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치자, 수민이 계속 물어볼까 봐 두려운 듯 정은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아, 배고프다. 레스토랑 예약했죠? 얼른 밥 먹으러 가자.”도심에 샤브샤브 맛집이 하나 있는데, 인기가 많아서 주말에 항상 줄을 엄청 섰다. 수민은 2주전에 미리 예약해서 다행히 대기 필요없다.샤브샤브 가게 근처에 바로 고기 파는 시장이다. 모두 시장에서 직접 재고해 온 것으로, 원재료가 너무 신선하고 깨끗하다.평소에 매운 것 즐겨먹었던 정은은 가끔 담백한 샤브샤브를 먹으니 꽤 맛있다고 생각했다.특히 이 가게의 국물은 소뼈로 끓여냈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고기를 넣지 않아도 향기가 퍼졌다.수민은 앉자마자 메뉴를 가져왔다.“이거, 이거, 그리고 이거... 각각 2인분씩 주세요.”그녀는 이번 주에 야근을 하느라 살이 많이 빠졌다. 모처럼 나와서 긴장을 푸는 것이니 당연히 제대로 먹어줘야 했다.‘살이 쪄도 괜찮아. 운동으로 살을 뺄 수 있지만, 절대로 굶을 순 없어!’정은은 한 상 가득 올라온 고기와 야채를 보고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이거 다 먹을 수 있을까?”‘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시키다니. 낭비가 아닐까?’수민은 눈썹을 치켜세우다 무언가를 떠올렸다.“너한테 말하는 걸 깜박했네. 방금 큰어머니가 나더러 우리 오빠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어. 이번 주에 집에 돌아오라고 말이야. 방금 전화할 때, 오빠는 마침 쉬고 있다고 했고, 나도 오빠를 이곳으로 불렀어. 에헴... 정은아, 내가 제멋대로 결정했다고 날 탓하는 거 아니지?”정은은 국물을 마시다가 이 갑작스러운 소식에 기침을 하더니 사레가 들릴 뻔했다.수민은 정은의 반응이 이렇게 큰 것을 보고 약간 영문을 몰랐다.“너는 우리 오빠는 친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놀라는 거지?”‘두 사람은 이웃인 데다가, 지금은 또 같은 실험실에서 과제를 하고 있으니 매일 붙어 다니는 거랑 다름이 없잖아? 그럼 사이가 엄청 친할 텐데.’그리고 수민이 재석을 부르는 것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정은이 있는 기회
재석도 차를 몰고 왔고, 두 사람은 또 같은 층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정은은 그와 함께 돌아갔다.낡은 아파트 단지에는 차고가 없어서, 재석은 맞은편 백화점에 가서 차를 세운 다음 다시 아파트로 걸어와야 했다.두 사람이 백양나무 숲을 지날 때,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버들개지가 하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니 마치 흩어진 하얀 눈송이와 같았다.“에취.”정은은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했다.“미안해요, 난... 에취.”연이어 재채기를 하자, 재석은 정은에게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더니 그녀에게 건네주었다.“먼저 코를 가리고 숨을 너무 크게 쉬지 마.”재석이 시킨대로 하자, 정은도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갔다.문 앞에서 작별인사를 한 후, 정은은 재빨리 문을 닫고 몸을 돌려 재채기를 여덟 번이나 했다.겨우 멈췄지만 코가 새빨개졌다.J시는 뭐든 다 좋았지만, 매년 떠도는 버들개지 때문에 정은은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이곳에서 7, 8년 넘게 지냈어도 그녀는 여전히 습관이 되지 않았다.10분 뒤, 정은은 뜨거운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나서야 좀 편안해졌다.그녀는 냉장고를 열고 식재료를 꺼내며 내일 실험실로 가져갈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음식을 다 포장한 다음 주방을 정리하니 벌써 11시가 다 되었다.정은은 쓰레기통을 바라보았다. 안에는 계란 껍데기와 썩은 채소가 있었기에 그녀는 한숨을 쉬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쓰레기를 버렸다.돌아오는 길, 미처 계단에 들어서지도 않았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응, 선우야, 무슨 일 있어?”[정은 누나, 조심해요! 지금 도겸 형이 누나 집으로 찾아갔는데, 저도 막을 수가 없었어요! 형 오늘 술을 좀 많이 마셨으니 누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정은은 경계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대답하기도 전에 한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아...”“정은아...”남자는 온몸에 술 냄새를 풍기며, 취한 얼굴이 벌겋게
