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씨 어르신은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그러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신세희에게 말했다.“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너야.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오르지 않아. 너한테 파고들 구멍이 많았을 뿐이지.”신세희는 고개를 돌려 임지강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이… 내 아빠 맞아요? 내가 진짜 당신 핏줄이긴 한 건가요?”임지강은 냉랭한 눈빛으로 신세희를 쏘아보며 말했다.“난 너 같은 망나니 딸을 둔 적 없어!”신세희는 실소를 터뜨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병원에 누워 있는 당신 딸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요?”임지강이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핏줄인데 구해주는 건 당연하잖아? 그런데 너는 그 애가 죽어간다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척했지! 매정한 년! 나한테 어찌 너 같은 쓰레기가 딸로 태어났는지 의문이야!”“쓰레기라고요!”신세희는 헛웃음을 지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억지로 눈물을 집어삼켰다.고개를 돌린 신세희는 서 씨 어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르신 말씀대로 옛날 말 그른 거 하나 없네요.”“그게 무슨 소리야?”노인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감출 생각도 없어 보였다.“제가 졌어요. 어르신은 참 대단한 분이세요.”신세희가 말했다.“칭찬 고맙구나.”신세희가 다시 물었다.“저를 죽음으로 내몰면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셨나요?”“양심의 가책?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서 씨 어르신은 당당하게 되물었다.“서시언은 너 때문에 두 다리를 잃었어. 그 아이 부모한테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 하나? 아니면 너 때문에 죽을뻔한 조의찬? 그리고 가성섬에 있는 내 외손녀의 약혼자였던 반호경은 어떻고? 그게 다 내 잘못이니? 내가 너한테 미안함을 느껴야 해?”“그렇지 않나요?”“그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익을 위해 너한테 좀 잘못을 한다고 해도 그게 뭐 어때서?”서 씨 어르신이 말했다.“게다가 내가 너한테 미안할 일은 없다. 그때 처벌이 너무 가벼웠던 건 사실이잖니. 출소한 뒤에도 너는 잘못을
“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아요! 조건 없이 기증할게요!”신세희가 단호하게 말했다.“아쉽지만 이미 늦었어!”어르신의 매정한 말에 신세희는 숨이 막혔다.노인은 점점 더 음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신장 두 쪽을 다 가져갈 수 있는데 내가 왜 하나만 가져가겠니?”신세희는 눈물을 삼키며 처연하게 물었다.“꼭 이러셔야겠어요?”“미안하지만 난 이미 결정했단다! 너한테는 나와 협상할 자격이 없어!”신세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갈라터진 입술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매정하고 이기적인 노인 앞에 그녀는 또다시 깊은 절망을 느꼈다.신세희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그래요! 그냥 나를 죽여요! 임지강, 죽어서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나를 이 세상에 데려왔으면서 왜 나한테 이런 못된 짓을 한 거야? 우리 엄마한테는 왜 그랬어? 당신 우리 모녀에게 관심이나 준 적 있어? 당신 우리 엄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임지강, 내가 죽게 되면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그리고 영감, 잘 들어! 지금 당장 당신들한테 끌려가지는 않을 거야! 온갖 질병에 걸려서 장기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나 자신을 학대할 거야! 그렇게 해서 당신 외손녀가 내 장기를 탐내지 않도록 만들 거야!”“너….”“하하!”신세희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마음껏 해봐! 내 목숨 너희들한테 줄게! 나를 죽여!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라고!”그녀를 바라보는 엄선우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할아버지!”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왔다.“할아버지, 정말 너무하세요! 이러다가 천벌 받아요!”서 씨 어르신은 고개를 돌리고 서준명을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서준명 넌 또 왜 왔어? 내가 왜 천벌을 받아? 저 여자는 죗값을 치르는 거야. 6년 전에 출소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곽세건을 평생 사람 구실하지 못하게 만들었잖아! 이건 사실이야!”“임 씨 가문에서 곽세건을 이용해서 세희
