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가 물었다.“먹을 거 있어요?”여자는 작은 소리로 웃으며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들어와요.”연희는 네온사인으로 된 간판을 쳐다보았다.[텔미나오클럽.]그녀는 들어가면 무엇을 직면하게 될지 알고 있었지만, 배고픔과 피곤함, 그리고 명품에 대한 동경 때문에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여자를 따라 그 문에 발을 들여놓았다.‘난 살아야 해. 살아야만 강도겸과 소정은에게 복수를 할 수 있어!’...그러나 현실은 또다시 연희에게 타격을 입혔다.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돈을 벌 수가 없었던 것이다.연희는 아름다운 외모로 즉석에서 채용되었고, 클럽은 그녀에게 무료 음식과 숙소를 제공했다. 그날 밤, 연희는 마침내 편하게 잘 수 있었다.다음날 밤이 되자, 연희는 노출된 미니스커트로 갈아입고 ‘매니저’를 따라 한 룸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아주 좋은 방음 효과로 안의 동정이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문이 다시 열릴 때, 연희는 비틀비틀 안에서 걸어 나왔다.치마는 이미 찢어졌고, 하이힐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의 몸에 지금 속옷밖에 없었다.가슴, 허벅지, 허리, 목에 모두 색깔이 다른 키스자국이 있었는데, 어떤 것은 심지어 핏방울까지 배어있었다.연희는 울어서 두 눈이 부었고 목까지 쉬었다. 그녀는 품에 있는 수표를 꼭 잡았.두 시간에 천만 원.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마치 큰 구멍이 뚫린 듯 찬바람이 안으로 몰려왔다.연희는 사흘이나 버텼다.만신창이가 되어서 4억을 벌 수 있었다.그녀는 탐내지 않고 바로 이곳을 떠나려 했다.그러나 사장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떠나? 이곳이 무슨 마트인 줄 알아?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게? 매일 수천만 원 벌 수 있는데, 좋지 않아? 왜 가려는 거지?”연희는 여전히 떠나려 했다.‘4억이면 충분해. 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사장은 연희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았다.“가도 되지만 위약금부터
연희는 웃음을 지었다.이때, 창고 문이 밖에서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그 바람에 불빛이 이곳을 밝게 비추었다.“젠장, 이 여자 지금 손목을 베었잖아? 너희들은 사람을 어떻게 지켜본 거야?!” 사장은 두 경비에게 욕설을 퍼붓더니 다시 허리를 굽혀 앞장선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죄송합니다, 임 사장님. 다 제 잘못입니다.”“얼른 지혈해줘.” 남자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고작 이런 상처로 죽을 리가 없으니까.”“네...”피가 멈추자, 사장은 또 연희의 얼굴에 차가운 맥주를 뿌렸다.연희는 그제야 유유히 깨어났다.남자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신발로 연희의 턱을 들어올렸다.“허, 만약 정말 죽고 싶었다면, 넌 손목이 아니라 목을 베었어야 했어.”연희는 갑자기 찾아온 사람을 보며 아직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당, 당신은...”연희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그를 쳐다보았다.불빛 아래에서 남자는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당신이죠! 당신 맞죠?!”연희는 갑자기 흥분해지더니, 아직도 피가 흐르는 손목을 무시하고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덥석 잡았다.연희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사장은 안색이 변하더니 얼른 여자를 걷어차려 했지만, 임시호는 그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연희와 마주했다.“날 알아본 거야?”“정말 당신이었어요! 그때 강도겸이 날 버려서 당신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왜 받지 않은 거죠?! 왜 예전처럼 날 도와줄 수 없었던 거냐고요?! 나 지금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우선 난 계속 너를 도울 의무가 없어. 둘째, 넌 이미 자신의 앞길을 망쳤으니 나더러 어떻게 도와주라는 거지?”시호는 연희의 손목을 바라보았다.“죽을 용기가 있는 이상, 왜 살아서 복수할 용기가 없는 거야?”‘복수? 그래, 난 소정은이 싫어 그리고 강도겸은 더욱 싫어. 난 복수를 해야 해!