도겸은 손을 거두어들이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했다.“미안해, 정은아. 나, 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나,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난 단지 네가 내 곁에서 멀리 도망치는 걸 원하지 않았을 뿐이야...”“내 몸에 손 대지 마!” 정은은 머리를 안으며 아파서 눈물까지 흘리기 직전이었다.이때, 선우가 마침내 도착했다. 현빈도 그와 함께 찾아왔다.“괜찮아?” 현빈은 도겸을 넘어 정은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의 말투는 무척 다급했다.선우의 전화를 받았을 때, 현빈은 마침 비즈니스 연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오늘 저녁 60억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그러나 정은에게 무슨 일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현빈은 직접 손님을 내팽개치며 자리를 떠났다.그렇게 미친 듯이 액셀을 밟으며 10분 만에 달려온 그는 마침 골목 어귀에서 선우를 만났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은의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아니나 다를까, 도겸은 술주정을 부리고 있었다.정은은 도겸의 접근을 원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현빈의 호의를 거절했다.뒤로 물러서자 남자에게서 나는 그 독특한 향기가 좀 옅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이제 괜찮아요.”현빈은 정은의 어지러운 머리카락에 시선을 돌렸다. ‘두피가 빨개졌는데도 능청스럽게 괜찮다고 말하다니.’그는 마음이 아팠다.“넌 여자야, 그렇게 강인한 척할 필요가 없단 말이야!”정은이 대답하기도 전에, 도겸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심현빈,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내 입이 나한테 달렸으니, 나도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네가 뭘 어쩔 건데?”도겸은 펄쩍펄쩍 날뛰고 있었지만, 그에 비해 현빈은 무척 평온했다. 그러나 현빈의 눈빛은 어둡고 무서웠다.도겸은 차갑게 선우를 바라보았다.“이런 자식을 불렀다니, 이게 무슨 뜻이야? 날 무시하는 거야? 아니면 이 자식이 내 앞에서 내 여자를 꼬시는 것을 지켜보라는 거야?
도겸은 몸이 비틀거렸다.“그게 무슨 뜻이야?”“내 말을 정말 모르는 거야? 하긴, 넌 네가 엄청 잘 숨겼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정은 씨는 바보가 아니잖아.”도겸은 오히려 그 말을 왜곡했다. 그는 현빈의 옷깃을 잡더니 눈빛이 매서웠다.“너 도대체 정은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허, 넌 아직도 너희들이 헤어진 이유를 모르는 것 같군.”“네가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나야 당연히 알지...”“닥쳐!”현빈은 도겸을 뿌리치더니 자신의 옷깃을 정리했다. 그리고 차갑게 도겸을 바라보았다.“지금 네 꼴 좀 봐라, 집이 없는 개와 다름이 없잖아...”이때 선우가 소리를 쳤다.“그만 좀 하세요! 형들 말 좀 작작 하면 죽는 거예요?! 친구들끼리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거냐고요?”도겸과 현빈은 동시에 말했다.“누가 이 자식과 친구라는 거야?!”“난 이런 친구 없어.”선우는 말문이 막혔다.도겸은 현빈을 가리키며 경고했다.“정은에게서 떨어져. 그렇지 않으면...”“그렇지 않으면 어쩔 건데?”“나도 내가 무슨 짓 할지 몰라!”현빈이 말했다.“여기서 나한테 독설을 퍼부어도 소용없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정은 씨에게 고백을 할 거야. 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은 바로--”그는 또박또박 말했다.“네가 이미 정은 씨를 잃게 되었다는 거지! 돌이킬 수도 없고, 만회할 수도 없어. 만약 정은 씨의 혐오를 더 사고 싶지 않다면, 자각 좀 해.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정은 씨를 점점 더 멀리 밀어낼 뿐이야.”현빈은 말을 마치고 도겸을 넘어 선우의 어깨를 두드렸다.“네가 수고 좀 해. 다시는 술주정 부리지 못하게 잘 지켜보고.”말을 마치며 현빈은 성큼성큼 떠났다.선우는 제자리에 서서 넋을 잃은 도겸을 바라보더니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당초 왜 정은 누나를 그렇게 대한 거야?’“선우야...”“도겸 형.” 선우는 얼른 앞으로 가서 도겸을 붙잡았다.“우리 그만 돌아갈까요?