여자의 악에 받친 고함에 모두가 놀랐다.거칠고 증오에 찬 목소리는 야수가 울부짖는 느낌도 들었다.한 여자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왔다.여자라고 표현했지만 귀신처럼 산발에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남루한 옷차림을 한 노숙자였다.그녀는 커다란 나뭇가지를 들고 신세희의 앞을 막아섰다.거리가 가까워서 상대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머리는 군데군데 떡 지고 흙도 묻어 있었다.그녀는 혼탁한 두 눈으로 서 씨 어르신을 노려보고 있었다.“영감! 내 딸 털끝이라도 건드려 봐! 당신 외손녀를 갈가리 찢어버릴 테니까!”서 씨 어르신은 인상을 찌푸리고 이 불청객을 쏘아보며 말했다.“넌 또 누구야? 누군데 우리 집안 일에 끼어들어?”등 뒤에서 신세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엄마… 엄마야? 엄마 맞아?”신세희에게 등을 돌리고 온몸으로 그녀를 가로막고 있던 노숙자는 엄마라는 소리에 어깨를 움찔했다.“엄마지? 엄마 맞잖아!”신세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여자의 어깨를 움켜쥐었다.여자는 흠칫하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렸다.신세희는 여자의 앞으로 다가가서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 보았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써서 이목구비가 보이지도 않았지만 신세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엄마, 우리 엄마 맞지?”여자의 혼탁한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엄마….”신세희는 목놓아 울며 여자의 품에 안겼다.여자의 손에 들렸던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엄마… 미안해. 미안해, 엄마!”신세희가 울며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엄마!”“나…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았어. 건축학과에 지원하려고. 그러면 나중에 우리도 돈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대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엄마,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나 믿어줘, 엄마. 임지강이랑 허영이 나를 모함한 거야.”“난 임지강이 내 아빠인 줄도 몰랐어. 엄마도, 임지강 본인도 나한테 아무 말 안 했잖아. 내가 그 집에서
“아이 아빠가 누군지도 몰랐어. 출소하고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임지강을 찾아갔어. 왜 엄마를 살리지 않았냐고 임지강에게 따졌어.”“그때 임지강은 최선을 다했지만 엄마를 살리지 못했다고 나한테 말했어. 그리고 엄마를 고향에 묻었다고 했어.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배도 점점 불러오고 돈이 없어서 갈 수가 없었어.”“미안해, 엄마. 엄마가 정말 살아 있을 줄은 몰랐어.”“엄마가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했어. 아빠와 같은 곳에 묻힌 줄 알았어. 돈을 벌어서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임지강 가족들이 나를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어.”“6년이나 도망생활을 했어. 어디를 가든 임지강과 허영에게 들켰어. 그래서 이름도 바꾸고 계속 이사를 했어….”“반년 전에 아이 아빠가 나를 찾아왔어. 그렇게 남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두 달 전에 엄마 제사를 지내러 고향에 갔었어. 아빠와 엄마의 무덤을 남성으로 옮기려고. 그때에야 알았어. 엄마가….”“임지강이 나한테 거짓말했던 거야. 엄마는 살아계셨는데 저 인간이 나를 속였어!”“그 뒤로 줄곧 엄마를 찾아 다녔어.”“고향에서 돌아온 뒤로 누군가가 멀리서 나와 유리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멀리서 나를 바라보던 사람이 엄마 맞잖아.”“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어?”“내가 엄마를 지키지 못해서 화난 거야? 내가 병원비를 보내지 못해서 나한테 화났어? 아니면 몇 년 동안 엄마를 찾지 않아서 화났어?”“미안해, 엄마. 미안해!”신세희는 어린아이처럼 구슬피 울었다.“엄마, 미안해. 세희가 잘못했어….”이 모습을 지켜본 서준명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형사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시골에서 올라온 중년 여자의 신고로 일단 참고인 조사부터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슬픈 사연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그들은 서 씨 어르신의 눈치를 살폈다.서 씨 어르신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그가 알던 사실과 너무도 달랐다.임지강의 말로는 신세희의 엄마는 아이를 그에게 버리고 혼자 행복을 찾아
