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산과 헤어진 심설은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심설은 길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오빠와 엄마를 보았다.버스에서 내리는 심설을 보자 멀리 서 있던 지영명이 재빨리 심설에게로 달려갔다.유은설이 뒤에서 소리 질렀다. “영명아, 때리지 마, 동생 때리지 마...”“엄마! 상관하지 마! 이런 짓을 했는데도 안 때리면 더 과분한 일도 할 거야! 집에서 엄마랑 같이 안 있어 주고 지금까지 놀다 와? 집에 어른들이 얼마나 걱정하는 지도 모르고, 내가 저 애 다리를 문질러 버려야지!”지영명은 그렇게 소리치며 심설 앞으로 다가가 발로 차주려했다.“오빠! 봐봐!” 심설은 오빠를 피하지 않고 주머니 속에서 황금빛 치킨을 꺼내 오빠에게 보여줬다.지영명 “...”“오빠, 주머니에 더 있어. 오빠랑 엄마, 오늘 실컷 먹을 수 있어. 치킨부터 먼저 먹고. 배부르면 그때 나 혼내 주면 안될까?” 심설이 물었다.지영명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가자! 오빠랑 집에 가자!” 지영명이 말했다.“응!” 심설은 웃으며 지영명 뒤를 따라갔다.심설이 추워서 오돌오돌 떠든 것을 본 지영명은 자기의 외투를 벗어 동생을 감싸주었다. 세 가족은 서로를 부축하며 셋집으로 향했다.그날 저녁, 맛있게 치킨을 먹는 오빠와 엄마를 보며 심설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왠지는 모르겠는데. 심지산이 굳이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찾아왔어. 돈 안 내고 먹는 건데 안 먹을 리 없잖아. 그래서 따라가서 밥 먹고 이제 돌아왔어.” 심설이 오빠랑 엄마한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했다.그 외에 다른 말은 하지는 않았다.말을 하면 오빠랑 엄마는 무조건 아버지 집에 못 가게 할 거니까.학교 끝나고 조금만 놀다 오는 것 뿐이다.매일 아버지 집에 놀러만 가는 건데 엄마 치료비에 오빠 학비까지 해결이 되고 예쁜 옷까지 입을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가.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그날 저녁, 심설은 아주 예쁜 꿈을 꾸었다.꿈에서 깨어난 심설은 온종일 정신이 다른 데 팔려있었고 학교가
심설은 심신해가 이렇게 빨리 놀이를 시작할지 몰랐다.어제 심설이 강아지처럼 짖을 줄 안다고 말했다. 심신해는 오늘 바로 심설한테 강아지가 되어달라고 시켰다.강렬한 굴욕감에 심설은 눈물이 핑 돌았다.심설도 알고 있었다. 이 집에 남기 위해 어제 별의별 굴욕스러운 말을 다 해버렸다. 아무리 듣기 싫은 말이어도 자기가 한 말이니 마음이 괴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개 취급을 당하니 심설은 마음이 칼에 베인 듯 아팠다.둘 다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는데 동생과의 차이는 왜 이리도 큰 걸까?심설은 새 옷 한 벌도 없이 자랐고 맥도날드를 한 번 먹어보지 못했다. 심지어 개 흉내를 내야 남이 버린 옷을 주워 입을 수 있었다.반면 심신해는 어떤가?심설은 심신해의 눈을 바라봤다. 심신해의 눈빛은 무엇보다 순결하고 밝고 천진난만했다. 눈빛에는 아이의 천진함이 가득했다. 절대 심성이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심신해는 이기적인 아이였을 뿐이다. “왜 쳐다봐? 강아지처럼 짖을 수 있다며? 언니, 나 이제 언니 거지 취급 안 할게. 엄마가 말해줬어. 내가 입었던 옷 입고 싶은 거라며? 그래, 다 줄게.” 심신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심설을 바라봤다.“난 언니가 강아지처럼 짖는 게 보고 싶을 뿐이야.”“보고 싶어, 사람이 어떻게 강아지가 되는 건지. 사람이 강아지 흉내 내는 게 예쁜지, 아니면 강아지가 강아지인 게 더 예쁜건지. 언니, 강아지가 되면 강아지 밥도 먹는 거야?”심신해는 나쁜 마음을 먹고 묻는 게 아니였다. 하지만 끝이 없는 물음에 심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심신해는 전혀 심설을 골탕 먹이려는 마음이 없다.그냥 궁금한 거였다.그렇지만 심설은 마음이 더 상했다.심설은 씁쓸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비굴하게 말했다. “미안한데 공주님. 나...난 사람이어서, 그래서...개 밥은 안 먹어.”“아, 그럼 재미 없어지는데.” 심신해는 갑자기 시무룩해졌다.심신해는 울적해졌다.심신해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렇다면 언니는 성실한 아이가 아니잖아.