도겸은 들은 체 만 체했다.계단에 도착할 때, 선우는 그제야 쫓아오더니 도겸을 붙잡았다.“형, 그만 떠들고 이제 그만 돌아가요! 어차피 정은 누나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예요...”“정은에게 줄 게 있어.”선우는 어리둥절해했다.“뭔데요?”도겸은 주머니에서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비염 연고 한 통을 꺼냈다.“요즘 알레르기 때문에 재채기를 할 거야. 이걸 정은에게 가져다줘야지...”그 순간, 선우는 갑자기 코끝이 찡했다.‘그렇게 사랑했던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그래.”도겸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정은에게 약을 주러 왔어... 이것만큼은 꼭 정은에게 줘야 해... 꼭...”말하면서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도겸은 눈앞이 어두워지며 몸도 나른해졌다.선우는 얼른 그를 부축하며 차로 끌고 갔다. 그러나 골목 어귀에 주차된 SUV를 바라보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별장에 도착할 때, 시간은 이미 새벽 1시였다.가정부가 문을 열자, 선우는 얼른 말했다.“좀 부축해줘요! 형은 술에 취했으니까 이따가 해장국 좀 만들어 주세요...”부탁하고 나서야 선우는 차를 몰고 떠났다.연희는 이미 침대에 누웠다. 한창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일어나기 싫었지만 도겸을 위해, 재벌 집안으로 시집가기 위해 연희는 졸음을 참으며 외투를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가서 물 좀 따라줘요. 내가 오빠 부축할 테니까.”연희는 앞으로 다가가더니 도겸을 부착하려 했다.“하지만 작은 사모님, 지금 몸이 불편하시잖아요...”가정부는 임신한 연희에게 무슨 일 생길까 봐 걱정했다.성인 남자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연희는 짜증을 내며 손을 흔들었다.“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이모님은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그럼 알겠어요.” 왕미자는 이 말을 잘 듣고 도겸을 그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연희는 도겸을 부축하자마자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남자는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해서 지금 모든 무게가 그녀에게 떨어졌다.“잠, 잠
‘정은아... 너무 보고 싶어... 제발 내 곁으로 돌아와, 응?’도겸에게 대답하는 것은 어두컴컴한 거실과 창밖의 휘몰아치는 차가운 바람뿐이었다....이튿날 정은은 아침 일찍 깨어났다. 세수하고 밥을 한 다음, 실험실로 갈 준비를 했다.문을 닫을 때, 그녀는 문 손잡이에 종이봉투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비염 연고가 들어 있었다.게다가 그녀가 자주 쓰는 그 브랜드였다.정은은 사방을 둘러보았다.‘누가 보낸 거지?’이때 정은의 눈빛은 맞은편 문에 떨어졌다. 그녀는 연고를 보더니 또 종이봉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문을 두드리며 재석에게 물어보려던 참에 문이 갑자기 열렸다.재석은 엄숙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고, 정은을 보자 얼른 발걸음을 멈추었다.정은은 남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재석은 정색했다.“일단 실험실에 가자. 걸으면서 얘기해.”“네.” 정은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지기 시작했고, 연고에 관해 물어보는 것도 잊어버렸다.도중에 재석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저쪽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그는 안색이 변하더니 말투도 약간 무거워졌다.“응, 알았어. 지금 가고 있으니까 곧 도착할 거야.”전화를 끊자, 재석은 정은이 묻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말했다.“실험실의 컴퓨터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이번 주의 실험 데이터가 전부 사라졌어.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최악의 경우...”재석은 잠시 멈추었다.“모든 데이터가 분실되면서 실험을 다시 해야 할지도 몰라.”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실험실의 데이터는 모두 백업되지 않았나요?”“컴퓨터는 잠시 꺼졌을 뿐인데, 다시 켜보니 백업한 데이터도 30% 정도밖에 안 남았어.”데이터가 유출되지 않도록, 또 컴퓨터를 끊김 없이 사용하기 위해, 그들은 매달 실험실의 데이터를 정리해야 했다.지난 월요일은 마침 월말이어서 방금 데이터를 정리했다.이치대로라면 컴퓨터에 일반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기술자는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이 벌써 다섯 번이에요. 아직 다 조사하지 못했단 말이에요.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좀 보고 나서야 교수님들을 도와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죠.”태민은 얼른 말했다.“그럼 저도 조용히 있을 테니 얼른 확인해 보세요.”그리고 참지 못하고 재석을 바라보았다. 태민은 그가 이 일로 수아를 탓할까 봐 걱정이었다.생각하다가 태민은 재석에게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조 교수님, 수아가 컴퓨터를 끌 때 저도 봤어요. 저는 이번 일이 정말 의외의 사고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요. 