학교 대학원생이라며? 나도 마침 J에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연락해. 핸드폰 번호는 여전히 그대로야. 너 아직 저장하고 있지?”“응, 그럼.” 정은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 오빠.”“왜 이렇게 사양을 하는 거야.”정은은 반박했다.“이건 예의야.”인훈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오빠, J시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인훈은 채소를 먹었다.“친구와 함께 스마트 홈웨어 회사를 하나 차렸어. 전부 지능적인 홈웨어를 사용하는 거야. 그냥 현대 하이테크로 집을 인테리어 한다고 생각하면 돼. 예를 들면 로봇으로 지령을 내린다거나, 집 온도를 조절하는 거지...”최근 인공지능이 흥기하면서 인테리어 업계도 서서히 재편되기 시작했다.다만 현재로서는 전통적인 인테리어가 여전히 절대적인 시장을 차지하고 있어 사람들은 여전히 스마트 홈웨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인훈은 대학에 컴퓨터 AI지능을 배웠는데, 스마트 홈웨어를 하는 것도 전공이 들어맞는 셈이었다.정은이 알아듣지 못할까 봐 인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정은도 전문적인 것을 묻지 않고 단지 그에게 장사가 어떠냐고 물었다.인훈은 쓴웃음을 지었다.“나도 홈웨어를 하기 시작한 후에야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게 되었어. 게다가 지능 홈웨어는 새로운 트렌드라서 지금은 좀 어려워. 좋다고 말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어. 그냥 대충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셈이야.”그는 똑똑히 말하지 않았기에, 정은은 인훈의 회사가 확실히 비교적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그러나 화장실에서 돌아와 테라스를 지날 때,
정은은 두 팔을 벌리고 소파에 누우며 편안한 소리를 냈다.“정말 좋네요, 이제야 우리 집 같아요.”“좋지 않을 리가 있겠어?” 소진헌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세 가정주가 위층 아래층을 꼬박 세 시간 동안 치웠잖아. 네 엄마가 직접 감독했는데, 모든 사각지대를 놓치지 않았다고.”“어? 엄마는요?” 정은은 누워서 두리번거렸다.“방금 전까지도 여기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사라진 거지?”이때 이미숙은 핸드폰을 들고 서재에서 뛰어나왔다.그녀의 볼은 흥분으로 인해 빨개졌고, 두 눈은 별처럼 반짝였다.“터졌어!”“응?”“뭐가 터졌어요?”부녀는 어리둥절해졌다.이미숙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가능한 한 감정을 가라앉혔다.“새 책! 내 새 책 말이야!”나석천은 동작이 빨랐다.지난번에 두 사람이 J시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긴박하게 책을 출판하기 시작했다.전기 홍보는 ‘미스터리 퀸 이미숙의 복귀, 12년 만에 새 책으로 재등장! 『살기』, 『황량한 마을 학교』에 이어 또 하나의 스릴러 괴담과 함께 돌아오다.’홍보는 충분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이미숙은 이미 오랫동안 미스터리 작품을 창작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이름은 여전히 유명하지만, 그것도 다 지나간 일이었다. 현재 신인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대부분 독자들은 이미숙이 복귀해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지금은 또 팬문화가 유행하고 있어서, 작가들도 아이돌이나 스타처럼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했다.이런 방식으로 독자를 축적한 다음, 이 독자들은 또 온라인 차트에서 돈을 내고, 오프라인에서 책을 사며, 마케팅까지 더하면 점차 인기를 끌 것이다.이미숙은 그동안 공개된 SNS 계정조차 없었으니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는 팬이 어딨겠는가?그래서 새 책은 효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이미숙은 이 일을 알고 이틀 정도 낙담했다. 그러나 나석천은 강심장이라 압박을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녀를 위로했다. 이런 마케팅도 잠시일 뿐, 독자들은 결국 내용을
