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민은 멈칫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서시언에게 물었다.“자네 나를 알아? 우리 가게에 온 적 있겠구먼. 손님이 내 예비 사위가 될 줄은 몰랐는데. 젊은 사람이 사람 보는 눈은 있네. 내 딸이지만 이렇게 착하고 예쁜 아이는 드물지. 게다가 똑똑하고 명문대 졸업생에 남성 1위 대기업에서 근무하니 추종자들도 정말 많았어.”“아버님, 저는 서시언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서씨 그룹 대표를 맡고 있고요. 서씨 그룹은 들어보셨죠?”서시언은 담담한 표정으로 최홍민을 바라보며 물었다.최홍민의 손이 순간 흠칫하고 떨리더니 들고 있던 채소바구니를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는 당황한 눈빛으로 서시언을 바라보다가 다시 표정을 수습하고 최가희에게 말했다.“너는… 부자 남자친구를 사귀었으면 아빠한테 가장 먼저 얘기해야지. 너무 유명 기업이라 놀랐잖아.”최가희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아빠! 시언 오빠가 대기업 대표이긴 하지만 저에게는 그냥 사랑하는 남자친구일 뿐이라고요. 아빠한테는 미래의 사위죠. 오빠는 잘나간다고 텃세 부리거나 다른 사람 무시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최홍민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그래. 우리 딸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말을 마친 그는 채소바구니를 다시 집어들며 이마에 난 식은땀을 훔쳤다. 서시언은 그런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최가희가 이렇게 기뻐하고 최홍민도 숨기려는 의도가 명확해서 일단 말하지 않기로 했다.이제 갓 20대 초반인 최가희는 그때 사건과 관련도 없었고 그녀의 아버지가 과거에 했던 잘못으로 그녀를 고통받게 할 수는 없었다.게다가 최홍민은 딸을 엄청 아끼는 것 같았다.이건 전에 본 장면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서시언은 말없이 최가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단독주택으로 된 최가희의 집은 꽤 깔끔했다. 집에는 차량도 두 대나 있었고 집에는 80세가 넘은 노인이 있었는데 최홍민의 어머니라고 했다.식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최가희의 할머니는 서시언에게서 시선을 떼지
서시언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그는 차갑게 최홍민을 쏘아보며 말했다.“일단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다시 얘기해요!”하지만 최홍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서 대표님을 따로 부른 건 정말 정중하게 사과하고 싶어서였어요. 난 이미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 일이 있은 뒤로 아주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크게 앓기도 했죠. 그 뒤로는 다시 도박에 손대지 않았어요.”“스스로 경각심을 가지려고 그때 새끼손가락을 스스로 잘랐죠.”말을 마친 최홍민은 새끼손가락이 없는 손을 서시언에게 내보였다.서시언은 힐끗 쳐다보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최홍민이 계속해서 말했다.“그 뒤로 정말 열심히 살았죠. 어머니 보살피고 어린 딸도 보살피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그 뒤로는 한 번도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어요.”“못 믿겠으면 전과기록을 조회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 정말 지킬 거 다 지키며 사는 소상공인이에요.”“아이가 생기고 알았어요. 과거에 제가 얼마나 망나니였는지. 그래서 모든 정력을 딸을 교육하는데 썼어요.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가희 정말 예쁘게 잘 컸잖아요.”“어릴 때 엄마를 잃은 가희를 봐서 제 과거는 가희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우리 불쌍한 가희는 어릴 때부터 엄마 사랑도 못 받고 불쌍하게 컸거든요. 우리 딸 잘 부탁해요. 가희한테만 잘해주시면 저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최홍민은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들먹이며 서시언에게 하소연했다.그러는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서시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어린 서시언에게 최홍민은 악몽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성인이 된 뒤에야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런데 이런 사람의 딸과 사랑을 시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어릴 때 최홍민이 최가희 생모를 학대하는 장면을 직접 봤었고 그건 최가희가 그에게 말했던 부분과는 많이 차이가 있었다.서시언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최홍민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그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저도 몰라요. 