“헐...”넓은 교실에서 갑자기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조재석? 내가 생각하는 그 교수님 맞아?”“야! 서비대에 조재석이라고 하는 교수님이 더 있냐?”“하긴.”“세상에! 조 교수님이 우리에게 수업을 해주러 오시다니. 정말 너무 잘생겼잖아!”사람들은 모두 외모지상주의였다.아름다운 것을 보면 당연히 감상하고 감탄하며 칭찬했다.민지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런데 이 교수님은 볼수록 낯이 익은 것 같은데...’“어? 정은 언니, 이분 그날 식당에서 언니를 불렀던 사람 아니에요?”“응.”“와, 그 사람이 조 교수님이셨어요?”정은은 의혹을 느꼈다.“넌 이 교수님을 모르는 거야? 대학원생 면접 시험 때 면접관이셨는데.”“네?” 민지는 머리를 긁적였다.“이분은 없었는데. 저를 면접하신 교수님들 중, 저 오직 송지혜 교수님밖에 몰라요.”“이상하네... 그때 난 송지혜 교수님을 보지 못했는데... 넌 그때 오전에 시험을 본 거야?”“오후예요.”“어쩐지, 난 오전에 시험을 봤거든.”“그렇군요...”정은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당시 강서정도 오후에 면접을 보러 왔었고, 심지어 나에게 면접 문제를 알아봤잖아? 면접관에는 오전에 송지혜 교수가 없었는데, 하필 오후에 나타나셨다니...’최근 송지혜 팀이 자비로 CPRT 측정기 한 대를 구입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송지혜가 서정을 학생으로 받아들인 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쯧... 강서정을 자신의 통장으로 삼았구나.’강단에서, 재석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치고 수업을 하려 했다.그는 오늘 옅은 회색의 셔츠를 입고 있었고, 금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안경을 통해 눈빛도 많이 부드러웠다.그곳에 서니 우아함이 절로 묻어났다.이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교수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물어봐.”“교수님은 아주 유명하시고 대단하시잖아요.”그 학생은 입을 열자마자 칭찬을 했다. “그런데 물리대학의 교수님이 생물과학의 강의까지 하실
“아, 네! 그럼 얼른... 엥?”민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은은 이미 사라졌다.“뭐가 이렇게 급하신 거지?”그녀는 정은이 서두르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정은은 강의동을 나간 후, 가로수길에 이르러서야 재석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남자는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은은 심호흡을 하고 숨을 돌린 뒤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직시했다.“선배님,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요?”재석은 가슴이 떨렸다.그는 정은이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그녀가 이렇게 물어볼 줄은 더욱 생각지도 못했다.”“아니.”‘내가 무슨 불만이 있겠어?’“없는 이상 왜 그동안 일부러 날 피한 거죠?”재석은 가슴이 떨리더니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마음이 찔린 게 분명했다.“그런 적 없는데.”재석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무슨 일 있었어요?” 정은이 다시 물었다.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말할 수 없는 장면과 디테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꿈속의 여자는 지금 자기 앞에 서 있었다.살며시 손만 내밀면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은을 품에 안을 수 있었고, 다시 고개를 숙여 천천히 키스할 수 있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재석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며 자신의 뺨을 두 대 때리고 싶었다.‘조재석,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고개를 들어 정은의 맑고 깨끗한 두 눈을 마주하자, 재석은 더욱 몸 둘 바를 몰랐다.“선배님? 교수님?!”“어? 미안, 방금 딴 생각 좀 했어.”“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정은은 재석을 걱정했다.“응?”“지금 얼굴이...”정은은 그의 얼굴을 가리켰다.“엄청 빨갛거든요.”얼핏 보면 마치 열이 나는 것 같았다.재석은 점차 어찌 할 바를 몰랐다.“응,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래.”“아.” 정은은 그래도 이 대답을 받아들였다.“전에 왜 나를 피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나 자신이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이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정은은 집중을 하며 표정 역시 진지했