이때 정은은 다른 진열대에 놓인 케이크에 매료되어, 두 남자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재석은 계산을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정은이 한 케이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5층으로 된 케이크에 한층마다 정교한 피규어를 놓았다.“예뻐?”“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정교하게 잘 만들었어요.”그리고 2층을 가리키며 말했다.“선배님, 이 안경 쓰고 눈살을 찌푸리는 피규어 말이에요, 선배님과 닮지 않았나요?”재석은 한동안 자세히 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아니. 내가 언제 자주 눈살을 찌푸렸지?”“눈살을 찌푸렸지만, 선배 자신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지금이요.”재석은 멍하니 있다가 문득 장난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궁핍하고 마음이 찔렸다.“하하...”정은은 웃음을 터뜨렸다.“선배님 정말 귀엽네요.”세 사람이 케이크 가게를 막 나서자, 재석의 핸드폰이 울렸다.“네, 어머니.”[재석아, 집에 한번 돌아와.]강서원의 목소리는 심각하고 엄숙했다.“무슨 일이세요?”[돌아와서 얘기하자.]“네.”통화를 마치자, 재석은 집에 무슨 일 생겼을까 봐 걱정했다.“미안,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갈게.”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려 했고, 마침 현빈도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자, 현빈은 재석을 바라보았다.“공교롭게도 저희 집에도 일이 좀 생겼네요. 하지만 그전에 전 먼저 정은을 집에 데려다줄 테니, 교수님은 얼른 일 보러 가세요.”정은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두 분 다 얼른 가서 일 봐요!”재석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정은은 재빨리 말했다.“정말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텐데, 아무도 데려다줄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말이 끝나자 정은은 다시 고개를 돌려 현빈을 보았다.“심 대표님도 빨리 가요. 중요한 일 그르치면 안 되잖아요.”현빈과 재석은 눈을 마주치며 누구도 지려 하지 않았다.결국 정은의 재촉으로
다 먹은 뒤, 이미윤은 계산하러 갔다.두 사람 모두 얼마 먹지 않아서 음식은 아직 많이 남았다.이쪽의 두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했지만, 그쪽의 현빈과 재석은 각기 수확을 얻었다.하나는 양복을, 하나는 구두를 샀기에 모두 기분이 좋았다.현빈이 말했다.“앞에 밀크티 가게 있는데, 뭐 마실래?”재석도 같은 시간에 입을 열었다.“그 케이크 가게가 엄청 유명한데...”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했고, 서로를 힐끗 보더니 적의를 드러냈다.“정은아, 우리 같이 밀크티 사러 갈래?”“들어가서 한번 볼래?”두 남자는 모두 그녀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뭐야, 왜 또 이래!’“그냥 각자 사러 가세요. 난 화장실에 가고 싶으니까요.”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리고 재석을 바라보며 물었다.“교수님은 밀크티를 마시고 싶지 않으시겠죠?”“만약 심 대표님이 사는 거라면 한 잔 마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그래요.” 현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은근히 이를 갈고 있었다.“그리고 보답으로 내가 심 대표님에게 케이크를 사줄게요.”이 말을 듣자, 현빈은 더욱 화가 났다.두 사람은 각자 줄을 섰다.정은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 현빈은 양손에 밀크티 한 잔씩 들고 있었고, 탁자 위에 한 잔 남아 혼자 들 수 없었다.그는 종업원에게 포장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다.정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들게요.”두 사람은 말하면서 케이크 가게로 갔다.“서원아? 서원아?!”“응? 뭐라고?”“뭘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야? 불러도 대답을 안 하다니.” 이미윤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는데 케이크 가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강서원은 손을 흔들었다.“아무것도 아니야.”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색은 매우 좋지 않았다.‘그 여자아이, 뜻밖에도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니. 심지어 웃고 떠들며 함께 밀크티까지 마시면서 쇼핑을 하고 있어! 그건 커플끼리 하는 일 아니야?!’비록 그 남자의 뒷모습만 밖에 보지 못했지만, 옷차림과 기질만 보아도 조건이 나쁘지 않다
