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면 일단 부소경을 짚고 넘어가야 했다.구자현은 부소경을 가장 먼저 좋아했던 여자였다. 당시의 부소경은 해외로 쫓겨난 초라한 사생아였다. 구자현은 그에게 자기 심장이라도 꺼내줄 기세였지만 부소경은 그녀를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구자현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끊임없이 부소경을 쫓아다녔고 그럼에도 부소경은 여전히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중에는 부소경을 향한 마음이 “애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아이러니하게도 부소경을 향한 마음은 여전히 사랑으로 가득했지만, 부소경 옆에 있는 여자들을 한껏 증오하게 된 것이었다.6년 전, 구자현은 임서아를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했었다. 아무도 모르게 남성에 온 그녀가 임서아를 단칼에 찔러 죽이겠다 결심하던 차 부소경이 임서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게다가 부소경의 어머니도 곧 유명을 달리할 것 같았기에 구자현은 굳이 부소경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다.부소경의 악랄함을 잘 알고 있던 구자현은 다시 조용히 서울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소경이 결혼식장에서 임서아와 파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구자현은 너무 기쁜 나머지 환호를 내지를 뻔했다.그때부터 구자현은 임서아를 미워하지 않았다.나중에 임서아가 서씨 집안 어르신을 따라 서울에 몇 번 놀러 온 적 있었는데, 매번 그녀의 아버지가 노인을 접대했었다. 구자현의 아버지인 구성훈은 노인의 옛 부하였다. 재위 기간 구성훈을 부단히 요직에 발탁한 덕분에 구씨 집안사람들은 노인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이런 만남을 계기로 구자현은 임서아와 안면을 트게 된 것이다.구자현은 임서아가 못마땅했지만 높으신 분의 외손녀라 어쩔 수 없이 임서아와 왕래했다.두 달 전, 신세희가 다시 돌아왔다는 말을 그녀에게서 전해 들은 구자현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부소경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으로 가득 찬 그녀는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부소경이 조금도 임서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작 눈치챘었다. 그러나 신세희는
깜짝 놀란 세라는 신발 한 짝을 허공에 들어 올린 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고개를 홱 돌려보니 그녀를 멈춰 세운 건 사무실의 막내 남자 직원인 송주혁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인턴사원인 그는 지난번 부서의 남자 디자이너들이 신세희를 위해 나서줬을 때도 입을 열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선뜻 목소리를 낸 것이다.세라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송주혁은 냅다 세라를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렸다.20대의 건장한 젊은이는 아주 손쉽게 여자를 쓰러뜨렸다. 넘어진 세라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그는 또 신세희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다.신세희는 바보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녀는 눈앞이 아찔해졌다.'이 사람은...'이곳에서 몇 주 동안 함께 일하면서 신세희는 송주혁이 매우 똑똑하고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항상 누나라고 다정히 부르는 그에게 신세희는 하숙민 아주머니가 그러했듯 유용한 것들을 많이 가르쳐주곤 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자기를 구해준다고?송주혁이 그녀를 품에 안고 밖으로 돌진할 때 신세희는 내려오려고 발버둥 쳤다."주혁 씨. 날 이만 내려줘요.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나는 어차피 오늘 맞아야만 해요. 나에겐 딸이 있어요. 만약 구자현 씨가 내게 화풀이하지 못한다면 내 딸에게 화가 미칠지도 몰라요. 주혁 씨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얼른 내려줘요. 난 돌아가야 해요."신세희의 말을 들은 송주혁은 마음이 쓰라렸다. 사나이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은 그는 그녀의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미친 듯이 밖으로 돌진했다.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는 그대로 신세희를 안고 밑으로 내려갔다. 회사 밖 큰길에 이른 그는 그제야 신세희를 내려주었다. 송주혁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세희 누나, 얼른 도망가요. 딸아이를 데리고 멀리 도망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요."신세희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6년 동안이나 도망 다녔지만 이렇게 잡혀왔는 걸요."송주혁이 험한 욕설을 내
