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를 납부하라고?” 연희는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줄곧 도겸 씨의 계좌에서 돈을 긁지 않았어?”“죄송하지만 그 계좌는 이미 사용금지가 된 상태라서요.”“사용금지?! 왜?!”“이건 대표님께서 직접 신청하신 거예요.”‘도겸 씨가 직접 신청했다니...’“하하하... 강도겸, 당신 정말 너무 독하구나!”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연희는 이날 마침내 퇴원했다.그녀는 맑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면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도겸은 오늘 일찍 퇴근했다.차에 찬 후, 그는 기사에게 분부했다.“별장으로 가.”“네, 대표님.”도중에 도겸은 눈을 잠깐 붙이다가, 창밖을 휙휙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듣고서야 눈을 떴다.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침울한 날씨는 곧 비라도 내릴 것만 같았다.매년 장마철이 되면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도겸은 혐오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차는 평온하게 별장 구역으로 들어갔다.이때 기사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끼익.도겸의 몸은 관성으로 인해 앞으로 기울어졌는데, 안전벨트가 없었다면 지금쯤 이미 앞좌석에 부딪혔을 것이다.“어떻게 된 거야?” 그는 말투가 좋지 않았고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죄송합니다.”기사는 재빨리 사과했다.“한 여자가 갑자기 뛰쳐나와서 저도 얼른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도겸은 고개를 들었다.밖에는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차 앞에 서 있었고, 몸은 이미 푹 젖었다. 머리카락은 목에 달라붙었으며 얼굴은 핏기가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연희는 생얼에 하얀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때 빗물에 젖은 옷감은 그녀의 몸에 딱 달라붙었는데, 여자의 아름다운 몸매를 그대로 그려냈다.마치 폭우 속의 꽃처럼 애처롭게 나뭇가지에서 흔들리며 떨어질 듯 말 듯했다.기사조차도 마음이 약해졌다.그러나 도겸은 냉담하게 시선을 거두며 눈빛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이곳의 치안이 언제 이렇게 나빠졌지? 아무나 안으로 들여보내다니. 경비원에게 통지해서 이 여자 끌
연희는 경호원에 의해 길가에 버려졌다.“스스로 가라고 할 때는 가지 않더니, 꼭 남에게 끌려 나가야 속이 시원한 거예요? 빨리 꺼져요!”비가 많이 오는 날, 그들도 나와서 비를 맞고 싶지 않았다.‘모두 이 미친 여자 때문이야.’...비가 그치자, 연희는 넋을 잃은 채로 거리를 서성였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자신의 대학에 도착했다.드나드는 학생들이 웃고 떠들며 생기발랄한 것을 보고 연희는 마음이 씁쓸했다. ‘한때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는데.’이 순간, 연희는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나미야.”연희는 돌진하여 장나미의 팔을 잡았는데,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과 같았다.나미는 깜짝 놀랐다.그녀의 곁에 있던 두 여학생은 연희를 훑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나미야, 우리 먼저 안에 가서 기다릴게.”“좋아.” 나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연희를 바라보는 눈빛이 많이 복잡해졌다. “너... 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한 달 전 병문안 하러 갔을 때, 연희의 안색은 좀 창백했지만 그래도 고급스러운 음식만 먹었는데.’지금의 연희는 치마가 젖었고 머리카락이 흩어져 마치 처녀귀신과 같았다.“나미야...”연희는 입을 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내 아이가 없어졌어. 그리고 그 사람도 날 버렸고.”나미는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연희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나 이제 갈 곳이 없어. 그러니 기숙사로 돌아가게 도와줄 순 없어?”나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넌 이미 퇴학을 신청했으니 규정에 따라 기숙사에서 지낼 수 없어. 그리고 내가 너를 돕고 싶어도 어쩔 수 없거든. 네 침대는 지금 다른 학생이 쓰고 있어. 그래서...”연희는 입술이 떨렸고 불쌍한 눈빛으로 애원했다.“나미야, 나 좀 도와줘. 나 정말 갈 곳이 없단 말이야.”나미는 난처함을 느꼈다.“아니면, 돈 좀 빌려줄래? 내가 돈이 생기면 꼭 갚을게!”나미는 한