심설은 심지산의 모든 것을 훔치고 싶었다.바닥에 엎드핀 심설은 티베탄 마스티브가 입었던 옷을 입고 목줄을 찼다. 그 모습을 본 심신해는 무척 기뻐했다.공주님같은 심신해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심설을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집에는 심신해의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심신해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한 시간 정도 놀고 나니 지쳐버렸다.심신해는 발로 심설을 차며 말했다. “강아지야, 너도 좀 쉬어. 나는 아주 착한 주인이거든. 나 이제 밥 먹으러 갈 건데 너도 뭐 좀 먹을래?”그 말을 들은 심설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심설이 고개를 저으며 허리를 굽혀 말했다. “공주님, 여기 오기 전에 먹어서 배는 안 고파. 나...새 옷 입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나 주려고 찾아둔 옷, 그 옷들 어디에 뒀는지 알려줄래?”심설은 머뭇거리다 웃으며 말했다. “공주님, 너 밥 먹을 때 네가 준 옷 입어봐도 될까?”심설은 심신해가 "윗층 내 방에 있어”라고 알려줄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심설은 생각지 못한 답을 들었다. “엄마가 옷 치워서 다 마당 밖에 창고 옆에 갔다 놓았어. 가져가.” 마당 밖, 창고 옆이라고?거기는 분명 잡동사니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다.심설은 적잖게 실망했다.찾아보려 했지만 집안에는 귀중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 오늘은 틀려먹었다. 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니 괜찮았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오기로 결심했다.심설은 바로 기대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나 옷 보러 가도 되지?”심신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빨리 가 봐!”심설은 재빨리 집에서 나와 잡화실로 달려갔다. 안에는 큰 옷 보따리가 놓여있었다. 높이가 족히 사람 키 절반은 되어 보였다.심설은 보따리를 풀고 옷을 골라보았다. 보따리 속에는 온통 좋은 옷이었다.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열몇 살 먹은 아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물건들이었다. 예쁜 게 싫은 여자아이가 어디에 있는가?심설은 구석에 앉아 기분 좋게 옷을 하
심설은 갑작스러운 사랑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심설은 상상조차 못 했다는 얼굴로 심지산에게 말했다. “아빠, 뭐라고 하셨어요?”심지산이 말했다. “집에 가지 말로 오늘은 아빠 집에 있으라고. 여기, 네 집이기도 하잖아. 아빠가 가정부 아줌마한테 네 방 치워달라고 할게. 어때?”심설 “...”심설은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줄지 생각지도 못했다.심설은 오랫동안 아버지를 멀리 해 왔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거의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심설은 눈물을 쏟았다. 심설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아빠, 저도 아빠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그 말을 들은 심지산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빠도 알아...”심설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빠. 그런데 오늘은 여기 남을 수 없어요. 집에 가서 엄마 돌봐야 해요. 엄마 머리가 좀 아파서 내가 돌봐줘야해요. 아빠, 홍원아줌마, 새 옷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오늘은 먼저 가볼게요. 내일 일찍 와서 신해 동생이랑 놀아줄게요.”사실 도둑질을 하려고 일찍 오려는 것이었다.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조금 좋아졌지만, 도둑질은 포기하지 않았다.심설은 설사 아버지가 자기를 받아준다고 해도 절대 엄마랑 오빠까지 먹여 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도둑질을 포기할 수 없었다.심설은 홍원이 찾아준, 심신해가 버린 옷들을 짊어지고 도망치듯 심지산의 집에서 나왔다. 작은 몸으로 큰 옷 보따리를 멘 심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뒤뚱거렸다.“불쌍해요?” 홍원이 물었다.심지산은 코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심설이랑 아무 관계 없으니까 아무렇지 않겠지! 하지만 심설, 내 딸이야! 그리고 그 노인네가 맘에 들어 하는 건 신해지 설이가 아니라고!”홍원은 심지산의 목을 조였다. 홍원의 손가락이 심지산의 살을 파고들었다. “심지산, 똑바로 들어! 난 내 청춘을 전부 너한테 바쳤어! 너한테 바라는 것도 얻은 것도 없어! 나, 신해밖에 없어! 난 딸 하나가 전부라고! 신해를 다치게 하는 사람은
