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얼굴은 저도 몰래 빨개졌다.옷을 갈아입은 뒤 신세희는 주방으로 갔지만 부소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이씨 아주머니는 신세희를 보고 말했다.“사모님, 대표님은 한 시간 전쯤에 회사 나가셨어요. 요즘 엄청 바쁘신가 봐요.”“네, 괜찮아요.”신세희는 몸을 돌려 베란다로 나갔다.베란다에는 생기를 가득 머금은 화초들이 가득 자랐다. 신세희는 아침 식사 전 화초를 가꾸었다.문뜩 그녀는 엄마 생각이 났다.비록 신씨 집안은 가난했지만, 신세희의 어머니는 식물을 좋아했다.신세희는 왜 엄마는 가난한데 다른 여자들과 다른지 항상 의아했었다.그녀의 엄마는 피아노 연주도 잘했고 꽃도 잘 키웠다.가끔은 말리꽃을 우린 물을 머리에 발라주기도 했었다.사실 신세희의 엄마는 아는 것도 많았다.예전에는 비록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나니까 서씨 어르신을 더 증오하게 되었다.뼈저리게 증오하게 되었다.회사로 출근한 신세희는 가방을 놓고 서준명이 있는 대표 사무실로 찾아갔다.서준명은 신세희를 보더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세희 씨, 저한테 볼일 있어요?”신세희는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대표님, 어르신한테 더는 저 찾지 말아 달라고 해주세요. 그게 어떤 일이든 절 찾지 않았으면 해요. 가능할까요? 이번 생에 저는 어르신을 뵙고 싶지 않아요.”서준명 물었다.“세희 씨,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미워요?”신세희는 고개를 저었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미운 게 아니고요, 증오해요. 이번 생에 더는 그분과 엮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이유가 뭐예요! 세희 씨 신분이 정확하다면 세희 씨 친...”“죽어도 그런 일은 없어요!”신세희는 서준명의 말을 잘라버리고 말했다.“제 기억이 맞는다면 대표님의 할아버지가 외손녀에게 극진한 이유는 대표님의 작은고모가 첩이랑 같이 산다는 이유로 할아버지한테 인정을 못 받으셨다죠. 나중에야 작은고모는 첩의 소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할아버지가 죄책감을 느끼셨다고 그러셨잖아요?”서준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화기 저편에서 민정아가 울먹이며 말했다.“세희 씨, 나 좀 살려줘...”“울지마, 정아 씨. 주소 보내줘. 지금 당장 갈게.”신세희가 다급히 말했다.“여기 세희 씨가 6년 전에 살았던 빈민촌의 반지하 여인숙이야. 여기 다 그런 일 하는 사람들뿐이야. 날 여기 나이 많은 영감한테 팔았는데, 그 영감이 한 시간 뒤면 온대...”신세희는 마음이 아팠다.“나 지금 당장 갈 테니 만약 그 전에 그 영감이 오면 꼭 같이 싸워야 해. 시간 좀 끌어, 알겠지?”“응, 그럴게.”민정아가 답했다.전화를 끊은 신세희는 디자인 디렉터와 인사도 못 하고 가방을 들고 회사를 나와 차에 올랐다.민정아한테 가는 길에서야 디자인 디렉터에게 연락했다.“죄송해요, 디렉터 님. 저 급한 일 생겨서 빨리 다녀올게요.”신세희는 민정아의 이미지에 영향이 갈까 봐 아무에게도 민정아의 일을 알리지 않았다.민정아는 부모님께 둔기에 얻어맞고 정신을 잃은 후 이런 곳에 팔려 올 줄 상상도 못했다.빈민촌, 그녀가 6년 전에 생활하던 곳이다.민정아가 그곳의 악랄한 환경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신세희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민정아에게 향하는 길에 신세희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없었다.‘정아 씨 부모님은 왜 이렇게까지 독하게 나올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조카를 그리도 아끼고 반대로 친딸한테 이럴 짓을 할 수 있어? 친딸 맞기나 한 거야?’이때 신세희의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신세희는 민정아에게서 온 연락인 줄 알고 바로 받았는데 받고 보니 서준명이었다.신세희는 귀찮은 듯 말했다.“대표님, 대표님이 좋은 분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저한테 도움도 주셨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표님 할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지울 수 없어요. 그분은 임서아를 위해 나에게 수없이 많은 상처를 줬어요. 사실 상처라고 말할 수도 없죠. 제 목숨까지 앗아가려 했으니 말이에요. 사촌 여동생의 얘기를 떠나서 그렇다고 설사 내가 대표님이 찾고 있는 사촌 여동생이라 해도 내가 어떻