수아는 이틀 동안 데이터를 입력하기 위해서 잘 쉬지도 않았으니, 일부러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어요...”재석은 미간을 비볐다.“일이 똑똑히 밝혀지기 전에 난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을 거야.”그는 수아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재석은 나쁜 예상과 가상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사실만 알고 싶었다.태민이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미진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하지 말라고 눈짓했다.재석은 억울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지 않을 것이고, 또 나쁜 사람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태민은 입을 다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0여 분이 지나자, 기술자는 일어나서 재석을 바라보았다.“아마도 바이러스 때문인 것 같네요. 저는 이미 최선을 다해 데이터를 복구했어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남아 있는 백업 외에 다른 데이트는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네요.”사람들 모두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지만, 진정으로 이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재석은 눈살을 찌푸렸다.“실험실 안에 있을 때, 모두들의 핸드폰은 꺼져 있는 상태였고, USB도 학교에서 통일로 준 것을 사용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바이러스에 걸릴 수가 있죠?”기술자는 고개를 저었다.“이 바이러스는 무척 복잡해서요. USB과 핸드폰은 직접 매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간접적인 매체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감시 카메라 시스템, 심지어 문밖의 지문 잠금 해제
”반년 전, 그들은 새로운 기능을 하나 개발해냈죠.”정은이 여기까지 말하자, 컴퓨터를 수리하는 기술자는 바로 깨달았다.“AI 리포터를 말하는 거지?”모두들 어리둥절해졌다. 이것은 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확실히 잘 몰랐다.재석이 말했다.“썬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이후 새로 추가한 AI 지능을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이 기능에 문제가 많은데.”대량의 데이터가 분류되지 않고 온라인으로 업로드될 수 있지만, 저장시간을 통해 검색할 수 없으며 현재 유일하게 검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키워드일 뿐이었다.다시 말해서, 잃어버린 데이터가 어느 것인지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데이터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부 기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10분의 1은 기억해야 했다.오직 이렇게 해야만 정확한 수색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으면 바다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태민이 말했다.“10분의 1이라도 엄청 많은데. 그것은 세 조의 실험 데이터에 해당하잖아요.”“이건...”진욱은 잠시 머뭇거렸다.“이건 기억해내기가 무척 어려운데.”그들은 실험을 마친 다음 바로 컴퓨터에 데이터를 기록하며 저장했기에 머리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기억하고 싶어도 이렇게 많은 것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수아는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다.“아무도 기억할 수 없는데 왜 굳이 이런 말을 한 건지... 누구는 또 사람들의 관심을 얻으려고 쇼를 하고 있네...”그녀의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정은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한 번 해 볼게요.”“네가?!” 태민은 깜짝 놀랐다.“이렇게 많은 데이터를 기억할 수 있는 거야?”‘그것도 우리 팀의 데이터를?’정은은 그들의 과제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기에 아마도 그 데이터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와서 자기가 기억한다고 말하다니?‘차라리 귀신을 속여라!’이번에 재석조차 깜짝 놀랐다.“넌 10분의 1이 무슨 개념인지 아니? 그리고 너도
