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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1화

작가: 십일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15 19:42:55
“그래요.”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소는 단톡방에 보낼게요. 이따가 저 먼저 장을 보러 갈 테니, 선배님들은 일 끝나시는 대로 오세요.”

“그래!”

진욱이 말했다.

“조 교수에게 통지해야 하는 거 아니야?”

미진이 대답했다.

“그럼 전 교수가 통지해.”

“그래.”

진욱은 핸드폰을 꺼냈다.

“조 교수는 수업이 끝났는지 모르겠네...”

오후 2시, 정은은 컴퓨터를 끄고 실험대를 정리한 다음 조용히 떠났다.

문을 나서자마자 재석을 부딪쳤다.

“장보러 가는 거야?”

재석이 묻자, 정은은 약간 의아해했다.

“벌써 안 거예요?”

“응, 전 교수가 나한테 연락했어. 가자.”

“네?”

“마트에 가는 거 아니었어? 내가 차로 데려다 줄게.”

“오늘은 안 바쁜 거예요?”

“그렇게 바쁜 편은 아니야.”

바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그 대상에게 달렸다.

“그래요, 고마워요.”

정은은 택시를 잡아야 할지 말지 고민했는데, 뜻밖에도 재석이 제때에 나타났다니. 이번에는 돈을 절약한 셈이었다.

잠시 후, 정은은 자신이 돈을 절약했을 뿐만 아니라, 힘까지 들이지 않았단 것을 발견했다.

모든 음식과 재료들은 전부 재석 혼자서 들었다.

정은은 너무 많아서 짐을 좀 덜어주고 싶었지만, 남자는 오히려 뒤로 물러서며 그녀의 손을 피했다.

“아니야, 내가 들면 돼.”

집에 돌아온 정은은 앞치마를 두르며 잽싸게 일을 시작했다.

“참, 선배님들 뭐 안 드시는 음식 있나요?”

정은은 생각나서 물었다.

“전 교수는 새우를 먹지 않아. 그것 외에 다른 사람들은 꺼리는 음식 없어.”

말하면서 재석도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내가 도와줄게.”

...

6시, 실험실에 있던 네 사람은 정은의 집으로 향했다.

“전 교수님, 조 교수님께 통지하셨어요?”

이때 수아가 갑자기 물었다.

그녀는 원래 오고 싶지 않았지만, 재석도 갈 것이라는 진욱의 말을 듣고 그제야 따라왔다.

태민은 단지 자신이 설득해서 수아가 온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이 까칠한 아가씨를 설득했군.’

“그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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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막내딸이 실종된 이후로 이씨 가문은 모든 것이 변했다.이것도 바로 이춘재 부부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과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다.아직도 행방이 묘연해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모를 떠올리니, 현빈은 저도 모르게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만약 계속 찾을 수 없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아쉬움을 메우지 못할 것이다.“현빈아, 목이 좀 마르구나.” 노부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래요. 그럼 저 물 사러 갈게요...” 현빈은 정은을 바라보았다.“많이 바빠?”“괜찮아요.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죠?”“난 물 좀 사러 갈 테니까, 나 대신 두 분 좀 챙겨줘.”“내가 사러 갈까?” 어차피 정은도 내려와서 물을 사려 했다.현빈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으셔서 평소에 고정된 브랜드의 물만 마시거든. 이 근처에는 없고, 맞은편 거리에 있는 수입 마트에 가서 사야 해.”“그래요? 그럼 얼른 가서 사요. 난 여기서 두 분과 함께 얘기 나누고 있을 테니 안심해요.”“고마워.”현빈은 몸을 돌려 떠났다.할머니 봉수진은 정은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곁에 앉혔다.“아가씨, 우리 현빈이와 친구라고? 너희들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지?”“아...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됐어요.”도겸이 바로 그 ‘친구'였다.“그렇구나. 현빈이는 여성 친구가 거의 없는데, 네가 처음은 것 같구나!” 봉수진은 웃음을 지었다.정은은 속으로 생각했다.‘와, 심 대표는 정말 물 마시듯 여자친구를 바꾸었지.’“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곳은 너무 많이 변했어.”이춘재는 갑자기 감탄하기 시작했다.정은은 그의 말투에 묻은 그리움을 알아차리며, 최근 몇 년 J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춘재는 정은이 J시에 대해 술술 말하는 것을 듣고, 호기심에 물었다.“넌 이곳의 사람인가?”정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는 L시의 사람이에요. L시 아시죠? 남방의 구릉지대인데,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과 물도 있고...”정은의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80화