심지산이 홍원의 뒤를 따랐다.집에는 심신해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돌아온 걸 보지 못한 심신해는 “아줌마, 여기 있는 가장 큰 뼈는 안 먹고 아빠 줄래요. 아빠가 뼈다귀 제일 좋아해요. 이건 아빠 남겨줄래요.”가정부가 바로 말했다. “아유, 우리 공주님. 그래요.”“그리고 우리 엄마 먹을 죽 다 만들었어요? 우리 엄마 예쁘게 만들어 주는 보약 넣어서요. 우리 엄마 매일 죽 먹는데 잘 만들어놨죠?” 심신해가 웃으며 물었다.“네, 네, 공주님.”“헤헷,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제일 잘 챙겨요.”현관에서 심신해의 말을 들은 심지산과 홍원은 서로를 바라봤다.둘은 모두 눈물을 머금었다.그날 저녁 심지산은 저녁 내내 깊은 생각에 잠겼다.힘겹게 가꿔온 사업이다. 이번 경제위기 때문에 다 망칠 수는 없다. 김씨 노인네의 요구가 너무 과했지만 그렇다고 아내와 같이 가꿔온 사업을 이대로 버릴 수는 없었다.소중한 딸은 더 잃을 수 없었다.그럼 포기할 수 있는 건 심설뿐이다.어차피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니다. 그 노인네가 말한 것처럼, 딱 하루 밤이다.그래, 딱 한 밤.괜찮다. 나중에 심설에게 집을 사주면서 보상하면 된다. 다 크면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면 된다.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심지산은 마음이 편해졌다.다음 날.심지산 홍원 부부는 예전처럼 회사로 나갔다. 그날은 심지산 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였다. 하지만 뭐라도 훔치고 싶은 마음에 심신해가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날인지 알면서도 심설은 심지산 집으로 찾아갔다.가정부는 심설이 귀찮다는 얼굴로 말했다. “왜 왔어? 우리 공주님 오늘은 집에 없어. 피아노 치러 갔는데 3시간은 걸려. 오늘은 그만 돌아가.”“아줌마, 우리 엄마가 만든 전이에요, 금방 만든 건데 맛 좀 보시라고...”가정부 “...”심설이 비굴하게 말했다. “아줌마, 사실은 내가 심지산 딸이에요. 홍원 아줌마도 알아요. 신해만 모르거든요. 우리 같이 동생한테는 비밀로 해요,
심설은 놀라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뒤돌아선 심설은 심신해와 눈빛이 마주쳤다. 긴장함에 심설은 이를 덜덜 떨었다. “너...너 오늘 피아노 치는 날이잖아? 벌써 돌아왔어?”심신해는 여전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도둑놈! 나쁜 놈! 왜 우리 집에 왔는지 이제야 알겠어! 너 이 거지야, 너 도둑놈이지! 오래전부터 우리 집에 도둑질하러 들어오려고 했지!우리 엄마 아빠한테, 그리고 나한테 빌면서까지 우리 집에 남고 싶었던 거지!우리 엄마 아빠처럼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나도 너 그렇게 잘 해줬는데!도둑놈! 감히 우리 엄마 물건을 훔쳐!”심신해와 심설은 키가 비슷했고 몸집은 심신해가 조금 더 컸다. 심신해는 전혀 심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기 집이니 더욱 심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심신해는 소리를 치며 심설을 때렸다.“도둑놈, 절도범, 거지! 우리 다 너한테 그렇게 잘 해줬는데! 넌 우리 엄마 물건이나 훔치고! 죽일 거야! 널 때려죽일 거야!이 거지야! 더러운 자식아! 네 양심은 밖에 떠도는 강아지만도 못하지!” 심신해는 잔뜩 화가 났다.하지만 아직 어리다 보니 싸움을 잘하지 못했다. 심신해는 어른들의 과분한 관심과 보호를 받으며 자란 아이다. 싸움을 모르는 게 당연한 심신해는 정신없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심설은 한대도 맞지 않고 피할 수 있었다. 심설은 심신해보다 훨씬 날렵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로 나와 심설은 심신해보다 훨씬 많은 곤난에 부딪히며 살아왔다.그래서 심신해는 화가 잔뜩 났지만 심설을 한대도 제대로 때리지 못했다.하지만 심신해가 퍼붓는 욕을 들으니 심설도 화가 났다.너무 두려워서 더 화가 났다.너무 겁이 났다. 가장 두려운 건 오빠가 도둑질했다는 걸 아는 것이었다.오빠가 알면 무조건 심설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다.오빠 생각에 심설은 바로 목걸이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심신해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심신해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심신해는 바로 반항할 힘을 잃어버렸다. 몸을 움크린채 바닥에 주저앉은 심신해가