그리고 전에 몇 번 만났을 때도 정은은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된 이상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나았다. 어차피 우연하게 몇 번 만난 것 외에 두 사람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강서원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아이는 생긴 것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본예의도 없군.’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강서원은 발걸음을 재촉했다.“정은아, 너 어디 갔었어? 빨리 와봐, 난 이미 다 골랐어.”이미숙이 정은을 불렀다.“벌써요? 전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엄마가 입어보는 것도 못 봤네요...”“돌아가서 다시 입어볼게.”“네.”“방금 한 여사님을 만났는데, 내가 원피스를 하나 골라줬거든. 그런데 글쎄 자신의 아들이 ‘7일담'을 보고 있다는 거야...”이 시각, 먼 실험실에 있는 재석은 재채기를 여러 번 했다.진욱은 옆에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조 교수, 재채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대체 밖에 여자가 얼마나 있길래...”“지금 많이 한가한가 봐??”진욱은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내일 그냥 혼자 크리스털 호텔의 세미나에 참석해.”‘안 돼!’진욱은 속으로 생각했다.조수진은 몰래 웃었다.“쌤통이다! 그러게 누가 조 교수님을 건드리래!”...정은 일행이 쇼핑을 마칠 때, 시간은 이미 오후 6시가 되었다.그래서 그들은 아예 백화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모녀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의논할 때, 나석천의 전화가 걸려왔다.[이미 레스토랑을 예약했으니 직접 지하 1층으로 내려오세요.]이미숙이 말했다.“편집장님이 밥을 사시다니? 이건 말이 안 되죠.”[제가 작가님을 J시로 초청했잖아요. 그럼 따지고 보면 제가 작가님의 의식주를 모두 책임져야 하죠. 지금은 그냥 밥을 한끼 사는 것일 뿐, 이건 제가 영광이죠.]나석천의 목소리는 여전히 명랑하고 우렁찼다.이미숙이 L시 사람이라서 입맛이 좀 담백한 것을 고려하여 나석천은 J시와 외지
그러나 일은 점원이 예상했던 것처럼 되지 않았다.강서원은 이미숙에게 다가가더니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이 원피스가 잘 어울리네요.”강서원도 입어보았는데, 나름 괜찮았지만 이미숙이 입는 게 더 잘 어울렸다.사이즈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더 잘 어울렸다.강서원의 기질은 너무 강직해서 부드럽지 못했지만, 이미숙은 딱이었다.부드럽게 생긴 데다가 미소까지 부드러워 이목구비가 무척 편안해 보였다.‘얄밉지 않은 얼굴이야.’말하자면, 강서원은 줄곧 동서인 백지영, 그리고 지난번 다례 수업에서 한복을 입은 정은처럼 기질이 부드러운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그러나 앞에 있는 이미숙은 의외로 강서원의 마음에 들었다.점원은 한쪽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이미숙처럼 세심한 사람은 재빨리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릴 것이다.그녀는 강서원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고마워요.”이미숙은 곁에 있는 한 원피스를 가리켰다.“여사님은 몸매가 좋아서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원피스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한번 입어봐요...”강서원은 상체가 풍만하고 허리가 가녀려 허리라인이 돋보이는 원피스를 입는 게 더 적합했다.사실 지금 이미숙이 입고 있는 이 원피스는 커팅부터 원단까지 모두 괜찮지만, 허리라인이 뚜렷하지 않아 강서원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뚱뚱해 보이게 만들었다.이미숙이 가리키고 있는 원피스도 검은색이었는데, 입으면 아주 날씬해 보일 수 있었다. 커팅은 허리라인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물고기 꼬리와 같은 하이웨스트 디자인은 나른함을 더했다. 이는 원피스 자체의 엄숙함을 덜어주었다.강서원도 기대를 품지 않고 옷을 입어보았는데, 뜻밖에도 그녀와 정말 잘 어울렸다.전신거울 앞에 선 강서원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안목이 정말 좋네요. 코디라도 배운 적이 있는 건가요?”이미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하지만 코디 잡지를 즐겨 보곤 했죠.”“보기만 하면 되나요?”“스스로 코디도 할 수 있죠...”두
소씨 가문의 남자는 저마다 잘생겼는데, 소진헌은 키가 크고 훤칠했으며 중년이 되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몇 벌의 양복을 입어보자 모두 아주 어울렸다.소진헌은 이미숙에게 물었다.“여보, 어느 게 괜찮을 것 같아?”정은도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이미숙은 잠시 생각했다.“다 괜찮은데.”“그럼 어느 걸 골라야 하지?”이미숙이 말했다.“고를 필요 없어요. 다 사면 되죠.”“그건 안 돼, 이게 얼마나 비싼데? 난 이 한 벌이면 충분해. 집에 옷이 아직 많잖아.”이미숙은 이미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네주었다.“이 세 벌 다 포장해줘요. 고마워요.”“네, 알겠습니다!”점원은 웃으며 카드를 가져갔다.소진헌은 수줍은 소녀처럼 이미숙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여보, 이건 너무 비싸잖아. 한 벌에 몇 백만 원이라니...”“괜찮아요, 내가 당신에게 사주는 거예요.” 이미숙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어제 배당금을 받았는데, 수억이 넘어요.”소진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그, 그렇게 많아?”“그럼요.”“여보, 정말 너무 대단해!”이미숙은 얼굴이 붉어졌다.“콜록!” 정은은 큰 소리로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곁에 있는데, 두 분은 좀 자제하시면 안 되는 건가?’소진헌의 옷을 사는데 시간이 들지 않았지만, 이미숙은 아니었다. 2층 여성복 구역을 몇 번이나 돌아다녔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어떤 옷들은 심지어 딱 봐도 아니었기에 입어 볼 의욕이 전혀 없었다.정은은 갑자기 한 프랑스의 브랜드를 떠올렸다. 이름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아, 매장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매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멀리 떨어진 모퉁이에 있었다.그래도 옷은 예뻤는데, 이미숙은 발을 디디자마자 눈이 밝아졌다.정은이 골라줄 필요 없이 이미숙은 이미 자신의 생각이 있었다.그녀는 먼저 치마 두 벌을 입어 보았는데, 오렌지색과 파란색이었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모두 피부톤과 잘 어울렸다.치맛자락의 무늬는 레이스에 자수를 더한 것으로, 고전적이고 우아한 운치를 띠고
