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의찬은 매우 깔끔한 차림이었고 표정도 엄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업 중인 것 같았다. 그의 앞에 측정기가 놓여있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측정기를 보며 숫자를 측정하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조의찬은 신세희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그녀와 부딪혀서야 그는 얼굴을 굳히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당신이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왜 내 품에 안기지? 철이 없군요, 신세희 씨.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않겠어요? 앞으로 특히 내가 일할 때는 소란 피우지 말아요."그의 말은 조금도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고 일부러 그녀를 조롱하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품에 그녀가 안기니 불쾌한 것만 같았다.입술을 깨문 신세희가 사과했다."죄송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의찬을 지나쳐 공사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원래 이틀 안에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 그에게서 받은 60만 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그러나 일에 몰두한 조의찬이 귀찮은 기색을 내보이자 신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쓸쓸하게 공사장으로 향했다.신세희가 멀리 떠나자 측정기 앞에 서 있던 조의찬은 비로소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차 안에 있던 서신언에게 말했다.“시언아, 내려와!"차에서 내린 서시언이 조의찬에게 다가갔다."조의찬, 방금 엄청 그럴듯했어. 누가 보면 정말 건축가인 줄 알겠더라?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연기를 잘 하지? 골 때리네."까칠한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조의찬이 껄렁껄렁한 말투로 서시언에게 말했다."봤냐? 방금 저 모습이 바로 내가 저 여자를 처음 봤을 때 그 모습이라고. 엄청 우울하고 금욕적이고 냉담하지? 또 얼마나 촌스럽고 불쌍하고 무력한지...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라고!""......"잠시 후 서신언은 눈을 깜박이며 조의찬에게 물었다."의찬아,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난 네가 이해가 안 가. 저 여자는 네 사촌 형수야. 그런데 정말 건드릴 생각인 거
조의찬은 퇴폐적인 미소를 지었다."어쩔 수 없지, 운성에 널린 게 미녀들인데 내가 누굴 안 따먹어봤을 것 같냐? 너무 질리잖아. 서씨 집안 민정연을 한번 떠올려봐. 야, 넌 솔직히 민정연 같은 여자가 좋냐? 걸핏하면 투정에 잘난 척에,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하고. 정말로 그 집안 아가씨면 인정. 그런데 걔는 성이 민씨잖아. 그 집안에 얹혀사는 주제에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정말 짜증 나지 않냐?""......"조의찬은 공사장 외곽에서 공사가 끝날 때까지 허세를 부리며 하루를 보냈다. 저 멀리 가방을 멘 신세희의 생기 없는 모습을 발견한 그는 또다시 그녀가 지나가는 곳에서 매우 진지하게 일하는 척했다.조의찬의 곁에는 부하들도 몇 명 있었는데, 마치 그에게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신세희가 그의 곁을 지나갔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일에만 집중했다.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던 신세희는 결국 이야기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곧장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막 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와서 그녀는 바로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얼마 뒤 조의찬과 서시언의 차가 그녀를 뒤쫓기 시작했다.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신세희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저녁 무렵 하숙민의 병실 안은 매우 조용했다. 잠든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하숙민이 온몸에 기계를 잔뜩 단 채 수액을 맞는 모습만 병실 밖에서 몰래 지켜봐야 했다.하숙민의 침대 머리맡에는 양복 차림의 부소경이 엎드려 있었다.이런 광경을 보고 신세희는 감히 병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차마 부소경에게 그들의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하지만 이틀째 하숙민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기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병실 밖 창가에 서서 의사가 병실 안에 들어가 부소경을 위로할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도련님, 이젠 정말 환자분을 무균실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환자분 지금 상태라면 한밤중에 열이 아주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밤새 여기 있어도