심설은 무서워 오돌오돌 몸을 떨었다. 심설은 한참 동안 베란다에 숨어 마음을 진정시켰다.심설은 도저히 아래층으로 내려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한참이 지난 후, 집에 구급차가 도착했고 심지산과 홍원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아이가 하나 더 있다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다들 급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심설은 혼자 허둥지둥 심지산 집을 나선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방금 셋집으로 돌아온 심설은 울음소리를 들었다.“심지산, 짐승도 못 한 자식! 천벌 받아야 마땅한 자식아! 왜 아직 살아서 남을 못살게 구는 거야! 설이 하루라도 키운 적 있어? 하루라도 키워봤냐고! 이제 와서 아이 양육권을 달라고? 죽어버려!”“아니, 나 멀쩡하거든. 나 정신병 안 걸렸어. 무슨 증명이 필요한데, 나 병 안 걸렸어, 나 멀쩡하다고. 나 나가서 일도 하고 내 자식 내가 먹여 살릴 수 있어. 아니야, 나 잡아가지 마, 그만 두라고...”엄마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심설이 달려가려 할 때 초라한 셋집에서 밖으로 뛰쳐나오는 엄마를 봤다. 머리를 풀어해친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옆집 사람들은 다 놀라서 문을 꼭 잠갔다.하지만 갑자기 뛰쳐나오는 엄마는 미처 피하지 못한 할머니랑 부딪쳤다. 할머니는 엄마랑 부딪치자마자 바로 다리가 부러졌다.엄마는 놀라서 바로 할머니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정신병자 아닙니다. 사람 해치지 않습니다. 저 사람 해치지 않습니다. 일부러 다치게 한 거 아닙니다. 전...제 딸 뺏길까 봐 무서워서, 제 딸 돌려달라고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심설 “...”심설은 아버지가 자길 데려가려고 한다는 걸 생각지 못했다.자기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는 건 알고있었지만 엄마한테서 양육권을 빼앗아 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아버지가 갑자기 변한 이유가 뭘까?심설은 도저히 원인이 뭔지 알 수 없었다.심설은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엄마랑 같이 살고 싶다는 것만은 명확했다.아버지보다 엄마가 불쌍하니까
지영명은 어리둥절해서 심설을 바라봤다. “너, 이게 다 뭐야?”심설은 가방을 풀며 말했다. “오빠, 봐봐.”가방 안에는 번쩍이는 금은보화가 가득했다.지영명은 문득 뭔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설아! 오빠한테 말해봐, 너 밖에서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심설은 웃으며 말했다. “오빠, 내가 나쁜 일을 해봤자 무슨 일을 저지를 수 있겠어? 내 나이에 금은방이라도 털었겠어?”지영명은 심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동생은 아직 어린애였다.지영명이 다소 평온해진 말투로 다시 물었다. “그럼 너 어디서 이런 걸 가져온 거야? 이거 다 진짜야? 장난감이지?”심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내 아빠가...그러니까 심지산이 준 거야. 심지산이...”심설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떨고 있는 엄마를 봤다. “영명아, 영명아, 그 죽일 놈이 네 동생 뺏어가지 못하게, 제발 뺏어가지 못하게 막아. 엄마 말 들어. 엄마 안 미쳤어.엄마 정신병자 아니라고, 아들, 엄마 믿지?그 남자가 엄마랑 이혼할 때, 네 동생 아직 분유 먹는 아기였어. 엄마가 네 동생 분유 사먹여야한다고 양육비 조금만 더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는데, 아니면 아이를 데려가서 키워도 된다고 했는데, 그래야 네 동생 고생 덜 하니까...그런데 그 남자 뭐라고 했는지 알아?싫대!심설 데려가면 그 여자랑 둘이 사는 데 영향받는다고 네 동생이 싫대. 그 여자랑 자기들 자식 낳고 살 텐데 설이 데려가면 말이 안 된다고.”유은설은 울먹이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아이랑 헤어지고. 그렇게 어린 핏덩이 같은 자식을 버려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무조건 뭔 수작이 있는 거야.”“그리고 영명아, 엄마가 며칠 전에 신문에서 봤는데 심지산 그 죽일 놈의 회사가 상장하려다 실패했대. 그래서 이런저런 빚을 많이 져 회사가 당장 파산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이젠 돈도 빠듯할텐데 왜 지금 설이를 데려가겠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