서준명은 고모를 부르며 노숙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여자는 움찔하며 혼탁한 눈으로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먼지투성이 얼굴은 눈물이 번져 더욱 볼품이 없었다.그녀는 핏발이 선 눈으로 서준명을 바라보며 처량한 목소리로 물었다.“젊은 청년, 방금 나를 뭐라고 불렀어?”서준명은 다가가서 노숙자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당신이 제 고모 맞죠? 당신은 작은할머니의 아이가 아니라 제 할머니의 핏줄이잖아요. 고모.”그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주절거렸다.“고모는 어렸을 때 작은할머니와 같이 생활했다고 들었어요. 두 분은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저택을 떠나 밖에서 생활했다고요.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고 작은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에게 고모는 우리 할머니가 낳은 아이라고 실토하셨죠.”“작은할머니는 재능이 넘치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지금도 그분이 그린 그림을 간직하고 있어요.”말을 마친 서준명은 고모의 표정을 살폈다.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머리카락에 가려지지 않은 곳도 먼지가 껴서 본연의 피부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혼탁하고 절망한 눈빛만 똑똑히 보였다.핏발이 선 눈에서는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그녀는 서준명을 잠시 바라보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우리 엄마를 여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우리 엄마의 그림도….”“고모!”서준명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당신이 제 고모 맞군요….”놀란 서 씨 어르신이 뒤로 뒷걸음질 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네가… 내 딸이라고?”서준명은 고개를 들고 슬픈 표정으로 노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고모, 그거 알아요? 저희 부모님, 그리고 우리 형제들… 항상 고모를 그리워하고 찾으러 다녔어요. 형은 해외에서 고모의 소식을 수소문했고요. 우리 부모님은 전국 각지에 사람을 보내 고모를 찾았어요.”“우리 가족은 30년이 넘게 고모를 찾아 다녔어요.”“고모는 열여덟에 집을 떠났고 제가 벌써 서른이 넘었어요.”서준명은 계속해서 고모를 불렀다.노숙자는
“당신이 사람이야?”“당신은 사람 피 말리는 흡혈귀야!”“망할 영감이 내 딸의 신장을 욕심내면서 내 딸에게 있지도 않은 죄명을 뒤집어 씌워? 기댈 곳 하나 없는 애라고 만만해?”“이제 내가 우리 딸을 지킬 거야! 약한 자를 괴롭히는 당신 같은 인간은 정말 지겨워! 높은 신분이면 다른 사람 목숨을 가지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야? 당신은 몇 번이고 내 딸을 괴롭혔지? 욕하고 괴롭히고 모함하고! 정말 세희가 기댈 곳 하나 없을 줄 알았어?”“똑똑히 들어, 영감! 내가 내 딸을 지킬 거야! 누가 내 딸 털끝 하나 건드리면 그 가족들까지 다 죽여버릴 거야! 어차피 난 노숙자고 잃을 것도 없어. 그런 내가 두려울 게 있을 것 같아?”현장에 있던 아무도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일부는 서 씨 어르신의 매정함을 비난했다.“아니, 연세도 있으신 분이 왜 저렇게 나쁜 짓만 골라하실까?”“그냥 돌아가세요, 어르신!”“오래 사셨잖아요. 젊은 사람 괴롭히지 마세요.”“장기를 강탈하는 놈은 봤어도 대놓고 장기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인간은 처음이네!”“할아버지, 그렇게 사는 거 아니에요!”하지만 서 씨 어르신의 귀에는 그들의 욕설이 들리지 않았다.노숙자가 얼굴에 침을 뱉었지만 그것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자네… 이름이 뭐야?”“퉤!”노숙자는 다시 그의 얼굴에 대고 침을 뱉었다.“당신은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어. 당신한테 내 이름을 알려주는 것조차 역겨우니까!”서 씨 어르신은 심한 욕설에도 반박 한마디 하지 않았다.“당장 꺼져!”노숙자가 소리쳤다.그녀의 시선이 간신히 벽을 붙잡고 서 있는 임지강에게 향했다.임지강은 그녀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임지강!”노숙자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당신이 딸을 나 몰라라 하고 나한테 눈길 한번 안 줄 때도 당신을 탓하지 않았어.”“내 딸을 그곳으로 보내고 당신이 매달 나한테 생활비를 청구해도 내가 언제 한번 거절한 적 있어?”“8년! 세희는 당신
