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겸이 엎어진 그릇을 발로 차자, 그릇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연희는 놀라서 온몸을 떨었다.“내가 말했잖아, 내 앞에서 엄살 좀 부리지 말라고. 3초 줄게, 빨리 네 방으로 꺼져. 내 앞에서 걸리적거리지 마!”도겸은 위층을 가리키며 눈빛은 포악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연희는 감히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벌벌 떨며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때 같이 식사를 한 다음, 정은은 실험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친해진 것을 발견했다.물론 그녀의 요리 솜씨 덕분이기도 했다.그래서 정은은 지금 매일 점심을 많이 했는데, 모두들 나눠 먹도록 했다.그리고 미진 그들도 아주 친절하게 정은에게 실험 방법에 대한 문제를 알려주었다.변화가 가장 뚜렷한 것은 역시 전진욱이었다.정은이 그의 속산 노트를 다 보고 또 전부 배운 후부터, 정은을 바라보는 진욱의 눈빛이 변했다.진욱은 자주 정은을 붙잡고 속산문제를 토론했고, 정은도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너무 빨리 배워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진욱이 가르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이렇게 되니 진욱은 더욱 힘이 났다. 그는 그야말로 정은을 자신의 제자로 삼아 키우는 것 같았다.두 사람은 틈만 나면 앉아서 토론을 했고, 수시로 초고지와 펜으로 계산을 했다.“전 교수, 지금 정말 제자라도 받은 거야? 이렇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전 교수님, 너무 정은이 편만 들면 안 돼요. 저도 전 교수님의 학생이니, 저도 그런 대우를 받고 싶어요.”태민은 농담을 하며 손을 들었다.“넌 가서 네 실험 보고서나 써,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사람들이 한바탕 웃고 떠들자, 정은조차도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재석이 부르는 것조차 듣지 못했다.“정은 씨? 소정은?!”“아, 네? 교수님, 저 부르셨어요?”“응, 이리 와봐.”“네.”...이튿날, 진욱은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미진이 물었다.“전 교수, 왜 우거지상을 하고 있어? 조 사장이
정은은 잠에서 금방 깨어난 게 분명했다. 곰돌이 잠옷에 눈도 약간 빨갰다.그녀는 하품을 했는데, 반응이 평소보다 좀 느렸다.“나 때문에 깨어났어?” 낡은 집이라 방음이 잘 되지 않아, 그들은 문을 닫고 있어도 복도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재석은 자신이 정은을 깨운 줄 알았다.정은은 눈을 비비며 고개를 저었다.“나도 원래 일어나려던 참이었어요. 지금 벌써 6시 30분이 됐잖아요.”오늘 오후에 백지영과 함께 쇼핑을 해야 했기에, 정은은 일찍 일어나서 논문을 보며 문헌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재석은 그녀가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약간 낮췄다.“시간이 아직 이르니 좀 더 자.”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은이 자신을 훑어보는 눈빛과 마주쳤다.“왜 나를 그렇게 보는 거야?”“감기에 걸렸죠?”재석은 쓴웃음을 지었다.“너한테 들켰네?”“목소리가 좀 쉰 것 같아서요. 열 나요?”재석은 자신의 이마를 재보았다.“나도 몰라. 뜨겁진 않으니 아마도 별일 없을 거야.”정은은 고개를 흔들었다.“선배님, 아마도 별일 없을 거라뇨? 이게 엄숙한 과학연구학자가 해야 할 말인가요?”재석은 웃음을 터뜨렸다.“집에 온도계가 없어.”“나한테 있으니까 먼저 집에 돌아가요. 이따가 가져다 줄게요.”“좋아.”정은은 몸을 돌려 서랍에서 온도계를 찾았다. 알콜로 소독을 한 다음, 또 소독면으로 닦은 후에야 재석의 집에 찾아갔다.남자는 이미 소파에 누워 있었다.평소에 그렇게 빈틈이 없는 사람이 지금 슬리퍼조차 벗지 않았으니 지금 괴로운 게 분명했다.정은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재석을 불렀다.“선배님? 선배님?”불러도 반응하지 않자, 정은은 걱정이 되어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선배님?”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눈을 뜰 줄이야.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재석은 여자의 작고 고운 얼굴이 자신의 코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소 막연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살짝 떨리는 속눈썹은 마치 날개를 펴게 될