경혜는 도겸의 뒷모습을 주시했다.그녀는 오늘에야 남자의 차가 포르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옷은 아르마니, 시계는 파텍필립이었다.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케이크를 보니 경계는 눈빛이 절로 깊어졌다.다른 한편, 정은이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는 이미숙을 데리고 쇼핑을 하러 갔기 때문이다.그녀는 전공 수업의 교수님에게 미리 설명을 했다. 다행히 오늘은 새로운 내용을 배우지 않고 주로 지난주 팀 과제를 보고하고 총결하는 것이었는데, 민지와 서준이 보고하면 됐기에 정은도 부담 없이 휴가를 낼 수 있었다.내일이 바로 사인회였고, 요 몇 년 동안 이미숙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거의 참석한 적이 없었다.이미숙은 이리저리 골랐지만, 옷장에 있는 옷이 사인회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못 입는 건 아니지만 뭐가 좀 부족했다.소진헌은 진심으로 칭찬을 했다.“우리 여보는 무엇을 입어도 다 예뻐, 정말이야!”그러나 이미숙은 평소처럼 소진헌의 농담에 웃지 않았다.정은은 재빨리 알아차렸다.“엄마, 우리 새 옷 사러 가요! J시에 큰 백화점이 얼마나 많은데, 틀림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옷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이미숙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그래!”소진헌은 어수룩하게 머리를 긁적였다.‘왜 내 칭찬이 쓸모가 없는 거지?’...SSG 백화점에서.세 식구는 관광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1층에 고급 브랜드가 가득 모인 사치품 매장이 점차 작아지는 것을 보며, 이미숙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 백화점 정말 크네!”의상은 2층과 3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층수를 미처 누르지 못해서 그들은 4층으로 올라갔다.이미숙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책장 포스터에 이끌려 세 사람은 아예 이 층에서 내리기로 했다.위에는 ‘SSG RENDEZ-VOUS’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서점처럼 보이지만 일반 서점과 달랐는데, 서점과 카페 및 레스토랑이 하나로 된 곳이었다.문에 들어서면 카페라서 공기 중에 진한 원두 향기가 풍겼다.뒤에는 음식이 있었다.가운데는
“그래,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말하면서 민지는 서준의 팔짱을 끼고 기뻐하며 학교 밖으로 돌진했다.서준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손을 빼려고 했다.민지는 바로 그를 잡아당겼다.“야, 쑥스러워하지 마. 우린 절친이잖아!”민지는 말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팔을 못 빼겠네! 이 여잔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두 사람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케이크를 들고 스포츠카에서 내려오는 도겸을 보았다. “어머!”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사람은 왜 매번 차를 교문 앞에 세우는 건지 모르겠네. 심각한 교통 체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서준은 잠시 침묵했다.“아마도 이런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어디가 멋있다는 거야? 포르쉐에서 내려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으니까?”“그럴 수도?”민지는 서준을 바라보았다.“너도 이런 게 멋있다고 생각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집은 국산 자동차를 선호해서.”민지가 말했다.“나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삼촌 할아버지는 모두 렉서스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거든.”“그럼 왜 자꾸 포르쉐를 운전하는 거지?”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도겸을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들고 있는 케이크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서준은 그녀가 침을 삼키는 동작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도겸은 몇 번이나 찾아오면서 정은이 늘 민지와 서준과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 횟수가 많아지자, 그도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도겸은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정은이는? 오늘 왜 너희들과 같이 있는 않는 거야?”민지는 사실대로 말했다.“정은 언니 오늘 학교에 안 나왔어요.”“왜?”“휴가를 냈거든요.”“왜 갑자기 휴가를 낸 거야?”“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도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묻고 싶었다.그러나 민지는 이미 서준의 팔을 잡으며 밀크티 가게로 향했다.“저희는 아직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도겸은 허탕을 쳤다. 양복 차림을 한 사람이 미니언즈 포장의 케이
