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는 안색이 약간 변하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소정은, 너 지금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난 우리 팀의 모든 보고서를 전부 시스템에 입력했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만약 믿지 않는다면, 다들 그 입력 목록을 찾을 수 있어요. 비록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대부분의 데이터를 잃어버렸지만, 그 기록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수아는 또박또박 말했다.“나한테 뒤집어쓸 생각 하지도 마!”정은은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하지만 전 그 보고서를 버리지 않았어요. 쓰레기통에 버리기 전에 얼핏 봤는데, 위에 적힌 날짜가 당일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돌려놓았어요.”“그럼 무슨 증거로 내가 보고서를 잃어버렸다는 거지? 바닥에 있는 걸 보고 주웠다가 다시 갖다 놓았다니. 나더러 무슨 말을 더 하라는 거야!”“우선 저는 땅에 보고서를 보고 주워서 원래대로 갖다 놓았다는 이 사실을 진술했을 뿐, 누가 보고서를 잃어버렸다고 원망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니 이런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겠죠.”“넌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러길 원해서 이렇게 말한 거잖아!”“그리고.”정은은 목소리를 좀 높였다.“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그 실험 보고서를 찾아내서 위에 발자국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면 되니까.”수아는 냉소를 하며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데이터를 입력한 후에 모든 보고서가 소각되는 것도 모르는 거야?”“괜찮아요. 실험실에 CCTV를 설치했으니, 그저께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의 영상을 찾아보면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수아는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했다.그저께 그녀는 확실히 발자국이 찍힌 보고서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그때 수아는 금방 데이터 입력을 마쳤다. 제때에 이 보고서를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재빨리 보충 입력했다.태민은 수아의 표정을 보자마자 정은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재빨리 나서서 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에이,
10초도 안 되자, 대량의 관련 데이터가 화면에 나타났다.미진은 목에 핏줄까지 세우며 불렀다.“선생님! 빨리 와서 이 데이터가 맞는지 좀 보세요...”기술자는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았고,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확실히 전에 잃어버린 데이터네요. 하지만 이것이 교수님들이 찾고 있는 데이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누가 한 번 검사해 보세요...”수아가 바로 앞으로 걸어갔고, 기술자는 얼른 일어나서 자리를 그녀에게 양보했다.시간이 1분 1초 지나갔다. 수아가 계속 말을 하지 않자, 미진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말 좀 해, 데이터가 얼마 정도 회복된 거야?”“거의 다 회복되었어요.”수아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러나 표정은 그리 기뻐 보이지 않았다.미진은 수아가 말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보고 스스로 가서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놓았다.“하나님이시여, 99%나 되찾았어!”그녀는 말하면서 정은의 팔을 안았다.“이번에 다 정은이 네 덕분이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며칠이나 밤을 새워야 할지 몰라! 이 데이터들은 야근을 해도 두 주일 이상 걸릴 거야!”“서비대 학생답게 머리가 정말 좋네요.” 기술자도 허벅지를 두드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진욱도 고개를 끄덕였고, 흐뭇한 동시에 감격에 겨웠다.“그래, 이번에 정은이 덕분에 우리가 살아난 거야!”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감탄을 하며 농담했다.“우리 조 교수님의 안목이 참 대단한데? 이렇게 좋은 학생을 미리 찜해두었다니 정말 대단해!”그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눈빛은 의미심장했다.재석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마치 진욱의 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그러나 양쪽에 늘어진 두 손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다음 순간, 재석은 자신이 뜻밖에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다시 두 손에 힘을 풀었다.하지만 마음은 이미 정은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했다...태민은 쯧쯧 소리를 냈다. 정은을 주시하는 눈빛은 마치 무슨 외계인이라도 살펴보는 것 같