엄선희는 당장이라도 신발을 빼앗아 들고 민정아와 구자현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싶어졌다. 엄선희가 화를 내기도 전에 세라가 다시 민정아에게서 신발 한 짝을 가져왔다."민정아 씨, 나도 신세희를 미워하긴 마찬가지예요. 그럼 둘이 때리는 건 어때요? 누가 더 망가뜨릴지 내기해요."두 사람이 서로 신세희를 때리겠다고 나서는 모습에 구자현은 활짝 웃었다.참다못한 엄선희가 욕설을 퍼부었다."민정아 씨, 당신은 등신이에요."모두 깜짝 놀라며 엄선희에게 시선을 돌렸다.엄선희는 민정아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아가씨 놀음에 심취한 나머지 본인이 정말 대단한 사람인 줄 아나 보죠? 당신도 그저 월급쟁이에 불과하잖아요! 어느 부잣집 아가씨가 스킨로션이 비싸다고 손을 벌벌 떨어요. 가난한 건 죄가 아니에요. 그렇지만 있는 집안사람들의 끄나풀 노릇은 하지 말아야죠. 당신은 정말 멍청하고 가여운 사람이에요. 왜 신세희 씨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세희 씨가 당신 조상님의 무덤이라도 팠나요? 당신 남자라도 빼앗았어요? 아니잖아요. 정말로 당신 사촌 언니의 남편을 빼앗은 게 사실이라고 해도, 왜 매번 당사자 대신 민정아 씨가 나서는데요? 어리석긴. 만약 신세희 씨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내가 당신을 찢어 죽여버리겠어요!"한바탕 욕설을 쏟아낸 엄선희는 이번에 세라를 쳐다보았다."이 천박한 여자야. 당신 실수를 세희 씨가 덮어주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회사에서 잘리고도 남았어. 그런데 세희 씨는 그 어떤 배상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신세희를 건드리기만 해봐, 내가 당신 얼굴을 물어 뜯어버릴 거야!"민정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그녀는 이 일에서 빠지고 싶었다. 신세희를 때리는 건 그녀도 내키지 않았다.예전에 망가진 의자를 바꿔치기했던 전적은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볍게 망신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 의자가 다시 되돌아와 본인이 다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지만. 사실 그녀는 의자 사건도 몹시 후회하는 중이었다. 끄나풀 노릇을 한다는 엄선희
엄선희를 자신의 뒤에 숨긴 신세희가 처량한 미소를 지었다."마음이 풀릴 때까지 실컷 때려요. 누가 날 구하러 와도 절대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요."말을 마친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고분고분 세라에게 자기 뺨을 내주었다.신세희의 말을 들은 사무실 사람들은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사무실 안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건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이 누군가의 얼굴을 망가뜨릴 정도로 잔인하게 번지는 건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대부분 사람은 더는 세라의 편을 들어 줄 수 없었다. 잔인한 장면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몇몇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그러나 세라의 악의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올랐다. 입사하자마자 구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세희가 미웠다. 디자인의 문제점을 발견했음에도 알려주지 않았던 신세희가 미웠다. 2천만 원을 갈취하려던 신세희가 미웠다. 가장 증오스러운 건 부소경이 어느 시골구석에서 잡아 온 죄인 주제에 그녀의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다는 사실이었다.비록 얼굴을 망가뜨리는 건 잔인한 처사였지만, 신세희에게 해코지함으로써 구자현의 눈에 들어 상류층에 연줄이 닿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잣집 도련님들을 입맛대로 고를 수도 있었고 남성의 권력자인 부소경의 눈에 들 수도 있었다. 또한 이건 부소경을 대신해 신세희를 응징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스스로 납득한 세라는 망설임 없이 신발 한 짝을 들어 올려 신세희의 뺨을 힘껏 내려쳤다."안돼..."뒤에서 엄선희가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신세희에게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다.뺨에서 따끔거리는 고통이 엄습했다. 이내 그녀의 얼굴은 호빵처럼 잔뜩 부어올랐다. 한참이 지나자 귀가 먹먹해지며 소리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고 입가에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신발 밑창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사람들은 가슴을 졸이며 침묵하고 있었지만 구자현은 퍽 즐거운 눈치였다. 그녀는 마치 잔뜩 취해 인사불성이 된 사람처럼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렸다."어머, 신세희,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거울