연희가 물었다.“먹을 거 있어요?”여자는 작은 소리로 웃으며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들어와요.”연희는 네온사인으로 된 간판을 쳐다보았다.[텔미나오클럽.]그녀는 들어가면 무엇을 직면하게 될지 알고 있었지만, 배고픔과 피곤함, 그리고 명품에 대한 동경 때문에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여자를 따라 그 문에 발을 들여놓았다.‘난 살아야 해. 살아야만 강도겸과 소정은에게 복수를 할 수 있어!’...그러나 현실은 또다시 연희에게 타격을 입혔다.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돈을 벌 수가 없었던 것이다.연희는 아름다운 외모로 즉석에서 채용되었고, 클럽은 그녀에게 무료 음식과 숙소를 제공했다. 그날 밤, 연희는 마침내 편하게 잘 수 있었다.다음날 밤이 되자, 연희는 노출된 미니스커트로 갈아입고 ‘매니저’를 따라 한 룸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아주 좋은 방음 효과로 안의 동정이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문이 다시 열릴 때, 연희는 비틀비틀 안에서 걸어 나왔다.치마는 이미 찢어졌고, 하이힐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의 몸에 지금 속옷밖에 없었다.가슴, 허벅지, 허리, 목에 모두 색깔이 다른 키스자국이 있었는데, 어떤 것은 심지어 핏방울까지 배어있었다.연희는 울어서 두 눈이 부었고 목까지 쉬었다. 그녀는 품에 있는 수표를 꼭 잡았.두 시간에 천만 원.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마치 큰 구멍이 뚫린 듯 찬바람이 안으로 몰려왔다.연희는 사흘이나 버텼다.만신창이가 되어서 4억을 벌 수 있었다.그녀는 탐내지 않고 바로 이곳을 떠나려 했다.그러나 사장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떠나? 이곳이 무슨 마트인 줄 알아?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게? 매일 수천만 원 벌 수 있는데, 좋지 않아? 왜 가려는 거지?”연희는 여전히 떠나려 했다.‘4억이면 충분해. 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사장은 연희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았다.“가도 되지만 위약금부터
연희는 웃음을 지었다.이때, 창고 문이 밖에서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그 바람에 불빛이 이곳을 밝게 비추었다.“젠장, 이 여자 지금 손목을 베었잖아? 너희들은 사람을 어떻게 지켜본 거야?!” 사장은 두 경비에게 욕설을 퍼붓더니 다시 허리를 굽혀 앞장선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죄송합니다, 임 사장님. 다 제 잘못입니다.”“얼른 지혈해줘.” 남자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고작 이런 상처로 죽을 리가 없으니까.”“네...”피가 멈추자, 사장은 또 연희의 얼굴에 차가운 맥주를 뿌렸다.연희는 그제야 유유히 깨어났다.남자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신발로 연희의 턱을 들어올렸다.“허, 만약 정말 죽고 싶었다면, 넌 손목이 아니라 목을 베었어야 했어.”연희는 갑자기 찾아온 사람을 보며 아직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당, 당신은...”연희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그를 쳐다보았다.불빛 아래에서 남자는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당신이죠! 당신 맞죠?!”연희는 갑자기 흥분해지더니, 아직도 피가 흐르는 손목을 무시하고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덥석 잡았다.연희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사장은 안색이 변하더니 얼른 여자를 걷어차려 했지만, 임시호는 그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연희와 마주했다.“날 알아본 거야?”“정말 당신이었어요! 그때 강도겸이 날 버려서 당신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왜 받지 않은 거죠?! 왜 예전처럼 날 도와줄 수 없었던 거냐고요?! 나 지금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우선 난 계속 너를 도울 의무가 없어. 둘째, 넌 이미 자신의 앞길을 망쳤으니 나더러 어떻게 도와주라는 거지?”시호는 연희의 손목을 바라보았다.“죽을 용기가 있는 이상, 왜 살아서 복수할 용기가 없는 거야?”‘복수? 그래, 난 소정은이 싫어 그리고 강도겸은 더욱 싫어. 난 복수를 해야 해!