비록 자기 아들의 가족카드를 긁은 거지만, 지난번에 못생긴 스카프를 주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두 사람은 사치품 가게에 들어갔고, 판매원은 예리하게 서영숙의 기세가 남다르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그녀는 즉시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사모님,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나요? 이건 모두 방금 출시한 신상이에요. 대범하고 화려해서 사모님과 너무 잘 어울리네요.”서영숙은 오늘 구찌의 클래식 블랙 코트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어 자신의 기질을 돋보이게 했다.“그래요, 그럼 이 두 벌 좀 볼게요.”연희는 방금 이를 악물고 서영숙을 위해 카드를 긁어 가방 몇 개를 샀다. 비록 구름이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았지만, 속으론 마음이 무척 아팠다.‘그게 수천만 원이잖아! 난 지금까지 이렇게 사치스러운 적이 없었는데.’비록 도겸의 가족카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남자에게 돈을 탐내는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연희는 출산 검사와 임산부 용품을 구입할 때만 이 카드를 사용했다. 그리고 가끔 백만 원 이내의 작은 물건을 좀 살 때 빼고는 이렇게 함부로 돈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지금까지 연희가 가지고 있던 그 두 개의 비싼 가방은 도겸과 서영숙이 선물한 것이었다.별장의 안방에는 에르메스 가방이 가득 걸려있었다. 거의 모두가 금색이었고, 게다가 일반 가죽, 귀한 가죽 등 없는 게 없었지만, 도겸은 그녀에게 절대로 만지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서영숙은 연희를 힐끗 보았다.그녀는 연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작 이만한 돈을 썼다고 마음이 아픈 거야? 허, 가난한 집구석에서 자란 사람은 돈을 줘도 인색하다니깐. 대범하지 못해.’서영숙은 마음속으로 연희를 경멸을 못했다. ‘돈을 쓸 줄도 노르다니, 만약 대담하게 그 카드로 자신에게 물건을 좀 사준다면, 그래도 대범하고 당당한 것을 봐서 나름 칭찬을 할지도 모르는데. 애석하게도 원하지만 감히 인정하지 못하다니. 탐 나서 눈까지 빨개졌는데도 고상한 척하긴. 너무 가식적이야. 됐어, 뱃속의 아이를 봐서라
”네, 아주머니.” 정은은 방금 화장실에 갔는데, 나오자마자 백지영이 가게에 서서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것을 보았다.서영숙은 멈칫했다.백지영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소정은이라니!’연희도 자연히 그녀를 보았다.정은은 오늘 옅은 화장을 했고, 카멜색 트렌치코트에 갈색 스웨이드 부츠를 신으며 머리는 클립으로 간단하게 말아올렸다.편안하고 나른해 보이지만 또 독특한 매력을 선보였다.“아주머니.” 정은은 백지영의 곁으로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을 안았다.“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그녀는 서영숙과 연희를 그냥 무시하며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서영숙은 정은이 망설임 없이 떠났지만, 자신의 아들이 오히려 잊지 않고 매일 그녀와 화해하려는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연희는 이때 유난히 눈치가 빨라 다정하게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아주머니, 오랫동안 돌아다니셨으니 많이 피곤하시죠? 얼른 물을 좀 드세요.”서영숙은 웃으며 말했다.“어머, 우리 연희는 정말 철이 들었구나. 예쁘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다정하다니.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사람보다 훨씬 낫지.”백지영은 서영숙이 정은을 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담담하게 웃었다.“서 여사, 이분은?”그녀는 연희에게 눈길을 주었다.“아직 우리에게 소개하지 않았잖아요?”서영숙은 멈칫했다.연희의 뱃속에는 도겸의 아이가 있었지만, 지금 명분이 없었다. 듣기 좋게 말하면 여자친구였고, 듣기 나쁘게 말하면 그저 애인일 뿐이었다.그러니 어떻게 연희를 소개해야 할까?그리고 서영숙은 아들의 애인과 함께 쇼핑을 하러 나왔다. 만약 백지영이 이 소문을 퍼뜨린다면, 앞으로 그녀는 또 어떻게 재벌 집 사모님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겠는가?재벌 집 사모님들은 입만 열면 ‘실력 있는 가문과 혼인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으니, 만약 그녀들에게 자신이 아들의 애인과 다정하게 지낼 뿐만 아니라 사생아까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연희는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그녀가 가