[응. 누군가 감시실에 잠입해 감시 시스템을 통해 바이러스를 심은 거야.][누군데요?][상대방은 얼굴을 가려서 알아볼 순 없지만, 서비대 내부의 사람이 확실해.]정은은 입술을 깨물었다.[절대로 그 사람을 가만두면 안 돼요. 이번에는 바이러스지만, 다음에 또 무슨 짓 할지 모르잖아요.]재석은 정은의 문자를 보고 낮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그의 옆에 있던 기술자는 영문을 몰랐다.‘뭐가 그렇게 웃기지? 갑자기 웃으니까 좀 섬뜩한데...’재석이 답장을 보냈다.[좋아, 네 말대로 할게.]정은은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일어나서 샤워하러 갔다....숙취로 인한 두통에 도겸은 아파서 숨을 들이마셨다.일어나서 창밖을 바라보니, 날은 이미 어두웠다.‘내가 꼬박 하루 동안 잤구나.’위가 또 은근히 아프기 시작하자, 도겸은 능숙하게 침대 머리맡의 서랍에 있는 위약을 꺼냈다. 그리고 이미 식은 물을 들어 약을 삼켰다.차가운 물이 식도를 지나 위로 들어가자, 도겸은 아파서 몸서리를 쳤다.“약을 먹을 순 있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단 말이야. 약은 몸에 좋지 않으니 음식으로 몸을 조리하는 게 제일 좋지. 빨리 일어나서 이 대추탕부터 마셔...”“너무 달아? 그럼 다음에 설탕을 조금만 넣을게...”“오늘 저녁에 술 좀 적게 마실 수 없어? 내가 두 주일 넘게 보신탕을 끓이면서 네 위를 조리해 줬잖아. 또 많이 마시면 위병이 다시 도질 텐데...”“도겸아, 앞으로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시지 마, 응? 네 몸이 너무 걱정돼...”“계속 이렇게 만취해서 돌아오면, 나 정말 화가 날지도 몰라!”“오늘은 양고기탕이야. 반드시 다 마셔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난... 아! 어떻게 매번 보신탕을 마시라 할 때마다 날 키스하려는 거야? 이런 수작으로 내 입을 막아도 소용없어... 음!”“도겸아, 나 정말 화났단 말이야. 키스해도 소용없어!”...“마시지 마.”“강도겸, 난 네가 곤드레만드레 취한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죽은 솥에 있어. 난 피
”꺼져!”“도겸 씨...”“꺼지라고, 내 말 못 들었어?!”연희는 입술을 깨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남자는 그런 연희를 조금도 봐주려 하지 않았다.“그리고, 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절대로 이 방에 발을 들여놓지 마, 알아들었어?”“왜요?” 연희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글썽이며 도겸을 바라보았다.“여긴 안방이잖아요. 우리의 방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제가 들어올 수 없는 거죠?”“허, 우리?” 도겸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네가 내 아내로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연희는 충격에 몸을 비틀거리더니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그러나 도겸은 그녀를 부축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구경꾼처럼 차갑게 웃으며 연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연희에게 계속 연기하라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꺼져!”여자는 힘없이 돌아섰다.“잠깐만...”연희는 다시 희망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그러나 다음 순간, 도겸의 싸늘한 말이 들려왔다.“이 쓰레기들 가져가.”결국 연희는 쟁반을 들고 의기소침하게 안방에서 나왔다.“작은 사모님, 도련님께서 아직도 입맛이 없으신 거예요?”연희는 빠르게 감정을 조절하며 걱정을 하는 말투로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요, 먹고 싶지 않다고 하니 내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네요. 이 음식들은 이모님이 알아서 처리해요. 난 다시 올라가서 도겸 씨와 함께 있어줄게요...”“네, 알겠습니다. 얼른 올라가세요. 이것은 저에게 맡기시면 됩니다.”“그래요.” 연희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받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러나 등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미소가 사라졌다.고개를 들어 안방을 보며, 연희는 맹세했다.‘난 언젠간 그 방이 주인이 될 거야!’그날 저녁, 도겸은 모처럼 외출하지 않았는데, 저녁 9시에 왕미자에게 음식을 들고 방에 올라오라고만 했다.연희는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왕미자가 드나드는 것을 듣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난 가정부만도 못하단 말이야?’