재석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그게... 전 교수가 전에 그랬는데, 시간 있으면 실험실에 많이 놀러 오라고. 모두들 네가 엄청 보고 싶거든.”정은은 눈을 깜박였다.“전 교수님이 언제 말씀하셨는데요?”“일주일 전.” 재석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아...” 정은은 나른하게 말했다.“그래서 전 교수님이 일주일 전에 전해 달라고 한 말을 오늘에야 나한테 알려준 거예요?”‘이래도 날 피한 게 아니라고?!’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는 법. 재석은 황량하게 도망쳤다.정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오후의 햇살은 따뜻했고, 하늘은 푸르며 흰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모든 것이 아름다웠다.오후에 수업이 없는 정은도 도서관에 있고 싶지 않았다. 최근 수업이 너무 꽉 차서 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집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오늘 날씨가 좋았으니 정은은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맛있는 음식까지 만들어줄 생각을 하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그러나 학교 앞에서 꽃을 안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 미소는 바로 사라졌다.도겸은 양복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입으니 이미 학교의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았는데, 손에 꽃까지 들고 있어 더욱 눈에 띄었다.오가는 사생들은 모두 참지 못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도겸을 훑어보았다.“또 이 사람이야?”“이번에는 파란 장미로 바꿨군. 그렇게 큰 한 다발을 사려면 돈이 엄청 들겠지?”“그 여자가 너무 부러워. 잘생기고 로맨틱하잖아. 나 같으면 1초도 못 버티고 바로 받아줄 거야.”“그래도 네가 이 사람 마음에 들어야지! 하하하...”정은은 정말 머리가 아팠다.‘그날 말을 분명하게 한 것 같은데.’그 후 도겸도 확실히 찾아오지 않았기에 정은은 그가 포기한 줄 알았다. 그러나 또 이런 짓을 하다니.‘정말 짜증나!’정은은 교문을 나선 발걸음을 다시 거두고 몸을 돌려 도서관으로 갔다.‘청소를 꼭 오늘 할 필요는 없어. 내일로 미루어도 돼. 이주 연속 날씨가
그러나 오미선은 외국의 학술 세미나에 참가하러 갔기에, 정은의 팀은 교수님이 현장에 없었다.그리고 그들의 순서는 마침 송지혜 팀 다음이었다.남진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 달에 거둔 연구성과들을 하나하나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성과는 바로 지예가 이달에 SCI급 논문을 한 편 발표했다는 사실이었다.여기까지 말하자, 진일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모두들 좀 어리둥절했지만, 곧 반응하여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그렇게 현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진일은 말을 하지 않았다.무대 위의 학장님과 다른 교수님들도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특히 백두강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송지혜는 똑바로 앉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지예는 박수 속에서 일어섰다.“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제 교수님인 송지혜 교수님 덕분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전문적인 지도와 인내심에 감사드립니다.”현장에서 다시 한번 박수가 터져 나왔다.송지혜는 살짝 일어나 인사를 했다.그리고 진일은 묵묵히 앉았다.재민은 옆에서 끊임없이 감탄했다.“세상에! 지예는 매일 먹는 것 외에 놀기만 하고 심지어 수업까지 빼먹었는데. 뜻밖에도 SCI급 논문을 완성했다니. 너... 너무 대단한데!”‘하지만 대체 언제 논문을 쓴 것일까? 분명히 실험실에 거의 가지 않았는데. 논문을 쓸 때 실험을 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진일 형.” 재민은 진일의 어깨를 두드렸다.“지난번에 논문 한 편 완성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미 투고한 거예요? 