판매원은 잠시 멍해졌다.서영숙도 의혹을 느끼며 연희를 바라보았다.“아주머니, 저도 코디해 드리면 안 될까요?”서영숙은 백지영을 보았다.‘흥, 너만 옷을 코디해 주는 사람이 있나? 나도 있어!’그렇게 서영숙은 웃으며 연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도 네 안목을 믿어.”이 말을 할 때, 그녀는 지난번에 자신이 연희의 안목이 나쁘다고 욕한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다.연희는 즉시 옷을 고르러 갔다. 그리고 뒤에 있는 두 판매원에게 이 옷을 가리키기도 하고 저 옷을 가리키기도 했는데, 기세는 오히려 매우 보기 좋았다.정은은 완전히 달랐다.그녀는 옷을 선택할 때 먼저 색깔과 스타일을 본 후에 옷감을 만졌고, 마지막에 결정해서야 판매원에게 가져오라고 부탁하며 한 세트 한 세트씩 놓으라고 했다.“아주머니, 한 바퀴 돌았는데 이 두 세트가 괜찮은 것 같네요. 한 번 갈아입어 보시겠어요?”백지영은 즉시 옷을 받고 기대와 흥분을 했다.그녀는 정은의 패션 감각을 너무 믿었다. 전에 해준 코디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솔직히 말하자면, 백지영은 친딸 수민보다 정은과 함께 쇼핑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이게 바로 소울메이트겠지?’그때 연희가 다가왔다. “저도 다 골랐어요.”서영숙은 피팅룸에 갔다.그리고 서영숙이 먼저 갈아입고 나왔다. 연희는 그녀에게 빨간 탱크톱 긴 치마를 매치했는데, 위에 샤넬 외투를 걸치니 많이 젊어 보였다.서영숙은 전신거울을 보며 나름 만족스러운 편이었다.“정말 괜찮네.”연희는 겸손하게 웃었다.“아주머니가 관리를 잘하셔서 그래요. 저보다 몸매가 훨씬 더 날씬하잖아요.” 서영숙은 기분이 좋아졌다.그러나 백지영이 옆의 피팅룸에서 나왔을 때, 그녀의 웃음은 굳어졌다.정은은 백지영에게 옅은 청색의 치파오를 선택했는데, 대나무 무늬는 이 간단한 비단 옷감에 질감을 더해주었다.개량된 스타일은 몸매를 더욱 잘 드러내, 백지영의 큰 키와 단아하며 우아한 기질을 선보였다.그녀의 옆에 서있으면 서영숙은 마치 ‘정교한 아주머니’처럼 보였
정은은 웃으며 말했다.“치파오는 약간 엄숙한 숙녀 스타일인 것 같아서 다르게 바꾸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서영숙은 안색이 무척 어두워졌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작할 수도 없어 화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연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질 줄은 전혀 몰랐다.백지영은 두 사람의 표정을 눈여겨보며 입가를 구부렸다.“어떤 사람은 돌을 진주로 여기다니. 정말 웃겨 죽겠네! 이 두 벌 다 포장해줘요, 바로 계산할게요.”백지영은 손을 들어 판매원에게 말했다.“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판매원은 싱글벙글 웃으며 카드를 긁으러 갔다.“정은아, 가자, 다른 가게에 가서 한 번 보자.”“네.”백지영과 정은이 떠난 후, 서영숙은 자신이 입은 옷을 보면서 즉시 벗어서 땅에 밟고 싶었다.방금 백지영과 함께 서 있을 때, 자신이 두꺼비처럼 된 것을 생각하면 서영숙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연희를 가리키며 말했다.“정말 재수 없어! 너 나한테 창피함을 가져다주는 거 말고 뭘 더 할 수 있지? 옷을 매치해 주는 간단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넌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연희도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배를 안고 억울하게 입을 열었다.“아이를 가진 후부터 정력이 없어서요. 어젯밤 도겸 씨는 또 한밤중에 돌아왔고요. 도겸 씨를 돌보기 위해 저도 밤새 잠을 자지 못했어요. 그래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 건데... 정말 죄송해요. 아주머니를 실망시켜드려서...”서영숙은 연희의 배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자신의 친손자를 생각해서 그녀는 겨우 분노를 억눌렀다.하지만 연희가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됐어, 내 손자를 봐서 용서해 주지. 하지만 넌 품위와 안목이 어쩜 그렇게도 없는 거니!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명문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겠어? 나중에 널 데리고 나가면, 창피한 사람은 나라고!”연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명문가에 발을 들여놓다니? 강씨 가문이 날 인정한
“수고는 무슨. 아주머니와 같이 쇼핑하면 엄청 즐거워요.”정은 자신도 적지 않은 수확을 거두었다.“아, 참,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백지영은 제발 도와주길 바라는 표정을 지었는데, 너무 귀여웠다.“무슨 일이세요?”“그게 말이야, 내가 티파티를 준비했어. 모두들 함께 모여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례를 토론하는 그런 파티 말이야... 원래 정한 선생님은 심화원의 오랜 다례사로서, 계약까지 체결했지만 어젯밤 갑자기 병이 도져 밤중에 병원에 호송되었지 뭐야. 아직도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내일이 바로 티파티인데, 그 선생님은 틀림없이 참가할 수 없을 거야. 나도 지금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없고. 수민이가 그러던데, 너도 차에 대해 잘 안다며? 심지어 차를 잘 끓였고. 그래서 말인데...”백지영은 잠시 멈추며 계속 말했다.“난 네가 다례 선생님을 대신해서 대리수업을 해줬으면 좋겠어. 우리에게 차문화에 대해 강의하는 동시에 차를 끓이는 기술까지 보여주는 거야.”이번 모임은 그녀가 조직한 것으로, 만약 무슨 실수라도 한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백지영은 정은의 다례를 본 적이 없었고, 유일한 정보도 수민에게서 전해들은 것이었다. 