    ‘이게 뭐야! 너무 쪽팔려!’결국 재석은 정은의 손을 잡고 사람들을 뚫으며 밖으로 비집고 나갔다.이번에는 아무도 정은을 밀지 않았다.“휴...”정은은 한숨을 푹 쉬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고개를 들자 뜻밖에도 남자의 웃음을 머금은 눈과 마주쳤다.“미안해요, 선배. 나도...”재석은 그녀의 볼을 가리켰다.“머리카락이 붙었어.”“네?”정은은 손을 들었지만 그 머리카락이 어딨는지 몰랐다.재석은 그녀를 도와 떼어냈다. 비록 충분히 조심스러웠지만, 손끝은 여전히 여자의 매끄럽고 따뜻한 피부에 닿았다.그는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다 됐어.”정은은 어색하게 그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현장이 너무 붐벼서 머리카락이 다 엉망됐잖아. 게다가 땀까지 흘렸으니 볼에 붙은 거야. 너무 쪽팔려.’방금 재석의 품에 안긴 장면을 떠올리면 정은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호흡이 가빠졌다.‘이곳에 못 있겠어...’“선배님! 목 안 말라요?! 나, 나 물 좀 사러 내려갈게요!”말을 마친 후 얼른 줄행랑을 쳤다.재석은 입을 벌렸다. 그는 목마르지 않다고, 만약 그녀가 마시고 싶다면, 자신이 가서 살 수 있다고 말하려 했다.정은은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고개를 돌리자마자 현빈과 마주칠 줄이야.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곁에 두 노인이 있었다.할아버지는 백발에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있어 무척 엄숙하고 까다로운 느낌을 주었다.그의 옆에 있는 할머니는 많이 부드러워 보였지만,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찼고, 눈에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정은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노부인은 고개를 돌렸지만, 망연히 다시 시선을 옮겼다.현빈은 여기서 정은을 만날 줄 몰랐다.그는 오늘 특별히 일정을 취소한 다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놀러 나왔다.두 노인은 일주일 전에 귀국했는데, 현빈은 미리 사람 시켜 본가를 치우라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9화

    그러나 앞줄은 모두 여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가 비슷한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이게 뭐야?”남자친구도 어리둥절해지더니 저도 모르게 말했다.“왜 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야?”이 말에 대중들은 분노를 느꼈다.“아저씨 아줌마가 뭐가 어때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남자친구는 해명하려 했다.“아, 아니요... 이 나이에도 사인회에 나오시는 거예요?”“소설 때문에 왔다! 왜?”“그러게!”남자친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미숙 작가님의 독자들은 연령층이 이렇게 넓었어요?”“흥! 우리는 10년 전에 이미 작가님의 팬이었어. 물론 후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돈을 버느라 바빠서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일이 거의 없었지. 그래서 너희 젊은이들처럼 투표할 줄도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돈을 내고 책을 샀단 말이야.”“맞아, 우리는 좀 바빴을 뿐이지, 죽은 게 아니라고!”여자는 앞을 내다보니, 현장의 독자들은 정말 젊은이와 어르신들이 반반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간단히 인사를 마쳤고, 이미숙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우와...”“이 작자님이 이렇게 예쁘신 분이라니!”“세상에! 너무 예쁘셔!”“그렇게 섬뜩한 소설을 쓰신 분이 이렇게 예쁜 미녀라니!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어제 산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허리에 하얀 스카프를 맨 이미숙은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치맛자락이 가볍게 넘실거리며 우아한 분위기를 선보였다.“안녕하세요, 이미숙입니다. 오늘 여기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정말 너무 기쁩니다.”말하면서 이미숙은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의 고마움을 표시했다.현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정은은 군중 속에 서서 무대 위에 선 어머니를 보며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응답 코너가 끝나면 모두가 가장 기대하는 사인 코너였다.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정은은 앞으로 밀려갔다. 그녀는 옆으로 피하려고 몸을 돌렸는데, 누가 뒤에서 밀었는지 정은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8화

