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인해 반원명은 바쁜 업무와 더불어 퇴근 후에도 전세린을 들여다봐야 했고 장인의 억압도 견뎌내야 했다.그리고 아이를 입양하려던 계획은 줄곧 이루어지기 어려웠다.그는 일이 바빴고 전세린은 일을 하지 않았지만, 입양하는 데에 손도 대지 않았다.시간이 지나 반원명은 절망스러웠다.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황에 그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저 자신을 마비시키기 위해서였다.더 이상 우울하고 무기력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도록.그저 인생에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 하나만 있으면 잘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이를테면 수술대 위에서의 성공적인 수술.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다.죽어가는 환자들을 저승사자에게서 구해오는 일이 반원명에게는 제일 큰 성취였고 기쁨이었다.설사 힘들어 수술대에 쓰러져있더라도,매일 8시간 동안 수술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더라도.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환자를 구하는 일은 반원명의 마지막 희망이었다.시간이 지나 그는 모든 정력을 의학 연구에 쏟아부었고 집에 가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반대로 완치되는 환자는 많아졌다.가끔 환자의 가족들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반 선생님, 이건 백두산에서 구해온 일급 자연산 산삼이에요. 매일 수술 때문에 바쁘셔서 몸 챙길 시간도 없을 텐데 이거라도 받으시고 몸보신하세요.”스물넷, 다섯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존경심이 깃든 눈빛으로 반원명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엔 산삼 박스가 쥐여져 있었다.반원명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존경심뿐만 아니라 모호한 애정도 담겨있었다.그건 깨끗하고 순수한 감정이었다. 얼마나 순수했던지 반원명은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반원명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아가씨, 지금은 아버님이 몸보신하셔야 할 때예요, 이 산삼은 아버님이 몸조리를 잘할 수 있도록 아버님에게 드리세요.”물 빠진 청바지에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어린 여자의 모습에 반원명은 코끝이 찡해났다.가족 중에 큰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으면 집안의 재산은 전부 날리게
고개를 돌린 반원명의 눈엔 전세린이 보였다.전세린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반원명 씨! 전 당신이 이렇게 쓰레기인 줄 몰랐어요. 앞뒤가 다르다니, 당신이 그 작은 현성에서 헤맬 때 누가 그 불구덩이에서 당신을 구했는지 잘 생각해 봐요! 그러고도 남자예요? 그러고도 남자냐고요!”전세린은 복도 맨 끝에 서 있은지 한참 되었다.그녀는 오늘 특별히 반원명을 찾아온 것이었다.반원명은 3일 동안이나 집에 오지 않았다.낮에는 수술대 앞에 서 있는 그를 전세린은 감히 방해할 수 없었다. 수술할 때 컨디션은 최상이어야 하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 어떤 실수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그래서 전세린은 도착한지 이미 한두 시간이 되었다. 반원명이 수술을 하고 있다는 말에 그녀는 그를 감히 방해하지 못하고 그저 혼자 복도 맨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미 참을 대로 참은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오른 채로 반원명에게 물었다. 왜 그동안 집에 들르지 않았느냐고?그녀에 대한 관심은 결혼 초기보다 점점 사라졌다.그녀는 혼자 집에 있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더 이상 그녀의 발을 씻겨주고 마사지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남편은 의사이기에 손놀림이 능숙했다. 혈 자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마사지는 그 어느 고급 마사지사보다 더 시원했다.그의 마사지를 받고 밤에 그가 해주는 팔베개를 베고 자면 그녀는 푹 잘 수 있었다.꿈조차 꾸지 않았다.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는 집에 오지 않았다.언제부터였던지도 가물가물해졌다.아마 병원에서 야근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고 할 때부터였던 것 같다.그리고 병원에 긴급한 수술이 있다며 갑자기 그를 불렀고,그 뒤에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밖에 집에 오지 않았다.그러다 그는 3, 4일, 심지어는 일주일 동안이나 집에 오지 않았다.그에게 있어 집은 어느새 모텔처럼 변했다.전세린은 홀로 그렇게 큰 집에서 지냈다. 반원명이 없을 때면 그녀는 외로웠고 무서웠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한 감정이 밀려왔다.전세린은 진작에 이런 걱정을 했