세라:“......” 망설이다가 그녀는 갑자기 소리쳤다. “겨… 경찰 아저씨, 어…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저 잡아가지 마세요. 이 여자를 잡아가셔야죠. 이 여자가 세컨드예요. 감옥에서 도망쳐 나온 죄인이 이 여자고, 학력을 위조한 거짓말쟁이예요. 이 여자가… 아, 아파요…” 경찰은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여성분께서 무슨 잘못을 하셨든 때리시면 안되죠. 당신이 사무실에서 사람을 때린 건 이미 법을 어긴 행위이니 저희랑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경찰은 세라를 체포해서 밖으로 나갔고, 세라가 비협조적으로 굴어서 그녀의 손목에는 핏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녀는 아픈 걸 신경 쓸 수가 없었고, 그저 미친듯이 소리쳤다. “아가씨, 자현 아가씨,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아가씨께서 신세희를 때리라고 시키셨잖아요.” 구자현은 차갑게 말했다. “멍청한 것!” 그녀는 가만히 경찰이 세라를 데려가는 걸 보았고, 세라를 대신해서 한 마디도 도와주지 않았다. 게다가 세라가 경찰한테 잡혀가자 그녀는 현장에서 물었다. “누구죠? 누가 신고한 거예요? 나한테 들기면 아주 가만 안 둘 줄 알아요!” 부서에 있던 진시훈, 주현욱, 동명욱 세 사람이 동시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 순간, 세 사람은 같은 마음으로 말을 하지 않았고, 비록 그들은 자신들이 신세희의 운명을 구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잠시라도 구할 수 있다면 구하고 싶었다. 이때, 디자인 디렉터가 수습하려 했다. “아이고, 아가씨, 제가 봤을 땐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신세희씨가 아가씨한테 잘못을 했고 이미 맞았으니, 분이 안 풀리시더라도 이 일은 여기서 끝내시죠. 만약 일이 커지면 세라씨가 경찰 쪽에서 아가씨를 물고 늘어질 수도 있잖아요?” 디렉터는 이 일을 그저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디자인 팀에서 악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녀는 구자현의 눈치를 보았고, 구자현은 생각하다가 눈썹을 올렸다. “맞는 말이네요, 그렇게 하죠 그럼.”
전화 너머 역시 구자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세희, 뭐라고 말해야 될지 내가 알려줄 필요 없지?” 신세희는 평온하게 물었다. “제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허튼소리!”구자현은 여유롭게 웃었다. “네 연락처는 인사팀 파일 안에 있으니까 내가 당연히 알지. 너 지금 경찰에서 진술중인 거 알아. 세라가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네가 어떻게 말하냐에 달렸겠지.” 신세희는 여전히 평온한 말투였다. “그럼 그쪽은 세라씨를 지키려는 거예요? 아님 본인을 지키려는 거예요?” 구자현은 화를 냈다.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신세희:“양쪽 다 같이 죽자는 뜻이죠!” 구자현:”네가 감히 그럴 수 있어?” 신세희는 쓸쓸하게 말했다. “감히 못 그러겠죠. 제 딸의 운명이 그쪽 손 안에 있으니까 당연히 못 그래요. 하지만 경찰서에서 제가 사실을 말하게 해주셔야 하는 조건이 있어요. 세라씨는 분명 절 때렸고 경찰도 봤어요.” 구자현:“......”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좋아! 그러게 경찰이 왔는데 누가 걔보고 바보 같이 거기서 신발을 들고 있으래?” 신세희는 뚝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뒤 신세희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맑은 소리로 말했다. “경찰관님, 세라씨가 제 얼굴을 때렸고, 제 이빨까지 흔들리고 있어요. 저는 경찰측에서 이 여자를 엄격하게 처벌하고 2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저한테 해줄 수 있게 요청드려요!” 세하:“당신......신세희씨, 내가 방금 자현 아가씨랑 전화하는 거 들었어요. 아가씨가 날 놓아주라고 했잖아요. 날 안 놓아주면 아가씨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신세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세라씨가 절 때렸고 경찰분들도 다 보셨는데, 제가 왜 다른 사람을 신경써야 하죠? 경찰관님도 보셨잖아요. 이 분이 아직도 인정을 안 하시네요. 온 회사 사람이 다 증인이고, 그게 아니면 누군가 왜 신고를 했겠어요? 사람들 앞에서 폭행을 휘두른 이 사람을 엄격하게 처벌해주세요!” 세라:“......”