[무슨 약을 말하는 거야?]“그... 남자들이 먹으면 흥분해질 수 있는 약...”상대방은 침묵을 하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남자에게 약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넌 이미 그런 꼴로 된 거냐고?]연희는 화를 냈다.“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요. 다른 일은 당신과 상관없으니까요!”[기다려.]상대방은 간단하게 대답한 다음 바로 전화를 끊었다.연희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재벌 집은 천장까지 예쁘게 꾸몄다.이런 생활을 체험해 본 그녀는 다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러니 난 반드시 도겸 오빠의 마음을 잡아야 해.’...아침 일찍 일어난 정은은 청소를 하고 또 점심을 준비해서야 실험실로 출발했다.오전 내내 바쁘게 돌아치며 두 조의 데이터를 완성했는데, 정은은 이 진도에 나름 만족하는 편이었다.데이터를 입력하고 제대로 저장된 것을 확인한 다음, 정은은 냉장고에 있는 도시락통을 꺼내 전자레인지로 데우려 했다.조미진은 멀리서 향기를 맡고 달려왔다.“정은아, 점심에 뭘 먹는 거야? 냄새 정말 좋다. 배달시켰어?”치킨은 노랗고 바삭하게 잘 튀겨져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그리고 브로콜리는 푸르고 마늘의 향기까지 풍기고 있었다.고기와 야채의 조합은 너무나도 완벽해서 엄청 맛있어 보였다.“배달이 아니라 제가 만든 거예요. 치킨은 아직 먹지 않았는데, 한 번 드셔볼래요?”예전 같으면 미진이라면 쑥스러워서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황금빛깔의 치킨을 보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럼 잘 먹을게!”말을 마치면서 바로 하나 집어갔다.치킨은 바삭바삭하고 고소하며 간도 딱 좋았다.“너무 맛있어!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네.”미진의 말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녀의 요리 솜씨는 보통이었고, 가족들도 요리를 잘 하지 못했다. 가끔 밖에서 외식해도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한 건 아닌데, 대부분 식재료가 싱싱하지 않거나 양념 맛이 너무 진했다.그러나 정은이 만든 음식은 아니었다. 식재료가 싱싱할 뿐만
“그래요.”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주소는 단톡방에 보낼게요. 이따가 저 먼저 장을 보러 갈 테니, 선배님들은 일 끝나시는 대로 오세요.”“그래!”진욱이 말했다.“조 교수에게 통지해야 하는 거 아니야?”미진이 대답했다.“그럼 전 교수가 통지해.”“그래.”진욱은 핸드폰을 꺼냈다.“조 교수는 수업이 끝났는지 모르겠네...”오후 2시, 정은은 컴퓨터를 끄고 실험대를 정리한 다음 조용히 떠났다.문을 나서자마자 재석을 부딪쳤다.“장보러 가는 거야?”재석이 묻자, 정은은 약간 의아해했다.“벌써 안 거예요?”“응, 전 교수가 나한테 연락했어. 가자.”“네?”“마트에 가는 거 아니었어? 내가 차로 데려다 줄게.”“오늘은 안 바쁜 거예요?”“그렇게 바쁜 편은 아니야.”바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그 대상에게 달렸다.“그래요, 고마워요.”정은은 택시를 잡아야 할지 말지 고민했는데, 뜻밖에도 재석이 제때에 나타났다니. 이번에는 돈을 절약한 셈이었다.잠시 후, 정은은 자신이 돈을 절약했을 뿐만 아니라, 힘까지 들이지 않았단 것을 발견했다.모든 음식과 재료들은 전부 재석 혼자서 들었다.정은은 너무 많아서 짐을 좀 덜어주고 싶었지만, 남자는 오히려 뒤로 물러서며 그녀의 손을 피했다.“아니야, 내가 들면 돼.”집에 돌아온 정은은 앞치마를 두르며 잽싸게 일을 시작했다.“참, 선배님들 뭐 안 드시는 음식 있나요?” 정은은 생각나서 물었다.“전 교수는 새우를 먹지 않아. 그것 외에 다른 사람들은 꺼리는 음식 없어.”말하면서 재석도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방으로 걸어갔다.“내가 도와줄게.”...6시, 실험실에 있던 네 사람은 정은의 집으로 향했다.“전 교수님, 조 교수님께 통지하셨어요?” 이때 수아가 갑자기 물었다.그녀는 원래 오고 싶지 않았지만, 재석도 갈 것이라는 진욱의 말을 듣고 그제야 따라왔다.태민은 단지 자신이 설득해서 수아가 온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이 까칠한 아가씨를 설득했군.’“그럼. 하
미진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다른 사람들도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교, 교수님...”태민은 재석과 정은을 바라보며 마치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다.수아는 입술을 깨물더니 눈빛이 차가웠다.“조 교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진욱은 충격에서 정신을 차리고 직접 입을 열었다.“정은 씨 도와주고 있는 거 못 봤어?”“이야, 정은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도와주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진욱은 농담을 했다.“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지. 그리고 난 확실히 식사하길 기다리는 너보다 훨씬 나아.”“이웃? 그게 무슨 뜻이야?”정은이 나서서 설명했다.“조 교수님은 바로 제 옆집에 사시거든요. 