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선의도 한숨을 내쉬었다.“이런 일이 있었군요, 이 여자가 아무 이유 없이 여기 온 건 아니겠죠. 진짜 무슨 이유라도 있어서 선희 언니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대체 그들과 무슨 사이인지 알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만약 그런 거라면 만만치 않은데요? 설마 선희 언니를 대신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염선의도 그저 추측할 뿐이었다.그녀는 미루나와 접촉한 적이 없었기에 미루나에 대해 잘 몰랐다.그리고 그녀는 서준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루나는 그저 서준명을 좋아할 뿐 아무런 과한 짓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오빠를 정말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떤 여자들은 허영심이 강해 평생 동안 남성에서 두 번째인 재벌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회만 생기면 바로 쟁취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마음은 나쁜 것 같지 않은데 허영심이 강한 것 아닐까요?”염선의도 그렇게 남에게 매달리는 일을 한 적 있었다.어쩌면 미루나도 그녀와 같을지도?엑스트라 배우로 연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배우들 중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스캔들이 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준명 오빠, 영화를 보니 미루나의 연기 실력이 너무 뛰어나 눈빛만 봐도 두려울 지경이에요, 그러니 진지하게 연기하려는 여자일 겁니다. 아마도... 오빠의 인품을 보고 좋아하는 건 아닐까요? 혹시 제대로 대화한 적은 있나요?”사실 염선의도 이 순간에 어떻게 서준명을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서준명의 인품, 엄선희 부모님에 대한 보살핌 그리고 평소 여자를 멀리하는 품행으로 보아 염선의로 하여금 서준명에 대해 감탄하도록 했다.이 세상에 3, 4년 동안 행방불명이 된 아내를 계속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아내를 기다리기 위해 그는 지금까지 그 어떤 여자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아내의 사진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라면 핸드폰이 고장 나도 바꾸기 아까워했다.심지어 손꼽히는 재벌이었던 그는 아내가 실종된 지 3년이나 지났기에
“엄선희 언니, 언니 돌아오실 수 있으세요?”쓸쓸하게 떠난 서준명의 뒷모습을 보며 염선의의 마음속에도 가을 잎이 떨어지는 것 처럼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문득 이 세상에 쉽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모두가 시련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엄선희의 부모님도, 엄선우도, 서준명도 시련을 겪고 있었다.특히 아이 둘까지 생긴 엄선희가 아직 살아있다면 정말 어디선가 큰 아픔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간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염선의는 자신의 그까짓 고민이 뭐가 대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신세희에게까지 가서 도움을 청하다니.정말 말썽이야!염선의는 스스로를 꾸짖었다!한바탕 꾸지람이 끝난 뒤 그녀는 또다시 돌아가 엄선희의 부모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고 그제야 엄선희의 집에서 나왔다.아파트 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염선의는 곁눈질로 미루나를 발견했다.구석에 서 있던 미루나는 사실 염선의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그러나 실수로 염선의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염선의는 미루나에게 다가가 정색하며 물었다.“서씨 도련님이 그러시던데, 도련님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고요?”미루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배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도 조금은 압니다, 당신 같은 직업은 절대 쉽지 않을 거란 걸 말이죠, 특히 무명 배우들은 제일 밑바닥에 있을 때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죠. 하지만 미루나 씨,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서씨 도련님은 아내와 아이가 있으십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요, 그러니 당신과 그 어떤 관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제가 간섭할 권리는 없지만 단지 알려줄 건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요. 당신도 알다시피 여기는 도련님의 장인, 장모 댁이고 여기서 어르신들을 지켜본다 해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앞으로 어르신들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두 어르신은 가엾게도 딸은 행방불명인데다 나이까지 있으신데 자꾸 찾아와서 이렇게 생활에 영향 주게 된다면 어떻게 살