그는 신세희를 꽉 움켜쥐고 자신의 품으로 힘껏 잡아당기며 실성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이 년아, 기억력이 그렇게 안 좋아서 어떡해? 너 대학 2년 동안 내게서 돈과 물건을 얻어내려고 많이도 들러붙었잖아. 그때는 서방님 어쩌고 잘도 불러놓고, 감방에서 2년 동안 썩었다고 그새 나에 대한 호칭이 바뀌었냐? 이젠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했어?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당신 누구야! 놔! 안 놓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눈앞의 노인은 임지강보다 스무 살은 더 많아 보였다. 그런데 대낮에 이런 말을 하다니. 신세희는 당장 이 뻔뻔한 자의 뺨을 내려치고 싶었다.그러나 늙은이에게 잡힌 팔을 도저히 빼낼 수 없었다. 60, 70대는 되어 보이건만 기운이 만만치 않았다.신세희는 조금도 벗어날 수 없다."경찰에 신고해? 돈이나 물건을 달라고 할 땐 왜 신고할 생각 못 했어? 감방 안에서 물건이 필요할 땐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인제 와서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졌냐? 신세희, 나 곽세건이 아주 만만하지? 내가 필요할 땐 입안의 혀처럼 굴더니 이젠 필요 없으니까 경찰에 신고하시겠다?"자신을 곽세건이라고 칭한 남자는 도적 떼 같은 모습으로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신세희를 쳐다보았다.무언가를 깨달은 신세희가 입을 열었다."당신, 대체 임씨 집안과 무슨 관계야!""네가 임씨 집안과 나를 연결해 줬잖아? 너를 위해서 내가 임씨 집안에 보탠 게 얼만데! 이 년아, 너 혹시 새로운 주인이라도 만난 거냐?"곽세건의 말투를 들어보면 신세희를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마치 정을 통한 어린 옛애인을 대하듯 말이다.이것 또한 임씨 집안에서 파놓은 함정일 거라고 그녀는 매우 확신할 수 있었다.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발을 들어 노인을 콱 밟았다. 그가 고통에 힘이 빠진 틈을 타 가방에 손을 집어넣은 신세희는 칼을 꺼내려고 했다. 그건 임씨 집안에서 다시 그녀를 해치는 걸 대비해 가방에 숨겨둔 작은 칼날이었다. 그녀는 당장 그녀의 할아버지뻘이 되는
"출발해!"곽세건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는 즉시 차를 몰고 떠났다."곽 씨 노인네가 신세희를 데려갔어!"곽세건의 차가 막 떠나고, 멀지 않은 곳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조의찬이 그걸 발견했다.파란불이 켜지자 조의찬은 즉시 차를 돌려 곽세건을 뒤쫓았다.서시언이 조의찬에게 주의를 주었다."곽 씨는 이름난 색마야. 너 좀 바짝 따라가야 할 거다."조의찬은 오히려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저 촌년을 다시 보게 됐어. 정말 대단하지 않냐? 이쪽에선 남성에서 가장 잘나가는 우리 사촌 형이랑 혼인신고를 했으면서, 저쪽에선 운성에서 소문난 선비 집안의 서 씨 도련님을 유혹하고, 지금은 심지어 곽세건이랑 아는 사이네? 곽세건이 누구야, 우리 사촌 형의 원수라고! 우리 사촌 형이 이렇게 잘나가지 않았을 때 저 자식은 형을 죽일 뻔했어. 지금이야 형이 곽세건이네 자산을 거의 3분의 1로 줄여버려서 거지나 다름없지만... 이렇게 병원 문 앞에서 신세희를 낚아챌 줄은 몰랐네. 참 대단한 여자야?"서시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런데도 건드리고 싶냐?"조의찬이 핸들을 툭 쳤다."지금은 죽이고 싶어졌어.""......"두 사람은 가는 길 내내 신세희에 대해 의논하면서 곽세건의 차를 미행했다. 곽세건이 나이트클럽 입구에 온 것을 발견한 조의찬이 서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여긴 곽세건의 소굴이야. 가서 저 늙은이를 한번 만나보자고."말을 마친 조의찬이 차를 주차했다.한편, 이미 신세희를 끌고 차에서 내린 곽세건이 입구에 도착하자 누군가 깍듯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곽 사장님, 오셨습니까."곽세건은 문지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허리를 굽혀 신세희를 끌어안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있던 곽세건의 부하 직원이 매니저에게 말했다."제일 좋은 방으로 안내해.""예!"매니저가 바로 준비하겠다고 알려왔다.엘리베이터 문 앞, 곽세건에게 안긴 신세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하고 있었다. 곽세건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이 년이 이제야 얌전해졌네."신세희는 여전
