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빠져나온 부소경은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던 그는 빠르게 신세희를 따라잡았다. 하지만 그는 신세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부소경은 이성적인 사람이었다.그는 본인이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믿는다.신세희는 임서아를 밀어버렸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녀는 임서아 앞에서 대놓고 자신의 음모를 까발리기도 했고, 임씨 집안을 없애버리겠다고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기도 했다.신세희도 부소경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심지어 부소경의 차를 스쳐 지나갈 때도 고개 한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오히려 근처에 서 있던 엄선우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그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왠지 신세희에게 차에 타라고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엄선우는 ‘아가씨’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뻔했다. 하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차에 올라타는 부소경의 모습에 그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엄선우도 하숙민과 같은 마음이었다, 신세희가 부소경의 아내가 되길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부소경의 개인 비서였다. 아무리 신세희가 마음에 든다고 해도 부소경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신세희는 멀리 사라졌고, 엄선우도 차를 몰아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부소경의 깊은 고뇌를 알았는지, 엄선우는 가는 길 내내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할 얘기 있으면 그냥 해!” 부소경이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큰 사모님 병세가 점점 악화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도련님한테 가족 하나 남지 않게 되는 거잖아요. 전… 그냥… 아가씨가… 좋은 분이신 것 같아서. 비록 임씨 아가씨를 밀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엄선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소경의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고작 그 작은 손난로 하나 때문에 이성을 잃은 거야? 정신 차려!”엄선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운전하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부소경이 사는 곳은 프
’부소경씨, 얼마 전에 나한테 예쁜 옷 많이 사줬잖아요. 나 그렇게 예쁜 옷, 살면서 처음 입어봤어요. 그리고 또 비싼 컴퓨터도 사주고… 어떻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물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 돈이 없어요. 빈털터리거든요. 돈이 엄청 많다고 해도 당신의 취향에 맞는 선물 고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평소에 입는 정장들 아마 천만 원도 넘는 옷들이겠죠? 천만 원이면 내 1년 치 월급인 거 알아요? 그래서 작고 볼품없는 물건들로 당신의 환심을 좀 사려고요. 이 담배 필터, 색상도 그렇고 디자인도 그렇고 당신처럼 성숙하고 권위 있는 남자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요.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네요. 마음에 안 들면 꼭 나한테 알려줘요. 다른 걸로 바꿔 줄게요. 이거 비싼 거 아니에요. 당신 담배 피는 거 엄청 좋아하잖아요. 담배 연기 맡으면서 담배 피는 걸 또 유독 좋아하죠. 그거 폐에 엄청 안 좋은 거 알아요? 그러면 니코틴이 폐에 더 많이 흡수되거든요. 그래서 샀어요. 이 담배 필터가 당신의 몸을 보호해줄 거예요. 당신 엄청 건강하고 강한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몸 잘 챙겨요. -신세희’마지막 줄에는 웃는 얼굴의 태양 이모티콘도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신세희가 직접 그린 것 같았다. 그녀는 웃는 표정을 일부러 더 과장되게 그렸다. 조금은 당돌하고 또 조금은 귀여웠다.부소경은 그만 웃어 버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하지만 이내 부소경은 다시 차갑고 진중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담배 필터와 카드가 들려져 있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신세희가 살던 방으로 들어갔다.방은 무척이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열려있는 옷장에는 며칠 전에 그가 선물한 예쁜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벌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리고 핑크색의 노트북도.노트북은 침대맡에 놓여있었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부소경은 노트북을 열어 보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그녀가 직접 그린 설계도 하나와 직접 그린 듯한 태양 그림이 들어있었다.