마땅한 거처도 없고 직장도 없었거든요. 일하기도 싫어하고 집에 같이 살 때도 놀다가 밤 늦게 들어오고는 했어요. 그런 엄마를 둔 가희가 불쌍하죠.”그 말을 들은 서시언은 F그룹 본사 건물을 배회하던 그 여인이 떠올랐다.얼굴도 창백하고 이목구비가 꽤 예쁜 여인이었지만 그렇다고 문란한 생활을 하는 여자 같지는 않았다.서시언은 그녀가 최가희의 어머니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그는 조심스럽게 최홍민에게 물었다.“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최홍민은 화들짝 놀라더니 그에게 물었다.“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가요?”많이 당혹스럽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서시언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최홍민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이건 숨길 일도 아닌 것 같아서 말인데요. 가희가 요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자꾸 온다고 많이 괴로워하고 있어요.”“그 망할 여자가! 그 여자 정말 나쁜 여자예요! 죽이고 싶은 마음도 든다니까요!”최홍민의 말에 서시언은 비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또 살인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그러자 최홍민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아, 아닙니다. 서 대표님, 그런 뜻이 아니라 그 여자가 그만큼 악질이라는 거예요. 어린 딸을 돌보지도 않고 도망간 주제에 다 큰 딸을 왜 찾는지 모르겠어요. 가희가 얼마나 힘들지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거잖아요?”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서시언에게 물었다.“이런 거로 법원에 고소는 안 되나요? 혈연관계가 있으면 아무리 그 여자가 엄마 노릇을 안 했어도 가희에게 부양 의무가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서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원칙적으로는 그렇죠.”최홍민은 갑자기 돌변하더니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젠장! 이 망할 여자가!”서시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오늘 제가 이 집에 방문한 건 가희 아버님이 궁금해서 만나뵙고 인사를 드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어머니 문제를 빨리 처리하고 싶어서예요. 어머니가 자꾸 연
“조금 걱정되는 문제라면 제가 그 여자보다 열살 이상 더 많다는 거였어요. 그래도 저는 정말 잘해주고 싶었어요.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아이가 생겼죠. 그때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했어요. 아이도 생겼으니 앞으로 잘 살 일만 남았다고요.”최홍민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분노한 표정으로 돌변했다.“그런데 그 여자가….”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온갖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이었다.최가희가 말한 것과 상당히 유사했다.서시언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죠?”“정말 굴욕적이었어요! 자존심이 상했죠!”최홍민은 한숨만 쉬더니 이를 갈며 서시언에게 물었다.“어떤 남자가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그 여자에게 있을 곳을 마련해 주고 빚도 탕감해 줬어요. 우리 가족은 정말 잘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결혼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아서 밖에서 바람을 피웠어요.”“둘이 더러운 짓을 하는 현장을 제가 잡았거든요! 그때 정말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저도 남자예요. 그런 여자를 용서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서시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최홍민이 아니라 세상 어떤 남자도 그런 상황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최홍민은 이를 갈며 계속해서 말했다.“그때 제가 조금 흥분했던 거 인정해요. 눈에 뵈는 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칼을 들고 그 남자에게 달려들었어요. 그 남자는 개처럼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더라고요. 그래도 그 놈을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자는 생각뿐이었어요.”“그렇게 칼을 드는데 그 여자가 제 앞에서 무릎을 꿇더라고요. 가희는 뒤에서 놀라서 울고 있었고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인데 제가 감옥에 가거나 죽으면 누가 우리 딸을 보살피겠어요?”“애는 엄마도 잃고 아빠도 잃게 되는 거죠. 딸을 보고 억지로 분노를 참았어요. 집으로 돌아와서 크게 앓았죠. 그때도 저를 보살펴 준 사람은 가희랑 어머니밖에 없었어요. 그 뒤로 가희 엄마는 다시