호화로운 룸 안에 두 남녀가 있었다.60대의 비대한 노인인 곽세건과 여위고 볼품없는 신세희였다.그러나 조의찬과 서시언이 발견한 모습은 예상과는 정반대였다.곽세건은 땅바닥에 웅크린 채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는데 바닥에는 그가 흘린 피로 흥건했다.신세희는 깨진 술병을 들어 곽세건의 몸을 푹푹 찌르고 있었는데 그 장면은 꽤 끔찍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눈빛은 더없이 평온했다.조의찬과 서시언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이들이 안면 있는 두 도련님인 것을 본 곽세건은 구원자를 만난 것처럼 고통을 참으며 조의찬 곁으로 기어갔다."살려주십시오, 의찬 도련님. 빨리 제 사람들 좀 불러주십시오. 어서 저 미친년을 제압해서 당장 패 죽이란 말입니다! 제 명령이라고 전해주십시오!""......"깨진 술병을 든 신세희가 침착하게 조의찬을 바라보았다."의찬 씨, 아침에 당신을 만났을 때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틀만 있으면 월급이 나오니까 바로 당신에게 빌린 60만원을 돌려주겠다고요. 그런데 당신이 공사장에서 수치를 측정하느라 바빠 보여서 방해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그냥... 월급 나오면 직접 가져가세요, 모두 당신 거니까."신세희는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웃어 보였다."경찰에 신고해요. 아니면 저 새끼가 날 때려죽이게 내버려 둬도 되고요. 아무래도 좋아요. 전 얌전히 있을 거예요."말을 마친 신세희는 깨진 술병을 바닥에 던지며 그들의 처분을 조용히 기다렸다.그녀는 용서를 빌지 않았고 두려운 기색도 아니었다. 그저 차분하고 무감각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따름이었다.조의찬은 문득 이 세상이 그녀에게 너무 잔인하고 무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발버둥 치지도, 애원하지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걸지도 않았던 걸까? 지금은 마치 생존 본능조차 억제된 것만 같았다.갑자기 마음이 쓰라렸다.그는 신세희를 품에 꼭 껴안았다."뭐래, 왜 이렇게 기억력이 안 좋지? 얼마 전에 내가 한 말 잊었어요? 당신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날 찾아오라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서시언은 말문이 턱 막혔다.서시언과 조의찬은 죽마고우였다. 온종일 조의찬이 신세희를 분석하는 걸 듣고 있자면 가끔 자신도 거기에 이입되어 꼭 마치 신세희가 조의찬의 말한 그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그러나 오늘 서시언은 신세희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그녀의 눈빛은 평온해 보였지만 굉장히 단호했다. 그녀는 매우 약했다. 힘이 없으니 누군가 그녀의 머리 위에 똥을 싸도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의찬, 민정연이 한 짓이 그랬다. 그리고 부소경의 연인인 임서아는 더더욱 신세희를 억압하고 괴롭혔다.그러나 아무런 저항 능력이 없음에도 신세희는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전혀 두려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감옥에 가거나, 공멸하거나, 아니면 혼자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곽세건이 그녀를 범하고 모욕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얼마나 강인하고 꿋꿋한 사람이란 말인가?조의찬을 지나친 서시언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곽세건 곁으로 다가가 경멸을 담아 말했다."이봐요, 의찬이는 부씨 가문의 유일한 외손자예요. 부태승 어르신도 부씨 집안 넷째 도련님에게 여러 번 당부했죠, 어떻게든 의찬이를 잘 돌보라고요. 지금 당신이 조의찬과 맞선다면 결국엔 넷째 도련님의 총구에 스스로 머리를 갖다 대는 셈이에요.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보죠?""저 미친년이 나를 불구로 만들었다고!"고통에 겨워 땀을 줄줄 흘리던 곽세건이 외쳤다."일흔에 불구가 되는 게 뭐 어쨌다고."조의찬이 냉소했다."하지만 내가 다친 건...""치료비는 내가 댈게요."조의찬이 피식거리며 말했다."그래도 저년은..."곽세건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에라도 술병으로 자신을 불구로 만들어버린 신세희를 죽여버리고 싶은 표정이었다."내 여자라고! 감히 내 여자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당신 내 손에 뒈질 줄 알아!"조의찬이 야차 같은 얼굴로 말했다."......"곽세건은 조의찬이 신세희를 끌어안고 나가는 것을 두 눈을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일어나 지친 눈을 뜨고 부소경을 바라보았다. "요 며칠 당신이 바쁘다는 걸 알아요. 하 씨 아주머니의 병세가 심해져서 당신이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는 것도 알지만, 저희......