어차피 차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차를 만들 줄 알면 된다.백지영도 정은이 높은 수준을 갖추기를 기대하지 않았다.“그렇군요...”정은은 잠시 망설였다. 백지영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며 그녀는 마음이 약해졌다.“그래요, 그럼 주소 보내주세요.”“그래! 고마워 정은아! 네가 날 사렸구나!”그날 저녁, 정은은 재석에게 휴가를 신청했다.재석은 원인을 물었고, 그녀도 숨기지 않고 직접 티파티에 대해 말했다.그는 또 정은에게 주소까지 물어봤다.정은은 바로 톡으로 보냈다.실험실과 약 5킬로메터 정도 떨어진 불가리 호텔인 것을 보고, 재석은 또 언제 끝나는지 물었다. 오후 5시였다.[저녁에 택시를 잡기가 쉽지 않을 거야. 내일 그 근처에 학술 세미나가 있는데, 너와
백지영은 그런 강서원의 태도에 익숙해져 오히려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방긋 웃기만 했다.“온종일 집에서 놀아도 심심하니,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최근 티파티가 한창 인기를 끌어서 이 주제로 정한 거예요. 형님은 평소에 이런 모임에 거의 참가하지 않으셨는데, 오늘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얼른 안으로 들어가시죠...”백지영은 말을 듣기 좋게 했고, 태도도 간절했기에, 평소에 그녀가 싫은 강서원도 트집을 잡지 못했다.이윽고 서영숙도 연희를 데리고 도착했다.낯선 얼굴이 이런 자리에 나타나자, 수많은 여사님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도겸 엄마, 이 아이는 누구야?”“어디서 온 아가씨야? 정말 젊게 생겼구나!”서영숙은 오기 전에 이미 준비를 했기에 즉시 활짝 웃으며 모두들에게 소개했다.“내 친구의 딸인데, 연희라고 해. 지금 이과 대학교를 다니고 있어.”연희는 바로 미소를 지으며 현장에 있던 여사님들에게 인사를 했다.“어머! 아직 학생이구나. 어쩐지 이렇게 젊고 영리하더라니.”“그래, 이과라며? 지금 이과 대학에 다니는 여자아이는 그지 많지 않잖아.”그렇다, 이과 대학은 이과 전공을 위주로 했기에, 남자에게 더 적합했고, 물론 경쟁도 많이 치열했다.이과 전공에 응시하는 여자는 상대적으로 적었으니 자연히 더 쉽게 붙을 것이다.이게 무슨 칭찬일까?다만 모두들 알아들었지만, 유독 서영숙과 연희만 알아듣지 못했다.다른 귀부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비록 미소를 지으며 듣기 좋은 말을 했지만 사실 서로에게 눈짓을 하며 두 사람을 비웃었다.‘지금 입고 있는 그 치마 말이야, 3년 전의 셀린느 아니야? 시대에 뒤떨어진 옷을 어디에서 끄집어냈을까? 너무 못생겼어.’‘그래, 오늘이 무슨 자리인데, 정말 촌스럽게도 입었어.’‘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 아니겠어?’귀부인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강씨 가문의 아들이 여대생을 임신시켰다는 소문이 이미 쫙 퍼졌다.그러나 지금 서영숙은 그 여자를 당당하게 데리고 나오다니,
백두강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뭐라고 했겠어? 넌 이 일을 잘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혼자 봐!”말이 끝나자 백두강은 책상 위의 서류 하나를 들더니 바로 송지혜의 얼굴에 던졌다.송지혜는 그것을 보면 볼수록 얼굴이 창백해졌다.처분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과제 경비도 물건너갔고, 내년 국가급 연구사업에 참가할 자격까지 취소를 당했다...처벌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무거운 산이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그렇게 송지혜는 거의 허리를 구부린 채로 사무실을 나섰다.백두강의 처지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비록 어제 총장실에서 모든 잘못을 송지혜에게로 돌렸지만. 학교측은 여전히 부당 관리에 직무를 태만했단 이유로 그에게 6개월 간의 경고 처분을 주었다.대학원 쪽에서 이 소식을 듣자, 학장은 백두강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비록 말은 완곡하게 했지만, 태도는 매우 강경했다. 듣기 좋게 말하면 휴가였고, 듣기 싫게 말하면 그의 권리를 빼앗아 내쫓아내는 것이었다.6개월 뒤, ‘휴식’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다면, 더 이상 부학장의 자리를 앉을 수 없게 될 것이다.백두강은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렸다.‘송지혜가 이렇게 멍청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면, 난 절대로 그 사람과 엮이지 않았을 텐데. 이제 됐어, 다 끝났어!’...“이모! 부학장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소정은 일에 우리가 말려드는 건 아니겠죠?”지예는 이미 송지혜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얼른 맞이했다.찰싹-송지혜는 지예의 따귀를 한 대 때렸다.“이, 이모?” 지예는 멍해졌다.“어제 그 많은 기자들을 부른 사람이 너야?!”지예는 마음이 찔려 침을 삼키더니 시선을 회피했다.“이모, 제가 잘못했어요. 저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부학장님이 일을 크게 만들수록 좋다고 하셔서 저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두 방송국에 초청을 보냈 것일 뿐이에요. 하지만...”“두 집에 보냈다고?” 송지혜는 표정이 굳어졌다.“확실해?”“그럼요! 저 맹세코