“헐...”넓은 교실에서 갑자기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조재석? 내가 생각하는 그 교수님 맞아?”“야! 서비대에 조재석이라고 하는 교수님이 더 있냐?”“하긴.”“세상에! 조 교수님이 우리에게 수업을 해주러 오시다니. 정말 너무 잘생겼잖아!”사람들은 모두 외모지상주의였다.아름다운 것을 보면 당연히 감상하고 감탄하며 칭찬했다.민지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런데 이 교수님은 볼수록 낯이 익은 것 같은데...’“어? 정은 언니, 이분 그날 식당에서 언니를 불렀던 사람 아니에요?”“응.”“와, 그 사람이 조 교수님이셨어요?”정은은 의혹을 느꼈다.“넌 이 교수님을 모르는 거야? 대학원생 면접 시험 때 면접관이셨는데.”“네?” 민지는 머리를 긁적였다.“이분은 없었는데. 저를 면접하신 교수님들 중, 저 오직 송지혜 교수님밖에 몰라요.”“이상하네... 그때 난 송지혜 교수님을 보지 못했는데... 넌 그때 오전에 시험을 본 거야?”“오후예요.”“어쩐지, 난 오전에 시험을 봤거든.”“그렇군요...”정은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당시 강서정도 오후에 면접을 보러 왔었고, 심지어 나에게 면접 문제를 알아봤잖아? 면접관에는 오전에 송지혜 교수가 없었는데, 하필 오후에 나타나셨다니...’최근 송지혜 팀이 자비로 CPRT 측정기 한 대를 구입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송지혜가 서정을 학생으로 받아들인 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쯧... 강서정을 자신의 통장으로 삼았구나.’강단에서, 재석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치고 수업을 하려 했다.그는 오늘 옅은 회색의 셔츠를 입고 있었고, 금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안경을 통해 눈빛도 많이 부드러웠다.그곳에 서니 우아함이 절로 묻어났다.이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교수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물어봐.”“교수님은 아주 유명하시고 대단하시잖아요.”그 학생은 입을 열자마자 칭찬을 했다. “그런데 물리대학의 교수님이 생물과학의 강의까지 하실
“아, 네! 그럼 얼른... 엥?”민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은은 이미 사라졌다.“뭐가 이렇게 급하신 거지?”그녀는 정은이 서두르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정은은 강의동을 나간 후, 가로수길에 이르러서야 재석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남자는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은은 심호흡을 하고 숨을 돌린 뒤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직시했다.“선배님,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요?”재석은 가슴이 떨렸다.그는 정은이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그녀가 이렇게 물어볼 줄은 더욱 생각지도 못했다.”“아니.”‘내가 무슨 불만이 있겠어?’“없는 이상 왜 그동안 일부러 날 피한 거죠?”재석은 가슴이 떨리더니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마음이 찔린 게 분명했다.“그런 적 없는데.”재석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무슨 일 있었어요?” 정은이 다시 물었다.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말할 수 없는 장면과 디테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꿈속의 여자는 지금 자기 앞에 서 있었다.살며시 손만 내밀면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은을 품에 안을 수 있었고, 다시 고개를 숙여 천천히 키스할 수 있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재석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며 자신의 뺨을 두 대 때리고 싶었다.‘조재석,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고개를 들어 정은의 맑고 깨끗한 두 눈을 마주하자, 재석은 더욱 몸 둘 바를 몰랐다.“선배님? 교수님?!”“어? 미안, 방금 딴 생각 좀 했어.”“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정은은 재석을 걱정했다.“응?”“지금 얼굴이...”정은은 그의 얼굴을 가리켰다.“엄청 빨갛거든요.”얼핏 보면 마치 열이 나는 것 같았다.재석은 점차 어찌 할 바를 몰랐다.“응,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래.”“아.” 정은은 그래도 이 대답을 받아들였다.“전에 왜 나를 피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나 자신이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이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정은은 집중을 하며 표정 역시 진지했