염선의는 어리둥절해하며 미루나를 바라보았다.“이런 질문은 이미 서너 번이나 했어요, 며칠 동안 매번 만날 때마다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던가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가네요? 선희 언니의 부모님이 잘 지내든 말든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염선의는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상대방을 무시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다.비교하자면 사실 그녀는 상대방보다 더 비참한 신세였다. 그녀는 빚도 채 갚지 못한 여자였지만 상대방은 어쨌든 스타였고 이번 영화에서 악역을 연기해 완벽하게 소화해냈다.그녀가 지금 일부러 숨기고 화장을 해서 그렇지, 만약 공공장소였다면 이미 팬들이 몰려오지 않았을까?염선의는 사실 이렇게 연기하는 여자가 존경스러웠다.다만 연기는 그저 연기일 뿐.어르신들의 생활에 영향을 준다면 그건 잘못된 거겠지?미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 당신 말이 맞아요.”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쉬었던지 마치 늙은 까마귀의 울음소리 같았고 느낌적으로 비호감을 자아내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쩐지 악역을 연기하더라니, 어쩌면 천성적인 우세를 갖고 있을지도?염선의는 한숨을 내쉬었다.“얼른 가요, 당신이 누구를 좋아하든 연예계는 아마도 스폰서가 필요한 거겠죠, 그건 당신 일이니 앞으로 두 어르신을 귀찮게 하지 마세요. 어르신들은 이미 처량한 신세에 놓여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들을 다치게 하는 것을 두고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여자는 입을 열었다.“전... 전 그저 서씨 도련님이 보고 싶어서...”“꺼져!”화가 치밀어 오른 염선의는 아예 그녀를 내쫓아버렸다.여자는 달갑지 않아 하며 떠났고 여자가 떠나자마자 염선의는 서준명의 전화를 받았다.“선의 씨, 두 어르신을 잘 돌봐줘. 어르신들은 평소에 활동도 별로 없고 그저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신선한 야채나 고기를 사는 게 전부야. 이건 어르신들이 젊었을 적부터 몸에 밴 습관이지. 그리고 선희 씨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자주 만드시곤 하셔, 지금까지도 그렇고. 그러니까 선의 씨, 선의 씨는 어르
“알겠어요, 준명 오빠, 이 일에 대해 원래 관여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어르신들은 제가 오빠 대신 잘 돌볼 테니 걱정 마세요.”염선의는 전화로 서준명에게 안심하라고 전했다.전화를 끊은 그녀는 엄선희 부모님 댁 아파트 밖에 한참 동안 서있었다. 그 여자가 다시 돌아오기라도 할까 봐 말이다. 30분 뒤 그 여자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자 염선의도 그제야 떠났다.집에 돌아간 후 그녀는 먼저 이튿날 업무 내용을 정리했다.특히 내일 여인걸 회사를 상대할 자료를 충분히 준비해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업무 방면에서 상대방이 결점을 찾아 내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업무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11 시가 넘었고 염선의는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영어 책을 들고 소설을 낭독하기 시작했다.그건 염선의가 영어 회화를 연습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그녀는 평소 시간만 있으면 시내에서 제일 번화한 곳에서 무료로 가이드를 해줬고 그건 자신의 영어 발음과 리스닝을 연습하려는 목적이었다.최근 그녀의 영어는 매우 빠르게 향상되었다.그녀가 자유롭게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는 순간도 점차 많아졌다.그리고 그녀도 점점 더 영어를 사랑하게 되였다.염선의는 영어를 읽으며 잠이 들었다.신세희와 부소경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감을 키워서인지, 아니면 자료를 정리하느라 힘들어서 왠지 그날 밤 염선의는 달콤한 잠을 잤다.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아침 6시 30 분이었다.염선의는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한 뒤 스쿠터를 타고 엄선희의 부모님댁으로 향했다.어제저녁에 준명 오빠와 약속했는데 오늘 안 가볼 수는 없잖아?비록 조금 늦었지만 말이다.염선의는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6시엔 반드시 기상해야 한다고 말이다.하지만 스쿠터를 타고 엄선희의 부모님 댁으로 가니 그렇게 늦은 시각은 아니었다. 염선의도 똑똑했다, 그녀는 바로 시장으로 갔고 두 어르신이 각자 손에 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왔다.“아주머니, 이게 뭐예요?”염선의는