하지만 임서아는 신세희와 완전히 달랐다.임서아에게서는 지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민정연도 마찬가지다.서준명은 자기가 20여 년을 아꼈던 사촌 여동생 민정연을 점점 더 증오하게 되었다.민정연을 떠올리던 서준명은 민정아가 생각났다.사실 서준명은 민정아의 일로 신세희에게 전화했다. 서준명은 미안하다는 말투로 말했다.“세희 씨, 미안해요. 나도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요. 사과할게요, 다시는 밀어붙이지 않을게요. 하지만 우리 그래도 친구잖아요, 아닌가요?”신세희는 정서를 가다듬고 말했다.“맞아요, 언제까지나 친구로 생각할 거예요. 그것 때문에 연락한 거예요?”서준명이 말했다.“아니요. 아까 세희 씨가 내 사무실에서 나갈 때, 정아 씨 연락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며칠째 회사에도 안 나오고 혹시 무슨 일 생겼어요?”민정아를 떠올린 신세희는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그런데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신세희는 말을 얼버무렸다.“별일 없어요. 요즘 몸이 안 좋아서요. 생리 중에 여자들 다 겪는 일이에요. 저 지금 약 사서 가고 있어요.”“그래요, 푹 쉬라고 전해줘요. 출근은 급해 할 필요 없어요.”서준명은 걱정 가득해서 말했다.신세희는 머리를 끄덕였다.“그럼, 이만 끊을게요.”“그래요.”통화를 종료한 후 신세희는 계속 목적지로 향했다.회사와 빈민촌은 완전히 반대 방향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신세희는 운전 기술이 좋지 않다 보니 너무 빨리 달릴 수도 없었다.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신세희는 빈민촌에 도착했다.이 한 시간 동안, 민정아에게서 더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신세희가 민정아에게 연락했을 땐 이미 전화기가 꺼진 상태였다.‘전화기가 꺼졌어!’신세희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이리저리 골목을 훑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비록 6년이 지났고 남성의 변화는 컸지만, 이곳은 그대로였다.아무도 이곳을 개발하지 않았으며 지저분하고 복잡했다.신세희는 마음이 급해져 한시라도 빨리 민정아를 찾으려고 지저분하고
어둡고 비좁은 방에, 민정아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나이가 많은 대머리에 배가 큰 남자가 피를 잔뜩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민정아는 두려움에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정아 씨?”신세희가 그녀를 불렀다.“우어엉...”민정아는 알몸으로 벌벌 기어서 신세희에게 다가왔다. 신세희는 다급히 가방에서 스카프를 꺼내 그녀의 몸을 가려주었다.“정아 씨,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신세희가 걱정 섞인 말투로 물었다.“세희 씨, 나 괜찮아. 나 세희 씨 말대로 싸웠어. 내가 반항하니 저 사람들이 날 다 벗기고 내 팬티까지 버렸어. 그러고 저 영감이 왔는데 내 머리를 쳤어. 나 그냥 참다가 저 영감이 바지 벗을 때 벨트를 뽑아서 벨트 버클로 머리를 쳐버렸어. 나 무서워... 나 잡혀가는 거 아니야?”신세희는 그녀를 끌어안고 위로해 주었다.“정아 씨, 잘했어. 너무 잘했어. 정당방위라 괜찮아.”신세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신세희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남의 일에 왜 끼어들어요?”신세희는 머리를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웨이브를 넣은 머리에 담배를 물고 있는 모양새로 보아서는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은 포스였다.신세희는 쌀쌀하게 웃으며 말했다.“나 당신 부하들한테 사진 보여줬어요.”“남성 부 대표님 와이프라고요?”여자는 코웃음을 쳤다.“문제 있어요?”신세희도 똑같이 맞받아쳤다.여자는 비웃는 말투로 비아냥거렸다.“전 남성에, 부소경의 와이프라고 자칭하는 여자만 해도 몇 트럭은 될 거예요. 난 신임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에요! 이 여자의 부모가 나한테서 2억을 빌려 갔어요. 돈을 빌려 갈 때 딸아이로 갚는다고 약속했어요. 이 여자 몸을 2억 원어치 팔면 자유를 주려 했어요. 뭐 당연히 계속 남길 바라면 같이 돈 버는 방법도 있죠. 난 이미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어요. 데려가려거든 2억 내놔요. 그리고 저 영감탱이 치료 비용은 1억으로 하죠. 아, 나도 헛수고는 싫으니 6천만 원도