맞은편의 그 방이에요. 오늘 오후 실험실에서 나와 장을 보러 가려던 참에 교수님을 만났고, 저를 태우고 마트에 강 거예요.”“그렇구나.”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난 정말 이 두 사람이 동거라도 한 줄 알았어! 깜짝이야!’태민도 가슴을 두드렸다.‘하마터면 큰 오해를 할 뻔했네. 정말 다행이다...’어두웠던 수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미소로 가득 찼다.“이제 식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래, 그래.” 미진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정은이 말했다.“다들 앉아서 먼저 드세요. 아직 두 가지 요리가 남았는데, 곧 올라올 거예요!”모두들 즐겁게 식사를 했다.미진은 정은의 요리 솜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태민도 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다이어트를 한다던 수아조차도 밥을 한 공기나 먹었다. 그녀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많이 먹었다.‘다 소정은 때문이야...’다 먹고 주방을 치운 다음, 정은은 그들을 바래다주었다.정확히 말하면 정은과 재석이 함께 그들을 아래층으로 바래다주었다.두 사람이 이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나란히 걷고 있으니 정말 부부가 손님을 배웅하는 것만 같았다.이를 본 미진은 표정이 좀 이상해졌다.태민은 계속 수아와 말을 하느라
재석은 안경을 위로 밀며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다음 순간, 현빈은 길을 건너 정은을 향해 걸어왔다.“올라가서 정은 씨 찾으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어.”“무슨 일 있어요?”“있지.” 현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표정이 심각해졌다.“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할까?”정은은 재석을 바라보았고, 현빈도 시선이 그에게 떨어졌다.“정말 공교롭게도 다시 만났네요, 조 교수님.”“공교롭긴요, 정은 씨를 찾아온다면 날 쉽게 볼 수 있을 텐데.”현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재석은 그의 눈빛을 바라보더니 피하지 않고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30분 줄게요.” 정은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충분해. 맞은편 카페에 가서 얘기하자.”이 근처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가장 많았다. 지금은 밤이라서 학생들도 이미 집이나 숙소에 돌아갔다. 그래서 나름 조용한 편이었다.정은은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인지 말해요.”“몰디브에서 생긴 그 두 건의 돌발적인 사고를 조사했을 때, 변호사팀이 일부 증거를 수집했지만,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조사 보고에 쓰지 못했어. 최근에 그 자료들을 뒤적거리다가 뜻밖에 새로운 것을 발견했는데, 네가 관심 있을 것 같아서.”“새로운 발견이요?” 정은은 영문을 몰랐다.“이것 좀 봐...”현빈은 조사 보고서를 건넸다.“위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친 곳을 자세히 읽어봐.”정은은 의혹을 느끼며 보고서를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표정이 심각해졌다.“알아차렸어? 산소통에서 가스가 새거나, 선물함에서 갑자기 독사가 튀어나오거나. 이 두 가지 일을 분석한다면, 전혀 서연희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후 감시 카메라를 다시 조사할 때, 표시된 시간도 확실히 이 점을 증명했어.”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그 뜻은, 서연희를 도와준 사람이 있다는 건가요?”“조사 결과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커.”현빈은 손을 모았다.“물론, 법률재판 차원에서 지금 이런 일들을 조사하는 것은 아무
첫 번째로 초청장을 처음 받은 사람은 하정남이었다.택배로 부쳤기 때문에 민지는 이틀 전에 초청장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냈다.택배원의 전화를 받았을 때, 하정남은 어리둥절해졌다.‘집사람리 또 인터넷 쇼핑을 한 거야? 그런데 왜 내 전화를 남겼지? 설마... 에르메스를 샀는데 착불로 부친 건 아니겠지?!’“이 사람이 정말!”옆에서 쑥뜸을 하고 있던 민지 어머니는 영문을 몰랐다.하정남은 쿵쿵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택배를 받고, 또 쿵쿵거리며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보낸 사람을 보니, 뜻밖에도 그의 딸이었다.하정남은 희색이 만면했다.“누구 택배예요?” 민지 어머니는 쑥을 들고 물었다.온 거실에 쑥 냄새가 가득했다.하정남은 맨손으로 택배를 뜯었다.“우리 민지.”“응?” 임수인은 얼른 다가왔다.“민지가 뭘 보냈어요? 왜 서류봉투죠? 계산서 아니에요?”하정남은 멈칫했다.“설마, 그럴 리가? 얼마 전에 금방 3천만 원 줬는데!”이 얘길 꺼내자, 임수인은 화를 냈다.“3천만 원을 달라했다고 바로 줘요? 앞으로 국고를 달라고 한다면, 그것까지 훔쳐서 줄 거예요?! 