이걸 생각하자 신세희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바로 다시 눈물을 삼키고 황급히 세면실로 들어와 신세희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4시간 동안 얼음을 올려 놓고 있었더니 부기는 이미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아직 멍이 남아 있어서 매우 못생겨 보였다. 신세희는 씁쓸하게 웃은 뒤 다시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방으로 와서 부소경이 예전에 주었던 그 보석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부씨 저택에서 노부인이 주신 금색 팔찌인 가보가 있었다. 이 팔찌를 보자마자 신세희는 그 날의 부씨 저택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노부인은 그녀에게 직접 말했다. “원래 이 팔찌는 네 엄마에게 주려고 했었는데, 네 엄마가 너무 일찍 떠나서 줄 수가 없었어.” 여기까지 생각한 뒤 신세희는 또 하숙민 아줌마가 부씨 가문에 간절히 들어오고 싶어했던 눈빛이 생각났다. 황급히 팔찌를 다시 포장한 뒤 신세희는 바로 하숙민의 묘지로 향했다. 묘지는 온통 꽃으로 꾸며져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이곳은 확실히 묻히기에 산도 좋고 물도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하숙민과 그녀의 부모는 다같이 묻혔으니 아마 외롭지도 않을 거 같아 신세희는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또 저번처럼 하숙민 묘비 앞에 꿇어 앉고 작게 말했다. “엄마, 제가 어쩌면 조만간 여기 밑에서 같이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아름답고 청아한 곳에 사시는데 저는 못 살 거 같아요. 아마 저는 제 시체를 처리해줄 사람도 없겠죠. 제가 그곳으로 가도 엄마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심지어 제가 못 알아볼 수도 있겠네요. 나중에 제가 엄마를 못 알아봐서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그래서 제가 미리 이 팔찌를 드릴게요. 엄마께서 살아 계실 때 저는 선물을 드릴 능력이 없었어서, 지금에서야 드디어 제가 선물을 드릴 수 있게 됐네요. 마음에 드세요? 엄마,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면 꼭 손녀를 지켜주셔야 해요, 네? 꼭 손녀 유리가 무탈하게 클 수 있도록 지켜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엄마.” 할
신세희가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여자는 귀티 나게 꾸몄고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신세희는 의젓하게 여자를 보았다. “누구세요?” 신세희는 머릿속으로 누군지 생각했지만 이 여자가 대체 누구의 엄마인지 떠오르지 않았다.“하! 연기하시네요! 저희 유치원에서 대화 몇 번 나눴었잖아요. 매번 그쪽 따님이 제 딸 장난감을 뺏어서, 그쪽이 저희 딸한테 돌려주기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저희를 모르는 사람인척 연기하시네요!”신세희는 생각이 났다.눈 앞에 이여자는 신유리의 친구 나영희 엄마였다. 나영희는 자꾸 장난감을 유리에게 주며 같이 놀자고 하는 걸 좋아했고, 신유리는 나영희에게 필요 없다고 했다. 원래 두 아이가 서로 장난감을 주면 그건 아이들이 나눔을 아는 거지만, 나영희 엄마는 신유리가 자기 자식의 장난감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영희 엄마는 신세희를 몇 번이나 찾아왔었고, 신세희는 장난감을 다 돌려주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그녀는 총 나영희 엄마랑 두 번 정도 대화를 나눈 게 전부였고, 매번 장난감만 돌려준 다음에 떠났는데, 사람을 제대로 기억할 리가 있나?이 여자가 말을 해줘서 신세희는 생각이 났다.얼굴을 이렇게 맞고 그녀는 누군가와 대화하기 싫어서 평온하게 물었다. “저한테 무슨 볼일 있으신가요?”신유리는 작은 목소리로 신세희에게 말했다. “엄마, 영희네 엄마 되게 무섭게 생겼다. 근데 걱정하지 마. 만약 영희 엄마가 못 살게 굴면 우리 같이 때리자.”“신유리, 그러면 안되지!”신유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마치 용감한 전사처럼 호시탐탐 영희 엄마를 보고 있었다.아빠는 출장가기 전 유리에게 부탁했었다. “유리야, 집에서 꼭 엄마를 지켜줘야 해.”영희 엄마는 자신의 네일을 만지며 여유롭게 말했다. “저희 단톡방에 1000만원을 내신 이후로 그 집 차를 한번도 못 본 것 같네요?오늘 입은 옷도 엄청 촌스럽고요.설마 진짜로 1000만원을 내려고 집에 있는 모든 걸 팔고, 능력은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