신세희는 여자를 노려보았다.여자는 두려움에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여자는 살 방법을 찾느라 신세희에게 꼬리를 흔들며 해석했다.“정말이에... 사모님 친구분의 부모님이 2억 빌려 갔어요. 딸 치료비가 필요하다면서요. 그 딸을 살리기 위해 다른 딸을 나한테 넘겼어요. 팔든 말든 어쨌든 살아 있으면 된다면서요. 저도 그 사람들이 제 돈을 갚지 못하니까, 저도 2억을 날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알았으니 그만 해요!”신세희는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벌벌 떨고 있는 민정아를 꼭 안아주었다.“사... 살려 주실 거죠?”여자는 구걸하는 눈빛으로 신세희를 바라보았다.신세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더 큰 소리로 말했다.“옷!”“다그쳐 볼게요!”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두 손 가득 커다란 주머니를 들고 내려왔다.“샤워실!”여자는 바로 신세희와 민정아를 데리고 샤워실로 향했다.“정아 씨. 일단 씻고 옷부터 입어. 그러고 나와 같이 여기서 나가자.”민정아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고마워, 세희 씨. 정말 고마워.”민정아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신세희는 밖에서 이 반지하 여인숙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옆에서 우물쭈물하며 신세희를 졸졸 따라다녔다. 처음 같은 안하무인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랬다.신세희가 물었다.“딸이 아프다고요?”여자가 답했다.“네... 친구분의 부모님이 말했어요. 친구분의 언니가 아프다고...”“당신 돈을 빌렸으니, 빌린 사람한테서 받아요! 정아 씨 언니가 빌린 거니 그 언니더러 갚으라 해요!”여자가 물었다.“그래도 될까요?”“빌린 걸 갚는데 안 될 거 뭐 있어요? 내 친구한테 갚으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죠. 내 친구가 빌렸어요?”신세희가 쌀쌀하게 묻자 여자는 다급히 대답했다.“아니... 아니요.”“그러니까요!”여자가 대답했다.“알겠어요. 알겠어요. 친구분 언니한테 꼭 갚으라 할게요. 안 갚으면...”신세희의 눈길은 여자가 아니라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 문이 열리더니 민정아가 나왔다. 민정아는 빨
민정아는 두 눈이 퉁퉁 부어서 말했다.“세희 씨, 가족한테 버림받고 배신당하는 기분을 알아?”민정아는 머리를 저으며 계속 말했다.“세희 씨는 모를 거야. 세희 씨 아빠는 비록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실 때 세희 씨를 사랑했잖아. 엄마도 비록 행방불명이지만 세희 씨를 사랑했어. 세희 씨는 부모한테 뒤통수 맞는 기분을 몰라. 세희 씨, 나 살아갈 용기가 없어.”신세희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정아 씨, 정아 씨는 정아 씨야.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정아 씨가 하는 말... 나도 느껴봐서 알아.”“세희 씨가?”“그래. 아빠한테 버림당하고 모욕당하고 뒤통수 맞고. 이런 느낌 나도 알아.”신세희가 쓸쓸하게 말했다.말을 끝낸 신세희는 다시 민정아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나한테 얘기해. 정아 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민정아는 친부모가 자기한테 한 짓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나한테...”민정아는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서럽게 울먹였다.“나... 세희 씨 알아? 세희 씨가 준 휴대폰 나 그냥 쓰고 있었지만 나한테 비상 전화기가 있었어. 작고 오래된 휴대폰이야. 중고 가게에서 사 왔어. 거기에 내가 자주 쓰는 번호를 꽂아뒀어. 항상 무음 모드라 다들 몰랐어. 아님 나 오늘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 세희 씨, 우리 엄마 아빠...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민정아는 신세희를 바라보며 아이처럼 울었다.입을 뻥긋거리며 우는 그녀의 모습에서 며칠간의 고통이 고스란히 보였다.지난주 월요일, 신세희가 회사 동료들에게 초콜릿을 사주었던 그날, 민정아는 하마터면 민정연에게 황산 테러를 당할 뻔했는데 다행히 구서준이 팔로 막아주었다.하지만 구서준은 팔을 다쳐 당장에 병원으로 실려 갔으며 민정아는 구서준에게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했다.민정아는 워낙에 구서준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신분이 서로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민정아는 신세희가 부씨 저택에서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아무런 뒷심도 없는 사람이 재벌 집에 시집가면 고달픈 삶을 살겠다 싶었다.그래