    사인회는 마크 서점 3층에서 열렸다.아직 입장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독자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십여 명의 경호원이 공동으로 질서를 유지했다.문과 가까운 곳에는 큰 전시대가 놓여 있었고, 위에는 이미숙의 새 책 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그 외에 또 하나의 큰 등신대가 있었는데, 위에는 책 표지와 중요한 캐릭터의 이미지가 그려 있었다.“와,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한 젊은 여자가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뒤에 있었는데 이 상황을 보고 감탄을 했다.“아니... 사인회인데, 왜 팬미팅 현장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지?”젊은 여자는 좋아하는 아이돌을 자주 바꾸었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가득했지만 소설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그녀는 지난주에 자신의 아버지가 미스터리 소설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표지는 무척 섬뜩했다.마침 그날 여자의 핸드폰이 고장 나서 수리점에 보냈다. 오후에야 수리를 다 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심심해서 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출 수가 없었다.오후에 핸드폰이 다 수리됐어도 여자는 한 번조차 보지 않았다.밤을 새워 마침내 책을 다 본 후, 여자는 인터넷으로 이 작가의 정보를 미친 듯이 검색하기 시작했는데, 거의 아무도 찾지 못했다.그리고 여자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이 작가님은 무슨 조선시대 사람이야?! SNS계정이 하나도 없다니!]여자는 이런 신기한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기에 이를 악물고 이미숙의 다른 두 미스터리 소설을 볼 수밖에 없었다.10년 전의 작품이니, 여자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또 밤을 세워 그 책을 다 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정말 짜증나네!”여자는 일주일 동안 이미숙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개똥보다도 못한 청춘 로맨스 소설 외에 다른 몇 권의 미스터리 소설은 그야말로 훌륭했다.심지어 지금 이 10년 전의 작품을 읽어도 그것이 전혀 시대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7화

    그리고 전에 몇 번 만났을 때도 정은은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된 이상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나았다. 어차피 우연하게 몇 번 만난 것 외에 두 사람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강서원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아이는 생긴 것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본예의도 없군.’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강서원은 발걸음을 재촉했다.“정은아, 너 어디 갔었어? 빨리 와봐, 난 이미 다 골랐어.”이미숙이 정은을 불렀다.“벌써요? 전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엄마가 입어보는 것도 못 봤네요...”“돌아가서 다시 입어볼게.”“네.”“방금 한 여사님을 만났는데, 내가 원피스를 하나 골라줬거든. 그런데 글쎄 자신의 아들이 ‘7일담'을 보고 있다는 거야...”이 시각, 먼 실험실에 있는 재석은 재채기를 여러 번 했다.진욱은 옆에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조 교수, 재채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대체 밖에 여자가 얼마나 있길래...”“지금 많이 한가한가 봐??”진욱은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내일 그냥 혼자 크리스털 호텔의 세미나에 참석해.”‘안 돼!’진욱은 속으로 생각했다.조수진은 몰래 웃었다.“쌤통이다! 그러게 누가 조 교수님을 건드리래!”...정은 일행이 쇼핑을 마칠 때, 시간은 이미 오후 6시가 되었다.그래서 그들은 아예 백화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모녀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의논할 때, 나석천의 전화가 걸려왔다.[이미 레스토랑을 예약했으니 직접 지하 1층으로 내려오세요.]이미숙이 말했다.“편집장님이 밥을 사시다니? 이건 말이 안 되죠.”[제가 작가님을 J시로 초청했잖아요. 그럼 따지고 보면 제가 작가님의 의식주를 모두 책임져야 하죠. 지금은 그냥 밥을 한끼 사는 것일 뿐, 이건 제가 영광이죠.]나석천의 목소리는 여전히 명랑하고 우렁찼다.이미숙이 L시 사람이라서 입맛이 좀 담백한 것을 고려하여 나석천은 J시와 외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6화