여자 환자를 대할 때도 그는 진지하게 5분도 안 돼서 진단을 내렸다. 그는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별다른 이유는 없었다.그저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가 많았을 뿐. 하지만 전세린은 단념하지 않았다. 반원명을 따라다니며 밖에서 그를 미행했다. 마치 전세린의 삶의 일부인 것처럼 매일 하는 일 없이 자기 남편을 미행하기만 했다. 미행하는 것이 그녀가 하는 가장 큰 일이었다.아마 딴마음은 진짜 없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녀의 미행은 헛되지 않았다.그녀는 마침내 초라한 옷차림의 여자가 자기 남편에게 안기는 모습을 목격했다. 만약 전세린의 손에 황산이 쥐어져 있었다면 얼굴에 퍼부었으리라.그래서 그녀는 복도 끝에서 욕을 하며 눈을 부릅뜨고서 반원명을 향해 달려왔다.“이 뻔뻔한 년아! 감히 내 남편을 건드리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니? 너 오늘 나한테 죽었어! 쓰레기 같은 년이 아내가 있는 남자를 꼬셔? 오늘 네 입을 갈기갈기 찢어줄게! 네 얼굴을 망가뜨릴 거야!”전세린은 암사자처럼 달려들었다.그녀의 모습은 시장에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사람들과 다투고 있는 막돼먹은 여자와 다를 바 없었다.몇 년 후 민정아가 막돼먹은 여자가 된 모습을 보아도, 구 씨 집안사람들이 그녀를 막돼먹었다고 손가락질해도 반원명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왜냐하면 그는 이미 민정아보다 더 심한 모습을 본 적이 있기에.전세린이 막 달려들려는 찰나, 반원명은 품에 있던 아가씨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얼른 가세요! 여긴 당신이랑 아무 상관이 없어요!”하지만 아가씨는 오히려 고집을 부렸다.그녀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안 갈래요!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반원명이 침묵에 잠겼다.“......”그때, 이미 전세린이 달려들었고 그녀는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여자애의 얼굴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다 반원명이 그녀를 안았다.“세린 씨, 세린 씨 침착해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이 아가씨는 불쌍한 사람이에요. 아버지는 방금 겨우 목숨을
전세린은 그 말에 멍해지고 말았다.이어 그녀는 화가 가득 치밀어 오른 채로 여자에게 물었다.“우리 집안사람들이 원명 씨를 사람으로 대했는지 안 대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원명 씨는 내 남편이야, 그러니까 난 당연히 원명 씨에게 잘해주지. 불륜녀인 주제에 어디 함부로 떠들어! 당신이 뭔데! 오늘 내가 당신 그 추잡한 얼굴을 가만두나 두고 봐! 당신 얼굴을 갈기갈기 찢은 뒤에 벌거벗게 하고 당신 그곳을 망가뜨려 줄게! 앞으로 남자들을 어떻게 꼬시고 다닐지 궁금하네!”여자가 막돼먹은 여자로 변하는 건 성도에서 제일 유명한 사립병원 원장의 딸이라도, 그 병원에서 가장 젊고 유능한 의사의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다.평소에 오만하기만 하던 전세린이 그 여자에게 욕을 퍼부을 때 몸에 있던 막돼먹은 기세가 완전히 드러났다.여자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했다.반원명도 어쩔 줄 몰라 했다.하지만 그 여자는 전세린에게 천한 불륜녀라는 말을 듣고도 용감하기 그지없었다.그녀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전세린을 마주했다. 그녀와 한바탕 싸울 기세였다.“사모님!”여자는 겁 없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전 당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사모님이라고 부른 겁니다. 당신이 반 선생님의 부인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죠? 근데 보세요,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의사의 부인으로서 의사가 얼마나 높은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세요? 선생님께서 수술을 한 번씩 하고 나면 힘들 때 손을 떨기도 한다는 건 알고 계시나요? 한번은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나 한 번에 몇십 명의 환자가 들어와 반 선생님이 3일 동안 밤낮없이 고생한 건 아세요? 아내인 당신은 뭘 하고 있었어요? 병원에 와서 반 선생님에게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선생님에게 집에 와서 밥을 안 해준다고 하더군요! 옷을 씻어주지 않는다고! 심지어 뭐랬더라? 발톱이 길었는데 선생님이 집에 들어가지 않아 발톱을 잘라 줄 사람도 없다고 그러던데요! 사모님! 반 선생님은 수술 의사예요! 이 병원 최고의 수술 의사라고요! 개처럼 지