도겸은 기사에게 분부했다.“차 돌려, 하명 백화점으로.”“네, 대표님.”...이번 식사는 경혜가 노력한 덕분에 그런대로 즐겁게 먹었다.다만 그 사이에 도겸은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술을 다 마시자, 도겸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어슴푸레해졌다.경혜는 그를 부축해서 차에 태울 수밖에 없었다.기사는 깜짝 놀랐다.“대표님이 어쩌다...”“술에 취했으니 집에 데려다 주세요.”기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가씨, 같이 가시지 그래요?”경혜는 멍해졌다.“오해하지 마세요. 이 시간에 이모님은 이미 퇴근했으니 별장에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대표님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괜찮으시다면...”“나야 당연히 괜찮죠. 그럼 가요.”말이 끝나자 그녀도 따라 차에 올랐다.곧 기사는 두 사람을 데려다 준 다음 떠났다.경혜는 도겸을 부축하여 문으로 들어섰는데, 기사가 말한바와 같이 집안이 어두워 아무도 없었다.경혜는 그를 거실 소파에 안치하고서야 한숨을 돌렸다.남자는 편하게 자지 못한 듯 눈을 꼭 감고 미간을 찌푸렸다.경혜는 도겸이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그의 외투를 벗겼고, 또 셔츠 단추 몇 개를 풀었다.이렇게 되니 도겸은 정말 많이 편안해진 것 같다.적어도 눈살을 더 찌푸리지 않았다.경혜는 시간을 보았는데, 곧 10시가 되어갔다. 그녀는 또 주방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따뜻한 물 한잔을 들고 나와오더니 탁자에 올려놓았다.이어 베개 하나를 가져와 남자의 머리를 받쳤다.마지막으로 도겸의 이마를 살펴보았는데, 열이 나지 않았단 것을 확인한 후에야 경혜는 살금살금 떠났다.문을 닫는 소리는 이 고요한 밤에 유난히 뚜렷했다.경혜가 떠나자, 소파에 누워 있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떴다.그렇다, 도겸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이렇게 하는 것은 단지 경혜를 떠보고 싶을 뿐이었다.경혜가 ‘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도겸은 순식간에 경계심을 가졌다.한 여자가 돈조차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원할 것이다.예를
“정은이는 항상 그랬어.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침착해졌지.”도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경혜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방금 참관할 때, 실험실은 실험 구역뿐만 아니라 레저구역도 있던데. 심지어 주방까지 설치했잖아요...”도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정은이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거든. 요리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매번 밖에서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요리를 먹을 때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레시피를 연구했어.”“만약 레시피와 영상이 맞지 않는다면, 정은이는 그 두 가지 방법을 따라 각각 만들어서 어떤 게 더 맛이 좋은지 봤고...”경혜가 말했다.“그럼 아주 세심한 사람이겠네요.”도겸은 입술을 구부렸고, 추억에 빠졌기 때문에 눈은 초점을 잃었다.“맞아, 정은이는 세심할 뿐만 아니라 아주 다정한 사람이야. 누가 머리 아프면 정은이는 항상 가장 먼저 발견했거든...”“집안의 장식품이며 그릇에 대해서도 정은이는 모두 잘 알고 있어. 약 상자는 종류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데, 해열제, 소염제, 위장약, 기침약 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경혜는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나며 자신도 모르게 달콤한 기억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두 사람의 과거가 엄청 재밌었겠네요...”도겸은 듣지 않고 혼자 계속 말했다.“정은이는 깨끗한 것을 좋아해서, 슬리퍼까지 가지런히 놓아야 했어. 그러나 난 하필 치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마음대로 물건을 놓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우린 말다툼을 적지 않게 했어.”“그러나 정은이는 항상 나로 하여금 잘못을 인정하게 할 방법이 있었어. 변론을 하거나 애교를 부리거나, 아예 달려들어 나의 입을 틀어막거나...”도겸의 눈빛이 점점 밝아졌는데, 여기까지 말하자 소리가 뚝 그쳤다.이전의 아름다운 추억은 항상 도겸에게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놓쳤는지를 일깨워 주고 있었다.추억이 밀려오자, 후회도 따라서 용솟음쳤다.도겸은 가슴이 무언가에 눌린 듯 하마터면 숨이 막힐 뻔했다.그는