고개를 들어 정은을 본 순간,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에 순식간에 웃음기가 감돌았다.어르신에게 신발을 사야 하니 디자인만 보아서는 안 되며 편안함도 고려해야 한다.그렇다고 편안함만 따지고 디자인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정은은 서점에서 이춘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양복 조끼를 입고 있었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마치 신사와 같은 기질을 내비쳤다.옷차림에도 신경을 많이 썼으니 신발도 잘 골라야 했기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흔한 구두 재질은 그 몇 가지밖에 없었기에 정은은 가장 편한 두 가지 재질을 선택했고, 이어서 점원에게 이 두 가지 재질로 만든 신발을 모두 골라내라고 했다.그사이 재석은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곧 정은은 두 켤레를 골랐다.“이 두 켤레가 다 괜찮은 것 같아요. 심 대표님이 하나 골라요.”현빈은 직접 카드를 꺼냈다.“뭘 골라? 두 켤레 다 포장하면 되지. 네가 골랐으니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엄청 좋아하실 거야.”정은은 믿지 않았다.“에이, 설마요.”“나중에 시간 나면 우리 할아버지 뵈러 가지 않을래? 그럼 두 분이 널 얼마나 좋아하시는지를 알 수 있을 거야.”“나도 그러고 싶어요. 두 분 다 아주 친절해 보이시거든요...”현빈의 눈빛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점원이 포장할 때, 현빈은 정은에게 차 한잔 따라줬다. 물이 좀 식은 것을 발견하고 또 다른 점원에게 물을 끓이라고 했다.그리고 나서야 정은에게 건네주었다.“차 좀 마셔, 따끈따끈해.”“고마워요.” 정은은 잔을 받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진열대에 떨어졌다.그녀는 소진헌에게 한 켤레 골라주고 싶었다.현빈은 정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더 마실래?”정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고마워요.”그는 일어나더니 정은의 손에 있는 빈 잔을 가져왔다.그리고 이 장면은 마침 안으로 들어온 이미윤에게 발각되었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그리 놀라지 않았다.이미윤은 현빈이 바람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분수가 있어, 여자를 갖고
재석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회색이 괜찮은 것 같아.”정은은 눈에서 빛이 났다.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아!’재석은 점원에게 말했다.“그럼 이걸로 할게요. 카드로 계산해줘요.”재석은 다시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때 정은은 그의 옷깃을 가리켰다.“여기 접혔어요.”그는 정리를 했지만 옷깃은 여전히 접혔다.그래서 정은은 직접 재석을 도와주었다.남자는 키가 커서 정은은 까치발을 해야 했고, 두 사람은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여자아이에게서 나는 독특한 향기를 맡자, 재석은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는 정은의 가녀린 손가락이 옷깃을 가볍게 뒤집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손끝이 무심하게 목을 스치자, 마치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으며 짜릿한 느낌은 온몸에 퍼졌다....강서원은 오늘 다른 귀부인과 식사 약속이 있었다. 시간이 아직 일러서 먼저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갔다.자신의 물건을 사고 기사에게 차에 실으라고 한 다음, 또 빈손으로 5층에 올라가서 소기봉과 세 아들에게 사주려고 했다.‘어쩔 수 없지 뭐, 하나는 내 남편이고, 세 아들은 또 모두 솔로잖아.’여러 가게를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것을 보지 못하자, 강서원은 서서히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심심하게 안에서 걷고 있었다.이때, 강서원은 쇼윈도에 있는 양복에 시선을 빼앗겼다.멈춰 서서 자세히 보려고 할 때, 쇼윈도 유리를 통해 가게 안의 1남 1녀를 보았다.‘어머, 저 사람 우리 재석이 아니야?! 그것도 한 여자와 같이 있다니!’강서원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 정도면 충분히 큰 서프라이즈인 줄 알았는데, 뒤에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그 여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자, 손도 남자의 옷깃에서 거두어들였다. 그렇게 예쁘고 익숙한 얼굴이 예고도 없이 강서원의 눈에 들어왔다.‘그 여자아이잖아! 동서와 사이가 아주 가까운 그 다례사!’강서원은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려고 했지만, 콧대가