어느 잡지에 투고했죠?”“아니.”“그럼 언제 투고하려고요?” 재민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그도 진일과 지예처럼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연구 성과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그때가 되면 그 잡지를 집에 부쳐서 부모님께 보여 드려야지. 부모님들은 분명히 아들인 내가 자랑스러울 거야...’“투고하지 않을 거야.”재민은 아름다운 환상에 잠겨 한참 후에야 반응했다.“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다.보고를 하고 있던 학생마저 멈추며 부총장을 살펴보았다.“에헴!” 옆에 있는 다른 한 부총장이 기침을 하며, 그에게 행동에 주의하라고 주의를 주었다.‘이렇게 흥분할 만한 일이 뭐가 있어? 학생들 앞에서 이게 뭐냐고?’이 흥분한 부총장은 직접 마이크를 들더니 입을 열기 전에 여러 번 심호흡을 하고서야 겨우 감정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방금 공식 소식을 들었는데, 생명과학대학의 한 학생이 학술지 에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는 거야!”학술지 Science에는 Science News (과학뉴스), Science's Compass (과학가이드), Research (연구성과) 라는 세 가지 큰 코너가 있었다.부총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장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세상에! 나 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야?”“내가 생각하는 그 학술지 맞아? 이건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우리 생물과학대학의 학생이라고? 누구지?” “틀림없이 진일 선배일 거야. 전에 이미 논문을 낸 적이 있었으니, 이번에 또 뽑힌 거지.”“역시 선배님이야, 전설이 다름없어!”...거의 모든 사람들은 부총장이 말한 사람이 바로 진일이라고 생각했다.송지혜조차도 턱을 들어올렸다.‘이게 바로 내가 가르친 학생이야. 가장 자랑스러운 내 제자라고!’그러나 진일의 교수님으로서, 송지혜는 진일이 올해 학술지 에 논문을 보낸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잊어버렸다.만약 있다면, 그녀는 교수님으로서, 교신작가로 되었을 것이다.그래서 학생이 교수님 몰래 학술지에 논문을 보낸 경우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지예는 입술을 깨물며 진일을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이주 동안 질질 끌고서야 SCI 한 편을 완성했는데, 자기는 몰래 학술지 에 논문을 보냈다니! 정말 너무해. 만약, 만약에 내가 학술지에 논문을 보냈다면...’생각만 해도 지예는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다.경혜와 서정도 부러움을 드러냈다.재민은 이에 반응하여 진일을 바라보았
사람들은 끊임없이 수군거렸다.꿀꺽-민지는 침을 삼키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정은을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으로 그녀란 사람을 알게 된 것 같았다.“정, 정은 언니, 우리 대학원에 언니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는 거예요?”서준은 어이가 없었다.“너 바보야?”민지는 눈을 부릅떴다.“네가 뭘 알아? 나도 확인을 하고 싶은 거라고! 괜히 기뻐할까 봐 그래...”정은도 정신을 차리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아마도 없을 거야...?”“아아아아. 그럼 언니가 보낸 거 맞죠?!” 민지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세상에! 제 동창이 이런 천재라니! 그것도 엄청난 천재잖아요! 정은 언니, 제 인생을 언니에게 맡길게요, 엉엉...”“야, 넌 할 말이 그것밖에 없냐?”민지는 가볍게 흥얼거렸다.“그렇게 대단하면 넌 우리 팀에서 나가든가.”서준은 직접 민지를 무시하며 고개를 돌려 정은에게 물었다.“언제 학술지에 투고한 거예요?”민지는 바로 귀를 쫑긋 세웠다.“개학 전에.”“어쩐지...”‘그런데 개학 전이라면 과제는 어디서 났고, 실험실을 또 어디서 구한 거지? 교신저자는 또 누구?’하성군은 무대에 서서 미친 듯이 박수를 쳤다.“소정은 학생, 무대에 올라와서 소감 좀 말하지 그래? 다들 박수!”“우와, 짝짝짝...”현장의 박수 소리가 열렬했다.진일조차도 참지 못하고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재민은 멀뚱멀뚱 쳐다보며 물었다.“형, 형은 서운하지도 않아?”진일은 더 이상 무뚝뚝한 표정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 세상엔 우수한 사람이 너무 많아. 천재도 가득하지...”그는 잠시 멈추었다.“과학 연구는 원래 다 같이 진보를 해야 하는 거야.”‘그렇게 해야만 각자 최고의 학술 성과를 거둘 수 있는데. 송 교수님은 어쩜 이 도리를 모르시는 걸까.’지예는 멍하니 있다가 마음이 점차 달갑지 않았다. ‘소정은’이라는 세 글자를 똑똑히 들은 후, 놀라움, 경악, 의심. 심지어 표정까지 일그러졌다.송지혜는 환하