옆에서 구경하던 민지는 눈을 깜빡이며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이건... 쯧쯧!’정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현빈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거절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넘쳤다.이에 비해 재석은 훨씬 평온했고 눈빛이 온화했다. 정은은 그 눈빛을 알아차렸는데, 그것은 일종의 포용과 격려였다.마치 바다처럼, 너그럽게 모든 하천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정은은 갑자기 무언가를 보더니, 일어나서 정수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위의 캐비닛에서 머그컵 하나를 꺼냈다.“역시 물을 마시는 게 더 좋겠네요.”재석과 현빈은 시선을 교환하더니 또 저마다 눈을 뗐다.현빈은 조용히 웃었다.“오전 내내 수고했으니 푹 쉬어. 난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회사로 돌아갈게.”현빈도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해야 했기에, 오전 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은 이미 한계였다.“그래요. 데려다 줄게요.”현빈은 웃었고, 미간에 즐거움이 넘쳐났다.“좋아.”말을 마치자, 재석을 향해 도발적인 눈빛을 던졌다.정은은 현빈이 차에 올라타는 것까지 지켜봤고,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현빈은 정은이 은근히 미안해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다 내가 원해서 그래. 그러니 부담 가질 필요가 없어. 우리도 친구인 셈이니, 계속 사양하면 정말 서먹해질라 그래.”정은은 잠깐 멈칫하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현빈이 떠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리니, 재석이 이미 복도에 나왔다.남자는 몸매가 훤칠했고, 꿋꿋하게 서 있었다. 지금 차분한 눈빛으로 정은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분명히 그녀가 고개를 돌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정은은 갑자기 마음이 찔렸다.‘아니, 내가 뭘 했다고 마음이 찔리는 거지?’이런 알 수 없는 정서가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재석은 이미 정은의 앞으로 다가왔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이해할 수 있어.”민지는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비록 이렇게 하면 속이 시원하지만, 대학원 쪽에서 동의할까요? 멍청이들도 아닌데?”“대학원은 교수님이 해결하실 거야. 우리는 과제에 집중하고, 자신의 일을 잘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어.”“너무 잘 됐네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자신을 위해 연구를 하는 거잖아요!”민지는 기뻐서 입에 과자 두 개를 넣었다.“맛있네! 이럴 때 따뜻한 밀크티 한 잔 더 마시면 완벽한데...”민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은의 핸드폰이 울렸다.“네,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시키신 밀크티가 도착했는데, 나와서 밀크티 좀 가져가실 순 없나요? 전 들어갈 수가 없어서.]정은은 멍해졌다.‘밀크티? 난 밀크티를 주문한 적이 없는데?’배달 기사가 다시 재촉하자, 정은은 나가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밀크티 세 잔, 그것도 뜨거운 것이었다.“정은 언니, 어쩜 이렇게 다정하신 거예요? 미리 밀크티를 시켰다니, 그것도 제가 자주 마시는 그 가게잖아요. 짱이야.”“내가 시킨 게 아니야.”민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엥? 그럼... 쮼, 네가 시켰어?”서준은 즉시 부인했다.“나 아니야.”“그럼 누구지?”바로 이때, 재석이 밖에서 들어왔다. 세 사람이 밀크티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배달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도착한 모양이야.”민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교수님이 밀크티를 시키신 거예요?!”“너희들의 입맛을 몰라서 같은 걸로 시켰어.”민지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맛있어요!”이때 정은의 핸드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네, 금방 나갈게요.”3분 후, 정은은 배달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민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왜 또 밀크티 세 잔이죠?! 교수님이 주문하셨어요?”재석은 고개를 저었다.“그럼 누가...”“아, 밀크티 벌써 도착했구나?” 현빈은 웃으며 휴식실로 들어왔지만, 곧 웃음이 사라졌다.세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밀크