    그러나 일은 점원이 예상했던 것처럼 되지 않았다.강서원은 이미숙에게 다가가더니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이 원피스가 잘 어울리네요.”강서원도 입어보았는데, 나름 괜찮았지만 이미숙이 입는 게 더 잘 어울렸다.사이즈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더 잘 어울렸다.강서원의 기질은 너무 강직해서 부드럽지 못했지만, 이미숙은 딱이었다.부드럽게 생긴 데다가 미소까지 부드러워 이목구비가 무척 편안해 보였다.‘얄밉지 않은 얼굴이야.’말하자면, 강서원은 줄곧 동서인 백지영, 그리고 지난번 다례 수업에서 한복을 입은 정은처럼 기질이 부드러운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그러나 앞에 있는 이미숙은 의외로 강서원의 마음에 들었다.점원은 한쪽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이미숙처럼 세심한 사람은 재빨리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릴 것이다.그녀는 강서원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고마워요.”이미숙은 곁에 있는 한 원피스를 가리켰다.“여사님은 몸매가 좋아서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원피스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한번 입어봐요...”강서원은 상체가 풍만하고 허리가 가녀려 허리라인이 돋보이는 원피스를 입는 게 더 적합했다.사실 지금 이미숙이 입고 있는 이 원피스는 커팅부터 원단까지 모두 괜찮지만, 허리라인이 뚜렷하지 않아 강서원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뚱뚱해 보이게 만들었다.이미숙이 가리키고 있는 원피스도 검은색이었는데, 입으면 아주 날씬해 보일 수 있었다. 커팅은 허리라인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물고기 꼬리와 같은 하이웨스트 디자인은 나른함을 더했다. 이는 원피스 자체의 엄숙함을 덜어주었다.강서원도 기대를 품지 않고 옷을 입어보았는데, 뜻밖에도 그녀와 정말 잘 어울렸다.전신거울 앞에 선 강서원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안목이 정말 좋네요. 코디라도 배운 적이 있는 건가요?”이미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하지만 코디 잡지를 즐겨 보곤 했죠.”“보기만 하면 되나요?”“스스로 코디도 할 수 있죠...”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5화

    소씨 가문의 남자는 저마다 잘생겼는데, 소진헌은 키가 크고 훤칠했으며 중년이 되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몇 벌의 양복을 입어보자 모두 아주 어울렸다.소진헌은 이미숙에게 물었다.“여보, 어느 게 괜찮을 것 같아?”정은도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이미숙은 잠시 생각했다.“다 괜찮은데.”“그럼 어느 걸 골라야 하지?”이미숙이 말했다.“고를 필요 없어요. 다 사면 되죠.”“그건 안 돼, 이게 얼마나 비싼데? 난 이 한 벌이면 충분해. 집에 옷이 아직 많잖아.”이미숙은 이미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네주었다.“이 세 벌 다 포장해줘요. 고마워요.”“네, 알겠습니다!”점원은 웃으며 카드를 가져갔다.소진헌은 수줍은 소녀처럼 이미숙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여보, 이건 너무 비싸잖아. 한 벌에 몇 백만 원이라니...”“괜찮아요, 내가 당신에게 사주는 거예요.” 이미숙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어제 배당금을 받았는데, 수억이 넘어요.”소진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그, 그렇게 많아?”“그럼요.”“여보, 정말 너무 대단해!”이미숙은 얼굴이 붉어졌다.“콜록!” 정은은 큰 소리로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곁에 있는데, 두 분은 좀 자제하시면 안 되는 건가?’소진헌의 옷을 사는데 시간이 들지 않았지만, 이미숙은 아니었다. 2층 여성복 구역을 몇 번이나 돌아다녔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어떤 옷들은 심지어 딱 봐도 아니었기에 입어 볼 의욕이 전혀 없었다.정은은 갑자기 한 프랑스의 브랜드를 떠올렸다. 이름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아, 매장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매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멀리 떨어진 모퉁이에 있었다.그래도 옷은 예뻤는데, 이미숙은 발을 디디자마자 눈이 밝아졌다.정은이 골라줄 필요 없이 이미숙은 이미 자신의 생각이 있었다.그녀는 먼저 치마 두 벌을 입어 보았는데, 오렌지색과 파란색이었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모두 피부톤과 잘 어울렸다.치맛자락의 무늬는 레이스에 자수를 더한 것으로, 고전적이고 우아한 운치를 띠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4화