동건은 바로 입을 열었다.“내가 밥 사줄게!”“필요 없어. 오늘 나 약속 있으니까 다음에 네가 사.”말을 마치자, 수민은 자리를 떠나려 했다.동건은 얼른 쫓아갔다.“그럼 데려다 줄까?”수민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진심이야?”“응!”“그래, 그럼 빨리 운전해.”출퇴근길에 눈을 잠깐 붙이기 위해 수민은 이번 주에 운전을 하지 않았다.동건은 기분이 좋아서 얼른 조수석의 문을 열었는데, 아쉽게도 수민은 그를 무시하며 뒤로 걸어갔다.“난 뒤에 앉을래, 눕고 싶어.”“그래.”차에서, 동건은 운전을 하며 마음속으로 감탄했다.‘이 세상에 나보다 더 좋은 남자친구가 또 있을까? 한 시간 넘게 회사 아래에서 퇴근한 여자친구 기다리지, 또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러 데려다 주지. 하지만 만약 내가 데려다주지 않는다면 수민은 벌써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을 거야.’물론 동건도 무척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남자이길래 수민이 야근을 끝내자마자 바로 만나러 달려가는 건데!’수민은 뒷좌석에 누웠다.“왜 갑자기 한숨을 쉬는 거야?”“내가 언제?”“방금.”“일주일 동안 야근했다고?”“어.” 수민은 옆에 있던 쿠션에 기댔다.‘야, 훨씬 편해졌네.’“이렇게 바쁜 사람이 테니스를 칠 시간은 있고?” 동건은 또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수민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전선우가 말한 거야?”“흥!”“너도 정말 웃기네. 너희들 말이야, 정말 어디 좀 이상한 거 아니니? 전선우, 강도겸 그리고 너!”“뭐??”“내가 코치 하나 청해서 서브 동작을 배우고 있는데, 전선우는 갑자기 달려와서 코치에게 주먹을 날린 거야. 내 코치는 하마터면 코가 꺾어질 뻔했다고. 그것 때문에 내가 400만 원이나 배상했단 말이야. 그 자식도 너처럼 정신이 나간 거지?”“코치?”수민이 되물었다. “그렇지 않으면?”“헤헤... 아무것도 아니야. 헤헤...”수민은 영문을 몰랐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숨을 쉬다가 왜 또 바보같이 웃기 시작한 거야? 역시, 머리가
많은지 적은지는 정은도 몰랐다.재석이 답장을 씹었기 때문이다.만두를 전부 다 찐 후, 정은은 10개를 골라 비닐봉지에 넣은 다음, 재석에게 가져다주려고 했다.그런데 문을 한참이나 두드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정은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선배님, 지금 집에 있어요?]이번에 재석은 아주 빨리 답장을 했다.[실험실에 왔어.][내가 만두를 좀 쪘는데, 선배님에게 10개 줄게요. 저녁에 돌아올 때 가져 갈래요?]재석은 원래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자아이가 직접 만든 음식을 특별히 자신에게 보내주려고 하는데, 이렇게 차갑게 거절하는 건 좀 그랬다.‘그건 예의가 아니지. 그리고... 내가 찔린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그래.]정은은 핸드폰을 거두며 집으로 돌아갔다.주방을 정리하고 앉자마자, 물을 마시기도 전에 수민의 전화가 걸려왔다.[정은아! 내 만두는, 다 됐어?!]“응, 다 됐어. 오늘 수십 개 만들었으니 네가 먹기엔 충분하다고. 이 게걸스러운 계집애야!”수민은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은 채 당장이라도 정은의 집으로 날아가고 싶었다.일주일동안 꼬박 밤을 새면서 오늘 드디어 일을 끝냈던 것이다.그녀는 1초도 회사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네가 더 게걸스럽겠지! 딱 기다려, 곧 도착할 거야.] 수민은 일부러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고, 입가에 선명한 미소를 지었다.통화를 마치고 수민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고동건?”남자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표정은 무척 어두워서 마치 누가 빚이라도 진 것 같았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 수민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동건의 앞으로 걸어갔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짧아지면서, 수민은 동건의 안색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왜? 내가 여기에 나타나서 널 방해라도 한 거야?” 동건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딱 기다려!”수민은 어이가 없었다.“너 뭐 잘못 먹었니?”“내가 뭘 먹어.