전세린은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다, 불륜 현장을 잡으려고 했던 건데.죄를 물으려고 했던 건데 이젠 부인인 그녀가 도마에 오른 셈이었다.사람들은 그녀를 손가락질했다.“그러게, 말이에요, 비록 전 씨 집안에서 반 선생에게 기회를 줬다 하지만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반 선생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부잣집 아가씨가 사람을 다 망쳐놓네!”“반 선생님, 사모님과 이혼해요! 제 딸을 선생님에게 시집보내겠어요!”“반 선생님, 뭐가 무서워서 그러세요, 선생님 실력이면 어딜 가던지 잘 될 텐데, 사모님과 살면서 울분을 참을 필요가 있나요!”전세린은 침묵에 잠겼다.“......”그녀는 놀라서 주위 사람들을 살폈다.그러고는 두려움에 가득한 눈빛으로 반원명을 바라보았다.반원명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전세린에게 엄청 화가 났다. 전세린이 소란을 피웠기에.하지만 전세린이 놀라는 모습에 반원명은 마음이 약해졌다.아내가 그녀에게 이 모든 걸 준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버릴 수 없었다.그가 전세린에게 해준 것들은 모두 자발적이었다. 기꺼이 해주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세린이 비난을 받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반원명은 전세린을 품에 안고 꿋꿋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해요, 전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가씨, 아가씨는 호의로 그런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아내를 대신해 사과할게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요, 꼭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말을 마친 반원명은 미안함을 표시하며 산삼을 가져다준 아가씨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러고는 전세린을 끌어안고 자리를 떴다.그 뒤로 아가씨가 울며 소리를 지른다.“반 선생님, 선생님은 좋은 분이세요! 좋은 사람에게는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저도 교훈을 얻어 스스로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여자가 될게요! 꼭 열심히 공부하겠어요, 반 선생님!”반원명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는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
남자아이를 본 반원명은 딱히 좋거나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사실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있었다.그는 천성적으로 아이를 좋아했기에.하지만 반원명은 아내가 입양하려는 아이가 6살이나 된 아이일 줄은 도저히 생각지 못했다. 아이의 나이를 싫다기보단 6살 된 아이가 새로운 가정의 일원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게다가 아기였을 때부터 직접 키운 경험도 부족했으니.보들보들한 아기의 피부, 똥오줌을 누면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하고, 분유를 타서 먹이고 트림을 시키는 즐거움은 이제 느낄 수 없었다.반원명은 바쁜 와중에도 종종 병원에 있는 산부인과에 아이들을 보러 가곤 했었다.특히 간호사가 태어난 지 2, 3일밖에 안 된 아기를 목욕시킬 때면 포동포동한 아기들의 모습에 반원명은 수술 의사로서 이뤄놓은 것들을 포기하고 전문적으로 아기를 목욕시키는 간호사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는 아이들이 똥오줌을 누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아기들의 변은 역하지 않았다.그는 아기들의 엉덩이를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과정을 즐겼다.그건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친자식이 아니면 어떤가?그에게 중요한 건 과정과 함께 생활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6살짜리 아이는 그런 경험을 주지 못한다.하지만 그것도 찰나의 일이었다. 반원명은 마음속의 아쉬움을 정리했다. 그는 아이의 적의를 모른 척하며 부드럽게 아이를 바라보았다.“이름이 뭔지 말해줄래? 우리에게 입양되기를 원하는 거 맞지?”남자아이는 눈을 치켜뜨더니 그를 무시했다.반원명은 침묵했다.“......”그는 몸을 돌려 전세린을 바라보았다.“세린 씨, 이 아이가 우리를...” 전세린은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원명 씨, 전 이 아이가 좋아요. 제가 몇 년 동안 아이를 찾다가 겨우 마음에 드는 아이가 생겼는데 그냥 입양해요. 네? 그리고 제가 게으른 것도 알고 있잖아요. 저는 금방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싫어해요, 너무 귀찮잖아요, 똥오줌도 치워야 하고. 이 아이는 6살이라 곧 1