“선배님, 다 됐어요?”정은이 입을 열고서야 재석은 정신을 차렸다.“응, 다 됐어.”“고마워요.”재석은 또 정은의 허리를 힐끗 쳐다보았다.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게 분명해!’...도겸은 해가 지고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줄곧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그도 잠을 자고 싶었지만 아예 잠이 오지 않았다.머리는 지칠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했다.두 사람이 달콤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자신이 찌질하게 굴던 장면도 있었다.날이 밝자, 도겸은 그제야 추억의 늪에서 벗어났다.아침 8시, 직장인들은 저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전을 하며 달북동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평소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였지만, 오늘 꼬박 한 시간이나 걸렸다.“안녕하세요, 망고 케이크 하나 주세요.”점원은 멈칫했다.“통째로 된 케이크를 원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한 조각을 원하시는 거예요?”“통째로 된 거요.”“손님, 정말 운이 좋네요. 지금 금방 하나 만들었는데 곧 자르려고 했거든요. 몇 분만 늦으셨다면 아마도 1시간 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도겸은 가볍게 응답했다.점원은 포장을 하면서 물었다.“이렇게 일찍 케이크를 사러 오셨다니,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내 여자... 전 여자친구가 좋아해서요.”이 말 한마디에 젊은 점원은 바로 예전에 본 로맨스 소설을 떠올렸다.‘누가 진정한 주인공인지 모르겠네.’도겸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케이크를 받은 다음 바로 차에 올라탔다.점원은 카운터 앞에 서서 유리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이야, 스포츠카라니... 더 소설 주인공 같잖아.’...오전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자, 하민지와 임서준은 실험실에 가려고 했다.강의동을 나오자마자 민지는 참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목이 좀 마른데.”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이미 그의 침묵에 익숙해진
도겸의 심장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소진헌이 재석을 대할 때의 열정과 자신을 대할 때의 냉담함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도겸은 계속 서 있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을 닫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는데, 재석이 정은의 집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도겸은 거절당한 선물 더미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왕순자는 이미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이곳은 다시 정은이 금방 떠났을 때의 쓸쓸하고 적막한 곳으로 변했다.도겸은 위층으로 올라간 다음 안방으로 들어갔다.화장대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고, 그 위에는 아직 다 쓰지 않은 스킨케어 제품이 놓여 있었지만, 그들의 주인은 이미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정은이 날 버린 것처럼.’도겸은 아래의 서랍을 열었다. 전에 이 안에는 수표 한 장과 토지 증여 계약서, 그리고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 있었다.몇 개의 다이아몬드는 사수자리의 모양을 이루었다.이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 팔찌였다. 정은의 22번째 생일이 되던 해에 도겸은 특별히 유명한 디자이너인 존 스미스를 청하여 그녀를 위해 디자인했고, 그녀가 자신의 삶을 비춘 별이라는 뜻이었다.정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기 위해 도겸은 고의로 그녀와 말다툼을 벌였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톡까지 차단했다.정은의 생일날인 새벽 12시, 도겸은 이 팔찌를 들고 서비대학교 문 앞에 나타나 그녀에게 가장 큰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주었다.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비록 정은이 팔찌를 받았고, 두 사람도 오해를 풀고 다시 화해했지만 도겸은 그녀가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그 후 그도 정은이 이 팔찌를 몇 번 찬 것을 보았다.그러나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은이 이 팔찌를 낄 때마다 두 사람은 크게 싸우곤 했다.후에 정은은 아예 팔찌를 서랍에 잠그며 다시는 끼지 않았다.“도겸아, 난 너와 다투고 싶지 않아. 정말이야. 매번 다툴 때마다 난 우리의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아. 나와 너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고