평소에 내가 가방을 몇 개 사면 반년 동안 잔소리를 하다니. 지난달에 내가 차를 바꾸겠다고 해도 허락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민지가 말 한마디만 하면 바로 줘요? 민지도 내가 낳은 딸이잖아요!”“이 돈 가지고 뭘 했는지 누가 알겠어요? 남들과 나쁜 짓을 배우는 것도 두렵지 않나 봐요!”“민지가 말했잖아, 실험실을 짓겠다고!”임수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실험실이요? 당신은 그걸 믿는 거예요! 전국 최고의 대학교에서 실험실 한 칸을 못 내주는 거예요 뭐예요? 왜 민지가 자신의 돈을 써서 새것을 지어야 하냐고요? 맨날 돈을 많이 줘서 무슨 사고라도 쳤겠죠!”“어제 뉴스를 봤는데, 재벌 2세의 대학생들이 매년 클럽에 가서 수십억을 쓴다잖아요. 이상한 남자와 엮이면 어떡하려고. 당신은 민지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줬으니, 나중에 남자에게 속으면 어쩌려고요?”“하긴, 내가 당신에게 아들을
1개월 23일에 걸쳐 2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 첨단 지능형 시스템과 두 단계의 생물안전등급 체계를 갖춘 실험실이 마침내 이번 겨울 세 번째 눈이 멈춘 후 완공되었다. 인훈은 자신의 팀을 데리고 실험실 지능시스템의 마지막 테스트를 진행했다.이와 함께 현빈의 명의로 된 과학기술회사가 해외를 통해 구매한 각종 실험기기도 속속 도착했다.민지와 서준은 요 며칠 바빠서 죽을 지경이었다.인훈과 스마트 시스템 조작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 외에, 기기를 점검하고 공간을 배치해야 했다.실험대며 정수기며 모두 두 사람이 직접 안착시켰다.수업, 식사,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여기에서 보냈다.서준네.“서준아, 또 나가려고?”“네, 할머니!”“오늘은 토요일이잖아? 수업도 없는데 왜 자꾸 밖으로 뛰쳐나가는 거야? 너 여자친구 사귀었어?!” 할머니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아니에요!”“그럼 뭐 하러 가는 건데?”“중요한 일이 하나 있어요! 할머니, 저 먼저 갈게요.”말을 마친 후, 서준은 가방을 들고 목도리를 두르며 성큼성큼 집을 나섰다.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어린아이한테 무슨 큰일이 있겠어?”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차를 마시던 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서준이 실험실로 달려갈 때, 민지도 택시를 탔다.“기사님, 교외로 가주세요, 감사합니다!”“그곳은 공사장인데, 아가씨 혼자 뭐 하러 가려고?”민지는 표정이 숙연해지더니 또박또박 말이었다.“엄청 중요한 일이에요.”도중에 그녀는 하정남의 전화를 받았다.“네, 아빠.”[넌 내가 보고 싶지도 않니? 난 보고 싶어 죽겠는데?]“나도 아빠 보고 싶어요. 쪽쪽!”민지가 뽀뽀를 하자, 하정남은 기분이 좋아졌다.그러나 입으로는 여전히 원망했다.[보고 싶으면서도 나한테 연락도 없고! 흥! 누구를 속이는 거야?]“아빠, 나 요즘 바빠서 그래요. 정신없이 바빴단 말이에요!”[뭐가 바빠? 아빠한테 말 할 수 있어?]“곧 알게 될 거예요! 정말이에요!”[나한테도
현장에서 안색이 가장 안 좋은 사람은 그래도 송지혜였다.‘스스로 실험실을 세우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송지혜는 멍해졌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며 마지막에는 냉소를 지었다.‘혼자 실험실을 짓겠다고? 말이 쉽지, 그게 정말 마음대로 될 것 같아?’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땅과 심사비준만 해도 까다로워서 소정은은 절대로 따낼 수 없어.’예전에 학교가 오미선의 편을 들어줬을 때, 송지혜도 나름 고생을 했다.학생도 없지, 자원도 없지, 학교도 송지혜를 철저히 외면하며 무시했다.가장 힘들 때 송지혜는 억울함을 참으며 심지어 학교를 떠나 스스로 실험실을 지으려 했다.그때 가서 성적을 내면, 학교도 다시 찾아와서 그녀에게 부탁할 것이다.그러나 송지혜는 가장 억울할 때만 이런 생각을 했을 뿐, 전혀 실천을 하지 않았다.너무 어려우니까.밖에서 아무 공터 하나 찾아 벽돌로 쌓으면 바로 실험실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국가와 사회가 인정하는 실험실은 부지선정에 엄격한 요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에도 명확한 규정이 있으며, 또 관련 부문의 심사비준을 거쳐야 한다.“풉...”“이모... 앗! 교수님, 왜 웃으세요?” 지예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 사람들이 주제넘은 생각을 해서 말이야. 평소에 이런 장난을 쳐도 그만이지만, 뜻밖에도 대학원에 신고를 했다니. 큰소리 치다가 자빠질지도 몰라.”“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예는 조심스럽게 떠보았다.“허, 넌 스스로 실험실을 짓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신고 고지서일 뿐, 다 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놀랄 필요가 있겠어?”신고는 신고였고, 짓는데 시간이 얼마 필요한지, 어떻게 지을지, 마지막에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모두 미지수였다.‘놀랄 게 뭐가 있다고?’“이런 방식으로 자존심을 세우려 하는 것 좀 봐. 정말 웃기고 불쌍해.”“그들이 실험실을 짓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송지혜는 턱을 살짝 들고 냉소를 지었다.“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지예는 바로 웃음을