재석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그게... 전 교수가 전에 그랬는데, 시간 있으면 실험실에 많이 놀러 오라고. 모두들 네가 엄청 보고 싶거든.”정은은 눈을 깜박였다.“전 교수님이 언제 말씀하셨는데요?”“일주일 전.” 재석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아...” 정은은 나른하게 말했다.“그래서 전 교수님이 일주일 전에 전해 달라고 한 말을 오늘에야 나한테 알려준 거예요?”‘이래도 날 피한 게 아니라고?!’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는 법. 재석은 황량하게 도망쳤다.정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오후의 햇살은 따뜻했고, 하늘은 푸르며 흰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모든 것이 아름다웠다.오후에 수업이 없는 정은도 도서관에 있고 싶지 않았다. 최근 수업이 너무 꽉 차서 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집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오늘 날씨가 좋았으니 정은은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맛있는 음식까지 만들어줄 생각을 하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그러나 학교 앞에서 꽃을 안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 미소는 바로 사라졌다.도겸은 양복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입으니 이미 학교의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았는데, 손에 꽃까지 들고 있어 더욱 눈에 띄었다.오가는 사생들은 모두 참지 못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도겸을 훑어보았다.“또 이 사람이야?”“이번에는 파란 장미로 바꿨군. 그렇게 큰 한 다발을 사려면 돈이 엄청 들겠지?”“그 여자가 너무 부러워. 잘생기고 로맨틱하잖아. 나 같으면 1초도 못 버티고 바로 받아줄 거야.”“그래도 네가 이 사람 마음에 들어야지! 하하하...”정은은 정말 머리가 아팠다.‘그날 말을 분명하게 한 것 같은데.’그 후 도겸도 확실히 찾아오지 않았기에 정은은 그가 포기한 줄 알았다. 그러나 또 이런 짓을 하다니.‘정말 짜증나!’정은은 교문을 나선 발걸음을 다시 거두고 몸을 돌려 도서관으로 갔다.‘청소를 꼭 오늘 할 필요는 없어. 내일로 미루어도 돼. 이주 연속 날씨가
그러나 오미선은 외국의 학술 세미나에 참가하러 갔기에, 정은의 팀은 교수님이 현장에 없었다.그리고 그들의 순서는 마침 송지혜 팀 다음이었다.남진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 달에 거둔 연구성과들을 하나하나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성과는 바로 지예가 이달에 SCI급 논문을 한 편 발표했다는 사실이었다.여기까지 말하자, 진일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모두들 좀 어리둥절했지만, 곧 반응하여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그렇게 현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진일은 말을 하지 않았다.무대 위의 학장님과 다른 교수님들도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특히 백두강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송지혜는 똑바로 앉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지예는 박수 속에서 일어섰다.“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제 교수님인 송지혜 교수님 덕분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전문적인 지도와 인내심에 감사드립니다.”현장에서 다시 한번 박수가 터져 나왔다.송지혜는 살짝 일어나 인사를 했다.그리고 진일은 묵묵히 앉았다.재민은 옆에서 끊임없이 감탄했다.“세상에! 지예는 매일 먹는 것 외에 놀기만 하고 심지어 수업까지 빼먹었는데. 뜻밖에도 SCI급 논문을 완성했다니. 너... 너무 대단한데!”‘하지만 대체 언제 논문을 쓴 것일까? 분명히 실험실에 거의 가지 않았는데. 논문을 쓸 때 실험을 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진일 형.” 재민은 진일의 어깨를 두드렸다.“지난번에 논문 한 편 완성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미 투고한 거예요? 어느 잡지에 투고했죠?”“아니.”“그럼 언제 투고하려고요?” 재민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그도 진일과 지예처럼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연구 성과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그때가 되면 그 잡지를 집에 부쳐서 부모님께 보여 드려야지. 부모님들은 분명히 아들인 내가 자랑스러울 거야...’“투고하지 않을 거야.”재민은 아름다운 환상에 잠겨 한참 후에야 반응했다.