신세희는 이미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담배 필터 안 사는 건데… 담배 필터는 그녀가 해외에서 직구를 한 것이었다. 돈이 없었는데도 10만 원의 거금을 주고 산 건데…담배 필터가 아직 배달이 되기도 전에 그녀는 부소경의 집에서 쫓겨났다. 생각해보니 너무 웃긴 일이었다. 아마 지금쯤 담배 필터는 부소경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아마 혐오감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내 선물을 쳐다보고 있겠지… 그리고 차갑게 웃으며 그걸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릴 것이고.그 생각이 들자. 신세희는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난 그냥 고마워서 그런건데. 나한테 예쁜 옷을 사준 게 고마워서. 나한테 노트북을 선물해준 게 고마워서…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이 한 행동이 무척이나 수치스러웠다.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호텔에 돌아온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는지 그녀는 내내 몸을 뒤척였다.절반은 그 담배 필터 때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숙민의 병 때문이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날이 거의 밝을 때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잠에서 깼다. 시간은 무척이나 빠듯했다. 신세희는 자신이 묵는 호텔이 하숙민이 입원한 병원과 가까운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는 허겁지겁 하숙민의 병실로 달려갔다. 그녀는 그제야 하숙민이 밤새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의사들은 하숙민에게 응급 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가족의 면회를 불허하고 있었다.신세희는 다시 회사로 출근하는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동료들이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비웃기 시작했다.“신세희, 쟤 어제 뭐 한 거야? 다크써클은 왜 저렇게 심해? 무슨 판다인 줄 알았잖아. 어제 공사장에서 잡일 좀 하라고 했다고 벌써 성질부리는 거야? 그래서 아무나 잡고 알바 한탕 뛴 건가?”“내 생각에는 그게 맞는 것 같아. 쟤 엄청 가난하다며? 공사장에서 막노동하
몸을 바로 세운 신세희는 자기와 부딪친 사람을 쳐다보다 안색을 굳혔다."죄송합니다."서씨 집안 어르신은 혐오를 가득 담아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차갑게 비웃었다."저번에 보았을 땐 저속한 화장을 하고 있더니 이번엔 아주 꾀죄죄하니 더럽고 못나기 그지없구나. 넌 대체 뭐냐?"노인은 엄숙함 속에 인자함도 갖추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한없이 까칠하게 굴었다. 신세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노인을 지나쳐가려는 찰나 노인이 지팡이로 그녀의 길을 턱 막았다.신세희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시는 거예요?""내 물음에 답하거라!"노인은 딱딱한 말투로 그녀에게 명령했다.화를 억누른 신세희가 반문했다."어르신, 저를 아세요?""부 소경이네 계약 아내가 아니더냐! 자기 어미의 임종 전 소원을 들어준답시고 두 달 동안 너를 산 게 아니냐?"노인이 힐난하듯 물었다."그게 어르신과 무슨 상관이죠?"신세희가 또 반문했다."나는 몰라도 내 손자와는 관계있어! 소경이가 제 어미를 위해 널 사서 결혼까지 했는데, 그 기회를 이용해서 상류층에 접근하더니 내 손자한테도 꼬리를 치지 않았느냐. 뭐가 그렇게 성에 안 차서, 네 욕심은 끝이 없구나! 이 되바라진 것, 잘 듣거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내 손자는 꿈도 꾸지 말거라!"신세희는 싸늘하게 노인을 쳐다봤다."당신도 제 말 잘 들어요. 네, 당신은 돈이 많죠. 저는 아마 그 돈에 깔려 죽고도 남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대단해요? 그 돈을 무덤까지 가져가시게요? 그렇게 당신 손자가 걱정되면 그냥 손자를 우리 안에 영원히 가둬버리세요! 절대 우리 밖으로 못 나오게 하란 말이에요. 그게 대체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저요? 당신 눈에는 제가 천박해 보이겠지만 그래도 저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자격은 없거든요? 설령 제가 정말로 당신 손자랑 연애한다고 하더라도요!""너...! 좋아, 어디 한번 두고 보자꾸나."신세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두
신세희는 이곳에서 누구와도 입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빨리 하숙민을 만나고 싶어질 뿐이었다.민정연은 이내 흥미를 잃고 노인을 따라 들어갔고, 그 뒤로 방금 차를 세운 서준명이 다가왔다.지난번 그의 할아버지가 신세희를 만나지 못하게 가택에 연금한 뒤로 서준명은 한 번도 신세희를 따로 본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그는 굉장히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사실 대부분은 그녀에 대한 연민이었다."왜... 이런 모습인 겁니까?"서준명이 마음 아픈 표정을 지었다."서준명 씨,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제 곁에서 떨어지세요.""......"잠시 머뭇거린 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세희 씨, 화가 나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노부인의 일이 해결되는 대로 신세희 씨 일도 제가 잘 해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서준명은 빠른 걸음으로 노인과 민정연을 따라잡았다.신세희는 그대로 병원 입구에 서서 20분을 기다렸지만 서씨 집안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점심 휴식 시간이 곧 끝나가니 오래 머물 수 없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여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하숙민의 병실로 향했다.병실 입구에 이르자 의사와 가족,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하숙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그들이 저마다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숙민아, 삼촌이다, 숙민아? 네가 내내 고생만 한 걸 잘 알고 있다. 삼촌이 이제야 널 보러 와서 미안하구나, 내가 원망스럽지? 내 목소리는 들리니? 네가 얼마나 훌륭한 건축 엔지니어인데,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이냐?""큰어머니?" 서준명도 외쳤다."아줌마?" 민정연의 목소리였다.부씨 집안 다른 친척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부소경도 마찬가지였다."어머니, 어머니, 눈 좀 떠보세요! 어머니!"부소경의 목소리는 처량하기 그지없었다.그 소리를 들은 신세희도 가슴이 철렁했다.부소경이 대체 왜 오늘 회사에 가지 않았단 말인가?F그룹의 모든 건 다 그에게 달려있었으니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