백두강이 입을 열었다.“각 팀 다 보고했겠지? 다른 신고할 사항은 없는 건가?”관례에 따라 각 팀은 보고가 끝난 후, 대학원 회의에서 신고 사항을 발표해야 했다.물론 작은 일은 보고할 필요가 없었는데, 인사 변동, 제명과 같은 큰일만 보고하면 됐다.공평과 공정을 표시하기 위해 감찰팀 대표가 대중 앞에서 신고서를 낭독해야 했다.평소에 이 코너는 생략하면 됐다.신고할 내용이 없으니까.백두강은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무대에 앉아 있던 감찰팀 대표가 일어설 줄이야.“한 가지가 있습니다.”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백두강조차도 놀라서 눈썹을 찌푸렸다.“구체적인 사항은 소정은의 연구팀이 교외에 자체로 실험실을 건설할 것을 신청한 것에 관한 고지서입니다. 저희측은 이미 접수했으며 관련 수속을 심사하고 있고, 진도를 제때에 대학원측 및 학교측에 보고할 것입니다.”이 말은 마치 돌이 호수에 떨어진 것처럼 파문을 일으켰다.“자체로 실험실을 건설한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나 잘못 들은 거 아니죠?”“누가 실험실을 짓는 거지? 학교 측이 연합하여 설립한 연구 작업실인가? 그래도 실험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중점 못 들었어? 이건 고지서지 신청서가 아니야. 다시 말해서, 소정은의 팀은 이미 실행을 하기 시작했단 거야. 이번 신고도 절차에 따라 학교에 고지하는 의무를 이행했을 뿐이라고.”“헐... 그동안 들은 소식들 어쩜 이렇게 신기한 거지? 전에 어떤 사람이 혼자 돈을 내서 CPRT 한 대를 샀다고 하던데, 지금 뜻밖에도 혼자 실험실을 지으려는 사람이 있다니?! 실험실이 무슨 농사야? 짓고 싶으면 짓게?”“음... CPRT를 구매한 사람과 자체 실험실을 건설하려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뭐?!”...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그리고 송지혜 팀은 이미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진호는 망연자실하게 말했다.“방, 방금 뭐라고 했어?”지예는 중얼거렸다.“그럴 리가...”서정조차도 두 눈을
정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험실 시정은 사실이고 진도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래서 따질 필요가 없었다.그녀가 다시 앉자, 마침 강서정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서정은 참지 못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소정은, 너도 이렇게 당하는 날이 있다니.”“인생에는 항상 기복이 있는 법이지. 사람이라면 다 운이 나쁠 때가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러나 너희들도 조심해, 앞으로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까.”“뻔뻔하긴!”정은은 앞을 쳐다보며 얼굴에 노기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서정은 정은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엄청 화가 났다.“넌 송 교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젊었을 때의 오 교수님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 교수님은 이미 늙으셔서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넌 그런 교수님의 학생이 되었으니, 세력도 없고 그저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겠지.”“당초에 내가 너와 그렇게 싸우며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네가 이겼고, 내가 졌잖아. 그러나 지금 일이 또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서 한 번 이겼다고 해서 평생 이긴 것은 아니야. 졌다고 해서 앞으로 줄곧 지는 것도 아니고. 너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서정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대학원 시험에서 일등을 하면 또 뭐가 어때서? 면접 시험을 잘 봤다고 또 뭐가 달라지는데? 스스로 돈을 내서 CPTR을 샀지만, 결국 실험실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으로 전락했잖아?’“소정은, 넌 우리 오빠와 헤어진 후에 어째서 상황이 점점 더 나빠졌니? 대학원에 붙으면 아주 잘난 거라 생각했던 거야? 우리 오빠가 널 안중에 둘 줄 알았어? 우리 엄마가 너라는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냐고? 꿈이나 깨!”정은은 웃으며 눈가에 웃음기가 가득했고, 엄청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네 말의 뜻인 즉... 내가 대학원 시험에서 확실히 성공을 거둔 거잖아. 네 오빠는 확실히 내 성적에 놀랐고, 네 어머니도 나란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계시지, 맞지?”“너..