앞으로 더 가면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정은이 특별히 만든 휴식실이었다.무려 8개의 스위트룸, 각 스위트룸은 침대와 옷장, 심지어 전신거울과 세면대까지 구비되어 있었다.바깥의 공공구역에는 커피머신, 책꽂이, 그네, 당구대가 있어 여가를 즐길 수 있었다.이밖에 정은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또 작은 주방을 꾸렸는데, 솥과 그릇 등 물건은 이미 잘 준비되어 있었다.이 구역은 지능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며, 실험구역과 엄격히 분리되어 서로 교란하지 않았다.“위층에는 전문 헬스장이 있고, 뒤뜰에는 수영장이 있어요. 그쪽의 풍경도 괜찮아서, 피곤하면 여기에 서서 커피를 마시며 먼 곳을 내다볼 수 있어요. 참, 여기에 간식 코너를 하나 차릴 예정이에요. 저희 팀에 미식가가 있거든요.”애초에 실험실을 디자인할 때, 정은도 이렇게 많은 휴식 구역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건 일반 실험실이랑 많이 다르니까.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평소에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려면 이미 엄청난 집중을 해야 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었기에 어떻게 줄곧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겠는가?적당한 휴식은 여전히 필요했다.기왕 할 거면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최적한 환경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지금 이렇게 된 것이다.재민이 말했다.“이게 무슨 실험실이야? 리조트와 다름없잖아!”서준은 입술을 구부렸다.“민지도 그렇게 말했어.”“이 휴식실은 너무 화려하네. 뜨거운 물로 샤워도 할 수 있고. 밤을 새워 실험을 한다면 여기서 잘 수도 있잖아. 자기 집처럼.”재민은 문틀을 만지면서 동경을 드러냈다.진일도 마찬가지로 부러움을 느꼈다.‘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주변의 사람과 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겠지?’서준은 진일의 반응을 자세히 관찰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때로는 인내보다 반항이 훨씬 쉬워요.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시도하려 하지 않을 뿐이죠.”“만약 반항에 실패했다면?”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이 세상에 꼭 성공할 수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도겸을 떠난 후에야 정은은 다시 목표를 찾았고, 서서히 예전의 빛나는 자신을 되찾았다.자신이 결국 이 여자를 놓쳤다는 생각에, 도겸의 미련은 짙은 후회로 대체되었다.한쪽의 경혜는 묵묵히 남자의 표정을 눈에 담고 있었는데,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먼저 도겸의 손을 잡았다.도겸은 고개를 돌리며 이해하지 못했다.경혜는 웃으며 말했다.“오늘 정은이를 축하해주러 선물까지 가져왔잖아요. 그럼 당연히 직접 정은이에게 줘야 하지 않겠어요?”말이 끝나자 경혜는 도겸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정은아, 축하해! 나도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이 선물은 나와 도겸 씨가 함께 고른 거야. 너희들이 새로운 실험실에서 수확이 가득하기를 바랄게.”“고마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않는다고, 정은은 평온하게 받았다. 그리고 눈빛은 오직 경혜만 바라보았는데, 도겸에게 눈빛 하나 더 주지 않았다.도겸은 몸 옆에 늘어진 두 손을 자기도 모르게 꽉 쥐었다.진일과 재민도 이 기회를 틈타 앞으로 다가가서 축하했다.진일은 손에 든 물건을 꼭 쥐었다. 경혜처럼 말주변이 좋지 않은 그는 그저 밋밋하게 선물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축하해. 이건 우리 어머니가 만드신 복조리인데, 그리 비싼 게 아니야. 안에 약초가 있어서, 아무데나 걸어두면 정신을 차리고 벌레를 내쫓을 수도 있어.”복조리는 총 세 개였다.정은뿐만 아니라 민지와 서준의 몫도 있었다.진일은 자신의 선물이 너무 초라해서 그들이 싫어할까 봐 걱정했지만, 또 귀중한 것을 부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정은 그들은 싫어하는 대신 오히려 무척 좋아했다.민지는 복조리를 손에 들고 호기심에 훑어보았다.복조리 안에는 쑥과 이름 노를 약초가 들어 있어, 처음에 맡으면 냄새가 좀 강했지만 확실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좀 더 맡으면 향기가 옅어지면서 은은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너무 신기해!’약초 복조리 하나에 뜻밖에도 향수와 같은 향기 구분이 있었다.“고마워요. 저희 모두 너무 마음에 들어요.”정은