임지강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노숙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어… 어떻게 아직 살아 있지? 분명….”여자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임지강 당신은 나를 너무 얕잡아봤어. 나 열여덟 살에 가출한 사람이야. 거리에서 밥도 빌어먹어 보고 다리 아래에서 잠든 적도 많아. 길 고양이와 음식을 빼앗아 먹은 적도 있어.”“다리 밑에서 잠들었다가 나쁜 짓을 하려는 노숙자를 때려눕힌 나야! 그런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았어? 내 딸이 밖에서 힘들게 사는데 당연히 죽을 수 없지!”“당신….”겁에 질린 임지강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오늘 이곳에서 전처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에게 전처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내 딸을 속여 감옥에 들여보내고 내가 혹시라도 사건을 조사할까 봐 나를 인적도 드문 공사장에 보냈지! 거기서 일하면 매달 거액의 월급이 나온다면서! 당신 때문에 하마터면 추락해서 죽을 뻔한 적도 있어!”“뭐라고요? 고모님 뭐라고 하셨어요? 돈을 벌기 위해 그 몸으로 공사장에서 일했다고요? 서 씨 가문 2세가 어떻게 그런 험한 일을….”옆에서 듣고 있던 서준명이 눈물을 훔치며 절규했다.노숙자는 매몰차게 서준명을 걷어찼다.“네 고모 아니라니까!”그는 고개를 돌리고 증오에 찬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쏘아보았다.서 씨 어르신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하지만 노숙자는 어르신에게는 눈길도 돌리지 않고 임지강을 노려보며 말했다.“당신은 내가 현장에서 죽기를 바랐겠지? 그래야 내 딸을 아무 거리낌없이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내연녀가 낳은 딸이 사고를 치니까 내 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잖아? 애가 감옥에 갔는데도 당신은 내가 아프다면서 내 딸을 곧 죽을 남자의 방에 들여보냈지!”“임지강, 당신이 사람이야?”“금방 감옥에서 출소한 애가 임신까지 하고 당신 집에 찾아갔을 때 당신은 개처럼 그 애를 내쫓았어!”“난 당신이 살아 있는 게 너무 증오스러워! 당신 가죽을 바르고 사지를 찢어
“임지강! 죽어마땅한 놈! 내 딸이 부소경의 아이를 임신한 줄 알면서 내연녀가 낳은 딸을 내 딸인 것처럼 위장해서 둘을 결혼시키려 했지. 당신이 어떻게 인간이야?”“당신 같은 인간은 죽었어야 해!”“내 딸에게는 아이 아빠가 살아 있다는 말도 안하고 뒤로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내 딸을 죽이려고 했지? 당신 같은 아빠가 어디 있어? 당신은 죽어서 지옥에 갈 거야!”임지강은 계속 욕설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었다.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어서 도망치기도 쉽지 않았다.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노숙자의 욕설을 듣고 있었다.신세희는 갈라진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다가가서 말리고 싶었다.9년 만에 만나는 엄마였다.빨리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가서 따뜻한 물에 씻기고 쉬게 하고 싶었다.신세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그만하자. 일단 집으로 가. 엄마는 쉬어야 해. 성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병원에도 가봐야 하고.”“아니, 난 말할 거야!”엄마는 고집스럽게 말했다.그녀는 구경꾼들을 둘러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서 씨 어르신에게 시선을 돌렸다.“네 엄마 목소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나 스스로 독약을 삼켰거든!”엄마가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지 않고서는 임지강 집에서 도망칠 수 없었어!”신세희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물었다.“엄마, 혹시 임지강이 엄마를 감금했어요?”노숙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그래! 공사장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임지강은 내 시체를 찾으러 공사장에 갔어. 시체를 봐야 안심할 것 같았나 봐. 하지만 몇 날 며칠을 찾아도 시체는 나오지 않았고 저 인간은 내가 살아 있다고 확신했어.”“난 운 좋게 살아 남았던 거야. 사고가 있던 날 배탈이 나서 일을 나가지 않았거든.”“병원에서 돌아오니 공사장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어.”“급여도 못 받고 갈 곳이 없었던 난 그때부터 거리를 방황했어.”“그러던 어느날 임지강이 고용한 사람들이 나를 발견했어. 급