12월 말, J시는 겨울에 들어선 후 두 번째 눈을 맞이했다.이번 눈은 첫눈보다 더 많이 내렸고, 이틀 연속 내렸기에 J시 전체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이른 아침, 정은은 미안함을 안고 재석의 집 문을 두드렸다.“선배님...” 정은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재석은 잠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여전히 헝클어져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가슴이 조여졌다.“무슨 일이야?!”“그런 거 아니에요!” 시간이 확실히 이르고 너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정은은 더욱 미안해지더니 또 좀 부끄러워했다.“나 때문에 깬 거죠?”“아니야, 원래 일어날 시간이거든.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지난번에 그 눈놀이 도구 말인데요... 아직 있어요?”재석은 멍해졌다.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눈은 확실히 그쳤다.“이렇게 일찍 내려가서 눈놀이를 할 거야?” 재석은 생각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정은은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네! 일찍 내려가야 밟힌 흔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깨끗하잖아요.”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꼭 어린아이 같아.”“눈놀이에 어른과 아이가 있나요? 놀고 싶으면 노는 거죠.”“잠깐만 기다려.”말이 끝나자 재석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통 하나를 들고 나왔다.안에는 전에 둔 오리, 공룡, 곰돌이 그리고 삽 등이 있었다.“고마워요 선배님! 나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정은은 통을 받고 몸을 돌려 재빨리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10분 뒤, 단정하게 차려입은 재석이 아래층에 나타났다.정은은 한 무리의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하얀 패딩, 크고 빨간 모자, 주위의 눈과 하얗게 어우러지는 동시에 오직 그 빨간색만 선명하고 눈부셨다.“선배님! 이리 와요.”정은이 재석을 향해 웃었다.재석은 손을 흔들었다.“너희들끼리 놀아.”정은은 가볍게 흥얼거리며 몸을 돌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파헤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무언가를 세게 던졌다.손바닥만 한 눈덩이가 재석을 향해 날
인훈은 말을 하지 못했다.정은이 입을 열었다.“심 대표님, 이제 손 놓아도 돼요.”현빈은 웃으며 마치 그제야 알아차린 듯,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섬세하고 얇은 어깨는 패딩을 사이에 두고도 여전히 뼈를 만질 수 있었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도 현빈의 콧구멍으로 파고들었다.현빈은 온몸이 오그라들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정은은 몸을 돌려 현빈에게서 유연하게 벗어났다.현빈은 반응이 빨랐는데, 정은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긴 팔을 뻗어 다시 그녀를 잡아당겼다.한 사람은 달리고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갔다.하나는 도망가고 다른 하나는 쫓아갔다.정은은 화가 났다.“심현빈 씨! 작작 좀 하면 안 돼요?!”남자는 눈가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좋아, 드디어 날 심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네.”...두 사람이 밀당을 하는 사이, 재석은 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고, 손에 종이주머니를 들고 있었다.불빛 때문인지, 그의 반쪽 얼굴이 그늘 속에 숨어 있어서 지금 표정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다.“선배님?” 정은은 바로 재석을 발견했다.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걸음을 들어 다가오더니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에 시선이 떨어졌다.인훈은 자신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것이 아니었다.현빈은 코트에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목도리를 하지 않았다.“조 교수님!” 인훈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여기서 만났다니, 정말 공교롭네요!”“공교롭긴요. 일부러 찾아온 거예요.”“네?”재석은 주머니에 든 목도리를 꺼내 앞으로 다가갔고,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를 벗긴 다음 현빈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정은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었다.“방금 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네 두 친구를 만났는데, 너에게 목도리를 돌려주려고 했던 거야. 나도 마침 오는 길이라 대신 너한테 주겠다고 했어. 두 사람 야식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거든.”“고마워요, 선배님! 또 귀찮게 했네요.”정은은 목도리 안으로 움츠러