하지만 자신의 신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다.민정아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며 어쩔 바를 몰라 했다. 그는 그녀의 턱을 치켜들었다.남자는 상처 입은 팔로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게 했다. “날 봐요!”민정아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남자는 그녀를 놀렸다. “인정하지 않으면 안 돼요, 정아 씨 목숨을 구해줬으니 몸으로 갚아야 해요, 거절할 권리가 없어요, 무조건 저하고 결혼해야 돼요!”“......” 민정아는 아무 말도 못 했다.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자기의 품속으로 끌어안았다.“아......구 대표님,......”민정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그다음에 발생한 일은 그녀는 모른다.그녀는 어떻게 구서준에 의해 옷이 벗겨졌고 어떻게 침대에 옮겨졌는지 생각이 안 났다. 깨여났을 때는 이미 구서준의 품속에 안겨있었다.“구......구 대표님” 민정아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옷을 입어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구서준은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고 자기 몸에 바짝 달라붙게 했다. 코끝을 만지며 말했다. “난 이제 정아 씨 남자예요, 팔의 상처도 정아 씨 때문에 났고요, 이제 저를 차버리면 안 돼요!”“저......저랑 결혼한다면 절대 차버리지 않죠, 결혼하지 않아도 오늘 일은 제가 원해서 한 것이니 절대 귀찮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근심하지 마세요, 구 대표님”남자는 빨개진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뭐라고요?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인정하기 싫은 거예요?”말을 마치고 그는 바로 실천에 옮겼다.촌스럽고 바보스러운 민정아가 어떻게 훌륭한 구서준 도련님의 상대가 되겠는가! 그녀는 어림도 없었다.좀 움직였더니 구서준의 팔이 지끈 지끈하게 아파났다.남자들은 다 똑같다!흥이 나면 아픔도 잊는다.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제야 뼈에 사무치는 통증을 느꼈다.구서준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민정아는 슬퍼하며 울었다. 그녀는 즉시 침대에서 내려와 약과 붕대로 싸매주었다. 침대 머리
어머니가 아프다는 말에 민정아는 마음이 아팠다. “엄마......어디 아파요?”“너 때문에 화났어!” 아버지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제가 뭘 잘못했어요? 정연 언니를 도와주지 않은 것 때문에 그러세요? 정연 언니는 어릴 적부터 부모 없이 자라서 엄마, 아빠가 많이 아껴준다는 것을 잘 알아요, 저보다 더 아껴줘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정연 언니는 저한테 황산을 뿌리기까지 했어요, 그래도 저한테 화난다고요?아빠, 저 같은 딸이 싫으시면 말씀하세요, 앞으로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엄마와 아빠의 노후비용은 한 푼도 아낌없이 드릴 거예요”민정아는 처음으로 이렇게 당당했다.정말 슬펐다!민정아의 말에 아버지의 기세는 좀 누그러졌다. “넌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곁에서 자랐잖아, 부모 없이 자란 애들은 얼마나 불쌍해! 만약 네가 큰아버지, 큰어머니 손에서 자란다고 생각해 봐, 친딸로 키워주길 바라겠지, 심지어 친딸보다 더 아껴줬으면 좋겠지? 정연이는 부모도 없는데 좀 양보해 주면 안 돼?”민정아는 울먹이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내가 뭘 더 양보해야 돼요? 정연 언니는 서 씨 집안에서 남부러울 게 없는 귀족 생활을 했죠, 우리는요? 힘들게 일해서 돈 벌고 하인처럼 정연 언니를 시중들어줬어요, 그것도 모자라 더 어떻게 해줘야 되나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해야 하나요?제가 정연 언니를 도와 신세희를 죽이지 않아서 저를 미워하는 거예요?”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워낙 부잣집 아가씨였는데 갑자기 모든 걸 잃었어, 심지어 은행 카드까지 동결됐으니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어? 엄마, 아빠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그래, 비록 최근 들어 너한테 좀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넌 친딸이잖아!정연이 한테는 심하게 대할 수 없잖아!아니면 큰어머니, 큰아버지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정아야, 너도 인젠 어른이 됐고 철도 들었으니 우리 입장을 이해해 줘, 넌 친부모가 있지만 정연이는 아무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