부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을 돌았다. 그들은 미친 듯이 아이에게 옷과 각종 침구류를 사주었다.밥 먹을 시간이 되자, 그들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엄연한 표준적인 세 식구가 아닐 수가 없었다.반원명의 가슴속에는 갑자기 얼떨떨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얼떨떨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이제부터 그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이다.그는 다정하고 너그럽게 아이에게 반찬을 집어 주고, 다정하게 아이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줄곧 그를 적대시하는 듯했다.오히려 새로 만나게 된 엄마와 전혀 벽이 없어 보였다.그들은 빠르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친근한 모습에 반원명이 질투심을 느낄 정도였다.모자가 손을 잡으며 웃고 떠드는 모습에, 자기의 손에 들린 크고 작은 쇼핑백에 반원명은 괜스레 따뜻해지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그날 밤, 부부는 아이를 위해 새로운 집과 새로운 침대를 준비했다. 그렇게 집은 순식간에 인간미가 넘치게 되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아이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반원명이 전세린을 데리고 아이의 방을 나서려는 그때, 아이가 갑자기 전세린의 손을 잡았다.“엄마, 가지 마세요. 저한테… 이야기책 좀 읽어주면 안 돼요?” 6살짜리 아이는, 고작 이야기책 하나를 듣기 위해 눈물까지 그렁그렁했다.그 모습에, 반원명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려오기 시작했다.그도 이렇게 입양된 자식이었다.그도 무척이나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빨리 가정 속으로 스며들길 바랐다.전세린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반원명은 무척이나 다정한 모습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 아빠가 옆에 앉아서 책 읽어줄게. 자는 거까지 보고 나갈게, 응? 어떤 책이 듣고 싶은지 엄마 아빠한테 한번 말해볼래?”아이와 온 오후 함께 했던 그는, 아이가 자신과 조금이라도 익숙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경계심이 조금이라도 수그러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원명이 예상치 못한 일이 일
반원명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불청객을 바라보았다.그는 눈썰미가 좋았다.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가 모르는 남자였다.오늘 이 남자를 처음 봤는데? 이 남자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여긴 어떻게 찾아왔지? 꽁으로 아빠가 됐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이게 다 무슨 뜻이지?설마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이 아이의 아버지인가?반원명은 고개를 숙여 아이를 쳐다보았다.그의 행동에 아이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이는 있는 힘껏 발밑에 있는 눈을 밟고 있었다.비록 반원명은 아이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아이의 행동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지금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그의 몸을 휩쓸었다.반원명은 경계적인 눈빛으로 맞은편에 서 있는 초라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당신, 대체 누구야?”“내가 누구냐고?” 남자가 냉소했다.그의 말투는 무척이나 심드렁했다. “여자 등이나 처먹는 새끼! 줏대도 없고, 몸에서 시큼한 냄새나 풍기는 개 천용 같은 새끼! 내가 누군지 물었나? 그건 당신 와이프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반원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전세린이 갑자기 뒤에서 쫓아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아이의 코트가 들려져 있었다.눈이 와서인지, 기온은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행여나 아이가 추위라도 탈까 걱정이 되었던 그녀는 아이에게 옷을 가져다주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손에 옷을 든 채로 반원명과 아이 앞에 다가왔다. 이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전세린은 그대로 넋이 나가고 말았다.그 모습에 남자는 냉소를 뿜어냈다. “잘 지내시나? 전 아가씨! 아니, 이젠 반 씨 집안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전세린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차가움 속에 절망감도 섞여 있었다. “나온 거야?”남자는 차갑고 악랄한 눈빛으로 전세린을 쳐다보았다. “맞아! 나 살아서 나왔어! 기분이 어때?”전세린은 갑자기 폭발적이 고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