가로등 아래에서, 정은 그들은 걸으면서 계속 말을 했다.찬바람이 쌩쌩 불자, 내쉬는 숨결은 순식간에 안개가 되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정은아, 밀크티 마실래? 오빠가 쏠게.”인훈은 흰 이빨을 드러냈다.정은이 말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남자가 그녀 앞에 와서 멈추었다.세 사람의 의혹을 맞이하며 그 사람은 마술사처럼 뒤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꺼내 정은에 건네주었다.“안, 안녕! 난 이 학교 대학원 3학년의 학생이야. 그, 그동안 널 주목해 왔어... 이 꽃은 너에게 줄게.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그, 그리고, 우리 서로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을까? 널 처음 봤을 때 난 너에게 첫눈에 반했거든. 매우 갑작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나 자신도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어. 나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학교 밖에서 이런 일에 부딪쳤다니.정은은 가게에서 나올 때, 오늘 마침내 ‘우연히’ 도겸과 경혜를 만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뜻밖에도 남의 고백을 받았다니.인훈은 반응하여 가장 먼저 현빈의 표정을 살폈다.‘이야, 완전 열받은 표정이네. 어쩔 수 없지, 우리 정은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도 당연하잖아? 밥을 먹으러 나오다가 고백까지 받다니. 헤헤...’정은은 앞에 있는 꽃을 보며 한순간 침묵했다.“꽃은 정말 예뻐요...”남자는 바로 웃으며 눈에서 빛이 났다.“그럼 받...”“하지만 난 받을 수 없어요, 미안해요.”“왜, 왜?”“우선, 나는 그쪽을 모르고, 우리도 친한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무 이유없이 나에게 꽃을 주다니, 난 그 꽃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자격 같은 거 필요 없어.”남자는 다급히 설명하려 했다.“이거 그냥 너에게 주는 거야.”“그럼 더 받으면 안 되죠. 장미는 사랑을 대표하고, 오늘 내가 이 꽃을 받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누구나 다 알잖아요. 미안해요.”“이게 아니라, 내가 너에게 꽃을 선물한 것
“다 심 대표님의 그 두 공사팀 덕분이야...”원래 그들은 기초 토목 건설을 책임졌지만, 인훈은 곧 자신이 상대방의 실력을 얕잡아 봤다는 것을 발견했다.기초 토목 건설을 제외하고, 이 사람들은 인테리어, 자재 감식까지 훌륭했다.그래서 토지 건설이 완료된 후, 인훈은 당분간 공사팀을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이어서 공사팀으로 하여금 내부 인테리어와 스마트 배치 제어까지 완성하게 했다.“심 대표님, 무슨 문제 없죠?”정은은 이 말을 듣고 인훈과 함께 현빈을 바라보았다.현빈은 정은의 눈빛을 마주하며 살짝 웃었다.“당연히 없죠.”정은이 입을 열기만 하면, 현빈은 더 많은 사람을 불러올 수 있었다.“고마워요, 심 대표님!”“현빈 오빠라 불러.”‘또 시작이네.’인훈이 말했다.“헤헤... 현빈 형 고마워요.”현빈은 깜짝 놀랐다.다 먹자, 인훈은 계산하려고 했다.현빈은 이미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갔다.“사장님, 계산이요.”“심 대표님, 식사 끝나셨어요? 오늘 꽃등심 맛은 어때요?”현빈은 고개를 돌려 정은을 보았다.“맛 어때?”사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정은은 사실대로 말했다.“맛있어요.”“그럼 됐어요! 최근 이 요리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저희 예전의 간판 메뉴보다 더 잘 팔리고 있어요. 장사도 많이 좋아졌고요. 말하자면 심 대표님의 소중한 제안 덕분이기도 하죠.”현빈은 돈을 지불하고 핸드폰을 거뒀다.“정은이 덕분이죠.”사장님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애매한 눈빛으로 정은과 현빈을 바라보았다.“그럼요! 다 고맙죠!”문을 나서자, 찬바람은 옷 안으로 파고들어갔다.정은은 재빨리 패딩 지퍼를 당겼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다음 순간, 현빈은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그녀의 목에 둘렀다.정은은 멈칫하더니 얼른 벗으려 했다.“아니에요, 지퍼를 높게 당기면 바람을 막을 수 있어요...”그러나 현빈은 듣지 않았다.“그냥 두르고 있어.”...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민지와 서준은 실험실에서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