“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항이는 신이 났다.그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비싼 쇼핑백에 담아서 건네줬다.“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항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히죽히죽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서 까불었다.“이거 좀 봐, 내가 인형을 잘 빚을 수 있다니깐. 그 손님 엄청 좋아하잖아!”[에헴! 정신 차려! 그 오빠가 좋아하는 건 그 예쁜 언니지, 네가 빚은 인형이 아니라고!][그래서, 그 오빠 혼자 몰래 달려와서 인형을 사간 거야?][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어머, 형사님이세요? 눈치도 참 빠르시네요!]...정은은 물을 사고 돌아온 재석이 손에 쇼핑백 하나 들고 있는 것을 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건 뭐예요?”“그냥 뭐 좀 샀어.”그래서 그녀도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길을 건너 보행로를 따라 앞으로 가면 도심이었다.정은은 손목 시계를 보았는데, 이미 오후 4시였다.‘이제 돌아가야 하나?’그런 생각을 하기도 무섭게 재석이 입을 열었다.“며칠 후에 난 세미나를 참가하러 K시에 가야 돼. 그곳의 날씨가 많이 따뜻해서 겨울의 양복을 입을 수 없거든. 마침 요앞이 백화점이니 날 도와 옷 한 벌 골라 주면 안 될까?”“좋아요.”지나친 요구가 아니었기에 정은은 동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남성복은 5층에 있었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했다.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정은은 소리를 내어 불렀다.“심 대표님?”현빈이 고개를 돌렸다.정은을 본 순간, 현빈은 놀라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한쪽에 있는 재석을 발견하자, 그의 눈빛은 어두워졌다.“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정은아.” 말하면서 현빈은 웃으며 재석을 바라보았다.“또 만났네요, 조 교수님. 여긴 어쩐 일이죠?”정은이 대답했다.“선배님을 위해 얇은 양복 한 벌 골라주려고요. 대표님도 쇼핑하러 왔어요?”“응. 우리 할아버지에게 구두 사드리려고...”이때 현빈은 자연스럽게 난처함을 드러냈다.“하지만 어떤 걸
“미안해요!”“미안.”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며 뒤로 물러났다.눈을 마주치자, 어색함 외에 이상한 감정이 돋아나고 있었다.“선배...”“난...”“아니면 선배님부터 말할래요?”재석은 눈을 반쯤 드리웠는데, 마치 사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고개를 드는 순간, 마치 어떤 결심을 한 것 같았다.“정은아, 사실 나...”“봐요, 다 빚었잖아요?” 항이의 건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은은 뻘쭘해서 귀와 얼굴이 빨개졌다. 이 말을 듣고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얼른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벌써요?”“그래요, 난 원래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였어요.”말하면서 손에 든 인형을 정은의 앞으로 내밀었다.정은은 힐끗 보더니 입가를 실룩거렸다.역시 조금의 기대도 가져서는 안 됐다.전에 본 그 몇 개의 인형은 비록 이목구비가 모호했지만 적어도 이목구비가 있었다.하지만 눈앞의 이 인형은 이목구비가 없었고, 그저 두 머리를 맞댄 것밖에 알아볼 수 없었다.‘잠깐!’정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건...’“이, 이게 저희라고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잖아요...”“그럴 리가요? 이게 딱 보이잖아요! 내가 두 사람이 뽀뽀하는 그 장면을 보고 그대로 빚은 건데! 이건 머리, 이건 목, 이건 서로 닿은 두 입술...”“앗!”정은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재석은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보며 전술적으로 가볍게 기침을 했다.“아직도 못 알아보겠어요? 그럼 내가 다시 알려줄게요. 이건 머리...”“아니요!”“네?”정은은 정중하게 말했다.“이제 알겠어요.”“진짜요? 거짓말 아니죠?”“네.”“와! 나한테 인형을 만드는 재능이 있을 줄 알았어. 그동안 아무도 날 믿지 않았지!”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렸다.[저 아가씨 엄청 어색해하던데.][항이 씨, 제발 그 아가씨 내버려둬요. 곧 울 것 같은데.][나도, 정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그 분 아마도 항이가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재석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형이라고 하지만 사실 윤곽밖에 닮지 않았고, 심지어 그 윤곽도 좀 이상했다.