잠시 어색함이 흘렀지만 염선의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여인걸 사장님, 사장님 회사와 함께 협력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고 앞으로 제가 담당 인원을 맡게 될 겁니다.”염선의를 바라보는 여인걸의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염선의는 못 본 척하며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여인걸을 바라보았다.여인걸이 그녀를 싫어하고 가만두지 않으려는 의미의 눈빛을 염선의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녀와 무슨 상관이람?다른 사람의 눈빛은 아무것도 아니야!그건 염선의가 신세희와 부소경에게서 얻은 깨달음이었다.“여 사장님, 제가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사장님께서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시겠어요?”염선의는 평온하게 미소를 띤 채 여인걸을 바라보았다.여인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염선의를 쳐다보는 데만 집중한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너...”한참이 지나서야 여인걸은 말을 이었다.“매우 침착하시네요.”염선의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그렇지 않으면요? 지금은 출근시간이고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 사장님, 이젠 정말 자료를 저에게 보여주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부터 사장님의 모든 재료와 반제품 그리고 모든 원료는 저희 회사의 심사를 거쳐야만 경비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님의 시간만 낭비할 거고요.”그녀는 특히나 좋은 태도로 말했다.온화하면서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고, 긴장과 이완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듯한 힘을 갖고 있었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염선의가 예뻐진 건가?아니야!옷차림은 몇 년 전 겉모습만 꾸미며 허세를 부릴 때보다도 못한걸.얼굴도 몇 년 전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고 잔주름도 생겼어.근데 왜 지금의 염선의가 더 예뻐 보이지?아마 더 마음에 들었나 보지!여인걸은 자기도 모르게 염선의가 더 마음에 드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마음속으로 화가 날 뿐이었다.그의 말을 잘 따르던 여자가 더 이상 굽신거리지 않으며 더 이상 그의 통제를 받지 않는 모습 때문에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그가 이
역시 업계에서 상위권인 이유가 있었다.여인걸은 점잖게 염선의를 쳐다보았다. “선의 씨, 이렇게 된 일이에요. 우리 회사가 당신 아래쪽에 있는 회사긴 하죠. 원칙대로라면 당신들이 우리보다 실력이 더 좋겠지만 그래도 우리 회사 실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예요. 왜 저희가 업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겠어요. 위쪽 회사에 있는 장치가 우리 회사에도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죠.”“예를 들면 번역이 딱 그래요.”“당신들은 직접 외국어를 번역해서 우리에게 보내주죠. 그렇게 하면 우린 훨씬 수월하게 일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하지만 굳이 속이지는 않을게요. 우리 회사의 실력은 전혀 당신들에게 뒤처지지 않아요.”“사실 우리는 독립적으로 일을 받을 수 있어요. 가끔씩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위쪽 회사를 만날 때면 저희가 대신 번역 일을 하기도 하거든요. 선의 씨, 제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셨어요?”여인걸의 뜻은 무척이나 명확했다.그가 제일 먼저 하려던 일은 염선의가 영어를 못한다는 단점으로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염선의는 바로 상대방의 말뜻을 알아차렸다.만약 지금의 영어 실력에 예전의 성격까지 더했으면 그녀는 분명 정면으로 여인걸과 대들었을 것이다.하지만 부소경과 신세희랑 얘기를 나눈 후,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사람은 내면이 강해야 한다.내면이 강하다는 게 무엇일까?모든 걸 받아들이는 포용력이다.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것이다.더구나, 이 방면의 일들을 여인걸이 책임지게 되면 그녀는 지금 보다 훨씬 수월해진다.그냥 검사 한 번만 더 하면 되는데,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염선의는 시원시원하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 “네.”그녀의 미소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자연스러움과 함께 태양의 따스함이 섞여 있었다.여인걸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곧이어 그는 속으로 냉소를 뿜어냈다.그는 오늘 특별히 그렇게 전문적이지 못한 번역가를 데리고 왔다.이 번역가는 일상적인 번역만 가능한