생활품 코너를 지나자, 재석은 바로 멈추었다.“뭐 살 것 있어?”정은은 집에 있는 바디워시와 세제가 다 떨어진 것을 생각했다.“네.”그녀가 바디워시를 고를 때, 재석도 카트에 뭔가를 넣었다.정은이 힐끗 훑어보았다. 수건, 슬리퍼, 갈고리.꽤 많았기에 카트도 곧 꽉 찼다.계산할 때, 재석은 자신이 하겠다고 말했고, 정은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저 영수증을 잘 남겨둬서 이따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은에게 카운트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좋아요.” 정은은 밖으로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도 계산을 마치고 큰 봉지 3개를 들고 나왔다.정은은 받아서 그와 좀 분담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뒤로 피했다.“아니야, 내가 하면 돼.”“그런데 너무 많잖아요...”한 봉지에 고기와 채소가 있었고, 다른 두 봉지는 각각 그들이 구입한 생활용품이 있었다.아주 분명하고 엄밀하게 나뉘었다.“정말 내가 들 필요가 없는 거예요?”정은이 다시 물었다.“응.”남자의 체력은 확실히 여자보다 훨씬 좋았다. 재석은 봉지를 들고 단숨에 7층을 올라갔는데, 숨조차 헐떡이지 않았다.정은은 자신의 봉지 두 개를 받은 다음 문 옆에 놓고는 재석에게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에헴...” 남자는 가볍게 기침을 했다. “얼마 안 들었으니까 줄 필요 없어.”“그건 아니죠? 영수증은 봉지에 있는 거예요? 나한텐 없는 것 같은데, 선배님 봉지 좀 볼게요...”재석은 마치 감전된 것처럼 재빨리 뒤로 피하더니 정은이 자신의 봉지를 보지 못하게 했다.정은은 영문을 몰랐다.“안에 없어. 이, 이따가 계산하면 얼마 들었는지 톡으로 보낼 테니까, 그때 주면 돼.”“그래도 돼요.”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재석은 방금 왜 피한 것일까?‘내가 자신의 봉지를 보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야? 그 안에 나에게 보여줄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건가?’의혹이 스쳐 지나갔지만, 정은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고, 봉지를 들고 방에 들어
정원을 둘러보고 또 빈대떡을 먹었으니, 이미숙은 매우 만족했다.다음 날, 부부는 L시에 돌아갔다.정은은 그들을 역으로 데려다 주었다.나석천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작가님, 이것은 출판사에 보낸 팬들이 편지입니다. 팬들이 작가님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요.”이미숙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처음으로 팬레터를 받았던 것이다.그것도 적지 않았는데, 가방이 꽉 찼다....집에 돌아온 정은은 햇빛이 좋은 것 같아 두 방의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를 빨았다.10월 말, 한여름의 무더위가 점차 가시면서, 가을 기운이 서늘함을 안고 조용히 다가왔다.그녀는 또 옷장을 한 번 정리했다. 입지 않는 옷과 치마는 자주 쓰지 않는 옷장에 넣었고, 또 가을에 입을 옷을 편리하고 꺼내기 쉬운 곳으로 옮겼다.바쁘게 돌아친 후, 시간은 이미 오후 2시가 되었는데, 정은은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냉장고에는 토마토 두 개만 남았다.정은은 한숨을 쉬며 신발을 갈아신고 외출을 했다. ‘결국 마트에 가야 하다니.’“지금 나가려고?” 1층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위로 올라가고 있는 재석을 마주쳤다.“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채소가 없어서, 마트에 가서 좀 사려고요.”“그럼 잘됐네, 같이 가자.”재석은 즉시 방향을 바꾸어 그녀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선배님은 뭘 사려고요?”재석은 이 문제에 대답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어느 마트에 가려는 거야?”이 근처에 세 마트가 있었는데, 모두 그리 멀지 않았다.정은은 한 마트 이름을 말한 다음 그에게 물었다.“괜찮죠?”방금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넘어갔다.“난 오케이.”몇 분 후, 두 사람은 마트에 들어섰다.이것이 바로 도심에서 지내는 좋은 점이었다. 어디를 가든지 매우 편리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부대시설도 잘 갖추어졌다.단지 동네 환경이 좀 좋지 않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 외에 정말 나무랄 데가 없었다.정은은 앞에서 걸었고, 재석은 쇼핑 카트를 밀고
정은은 또 물었다.“먼저 빈대떡 좀 드실래요? 제가 한 조각 드릴까요?”봉수진이 말을 하려고 할 때, 현빈의 핸드폰이 울렸다.맞은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그의 안색이 갑자기 차가워졌다.“알았어, 일단 사람부터 붙잡아. 난 가능한 한 빨리 달려갈 테니까...”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그는 미안해하며 정은을 바라보았다.“미안.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바로 가야 할 것 같아.”말이 끝나자 현빈은 또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할아버지, 할머니, 제가 먼저 두 분을 집에 데려다 드릴게요.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다시 구경하러 나오시는 건 어때요?”“그래. 하지만 정은이 부모님을 보지 못했구나...” 정은은 즉시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급한 일이 있으신 이상, 먼저 가세요. 앞으로 또 볼 기회가 있을 거예요.”“그래.”이미숙과 소진헌이 다가올 때, 현빈은 이미 두 노인을 데리고 찻집을 나와 차를 몰고 떠났다.이미숙은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그 두 노인은 누구야?”