“이 물건들 그냥 가져가. 우리는 친척도 친구도 아니니, 이 물건들이 비싸든 안 비싸든 우리는 받을 이유가 없어. 그리고 너와 정은이는 이미 헤어졌어. 지금은 낯선 사람과 마찬가지이니, 우리는 네 선물을 받을 이유가 더욱 없지 않겠어?”도겸과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났을 때, 이미숙은 소진헌과 레스토랑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도겸은 빈손으로 와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먼저 말을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때 이미숙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 남자는 우리 정은이와 어울리지 않아.’그러나 정은은 그때 도겸에게 푹 빠졌다. 도겸이 핑계를 대고 떠난 뒤, 그녀는 열심히 그의 편을 들어주며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이미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마음이 아팠다.굽실거리는 딸이 안타까웠고, 남자의 존중을 받지 못해서 더욱 안쓰러웠다.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든, 적어도 도겸은 그들을 하나도 존중하지 않았다.한 남자가 자신의 부모님조차 존중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그 여자를 존중하겠는가?이미숙은 어머니로서 기쁨을 안고 찾아왔지만, 다시 근심과 걱정을 안고 돌아갔다.물론, 그녀도 또한 이러한 도리를 정은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심지어 좀 더 강경하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으니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미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녀는 정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끝을 보지 않는다면, 정은은 앞으로 후회할 것이고, 줄곧 이 일이 마음에 걸려 평생 행복해하지 않을 것이다.아이가 성인이 된 이상, 부모로서 그들도 이제 손을 놓아줘야 했다. 정은이 스스로 인생을 겪도록.그러나 이미숙은 정은이 이대로 공부를 포기할 줄은 몰랐다.그 대가는 너무 컸다.“다행히 모든 일이 지나갔고, 정은이도 이제 새로운 생활을 하기 시작했어. 만약 마음속으로 여전히 우리 정은이에게 미안하다면, 더 이상 찾아와서 방해하지 마.”이미숙은 다른 사람과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다투는 것을 더욱 좋아하지
도겸은 바로 확인을 한 다음, 전화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대리를 불렀다.“이것들 모두 종료해.”“네?” 대리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회사가 현재 가장 중시하는 프로젝트인데, 그중 몇 개는 곧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갑자기 종료를 하다니?“내가 한 말에 무슨 이의라도 있는 거야?”“아, 아닙니다.”“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거야?”“그것도 아닙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대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대표님, 저 이해가 좀...”“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20여개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지 모두 큰 문제였다.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올 때, 이미 깊은 밤이 되었다.그는 사무실의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휘영청 밝고 등불은 희미했다.“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현빈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도겸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도 여러 가지로 나뉘었는데,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네가 얼마나 좋은 여자를 놓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런데 그 전에 그들은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왜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도겸은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느낌은 별장에 돌아가 텅 빈 거실을 바라볼 때 절정에 달했다.‘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현빈은 이미 정은이의 부모님을 만났다고 했어...’이른 아침, 금빛 햇살이 대지에 쏟아졌다.정은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는데, 소진헌과 이미숙을 깨우지 않고 혼자 먹고 조용히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오전에 수업이 없어서 그녀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시장에 들렀다.그렇게 소진헌과 이미숙이 일어났을 때,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정은은 신선한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