부소경의 남성적인 구릿빛 피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비통함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고단한 얼굴의 부소경이 아무 말 없이 신세희를 쳐다보았다.신세희는 여전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자신은 항상 침착하고, 모든 걸 훤히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갖추었다고 여겼지만 그의 앞에만 서면 마치 투명한 백지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았다.지금도 부소경은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한 것에 슬퍼했지만 절대 눈물은 보이지 않은 채 그저 가슴속에 비통함을 간직할 뿐이었다. 겉모습은 여전히 매끈한 수트 차림에 딱딱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어떠한가?자신은 더러운 몸과 검게 그은 얼굴로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서아의 함정에 걸려들거나, 조의찬에게 희롱당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서씨 집안 어르신에게 비난받는 신세였다.아니라면 민정연이라는 아가씨에게 야유받기도 했다.부소경도 마찬가지였다.부소경에게 여유가 생긴다면 과연 자신을 어떻게 처리할까?그는 속을 전혀 알 수 없었고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으며 맺고 끊음도 확실했다.그녀는 전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사실 그녀는 그와 적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운성 상류층의 그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녀는 어느새 비열하고 욕심 많은 광대가 되어 추한 웃음을 머금으며 이 상류층에 놀아나고 있었다.그녀가 특별히 대리 구매한 담배 필터도 마찬가지였다.그건 마치 그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추한 사람이라는 증거 같았다.그는 틀림없이 그 담배 필터를 받았을 것이다. 그는 과연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여길까?아니나 다를까 차디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우리 어머니가 마음 아파서 울고 있는 건 맞아?""당연하죠!"지저분하고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을 든 신세희가 말했다."그동안 당신이 우리 어머니를 돌본 것도, 지금 슬퍼서 흘리는 눈물도 모두 나와의 계약 때문이 아니고, 돈을 위해서도 아니라는 거지?"부소경이 물었다."......" 그는 대체 무슨 대답을 바라
출근 시간은 이미 지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신세희는 병원을 나와 회사로 출근했다.다행히 오후 내내 아무도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퇴근할 무렵, 디렉터를 대신해 디자인 팀을 관리하던 한 디자이너가 신세희에게 말했다."신세희 씨,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사무실에 출근하지 말고 공사장으로 가세요. 거기 일손이 부족해요."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녀는 사실 공사장에 가고 싶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은 비록 힘들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그리고 공사장 식당은 밥도 많이 주었다.배 속에 아이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식사량도 늘어났다.하지만 공사장에 가면 점심에 하숙민을 보러 갈 수 없었다.퇴근 후 신세희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저녁이 다 되어갔으니 더 이상 하숙민을 보러 올 손님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하숙민과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그러나 병실 밖에서 바라보니 부소경이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하숙민의 병상 앞에 앉아 있었다.하숙민은 여전히 의식불명의 상태로 몸에 기계를 가득 달고 있었다.신세희는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문득 하숙민은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는, 부소경이 더 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그녀의 마음이 더 괴로워졌다.하숙민과 마지막 작별 인사할 기회도 사라진 셈이었다.극도로 씁쓸해진 신세희는 몸을 돌려 병원을 나가려다가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엄선우를 발견했다.신세희는 그의 옆을 슬쩍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엄선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부 소경이 그녀를 필요로 하고,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을 때는 사모님이었지만 지금은 죽이지 못해 안달 났으니 그녀는 엄선우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오히려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 못한 사이였다.신세희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가 채 한 발짝을 내딛기 전에 엄선우가 그녀를 불렀다."사모... 세희 아가씨... 아니, 신세희 씨,
오늘 조의찬은 매우 깔끔한 차림이었고 표정도 엄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업 중인 것 같았다. 그의 앞에 측정기가 놓여있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측정기를 보며 숫자를 측정하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조의찬은 신세희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그녀와 부딪혀서야 그는 얼굴을 굳히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당신이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왜 내 품에 안기지? 철이 없군요, 신세희 씨.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않겠어요? 앞으로 특히 내가 일할 때는 소란 피우지 말아요."그의 말은 조금도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고 일부러 그녀를 조롱하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품에 그녀가 안기니 불쾌한 것만 같았다.입술을 깨문 신세희가 사과했다."죄송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의찬을 지나쳐 공사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원래 이틀 안에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 그에게서 받은 60만 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그러나 일에 몰두한 조의찬이 귀찮은 기색을 내보이자 신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쓸쓸하게 공사장으로 향했다.신세희가 멀리 떠나자 측정기 앞에 서 있던 조의찬은 비로소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차 안에 있던 서신언에게 말했다.“시언아, 내려와!"차에서 내린 서시언이 조의찬에게 다가갔다."조의찬, 방금 엄청 그럴듯했어. 누가 보면 정말 건축가인 줄 알겠더라?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연기를 잘 하지? 골 때리네."까칠한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조의찬이 껄렁껄렁한 말투로 서시언에게 말했다."봤냐? 방금 저 모습이 바로 내가 저 여자를 처음 봤을 때 그 모습이라고. 엄청 우울하고 금욕적이고 냉담하지? 또 얼마나 촌스럽고 불쌍하고 무력한지...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라고!""......"잠시 후 서신언은 눈을 깜박이며 조의찬에게 물었다."의찬아,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난 네가 이해가 안 가. 저 여자는 네 사촌 형수야. 그런데 정말 건드릴 생각인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