이목구비, 표정, 동작과 같은 디테일도 없었다.재석은 사실대로 말했다.“너무 대충 만든 것 같아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어.”다시 주위를 바라보니, 노점의 다른 진흙 인형도 모두 이런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너무 못생겼다.이 노점도 정말 이상했는데, 주인이 없고 삼각대 하나밖에 없었다. 위에는 핸드폰 한 대가 놓여 있었고, 카메라로 두 사람을 찍고 있었다.정은은 잠시 침묵했다.“그렇긴 해요. 하지만 이 각도에서 보면... 사랑의 신 큐피드와 닮은 것 같은데요?”말이 끝나자마자 노점 뒤에서 갑자기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정말 말 그대로 튀어나왔는데, 마치 스프링을 장착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했다.“아가씨, 내가 만든 인형을 알아보았다니?!” 젊은 남자는 두 눈에서 빛이 났다.‘하늘이시어, 드디어 내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군.’정은은 의아해했다.“정말 큐피드였어요?”“맞아요!”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내 작품을 알아본 사람은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엉엉... 정말 감동이네요!”‘이건 좀...’정은이 말했다.“비록 빚은 인형들의 모양과 이목구비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윤곽을 통해 나름 알아볼 수 있어요. 혹시 피카소가 롤모델인가요?”감격에 겨웠던 남자는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날 비웃은 건가요?”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고 재석이 입을 열었다.“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이 인형들은 확실히 특이하게 생겼는데.”‘아니, 어떻게 내 앞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수가 있지? 그래도 난 2백만 팔로워를 가진 진흙 조각 블로거인데. 동물이나 다른 물건은 참 생동하게 잘 빚었지만, 사람만 빚으면 실패했지.’정은은 남자를 응원했다.“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이미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정말 예쁘게 생기셨는데? 너무 일리가 있는 말
재석이 물었다.“점심 먹었어?”“아직이요. 선배님은요?”“잘됐네, 나도 안 먹었는데.”눈을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호흡이나 맞춘 듯 미소를 지었다.20분 후, 재석과 정은은 한 고깃집에 들어갔다.기름이 지글지글거리는 고급 삼겹살, 남자는 삼겹살 표면이 약간 탈 때까지 뒤집다가 신선한 상추에 싸서 여자 앞에 건넸다.정은은 고개를 숙인 채 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재석을 보며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선배님, 나 혼자 할게요...”그러나 재석은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정은에게 입을 벌리라고 했다.정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남자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답장하고 있잖아? 정말 손으로 받을 거야?”정은은 즉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손으로 받으려 했다.“답장 다 했으니까 나 혼자 먹을게요.”재석은 쌈을 접시에 담았다.“먼저 손부터 닦아.”정은은 방금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앗, 깜박했어.’후에 정은은 열심히 먹기 시작했고, 재석은 고기 굽는 것을 책임졌다. 고기를 다 구운 후에 직접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선배님, 나한테 주지만 말고 선배님도 얼른 먹어요!”“좋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은의 접시는 줄곧 고기로 가득 찼다.소고기를 입에 넣자, 즙이 절로 나올 정도로 부드러웠다. 정은은 데여서 숨을 들이마셨는데, 혀끝이 따갑고 아팠다.재석은 아이스 코코넛 우유 한 병을 건네주었다.“천천히 마셔.”얼른 두 모금 마시자, 정은은 그제야 좀 나아졌다.재석은 모처럼 덤벙대는 그녀의 모습을 봐서 속으로 기분이 엄청 좋았다.“어때, 좀 괜찮아졌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혀가 아직도 좀 얼얼하네요.”“입 벌려, 내가 한번 볼게.”남자의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 정은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다.십여 초가 지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룸의 온도가 너무 높았는지, 아니면 불판이 너무 뜨거웠는지 볼에 홍조가 나타났다.정은은 얼른 똑바로 앉았다.재석은 시선을 거두었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