여인걸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그는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그는 항상 자신의 영어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상대방이 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염선의는 무의식에 경멸 섞인 웃음을 뱉어내더니 이내 해외 책임자를 데리고 온 접대원에게 말했다. “일단 이 분 데리고 호텔로 가주세요. 먼 길 오시느라 지치셨을 텐데, 휴식이 필요하실 거예요.”“네.” 그녀의 말에 접대원이 바로 대답했다.곧이어 접대원은 다른 해외 책임자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여인걸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염선의를 쳐다보았다. “왜 다시 보냈어요? 회의에 참여시키는 거 아니었어요?”염선의는 어깨를 들썩이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저 사람이 하는 말 알아는 들으세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화를 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선의 씨는 알아들어요?”염선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여인걸과 겨룰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단지 열심히 자료를 넘겨보며 영어로 표시하며 부분을 여인걸의 조수에게 건네 줄 뿐이었다.염선의는 그제야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여 사장님, 일단 제 영어 실력 문제는 얘기하지 않을게요. 해외 책임자가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영어로만 대화한다는 게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어요? 사장님도, 사장님 조수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화를 이어 나가겠어요? 저희 셋이 먼저 얘기를 다 끝내고, 모든 걸 확실하게 한 후에 한꺼번에 책임자랑 얘기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사실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염선의가 해외 책임자와 함께 회의를 진행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언어적인 소통 때문이 아니었다.그녀는 해외 책임자가 국내 원재료 원가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지 않았으면 했다. 이것이 진정한 이유였다.원가를 더 낮게 하는 동시에 퀄리티를 보장하는 게 F 그룹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다.염선의는 본인이 계산한 원가를 해외 책임자에게 알려줄 수가 없었다. 알게 할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대범해 보였다.특히 염선의의 이마 위로 드리워진 앞머리가 그녀의 얼굴을 가려주고 있었고, 희미한 아침 햇살이 그녀의 귀여운 점을 빛나게 해주었다.무심하고, 자연스럽고, 수수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주근깨까지 있었고, 그 모습은 여인걸이 또 한 번 그녀를 다시 한번 보게 만들었다. 단번에 여인걸의 기억을 염선의가 그의 냄새나는 운동복을 끌어안으며 말랑거리던 때로 돌려놓았다.왜 갑자기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거지?왜 그녀의 귀여운 볼을 꼬집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여인걸은 이런 생각을 하는 자기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한참 넋을 놓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이렇게까지 노력했을 줄을 몰랐네요.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여전히 뭐?그는 그녀가 여전히 허영심이 넘치고, 기만과 거짓이 넘치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결국 그는 조금 횡설수설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본인 일이나 잘하세요!”곧이어 그는 조수와 함께 물건을 정리하더니 자리를 떠나려 했다.“좋은 비즈니스가 되길 바랍니다, 여 사장님.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점심에 바쁜 일 없으시면 제가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세요?”그녀는 여인걸이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여인걸처럼 오만한 남자가 어떻게 예전에 싫어했던 여자랑 같이 밥을 먹겠어?그가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겉치레는 해야 했다.그것이 바로 회사의 규정이었으니까.하청 업체가 본사에 찾아왔을 때는 무조건 책임자가 상대방에게 점심을 대접해야 했다.이 것은 대기업이 하청업체에게 자신들의 도량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태도나 형식, 그 어떤 것도 바뀌면 안된다.설사 여인걸이 동의하지 않은 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여인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좋아요. 어디서 먹을까요?”말을 끝낸 후 여인걸은 염선의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하지만 단지 1초 동안 멍해진 것 뿐이었다. 그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