최홍민은 어색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혹시… 가희한테 들었어?”서시언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아니고… 아까 말씀하실 때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은 미성년자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혼인신고를 할 수 없죠.”“맞아. 그때 그것 때문에 혼인신고를 안 했어. 그래도 동거를 오래 하고 자식도 있으니 부부 맞잖아.”서시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이렇게 하시죠. 그래도 가희 엄마인데 다음에 또 연락이 오거나 가희를 찾으면 그분을 불러서 만남을 좀 가지는 게 어떨까요? 제가 그분이랑 대화 좀 해볼게요.”옆에서 듣고 있던 최가희가 말했다.“시언 오빠,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네가 그랬잖아. 난 이제 이 집 미래의 사위라고. 그러니까 책임을 져야지.”그의 말이 끝나자 가족들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최가희는 기분이 좋았는지 아빠와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서시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하지만 서시언은 고민이 많았다.최홍민이 과거 아내에게 가혹하게 대한 건 사실이었다.그리고 F그룹 본사 근처에서 봤던 여인은 최홍민이 말한 것처럼 게으르고 얼굴을 팔아 돈을 버는 여자와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였다.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지 최가희의 생모를 만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단정지을 수 없었다.서시언은 그저 여자친구의 골칫거리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일에 임했다.그리고 나중에 상황이 전혀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최홍민은 잔뜩 들떠서 잠을 설쳤다.최가희도 잠들기 전에 이런 상상을 했다. 앞으로 다시 그 여자를 만나면 남자친구한테 부탁해서 혼내 주는 달콤한 상상!최가희는 그 여자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러면 평생 그 여자를 만날 일도 없으니.하지만 최가희의 그런 소원은 3일 지나지 않아 무참히 깨졌다.서시언이 집으로 돌아간 뒤로 두 사람 사이는 더 가까워졌다. 최가희는 틈만 나면 알게 모르게 서시언을 유혹했다.하지만 서시언은 자기 통제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그는
최가희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기회가 되면 소개시켜 드릴게요.”“성공한 아저씨여야 해!”최가희는 웃으며 농담삼아 말했다.“언니보다 스무 살 정도 많은 아저씨는 어때요?”“괜찮지! 난 성숙한 남자가 오히려 좋아. 서 대표랑 가희 씨 나이차이가 띠동갑이었나? 스무 살 정도는 극복할 수 있어.”“차라리 아빠를 찾는 게 낫겠네요.”동료들의 농담이 좀 짖꿎었지만 최가희를 향한 부러움은 진심이었다.서시언을 아저씨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 나이로 아저씨라고 부르기 민망할 나이였다.게다가 잘생기고 돈도 많으니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이었다.최가희도 속으로 큰 만족감을 느꼈다. 동료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도 기분이 좋았다.어차피 이 회사에서 오래 근무할 것도 아니었다.그녀는 서시언의 팔을 꽉 붙잡고 애교를 부렸다.“오빠, 전세계에 오빠가 내 남자친구라고 선포하고 싶어요. 회사 여자들이 오빠를 곁눈질로 보는 것도 기분 나빠요. 우리 관계를 더 멀리 알려야 그 여자들이 포기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 나랑 같이 조금만 더 서 있어요.”서시언은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어차피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F그룹 본사에서 그와 부소경이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여직원들이 한바탕 최가희에게 부러움을 표현하고 각자 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러 밖으로 나간 뒤에도 최가희는 들뜬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시언 오빠, 오늘은 뭐 먹으러 가요?”최가희는 서시언의 팔에 몸을 완전히 기댄 채 물었다.“너 먹고 싶은 거 먹자. 난 상관없어.”서시언은 별로 가리는 게 없었다.“오빠는 뭐 먹고 싶어요? 오늘 내 체면도 살려줬으니까 오늘은 오빠 먹고 싶은 거 먹어요! 내가 살게요!”서시언은 웃으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네가 밥을 사? 그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그러자 최가희는 당당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내가 사는 건데 카드는 오빠 거로 긁어요!”서시언은 피식 웃음을 터