이런 화려한 세리머니에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에 저마다 고개를 쳐들고 구경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은은 생각을 하다 현빈을 향해 걸어갔다.현빈은 그런 정은을 보며 놀란 듯했다.“고마워요.” 정은은 현빈의 앞에 멈추며 진지하게 말했다.“그 기자들도 심 대표님이 초청한 거죠?”“부학장님 쪽에서 두 언론에 연락했어. 아마도 너희들이 실험실을 지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말이야.”“이를 통해 일을 크게 만들려고 했지만, 총장님이 나선 덕분에 그러지 못한 거야. 나도 단지 부학장님을 도와 일을 좀 더 크게 만들고 싶었던 거고. 그래야 당할 때 제대로 당하는 게 아니겠어?”현빈은 다른 한 중요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그는 전에 백두강에게 경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백두강은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그럼 내가 수단을 좀 썼다고 탓하면 안 되지. 어떤 사람은 매를 맞지 않으면 아픈 줄 모른다니깐.’‘만약 맞아도 아픈 줄 모른다면, 그건 충분히 얻어맞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지.’멀지 않은 곳에서, 성달수는 박수를 치면서 오미선의 어깨를 밀쳤다.“이제 안심하겠지? 정은이는 남의 괴로움을 가만히 당하는 아이가 아니야. 생각이 아주 많다고. 실험실을 짓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그렇게 했잖아. 초청장 받았을 때 나 정말 놀라 자빠질 뻔했어!”오미선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정은이는 확실히 줏대가 있어. 반격할 줄도 알고...”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나보다 훨씬 낫지.”성달수는 오미선이 자괴감을 느낀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입을 열었다.“어허, 아무리 강해도 그것은 우리가 가르친 학생이야. 강한 장군 밑에 약한 병사가 없다고, 우리 둘도 꽤 훌륭한 교수님이잖아!”오미선은 눈을 부라렸다.“난 성 교수처럼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야.”공연이 끝나자, 시간이 다 된 것 같다고 생각한 정은은 오미선을 청하여 실험실의 이름을 짓게 했다.민지와 서준은 하나는 탁자를 옮기고 하나는 종이와 붓을 가져왔다.오미선은 책상 앞에
교육 채널, 국내 학술지, 과학 주간지, 생물 연구소... 모두 정규인 동시에 유명한 매체들이었다.심지어 J시 뉴스의 기자들도 여기에 있었다.백두강은 이 장면에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정은도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민지와 서준을 바라보더니 의혹을 드러냈다.서준은 손을 흔들었고, 민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럼... 누구일까?’기사에 극도로 예민한 기자들은 즉시 마이크를 송지혜 앞으로 내밀더니 던진 문제도 무척 날카로웠다.“방금 소정은 학생이 말한 CPRT 사건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소방 시정의 경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이런 일로 다른 연구팀을 괴롭히고 배척하신 겁니까?”“학생들을 난처하게 하고, 악의적으로 모함한 게 사실입니까?”“이 중에 교수님 사이의 원한이 얽혀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학생들은 그저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아닙니까?”...송지혜는 마이크와 카메라에 둘러싸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은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저... 그, 그만 좀 찍어요!”말로 지려 하지 않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말문이 막혀 온전한 말도 하지 못했다.지예는 이 상황을 보고 얼른 가서 도와주려 했다.그러나 많은 기자와 촬영기자가 현장에 있어서, 지예는 전혀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계속 중얼거렸다.“다 내 잘못이야... 나,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일부러 이런 게 아니란 말이야... 흑흑흑... 이모...”백두강은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즉시 지예를 잡아당겼다.“너 방금 뭐라고 했어? 네가 잘못했다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지예는 호통을 듣고 그만 멍해졌다.“저, 저는 단지 두 언론의 SNS 계정에 문자를 보냈을 뿐이에요. 와서 이번 일을 보도하라고...”그러나 기자들이 왔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우르르 모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그들은 정은이 허풍을 떤 게 아니라 정말 실험실을 지을 줄은 더욱 생각지도 못했다.“누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