항이는 신이 났다.그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비싼 쇼핑백에 담아서 건네줬다.“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항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히죽히죽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서 까불었다.“이거 좀 봐, 내가 인형을 잘 빚을 수 있다니깐. 그 손님 엄청 좋아하잖아!”[에헴! 정신 차려! 그 오빠가 좋아하는 건 그 예쁜 언니지, 네가 빚은 인형이 아니라고!][그래서, 그 오빠 혼자 몰래 달려와서 인형을 사간 거야?][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어머, 형사님이세요? 눈치도 참 빠르시네요!]...정은은 물을 사고 돌아온 재석이 손에 쇼핑백 하나 들고 있는 것을 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건 뭐예요?”“그냥 뭐 좀 샀어.”그래서 그녀도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길을 건너 보행로를 따라 앞으로 가면 도심이었다.정은은 손목 시계를 보았는데, 이미 오후 4시였다.‘이제 돌아가야 하나?’그런 생각을 하기도 무섭게 재석이 입을 열었다.“며칠 후에 난 세미나를 참가하러 K시에 가야 돼. 그곳의 날씨가 많이 따뜻해서 겨울의 양복을 입을 수 없거든. 마침 요앞이 백화점이니 날 도와 옷 한 벌 골라 주면 안 될까?”“좋아요.”지나친 요구가 아니었기에 정은은 동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남성복은 5층에 있었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했다.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정은은 소리를 내어 불렀다.“심 대표님?”현빈이 고개를 돌렸다.정은을 본 순간, 현빈은 놀라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한쪽에 있는 재석을 발견하자, 그의 눈빛은 어두워졌다.“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정은아.” 말하면서 현빈은 웃으며 재석을 바라보았다.“또 만났네요, 조 교수님. 여긴 어쩐 일이죠?”정은이 대답했다.“선배님을 위해 얇은 양복 한 벌 골라주려고요. 대표님도 쇼핑하러 왔어요?”“응. 우리 할아버지에게 구두 사드리려고...”이때 현빈은 자연스럽게 난처함을 드러냈다.“하지만 어떤 걸
“미안해요!”“미안.”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며 뒤로 물러났다.눈을 마주치자, 어색함 외에 이상한 감정이 돋아나고 있었다.“선배...”“난...”“아니면 선배님부터 말할래요?”재석은 눈을 반쯤 드리웠는데, 마치 사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고개를 드는 순간, 마치 어떤 결심을 한 것 같았다.“정은아, 사실 나...”“봐요, 다 빚었잖아요?” 항이의 건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은은 뻘쭘해서 귀와 얼굴이 빨개졌다. 이 말을 듣고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얼른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벌써요?”“그래요, 난 원래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였어요.”말하면서 손에 든 인형을 정은의 앞으로 내밀었다.정은은 힐끗 보더니 입가를 실룩거렸다.역시 조금의 기대도 가져서는 안 됐다.전에 본 그 몇 개의 인형은 비록 이목구비가 모호했지만 적어도 이목구비가 있었다.하지만 눈앞의 이 인형은 이목구비가 없었고, 그저 두 머리를 맞댄 것밖에 알아볼 수 없었다.‘잠깐!’정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건...’“이, 이게 저희라고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잖아요...”“그럴 리가요? 이게 딱 보이잖아요! 내가 두 사람이 뽀뽀하는 그 장면을 보고 그대로 빚은 건데! 이건 머리, 이건 목, 이건 서로 닿은 두 입술...”“앗!”정은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재석은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보며 전술적으로 가볍게 기침을 했다.“아직도 못 알아보겠어요? 그럼 내가 다시 알려줄게요. 이건 머리...”“아니요!”“네?”정은은 정중하게 말했다.“이제 알겠어요.”“진짜요? 거짓말 아니죠?”“네.”“와! 나한테 인형을 만드는 재능이 있을 줄 알았어. 그동안 아무도 날 믿지 않았지!”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렸다.[저 아가씨 엄청 어색해하던데.][항이 씨, 제발 그 아가씨 내버려둬요. 곧 울 것 같은데.][나도, 정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그 분 아마도 항이가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재석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형이라고 하지만 사실 윤곽밖에 닮지 않았고, 심지어 그 윤곽도 좀 이상했다.이목구비, 표정, 동작과 같은 디테일도 없었다.재석은 사실대로 말했다.“너무 대충 만든 것 같아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어.”