    경혜는 도겸의 뒷모습을 주시했다.그녀는 오늘에야 남자의 차가 포르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옷은 아르마니, 시계는 파텍필립이었다.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케이크를 보니 경계는 눈빛이 절로 깊어졌다.다른 한편, 정은이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는 이미숙을 데리고 쇼핑을 하러 갔기 때문이다.그녀는 전공 수업의 교수님에게 미리 설명을 했다. 다행히 오늘은 새로운 내용을 배우지 않고 주로 지난주 팀 과제를 보고하고 총결하는 것이었는데, 민지와 서준이 보고하면 됐기에 정은도 부담 없이 휴가를 낼 수 있었다.내일이 바로 사인회였고, 요 몇 년 동안 이미숙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거의 참석한 적이 없었다.이미숙은 이리저리 골랐지만, 옷장에 있는 옷이 사인회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못 입는 건 아니지만 뭐가 좀 부족했다.소진헌은 진심으로 칭찬을 했다.“우리 여보는 무엇을 입어도 다 예뻐, 정말이야!”그러나 이미숙은 평소처럼 소진헌의 농담에 웃지 않았다.정은은 재빨리 알아차렸다.“엄마, 우리 새 옷 사러 가요! J시에 큰 백화점이 얼마나 많은데, 틀림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옷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이미숙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그래!”소진헌은 어수룩하게 머리를 긁적였다.‘왜 내 칭찬이 쓸모가 없는 거지?’...SSG 백화점에서.세 식구는 관광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1층에 고급 브랜드가 가득 모인 사치품 매장이 점차 작아지는 것을 보며, 이미숙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 백화점 정말 크네!”의상은 2층과 3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층수를 미처 누르지 못해서 그들은 4층으로 올라갔다.이미숙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책장 포스터에 이끌려 세 사람은 아예 이 층에서 내리기로 했다.위에는 ‘SSG RENDEZ-VOUS’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서점처럼 보이지만 일반 서점과 달랐는데, 서점과 카페 및 레스토랑이 하나로 된 곳이었다.문에 들어서면 카페라서 공기 중에 진한 원두 향기가 풍겼다.뒤에는 음식이 있었다.가운데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3화

    “그래,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말하면서 민지는 서준의 팔짱을 끼고 기뻐하며 학교 밖으로 돌진했다.서준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손을 빼려고 했다.민지는 바로 그를 잡아당겼다.“야, 쑥스러워하지 마. 우린 절친이잖아!”민지는 말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팔을 못 빼겠네! 이 여잔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두 사람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케이크를 들고 스포츠카에서 내려오는 도겸을 보았다. “어머!”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사람은 왜 매번 차를 교문 앞에 세우는 건지 모르겠네. 심각한 교통 체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서준은 잠시 침묵했다.“아마도 이런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어디가 멋있다는 거야? 포르쉐에서 내려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으니까?”“그럴 수도?”민지는 서준을 바라보았다.“너도 이런 게 멋있다고 생각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집은 국산 자동차를 선호해서.”민지가 말했다.“나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삼촌 할아버지는 모두 렉서스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거든.”“그럼 왜 자꾸 포르쉐를 운전하는 거지?”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도겸을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들고 있는 케이크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서준은 그녀가 침을 삼키는 동작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도겸은 몇 번이나 찾아오면서 정은이 늘 민지와 서준과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 횟수가 많아지자, 그도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도겸은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정은이는? 오늘 왜 너희들과 같이 있는 않는 거야?”민지는 사실대로 말했다.“정은 언니 오늘 학교에 안 나왔어요.”“왜?”“휴가를 냈거든요.”“왜 갑자기 휴가를 낸 거야?”“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도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묻고 싶었다.그러나 민지는 이미 서준의 팔을 잡으며 밀크티 가게로 향했다.“저희는 아직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도겸은 허탕을 쳤다. 양복 차림을 한 사람이 미니언즈 포장의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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