계약에 관한 얘기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말을 마친 신세희는 침을 한 번 삼킨 뒤 부소경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오늘 하루 종일 일해서 피곤한 상태였는데, 저녁에 또 곽세건이라는 사람에게 객실을 약탈당해서 놀란 나머지 30분 동안 깨진 술병을 가지고 곽세건을 찔렀던 것이다.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때 그녀는 당연히 아무것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순간 정신을 차리자 그녀는 뒤늦게 두려움을 느꼈다.그는 병원에 누워 있었고, 일은 조의찬에 의해 해결이 되었지만 그녀는 병원비를 댈 돈이 없었다.그녀는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소경과 계약서라고 생각했다.부소경은 더없이 음산하게 신세희를 쳐다보았다.그는 오늘 기분이 최악에 달았다!어머니는 사흘째 의식불명 상태였고, 매일 고열이 가시지 않아 이제 깨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았으며, 며칠 동안 고열로 오장 육부도 거의 망가진 상태였다.어머니가 자신의 앞에서 조금씩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부소경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릴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 씨 집안의 친척을 데리고 와서 어머니의 존재를 인정하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계속해서 후회했다.그랬다면 어머니는 적어도 걱정거리가 사라졌다고 해서 몸 상태가 부쩍 나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부소경은 이미 3일 동안 쉬지 못했다.기분이 극도로 나쁜 상태에서 어머니의 병실에서 나왔을 때, 그가 목격한 광경은 신세희가 50~60대 노인에게 반쯤 끌린 채 차에 올라타는 모습이었다.원래 그는 그 담배 필터로 그녀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어 있는 상태였다.그 작은 담배 필터가 그의 마음에 자극을 준 것이었다.하지만, 그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던 찰나에 그가 목격한 사실이 그에게 알려주었다.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매우 복잡하고, 위장을 잘 한
그의 거실 구조는 절대로 도망칠 수 없게 되어 있었고, 그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을 그는 용서를 구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이었다.그는 여태껏 꾸물거리지도 않고, 아무 말도 없이 그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을 해결해왔다.지금 이 순간, 신세희는 부소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일부러 침착할 수밖에 없었다.부소경은 이내 심경을 알 수 없는 어투로 말을 꺼냈다."계약서상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용을 줄 수 있는데, 지금 어머니는 살아 계셔."신세희는 말이 없었다.그녀가 멍하니 있던 순간 부소경은 이미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는 조금도 그녀를 들여보낼 의사가 없었으며 문을 닫은 뒤 그녀를 문밖에 가두었다.문을 닫는 순간, 부소경의 눈빛은 점점 냉혹하게 바뀌어 갔다.몇 번이나 그는 손을 들어 눈앞에 있는 여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참았다.신세희가 어머니를 돌보는 모습, 그 앞에서 몇 안 되는 그녀의 달콤하고 단순한 웃음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리고 그녀의 날카롭고 매끄러운 글씨와, 그녀의 건축 디자인에 대한 재능까지.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복잡했다.문밖에서 신세희는 오랫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있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는 결과를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몸이 지친 탓에 휴식이 필요했으며 뱃속의 아이도 쉬어야 했기에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신세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지 몇 걸음 되지 않던 그때, 갑자기 부소경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것을 본 그녀는 처음에는 그가 달려들어 그녀를 처치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신세희는 화들짝 놀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부소경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주차장으로 달려갔다.남자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아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렸고, 그 차는 쏜살같이 자리를 떠났다.차가 지면을 스치는 소리가 매우 귀에 거슬린다."뭔가 불길해!" 신세희는 문득 병원에서 하 씨 아주머니의 상황이 또 악화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