등 뒤에서 난 소리를 들은 최가희는 놀라서 어깨를 움찔했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상대는 다름 아닌 며칠 전에 서시언이 만났던 여인이었다.신유리가 삼촌한테 어울리는 여자라고 소개시켜 준다고 난리를 쳤던 그 여자.여자는 그때 입었던 옷을 오늘도 입고 있었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왜 그러시죠?”서시언은 답을 알면서도 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여자는 서시언에게 눈길도 안 주고 최가희를 바라보며 말했다.“가희야, 저 사람 너랑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늙은 남자라고!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아. 좀 정상적인 남자 만날 수 없어?”그 순간 최가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를 악물고 여자에게 악담을 퍼부었다.“당신… 왜 또 왔어! 저리 꺼지라고! 당신만 보면 역겨워! 나가서 뒤져 버려!”최가희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그녀는 이미지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엄마를 상대로 악담을 퍼부었다. 평소에 성유미가 전화를 자꾸 해대는 건 그렇다고 해도 회사까지 찾아온 건 너무 괘씸하고 용서할 수 없었다.딸이 자신을 내쫓는데도 성유미는 화를 내기는커녕 조바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가희야, 엄마가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잖아. 나한테는 자식이 너밖에 없는데 목숨 걸어서라도 널 지킬 사람이야. 너한테 해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고.”“엄마가 저지른 실수 너까지 저지르면 안 돼. 엄마 꼴을 봐? 기구하지 않아? 너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야. 저 남자는 서른이 넘었다고. 넌 두뇌로는 저 남자 못 이겨! 결국 사기를 당할 거라고!”여인의 말투에서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서시언은 이렇게까지 말하는 한 엄마를 비난할 수 없었다.이 여자가 자신을 어린 여자애나 데리고 노는 파렴치한 남자로 몰아가도 그녀가 밉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이 여자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오히려 딸을 향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졌다. 이 엄마는 딸이 나쁜 길을 걸을까 봐 걱정하고 초조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가 신세희가 유리를 얼마
최가희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서시언을 바라보며 물었다.“시언 오빠도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저 여자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저 여자는 단 한 번도 나한테 엄마 사랑을 준 적이 없어요!”“낳기만 하고 그냥 방치했다고요! 그 여자는 가사일도 전부 아빠에게 맡겼어요. 엄마가 있었지만 사실 난 그냥 엄마 없는 아이였어요. 아빠 혼자 힘들게 나를 양육했다고요. 저 여자는 인간도 아니에요!”서시언은 이러지도 못하고 정말 난감했다.“이 망할 여자야! 당장 안 꺼져? 맞아 죽고 싶어?”최가희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성유미를 노려보았다.“가희야, 네가 스스로 함정에 뛰어드는 건 두고볼 수 없어….”“꺼져!”“당신이 꺼져! 당장 꺼져! 내 아빠를 대신해서 당신을 신고할 거야! 당장 안 꺼져?”갑자기 작은 아이가 뛰쳐나오더니 최가희를 힘껏 밀쳤다.최가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고 아이는 도끼눈을 뜨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신유리는 죽일 듯이 최가희를 쏘아보고 있었다.서시언마저 당황해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최가희는 신유리의 매서운 눈빛이 F그룹 최고 권위자의 눈빛과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다.정말 매서운 눈빛이었다.최가희는 겁에 질려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가 서시언을 애처롭게 한번 바라보고 떨떠름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유… 유리야, 너… 너 왜 그래? 언니가 뭐 잘못했어? 언니가 사과할게 화 풀어.”아이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서시언에게 고개를 돌렸다.서시언은 곧장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물었다.“유리 너 왜 혼자 왔어? 누가 데려다줬는데? 혼자 다니는 거 위험해!”“상관하지 마!”신유리는 씩씩거리며 쏘아붙였다.“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서시언은 버럭 화를 냈다.“서 대표님, 저예요. 유치원 끝나서 이쪽으로 데려왔어요.”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선우였다.엄선우는 서시언에게 다가가며 해명했다.“최근 사모님이 임신 중인데 조금 예민하셔서 요즘은 유리 픽업을 거의 안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