“심 대표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예요. 사인회 그날 마침 만났는데, 오늘 또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어요.”이미숙은 의심을 하지 않았다.“정말 인연이군. 구경하느라 지쳤지? 집에 가지 않을래?”“조금만 더 놀아요. 이 거리를 다 구경하지 못했잖아요.” 정은은 이미숙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이미숙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계속 구경하자.”...차 안에서.현빈은 핸들을 잡으면서 비서와 통화를 했다.“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사람을 붙잡고 있어. 남은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이춘재가 물었다.“많이 급한 거야? 만약 시간이 없다면 우리를 내려놓아도 되는데. 나와 네 할머니는 택시를 타고 돌아가면 되니까.”“아니에요, 내 부하들이 이미 처리하고 있어요.”“그럼 됐어.”현빈은 재삼 고민하다가 물었다.“할아버지, 이번에 귀국하시면서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얼마나 머물 예정이시죠? 저도 괜찮은 의사들을 좀 알고 있어서 할머
이 가게를 지나갈 때, 이미숙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빈대떡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정은은 좌우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것은 아주 낡은 가게였고, 장식도 옛날식이었는데, 주위에는 아무런 포스터도 붙이지 않았다. 가장 안쪽에 가야 팻말에 열거된 떡이름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런데 정말 빈대떡이 있을 줄이야.‘그럼 엄마는 어떻게 지나가다가 이 가게에 빈대떡이 있다는 걸 아셨을까? 게다가 빈대떡은 이 가게의 간판 메뉴이기도 했다.’이미숙이 말했다.“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안에 빈대떡 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아주 맛있을 것 같았어.”소진헌이 말을 이어받았다.“네 엄마는 코가 엄청 예민한 거 몰라? 맛있는지 안 맛있는지 냄새만 맡으면 바로 알 수 있다니깐.”“그렇군요...”정은도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코야.’현빈이 말했다.“이런 인연이, 나도 빈대떡 사러 왔는데.”“혼자 먹으려고요?”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우리 할머니께 사 드리려고.”“할머니도 오셨어요?” 정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왜 안 보이는 거죠?”“구경하다가 지치셨는데, 옆의 찻집에서 쉬고 계셔. 이따가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소개해드려야지. 지난번에 서점에 있을 때, 할머니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보려고 하셨지만, 몸이 좋지 않아 먼저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거든.”“좋아요.” 정은도 웃으며 말했다.모두 빈대떡을 사는 이상, 앞에 있던 정은은 아예 2인분을 달라고 했고, 현빈에게 나눠주었다.“얼마야? 돈 줄게.”“아니에요, 이건 내가 할머니께 사 드리는 거예요. 게다가 비싼 것도 아니에요. 지난번에 당신도 물을 사줬는데, 나도 돈을 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잖아요, 안 그래요?”현빈은 웃음을 터뜨렸다.“가요.” 정은은 고개를 돌려 현빈을 바라보았다.‘이 사람은 왜 갑자기 바보같이 웃는 거지?’찻집에 들어서자, 정은은 바로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두 노인을 보았다.정은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봉수진은 여기서 정은을 만날 줄은
“허, 알아요, 당신들 모두 날 원망하고 있잖아요. 우리 부모님, 그리고 당신! 당신들 모두 그때 나와 이미숙이 같이 나갔는데, 이미숙은 납치되어서 돌아오지 못하고, 혼자 돌아온 내가 원망스러운 거잖아요? 안 그래요? 당신들은 나도 이미숙과 함께 죽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잖아요!”“그 입 닥쳐!” 심정훈은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눈빛도 갑자기 매서워졌다.“누가 죽었단 거야?!”“하하... 28년이 넘었는데, 설마 아직도 이미숙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두 분은 당연히 포기하려 하지 않겠죠. 이미숙은 바로 두 분의 보배였으니까.”“나이도 드신 이상, 희망을 품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시겠어요? 하지만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네요. 심정훈, 당신조차 이미숙을 잊지 못했다니!”“우리가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우리의 아들도 가정을 이룰 나이가 다 됐는데, 당신은 아직도 이미숙을 그리워하고 있다니? 하하하, 웃기지도 않나 봐요?! 당신은 그런 자신이 징그럽지도 않냐고요?!”찰싹!심정훈은 손을 들어 따귀를 날렸다.동작이 너무 빨라서 이미윤에게 피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남자는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았고, 온몸에 찬 기운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미윤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무정했다.“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말을 할 줄 모르면 그냥 입 다물어.”말이 끝나자 심정훈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성큼성큼 떠났다.이미윤은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심정훈, 당신은 양심도 없는 거예요?”“왜? 왜 아직도 실종된 지 20여 년이나 넘은 이미숙을 그리워하는 거냐고요? 부모님도 그렇고, 심정훈 당신도 그렇고. 설마 이미숙은 두 분의 친자식이고, 난 그냥 입양된 자식이라서?!”...다른 한편, 현빈은 두 노인을 따라 정원을 지나 작은 문으로 나갔다.그런데 놀랍게도 거리로 나왔다.현빈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전에 여러 번 왔는데, 여기에 문이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이춘재는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네 작은 이모는 여기서 몰래 빠져나가는 것