다시 주위를 바라보니, 노점의 다른 진흙 인형도 모두 이런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너무 못생겼다.이 노점도 정말 이상했는데, 주인이 없고 삼각대 하나밖에 없었다. 위에는 핸드폰 한 대가 놓여 있었고, 카메라로 두 사람을 찍고 있었다.정은은 잠시 침묵했다.“그렇긴 해요. 하지만 이 각도에서 보면... 사랑의 신 큐피드와 닮은 것 같은데요?”말이 끝나자마자 노점 뒤에서 갑자기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정말 말 그대로 튀어나왔는데, 마치 스프링을 장착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했다.“아가씨, 내가 만든 인형을 알아보았다니?!” 젊은 남자는 두 눈에서 빛이 났다.‘하늘이시어, 드디어 내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군.’정은은 의아해했다.“정말 큐피드였어요?”“맞아요!”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내 작품을 알아본 사람은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엉엉... 정말 감동이네요!”‘이건 좀...’정은이 말했다.“비록 빚은 인형들의 모양과 이목구비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윤곽을 통해 나름 알아볼 수 있어요. 혹시 피카소가 롤모델인가요?”감격에 겨웠던 남자는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날 비웃은 건가요?”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고 재석이 입을 열었다.“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이 인형들은 확실히 특이하게 생겼는데.”‘아니, 어떻게 내 앞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수가 있지? 그래도 난 2백만 팔로워를 가진 진흙 조각 블로거인데. 동물이나 다른 물건은 참 생동하게 잘 빚었지만, 사람만 빚으면 실패했지.’정은은 남자를 응원했다.“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이미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정말 예쁘게 생기셨는데? 너무 일리가 있는 말
재석이 물었다.“점심 먹었어?”“아직이요. 선배님은요?”“잘됐네, 나도 안 먹었는데.”눈을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호흡이나 맞춘 듯 미소를 지었다.20분 후, 재석과 정은은 한 고깃집에 들어갔다.기름이 지글지글거리는 고급 삼겹살, 남자는 삼겹살 표면이 약간 탈 때까지 뒤집다가 신선한 상추에 싸서 여자 앞에 건넸다.정은은 고개를 숙인 채 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재석을 보며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선배님, 나 혼자 할게요...”그러나 재석은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정은에게 입을 벌리라고 했다.정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남자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답장하고 있잖아? 정말 손으로 받을 거야?”정은은 즉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손으로 받으려 했다.“답장 다 했으니까 나 혼자 먹을게요.”재석은 쌈을 접시에 담았다.“먼저 손부터 닦아.”정은은 방금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앗, 깜박했어.’후에 정은은 열심히 먹기 시작했고, 재석은 고기 굽는 것을 책임졌다. 고기를 다 구운 후에 직접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선배님, 나한테 주지만 말고 선배님도 얼른 먹어요!”“좋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은의 접시는 줄곧 고기로 가득 찼다.소고기를 입에 넣자, 즙이 절로 나올 정도로 부드러웠다. 정은은 데여서 숨을 들이마셨는데, 혀끝이 따갑고 아팠다.재석은 아이스 코코넛 우유 한 병을 건네주었다.“천천히 마셔.”얼른 두 모금 마시자, 정은은 그제야 좀 나아졌다.재석은 모처럼 덤벙대는 그녀의 모습을 봐서 속으로 기분이 엄청 좋았다.“어때, 좀 괜찮아졌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혀가 아직도 좀 얼얼하네요.”“입 벌려, 내가 한번 볼게.”남자의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 정은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다.십여 초가 지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룸의 온도가 너무 높았는지, 아니면 불판이 너무 뜨거웠는지 볼에 홍조가 나타났다.정은은 얼른 똑바로 앉았다.재석은 시선을 거두었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