이미윤은 끊긴 전화를 보며 화가 나서 앞의 쟁반을 엎어버렸다.쟁반 위에 갓 만든 보양식도 따라서 땅에 떨어지더니 깨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사모님...” 가정부들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꺼져! 모두 꺼지라고.”이미윤은 문을 가리켰고, 관리를 잘 받은 얼굴은 보기 드물게 험상궂은 기색을 드러냈다.가정부들은 줄지어 나갔다.이미윤은 뒤로 물러서서 소파에 주저앉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그동안 그녀는 줄곧 두 노인과의 관계를 수습하려고 애를 썼다.이춘재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냉담하게 원망을 했지만, 지금은 평온하게 그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비록 더 이상 예전처럼 이미윤을 아끼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지낼 수 있었다.그러나 봉수진은 달랐다.말로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줄곧 이미윤을 탓하며 여태껏 그녀를 용서한 적이 없었다.“회장님, 돌아오셨습니까...”문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심정훈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엉망진창이 된 거실을 보았다.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소파에서 노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미윤을 담담하게 훑어보았다.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이미윤은 그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보며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내가 왜 화를 내고 있는 건지 궁금하지도 않는 거예요?”심정훈은 몸을 돌려 소매 단추를 풀면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당신이 원한대로 해.”어차피 보신탕을 엎어버려도 새로 만들 수 있었고, 땅이 더러워져도 깨끗이 닦을 수 있었다.‘또 이런 말을 하는군! 어쩜 이렇게 매정한 거야!’“심정훈, 난 당신의 아내라고요! 나에게 신경 좀 써주면 안 돼요?!”남자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당신 오늘 뭐 잘못 먹었어?”이미윤은 말을 하지 않았다.“그동안 줄곧 이렇게 지내왔는데, 왜 갑자기 이런 정신 나간 말을 하는 거야? 참, 나 오늘 저녁에 일이 있으니 돌아오지 않을 거야.” 말을 마치고 심정훈은 위층으로 올라가
더군다나 이미숙이 실종되었을 때, 이미 스물두 살이었다. 당시 어려서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 하더라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만약 정말 살아있다면 무슨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자신의 부모님에게 연락할 것이다.그런데 전화 한 통도, 문자 한 통도 없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남은 인생을 편하게 향수해야 나이에 두 사람은 이국 타향에서 분주히 뛰어다녔다.현빈은 마음이 약해졌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정원에 한 번 가보세요.”“그래! 미숙이는 정원에 있는 그네랑 자등나무를 제일 좋아했지...”현빈이 봉수진을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갈 때,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발신 번호를 확인한 후, 내색하지 않고 봉수진이 보지 못하게 손바닥으로 번호를 가렸다.“할머니, 저 전화 좀 받으러 나갈게요.”“그래.”본관을 나서자, 현빈은 그제야 수신 버튼을 눌렀다.“어머니, 무슨 일이시죠?”[왜 이제야 전화를 받는 거야?]맞은편의 이미윤은 기분이 좀 좋지 않았는데, 기다리다 짜증이 났던 것이다.[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현빈은 그녀의 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일 때문에 좀 바빴어요. 지금 밖에 있고요.”[뭐가 바쁜데? 너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어머니, 전 범인이 아니니까 저를 그렇게 심문하실 필요 없어요.”[범인?! 허--]이미윤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지금 누굴 말하는 거야? 범인은 나 아니니? 그래서 너희들 다 날 속이고 있는 거잖아? 지금 날 뭘로 보고?!]“어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그럼 넌 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귀국하셨는데, 왜 나에게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니?]현빈은 말문이 막혔다.[그럴 줄 알았어!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어머니...” 현빈은 씁쓸하게 웃었다.[너 지금 네 외할아버지 그들과 함께 있는 거지? 맞지? 나 방금 이미 본가에 갔었는데, 집사가 그러더라, 네가 두 분을 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